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 놓인 포항역’ 바로잡을 대책
포항의 철도 관문은 과연 제자리에 있는가. 지금의 KTX 포항역은 개통 당시부터 ‘미래형 관문’으로 포장됐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그 한계는 더욱 분명해지고 있다. 문제는 단순한 불편을 넘어, 도시 구조와 성장 전략 자체를 가로막는 구조적 오류에 가깝다.
무엇보다 역사 부지 자체가 협소하다. 확장성을 고려하지 않은 채 조성된 탓에 여객 수요 증가나 추가 시설 도입이 사실상 불가능한 상태다. 역사 주변 역시 하천과 농경지, 저밀 개발지로 둘러싸여 있어 상업·업무·주거 기능이 집적되는 ‘역세권’이 형성되지 못했다. 철도역이 도시 성장의 엔진이 되어야 함에도, 현재의 포항역은 오히려 고립된 섬과 다름없다.
교통체계도 심각하다. 버스, 택시, 철도, 자가용을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복합환승체계가 구축되지 않아 이용객들은 환승 과정에서 불필요한 시간과 비용을 감수해야 한다. 주차 공간 부족은 상시적인 민원 사안이며, 성수기나 주말이면 역사 진입로 자체가 혼잡으로 마비되기 일쑤다. 철도 이용 활성화를 외치면서도 정작 이용 환경은 이를 뒷받침하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이 같은 문제의 뿌리는 과거 구 포항역에서 현 KTX 포항역으로 이전하는 과정에서 ‘위치 선정 오류’라는 지적이 적지 않다. 당시 접근성, 배후 개발 가능성, 환승체계 구축 가능성 등에 대한 종합적 검토보다 단기적 사업 추진 논리가 앞섰다는 평가가 뒤따른다. 결과적으로 포항은 철도 관문을 옮겼지만, ‘도시의 심장’을 옮기는 데는 실패했다.
이제 필요한 것은 땜질식 보완이 아니라, 철도 거점을 도시 미래 전략의 관점에서 재설계하는 결단이다. 그 대안으로 거론되는 것이 ‘성곡들’ 일대다. 넓은 가용부지와 우수한 접근성, 향후 복합개발 가능성을 갖춘 이 지역으로 여객터미널을 재차 이전해 철도·버스·택시·환승주차장을 집적한 대규모 복합환승센터를 구축하자는 구상이다. 여기에 상업·업무·주거 기능을 결합한 신(新)역세권을 조성한다면, 철도역은 다시 도시 성장의 핵심 거점으로 작동할 수 있다.
기존 KTX 포항역 부지는 또 다른 전략적 활용이 가능하다. 포항의 산업·물류 경쟁력을 고려할 때, 이곳을 영일만항과 연계한 화물터미널로 전환해 항만 물동량을 감당하는 철도 물류 거점으로 활용하는 방안이다. 여객과 화물을 분리함으로써 기능 효율성을 높이고, 포항을 동해안 물류 허브로 도약시키는 이중 전략도 가능해진다.
포항의 철도 거점을 다시 설정해야 하는 이유는 지역 교통 편의성에만 있지 않다. 포항은 이미 동해안을 따라 한반도를 종단하는 국제 철도 네트워크의 잠재적 출발점이자 관문이 될 수 있는 위치에 서 있다.
포항에서 출발한 KTX가 동해안 선로를 따라 북한과 러시아를 거쳐 유럽까지 이어지는 구상은 이른바 ‘철의 실크로드’라 불리는 유라시아 대륙철도망 연결 프로젝트의 핵심이다. 이 구상의 중심에는 동해선과 시베리아 횡단철도를 연결하는 것. 부산에서 출발한 열차가 포항을 거쳐 강릉과 제진을 지나 북한 나진, 러시아 하산으로 이어지고, 이후 블라디보스토크와 모스크바를 거쳐 베를린, 파리 등 유럽 주요 도시로 향하는 장대한 철도 축이다. 이 국제 철도 네트워크에서 포항은 단순한 중간 정차역이 아니라 동해안권의 핵심 거점이자 관문 도시가 된다.
포항을 중심으로 한 동해선 남측 구간은 이미 상당 부분 완성됐거나 완공을 앞두고 있다. 포항삼척 구간이 2024년 말 완전 개통되면서 부산에서 강릉까지 KTX-이음 등 열차가 달릴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됐다. 남측의 마지막 단절 구간인 강릉제진 구간 역시 공사가 진행 중이며, 2028년경 완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 구간이 연결되면 남한 동해안 선로는 하나의 축으로 이어진다.
유럽까지 이어지는 철도 운행을 위해서는 남북 관계 개선과 북한 구간 철도 현대화가 필수적이다. 동시에 한국·중국·유럽이 사용하는 표준궤와 러시아의 광궤 차이를 극복해야 한다. 이를 위해 국토교통부와 한국철도기술연구원은 바퀴 간격을 자동으로 조절하는 ‘궤간가변대차’ 기술을 개발하며 대응하고 있다.
물류 측면에서의 파급효과도 막대하다. 해상 운송으로 유럽까지 40일 이상 걸리던 화물이 철도를 이용하면 약 15~20일 수준으로 단축될 수 있다. 포항역과 영일만항을 연계한 철도·항만 복합 물류체계는 곧바로 ‘물류 혁명’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 모든 가능성의 출발점은 결국 포항의 철도 거점이 어디에, 어떤 규모와 기능으로 자리 잡느냐에 달려 있다. 지금처럼 협소하고 고립된 역으로는 국제 물류와 관광, 대륙 철도망의 관문이라는 역할을 감당할 수 없다.
성곡들 여객터미널 이전, 대규모 복합환승센터 조성, 기존역의 화물터미널 전환은 단지 지역 교통 개선 사업이 아니라 포항을 유라시아 철도 네트워크의 관문 도시로 도약시키는 국가 전략사업이 될 수 있다.
포항의 지도자라면 포항을 국내선 종착역에 머물게 할 것인가, 아니면 대륙으로 향하는 관문 도시로 키울 것인지에 대한 정책 대안 유무가 이번 지방선거의 중요한 선택 기준이 될 수 있다.
/임창희 선임기자 lch8601@kbm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