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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은 미친 짓이다

등록일 2024-07-01 18:26 게재일 2024-07-02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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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월 김삿갓계곡에서의 망중한을 즐기는 필자.

1985년생 남성 중 절반이 미혼이라고 한다. 1984년생인 나는 또래 열 명 중 아직 장가 못 간 네댓 가운데 하나니 서러울 것 없다. 주변에서 여자 좀 만나라고 한다. 그러면 대답한다. 만나고 싶어도 여자가 없다고. 말도 안 된다며 너스레 떨지 말라고들 하는데 통계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여아와 남아의 자연적 성비는 100대 104~107 정도다. 한국에서는 이 성비가 197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심각하게 한쪽으로만 치우쳤다. 남아선호사상 때문이다.

초음파로 태아의 성별을 감식할 수 있게 된 이후로는 1990년 100대 116.5까지 성비 불균형이 치솟더니 급기야 1994년에는 셋째 아이 이상 성비가 206.9에 달했다고 한다. 딸 하나 태어날 때 아들 둘이 태어난 셈이다.

30년에 걸친 남아선호사상 때문에 오늘날 한국은 합계 출산율 0.66명의 초저출생 사회가 됐다. 나 같이 훤칠한 쾌남마저 여태 짝을 못 찾은 걸 보면 과연 성비 불균형의 영향이 없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보다 더 크게 작용하는 건 경력 단절, 양육비 부담, 주거 불안, 돌봄 시설 부족 등 사회 제반의 문제다. 젊은 남녀가 결혼과 출산에 회의적인 것은 서로 싫어서가 아니라 서로 좋아 합쳤더니 “한 천국을 지옥으로 만들”(황인숙, ‘움찔, 아찔’)어 버리는 사회 현실 탓이다.

엊그제 죽마고우와 영월 김삿갓계곡에 갔다 왔다. 1984년생 노총각 둘이서 물장구치고 백숙 삶아먹고 민물장어와 한우 갈비꽃살 구워먹고 산메기 잡아 매운탕 끓여먹고 진탕 술 마시고는 한 침대에 등 돌리고 누워 해가 중천에 걸릴 때까지 코골며 잤다. 그렇게 2박3일 잘 놀았다. 얼마나 행복했는지 모른다. 계곡물에 발 담그고 낮술 먹다가 “애인이랑 왔으면 재미없었을 것”이라는 의견 일치를 이뤘다.

결혼을 생각할 때면 친구나 나나 막막해진다. 막막하고 자신 없는 걸 할 바에야 그냥 이렇게 둘이 놀러나 다니자며 낮술에 취한 채 진시몬의 ‘보약 같은 친구’를 합창했다. “자식보다 자네가 좋고 돈보다 자네가 좋아…” 통계화되지 않는 사회적 분위기라는 게 있다. 바로 이 지점에서 나의 미혼 사유는 구체화되며 가정을 꾸리지 않겠다는 의지 또한 굳건해진다. 내가 결혼하지 않는(이라고 쓰지만 사실은 결혼하지 못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남들처럼 살 자신이 없다. 이상과 현실에 괴리가 있다지만 주변 결혼한 이들을 보면 전부 이상 세계에 살고 있는 것 같다. 화려하고 여유로워 보인다. 다들 수면 아래서는 처절한 물갈퀴질 중일까? 나는 아무리 해도 저렇게 살 수 없을 것만 같다. 발버둥 쳐봐야 안 될 것 같고, 근사하게 살자고 발버둥 치기도 싫다. 남들처럼 살 자신이 없다는 말을 “남들처럼 살고 싶지 않다”로 고쳐본다. 이 가치관이 비슷한 상대를 만나면 좋겠지만 100대 116.5다. 되겠나?

이병철 문학평론가이자 시인. 낚시와 야구 등 활동적인 스포츠도 좋아하며,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이병철 문학평론가이자 시인. 낚시와 야구 등 활동적인 스포츠도 좋아하며,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둘째, 아이에 대한 애착이 걱정된다. 교권 간섭, 음식점 추태, 차량 뒤에 붙인 ‘까칠한 아이가 타고 있어요’ 문구 따위 아이에 대한 지나친 애착과 과보호, 이른바 ‘내 새끼 지상주의’의 사례들을 보며 혀를 차다가도 ‘내가 아빠가 되면 더하겠지?’ 하는 생각이 든다. 세월호에서, 이태원에서, 군대에서 자식들이 죽었다. 음주운전에 관대하고 아동 성범죄에 자비를 베풀며 밀양 여중생 성폭행 가해자들이 잘 사는 나라에서 어떻게 아이를 키울까? 고슴도치 부모가 되는 건 당연하다. 나는 아이 걱정에 밤잠 설치고 늘 어딘가 곤두선 채로 살게 될까봐, 그리고 그렇게 애지중지하는 자식에게 정작 뭐 하나 제대로 해주지 못할까봐 결혼이 생경하기만 하다.

셋째, 혼자서 충분히 행복하다! 이 행복의 울타리 안에 누가 들어오면 함께 더 행복할까? 결혼한 사람들은 왜 결혼하지 말라고 하나. 왜 혼자 살라고 하나. 자기들은 결혼했으면서, 웃긴다 정말. 왜 연예인들은 방송에 나오기만 하면 결혼 생활을 푸념하며 배우자 험담을 하나. 결혼한 친구들 전부 이구동성 “네가 부럽다”고 말한다. 그럴 거면 대체 왜 했느냔 말이다. 내밀한 사정들은 모르지만 어쨌든 결혼한 사람들의 말과 글과 눈물과 한숨과 자기비하와 방황과 가출과 종교에 귀의와 이혼소송 등을 종합해보면 결혼은 고통이자 만병의 근원이며 악의 축인 동시에 생지옥이다.

얼마 전 나는 꿈에 그리던 낚시용 레저보트를 장만했다. 한 선배가 말했다. “이제 보트 같이 탈 여자만 있으면 되겠다”라고. 내가 답했다. “보트를 샀다는 건 평생 독신선언 아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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