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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파 옮기기

등록일 2026-02-18 14:29 게재일 2026-02-19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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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의 울타리 안에서 스스로를 지킬 뿐…/챗GPT

카페에 홀로 앉아 종일 아무것도 쓰지 못한 날이었다. 따뜻한 바닐라 라떼를 홀짝이다 보니 해가 떨어져 있었다. 깜빡이는 커서와 눈을 맞추며 괜한 스트레스만 받은 셈이었다. 우중충한 밤이었다. 아주 많은 미세먼지가 섞여 마치 지점토로 수차례 까만 바닥을 문지른 듯한 밤이었다. 목이 칼칼하고 눈도 따가운 느낌이었다. 얼른 돌아가야지. 그때 누나에게 전화가 왔다. 너, 우리 집으로 좀 와.

 

오라고 하면 나는 오는 사람이지만 그래도 이유가 궁금했다. 뽀글이(누나네 반려견. 작은 푸들이다.) 밥을 주고 챙겨달란 일이 아니면 굳이 자기 집으로 부르지는 않기 때문이다. 

 

오후 10시, 뽀글이가 밥을 먹기엔 너무 늦은 시간이다. 누나는 뜸들이지 않고 이유를 말했다. 본가로 소파를 옮겨야 하는데 제법 무거우니 와서 도우라는 것이었다. 부모님이 기존에 쓰던 소파는 버리고 누나네가 쓰던 소파를 사용하겠다고 한 모양이었다. 그 정도야 쉽지. 갈게. 누나네는 본가에서 백 미터 내외 거리로 사실상 앞 단지에 있다.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라는 말은 바로 이 두 집을 두고 하는 말이다. 그렇게 가벼운 마음으로 갔다.

 

저 멀리 1층 입구에서 소파를 앞에 두고 매형, 누나, 서후(조카. 운동과 공부를 모두 잘하는 초등학생이다.)가 같이 손을 흔들고 있었다. 저걸 1층까지 내렸으면 이제 별로 어려운 건 없는 거 아닌가? 내심 그런 생각을 했다. 가까이서 보니 소파는 예상보다 더 거대했다. 

 

나무로 된 그것은, 소파라기보단 호수 공원에 놓인 거대한 나무 벤치를 뽑아서 가져온 것 같은 형상이었다. 일단 들어올리자. 나와 매형이 소파를 앞과 뒤에서 들고 양옆에서 서후와 누나가 들었다. 들어올리자마자 알았다. 이건 사람이 손으로 편하게 옮기라고 만든 게 아니다. 한번 자리를 잡으면 거기에 두고 계속 쓰는 거다. 내 집 이사 문제로 들었던 침대 프레임이나 장롱도 이거보단 덜 무거웠다. 갑자기 약간 진심이 되었다. 서후도 저렇게 힘을 보태는데 삼촌이 힘을 내지 않을 수 없었다. 네 사람이 나무 소파를 한 걸음씩 조심조심 옮기기 시작했다.

 

하나-둘. 하나-둘. 혹시라도 턱에 발이 걸리지 않을까 싶어 신중히 움직였다. 조깅하는 동네 주민이 우리를 굉장히 흥미로운 눈으로 보며 지나갔다. 뭔가 이벤트를 발견한 것처럼 반응했다. 속으로 나도 이걸 왜 손으로 옮기고 있지 싶었으나 그렇다고 용달을 부르기엔 너무 가까운 것 같고 그랬다. 평소에 오갈 때는 딱히 오르막 경사가 크다고 느끼지 못했는데 그날은 유독 그 오르막이 언덕처럼 느껴졌다. 

 

잠시 쉬어가기로 하여 소파를 내려놓았을 때 도대체 이걸 1층까지 어떻게 갖고 내려온 거냐며 물었다. 그러자 서후가 자랑스럽게 한 손에 들고 있던 작은 수레를 보여주었다. 매형이 거기에 소파를 세로로 얹어서 끌고 내려왔다고 했다. 이미 그것만으로도 정말 대단했지만 아무래도 혼자 할 수 있는 일에는 한계가 있는 법이다. 오르막과 내리막이 있어 위험하기에 거기선 수레로 옮길 수가 없으니 들기로 결심하여 나를 부른 것이었다.

 

다시 천천히 옮기다가 한 사람씩 눈이 마주치곤 불쑥 웃음이 터졌다.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나 ‘거침없이 하이킥’에서 꼭 이런 장면을 본 것 같았다. 두 시트콤의 공통점이라고 한다면 온갖 어지러운 사건들 속에서도 지속되는 가족애, 공동체 내에서의 특별한 친밀감이 있다는 것이다. 가까운 사이여도 가까이 있다고 느끼기란 어렵다. 식탁에 모두 함께 앉아 밥을 자주 먹기도 쉽지 않다. 다른 누구의 문제는 아니고 밤낮이 자주 바뀌는 나 때문이다. 다 같이 눈을 맞출 일도 별로 없다. 

 

그러나, 소파를 안쪽으로 두고 나란히 들었으니 우리 모두 마주 볼 수밖에 없었다. 소파 하나를 같이 들고 있었을 뿐인데 우리는 계속 킥킥댔다. 그만 웃겨, 힘 빠져. 멈추지 않는 웃음의 이유를 그냥 수레를 들고 흥얼거리고 있던 서후 탓으로 돌렸다. 기어이 모두의 힘으로 횡단보도를 건넜다. 엘리베이터를 타기 전 그리고 현관 중문에서 작은 난관은 있었지만 그래도 소파는 본가 거실에 무사히 옮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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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현우 시인

각자도생의 시대라 그런지 나도 남도 선을 넘길 바라지 않는다. 언제나 자기의 울타리 안에서 스스로를 지킬 뿐이다. 하지만 사실 나는 혼자 살아간 적은 없다. 세상과 주변의 영향과 도움이 없다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혼자서는 소파 하나를 들어올릴 수도 없다. 한쪽이 기울면 다른 한 사람이 받쳐주는 일. 그리고 다른 무엇보다도 시시콜콜한 농담을 우리가 나눌 수 있다는 게 기쁘다. 서후의 등을 토닥이며 떨어지는 땀을 닦으며 우리가 뭔가 해냈다는 기분이 들었다. 소파 하나를 옮겼을 뿐이지만.
/구현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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