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나는 ‘플래닛 크래프트’라는 컴퓨터 게임에 푹 빠져 있다. 게임은 단순하다. 지구에서 무거운 죄를 저지른 게임 속 주인공은 자신의 형량을 없애기 위해 이름도 없는 외계 행성으로 떠나야만 한다. 형량을 없애는 대신 주어진 주인공의 임무는 외계 행성을 사람이 살 수 있는 지구의 환경을 만드는 것, 그리고 머지않아 외딴 행성에 홀로 떨어진다. 주인공은 미지의 행성을 떠돌며 맵을 넓히는 동시에 자신이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물과 음식, 공기 등의 자원을 끊임없이 모아야만 한다.
홀로 외롭게 떨어진 행성은 때론 아름답기도, 또 때로는 빛 한줌 없는 어둠속에 잠겨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공포와 두려움을 갖게도 한다. 그럴 때마다 통신 기기에 ‘라일리’라는 사람이 말을 걸면서, 살아남을 수 있는 약간의 팁을 제공하고 이를 바탕으로 보이지 않는 어둠을 더듬어 나가며, 결국 이 행성을 지구처럼 테라포밍 후 탈출해야 하는 게임이다.
게임 속 아이템은 꽤나 디테일하다. 철, 마그네슘, 규소, 티타늄, 코발트를 모아 약한 인간의 피부를 보호할 수 있는 우주복을 만들고 일정 시간 버틸 수 있는 산소통도 만든다. 희귀 광물인 알루미늄으로 각종 추가 장비나 실험 공간 등을 건설하고, 우라늄을 캐서 로켓이나 제트백을 만들기도 한다. 각 광물은 특정 구간에서만 만날 수 있고, 또는 시간에 따라 캘 수 있는 곳이 다르기 때문에 꽤나 오랜 기간 맵을 직접 돌아다니며 지리를 익혀야만 한다.
이 게임의 묘미는 어둠 속에 잠긴 지형이라던가 붉은 색으로 뒤덮인 기괴한 지형, 나무가 거꾸로 자라는 지형 등 실제 외계 행성을 탐험하는 듯한 설레임을 느끼게 한다는 것이다. 모래 먼지로 뒤덮인 장소는 한치 앞도 안 보이기 때문에 지나치기 쉽고 때론 무섭기 때문에 피하곤 하지만 호기심으로 그 지형을 점차 파고들다 보면 결국 가장 한가운데에 가장 값어치 있는 광물이 있는 이벤트가 숨어 있는 등, 실제 모험을 하는 듯한 생생한 경험을 안겨 준다.
게임은 위협을 가하는 악당이나 깜짝 놀라게 하는 공포스러운 요소는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남기 위해 무언가에게 쫓기듯 바삐 움직여야 한다. 광물이나 씨앗을 캐서 꽃과 나무를 자라게 하고, 미생물을 연구해서 물 속 식물과 물고기를 만들어 내고, 유전자를 연구해서 동물을 탄생시키는 등등, 말 그대로 황무지였던 외계 행성 속의 창조주가 되어 꽤나 집중해서 플레이하게 된다.
게임을 플레이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겨우 집 근처만 맴돌던 나는 점차 행성 곳곳을 누비며 다니게 된다. 두려움으로 내딛던 유난히 공포스럽던 땅도 게임의 막바지에 이르면 텔레포트를 타고 앞마당을 거닐 듯 가볍게 날아다닌다. 결국 모든 것은 처음과 시작이 어려울 뿐, 거듭 반복된다면 결국 익숙해질 것이고 또 다른 나만의 노하우가 생길 것이며 그러다보면 결국 모든 행동은 자연스럽게 행해지는 것이라는 안도감이 들기 시작한다.
내 이야기를 하기 조금 부끄럽지만, 근래의 나는 조금 불안했다. 이직한 회사 내 조직에서 빠르게 적응해야 할 것만 같았고 내가 잘하는 것을 충분히 어필하면서 성과를 보여주어야 한다는 조급함이 들기 시작했다.
내가 잘 할 수 있는 것을 보여주면 참 좋으련만, 이상하게도 나는 시선과 관심이 압박감처럼 느껴졌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경직되어 있었던 것 같다. 가만 생각해보면 이렇게 까지 움츠러들 필요는 없을 텐데,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는 상황 때문에 거듭 속상해졌다.
고민만 늘어가는 나날들 속에서 결국 단순하고도 명쾌하게 답을 내려준 것은 게임 속 미지의 우주였다. 어쩌면 지금 필요한 건, 멈춰 있는 대신 계속해서 행동하며 나아가는 일이 아닐까.
게임은 중반부부터 아주 놀랍게도 지루해진다. 같은 자원을 캐고 같은 일을 하며, 배가 고프다는 알림이 울리면 밥을 먹고, 산소가 떨어졌다는 경보음이 울리면 산소를 흡입한다. 점차 필요한 자원은 많아지지만 해야 하는 일은 대부분 매우 비슷하기에 지루하다는 생각 밖에 들지 않을 정도로 긴장감을 잃게 된다. 매일 같은 시간 출퇴근 하는 일상의 루틴처럼, 게임 속에서도 일정한 일을 견디고 행동하지만 결국 그러다보면 자연스레 다음 챕터로 넘어가게 되는 지점을 마주하게 된다.
새로운 행성에서도 나의 역할을 잘 해내는 사람, 그러기 위해선 그저 더듬거리며 나아가는 일을 반복하는 수밖엔 없다, 누군가 알아주지 않아도 결국 해내고 있다 보면 결국 이 모든 고민에 더욱 능숙히 대처할 수 있지 않을까.
/윤여진(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