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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삶을 꾸리는 계획

나는 원래 계획을 싫어하는 사람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계획을 세우는 행위 자체를 부담스러워하는 ‘계획 싫어주의자’였다. 계획이라는 건 왠지 모르게 완벽해야 할 것 같았고, 괜히 하나하나 다 따져야 할 것 같았다. 여행 계획이라면 오랜 시간을 들여 인터넷에서 정보를 찾아보고, 완벽한 동선을 짜고, 혹시 모를 변수까지 고려해야 하는 난해한 일처럼 느껴졌다. 그렇게까지 지나치게 생각해야 한다면 차라리 아무 계획 없이 사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그러니 늘 마음 가는 대로 즉흥적으로 살았다. 그날의 기분에 따라 움직이고, 하고 싶은 것을 그때그때 선택하며 우연과 운명에 기대는 방식. 그게 더 자유로운 삶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자유가 항상 좋은 결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걸 느끼게 됐다. 준비를 하지 않아서 생기는 사소한 손해들이 하나둘 쌓이기 시작하며 후회가 짙게 남았다. 특히 여행에서 그 차이는 더 분명하게 드러났다. 막상 도착해서야 알게 되는 정보들이나 이미 지나쳐버린 기회들, 미리 알았더라면 훨씬 더 즐길 수 있었을 순간들 등. “아, 여기 이거 꼭 해볼 걸.”,“왜 이걸 미리 안 찾아봤지?” 같은 후회가 반복됐다. 시간은 한정되어 있는데 그 시간을 충분히 활용하지 못했다는 아쉬움은 생각보다 오래 남았다. 그런 순간들이 쌓이자 점점 ‘조금만 미리 준비했더라면 어땠을까?’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여행 뿐만 아니라 일상에서도, 제대로 준비를 하지 않거나 대비를 하지 않아서 생기는 손해 보는 일들이 늘어날수록 아쉬움은 커져만 갔고, 그 이후로 아주 작은 것부터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거창하거나 완벽한 계획이라기보단 하루에 해야 할 일 몇 가지를 적어보며 무언가 놓치고 있는 건 아닌지, 해야 할 목록을 작게 하나씩 적어가다 보니, 성취의 보람을 느끼기 시작했고 점점 내게 잘 맞는 기록 방식과 계획 방법을 터득해 나가기 시작했다. 계획을 세우면 대비된 상태가 된다. 예상하지 못했던 상황에 덜 흔들리고, 시간의 흐름에 끌려가기보다 내가 시간을 주도하여 끌고 간다는 느낌이 든다. 무엇보다 가장 크게 달라진 점은, 내가 계획한 일을 실제로 해냈을 때 느껴지는 성취감이었다. 그 성취감은 단순히 할 일을 끝냈다는 정도의 기분이 아니라, 나의 시간을 제대로 사용했다는 만족감에 가까웠다. 그렇게 내게 시간을 기록하는 일은 일상이 되었다. 지금은 하루를 계획하고, 일주일을 정리하고, 한 달의 흐름을 미리 그려본다. 시간을 나눠서 바라보기 시작하니, 이전에는 막연하게만 느껴졌던 거대한 시간이라는 대상이 점점 구체적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하루가 쌓여 일주일이 되고, 일주일이 모여 한 달이 되고, 그렇게 만들어진 한 달이 결국 나의 1년이 된다는 것을 체감하게 되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는 1년이라는 시간마저도 내가 컨트롤할 수 있는 조율의 영역처럼 느껴졌다. 계획을 구체적으로 세우면서 맞이한 또 다른 변화는 쉬는 법을 알게 되었다는 점이다. 이전에는 소파에 무기력하게 누워 시간을 보내는 것을 휴식이라 여겼지만, 어떻게 잘 쉬어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이 늘 남았다. 이제는 쉬는 날이면 밀린 집안일을 최대한 빨리 정리하고, 평일에 하지 못했던 일들을 계획해 시간을 보낸다. 새로운 원두로 드립 커피를 내리거나, 보드게임을 하거나, 밀린 콘텐츠를 보고, 가볍게 운동을 하는 식으로. 이렇게 시간을 의도적으로 사용하는 것이 오히려 더 만족스러운 휴식으로 이어진다. 시간을 어떻게 쓰는지에 따라 시간의 흐름은 충분히 달라질 수 있다. 계획을 세운다는 것은 단순히 일정을 기획하는 일이 아니라, 내 삶의 방향을 스스로 정하는 행위에 가깝기 때문이다. 물론 여전히 완벽한 계획을 세우는 것은 어렵고, 때로는 계획대로 되지 않는 날도 있다. 계획을 세우다보니 알게 된 새로운 점은, 계획은 완벽할 필요가 없다는 점이다. 얼만큼 알아보고 준비를 하고 대비를 세우던, 완벽한 계획은 없다. 중요한 건 계획의 완성도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내 시간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에 대한 마음가짐이다. 그러니 어쩌면 계획이라는 건 거창한 기술이 아니라, 삶을 대하는 태도의 문제일지도 모른다. “내 시간을 내가 선택한다”는 아주 기본적인 마음가짐. 그 하나만으로도 삶은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나는 이제야 조금씩 알아가고 있다. /윤여진(시인)

2026-04-01

빈티지

구제 가죽 재킷을 입고 나타난 내게 친구는 말했다. “새 옷 좀 사. 소매가 다 뜯어졌잖아.” 나는 그게 바로 멋이라고 했다. 전혀 납득이 되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친구는 고개를 저었다. “일렉 기타에 레릭(오래 사용되어 수십 년 연주한 것처럼 일부러 낡은 외관을 만드는 것)이란 걸 만들기도 해. 그게 그냥 깨끗한 상태의 기타보다 비싸.” 얼굴에 불신의 그늘이 드리워져 있어 인터넷에서 검색한 다음 이미지와 가격을 보여주었다. 친구가 연신 이해가 안 된다는 말을 중얼거렸다. 나는 다시 한번 얘기했다. “그게 멋이야.” 이렇게 보면 내가 굉장히 힙하게 입고 다니는 것으로 여겨질 수 있겠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멋이라는 걸 정말 모른다. 누가 쓰던 것을 가져와 다시 쓰는 일을 딱히 선호하지도 않았다. 어쩌면 남들보다도 유별나게 좋아하지 않았다. 그 흔한 중고 거래를 가볍게도 해본 적이 없었다. 아직도 나의 스마트폰에는 당근 앱 같은 것이 깔려 있지 않다. 그러나 그런 면이 옷에 있어서는 제법 관대해졌다. 몇 년 전에 승용, 혜경, 다영이라는 친구들과 부산으로 여행을 다녀온 다음부터였다. 지금도 패션에 조예가 얕다 못해 습자지 수준이지만 부산 여행 전에는 더 심했다. 검은 티셔츠, 검은 바지, 검거나 흰 신발. 주위에서 다들 ‘흑백영화냐’며 핀잔을 줘도 나는 꿋꿋했다. 심지어 겨울이 오면 모자, 목도리, 패딩까지 온몸을 검은색으로 꽁꽁 싸맸다. 교실 앞문을 열며 담임 선생님이 툭툭 내뱉던 어둠의 자식이 바로 나였다. 다만 조금 기준이 있는 어둠의 자식이었다. 회색에 가까운 것이 아는 완연한 검은색이어야 함. 새 옷이어야 함. 그림이 프린팅되어 있거나 로고가 전면에 크게 새겨져 있으면 안 됨. 특별한 무늬가 없는 깔끔한 블랙이어야 함. 티셔츠든 바지든 펑퍼짐하면 안 됨. 그런 나를 여행 메이트들이, 특히 승용은 용납하지 못했다. 부산에 도착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우리가 갈 곳이 있다고 했다. 국제시장의 한 구제샵이었다. 간판도 세월을 피해 가지 못한 듯 보이는 그 가게에 승용과 혜경은 와본 적이 있다고 했다. 무엇보다 사장님이 코디를 머리부터 발끝까지 하나하나 다 해주시니 그에 맞춰서 구매하기만 하면 된다고 했다. 대체 어떻게 진행되는 건지 가늠할 수도 없는 시스템이었다. 무엇보다 구제샵을 제대로 들어가 본 게 처음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은 없을 것 같은데…. 일단 구경부터 해볼게.” 내가 말하자 승용과 혜경 그리고 다영이 동시에 답했다. “아냐. 사장님이 시키는 대로 해. 넌 자아를 갖지 마.” 구제샵에는 온갖 종류의 옷들이 가득 차 있었다. 바닥부터 천장까지 옷으로 뒤덮인 채였다. 오래된 옷으로 이루어진 무덤 같았다. 손을 넣으면 바로 거기에 빨려 들어가 안에 갇혀 질식하지 않을까 싶을 정도였다. 둘러보고 있는 사이 사장님이 우리에게 가까이 다가왔다. 승용은 망설임 없이 사장님께 나의 옷을 봐달라고 했다. 사장님이 처음 꺼내든 옷은 아주 펑퍼짐한 바지와 하얀 티셔츠였다. 살면서 한번도 입어본 적 없는 스타일이었다. “통이 너무 크지 않아?” 나의 말에 승용은 요즘 다 이렇게 입는다며 나의 감각이 너무 올드하다고 했다. “아니 내가 올드해? 오히려 이런 펑퍼짐한 게 90년대 패션 아니야…?” 승용은 뭘 몰라도 너무 모른다고 했다. 한심하다는 투로 언제 적 슬랙스를 입고 있냐며 빨리 갈아입으라고 부추겼다. 처음 입어본 구제 옷은 너무 낯설었다. 바지 품은 공중에 둥둥 떠 있는 듯했고 티셔츠는 곧 흘러내릴 기세였다. 그 위에 걸친 청재킷 또한 거인이 입었던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헐렁거렸다. 아무래도 전체가 다 나랑은 안 맞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사장님은 또 다른 바지를 입어보라 권했고 그건 내겐 한 벌도 존재하지 않는 하얀 바지였다. 이건 진짜 아닌 것 같은데… 마지못해 입고 거울 앞에 선 순간 거기 지금까지와는 낯설지만 의외로 나쁘지 않은 내가 있었다. 연한 갈색 블레이저를 함께 입으니 그 또한 제법 어울렸다. 무릎 쪽이 헤지고 그런 것이 자연스럽게만 보였다. 그렇게 몇 벌을 더 입어보고 느꼈다. 오래된 옷은 부드럽고 유연하다는 것을. 파도를 맞으면 맞을수록 안온해지는 백사장의 모래처럼. 추천받은 옷들을 전부 구매하고 다시 입고 왔던 슬랙스로 갈아입으니 몸이 뻣뻣해진 기분이었다. 완전히 이해하진 못해도 빈티지의 매력을 조금은 엿보게 되었다. 오래된 것이라고 그저 낡은 것이 아니다. 오래된 것은 지난 시간을 잊지 않는다. 오래된 것은 상처가 많아서 나를 다정하게 안아준다. /구현우(시인)

2026-04-01

쇼츠 속죄

무아지경으로 쇼츠를 내리다 보면, 나의 관심사와 멀거나 심지어는 내가 싫어하는 종류의 영상을 맞닥뜨리게 되는 순간이 있다. 그럴 때마다 알고리즘이 일을 못 한다고 구시렁댔는데, 다시 생각하면 알고리즘이 일을 너무 잘해서 그런 일이 생긴 게 아닌가 싶다. ‘더는 너한테 보여줄 영상이 없으니 그만 보고 일어나’라는 뜻으로. 다람쥐 얼굴에 난 종기를 짜는 영상이나, 낯선 언어로 진행되는 결혼식 중계 영상을 볼 때쯤엔 이미 하루가 자괴감으로 점철된 후이다. 비생산적인 활동으로 하루를 허무하게 날리고 말았다는 자괴와 오늘도 기어코 해야 할 일을 미뤘다는 죄책감이 소용돌이친다. 이럴 때 나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운동을 하거나 청소를 하는 대신, 긴 영상을 보는 것으로 ‘쇼츠 속죄’를 하고자 한다. 우리는 ‘단(短)의 세계’에 살고 있다. 영화는 물론이고, 드라마나 책까지 누군가 ‘3분 요약’을 해주기를 바란다. 이제는 3분도 너무 길다며, 30초로 요약하는 쇼츠들까지 나오고 있으니, 우리의 사고가 점점 짧아지는 게 너무나 명백해 보인다. 나 또한 긴 영상을 배속 없이 보기 힘들 때가 종종 있다. 지루한 부분은 건너뛰고 도파민 터지는 핵심만 보고 싶을 때, 나는 스스로에게 아주 긴 영상을 배속과 건너뛰기 기능 없이 보는 벌을 내리곤 한다. 그것이 바로 쇼츠 속죄이다. 열 살 무렵, 잠시 필리핀에 산 적이 있다. 스마트폰이 없던 그 당시 내 유일한 즐거움은 열흘에 한 번 엄마와 함께 근처 한인 비디오 대여점에 가서 한국 드라마 비디오를 빌리는 것이었다. 실제 방영 날짜보다 늦게 볼 수밖에 없고, 엄마가 바쁜 날에는 감상이 며칠씩 미뤄질 수밖에 없었던 그 드라마를 보는 순간만을 나는 늘 손꼽아 기다렸다. 시간이 흘러 한국으로 돌아온 후, 나는 더 이상 드라마를 챙겨보지 않게 되었다. 드라마의 긴 분량과 쪼개진 회차가 너무나 큰 숙제처럼 느껴진 탓이다. 그렇지만 내게도 유난히 좋아했던 몇 드라마들이 있었는데, 바로 미드 시트콤이다. 그중에서도 나는 ‘모던 패밀리’를 사랑했다. 사람들이 ‘프렌즈’에 열광할 때도 한눈팔지 않고 ‘모던 패밀리’를 보고 또 보았다. 시즌 11까지의 긴 분량이었지만 전혀 지루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내가 쇼츠 속죄를 할 때 주로 보는 영상이 바로 이것이다. 쇼츠 속죄의 핵심은 ‘이미 아는 내용을 집중해서 보는 것’이다. 시트콤은 매회 흥미롭고 희극적인 에피소드 덕분에 지루할 틈이 없다. 그러나 다르게 보면, 몹시 지루할 수밖에 없는 장르이기도 하다. 매회 같은 등장인물과 배경, 상황이 연속되는 데다 몇 회차를 보지 않는다고 해서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 구조도 아니기 때문에 잠시 한눈팔기도 쉽다. 그런 의미에서, 시트콤은 여러모로 쇼츠 속죄에 최적화된 장르인 셈이다. 며칠 전, 어김없이 쇼츠 속죄를 하기 위해 ‘모던 패밀리’를 틀었다. 진지하게 스마트폰을 없애야 하나 고민하며 ‘모던 패밀리’를 두 시간쯤 봤을 때 속죄라는 단어와 어울리지 않는 감상이 떠올랐다. 내가 왜 시트콤을 좋아하는지, 시트콤이 왜 쇼츠와 반대 지점에 있다고 여기는지 깨달은 것이다. 시트콤은 우리 삶의 장면을 압축해 놓은 것 같다. 기쁘고 슬픈, 즐겁고 우울한, 쓸쓸하지만 발랄한 삶의 순간들이 모두 담겨 있다. 인물들은 일련의 사건을 통해 깨달음을 얻거나, 혹은 변화의 가능성을 보여준 채 잠자리에 든다. 그리고 눈을 뜨면, 언제나와 똑같지만 조금은 다른 하루가 시작된다. 우리가 쇼츠에 중독된 것은, 어쩌면 삶이 너무 멀게 느껴져서가 아닐까? 이상과 현실의 간극을 잊기 위해 자극적인 영상만큼 효과적인 것은 없으니까, 그 순간만큼은 어떤 고민도 무용하게 느껴지니 말이다. ‘모던 패밀리’의 클레어는 완벽한 엄마이고 싶지만 번번이 실패하고, 필은 쿨한 아빠이고 싶은 욕망 때문에 매번 망신을 당한다. 클레어의 아빠인 제이, 동생 미첼, 그들의 파트너들도 상황은 마찬가지이다. 보는 이의 얼굴이 화끈거릴 정도로 처절한 모습이 내내 그려진다. 그럼에도 에피소드가 끝나면 이들은 어김없이 그날 있었던 일을 털어놓는다. 대단한 화해도, 그럴싸한 결론도 없다. 많은 일을 겪었지만, 그래도 오늘이 무사히 끝났다는 것, 그리고 내일도 비슷하게 이어질 것이라는 사실만 남는다. 어쩌면 쇼츠 속죄란 그 장면을 보기 위한 과정인지도 모른다. 건너뛸 수 없는 일상의 지루함을 배속 없이 견뎌내는 연습. 그리고 그 속에서 다시 내일을 기약하는 것. 그것이 나의 하루에 보내는 작은 속죄이다. /양수빈(소설가)

2026-03-25

저마다의 시차

얼마 전 연휴의 끝자락,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섭외를 해 주셨다. 나는 라디오에 출연하는 것을 참 좋아한다. 추억이 많아서 애착을 갖게 되는 매체이기도 하고 나라는 사람에 대해 이것저것 정성스런 질문을 준비해 주시는 것도 언제나 기쁘다. 무엇보다 내가 정성들여 만든 음악을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거기에 대해 이야기 할 시간까지 주어진다는 것은 매우 감사한 일이다. 이번에도 반가운 마음으로 섭외 요청에 응했는데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었다. 제작진 분들께서 라이브로 노래를 불러달라는 부탁을 해 주셨다는 것이다. 가수가 노래 부르는 것은 별로 문제가 될 만한 일이 아니다. 단지 그 프로그램이 아침 여섯 시, 생방송으로 진행되는 프로그램이었다는 게 다소 마음에 걸리는 일이었다. 그 시간에 일어나서 방송국에 가는 것만 해도 쉽지는 않은 일인데 목을 풀려면 더 일찍 일어나야 한다. 좋은 컨디션을 만들지 않으면 실수 할 확률이 높아지는데 생방송이라 돌이킬 수도 없으니 상당히 높은 난이도의 미션이었던 것이다. 그렇지만 이런 것 저런 것 따져 가면서 일을 가려서 받는 건 직업인으로서 성실한 태도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고, 나는 일종의 도전정신을 품고 출연을 수락했다. 노래를 제대로 부를 수 있는 컨디션을 만들려면 보통 스케줄 시간보다 세 시간은 먼저 일어나야 한다. 새벽 세 시에 일어나 씻고 외출 준비를 한 뒤 운전대를 잡았다. 연휴 끝물 새벽의 도로는 아직 한창 밤잠을 자고 있는 듯, 한 시간 반 거리의 목적지에 40분 만에 도착했다. 하기야, 매일 열두 시 쯤 자서 여섯시 반은 되어야 일어나는 내게 이 시간대는 당연히 모두가 잠들어 있는 시간인 셈이었다. 그런데 다섯 시 조금 넘어 도착한 스튜디오 건물 안에서는 조금 다른 풍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안내데스크에는 이미 보안요원 한 분이 말끔하게 차려 입고 또렷한 얼굴로 앉아 있었다. 엘리베이터를 내리자 진작에 도착해서 방송을 준비하고 계시던 피디님이 나를 스튜디오로 안내해 주셨고, 기술감독님과 진행자분도 분주하게 생방송을 시작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세상에 없는 거나 다름없다고 여겼던 매일 이 시간이 이 분들에게는 당연한 듯이 일터에 나와 분주하게 업무를 보는 시간이었던 것이다. 여섯시, 생방송이 시작되자 청취자들이 저마다의 사연을 보냈다. 이 시간에도 참 부지런한 사람들이 많았다. 도로 위를 달리는 기사님들, 그리고 여기 방송국에 계신 분들처럼 일찌감치 사무실에 앉아 업무를 시작한 분들, 새벽을 달려 산이나 바다로 여행을 가는 분들, 일찍 일어나 가족들 밥을 챙기는 분들까지. 생각보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아침 해보다 먼저 일어나 이미 한창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사연 주신 분 중에 밭에 나가 아욱을 베며 방송을 듣고 계신 노년의 여성 청취자가 계셨다. 퍼렇게, 그러다 벌겋게 밝아오는 아침 하늘을 뒤로 하고 늦겨울의 밭에 서서 풀을 베는 한 사람의 모습을 떠올리니 그 성실함이 얼마나 숭고한 것인가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방송이 한창 무르익을 무렵 시침은 비로소 평소의 나도 일어나곤 했던 시간대를 지났다. 그 또한 가만 생각해보면 놀라운 일이다. 결혼을 하고 아기를 낳아 기르게 된 지금이야 일곱 시 전에 눈을 떠 아기 챙기기 시작하지만 그 전에 내게 이 시간은 어떤 시간이었던가. 게임을 하거나 티비를 보다가 새벽녘에야 침대에 누워 세상모르고 잠들어 있던 시간, 어쩌다 친구와 술자리가 길어지면 이제야 혼미한 정신을 붙들고 집으로 비틀대며 들어가곤 했던 시간이었다. 그때도 세상의 시간은 흐르고 그처럼 분주히 누군가들의 생활도 흐르고 있었던 것이다. 누구나 매일 24시간을 살지 않는다. 그리고 저마다 다른 시차에 적응한 채로 생활을 영위한다. 어떤 이에게는 저녁 여덟 시가, 또 어떤 이에게는 새벽 두 시가 언제나 지워진 시간일 것이다. 아침 여섯 시를, 열 한 시를 살아가는 일이 좀처럼 없는 이들도 얼마든지 있다. 누군가가 무의식 너머로 사라지고 없는 때의 세상은 다른 이들이 저마다의 성실함으로 채운다. 또 그들이 생활의 전원을 끄고 다음 하루를 준비하는 그 틈을 또 다른 이들의 부지런함이 메운다. 일 년 내내 불이 꺼지지 않는 24시간 편의점처럼 이 세상과 그것이 운영되는 시스템은 수많은 사람들이 졸린 눈을 비벼가며 교대로 지켜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니 이른 아침 노래 세 곡 부르는 일쯤이야 대단한 일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 음 한 음, 정성스럽게 노래를 불렀다. 그 시간 깨어 있는 모든 성실한 이들에게 바친다는 마음으로. /강백수(시인)

2026-03-25

비움이 남기는 자리

요즘 집 주변의 풍경이 자주 바뀌고 있다. 퇴근길마다 들르던 작은 동네 슈퍼가 말도 없이 사라지더니 어느새 그 자리에는 인형뽑기 가게가 들어섰다. 뿐만 아니라 주말 아침 잠시 들르곤 했던 카페나 간단하게 배를 채울 수 있었던 분식집도 하나둘씩 문을 닫았다. 익숙했던 가게들이 사라지고 빈 공간만 남은 거리를 보고 있자니 묘하게 어색하고 공허한 기분이 들었다. 매일 오가는 집 앞 거리는 하나의 익숙한 풍경이 되어서 오랜 시간이 되고 하나의 시절이 된다. 하루, 이틀, 일년이라는 시간이 지나고 눈에 익을 때쯤에 불현 듯 사라져 버린 풍경의 일부는 사라지고 나서야 시간의 무게를 뒤늦게 알아차리게 한다. 집 주변 풍경이 요즘 자주 바뀌는 이유 때문만은 아니지만, 나는 최근 들어 집 안 내부의 오래된 물건들을 하나씩 교체하기 시작했다. 정말 어떤 계기나 뚜렷한 이유가 있진 않으나 갑자기 아주 오래된 물건들이 눈에 띄기 시작했고 너무 낡은 것들은 하나씩 버려가며 빈자리는 새로운 물건들로 채우고 있다. 오랜 기간 사용하던 침구나 인형 같은 물건들, 언제부터 사용했는지 모를 수저와 수건, 옷가지들 너무 낡고 오래된 가전 가구 등등. 물건을 하나씩 버리다 보니 단순히 물건만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그 물건들과 함께 묶여 있던 시간까지 한꺼번에 바깥으로 흩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물건 속에는 많은 시간들이 깃들어있다. 물건을 구매했을 당시의 들뜬 기분이나 설렘, 사용하면서 느꼈던 만족감, 매일 또는 자주 사용하며 손에 익는 촉감, 늘 그 자리에 있어 제 역할을 다하던 모습, 시간이 지나 더 이상 제 역할을 하지 못하게 되어 버려지게 되는 순간까지, 여러 시간들이 갈무리 되며 어쩐지 마음 한구석이 시원섭섭하게 간지럽다. 사람은 생각보다 많은 시간을 물건과 공간 속에 남겨 두고 살아간다. 특별한 의미가 있는 물건이 아니더라도 오래 사용하다 보면 그 물건에는 자연스럽게 일상의 시간이 스며든다. 매일 사용하는 컵 하나, 늘 같은 자리에 놓여 있는 의자 하나에도 어느새 일상의 시간이 조금씩 쌓인다. 그렇게 평범한 물건들은 특별한 의미가 없더라도 일상의 일부가 되어 간다. 그래서 익숙한 물건을 버리는 순간 단순히 물건이 사라졌다는 느낌보다, 그 물건과 함께 흘러가던 시간의 한 조각이 떨어져 나간 듯한 감각이 남는다. 나는 물건을 잘 버리지 않는 편이기도 하다. 동시에 물건을 자주 사는 편도 아니다. 한 번 물건을 사면 그것이 낡고 헤져 더는 쓸 수 없을 때까지 사용하는 편이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나는 물건을 버리는 일을 조금 두려워했던 것 같다. 이미 내 손에 익숙한 것들, 보기에도 편안한 것들이 사라질 때 겪게 되는 낯선 불편함이 탐탁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떤 변화는 낯설면서도 동시에 개운하다. 익숙했던 것들이 사라지는 순간 잠시 멈춰 서게 되지만, 그 빈자리는 곧 다음 시간을 위한 자리로 바뀐다. 비워진 가게 자리에는 또 다른 새로운 곳이 들어서고, 한두 번 방문해 보며 다시 내 삶에 필요한 공간으로 자리 잡기도 한다. 쓰임이 다한 물건들을 버리고 새로운 물건을 들였을 때 느끼는 편리함과 단정함 역시 또 다른 만족을 가져다준다. 긴 목욕을 끝낸 뒤처럼 몸과 마음에 붙어 있던 오래 묵은 퀘퀘함이 씻겨 내려간 듯한, 가벼움과 개운함만이 남는 것이다. 최근 집 근처 풍경이 많이 바뀌고, 오래된 물건을 하나씩 정리하며 주변 환경을 조금씩 바꾸어 가면서 드는 생각이 있다. 삶은 끊임없이 채워지는 과정이라기보다 때때로 비워지며 다시 정돈되는 과정에 더 가까운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동시에 새로운 것을 맞이하는 가장 좋은 태도는 무엇인가를 더 붙잡는 일이 아니라 오래된 것들을 조금씩 비워 두는 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 시간을 위한 여백. 나이가 들수록 이런 변화에 조금씩 익숙해지고 있다. 단순히 시간을 함께 했다는 이유만으로 수명을 다한 물건들을 억지로 붙잡고 있기보다, 새로움을 받아들이며 삶을 더 편리하고 반짝이게 닦아 가는 생활 습관과 마음가짐에 대해 생각해보는 것이다. 요즘은 새로움이 가져다주는 기분 좋은 설렘과 쾌적함을 조금씩 즐기고 있다. 비워진 자리 위에서 또 다른 일상이 시작되고 그렇게 사라지는 것들과 채워지는 것들이 반복되며, 삶은 조금씩 앞으로 흘러간다. /윤여진(시인)

2026-03-18

나의 밥 친구, 수탉

작년 겨울, 100만 유튜버 납치 및 살인 미수 사건이 뉴스에 떴다. 헤드라인만으로도 너무 끔찍했다. 어떤 원한이 있다고 해도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악의라는 게 이렇게 커질 수가 있단 말인가. 유튜버가 무사해야 할 텐데. 걱정되어 기사 몇 개를 더 찾아보다가 해당 유튜버의 이름이 뜬 것을 보았다. 수탉. 어? 수탉? 수탉은 내가 정말 자주 즐겨보는 공포 게임 전문 유튜버다. 밥 친구, 그래, 홀로 식탁에 앉아 식사를 할 때 눈과 귀과 심심하면 꼭 함께하는 이가 나의 밥 친구 수탉이다. 오랜 시간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고 이동하거나 작업이 끝나 무료할 때도 늘 수탉은 나와 함께였다. 그러다 보니 실제로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그에게 강한 내적 친밀감을 느끼곤 했다. 비속어를 쓰지 않으며 재밌게 이야기를 끌고 가는 것도 좋았고 게임을 하다 종종 실수하면서도 “쉽네” 그렇게 말하며 대수롭지 않게 툭툭 내뱉는 유머 코드가 나에겐 딱이었다. 고백하자면 나는 겁이 많은 편이다. 학창 시절 시험이 끝나고 교실에서 링, 주온 이런 것들을 틀고 다 같이 볼 때면 나는 연신 손으로 눈을 가리곤 했다. 살짝 본 귀신의 비주얼이 너무 무서워서 꿈에 나올 것 같았다. 그런데도 공포 영화를 보는 날에는 꼭 앞에 앉아 있었다. 무섭지만 즐기고 싶었다. 공포, 스릴러가 주는 감각이 다른 장르로는 채워지지 않았다. 하루는 동네 친구가 한국 공포 게임 화이트데이를 설치했다며 나를 초대했다. 직접 플레이할 마음은 없었기에 친구 옆에 앉아 교무실에 들어가 보라거나 전화는 받지 말라는 둥 괜히 입으로만 떠들어댔다. 경비가 쫓아올 때면 마치 현실에서 나타난 것처럼 둘이 호들갑을 떨며 방 안을 뛰어다녔다. 친구는 주인공에 이입해서 게임을 진행했겠지만 나는 아니었다. 그저 그 모든 걸 바라보는 방관자이길 바랄 뿐이었다. 언제나 그랬다. 그래서 굉장히 흥미로운 공포 게임이 발매되어도 건드릴 엄두를 내지 못했다. 혼자서는 그 세계에 들어갈 수 없었다. 그러다 몇 년 전쯤 우연히 유튜브 알고리즘에 수탉이 떠서 그가 진행하는 게임 영상을 봤다. 차분하고 흡인력 있는 목소리. 오늘 할 게임은- 하고 들어가는데 왠지 자신감이 있어 보였다. 나와 달리 겁쟁이가 아니구나, 귀신의 집에 들어가더라도 이 사람에게는 내 앞을 맡겨도 될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나 웬걸, 코너에서 행인 한 명이 불쑥 나타나자마자 그는 “엄마야!”하고 소리쳤다. 빠르게 호흡을 고른 후 그는 곧장 능청스럽게 다음 말을 이었다. “별일 없으신가 해서 불러봤어요. 필요한 거 없으시려나?” 나는 말 그대로 빵 터졌다. 뭐야. 이 사람도 겁이 없는 건 아니었구나. 오히려 덤덤하게 반응했다면 나만 놀라고 말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도 나처럼 놀랐고, 우리가 같은 감정을 공유했다는 걸 알았다. 무엇보다 공포를 환기하는 방식이 너무나도 마음에 들었다. 정말로 폼을 잡으려고 한다기보단 유머 한 스푼을 넣어 공포를 중화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귀신에게 붙잡히기 직전의 상황에서도 “무빙~ 무빙~”하며 무서운 장면을 얼핏 우스꽝스럽게 만들곤 했다. 그렇게 하나둘 그를 통해 나는 온갖 공포 게임을 비교적 부담 없이 즐길 수 있게 되었다. 유튜버 납치 및 살인 미수 사건 기사를 본 이후부터 나는 그가 적잖이 걱정되었다. 범인들이 잡히고 수탉이 구출되었단 기사를 보았지만 그가 입은 피해가 어느 정도인지는 잘 가늠이 되지 않았다. 당장 그를 떠올리면 웃고 즐길 수가 없을 것 같아 이전에 올렸던 영상들도 차마 볼 수가 없었다. 방송을 그만둔다고 해도 상관없으니 그저 그가 빠르게 건강을 되찾기를 바랐다. 공포 게임 같은 것보다 훨씬 무서운 현실을 마주한 그의 마음을 어찌 다 헤아릴 수 있을까. 사건이 일어나고 한 달도 채 지나기 전에 수탉은 유튜브 커뮤니티에 수술 후 회복 중이라는 말을 남겼다. 그것만으로도 속에 얹힌 무언가가 내려가는 느낌이 들었다. 정말 다행이었다. 그래도 아직 그의 이전 영상들을 보기엔 마음이 쓰였다. 게임 안이 아닌 게임 밖에서 수탉은 나아지려고 애쓰고 있을 테니까. 놀라운 일은 그다음이었다. 해를 넘기기도 전에 방송에 복귀한 것이다. 정말? 괜찮을까? 그렇게 힘들었던 그를 보며 웃어도 될까? 그런 마음도 잠시 그가 올린 첫 유튜브 영상을 보며 나는 웃음과 감탄을 동시에 터뜨릴 수밖에 없었다. 게임 도중에 길을 못 찾고 헤매고 실수하자 “아, 원래는 쉽게 깨는 건데, 제가 회복이 덜 되어서 그렇습니다. 양해 부탁드릴게요.”라는 말로 넘겨버린 것이다. 수탉은 나의 밥 친구이자 슬픔과 고통을 자기만의 방식으로 중화할 줄 아는 사람이다. 멀지만 가까운 마음으로 계속 그를 응원하고 또 함께할 것이다. /구현우(시인)

2026-03-18

바람이 불어오는 곳

봄이 올 거라는 기대감을 가볍게 무너뜨린 3월의 바람은 한겨울의 것보다 매섭고 날카롭다. 옷장 깊은 곳에 넣어두었던 겨울옷을 다시금 꺼낸다. 발열 기능이 있는 이너를 챙겨입고 옷깃을 올린다. 안감에 보드라운 털이 가득한 부츠를 신어야만 현관 앞에 설 용기가 생기는 날씨. 좌우로 살을 베어내는 바람에 저절로 고개를 숙이게 되는 요즘 같은 날이면, 내 머릿속엔 희고 거대한 풍력 발전기가 떠오른다. 작년 이맘때 나는 미국에 있었다. 8일간 서부를 가로지르는 짧고 굵은 여행 중이었다. 무언갈 보고, 먹고, 음미하는 시간보다 버스에 실려 이동하는 시간이 압도적으로 길었다. 여행이 아니라 이동하기 위해 미국에 온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창밖으로 비슷한 풍경이 스쳐 지나갔다. 미국 서남부 캘리포니아와 네바다 일대에는 모하비 사막이 있다. 끝도 없이 펼쳐진 사막을 달리다 보면 관광객이 우글우글 모여 있는 거대한 라스베이거스 사인이 보인다. ‘LAS VEGAS’라고 적힌 붉은 글씨는 사막과 잘 어울린다. 사막 한가운데에 세워진 세계적인 관광 도시, 초대형 호텔과 휘황찬란한 카지노, 시선을 사로잡는 분수 쇼까지, 이 도시에 입성한 순간 ‘사막’이라는 단어는 머릿속에서 지워진다. 내가 지금 밟고 있는 땅이, 이 풍경이 사막의 것을 빌려왔다는 사실을 잊을 만큼 자연은 감쪽같이 지워진다. 새벽이 되어도 꺼지지 않는 불빛, 공기 중에 맴도는 대마초 냄새, 카지노 기계 앞에 앉아 눈을 부릅뜬 사람들. “여긴 바람이 안 부네.” 동행인 Y는 내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래? 바람이 꽤 쌀쌀한데?” 그런 바람이 아니라고 대답하려다 그만두었다. 라스베이거스에는 바람이 온전히 바람으로 존재하는 순간이 없었다. 식물의 몸체를 뒤흔들고 형체 없는 뱀처럼 모래 사이를 지나다니는 바람, 낯선 냄새를 묻히고 돌아다니지 않는 바람, 그런 게 없어서 이 도시에는 정이 가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이튿날 짧은 환락을 뒤로 하고 버스에 올라탔다. 또다시 사막, 사막, 그리고 사막이 이어졌다. 비슷한 풍경이 반복될수록 잠이 쏟아졌다. 눈을 떠도 감아도 나는 여전히 사막 위에 있었다. 그렇게 얼마나 달렸을까, 버스 안이 웅성거리는 소리에 잠에서 깼다. 가이드가 창밖을 가리키고 있었다. 나처럼 혼곤한 잠에 빠져있던 사람들이 부스스 일어나 창밖을 바라보았다. 꼬리가 긴 기차가 지나가는 모습이 보였다. 1마일이 넘을 정도로 긴 길이 덕분에 ‘마일 트레인’이라 불리는 화물 기차였다. 규모에 놀랄 새도 없이, 기차 뒤로 풍력 발전기가 끝도 없이 늘어져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모하비 사막 산등성이를 가득 채운 풍력 발전기에 나는 압도당했다. 5천 대가 넘는 거대한 발전기가 동시에 회전하는 모습이 경이롭게 느껴졌달까. 모하비 사막은 세계에서 풍력 발전기를 설치하기 가장 좋은 곳으로, 미서부의 풍력 발전기는 캘리포니아의 날개라고 불린다. “멋지죠? 저 풍력 발전기 한 대에 한화로 2억 원이 넘어요.” 가이드의 목소리에 뒷자리에 앉은 이가 헉, 하고 숨을 들이마시는 소리가 들렸다. 장관이네요, 여행 내내 유독 목소리가 컸던 아저씨 한 분이 외쳤다. 모두가 웃음을 터뜨렸다. 말 그대로 정말 장관이었다. 그때까지 내가 풍력 발전기에 대해 아는 건 아주 단편적인 정보뿐이었다. 자연 바람을 이용해 친환경적인 데다 미관상으로도 아름다운 발전기. “그런데 마냥 멋진 것만은 아니에요. 풍력 발전기는 하얗지만, 그 아래는 아주 새까맣거든요.” 가이드의 차분한 설명에 누군가가 그게 무슨 뜻이냐고 물었다. “풍력 발전기는 새들의 무덤이에요. 풍력 발전기가 내는 소음이 새들의 경로를 방해하고 혼란을 일으키죠. 또 강력한 바람에 휩쓸려 발전기에 부딪히는 사고를 만들어내 결국 죽음에 이르게 해요. 친환경을 표방하지만, 실상을 알면 결코 친환경적이라고 할 수 없어요. 인간에겐 막대한 부를 가져다주는 바람이지만, 새들에겐 죽음의 바람인 셈이죠. 그렇게 생각하면, 바람이 불어오는 저 언덕이 더는 장관처럼 느껴지지만은 않을 거예요.” 버스 안에 작은 침묵이 감돌았다. 그때 누군가 손을 들었다. “저 발전기는 나라에서 관리하는 겁니까?” 가이드는 고개를 저으며 저 발전기는 모두 개인에게 분양했으며, 현재 발전기 주인들은 여생을 편히 즐길 수 있을 만큼의 수입을 얻고 있다고 말했다. “돈을 뿌리는 바람이네요.” 질문을 던진 사람이 덧붙이자 가이드 역시 웃으며 농을 던졌다. “빚을 내고서라도 분양받았어야 하는 건데요.” 모두가 한마음으로 발전기 주인들을 부러워했다. 나는 커튼을 치고 눈을 감았다. 그러자 아주 고요해졌다. 여긴 바람이 너무 많이 부네.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양수빈(소설가)

2026-03-11

그래도 봄은 온다

연휴 마지막 날이었다. 봄이 오는가 싶더니 비가 내리고 있었다. 한 잔 생각이 나서 아내와 아들을 데리고 친구 집에 놀러 갔다. 궂은 날씨지만 봄이 오고 있다는 것이 피부로 느껴져서 모처럼 봄맞이 음식을 준비했다. 먼저 나름 자신 있는 돼지고기 수육. 앞다리살을 사서 된장과 커피, 통후추를 푼 물에 통마늘과 함께 푹 삶았다. 그렇지만 술상의 주인공은 따로 있었다. 바로 봄나물. 보통은 수육을 맛있게 먹기 위해 채소류를 준비하지만 이날만큼은 오히려 봄나물을 맛있게 먹기 위해 수육을 삶았다. 달래, 미나리, 냉이를 사다가 차가운 물에 정성스레 씻었다. 달래와 미나리는 그냥 적당한 크기로 숭덩숭덩 썰었고 냉이는 끓는 물에 아주 살짝 데쳤다. 달래는 간장을 베이스로 한 양념에 무쳤고 냉이와 미나리는 각각 된장과 고추장 양념으로 맛을 냈다. 마치 호리병처럼 작았던 친구의 딸은 내일이면 초등학교 3학년이 된다고 했다. 새로운 학급에서 어떤 친구들과 선생님을 만나게 될지 설렘 반 걱정 반으로 등교하던 새학기 첫날이 생각났다. 그날의 감각은 포근한 듯 하면서도 조금 서늘한 것이 봄 날씨와 닮았었다. 그때로부터 시간이 이렇게 흘렀나 싶기도 하고 친구 딸이 벌써 저렇게 컸나 싶기도 해서 참 세월 무섭게 흐른다는 얘기를 하며 준비해간 안주에 소주를 마셨다. 친구 딸이 자기가 쓴 동화 자랑하는 소리와 세 살 배기 아들이 엄마 찾는 소리로 조금 소란한 가운데 은은한 취기가 돌았다. 대리기사님이 운전해주시는 차를 타고 집에 돌아오는 길은 제법 추웠다. 집에 도착해서 아들과 아내를 먼저 올려 보내고 편의점에 들러 마실 것을 좀 샀다. 아파트 통로 문을 여는데 뜻밖의 기척을 느꼈다.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에 앙증맞은 고양이 두 마리의 동그란 눈 네 개가 두려운 듯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나랑 한참 같이 살다가 지금은 아버지 댁에서 나 대신 효자 노릇을 하고 있는 우리 삼봉이와 같은 치즈색 털이 예쁜 두 녀석은 아마도 따뜻해진 날씨를 믿고 밖으로 나섰다가 갑자기 만난 비와 추위를 피하려 아파트 안으로 숨어들었을 것이다. 그런데 나로서는 녀석들이 무거운 유리문을 열지 못해서 거기 들어가 있는 것인지 아니면 계속 거기 있을 작정인지를 알 수 없었다. 밖으로 내보내 주어야 하나, 아니면 그냥 문을 닫고 거기 하룻밤 머물도록 두어야 하나 고민하고 있는 사이 한 녀석이 문 밖으로 나가버렸다. 둘을 생이별 시킬 수는 없으니 하는 수 없이 그냥 문을 열어둔 채로 집에 돌아왔다. 다음 날은 아들이 새로 다닐 어린이집의 입학식에 다녀왔다. 아직 아기 냄새를 지우지 못한 채 엄마 아빠 품에 안겨있는 아기들에게서 어제 먹었던 봄나물 내음이 나는 것 같았다. 짧은 행사를 마치고, 이번에도 아내와 아들을 먼저 집으로 올려 보내고 편의점에 들러 점심으로 먹을 라면을 사서 집에 돌아왔다. 그런데 거기서 반가운 이들을 만났다. 바로 어제 만난 고양이 두 녀석. 이번에는 어둡고 습한 지하실 계단이 아니라 아파트 화단에서 드러누웠다가 벌떡 일어나 장난을 치다가를 반복하며 한가로운 오후를 보내고 있었다. 너무나도 평화롭고 다행스러운 장면이었다. 어제를 잘 견디고, 그보다 압도적으로 길었을 겨울을 잘 견디고 따스한 오늘을 맞이한 녀석들이 대견했다. 사실 내게도 겨울은 순탄치 않다. 더위를 많이 타고 추위를 안 타는 나에게 겨울은 원래 가장 좋아하는 계절이었는데, 공연과 강연 같은 행사가 생활에 있어 많은 비중을 차지하게 된 뒤로는 여러모로 견디기 어려운 계절이 되어 버렸다. 매년 같은 계절에 같은 상황을 맞이하지만 일 없는 한 철의 초조함에는 도무지 적응이 되지 않는다. 봄이 오면 날이 따뜻해지는 것이 당연하듯이 나를 찾아주는 연락도 오기 마련일 텐데, 올해는 작년 만큼 벌이를 하지 못하면 어떡하나 불안해지곤 한다. 그런데 나보다 혹독했을 그 추운 계절을 어떻게든 이겨내고 저렇게 한가로이 놀고 있는 고양이들을 보니, 나의 사정도 어떻게든 다시 좋아지지 않을까 하는 여유가 조금은 생겨나는 것 같았다. 어떻게든 봄은 오는 것이다. 겨우내 온 세상에 별 일이 다 있었다. 오늘 뉴스에도 온 세상의 힘든 이야기가 가득했다. 지난번에 칼럼에 쓴 것처럼 장사가 되지 않아 힘든 시간을 보냈을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고, 나처럼 언제나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불황기를 힘겹게 버텨낸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어쨌거나, 어떻게든 봄은 왔다. 언제 그랬냐는 듯 떠나버린 겨울 추위처럼 모두의 힘든 이야기들도 멀리 떠나버렸으면 좋겠다. /강백수(시인)

2026-03-11

균형과 느림

균형이란 뭘까. 한쪽으로 기울지 않는 상태일까, 아니면 어느 것 하나 과하지도 모자라지도 않은 알맞음일까. 우리는 균형이라는 단어에 유난히 좋은 의미를 붙인다. 균형 잡힌 식사, 균형 잡힌 사고, 균형 잡힌 삶. 그 말 속에는 늘 안정과 성숙이 함께 따라온다.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일과 삶을 적절히 나누며, 타인의 말에도 쉽게 치우치지 않는 사람. 그런 사람을 떠올릴 때 우리는 어쩐지 안심하기도 하고 부러워하기도 한다. 저 사람은 쉽게 무너지지 않겠구나, 중심이 단단하겠구나 하고. 균형 잡힌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말은 어쩌면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고백과도 닮아있다. 회사에서 예상치 못한 일이 생겨도 당황하지 않고 정리하는 사람, 삶의 여러 영역을 적절히 나누어 관리하는 사람,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하는 일 사이에서 영리하게 선을 긋는 사람. 그런 모습은 완성형에 가깝게 느껴진다. 마치 중심이 정확히 잡혀 있어서 어떤 외부의 힘에도 크게 흔들리지 않을 것처럼 보인다. 그러다 보면 우리는 스스로에게도 같은 모습을 요구한다. 왜 나는 이렇게 쉽게 기울어질까, 왜 감정이 먼저 앞설까, 왜 한쪽으로 치우쳤다가 뒤늦게 후회할까 하고선 자주 자책한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면 정말로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 존재할까? 출근길 지하철 안에서 우리는 가만히 서 있으려 애쓰지만, 실제로는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다. 열차가 덜컹거릴 때마다 발끝에 힘을 주고 무게를 조금 옮기고 손잡이를 더 단단히 붙잡는다. 겉으로 보기엔 멀쩡히 서 있는 것 같지만, 몸은 계속해서 미세하게 방향을 조정하고 있다. 그 작은 움직임 덕분에 우리는 넘어지지 않는다. 균형은 가만히 버티는 힘이 아니라, 흔들리는 동안에도 계속해서 몸을 옮기는 능력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중요한 선택을 해야 할 때마다 나는 유난히 느려지는 편이다. 이리저리 재보고, 가능한 경우의 수를 상상하고, 마음속에서 몇 번이나 시뮬레이션을 돌린다. 사실 그동안 나는 고민이 드는 순간 결정을 빠르게 내리는 편이었다. 고민을 하는 시간은 늘 답답하고 두려움이 들었기에 빨리 결론을 내린 적이 많았다. 그러나 그렇게 서둘러 내린 선택은 종종 오래 마음에 남았다. 충분히 생각하지 못했다는 찜찜함, 다른 가능성을 놓쳤을지도 모른다는 아쉬움이 오래 뒤따랐다. 크게 후회를 한 뒤로는, 반대로 며칠을 두고 생각을 정리해보기로 했다. 감정이 가장 크게 요동칠 때는 아무 결론도 내리지 않고 하루쯤 지나 다시 들여다보았다. 그러면 신기하게도 마음속 급급함이 조금씩 내려갔다. 처음에는 확신처럼 느껴졌던 감정이 사실은 불안이었음을 알아차리기도 하고, 당장 피하고 싶었던 선택이 오히려 필요한 방향임을 이해하게 되기도 했다. 때문에 중요한 결정을 앞두면 나는 여전히 느려지고, 그 과정은 여전히 괴롭지만, 잠시 멈추어 이 상황 저 상황을 충분히 고려해보는 시간이 결국 나를 덜 후회하게 만든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건 단지 결정을 늦게 내리는 사람이라기보다는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기 위해, 넘어지지 않기 위해 조금 더 오래 균형을 잡고 있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균형을 이상적인 상태로 그려놓는다. 모든 것이 제자리에 놓여 있고, 감정도 일도 관계도 정돈된 모습을 원한다. 그러니 조금만 삶이 한쪽으로 기울어져도 쉽게 불안해진다. 일이 바빠지면 ‘나는 지금 너무 일에 치우친 건 아닐까’ 걱정하고, 쉬는 시간이 길어지면 ‘이렇게 오래 쉬어도 되나’ 하며 초조해진다. 완벽하게 반듯한 상태를 상상해두었기 때문에 그 선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실패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하지만 삶은 완벽히 정지된 화면이 아니다. 매일 다른 변수가 생기고, 감정의 온도도 달라지고, 우리의 에너지도 일정하지 않다. 그렇게 끊임없이 움직이는 조건 속에서 완벽한 균형을 기대하는 일은 어쩌면 지나치게 이상적인 바람일지도 모른다. 균형이란 결국 매일 조금씩 방향을 고치며 살아가기 위한 열렬한 몸짓이라 생각한다. 넘어지지 않기 위해 발을 옮기는 일, 한쪽으로 치우쳤음을 알아차리고 다시 중심을 찾으려는 노력, 빠르게 결론을 내리기보다 잠시 멈춰 서는 선택. 그것은 완벽함의 증명이 아니라, 흔들림을 인정하는 태도에 가깝다. 균형 잡힌 사람으로 보이는 이들도 아마 매일 같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수없이 방향을 수정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니 균형은 단단히 고정된 상태가 아니라기보단, 기울어질 때마다 다시 중심을 찾으려는 의지다. 오늘도 나는 작은 외부 충격에도 쉽게 흔들리겠지만, 그 대신 조금 더 오래 서 있기 위해 천천히 몸을 조정할 것이다. 그리고 그 느린 조정이 결국 나를 넘어지지 않게 할 것이다. /윤여진(시인)

2026-03-04

‘호락호락’도 락이다

“세상은 호락호락하지 않다. 괜찮다. 나도 호락호락하지 않으니까.” 신사역에서 집으로 가는 지하철을 타려고 기다리던 중 광고판에 호랑이 캐릭터와 함께 이런 문구가 그려져 있는 것을 보았다. 강의가 끝나고 왜인지 모를 실의에 빠져 있는 때였다. ‘쓸데없이 말을 너무 많이 한 것 같아. 누가 누굴 가르친담. 내가 괜히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친 건 아닐까?’ 몇 년간 나를 짓누르는 무력감에 무거운 짐이 어깨와 등에 더해진 기분이었다. 그런데 저 문구를 본 순간 나도 모르게 따라 중얼거리고 있었다. 괜찮다. 나도 호락호락하지 않아. 나도 호락호락하지 않아. 출처가 궁금해서 알아보니 이미 밈으로 돌아다니던 문장을 가수 태연이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올려 화제가 된 것이라고 한다. 귀여운 호랑이 캐릭터와 그 말이 무슨 관계가 있고 또 무엇을 광고하려고 한 것인지는 모르겠다. 다만 그 이미지와 문장은 내게 분명하게 남았고, 스스로 약간의 동력이라도 찾을 수 있게 되었으니 광고와 무관하게 고마운 마음이 든다. 사실 나는, 제법 호락호락한 편인 것 같다. 부탁을 받으면 쉽게 거절하지 못하고, 나쁜 말을 들으면 곧장 나쁜 말로 되받아치지 못한다. 외양이라도 좀 강해지고 싶은데 그건 태생적인 부분이라 어쩔 수가 없다. 키와 덩치가 그닥 크지 않은데 얼굴도 동그래서 좀 만만하게 생겼다. 심지어 목소리도 낮고 음성의 크기 또한 크지 않다. 전반적으로 별다른 포스가 없다. 스스로 위축되는 것도 있는 것 같다. 어디에서든 사람들 사이에 있으면 바로 쭈구리가 된다. 사람과 닿는 것도 무서워서 지하철이나 버스 옆자리에 누군가 앉으면 있는 힘껏 몸을 말곤 한다. 그러지 않으려고 해도 잘 안 된다. 언제나 내가 제일 약하고 볼품없어 보인다. 이런 나지만 의외로 오프라인에서 하는 것들을 즐긴다. 특히 콘서트. 아무래도 좌석을 선호하지만 스탠딩도 아주 싫어하지는 않는다. 일어서서 뛰면서 함께 해야 더 즐거운 공연도 있다. 락이 그렇다. 엊그제 일본 록(J-Rock) 밴드 원오크락(ONE OK ROCK) 내한 콘서트를 보러 친구들과 잠실실내체육관에 갔다. 전부터 좋아하던 밴드라 기대가 됐다. 동시에 걱정도 됐다. 노래가 하나도 쉬운 게 없는데 이게 다 라이브가 되는 건가? 공연장 음향 상태가 안 좋으면 어떡하지? 나… 밖에 오랜만에 나왔는데 사람들 속에서 음악에 집중할 수 있을까? 그렇게 양가적인 마음으로 앉아 있었다. 원오크락은 시간을 끌지 않고 바로 등장했다. 그리고 오프닝 첫 곡으로 ‘Puppets Can‘t Control You’를 했다. 노래를 시작하자마자 직전의 걱정이나 고민은 모두 기우라는 걸 알았다. 전율이 일었다. 두 번째 곡으로 한 건 ‘The Beginning’. 두 곡만으로도 분위기는 완전히 달아올랐다. 나도 열심히 손을 흔들고 소리를 질렀다. 앞이나 옆에서 종종 작은 나의 영역에 침범해서 리듬에 몸을 맡겼지만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어쨌든 그 순간 나는 누구든 허용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저 원오크락의 음악 안에 빠져 노는데 방해만 되지 않는다면 말이다. 한 시간 아니 두 시간쯤 더 해도 좋았을 테지만 모두가 예상했을 앵콜곡 ‘We Are’를 마지막으로 공연은 끝났다. 친구들은 나와 같은 감정이 되었는지 연신 감탄을 쏟아냈다. 보컬은 말할 것도 없이 끝내줬고, 악기들 또한 합과 움직임이 엄청났다. 어떤 상황에서도 무너지지 않는 결속력 같은 게 보이는 듯했다. 나도 저런 에너지를 만들어내는 사람이고 싶단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그런 마음은 잠깐이고, 마음을 먹는다고 해서 그리 쉽게 바뀔 수 없다. 인간은 나약하고 나는 더 나약하다. 공연장 밖에서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가볍게 치이고 자꾸 움츠러드는 나 자신을 보면서 호락호락이라는 말이 다시금 떠올랐다. 그러면서도 내 안에 원오크락이 준 에너지는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호락호락. 하지만 호락호락도 락이 아닐까. 아니야. 확신을 갖자. 내가 설령 호락호락한 사람이라고 해도, 락처럼 이겨낼 수 있을 거야. 심지어 락이 두 번이나 있는걸. 그래서 작지만 입 밖으로 소리 내어 말했다. 호락호락도 락이다. 가방을 안고 대중교통을 조용히 타고 있는 내 이어폰에서는 늘 락이 나오고 있다. 아무도 모르겠지만 나의 전투력은 이미 최고치에 달했다. 싫은 소리를 들어도 또 별말 못하겠지만 뭐 어떤가. 내 안에서는 다시 내가 짱이 되었다. 정말 강해지지는 못할지라도 너무 약해지지는 않을 것이다. 내가 나에게 호락호락한 정도라면, 딱 괜찮을 것 같다. /구현우(시인)

2026-03-04

동시에 하는 일

26년 새해를 맞은 지도 벌써 한 달이 더 흘렀다. 상투적인 표현이지만 시간은 눈 깜빡할 사이에 달아나 내게서 점점 멀어지고 있다. 작년과 달라진 점이 있다면 속기사 학원에 다니고 있다는 점이다. 예전부터 나는 손재주 없는 아이였다. 뜨개질, 바느질, 요리, 기계 수리 등 손을 이용해 무에서 유를 창조하고 그것을 예쁘게 만들어내는 일에는 영 소질이 없었다. 중학교, 고등학교 가정 시간 수행평가 때마다 나는 늘 낮은 점수를 받았다. 기술 시간과 미술 시간도 상황은 비슷했다. 그나마 옆에서 도와주는 친구들 덕분에 최악은 겨우 면한 정도랄까. 흔히들 손재주 하면 공예와 관련된 조형 능력을 떠올리겠지만, 사실 손재주에는 여러 분야가 있다. 조형 능력뿐 아니라 기술적 숙련도를 요구하는 정밀 수리, 수술을 비롯한 전문 의료 능력, 그리고 예술적 퍼포먼스 분야이다. 다행히 나는 예술적 퍼포먼스의 한 분야인 타이핑에선 소소한 재능을 보였다. 학년이 바뀔 때마다 나는 반에서 제일 타자가 빠른 아이였고, 지금은 타이핑을 통해 글을 쓰는 일을 하니 내게도 어느 정도의 손재주가 있다고 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래서였을까, 나는 속기사 자격증을 금세 취득할 수 있으리란 자신감을 안고 학원에 등록했다. 내 자신감은 수업 첫 시간부터 처참히 무너졌다. 속기사 키보드는 일반 키보드와는 완전히 다르다. 일반 키보드는 자음-모음-받침을 순서대로 입력하지만, 속기사 키보드는 이 모든 걸 동시에 입력해야만 한다. 왼손과 오른손이 누를 수 있는 자판이 철저히 구분되어 있으며 지정된 손가락 위치에 맞는 자판을 눌러야 한다. 마치 피아노를 연주하듯 말이다. 처음엔―물론 지금도―손가락의 위치를 외우는 것부터가 난관이었다. 이전까지 배운 것을 모조리 잊고 새로 시작하는 건 꽤나 혹독한 일이었다. 머리로 외우고, 눈으로 보고, 손을 움직이는 모든 게 별개의 일처럼 느껴졌다. 3개월 정도면 자격증을 취득할 수 있지 않을까, 안일하게 생각했던 내가 부끄럽게 느껴졌다. 학원 선생님은 1년간 매일 연습해도 합격하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왼손으로는 자음만, 오른손으로는 모음만 눌러야 한다는 사실은 이제 익숙해졌지만, 그 모든 걸 동시에 눌러야 한다는 건 여전히 낯설고 어려운 일이었다. “멀티태스킹을 잘하는 사람이 더 유리하겠네요? 동시에 여러 가지 일을 처리할 수 있는 사람이요.” 어느 날 나는 선생님께 그렇게 물었고, 그는 고개를 갸웃거리다 대답했다. “글쎄요, 꼭 그렇지만도 않을 거예요. 저만 해도 멀티가 안 되는 편인데, 타이핑을 할 때는 전혀 문제가 없거든요.” 그런가요…… 나는 한숨을 내쉬며 키보드를 내려다보았다. 마음과 의욕을 따라오지 못하고 뒤처지는 손이 야속했다. 나를 격려하듯 “지금도 잘하고 있어요”라고 말한 선생님이 잠시 생각에 잠긴 듯 허공을 바라보았다. “완벽하게 해내려고 하지 않으셔도 돼요. 완벽하게 할 수가 없죠. 타자를 동시에 치는 게 처음이시잖아요. 지금 중요한 건 손가락에 힘을 빼는 거예요. 타자 치실 때 손이 바짝 올라가 있어요. 너무 잘하려고 하면 몸에 힘이 실리고, 힘이 실리면 오타를 내기가 쉬워져요. 머리로 이해하려고 하지 말고, 손한테 익숙해질 시간을 주세요. 그럼 생각하지 않아도 손이 저절로 움직일 거예요.” 나는 어쩐지 정곡에 찔린 기분으로 가만히 타자기만 내려다보았다. 완벽하게 해내려는 것, 너무 잘하려고 하는 것. 모두 나의 유구한 특성이었다. 처음 하는 일도 여러 번 해본 것처럼 능숙하게 잘하고 싶은 욕심은 늘 내 안에 있었다. 선생님의 조언을 듣고 나서야 내 손가락이 다른 학생들에 비해 유독 뾰족하게 솟아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힘이 잔뜩 들어간 뼈마디가 하얗게 보였다. 그게 꼭 날카로운 송곳니처럼 느껴졌다. 완벽하게 해내지 못한 나 자신을 언제라도 물어뜯을 준비가 된 낯선 존재의 이빨. 익숙해질 시간, 그런 걸 내게 준 적이 있었던가? 스스로를 먹이고 재우고 입히는 기본적인 생활은 물론이고, 직장에 다니는 시간을 쪼개 글을 쓰고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고 집을 가꾸는 데 바빴다. 내심 여러 가지 일을 동시에 수행하는 나 자신을 대견하게 여기기도 했다. 간혹 힘든 순간이 닥치더라도, 모두 다 이렇게 살 텐데 나만 엄살 피우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어 애써 모른 척했다. 동시에 여러 가지 일을 하고, 여러 명 몫의 삶을 사는 일이 당연하다고 여겼다. 오직 흑건으로만 이루어진 피아노 같은 타자기 앞에 앉아 나는 힘 빼는 법을 생각한다. “하지만 손에 힘을 너무 빼면, 자판을 누를 수가 없어요. 힘 주기와 힘 빼기 사이에서 적절한 강도를 곧 찾게 되실 거예요.” 선생님의 말처럼, 언젠간 나만의 강도를 찾아 몸이 저절로 움직일 때를 찾기 위해 지금은 ‘완벽할 수 없음’과 ‘완벽하지 않아도 됨’의 상태를 받아들이도록 노력 중이다. /양수빈(소설가)

2026-02-25

텅 빈 거리에서

내가 살고 있는 지역에는 한 때 저녁마다 붐비던 번화가가 있다. 멀티플렉스 영화관과 대형 쇼핑몰을 중심으로 늘어선 식당과 술집들. 이삼십대 젊은 친구들이 거리를 가득 메우고 시끌벅적하게 떠들며 밤을 지새우곤 했다. 몇 년의 시간이 흐르고, 이따금 찾던 그 도시가 내가 사는 곳이 되었는데 지금의 모습은 그때와는 많이 다르다. 가뜩이나 날이 추운데 주말에도 거리는 한산해서 바람이 더 차게 느껴질 지경이다. 나야 단지 쓸쓸하고 을씨년스러운 느낌 정도를 받지만 거기서 장사를 하시는 분들의 마음은 훨씬 더 무거울 것이라 짐작한다. 자영업자에게 모든 순간은 비용이나 다름없을 텐데 비어있는 테이블들을 보면 도무지 힘이 나지 않을 것 같다. 동네만 그런 것이 아니다. 서울의 번화가에 나가봐도 실상은 마찬가지이다. 신촌의 상권이 무너진지는 오래됐다. 골목골목을 가득 메우던 인파들을 이제는 더 이상 찾아볼 수 없다. 종로도 그렇고 명동도 심각하다. 어느 날 홍대에서 택시를 탔는데 기사님은 이제 홍대나 강남도 옛날 같지 않다고 말씀하셨다. “어딜 가도 사람이 없어요.” 성수동, 연남동, 한남동처럼 새로 떠올라 성장한 곳들도 있지만 그 규모는 눈으로 보기에도 침체된 곳들보다 압도적으로 작다. 대구의 동성로, 광주의 충장로, 전주 객사. 도시를 대표하던 거리들이 비어가는 것은 전국적인 현상이다. 거리에 사람이 없는 것은 체감적인 경기침체가 장기화된 것이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어느덧 원로급이 된 그룹 신화의 멤버 앤디가 앳된 얼굴로 시트콤 ‘논스톱’에서 “장기화된 경기침체로 인해…”로 시작하던 유행어를 이야기하던 게 2002년 쯤이었다. 물론 중간 중간 반등하기도 했다는 것이 수치로 나타나긴 하지만 체감적으로는 그 시절부터 지금까지 경기침체가 계속 이어져오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경제적인 격차는 자꾸만 벌어지고 취업은 점점 힘들어지며 임금은 별로 안 오르는 것 같은 느낌은 단순히 기분 탓이 아닐 것이다. 반면, 물가는 무섭게 오른다. 2005년, 대학 새내기 때 가게에서 소주 한 병 값은 2500원에서 3000원 정도였다. 지금은 5000원에서 6000원 정도 하니까 두 배 정도 오른 셈이다. 그동안 평균 임금은 80% 정도 상승했으니 사실 그에 비하면 소주 값이 그렇게 많이 오른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계산기를 들고 소주를 마시지는 않는다. 우리가 실제로 느끼는 감각은 숫자 밖에 존재한다. 평균 임금이 그만큼 오른 것은 고소득층의 임금 상승이 주된 요인이라 보는 의견이 많다. 평균이 올랐다고 내 월급이 오른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서민들 입장에서 보면 소주 값만 지나치게 오른 것처럼 보일 수밖에 없다. 코로나가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것도 명백하다. 2년 남짓한 시간동안 모임이 통제되고 모두 집안으로 숨어들었다. 제한이 풀리고 나서 유동인구의 수는 어느 정도 회복이 되긴 했지만 그것이 완전하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때 사라진 회식과 모임이 부활하지 않게 된 경우들이 많다. 그때 갓 스물이 되었던 젊은이들은 이제 소비력을 갖추게 되었을 텐데 한창 모여야 할 시기에 통제받은 경험은 이후에도 그들을 이전 세대들보다 만남에 소극적인 세대로 만들었다. 요즘 젊은이들은 우리 때만큼 술을 마시지도 않고 모이지도 않는다. 당장 밖으로 나가 사람을 만나고 흥청망청 술을 마시라고 권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약간의 우려를 가지게 되었을 뿐이다. 사람과 사람이 얼굴을 마주보고 밥을 먹고 차를 마시고 술을 먹으며 쌓은 관계는 단지 인스타그램에 좋아요를 누르고 카톡으로 이모티콘을 보내며 쌓은 관계와는 여러모로 다를 것이다. 누군가를 만나더라도 아파트 주방의 식탁에 모여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것과 낯선 이들의 왁자지껄한 목소리에 섞여 거리의 풍경에 녹아드는 일은 전혀 다른 감각을 선사한다. 뭐가 더 낫다고 이야기 할 수 없다. 사람에게는 다양한 모습의 관계와 다양한 종류의 감각이 필요하다. 그런 것들이 인생을 더욱 풍성하게 만든다. 자영업자들의 생활이 위태로워지고 사랑스런 공간들이 사라지는 것도 걱정이다. 공간은 곧 경험이고 경험들이 모여 삶을 이룬다. 다양한 공간들을 지켜내는 이들이 바로 자영업자들이고, 그런 곳들이 유지되려면 결국 그들이 살아남아야 한다. 그런데 자꾸 얼어붙기만 하는 황량한 거리에서 자영업자들은 끝없이 한숨을 내뿜을 뿐이다. 아무리 추워도 겨울을 견딜 수 있는 건 봄이 온다는 확신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버티다 보면 온다던 봄은 아직도 소식이 없다. 텅 빈 거리에 봄이 오긴 오는 것일까. 날은 많이 풀렸는데 말이다. /강백수(시인)

2026-02-25

아침, 한 잔의 균형

아침에 눈을 뜨면 가장 먼저 커피를 내린다. 전기포트에 물을 올려두고, 끓는 동안 원두를 간다. 분쇄되는 소리 사이로 스며 나오는 향이 잠을 서서히 밀어낸다. 물이 다 끓으면 종이 필터를 적셔 특유의 냄새를 씻어내고, 동시에 드리퍼를 데워 온도를 맞춘다. 그 다음은 분쇄된 가루 위에 조심스럽게 첫 물을 붓는다. 약 30~40초 동안 커피가 천천히 부풀어 오르는 모습을 보며 기다린다. 이후에는 너무 빠르지도, 지나치게 머뭇거리지도 않게 일정한 속도로 원을 그리듯 물줄기를 붓는다. 한 잔이 완성되기까지는 대략 5분 남짓.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이지만 5분여간은 커피에 시선을 떼지 않고 조용히 기다린다. 바쁜 아침마다 이렇게까지 시간을 들일 필요는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커피를 내리는 시간은 마음의 작은 여유를 가져다준다. 물론 평일의 대부분 아침은 집 근처 프랜차이즈 카페에서 커피를 사 마신다. 가격도 합리적이고 기다리는 시간도 짧기 때문이다. 카페에서 사마시는 커피만으로도 하루의 카페인은 충분히 채워진다. 하지만 쉽게 구매해서 마시는 커피 한 잔은 오래 기억에 남지 않는다. 혀끝에 남는 맛도, 깊이 있는 향의 결도 없이 금세 사라진다. 마신 뒤에는 단지 카페인이 몸을 깨웠다는 사실뿐. 커피가 카페인을 채우기 위한 음료로서의 역할을 다하는 데에는 충분하지만 그 이상으로 나를 붙잡지는 않는다. 드립커피는 조금 다르다. 맛이 각기 다른 원두를 구비해놓으면 그날의 기분에 따라 원두를 선택할 수 있다. 산뜻한 산미가 필요한 날에는 꽃이나 과일 같은 밝은 향의 원두를, 마음이 가라앉은 날에는 초콜릿이나 견과류 맛이 나는 묵직한 풍미의 원두를 선택한다. 원두 봉투를 여는 순간 퍼지는 향, 손에 잡히는 원두의 촉감, 분쇄되는 소리, 혀에 층층이 감기는 맛까지도 그날의 컨디션과 맞물린다. 그리고 내가 고른 원두에 맞춰 분쇄도를 조정하고, 물의 온도와 붓는 속도를 가늠한다. 같은 커피라도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맛을 보여준다는 것도 드립의 큰 매력이다. 커피를 내리는 과정은 약간 번거롭지만, 그만큼 날씨와 나의 기분과 그날의 온도에 맞춰진 정성스런 한 잔이 된다. 드립의 기본은 단순하다. 물을 서두르지 않고 일정한 속도로 커피 가루 전체를 골고루 적셔주면 된다. 한 부분에만 물이 오래 머물면 과하게 추출되고, 닿지 못한 부분은 충분히 맛을 내지 못하게 된다. 균일함이 균형을 만들기에, 좋은 맛을 내기 위해선 너무 빠르거나 또는 너무 느리게 물을 붓는 것이 아닌, 고르게 스며든 적당한 시간에서 나온다. 또 중요한 점은 한곳에만 물을 붓지 않는 것이다. 원을 그리듯 천천히 움직이며 전체를 살핀다. 커피가루 하나하나에 고르게 물을 머금게 해주어야 원두 본질의 향이 살아난다. 균형은 어떤 한곳에만 치우쳐 물을 붓는 것이 아니라 고른 관심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드립의 또 다른 재미있는 점은 날씨와 습도, 물의 온도에 따라 미묘한 맛의 차이가 있다는 점이다. 때문에 어제와 같은 방식으로 추출해도 오늘은 또 다른 맛의 결과가 나온다. 그날의 원두와 공기, 나의 감각에 맞춰 균형을 찾아야 하고 완벽한 레시피가 있다기보다, 매번 다른 답을 찾는 과정에 가깝다. 우리는 속도에 익숙해져 있다. 더 빨리 움직이고, 더 많은 일을 해내야 한다는 압박 속에서 하루를 시작한다. 나 역시 해야 할 일의 목록을 떠올리며 마음이 앞서 달려갈 때가 많다. 충분히 했음에도 조금 더 하려다 스스로를 지치게 하기도 한다. 그럴 때면 드립 커피를 내리며 생각한다. 한곳에만 물을 붓지 않듯, 하루의 힘도 한 방향에만 쏟지 말아야 한다는 것. 균형은 급함이 아니라 고른 분배에서 생긴다. 요즘의 나는 아침의 몇 분을 드립 커피를 내리는 방식으로 보낸다. 단순히 카페인을 채우기 위해서가 아닌, 천천히 물을 붓는 동안만큼은 하루의 속도를 내가 정하고 싶어서다. 향이 피어오르고, 잔에 커피가 차오르는 모습을 지켜보며 오늘의 균형을 점검한다. 한 잔의 커피가 하루를 완전히 바꾸지는 않지만 시작의 온도는 바꿀 수 있다. 내가 고른 원두와 내가 조절한 물줄기로 완성된 한 잔은, 누군가의 손을 거친 완성품과는 다른 의미를 남긴다. 균형을 유지하는 일이 거창하거나 대단한 것은 아니다. 다만 매일 아침, 나를 돌보려는 작은 시선에서 비롯될 뿐. 천천히, 그리고 고르게. 원두 드립을 내리는 아침의 몇 분이 하루를 더 건강히 지탱하게 한다. /윤여진(시인)

2026-02-18

소파 옮기기

카페에 홀로 앉아 종일 아무것도 쓰지 못한 날이었다. 따뜻한 바닐라 라떼를 홀짝이다 보니 해가 떨어져 있었다. 깜빡이는 커서와 눈을 맞추며 괜한 스트레스만 받은 셈이었다. 우중충한 밤이었다. 아주 많은 미세먼지가 섞여 마치 지점토로 수차례 까만 바닥을 문지른 듯한 밤이었다. 목이 칼칼하고 눈도 따가운 느낌이었다. 얼른 돌아가야지. 그때 누나에게 전화가 왔다. 너, 우리 집으로 좀 와. 오라고 하면 나는 오는 사람이지만 그래도 이유가 궁금했다. 뽀글이(누나네 반려견. 작은 푸들이다.) 밥을 주고 챙겨달란 일이 아니면 굳이 자기 집으로 부르지는 않기 때문이다. 오후 10시, 뽀글이가 밥을 먹기엔 너무 늦은 시간이다. 누나는 뜸들이지 않고 이유를 말했다. 본가로 소파를 옮겨야 하는데 제법 무거우니 와서 도우라는 것이었다. 부모님이 기존에 쓰던 소파는 버리고 누나네가 쓰던 소파를 사용하겠다고 한 모양이었다. 그 정도야 쉽지. 갈게. 누나네는 본가에서 백 미터 내외 거리로 사실상 앞 단지에 있다.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라는 말은 바로 이 두 집을 두고 하는 말이다. 그렇게 가벼운 마음으로 갔다. 저 멀리 1층 입구에서 소파를 앞에 두고 매형, 누나, 서후(조카. 운동과 공부를 모두 잘하는 초등학생이다.)가 같이 손을 흔들고 있었다. 저걸 1층까지 내렸으면 이제 별로 어려운 건 없는 거 아닌가? 내심 그런 생각을 했다. 가까이서 보니 소파는 예상보다 더 거대했다. 나무로 된 그것은, 소파라기보단 호수 공원에 놓인 거대한 나무 벤치를 뽑아서 가져온 것 같은 형상이었다. 일단 들어올리자. 나와 매형이 소파를 앞과 뒤에서 들고 양옆에서 서후와 누나가 들었다. 들어올리자마자 알았다. 이건 사람이 손으로 편하게 옮기라고 만든 게 아니다. 한번 자리를 잡으면 거기에 두고 계속 쓰는 거다. 내 집 이사 문제로 들었던 침대 프레임이나 장롱도 이거보단 덜 무거웠다. 갑자기 약간 진심이 되었다. 서후도 저렇게 힘을 보태는데 삼촌이 힘을 내지 않을 수 없었다. 네 사람이 나무 소파를 한 걸음씩 조심조심 옮기기 시작했다. 하나-둘. 하나-둘. 혹시라도 턱에 발이 걸리지 않을까 싶어 신중히 움직였다. 조깅하는 동네 주민이 우리를 굉장히 흥미로운 눈으로 보며 지나갔다. 뭔가 이벤트를 발견한 것처럼 반응했다. 속으로 나도 이걸 왜 손으로 옮기고 있지 싶었으나 그렇다고 용달을 부르기엔 너무 가까운 것 같고 그랬다. 평소에 오갈 때는 딱히 오르막 경사가 크다고 느끼지 못했는데 그날은 유독 그 오르막이 언덕처럼 느껴졌다. 잠시 쉬어가기로 하여 소파를 내려놓았을 때 도대체 이걸 1층까지 어떻게 갖고 내려온 거냐며 물었다. 그러자 서후가 자랑스럽게 한 손에 들고 있던 작은 수레를 보여주었다. 매형이 거기에 소파를 세로로 얹어서 끌고 내려왔다고 했다. 이미 그것만으로도 정말 대단했지만 아무래도 혼자 할 수 있는 일에는 한계가 있는 법이다. 오르막과 내리막이 있어 위험하기에 거기선 수레로 옮길 수가 없으니 들기로 결심하여 나를 부른 것이었다. 다시 천천히 옮기다가 한 사람씩 눈이 마주치곤 불쑥 웃음이 터졌다.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나 ‘거침없이 하이킥’에서 꼭 이런 장면을 본 것 같았다. 두 시트콤의 공통점이라고 한다면 온갖 어지러운 사건들 속에서도 지속되는 가족애, 공동체 내에서의 특별한 친밀감이 있다는 것이다. 가까운 사이여도 가까이 있다고 느끼기란 어렵다. 식탁에 모두 함께 앉아 밥을 자주 먹기도 쉽지 않다. 다른 누구의 문제는 아니고 밤낮이 자주 바뀌는 나 때문이다. 다 같이 눈을 맞출 일도 별로 없다. 그러나, 소파를 안쪽으로 두고 나란히 들었으니 우리 모두 마주 볼 수밖에 없었다. 소파 하나를 같이 들고 있었을 뿐인데 우리는 계속 킥킥댔다. 그만 웃겨, 힘 빠져. 멈추지 않는 웃음의 이유를 그냥 수레를 들고 흥얼거리고 있던 서후 탓으로 돌렸다. 기어이 모두의 힘으로 횡단보도를 건넜다. 엘리베이터를 타기 전 그리고 현관 중문에서 작은 난관은 있었지만 그래도 소파는 본가 거실에 무사히 옮겨졌다. 각자도생의 시대라 그런지 나도 남도 선을 넘길 바라지 않는다. 언제나 자기의 울타리 안에서 스스로를 지킬 뿐이다. 하지만 사실 나는 혼자 살아간 적은 없다. 세상과 주변의 영향과 도움이 없다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혼자서는 소파 하나를 들어올릴 수도 없다. 한쪽이 기울면 다른 한 사람이 받쳐주는 일. 그리고 다른 무엇보다도 시시콜콜한 농담을 우리가 나눌 수 있다는 게 기쁘다. 서후의 등을 토닥이며 떨어지는 땀을 닦으며 우리가 뭔가 해냈다는 기분이 들었다. 소파 하나를 옮겼을 뿐이지만. /구현우(시인)

2026-02-18

카르마

기온이 영하 10도 이하로 떨어지면 온도 차이로 인해 베란다 창문에 물방울이 맺힌다. 물방울이 맺힌 걸 보고 결로를 걱정하여 창문을 연다. 창문을 열고 환기를 시켜 곰팡이가 파고들 틈을 없앤다. 그러다 찬 바람이 너무 세다고 느껴지면 창문을 닫는다. 그리고 다시 물방울이 맺히면…. 이 모든 일들이 연쇄적이고 반복적으로 일어난다. 습도가 높아져 물방울이 생기는 것은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일이나, 창문을 여닫는 건 나의 선택이다. 창문을 너무 오래 열어두면 감기에 걸릴 수도 있고, 그렇다고 열지 않고 닫아두면 곰팡이가 생길 것이다. 선택은 반드시 결과를 불러온다. 산스크리트어 KARMA에서 유래된 ‘카르마’는 ‘행위’, ‘업(業)’을 뜻하는 말이다. 선한 행동은 선한 결과를, 악한 행동은 악한 결과를 낳는다는 ‘업보’로도 읽힌다. 우리는 누군가 곤경에 빠진 것을 보면 업보를 맞았다고 이야기하고, 반대로 좋은 일이 생겼을 땐 좋은 업보가 돌아왔다고 이야기하지만, 대부분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카르마라는 문자를 그대로 해석하면 ‘행하다’라는 뜻에 더 가깝다고 한다. 무슨 일을 행한다, 무엇과 작용한다. 이 말에는 어떤 도덕적 평가도 없다. 애초에 선악의 기준으로 구분 지을 수 없는 것이다. 즉 카르마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업보’의 뜻처럼, ‘무엇을 잘못해서 무슨 일을 당했는가’의 의미가 아니라 ‘어떤 선택을 했는가’를 묻는 질문인 셈이다. 여태 나는 선택 하나에 반드시 한 가지 이상의 결과가 따라붙는다고 생각했다. 즉각적인 반응이 나타날 것이라 믿은 것이다. 그러나 사실 카르마의 법칙은 내 생각과 달리 단기적으로 일어나는 작용이 아니었다. 카르마는 긴 시간 속에서 천천히 삶을 바꾼다. 선한 행동을 했다고 해서 바로 좋은 결과로 이어지는 것도, 악한 행동이 곧장 나쁜 결과를 낳는 것도 아니다. 모든 것이 축적되듯 쌓이고 쌓여 이윽고 거대한 삶을 만들어낸다. 최근 나는 별자리 운세를 보는 일에 꽤나 몰두했다. 아침에 일어나면 제일 먼저 오늘의 내 별자리 순위를 찾아보고, 그 옆에 달린 코멘트를 꼼꼼히 읽었다. 그날의 행운의 색과 물건이 무엇인지도 확인했다. 어제 1등이었던 내 별자리는 오늘 꼴찌가 되어 있기도 했다. 언젠가 내 별자리가 1등을 했던 날, 나는 나에게 이미 좋은 일이 생긴 것처럼 들떴다. 코멘트에는 ‘빛나는 성취가 있을 거예요’라고 적혀 있었다. 빛나는 성취라니, 듣는 것만으로도 흐뭇해지는 말이었다. 나는 행운의 색에 맞춰 옷을 입고, 물건을 챙겼다. 그리고 종일 빛나는 성취를 기다렸다. 자정을 넘긴 후에야 나는 기다리는 일을 포기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빛나는 성취는커녕 기분 좋은 연락 하나 없던 날이었다. 다시는 별자리 운세를 보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침대에 누웠다가 문득 무언갈 깨달았다. 카르마. 성취란 하루아침에 오지 않는다. 원하는 바를 이루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달려왔던 사람에게 약간의 운까지 따라주었을 때 얻을 수 있는 것이 바로 성취였다. 오늘 하루 나는 성취를 기다리느라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가만히 앉은 채로 성취가 알아서 문을 열고 들어오기만을 기다렸다. 내가 행한 것이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에 당연하게도 그날 나의 카르마는 작용하지 않았다. 우리는 극적인 사건을 맞닥뜨렸을 때 카르마가 작용한다고 믿지만, 실은 반복되는 삶의 태도가 카르마 그 자체인 건 아닐까? 삶의 끝자락에서 우리는 스스로에게 묻게 될 것이다. 나는 여태 어떻게 살아왔는가? 어떤 선택이 나를 지금의 삶으로 이끌었는가. 삶이 나를 이끌었다고 생각했지만, 실은 지금의 삶을 만들어낸 것은 오롯이 나의 선택이었던 것은 아닌가, 하고. 이런 깨달음을 얻기에 적절한 곳이 있다. 오전 아홉 시 삼십 분, 필라테스 기구 리포머 위에 누운 내 머릿속은 온통 카르마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다. 갈비뼈를 조였다 풀고, 척추를 펼쳤다 다시 모으고, 가슴을 끌어올렸다 내리라는 선생님의 지도 목소리를 들으며 지난날의 나를 떠올렸다. 구부정한 자세로 휴대폰을 보던 나, 다리를 꼬고 몇 시간씩 앉아 있던 나, 목을 있는 힘껏 빼낸 채 컴퓨터를 하던 나. 그 모든 순간의 내가 지금의 고통스러운 시간을 만들어냈음을 깨달으며, 온몸의 뼈와 근육을 재조립하는 ‘카르마’를 행한다. 내일의 나는 오늘의 나보다 더 바른 자세를 취할 것이다. 그게 옳아서가 아니라, 그런 선택을 하고 싶어서. 그리하여 끝내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삶을 이끌기 위해 나는 입술을 꽉 깨문 채 험난한 동작을 따라 몸을 움직인다. /양수빈(소설가)

2026-02-11

적당한 만큼 ‘혼자 있기’

아침 여섯 시 반에서 일곱 시 사이에 일어난다. 아내의 출근을 배웅하고 세 살 아들 밥을 먹인다. 어린이집에 아들을 데려다주고 15분 정도 차를 달린다. 작업실에 도착해서 컴퓨터 앞에 앉으면 아홉 시 반. 그때부터 오후 세시 반까지, 나는 철저히 혼자가 된다. 글을 쓰고, 음악을 만들고, 새로운 일을 모색하는 일은 혼자일 때만 가능하다. 이 여섯 시간이 없다면 나는 시인도 될 수 없고 싱어송라이터도 될 수 없는 것이다. 내게는 혼자 있는 이 여섯 시간이 무척 소중하다. 결혼 전에 나는 혼자 사는 사람이었고 프리랜서 예술인이었다. 잠을 자고 밥을 먹고 책을 읽고 TV를 보는 시간 뿐 만 아니라 일 하는 시간에도 대부분 혼자였으므로 ’혼자’는 내게 노력하지 않아도 주어지고 써도 써도 줄지 않는 무한한 자원이었다. 그러다 같이 사는 사람이 생기고, 아기가 태어나며 나는 전혀 다른 삶을 맞이하게 되었다. 문득 ‘혼자’는 탄수화물이나 단백질, 지방처럼 사람이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영양소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작년 어느 밤, 아기가 잠든 사이 아내와 영화 「퍼펙트 데이즈」(2024, 빔 벤더스 감독)를 봤다. 도쿄에 홀로 사는 중년 남성 ‘히라야마’는 하루의 대부분을 혼자 보낸다. 그의 직업은 시부야의 공중화장실 청소부. 혼자 사는 집에서 매일 같은 시간 눈을 뜨면 작업복을 챙겨 입고 집을 나선다. 차에 오르면 익숙한 손길로 카세트테이프를 틀고 올드팝을 들으며 일터로 향한다. 성실하게 화장실을 청소하다가 같은 공원 같은 자리에서 샌드위치로 점심을 때우고 잠시 필름카메라로 나뭇가지 사이로 새어 나오는 햇살을 찍는다. 일을 마치면 한산한 동네 목욕탕에서 목욕을 하고 자전거를 타고 단골 식당에서 가볍게 술 한 잔을 마신다. 깜깜해진 집에 돌아오면 이불을 펴고 작은 등 아래에서 오래된 소설책을 읽다가 잠이 드는 나날이 매일 반복된다. 그 단조롭고 고요한 일상이 우리 부부에게는 아주 커다란 울림으로 다가왔다. “좋다.”라는 말을 반복하며 영화를 보는데 히라야마의 일상에 약간의 변화가 생겼다. 오랫동안 만나지 못한 그의 조카가 기별도 없이 그의 앞에 나타난 것이다. 조카는 며칠 동안 그의 집과 일터에 함께 머물며 그의 모든 일상을 함께 하다 떠난다. 혼자였지만 충만했던 그의 일상에 뜻밖의 빈자리와 어긋남이 생긴다. 다시 일상의 평온함을 되찾으며 마무리되는 이야기의 끝에는 주인공의 의미심장한 표정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것이 웃음이었는지 울음이었는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다시 혼자가 되어 원래의 단조로운 일상으로 돌아온 것이 기쁜 것이었을까 슬픈 것이었을까. 앞서 이야기 한 것처럼 ‘혼자’가 우리에게 필수적인 영양소라면 그것의 적당량이라는 것도 존재할 것이다. 혼자 있는 시간이 결핍된 상태만큼이나 그것이 과잉된 상태도 해로울 수 있다는 것이다. 혼자의 적당량은 얼마 만큼일까. 아마 사람마다 다르고 그 사람이 어떤 시기를 관통하고 있느냐에 따라 다를 것이다. 그것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스스로의 일상과 그 안에서 갖게 되는 마음을 면밀히 살펴야 한다. 물론 그 적당량을 찾더라도 딱 그만큼의 혼자 있는 시간을 가진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아침에 일어나 콩나물 시루 같은 버스나 지하철을 타고 일터로 출근해서 또 거기서 사람들과 부대끼며 하루를 보내야 하는 이들이 있다. 집에 돌아가서는 가정에서 자신의 역할에 충실해야 하는 그들에게 ‘혼자’는 언제나 그리운 단어일 수 있다. 또 어떤 이들은 아무도 없는 집에서 눈을 뜨고 혼자 밥을 차려 먹으며 하루를 보낼 수도 있다. 그들의 삶을 궁금해 하거나 안부를 묻는 이가 좀처럼 없는 사람들, 적막 속에서 고독과 싸우며 매일을 보내는 사람들에게는 ‘혼자’가 지긋지긋하고 가슴 아픈 단어일지도 모른다. 각자의 사정이 다르고 그것을 스스로의 힘만으로 극복한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적당량의 ‘혼자’를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결국 서로에 대한 관심과 이해다. 세상에는 사람에 치여서 정신병에 걸리는 사람도 있고 고독 속에서 생을 마감하는 사람도 있다. 누군가가 충분히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내버려 두는 것, 그리고 누군가를 너무 오래 혼자 있도록 두지 않는 것은 모두 그의 삶을 구원하는 일이 될 수 있다. 그리고 그보다 우선되어야 하는 것은 스스로 자주 진단하고 처방하는 것이다. 나는 지금 적당한 만큼 혼자인가를 질문하며, 때로는 자신에게 혼자 있는 시간을 선물하기도 하고 때로는 누군가와 마음을 나눠야겠다는 의지를 가지기도 하며 살아가야 할 것이다. /강백수(시인)

2026-02-11

나의 30대는

최근 유튜브에서 에픽하이의 영상을 보다가 충격을 받았다. 30대에 접어든 아이돌 가수가 게스트로 출연한 콘텐츠였고, 에픽하이 멤버들이 질문을 던지며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나누는 인터뷰 형식이었다. 대화 도중 타블로는 게스트에게 “40대에서 30대를 돌아보니 30대가 정말 좋았다”는 말을 꺼냈다. 다소 의외라는 듯 모두가 의아해하자, 그는 곧이어 “그때는 정말 건강했고, 지금보다 훨씬 어렸다”는 말을 덧붙였다. 나도 30대에 들어선지 2년이 흘렀다. 올해 32살인 나는 나를 소개하는 자리에서 내 나이를 말하거나 약 봉투에 내 나이 만 31세라는 숫자가 찍혀있을 때마다 흠칫 놀란다. 아주 어린 날, 내게 알파벳을 가르쳐주었던 선생님이 34살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그 숫자가 정말 대단하고 멋져 보였다. 어른이 되려면 34살쯤은 되어야 하는구나 생각했고, 선생님의 오른손목에 걸린 금시계나 반짝이는 높은 구두를 보며 어른의 삶이란 저런 것이겠구나 하고 몰래 동경하곤 했다. 그런 내가 이제 34살의 나이에 가까워지고 있다. 30대가 되면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통장이 더 두둑할 줄 알았고, 직장에서도 자리를 잡아 멋진 커리어우먼이 될 줄 알았고, 자차도 멋지게 끌면서 주말마다 서울 근교로 드라이브도 멋지게 할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현실은 정 반대에 가까워서 생각보다 서른이란 별 볼 것이 없는 것 같다가도 실은 내가 서른이라는 나이의 능력치에 한참 못미치는 것은 아닌지 내심 불안하기도 했다. 그렇다고 나의 서른이 의미 없거나 초라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여태껏 직장에 들어가기 위해, 그곳에서 버티기 위해, 월세를 내기 위해,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감사함을 표현하기 위해 부단히도 애써왔다. 전주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서울에서 자리 잡기 위해 접시를 닦고 음식을 나르고 청소를 하며 버텼던 시간들, 서울이라는 도시에서 살아남기 위해 안간힘을 썼던 노력의 형태들은 아직도 내게 너무나 선명하고 소중하다. 30대에서 20대를 돌아보니 20대에는 모든 것이 불안정했다. 직장도, 직무 경력도, 고마움을 표현하는 방식도, 내 의사를 표시하는 것도, 불안을 다루는 방법도 모두 다 서툴렀다. 그래서 하루 빨리 내가 더 성숙해져서 모든 것이 안정화되었음 좋겠다고도 생각했다. 매년 새해가 되면 한 살씩 나이를 먹는다는 사실에 묘한 안도감이 들기도 했었으니까. 그렇담 40대가 되어서 30대를 돌아보면 어떨까? 나도 가수 타블로의 말처럼 40대가 되어보니 30대가 정말 좋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아직 30대 초반인 나는 감히 가늠조차 되지 않지만 그래도 바람이 있다면, 훗날 40대가 되어 30대를 돌아볼 때 “그때 참 좋았지, 정말 씩씩했었어”라고 웃으며 말할 수 있으면 좋겠다. 그러기 위해선 현재 주어진 30대라는 나이를 잘 살아내야만 한다. 확실히 20대에 비해서 나는 조금 더 성숙해졌다. 무엇보다 건강하게 의사표현을 할 수 있게 된 점이 가장 달라졌다. 예전에는 의사표현이 분명하지 않아 타인에게 이끌려 다니기 일쑤였고, 악의를 가진 사람을 만나면 휘둘리거나 손해 보기 바빴다. 이제는 내 안의 기준이 비교적 명확해져 사람을 대하는 일에 조금 더 익숙해졌고, 좋은 사람에게는 마음을 표현할 줄 알게 된 것도 기쁘다. 지난 여름 함께 시를 쓰던 언니를 만났다. 언니와는 정말 오랜만에 만났지만 나와 10살 넘게 차이나는 언니는 지금 내 나이가 한참 반짝인다며, 어떤 도전이든 응원한다고 말했다. 언니가 건넨 다정한 말이 언니와 헤어지고 나서도 아주 오랫동안 마음에 남았다. 언니 말대로 늦은 것은 없다. 너무 늦은 애정도, 너무 늦은 후회도, 도전도, 열정도 너무 늦은 것은 없다. 동시에 30대에 무조건 이루어야 하는 목표도 행복이라는 강박도 없다. 법륜스님은 인생에는 해야 하는 게 없고 안 해야 되는 것도 따로 없다고 말한다. ‘뭘 해야 한다’ 이전에 내가 현재 어떤 상태 있는지 알아차리는 자각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자각 이후 선택만이 있을 뿐. 그러니 요즘은 조금 천천히 살아보려 한다. 불안해지면 억지로 앞서가려 하기보다 지금의 마음을 먼저 들여다보면서. 완벽한 30대를 만들기보다 나에게 가장 솔직한 30대를 살아내면서, 그렇게 하루하루를 모으면 언젠가 돌아본 내 30대가 분명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지 않을까? 조급함 대신 오늘의 속도를 믿어보려 한다. 크고 화려한 성취보다, 작지만 단단한 순간들을 더 소중히 여기면서. /윤여진(시인)

2026-02-04

그래도 아날로그...

여러모로 나는 참 느린 아이였다. 걸음걸이, 수학 문제를 푸는 시간에 홀로 가득한 백지, 말하는 속도까지 참 느렸다. 학교에 지각할 것 같아도 절대 뛰지 않았다고 하니 부모님은 정말이지 속이 터질 정도로 답답했을 것이다. 놀랍게도 나는 모든 면에 있어서 느렸다. 유행하는 장난감이나 인기 있는 드라마와 영화 등에 딱히 열광하지 않았다. 계속 열광하지 않았냐고 하면 그건 아니다. 친구들 사이에서 그 장난감의 열기가 제법 식었을 때 비교적 싸게 구매해서 놀곤 했다. 드라마도 나중에 재방송으로 보다가 뒤늦게야 푹 빠져드는 일이 많았다. 그러니까 나는, 어떤 신념이 있어서 그랬다기보단, 그냥 느렸던 것이다. 그래서인지 나는 지금도 대부분의 신문물과 낯선 사이다. SNS는 특히 내게는 너무 빠르다. 눈으로 단어 하나를 파악하기도 전에 지나가 버리는 느낌이다. 조금 더 멈춰 있다고 싶은데, 계속 밀물이 밀려드는 것만 같다. 그렇게 세상 참 빠르다란 생각을 하면서 근처 편의점에 간다. 편의점이 집 가까이에 있는 게 좋다. 도시에 맛집들이 많아서 좋다. 맞다. 모순이다. 내가 느린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무작정 아날로그를 그리워하는 건 아니다. 그럼 뭘까. 아날로그가 아니라 아날로그 감성을 사랑하는 걸까. 일부러 그런 건 아닌데 나는 단 한 권의 책도 전자책(e-book)으로 읽어본 적이 없다. 싫어서 그런 건 결코 아니다. 익숙하지 않아서 크게 시도해보지 않은 것도 있다. 그러나 다른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이 있다. 손 안에 들어오는 책의 크기, 무겁거나 가벼운 책 각각의 무게, 새 책이나 헌책에 밴 특유의 냄새, 표지부터 만져지는 질감, 펼쳤을 때 양손에 들어오는 페이지의 감각. 공교롭게도 그런 것들을 빼놓고 나는 책을 잘 읽지 못한다. 지인이 쥐어준 리더기로 시집이나 소설집을 한 권은 읽어보려고 했으나 이상하게 자꾸 집중력이 흐트러졌다. 리더기로 이북을 읽는 게 좋아지면 진짜 편할 것 같은데. 가방을 무겁게 만들지 않고도 어디에서나 원하는 책을 읽을 수 있을 텐데. 그런 생각이 자꾸 들었다. 그래서 몇 번쯤 더 시도해 보았으나 결국 무위로 돌아갔다. 커피잔 옆에 단정하게 책이 놓여 있는 게 좋다. 손끝으로 좋아하는 구절이 나오는 페이지 모서리를 접는 게 좋다. 그러다 잘못 접어서 접은 부분이 살짝 비뚤어지는 것도 좋고, 다시 접다가 접은 흔적이 두어 개 정도 남는 것도 좋다. 종종 느끼지만 나는 텍스트 그 자체를 사랑하기보단 책이 지닌 물성과 그 안의 텍스트를 사랑하고 있는 게 아닐까 싶다. 원하는 때에 원하는 노래를 검색만 하면 바로 들을 수 있는 시대인데, 그래서인지 오히려 한 곡에 몰입하는 힘이 조금 떨어지게 되는 것 같다. 1절만 듣고도 음 내 취향이 아니군, 하고 넘겨버리기 일쑤다. 별로 수고를 들이지 않고 몇 단계의 검색만 거치면 내가 듣고 싶은 음악을 마음껏 들을 수 있기도 하다. 그런데 정말 뭘까. 배고플 때 먹은 에이스 과자 하나가 고급 베이커리의 다쿠아즈보다 더 기억에 남는 것과 비슷한 이유일까. 아직도 나는 어릴 때 침대 옆 탁상에 놓여 있던 커다란 검은 라디오 하나를 기억한다.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근 10년간 그 라디오를 머리맡에 두고 잤다. 물론 심야 라디오를 켜고 자는 일이 많았지만, 내가 유독 아끼고 많이 들은 건 두 개의 카세트테이프였다. 나는 중학생이 된 다음에도 아이돌, 연예인 이런 분야에 관심이 없었다. 라디오를 자주 틀고 잤지만 특별히 음악에 관심이 있는 것 또한 아니었다. 명절에 시골에 내려가다가 너무 심심해서 누나와 함께 휴게소에서 카세트테이프 두 개를 구매했을 뿐이었다. 하나는 보아의 ‘아틀란티스 소녀’가 타이틀로 수록된 앨범, 하나는 신화의 ‘너의 결혼식’이 타이틀로 수록된 앨범이었다. 서울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도 그 두 앨범을 내내 들었다. 가사에 담긴 뜻은 전혀 몰랐다. 누나한테 “왜 아틀란티스야?”, “영화 ‘졸업’에서 생기는 일이 뭐야?” 이런 질문을 던졌는데 누나도 잘은 모른다고 했다. 지금처럼 많은 곡을 자유롭게 접할 수 없었기에 나는 심심하거나 잠들기 전에 두 카세트테이프를 번갈아 틀곤 했다. A면과 B면을 계속 돌려가며 수록곡들의 음과 가사까지 다 외울 정도로 들었다. 그때 나는 남들이 이해할 수 없는 지점에서 화자가 되어 웃거나 울었다. 되감기를 하며 한 곡에 빠져 흥얼거리던 기억.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아날로그적으로만 살아갈 자신은 없지만 아날로그 감성은 계속 곁에 남아 있었으면 좋겠다. 지금도 나는 자주 아틀란티스 소녀와 너의 결혼식을 듣는다. 그 노래를 사랑하는 것도 있지만 그 노래를 들었던 그 시절을 함께 사랑하는 것이다. /구현우(시인)

2026-02-04

진짜 두려운 것

어느 아침이었다. 잠에서 깨어난 순간 내가 제일 먼저 떠올린 건 건조기였다. 전날 저녁, 건조기를 돌려놓고는 잠들어버린 것이다. 며칠 치의 수건이 겹겹이 몸을 포갠 채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수건을 꺼내야 한다는 일념으로 건조기가 있는 베란다로 비척비척 걸어갔다. 밤새 꼭꼭 닫아두었던 베란다 창문을 열고 건조기를 열었다. 건조기 깊숙이 상체를 밀어 넣고 건조된 수건 뭉치를 품에 안던 때였다. 오른발에 무언가 밟혔다. 바삭. 말 그대로 바삭한 소리가 들렸다. 베란다에서 감자칩을 먹은 적이 있었나?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잠에 취해 있었던 것 같다. 불 꺼진 베란다는 어두웠고, 나는 손에 든 수건을 우선 거실 소파 위로 옮겨두었다. 그러곤 베란다 불을 켰다. 그곳엔 내가 세상에서 제일 두려워하는 게 있었다. ‘공포’라는 단어에는 ‘두려울 공(恐)’과 ‘두려워할 포(怖)’라는 한자가 쓰였다. 말 그대로 두려운 것을 두려워하는 것이 공포라는 뜻인데, 두려운 것이 두 배가 될 때 사람들은 공포를 느끼는 게 아닐까 싶다. 두려운 것과 두려운 것. 평소에 나는 겁이 별로 없는 편이다. 공포나 고어 영화도 잘 보고 무서운 놀이기구도 즐겨 탄다. 높은 곳도 겁내지 않는다. 이런 내가 두려워하는 건 두 가지인데, 바로 어둠과 벌레이다. 그리고 그날 나는 내가 두려워하는 두 가지를 동시에 목격했다. 하나, 내 손가락 두 개를 합친 것보다 큰 바퀴벌레. 둘, 그 바퀴벌레를 어둠 속에서 내가 밟았다는 사실. 나는 곧장 비명을 지르며 제자리에서 펄쩍펄쩍 뛰었다. 더 무서운 사실은, 바퀴벌레가 여전히 살아있었다는 것이다. 나는 반쯤 울먹이며 화장실에서 발을 깨끗이 닦고, 살충제로 바퀴벌레를 익사시켰다. 겨우겨우 사체까지 치우고 나니 점심 먹을 시간이 되었다. 나는 완전히 탈진한 채 소파에 누워 세스코 무료 상담을 검색했다. 가장 이른 날짜로 방문 신청을 하곤 며칠간 베란다로는 눈길도 주지 않았다. 시간이 흐르자 그날의 충격과 공포는 점점 사그라들었다. 나는 이 일을 무용담처럼 얘기할 수 있게 되었다. 친구들을 만나면 나는 최근에 겪은 일 중 가장 끔찍한 일인데, 라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날도 친구 한 명에게 바퀴벌레 이야기를 꺼내려던 참이었다. 우리는 추운 날씨를 이겨내기 위해 뜨끈한 샤부샤부를 먹기로 했다. 식사하는 동안엔 만나지 못하는 동안 있었던 근황 이야기를 꺼냈다. 친구는 현재 만나고 있는 사람과 결혼을 계획 중이었다. 친구의 애인은 다정하고 좋은 사람인 것 같았다. 카페로 자리를 옮긴 뒤 우리는 결혼 이야기를 이어갔다. 집은 어디에 구하기로 했어? 음료를 마시며 가볍게 던진 질문에 친구가 잠시 머뭇거렸다. 집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인 건 모두가 아는 사실이니, 괜히 민감한 주제를 던졌나 고민하던 찰나 친구가 입을 열었다. “얼마 전에 같이 집을 보러 다녔는데, 오빠가 나는 바퀴벌레 나오는 집만 아니면 돼, 라고 하더라. 그 말을 듣는데 기분이 되게 이상했어.” 친구가 유리잔에 꽂힌 빨대를 한참 만지작거리다 말했다. “오빠는 평생 아파트에서만 살았거든. 우리 집은 바퀴벌레가 종종 나오곤 했는데 오빠한테 말하면 아마 기겁할걸. 자기는 집에서 바퀴벌레를 본 적이 한 번도 없대.” 친구가 빨대를 가볍게 물었다 놓았다. “이럴 때 조금 무서운 것 같아. 우리가 살아온 환경이 너무 다르다는 게.” 나는 가만히 고개만 끄덕였다. 나 또한 평생을 아파트에서만 살았다. 독립하기 전까지 나는 집에서 바퀴벌레를 비롯한 벌레를 본 적이 없었다. (물론 여름엔 음식물 쓰레기통 근처에서 날파리가 들끓고 몰래 침투한 모기가 가족들을 괴롭혔지만 그건 거의 모든 사람이 겪는 일이므로 제외하고). 그게 너무 당연해서, 내가 사는 집에선 당연히 바퀴벌레가 나오지 않을 거라 믿었던 것이다. 바퀴벌레가 징그러운 해충이라는 사실과는 별개로, 평생 겪은 적 없는 미지를 앞으로 수없이 맞닥뜨려야 한다는 막막함이 나를 더 두렵게 만든 건 아닐까. 내가 진짜 두려워한 것이 무엇이었는지 밝혀진 순간이었다. “나도 그랬는데, 살면 또 살아지더라.” 나는 친구를 위로하듯 말했다. 친구가 빙긋 웃었다. “그렇겠지? 그리고 바퀴벌레쯤이야 내가 잡으면 되니까.” 나는 친구에게 세스코 정기 구독료에 대해 알려주고, 친구는 바퀴벌레를 한 방에 죽일 수 있는 약을 소개해 주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유독 어두웠다. 나는 친구와의 대화를 곱씹으며 걸었다. 살면 또 살아지더라. 친구에게 건넨 말이 부드럽게 몸을 돌려 내게 다가오는 걸 느끼며 캄캄한 어둠을 헤치고 무사히 집으로 돌아갔다. /양수빈(소설가)

2026-01-28

글쓰기를 권함

나의 여덟 번째 책이 세상에 나왔다. 책을 한 권이라도 더 팔기 위해 작가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지만 그래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다. 가까운 사람들부터 천천히 내 신간이 나왔다고 소문을 내야 한다. 주변에 책 나왔다고 말하면 주변 사람들은 내게 대단하다고 칭찬을 해 준다. 처음에는 머쓱했는데 이제는 그냥 싱긋 웃는다. 누군가 자기 일을 하고 그 결과물을 세상에 내어 놓는 모든 일들은 사실 모두 칭찬받을 만 한 일이다. 휴대폰이나 자동차 만드는 일에 기여하는 사람들, 흙 밖에 없는 땅에서 먹거리를 생산해내는 사람들, 맛있는 스파게티나 떡볶이를 만드는 사람들 모두 칭찬받아 마땅하다. 신간 소식을 전하는 내게 질문을 건네는 사람들도 있다. 먼저 자기도 언젠가 책을 내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책을 낼 수 있는지 묻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에게 나는 일단 글을 쓰라고 말한다. 책을 채우는 기본적인 내용물은 결국 글이다. 책을 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은 많지만 그들 중 실제로 글을 쓰는 사람들은 그다지 많지 않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다. 글을 쓰지 않으면 책은 낼 수 없다. 글을 잘 쓰려면 어떻게 해야 하냐고 묻는 사람들도 있다. 내 생각에 글을 잘 쓰는 방법과 운동을 잘 하는 방법은 크게 다르지 않다. 운동은 결국 운동을 많이 하는 사람이 잘 한다. 약간의 재능을 타고 나는 것도 도움이 되지만, 운동이란 것은 그것을 많이 해 보지 않으면 도저히 잘할 수 없는 것이다. 글도 마찬가지이다. 글을 잘 쓰려면 글을 많이 써야 한다. 글쓰기도 운동도 직접 행동으로 옮겨야 그것을 잘 하기 위한 근육을 단련시킬 수 있다. 나는 많은 사람들에게 글쓰기를 권한다. 꼭 어디 발표하거나, 책을 내거나, 시인이나 소설가가 되기 위한 글쓰기를 이야기 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에 불고 있는 러닝 열풍에 힘입어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달리는 수많은 사람들이 모두 황영조나 이봉주를 꿈꾸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그들 중 대부분이 원하는 것은 조금 더 건강하고 풍요로운 삶이다. 나는 생활 속의 글쓰기 역시 삶을 건강하고 풍요롭게 만드는 데 기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글을 쓰기 위해서는 머릿속에 흩어져있는 생각을 모아야 하고 그것을 표현하기 쉽게 잘 정리해야 한다. 이를 통해 내가 하고 있었던 생각이 구체화되고 또렷해지는 경험을 할 수 있다. 내 머릿속에 분명히 있었으나 자각하지 못했던 어떤 생각을 새롭게 발견하는 경우도 자주 있다. 사람의 행동은 결국 생각의 산물이다. 생각이 정돈되면 확신이 생기고 행동에도 체계가 생긴다. 생각이 다양해지면 행동의 반경도 넓어진다. 그런 사람을 우리는 지혜로운 사람이라 부르는지도 모른다. 또한 글쓰기는 휘발되고 마는 우리의 삶을 가치 있게 저장할 수 있도록 돕는다. 인생은 생각보다 짧다. 우리가 살아온 지난날은 점점 더 소중해진다. 그런데 그것들이 허망하게 잊혀지고 마는 것은 너무나도 아까운 일이다. 우리가 경험한 것과 그 안에서 품은 감정들을 짧게나마 글로 남기고 머리와 가슴 한 켠에 차곡차곡 쌓아두는 일은 우리로 하여금 인생을 보다 촘촘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해 준다. 장황하고 거창하게 써 내려간 대단한 글을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다. 단지 몇 문장으로 이루어진 짧은 수필도 좋고, 솔직한 마음을 담아 몇 줄의 시를 써 보는 것도 좋다. 그것도 조금 막막하다면 몇 단어의 메모로부터 출발하는 것도 괜찮다. 생각해보면 아주 글을 쓰지 않고 쓰는 삶이라는 게 이제는 거의 불가능해지지 않았는가. 인터넷 기사에 쓰는 댓글도 글이고 SNS에 휙 던져놓는 몇 마디도 글이다. 가족이나 친구에게 건네는 메시지도 글이고 업무를 위해 주고받는 이메일도 모두 글이다. 글을 쓸 수 있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이다. 이왕 쓰는 것 잘 쓰고 싶은 분들을 위해 비결을 조금 공개하도록 하겠다. 글을 잘 쓴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정확하게 문장을 구사하는 일로부터 출발한다. 어떤 글이건 일단 써 보고 요즘 널리 사용하는 인공지능 프로그램에게 교정·교열을 요청한다. 그러면 맞춤법 오류와 비문 같은 것들을 수정한 새로운 문장을 내어 놓을 것이다. 기존에 쓴 문장과 수정된 문장을 비교하는 일을 반복한다면 문장을 정확하게 구사하는 능력이 향상될 것이다. 그리고 좋은 글은 좋은 글감으로부터 나오는 것도 분명한 사실이다. 좋은 글감을 찾는 방법도 알려드리고 싶지만 애석하게도 지면이 부족하다. 강백수의 신간 《뭘 쓸까》에 상세히 적어두었으니 참고하시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생각한다. /강백수(시인)

2026-01-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