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년 새해를 맞은 지도 벌써 한 달이 더 흘렀다. 상투적인 표현이지만 시간은 눈 깜빡할 사이에 달아나 내게서 점점 멀어지고 있다. 작년과 달라진 점이 있다면 속기사 학원에 다니고 있다는 점이다. 예전부터 나는 손재주 없는 아이였다. 뜨개질, 바느질, 요리, 기계 수리 등 손을 이용해 무에서 유를 창조하고 그것을 예쁘게 만들어내는 일에는 영 소질이 없었다. 중학교, 고등학교 가정 시간 수행평가 때마다 나는 늘 낮은 점수를 받았다. 기술 시간과 미술 시간도 상황은 비슷했다. 그나마 옆에서 도와주는 친구들 덕분에 최악은 겨우 면한 정도랄까.
흔히들 손재주 하면 공예와 관련된 조형 능력을 떠올리겠지만, 사실 손재주에는 여러 분야가 있다. 조형 능력뿐 아니라 기술적 숙련도를 요구하는 정밀 수리, 수술을 비롯한 전문 의료 능력, 그리고 예술적 퍼포먼스 분야이다. 다행히 나는 예술적 퍼포먼스의 한 분야인 타이핑에선 소소한 재능을 보였다. 학년이 바뀔 때마다 나는 반에서 제일 타자가 빠른 아이였고, 지금은 타이핑을 통해 글을 쓰는 일을 하니 내게도 어느 정도의 손재주가 있다고 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래서였을까, 나는 속기사 자격증을 금세 취득할 수 있으리란 자신감을 안고 학원에 등록했다.
내 자신감은 수업 첫 시간부터 처참히 무너졌다. 속기사 키보드는 일반 키보드와는 완전히 다르다. 일반 키보드는 자음-모음-받침을 순서대로 입력하지만, 속기사 키보드는 이 모든 걸 동시에 입력해야만 한다. 왼손과 오른손이 누를 수 있는 자판이 철저히 구분되어 있으며 지정된 손가락 위치에 맞는 자판을 눌러야 한다. 마치 피아노를 연주하듯 말이다. 처음엔―물론 지금도―손가락의 위치를 외우는 것부터가 난관이었다.
이전까지 배운 것을 모조리 잊고 새로 시작하는 건 꽤나 혹독한 일이었다. 머리로 외우고, 눈으로 보고, 손을 움직이는 모든 게 별개의 일처럼 느껴졌다. 3개월 정도면 자격증을 취득할 수 있지 않을까, 안일하게 생각했던 내가 부끄럽게 느껴졌다. 학원 선생님은 1년간 매일 연습해도 합격하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왼손으로는 자음만, 오른손으로는 모음만 눌러야 한다는 사실은 이제 익숙해졌지만, 그 모든 걸 동시에 눌러야 한다는 건 여전히 낯설고 어려운 일이었다.
“멀티태스킹을 잘하는 사람이 더 유리하겠네요? 동시에 여러 가지 일을 처리할 수 있는 사람이요.” 어느 날 나는 선생님께 그렇게 물었고, 그는 고개를 갸웃거리다 대답했다. “글쎄요, 꼭 그렇지만도 않을 거예요. 저만 해도 멀티가 안 되는 편인데, 타이핑을 할 때는 전혀 문제가 없거든요.” 그런가요…… 나는 한숨을 내쉬며 키보드를 내려다보았다. 마음과 의욕을 따라오지 못하고 뒤처지는 손이 야속했다. 나를 격려하듯 “지금도 잘하고 있어요”라고 말한 선생님이 잠시 생각에 잠긴 듯 허공을 바라보았다.
“완벽하게 해내려고 하지 않으셔도 돼요. 완벽하게 할 수가 없죠. 타자를 동시에 치는 게 처음이시잖아요. 지금 중요한 건 손가락에 힘을 빼는 거예요. 타자 치실 때 손이 바짝 올라가 있어요. 너무 잘하려고 하면 몸에 힘이 실리고, 힘이 실리면 오타를 내기가 쉬워져요. 머리로 이해하려고 하지 말고, 손한테 익숙해질 시간을 주세요. 그럼 생각하지 않아도 손이 저절로 움직일 거예요.”
나는 어쩐지 정곡에 찔린 기분으로 가만히 타자기만 내려다보았다. 완벽하게 해내려는 것, 너무 잘하려고 하는 것. 모두 나의 유구한 특성이었다. 처음 하는 일도 여러 번 해본 것처럼 능숙하게 잘하고 싶은 욕심은 늘 내 안에 있었다. 선생님의 조언을 듣고 나서야 내 손가락이 다른 학생들에 비해 유독 뾰족하게 솟아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힘이 잔뜩 들어간 뼈마디가 하얗게 보였다. 그게 꼭 날카로운 송곳니처럼 느껴졌다. 완벽하게 해내지 못한 나 자신을 언제라도 물어뜯을 준비가 된 낯선 존재의 이빨.
익숙해질 시간, 그런 걸 내게 준 적이 있었던가? 스스로를 먹이고 재우고 입히는 기본적인 생활은 물론이고, 직장에 다니는 시간을 쪼개 글을 쓰고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고 집을 가꾸는 데 바빴다. 내심 여러 가지 일을 동시에 수행하는 나 자신을 대견하게 여기기도 했다. 간혹 힘든 순간이 닥치더라도, 모두 다 이렇게 살 텐데 나만 엄살 피우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어 애써 모른 척했다. 동시에 여러 가지 일을 하고, 여러 명 몫의 삶을 사는 일이 당연하다고 여겼다.
오직 흑건으로만 이루어진 피아노 같은 타자기 앞에 앉아 나는 힘 빼는 법을 생각한다. “하지만 손에 힘을 너무 빼면, 자판을 누를 수가 없어요. 힘 주기와 힘 빼기 사이에서 적절한 강도를 곧 찾게 되실 거예요.”
선생님의 말처럼, 언젠간 나만의 강도를 찾아 몸이 저절로 움직일 때를 찾기 위해 지금은 ‘완벽할 수 없음’과 ‘완벽하지 않아도 됨’의 상태를 받아들이도록 노력 중이다.
/양수빈(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