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집 주변의 풍경이 자주 바뀌고 있다. 퇴근길마다 들르던 작은 동네 슈퍼가 말도 없이 사라지더니 어느새 그 자리에는 인형뽑기 가게가 들어섰다. 뿐만 아니라 주말 아침 잠시 들르곤 했던 카페나 간단하게 배를 채울 수 있었던 분식집도 하나둘씩 문을 닫았다. 익숙했던 가게들이 사라지고 빈 공간만 남은 거리를 보고 있자니 묘하게 어색하고 공허한 기분이 들었다.
매일 오가는 집 앞 거리는 하나의 익숙한 풍경이 되어서 오랜 시간이 되고 하나의 시절이 된다. 하루, 이틀, 일년이라는 시간이 지나고 눈에 익을 때쯤에 불현 듯 사라져 버린 풍경의 일부는 사라지고 나서야 시간의 무게를 뒤늦게 알아차리게 한다.
집 주변 풍경이 요즘 자주 바뀌는 이유 때문만은 아니지만, 나는 최근 들어 집 안 내부의 오래된 물건들을 하나씩 교체하기 시작했다. 정말 어떤 계기나 뚜렷한 이유가 있진 않으나 갑자기 아주 오래된 물건들이 눈에 띄기 시작했고 너무 낡은 것들은 하나씩 버려가며 빈자리는 새로운 물건들로 채우고 있다.
오랜 기간 사용하던 침구나 인형 같은 물건들, 언제부터 사용했는지 모를 수저와 수건, 옷가지들 너무 낡고 오래된 가전 가구 등등. 물건을 하나씩 버리다 보니 단순히 물건만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그 물건들과 함께 묶여 있던 시간까지 한꺼번에 바깥으로 흩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물건 속에는 많은 시간들이 깃들어있다. 물건을 구매했을 당시의 들뜬 기분이나 설렘, 사용하면서 느꼈던 만족감, 매일 또는 자주 사용하며 손에 익는 촉감, 늘 그 자리에 있어 제 역할을 다하던 모습, 시간이 지나 더 이상 제 역할을 하지 못하게 되어 버려지게 되는 순간까지, 여러 시간들이 갈무리 되며 어쩐지 마음 한구석이 시원섭섭하게 간지럽다.
사람은 생각보다 많은 시간을 물건과 공간 속에 남겨 두고 살아간다. 특별한 의미가 있는 물건이 아니더라도 오래 사용하다 보면 그 물건에는 자연스럽게 일상의 시간이 스며든다. 매일 사용하는 컵 하나, 늘 같은 자리에 놓여 있는 의자 하나에도 어느새 일상의 시간이 조금씩 쌓인다. 그렇게 평범한 물건들은 특별한 의미가 없더라도 일상의 일부가 되어 간다. 그래서 익숙한 물건을 버리는 순간 단순히 물건이 사라졌다는 느낌보다, 그 물건과 함께 흘러가던 시간의 한 조각이 떨어져 나간 듯한 감각이 남는다.
나는 물건을 잘 버리지 않는 편이기도 하다. 동시에 물건을 자주 사는 편도 아니다. 한 번 물건을 사면 그것이 낡고 헤져 더는 쓸 수 없을 때까지 사용하는 편이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나는 물건을 버리는 일을 조금 두려워했던 것 같다. 이미 내 손에 익숙한 것들, 보기에도 편안한 것들이 사라질 때 겪게 되는 낯선 불편함이 탐탁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떤 변화는 낯설면서도 동시에 개운하다. 익숙했던 것들이 사라지는 순간 잠시 멈춰 서게 되지만, 그 빈자리는 곧 다음 시간을 위한 자리로 바뀐다. 비워진 가게 자리에는 또 다른 새로운 곳이 들어서고, 한두 번 방문해 보며 다시 내 삶에 필요한 공간으로 자리 잡기도 한다. 쓰임이 다한 물건들을 버리고 새로운 물건을 들였을 때 느끼는 편리함과 단정함 역시 또 다른 만족을 가져다준다. 긴 목욕을 끝낸 뒤처럼 몸과 마음에 붙어 있던 오래 묵은 퀘퀘함이 씻겨 내려간 듯한, 가벼움과 개운함만이 남는 것이다.
최근 집 근처 풍경이 많이 바뀌고, 오래된 물건을 하나씩 정리하며 주변 환경을 조금씩 바꾸어 가면서 드는 생각이 있다. 삶은 끊임없이 채워지는 과정이라기보다 때때로 비워지며 다시 정돈되는 과정에 더 가까운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동시에 새로운 것을 맞이하는 가장 좋은 태도는 무엇인가를 더 붙잡는 일이 아니라 오래된 것들을 조금씩 비워 두는 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 시간을 위한 여백. 나이가 들수록 이런 변화에 조금씩 익숙해지고 있다. 단순히 시간을 함께 했다는 이유만으로 수명을 다한 물건들을 억지로 붙잡고 있기보다, 새로움을 받아들이며 삶을 더 편리하고 반짝이게 닦아 가는 생활 습관과 마음가짐에 대해 생각해보는 것이다.
요즘은 새로움이 가져다주는 기분 좋은 설렘과 쾌적함을 조금씩 즐기고 있다. 비워진 자리 위에서 또 다른 일상이 시작되고 그렇게 사라지는 것들과 채워지는 것들이 반복되며, 삶은 조금씩 앞으로 흘러간다.
/윤여진(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