영화 ‘범죄도시 4’의 포스터. /영화 홈페이지
‘범죄도시4’가 개봉 일주일만에 600만 관객을 모았다. 한국영화는 곧 상반기에만 두 편의 천만 영화를 보유하게 된다. 인구 5000만 나라에서 천만 영화가 몇 편씩 나오는 건 기현상이다.‘파묘’는 최소한 상도의라도 있었다. 전국 상영관 점유율이 50퍼센트였다. ‘범죄도시4’는 해도 너무하다. 개봉일부터 일주일 동안 하루 평균 약 2861개 스크린에서 1만 5851회 상영하며 상영점유율 82퍼센트, 좌석점유율 85.9퍼센트를 찍었다. 관객들은 선택권을 잃었다. 비슷한 시기 개봉한 ‘정순’은 전국 3개 스크린에서 총 관객 3438명, ‘땅에 쓰는 시’는 7개 스크린에서 8549명, ‘여행자의 편지’는 13개 스크린에서 5260명이 봤다.한국에선 영화가 자본주의의 꽃이다. 시장의 영업 행위일 뿐이다. 하지만 다양성 없는 독과점은 전체주의다. ‘범죄도시4’는 재밌는 영화일지언정 좋은 영화는 아니다. 한 편의 재밌는 영화를 띄우려고 여러 편의 좋은 영화를 가라앉히는 것은 폭력이다.‘범죄도시’의 알파와 오메가인 마동석은 한국에 ‘리썰 웨폰’이나 ‘다이하드’ 같은 액션 프랜차이즈를 정착시키고 싶다고 했다. 그 영화들도 황소개구리처럼 닥치는 대로 먹어치워 영화 생태계를 말살시켰을까? ‘리썰 웨폰2’와 ‘다이하드2’가 개봉한 1989년과 1990년엔 ‘레인맨’, ‘나의 왼발’, ‘드라이빙 미스 데이지’, ‘죽은 시인의 사회’, ‘7월 4일생’이, ‘리썰 웨폰3’가 나온 1992년엔 ‘용서받지 못한 자’, ‘여인의 향기’, ‘라스트 모히칸’, ‘흐르는 강물처럼’이, ‘다이하드3’가 개봉한 1995년엔 ‘데드 맨 워킹’, ‘가을의 전설’, ‘브레이브 하트’, ‘유주얼 서스펙트’가 있었다. 영화 산업의 중심인 할리우드에서도 작품 다양성과 관객들의 선택권은 지켜진다. 소수의 대형 영화사와 다수의 독립 영화사들이 협업관계를 이루며 분리와 평형을 유지하는 게 할리우드의 힘이다.마동석의, 마동석에 의한, 마동석을 위한 시리즈다. “자기 복제를 안 하려고 한다. 재미있다고 계속 하는 건 지양한다”고 했지만 그의 액션 연기와 스토리라인은 진부한 클리셰가 돼 버렸다. 1편은 꽤 신선했고, 2편은 손석구와 박지환의 연기라도 보는 맛이 있었다. 3편부터는 조악한 스토리와 방방 뛰는 활극만 남았다. 4편은 안 봐도 뻔하다. 이 시리즈는 현재 5, 6, 7, 8편의 대본을 한꺼번에 집필 중이라고 한다. 영화라는 예술에 대한 모독처럼 느껴진다. 막장드라마 쪽대본도, 다작과 속작으로 B급 무비를 마구 찍어댄 70~80년대 남기남, 고영남 감독도 그렇게는 안했다. 돈에 혈안이 된 제작사와 배급사, 감독과 배우, 그리고 군중심리가 결합해 ‘범죄도시 8부작’이라는 괴물을 낳았다.‘심야의 FM’이나 ‘범죄와의 전쟁’, ‘부당거래’ 때까지만 해도 마동석은 제법 진지한 배우로 보였지만 이젠 배우라고 하기 민망할 정도다. 스스로를 공장에서 천만 개 찍어낸 근육인형으로 팔고 있다. 출연하는 영화, 드라마, 광고가 다 똑같은 주먹 자랑이다. ‘대중이 원하지 않느냐’는 반문은 너무 쉬운 출구전략이다.
이병철 문학평론가이자 시인. 낚시와 야구 등 활동적인 스포츠도 좋아하며,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범죄도시4’의 독과점을 비판한 기사에 달린 댓글들이다. “재미만 있으면 늘리지 말라고 해도 극장에서 알아서 늘린다. 억지로 규제 좀 하지마라”, “맛집이라 줄 서 있는 가게 있고 맛없어서 텅텅 비어 있는 가게 있다. 보고 싶은데 스크린 몇 개 없어서 빡빡하게 앉아 봐야 하나?”, “언제까지 이런 구닥다리 기사를 쓸 건지. 다 계산기 두드리고 하는 일인데. 창의적인 기사 좀 보고 싶다”… 지금 박스오피스에서 자본을 앞세워 다른 영화들을 규제하는 것도, 보고 싶은데 스크린 없어 못 보게 하는 것도, 창의적인 영화 안 나오게 하는 것도 다 “재미만 있”고 예술은 없는, 오직 저속한 상품성만 남은 ‘구닥다리 액션 맛집’ 그 시리즈다.김수영은 참여 문학을 내세우면서 민중의 참여가 불가능할 만큼 난해한 시를 쓴다는 비판에 “읽기 쉬운 글만 읽으면 민중은 성장할 수 없다”고 일갈했다. 발터 벤야민은 나치의 파시즘이 예술을 정치 선전의 도구로 악용하는 ‘정치의 예술화’에 맞서 ‘예술의 정치화’를 실현할 장르로 영화를 제시했다. 김수영도 벤야민도 사유하는 주체로서의 대중을 믿었다. ‘범죄도시’ 시리즈는 자본의 영화화다. 나는 자본의 영화화를 부끄럽게 만드는 개성, 예술, 양심, 자유, 사랑의 영화화를 기다린다. 그것은 분별력 있는 대중과 함께 나타난다.
2024-05-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