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1일로 넘어가는 순간, 일시 정지 해두었던 노래를 다시금 튼다. 곧이어 새해를 알리는 장기하와 얼굴들 밴드의 ‘새해 복’ 노래가 방 안에 울려 펴진다. 밝고 경쾌하고 장난스러운 그의 목소리를 들으며, 책상에 앉아 A4용지를 반으로 나누어 선을 긋는다. 왼쪽 칸엔 2025년도에 이룬 일들, 오른쪽 칸엔 2026년도에 이룰 일을 하나씩 적는다. 작년보다 더 목표는 구체적이면서 현실적으로 이룰 수 있는 것들을 써내려간다.
종이 위 활자를 손으로 쓸어 보며 인간은 삶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생각해본다. 이러한 물음에 디즈니 애니메이션 ‘소울’은 나를 나답게 만드는 것에 집중하라는 답을 던져 준다. ‘소울’ 속 주인공 ‘조 가드너’는 재즈 피아니스트로서 꿈을 이루려는 순간 사고로 죽게 되어 영혼의 세계로 가게 된다. 영혼의 세계에선 태어나기 전 세상이라는 구역이 존재하고, 그곳에서 아직 태어나기 전의 존재인 ‘22’번을 만나게 된다.
태어나기 전 세상 구역은 아직 태어나지 않은 어린 영혼들이 머무르는 곳으로 자신의 멘토에게 성격과 기질, 흥미를 배우고 마지막으로 스파크를 채우게 되면 비로소 지구로 향해 태어날 수 있게 된다. 여기서 멘토는 조 가드너가 맡게 되고 22번의 스파크를 발견해야 하는 일종의 강제 임무를 맡게 된다.
22번은 수 천 년 동안 영혼의 세계를 방황하며 지구에 가는 것을 거부한다. 지구로 향하기 위해선 ‘스파크’를 발견해 내야만 했는데, 어떠한 재능이나 목적이 있어야 스파크를 발견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22번은 자신에게 재능과 특별한 목적이 없음을 깨닫고 아주 오랜기간 태어나길 거부하며 결국 스스로를 믿지 못하는 자기 불신에 갇히고 만다.
동시에 그의 멘토인 주인공 ‘조 가드너’는 재즈 피아니스트가 되겠단 목표 하나로 22번에게 상처주고 소외시키는 일련의 과정을 통해 지구로 향하게 되고 결국 원하던 무대에 서게 된다. 결국 재즈 피아니스트로 이름을 알린 순간, 그는 일순간 허탈감에 빠진다. 그가 사랑하는 재즈는 인생의 정답이자 자신의 유일한 정체성이라 믿었건만, 생각 외로 그가 이룬 꿈은 자신의 생각만큼 대단하지도 않았으며 무엇보다 가슴이 뛰질 않았기 때문이다.
삶은 때때로 인간의 발버둥을 한 발짝 떨어져 지켜보듯, 그토록 원하던 꿈을 이루게 한 뒤 예상치 못한 텅 빈 공허함을 건넬 때가 있다. 그간의 노력을 보상 받는 듯한 기쁨과 보람은 아주 찰나일 뿐, 해냈다는 안도와 동시에 그 다음을 생각하게 한다.
벌거벗긴 채로 내쫓긴 아이처럼 터져 나오려는 울음을 누르며 ‘그래서 이젠 어쩌지?’ 묻게 하는 것이다. 하지만 단 하나의 목표에 집중하고 나아가다 보면 결국 길을 잃게 되기 마련이다. 사람의 정체성과 삶의 목표, 그것을 이루려는 꿈은 결코 단 하나로 귀결될 수 없기 때문이다.
조 가드너 역시 성공하는 재즈 피아니스트가 되겠단 목적 하나로 삶을 살았다. 하지만 조는 얼마 지나지 않아 깨닫는다. 자신이 사랑해온 것은 무대 위에서의 성공뿐만 아니라 피아노를 연습하는 시간,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순간, 뉴욕의 소음과 햇빛 그리고 가을 낙엽 같은 사소한 삶의 풍경들이었음을. 그렇게 자신이 애정 하는 삶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즐기게 될 때에 비로소 삶은 하나의 목적을 넘어, 살아갈 이유와 가치를 품게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22번은 스파크를 발견해서 지구로 향하게 될까? 그것은 영화를 보지 않은 이들을 위해 적진 않지만, ‘소울’은 마지막에 이르러서야 삶의 가치는 목적 달성에만 있지 않다고 말한다. 삶은 반드시 잘하는 것이나 좋아하는 것, 명확한 꿈이 있어야만 살아갈 자격이 생기는 무대가 아닌, 그저 ‘나를 나답게 만드는 감각과 순간들’을 누리며 하루하루 소중함을 느끼는 것 자체가 이미 충분히 가치 있는 삶임을 보여준다.
누구에게나 이유 없이 눈길이 가고, 마음이 편안해지고, 기분 좋은 상태에 놓이는 것이 하나쯤은 있다. 다만 내가 그것을 느끼지 못하도록 무던해진다면 좋음을 알아차리는 감각은 점점 무던해질 수밖에 없다. 나를 나답게 만드는 아름다움을 포착하지 못하는 삶은 얼마나 심심하고 건조한 삶일는지.
그렇다면 새해엔 닫힌 문을 두드리듯 조심스레 때로는 대담하게 내가 애정 하는 삶의 아름다움을 포착해 보는 것은 어떨까. 완벽하거나 특별하지 않아도 그저 나로서 살아가려는 감각을 찾을수록 나의 삶은 더욱 다채로운 리듬을 갖게 될 것이다.
/윤여진(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