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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연어 이야기

매년 10월에서 11월이면 북태평양을 회유하던 연어 떼가 산란을 위해 강원도 양양 남대천, 삼척 오십천 등으로 돌아온다. 10월 1일부터 10일까지 단 열흘간 내수면에서의 연어 포획이 허용되는데, 이 기간 동안 남대천에서는 연어를 만나려는 플라이낚시인들과 루어낚시인들이 강물에 몸을 담근 채 길게 늘어선 모습을 볼 수 있기도 하다. 인터넷에 올라온 연어 낚시 사진을 보면서 연어를 다룬 두 문학 작품을 떠올렸다. 고형렬의 에세이 ‘은빛 물고기’와 안도현의 ‘연어‘가 그것이다. 두 작품 모두 시인이 쓴 산문으로 연어의 생애를 소재로 삼았다는 공통점이 있다. 연어는 모천회귀(母川回歸) 한다. 하천에서 부화한 물고기가 바다로 가서 성어로 자란 다음 산란을 하러 자기가 태어난 강으로 회귀하는 현상을 말한다. 모천(母川)은 말 그대로 ‘어머니 강’이라는 뜻이다. 연어는 먼 바다로 떠났다가 자신이 태어난 강으로 돌아와서 산란 후 죽는다. 남대천, 오십천뿐만 아니라 최근엔 울산 태화강, 낙동강 하구에서도 연어가 발견됐는데, 낙동강에는 30여년 만에 연어가 나타난 것이라고 한다. ‘은빛 물고기’는 시인인 저자가 “남대천에 연어가 돌아왔다”는 신문 기사 한 토막을 읽고는 10년 넘게 연어의 일생을 추적하며 쓴 장편 산문이다. 장편 산문이라는 겉 형식은 물론 한 편의 문학작품 안에 픽션과 논픽션이 끊임없이 교차하면서 시적 은유와 잠언, 소설적 서사, 자전적 에세이, 자연과학적 사실이 공존하는 속 구조는 무척 보기 드문 것이다. 강원도 양양에서부터 캄차카반도, 아무르 강, 오호츠크 해, 베링 해로 이어지는 대자연에 대한 시적 묘사, 탄생과 성장, 죽음 등 인간의 실존적 고뇌에 대한 깊은 성찰의 언어는 우리말이 지닌 아름다움의 놀라운 진경을 보여준다. ‘연어‘ 역시 시인인 저자가 쓴 작품으로, 한 낚시전문잡지에 연어에 대한 글을 기고한 것이 계기가 되어 집필한 소설이다. ‘어른을 위한 동화’라는 부제가 붙었는데, ‘어른’과 ‘동화’가 서로 충돌한다는 점에서 이 작품은 동화적 내용을 지닌 소설로 보는 편이 마땅하다. 연어를 의인화하여 사랑, 연민, 외로움, 슬픔, 자기존재의 주체성 모색 등 인간 보편의 감정과 존재론적 성찰을 담아낸 ’연어‘는 1996년 초판 발행 후 지금껏 무려 100만부가 팔린 스테디셀러다. 시적인 문체와 연어의 생태에 기초한 간결하면서도 속도감 있는 스토리 전개로 대중 독자의 사랑을 받았다. 지난 2019년, 러시아 아무르강으로 ‘타이멘’이라는 물고기를 잡으러 2주 동안 낚시를 다녀왔다. 하바롭스크에서 차로 비포장도로를 10시간, 보트로 물길을 2시간 달려 도착한 아무르강 정글에서 러시아 낚시꾼들과 생활하면서 ‘지구상 모든 연어의 아버지’라는, 현지인들에게 신령한 물고기로 여겨지는 타이멘 낚시에 도전했고, 성공했다. 내 생애 첫 번째 타이멘은 1m 10cm였는데, 그 녀석을 품에 안고서는 감격스러워 눈물을 흘렸다. 나를 만나기 위해 이 친구가 강물처럼 노을처럼 수천만 년을 헤엄쳐 왔다는 생각이 들어 뭉클했다. 이병철 문학평론가이자 시인. 낚시와 야구 등 활동적인 스포츠도 좋아하며,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그때 2주간 전화, 인터넷 등 문명과 완전히 차단된 정글에서 지낸 시간이 마치 한 평생 같았다. 그런데 돌아와 보니 문명 세계에서 2주는 그저 찰나에 불과했다. 내가 살던 세상은 여전히 분주하고, 거짓말처럼 아무 일도 없고, 가족들은 전화를 심드렁하게 받고, 공백을 염려한 일터는 나 없이도 잘 돌아가고…. 내게는 까마득하고 느리게만 흐르던 시간이 문명 세계에서는 쏜살 같이 흐른 것이다. 시간은 절대적 개념이 아니라 상대적 개념이고, 모험의 세계와 일상의 세계에는 서로 다른 중력이 작용한다는 걸 알았다. ‘그래, 나는 낚시를 다녀온 게 아니라 아무르강이라는 영원의 풍경, 저 너머의 한 세상을 살다 왔구나’ 낚시를 다녀와서는 잠꼬대 같은 혼잣말을 했던 기억이 난다. 연어의 생태를 다룬 문학 작품이 또 나온다면 저자는 아마 내가 될 것이다. 치어일 때 자신이 태어난 강을 떠나 드넓은 대양에서 성어로 성장하여 일생의 대부분을 보낸 뒤 산란을 위해 모천으로 돌아오는 연어의 생태에 관해서는 아직도 다 밝혀지지 않은 미지의 영역이 많다. 미지란 늘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므로, 연어의 탄생부터 이동, 그리고 모천회귀와 산란, 죽음으로 이어지는 신비한 생태적 습성은 상상력을 자극하는 훌륭한 문학적 소재이기 때문이다.

2024-12-16

어둠을 밝히는 사람들

나약한 인간으로 놓여 무엇을 읽고 쓰고... /언스플래쉬 고통은 묵히면 묵힐수록 그 크기가 배가 된다. 하루에도 몇 번씩 먹기 싫은 알약을 억지로 삼키는 것처럼 몸과 마음 모두가 불편한 그 감각이 너무나도 생생했다. 그리고 그 고통이 시간이 지나면서 결국 나를 지배했고 그것이 결국 죄책감이란 이름을 가진 불편함이란 걸 너무나 잘 알았다. 문제를 인식하고 정면으로 돌파하는 일은 참 어렵다. 마음이 불편하고 신경을 쓰는 것이 괴롭고 어느 한쪽을 선택하여 남는 일들이 혹여나 후회가 되지 않을까 노심초사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밤마다 눈을 감고 생각을 하지 않기 위해 애썼으나 쉽지 않았다. 무언가 써야만 할 것 같은 데 아무것도 쓰여지지 않을 때 나의 연약함이 드러났고 그 연약함 속에서 무력하게 몸을 묻으며 나날이 무언가 잘못되고 있단 감각을 도무지 지울 수 없었다. 씻겨지지 않는 오랜 얼룩, 피부 깊숙이 자리 잡은 점처럼 고통에도 무뎌지지만 어느날 갑자기 아무런 이유도 없이 결심은 선다. 그 근처를 배회하고 있을 때쯤 뒷목이 뻐근해지기 시작하더니 일종의 신호처럼 확고한 결심이 들기 시작했다. 그 길로 버스를 탔고 버스는 중간에 서울대교에 진입하진 못했지만 비교적 사람이 적은 한적한 곳에 나를 내려주었다. 이 길로 쭉 가면 서울대교를 건널 수 있을 것이란 버스 기사의 말을 되뇌이며 이미 대교를 빠져나오는 수많은 인파를 거슬러 나는 여의도로 향했다. 그곳은 축제 분위기였다. 깃발이 나부끼고 형형색색의 조명은 어둠을 밝히며 빠르게 흔들렸다. 누군가는 아이돌 응원봉을 흔들며 노래를 불렀고, 흘러나오는 최신 유행곡에 맞추어 춤을 추는 이들도 있었다. 깃발을 흔드는 사람, 그 뒤를 따라가는 사람, 셀카를 찍는 가족, 질서 유지하는 사람들, 쓰레기를 아무렇지 않게 땅에 버리는 사람, 그리고 그 뒤를 따라가 쓰레기를 주워 한 곳에 차곡차곡 모으는 사람들 등. 인간이라는 모습으로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는 무리 속에서 나는 얼어붙은 몸과 가빠지는 호흡을 붙잡으려 애썼고, 그때 불현 듯 한강 작가의 노벨상 수상 소감을 떠올렸다. 우리가 태어난 이유, 고통과 사랑이 존재하는 이유, 수천 년 동안 문학이 던져온 질문이자 현재까지도 계속되는 그 질문과 수많은 의미들. 나는 어떤 언어를 쓰고 상상하며 세계와 연결되고 있는지. 나아가 나는 이 세계 속에서 어떤 나약한 인간으로 놓여 무엇을 읽고 쓰고 있는지. 가파르게 오르던 호흡을 잠잠히 누르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녀가 8살 때 처마 밑에 비를 피하며 다른 사람을 보았고 또 다른 나를 보며 연결됨을 느꼈다면, 근래의 나는 그 환함 속에서 나와 같은 얼굴을 한 사람들을 발견할 수 있었고, 같은 노래를 들으며 연결되고 있음을 느꼈다. 이어 필연적으로 문학을 읽고 쓰는 작업은 생명을 파괴하는 모든 행위에 반대되는 위치에 서 있다는 그녀의 음성을 거듭 떠올리며 무엇을 위해 읽고 어떤 것에 시선을 맞추어야 하는지 미지의 길을 밝히는 작은 호롱불이 켜지는 장면을 포착했다. 다시 집으로 가기 위해 돌아선 길, 수많은 인파 탓에 버스 정류장까지 걸어가는 길이 꽉 막혀 빠르게 걸을 수 없었다, 아주 천천히 앞사람의 보폭에 맞추어 걷고,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느릿하게 집으로 향해 걸어왔다. 윤여진 2018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 부문에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현재보다 미래가 기대되는 젊은 작가. 집으로 돌아와 깨끗한 물로 씻고 훈훈한 공기로 몸을 덥히며, 내 등 뒤를 밝히던 수많은 조명들을 떠올렸다. 뒤에서 길을 밝히던 색색의 응원봉들. 누군가가 뒤따라오며 그 응원봉을 흔들었는진 알 순 없지만, 불명확했던 모든 불안과 일종의 죄책감 같은 것들이 선명해지는 동시에 조금씩 소멸하는 느낌이 들었다. 다행이었다. 생각을 마치자 근래 극도로 높아져갔던 초조함을 잠재울 수 있었다. 18살, 점심시간마다 도서관 문학 코너 책장에 숨던 그때를 기억한다. 활자 속에 있으면 현재의 고통이 조금이나마 물러가는 것 같아 계속해서 손이 가는 대로 책 속에 고개를 묻던 그때. 아무도 나를 알아채지 못하고 스쳐지나가던 그 때에, 책장 맨 아래에 꽂혀 있던 소년이 온다를 기억한다. 그때의 나를 거울로 자세히 살피지 않아 어떤 모습인진 영영 알 순 없으나 환희와 열망과 결이 다른 슬픔에 사로잡혔던 감각은 생생히 기억한다. 한 사람이 가진 문을 두드려 그 속을 기어코 들어가 사건과 사람을 이해하는 일은 내가 문학을 택한 이유인 동시에 계속해서 살아가게 하는 원동력이었음을.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다시금 떠올려보는 감각이었다.

2024-12-16

깨진 유리창 앞에서

산산조각 난 유리창 앞에 서 있는 기분을 아는가. 나는 아주 잘 알고 있다. 대학교 일 학년 때의 일이다. 한 남학생과 싸움이 붙었다. 시작은 사소했으나 과격한 말다툼이 이어졌다. 순간 그의 주먹이 내 얼굴 쪽으로 날아왔다. 나는 꼼짝없이 저 커다란 주먹에 맞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머릿속에는 별생각이 다 들었다. 아, 남자애의 주먹이란 정말 단단하고 크구나. 저기에 볼이 닿으면 만화에서 보았던 것처럼 우스꽝스럽게 뭉개질지도 몰라. 오래된 시멘트벽처럼 후드둑 부스러질 수도 있고. 맞은 후에는 곧장 경찰에게 신고해야겠지. 그러면 저 아이는 감옥에 가게 되는 걸까. 그나저나 나 괜찮은 거야? 숨 쉬지 못할 정도로 아플 거야. 차라리 정신을 잃었으면 좋겠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남학생의 주먹은 내 얼굴을 피해 창문으로 가 닿았다. 유리창은 그야말로 산산조각이 났다. 남학생의 주먹에서 피가 뚝뚝 흘렀다. 수업을 듣던 선배들이 뛰쳐나왔다. 너희 미쳤느냐고, 제 정신이냐고 불같이 화를 냈다. 남학생은 병원으로 이송되었다. 널브러진 유리 파편, 바닥에 묻은 핏자국과 그것을 수습하려는 사람들. 주변이 바쁘게 돌아가는 가운데 나는 현실감각을 잃은 사람처럼 깨진 유리창 앞에 서 있었다. 그 일은 한동안 나와 친구들의 안줏거리였다. 우리는 그날의 사건이 정말 별것 아니었던 것처럼 웃어넘겼다. 내가 얼마나 무력했는지에 관한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하고 싶지 않았다는 말이 더 정확할 것이다. 그날을 정밀하게 들여다보는 행위는 너무나 괴로운 일이었으니까. 학과 복도를 오갈 때마다 깨진 상태로 봉합되지 못한 유리창이 보였다. 새로운 유리창으로 고쳐지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고 나는 시도 때도 없이 그의 주먹을 상기해야만 했다. 그때 나는 폭력이란 아주 복잡한 형태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손을 대지 않고도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것도 알았다. 결론적으로 그 아이는 팔이 부러졌고 나는 상처 하나 나지 않았다. 다친 사람은 그 아이 하나였다. 누군가는 우스갯소리로 말했다. 너는 입으로 남자애의 팔을 부러뜨렸네. 나는 정말 아무런 상처도 입지 않았던가? 그날을 떠올리면 가슴이 조일 듯하고 숨이 막혀 온다. 두꺼운 손이 내 눈 앞을 스쳐 지나가던 그날의 공포. 폭력은 필연적으로 흔적을 남긴다. 눈에 보이지 않더라도 매우 선명하게 일상을 맴돈다. 어느 식사 자리에서 가족이 모여 유년에 관한 이야기를 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오빠와 자라면서 크고 작은 싸움이 잦았는데, 부모님은 그때의 일을 대수롭지 않게 꺼냈다. 그때 말이지, 얘가 얼마나 유난이었느냐면, 오빠가 아주 살짝 건드리기만 해도 세상이 떠나갈 듯 울었던 거야. 그러면 얘 오빠는 얼마나 억울해. 조금 건드렸다는 이유만으로 맨날 혼나는 거지. 모두가 동시에 웃는 식탁 위로 나는 들고 있던 유리컵을 깨뜨리는 상상을 했다. 유리컵이 깨지고 날카로운 소리를 지르며 일어나는 가족들. 유리컵 하나 깨뜨렸을 뿐인데 왜 세상이 떠나갈 듯 소리를 질러요? 그 앞에서 와하하 웃는 내 모습을 그렸다. 그러나 나는 그들을 다치게 하고 싶지 않았다. 당신들의 말이 나를 아프게 하고 있다는 말을 꺼내는 순간, 또 다른 생채기를 내는 일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폭력은 폭력을 낳기 마련이다. 뾰족한 마음을 억지로 삼키며 식사를 재개했다. 식도가 따끔했다. 문은강 ‘춤추는 고복희와 원더랜드’로 주목받은 소설가. 2017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작가로 등단했다. 지난 3일 대통령이 비상계엄령을 선포했다. 이후 “국정 최고 책임자로서의 절박함에서 비롯된 것”이라 했다. 내 귓가에서 무언가가 쨍그랑 깨지는 소리가 났고 그간 겪어온 폭력의 기억이 몰려왔다. 네가 다친 곳이 어디 있다고 그래… 살짝 건드렸다고 울었어… 그와 비슷한 말이 국민을 위해 일한다는 이들의 입을 통해 들려온다. 그 말은 오묘한 형식으로 재생산된다. 한밤의 해프닝으로 일축한다. 심정은 이해하지만,이라는 말이 따라붙는다. 그래요. 그것은 분명히 잘못된 행동이 맞습니다. 그러나 이번 사건은 과거와는 다릅니다… 그래서 누가 다쳤습니까? 온몸이 따끔하다. 이 고통은, 이 상실감은 어디서 기인한 것일까. 내가 겪어온 폭력의 경험, 선배들에게 무수히 들어왔던 과거의 역사, 그간 읽고 보았던 처절한 기록이 내 안에 고스란히 새겨져 있다. 주먹은 날아왔고 등 뒤의 유리창은 깨졌다. 우리는 깨진 유리창 앞에 서서 외친다. 어서 빨리 이것을 복구하라고. 틈 사이로 닥쳐오는 찬바람이 얼마나 매서운 것인지, 상흔을 가진 이들에게 그것이 얼마나 쓰라리게 다가오는지 느끼라고. 이 일에 손실을 따지며 계산기를 두드리는 이들을 본다. 이제 나는 거대한 벽에 가로막힌 기분 또한 알 것 같다. 겨울이 끝나기엔 멀었다는 실감이 난다.

2024-12-09

가야 할 때를 알고 가는 것

나는 서울 마포구의 홍대 앞을 중심으로 음악활동을 시작한 인디뮤지션이다. 처음 기타를 등에 짊어지고 홍대 앞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던 때가 스무 살이었고 이제 곧 서른아홉 살이 되니 거의 스무 해 가까이 그 동네의 골목골목을 누빈 셈이다. 저 모퉁이를 돌면 무슨 가게가 나오고 거기는 뭐가 맛있고 하는 정보들을 꿰고 있었고, 어딜 가든 아는 얼굴들을 만나 반갑게 인사를 하곤 했다. 그 거리가 다 내 영토 같았고 나는 그곳을 지배하는 왕이라도 된 기분으로 하루하루를 보냈다. 세월이 많이 흘렀다. 나는 별로 변하지 않은 것 같은데 거리가 참 많이 변했다. 사랑했던 공연장들, 단골집들이 하나하나 문을 닫고 그 자리에 낯선 간판들이 내걸렸다. 여전히 북적북적한 메인 거리에는 언제부턴가 가기가 부담스럽다는 기분이 들기 시작했다. 좀 더 바깥쪽으로, 좀 더 후미진 곳으로 밀려나 살아남은 몇몇 익숙한 공간들만이 나의 마지막 남은 피난처가 되었다. 내가 거느리던 그 영토에서는 그때의 나를 닮은 젊은 친구들이 취하고, 싸우고, 소리치고, 사랑하고 있다. 그것이 문득 파도처럼 내 마음을 덮친 밤 나는 노래 한 곡을 썼다. 지난주에 발매된 새 싱글 ‘퇴위’는 그렇게 만들어진 곡이다. 이제는 그 흥성거리는 거리를, 그리고 그곳을 누비던 한 시절을 떠날 때가 되었다는 걸 인정한다는 고백을 담았다. “난 이제 물려준다. 정들은 내 영토를. 새로운 인류에게로. 난 이제 떠나간다. 세월의 뒤안길로. 아무런 흔적도 없이.” 내가 사랑했던 공간을 다음 세대에게 물려주고 이제는 새로운 공간과 시절을 향해 새로운 여정을 떠나겠다고 노래해보았다. 한 시절이 저무는 것에 대해 아쉬움이야 왜 없겠는가. 그러나 이제는 인생의 새로운 계절을 맞이해야 할 시기임이 분명하다. 그 공간과 그곳을 채우는 모든 사람들이 더 이상 나를 원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이제는 받아들이기로 했다. 세상에 존재하는 문장들 중에 아름다운 것을 꼽으라면 참 곤란한 일이 되겠지만 그래도 나는 이형기 시인의 ‘낙화’라는 시의 첫 문장만큼은 반드시 그 안에 포함시킬 것이다. “가야할 때가 언제인가를/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적절한 시기에 지키던 무언가를 내려놓고 떠나간다는 것은 분명 아름다운 일이지만 너무나도 어려운 일이다. 나 역시 언제나 그 시기를 놓치곤 했다. 대학을 졸업하고도 학교 앞 거리를 망령처럼 떠돌았고, 오히려 청소년기를 보냈던 오래된 동네는 나이를 먹을수록 그립기만 하다. 그러나 이제는 알고 있다. 가야할 때를 알고 아름답게 떠나지는 못하더라도, 적어도 구차하게 추한 모습으로 내가 머물고 있는 공간과 시절에 들러붙어있지는 말아한다는 것을. 그렇다면 가야할 때는 언제 오는가. 여러 가지 경우가 있을 수 있다. 단지 나이를 먹었다는 이유만으로 떠나야 하는 공간도 있다. 학교가 그렇고 정년을 맞았을 경우 회사가 그럴 수 있다. 이렇게 남들이 정해준 시기에 떠나는 일은 어려운 것이 아니지만, 떠나야 할 시기를 스스로 정해야 하는 경우들이 늘 어려운 것이다. 강백수 세상을 깊이 있게 바라보는 싱어송라이터이자 시인. 원고지와 오선지를 넘나들며 우리 시대를 탐구 중이다. 때로는 더 소중한 가치가 내가 머무는 곳 바깥에 생겼을 때 떠나야 할 시기가 찾아오곤 한다. 이십대 청춘의 흔적이 남아있는 그 번화가를 떠난다는 선언이 그곳에 다시는 발길을 향하지 않겠다는 다짐은 아니지만 적어도 그곳이 이제 내 삶의 중심을 둘 공간이 아니라는 것을 받아들이는 행위임은 분명하다. 나는 이제 그곳 바깥에 가정이 있고 책임져야 할 자식이 있는 사람이기에 이제는 미련 없이 떠나겠다는 노래를 만들게 된 것이다. 살다보면 더 이상 내가 자리를 감당할 수 없을 시간이 간혹 생긴다. 그때는 물러나야 할 순간이다. 내가 변했거나 내가 감당해야할 것이 커졌거나 예상치 못한 사정으로 인한 것이지만 어쩔 수가 없다. 운명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물러선다면 그 시기 또한 중요하다. 우리는 그것을 눈치라고 부른다. 눈치가 보이기 전에 눈치를 채는 것이 모두를 위하는 길일 수 있다. 어렵게 거머쥔 것이어서 내려놓는다는 것이 슬프기도 하겠지만 인정해버리면 속 시원해질 수도 있다. 누구에게나 해당되는 떠나야 하는 때가 오면 스스로 떠나는 것이 옳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 말단 직원부터 기업대표나 국가 최고의 기관장을 비롯한 육해공군 장성이나, 심지어 국가 의전서열 1위 같은 그 어떠한 자리라고 할지라도…. 신곡 ‘퇴위’가 참 공교로운 때에 나왔다. 그런데 가만 보면 세상에 공교로운 일들에도 어떠한 의미가 담겨있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나는 기억하고 있다.

2024-12-09

인생이 게임과 같다면

삶이 게임과 같다면 어떨까? 최근 one hour one life라는 PC 게임을 즐겁게 플레이했다. 게임 내용은 신생아부터 시작해서 노인이 될 때까지 병에 걸리거나 굶어 죽지 않고 60살까지 무사히 살아남아야 한다. 게임 세계관 중 독특한 점은 현실 세계에서의 1분이 게임 시간 상 1년으로 계산된다는 것이고, 실제 게임을 플레이하는 한 시간 동안 게임 속 한 사람의 인생을 무사히 살아내는 것이 최종 목표이다. 게임을 처음 접속하면 나는 갓 태어나게 되고, 나의 엄마를 마주하게 된다. 엄마는 나의 이름을 지어주고 지어준 이름대로 한 가문의 계보에 등록된다. 3세까지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신생아 상태이기 때문에 엄마의 돌봄이 전적으로 필요하다. 엄마 품에 안겨 옷도 입고 따뜻한 불 옆에서 체온을 올리다보면 어느새 시간이 흐르고 현실 세계에서의 3분, 게임에서 3살이 되면 나는 스스로 걸을 수 있게 된다. 3살이 되면 영문 채팅도 3글자 이상으로 칠 수 있게 되어 엄마와의 상호작용을 통해 가정 내부의 일을 배울 수 있게 된다. 이를테면 흙을 나누는 법, 땅을 고르게 펴는 법, 베리 씨앗을 심는 등을 배우게 되고 한 가족의 일원으로,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자리 잡아 일을 할 수 있게 된다. 이 게임의 재미있는 점은 바로 계보를 잇는다는 것인데 엄마 외에도 이모, 할머니, 사촌 등 다른 플레이 유저들이 집 내부에 존재해서 여러 어른의 도움을 받아 성장할 수 있다. 생각보다 게임은 꽤나 디테일해서 제때 끼니를 챙겨 먹어야 하고, 밥을 먹기 위해선 여러 종류의 농작물을 심고, 동물을 기르고, 요리를 하며 집 안 내부를 청소하고 정리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연대가 중요하기에 유저끼리 부족한 영어 실력으로 소통을 하며 각자의 구역에서 성실히 임무를 다해야만 한다. 그렇게 부지런히 시간을 보내다 보면 어느새 나는 성인 여성이 되어 있고, 문득 밭을 갈다 아이가 태어났다는 메시지 창이 뜨며 품에 신생아가 안긴다. 이제 막 게임에 접속한 사람이 나의 자식이 된 것이다. 그 시점부터 또 다른 미션이 주어진다. 새로운 아이에게 이름을 지어주고 새로운 옷을 지어 입히고, 불가에 다가가 아이의 체온을 높여주고 굶어 죽지 않도록 신경 써서 음식을 먹여 주어야 한다. 그렇게 3분, 게임상 아이가 3살이 되면 내가 처음 엄마에게 배웠던 것처럼 아이에게 거름을 만드는 법, 우물에서 물을 길어 올리는 법, 밭에 당근을 심어 자라게 하는 법, 꽃을 기르는 법 등을 알려준다. 잠깐 아이에게 생존법과 생의 노하우를 가르쳐 줄 뿐인데 나의 머리는 빠지고 등은 구부러지고 얼굴 주름이 눈에 띄게 깊어져 간다. 벌써 게임을 플레이한 지 한 시간이 다 되었다는 뜻이다. 스무 명이 넘어가는 가족 구성원들에게 나의 죽음을 알리는 동안 결국 게임오버 창이 뜨고, 한 사람의 인생을 살아 냈다는 엔딩을 마침내 보게 된다. 게임은 참 쉽고 단순하다. 그저 게임 나이로 60살이 될 때까지 시간을 보내다보면 어쨌든 엔딩을 보게 된다. 누군가 만들어 놓은 요리를 먹으며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무사히 게임의 엔딩을 볼 수 있지만 그것은 목적이나 방향성이 없어 꽤나 심심한 일이기도 하다. 그러니 이 게임은 접속 유저들과 가족을 이루고 구조를 만들며 그 안에서 생존의 의미와 성장의 기쁨을 찾는 편이 훨씬 재미있다. 윤여진 2018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 부문에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현재보다 미래가 기대되는 젊은 작가. 검은 엔딩 화면 아래에 있는 다시 태어나기 버튼을 누르면 다시 게임에 처음 접속했을 때처럼 누군가의 신생아로 태어나게 된다. 이렇게 계속해서 한 사람의 인생을 살아가며 한 가문의 계보를 잇는 게임으로, 플레이마다 달라지는 가문과 인종, 부모 등에 따라 살아가는 삶의 결이 조금씩은 달라지게 된다. 하지만 변하지 않는 것은 시간이 흐를수록 생활을 유지하는 방법을 배운다는 것이고, 배운 것을 또 후손들에게 가르치며 게임 플레이에 더욱 능숙해진다는 것이다. 동시에 내 캐릭터의 삶은 단순해진다. 처음이라 어색하고 허둥댔던 것들이 이제는 익숙하게 전보다 더 잘해낼 수 있게 되고, 가진 생의 노하우로 더 나은 선택지의 길을 낼 수 있게 된다. 그렇담 삶도 게임과 같지 않을까. 나는 요즘 가보지 않은 길이 두렵다. 아직 오지 않은 먼 미래와 나이를 생각하다 보면 자꾸만 주저하게 된다. 하지만 막연히 망설이기보단 현재 생의 노하우를 업그레이드 하고 있단 생각으로 내게 주어진 제한된 시간을 충실하게, 동시에 즐겁게 여기다 보면 어느새 능숙한 삶을 살아가고 있지 않을까?

2024-12-02

로제와 윤수일의 예상 표절

프랑스의 문학비평가 피에르 바야르는 ‘예상 표절’이라는 개념을 주장한다. 일반적으로 표절은 후대의 작품이 선대의 작품을 모방하는 것인데 비해 예상 표절은 앞선 시대의 작품이 아직 오지도 않은 미래의 작품을 모방하는 것이다. 이게 무슨 황당한 소리인가. 예지적인 직관을 가진 작가가 시간의 질서를 초월해 미래를 엿보기라도 한다는 걸까? 꿈에서 훗날의 일을 미리 보는 데자뷰 현상을 말하는 건 아닐까? 헛소리도 자꾸 듣다보면 묘하게 설득되듯 과거가 미래를 훔친다는 이 황당한 주장에도 그럴듯한 근거는 있다. 피에르 바야르가 제시하는 예상 표절의 첫 번째 원리는 ‘불일치’다. 문학과 문학의 영향관계에서 예상 표절을 의심해볼 수 있는 상황은 두 작품이 공유하고 있는 특징이 앞선 작품에서는 불완전하게 나타나는 반면 후대의 작품에는 풍부한 형태로 나타나는 경우다. 앞선 작품에서는 그것이 작품의 나머지 전체와 심히 어울리지 않거나 그 작가의 다른 작품들, 나아가 당시의 시대상에서는 좀처럼 찾아볼 수 없는 희소한 장면인데 비해 후대의 작품에서는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적 특징이자 작가를 대표하는 독자적 개성으로 완성된다면, 과거의 작품이 미래의 작품을 예상 표절했다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예로 든 것이 모파상과 프루스트다. 어떤 것이 더 중요한 텍스트이고 부차적인 텍스트인지를 먼저 살펴야 하는데, 모파상의 잘 알려지지 않은 소설인 ‘죽음처럼 강한’에는 여인의 옷자락에 희미하게 묻은 향수 냄새로부터 과거의 기억들이 한꺼번에 되살아나는 기억 작용이 파편적이고 미숙하게 묘사되어 있다. 이것은 모파상의 다른 작품들에서는 볼 수 없는 특징인데 비해 30년 뒤 등장해 20세기 최고의 소설이 되는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는 아주 능숙하고 풍부하게 나타나면서 이른바 ‘마들렌 효과’ 혹은 ‘프루스트 현상’으로 불리게 된다. 두 번째 원리는 ‘소급성’이다. 독자들은 프루스트의 대표작에서 모파상을 감각할 수 없지만 모파상의 잘 알려지지 않은 작품에서 프루스트의 울림은 들을 수 있다. 프루스트를 읽으면서 “이건 모파상 같군!”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어도 모파상을 읽으며 “이건 프루스트 같은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많다. 여기에는 한 가지 전제가 있다. 프루스트가 이미 도달해야 한다는 것이다. 훗날 프루스트가 등장한 이후 프루스트를 읽은 독자들의 독서 경험에 의해 모파상은 비로소 프루스트의 예상 표절자가 될 수 있다. 우리가 프루스트를 읽고 난 뒤 모파상의 텍스트는 프루스트적으로 변화한다. 뜬금없이 예상 표절이라는 개념이 생각난 건 요즘 전 세계를 흥겨운 난리판으로 만든 로제와 브루노 마스의 ‘아파트(APT.)’ 때문이다. 사람들은 로제의 아파트를 신축으로, 윤수일의 아파트를 구축으로 부르는데 피에르 바야르의 논리를 단순 적용하자면 윤수일이 로제를 예상 표절했다고 할 수 있다. 이병철 문학평론가이자 시인. 낚시와 야구 등 활동적인 스포츠도 좋아하며,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로제의 아파트를 듣고 난 뒤 변화한 윤수일의 ‘아파트’를 생각해보라. “별빛이 흐르는 다리를 건너”라는 첫 소절 다음에 “으쌰라 으쌰 으쌰라 으쌰”라는 추임새를 넣는 게 윤수일의 아파트를 즐기는 대중적 향유방식인데, 로제의 아파트를 듣고 나서부터는 “별빛이 흐르는 다리를 건너” 다음에 “아파트 아파트 아파트 아파트”가 입에서 자동으로 발사된다. 어떻게 해야 할까. 수험생도 아닌데 수능금지곡처럼 귀에 맴돌아 큰일 났다. 프랑스 문학비평가의 기묘한 이론까지 떠오르게 할 만큼 노래의 인기가 대단하다. 물론 로제와 윤수일의 사례는 예상 표절이 아니다. 예상 표절의 중요한 두 원리인 불일치와 소급성 중에서 소급성만 해당되기 때문이다. 윤수일이 로제를 예상 표절했다는 가설이 근거를 얻으려면 윤수일의 ‘아파트’가 그의 다른 음악들과 불일치해야 한다. 하지만 ‘아파트’는 윤수일의 음악적 정체성인 록 사운드와 도시적 감수성을 풍부하게 반영하고 있으니 불일치라고 할 수 없다. 그리고 어느 것이 중요한 노래이고 어느 것이 부차적인 노래인지를 따져 봐도 마찬가지다. 지금은 로제의 시대지만 로제의 등장 전까지 ‘아파트’는 오직 윤수일이었다. 어느 아파트가 더 중요한 아파트인지 가늠할 수가 없다. 나에게는 하늘이 두 쪽 나도 아파트는 무조건 윤수일이다. 노래방에서 로제는 43681번이고 윤수일은 340번이다.

2024-12-02

취향 실종의 시대

‘홍대병’이라는 말이 있다. 서울의 홍대 앞을 중심으로 한 비주류 문화를 향유하는 이들을 비꼬는 말이다. 항상 주류보다는 비주류를 선호하고 자신이 선호하던 비주류 문화가 주류문화로 떠오르면 가차없이 버리고 떠나곤 하는 이들, 주류 문화를 환멸하고 비주류를 선호하는 자기 자신에 대한 나르시시즘에 빠져 사는 사람들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이 담겨 있다. 나도 오랫동안 이 홍대병에 빠져 살았다. 남들이 모르는 음악을 듣고, 남들이 모르는 영화를 보고, 남들이 입지 않는 옷을 입으며 자부심을 느끼곤 했다. 어쩌면 시인이 되고 인디뮤지션이 된 것도 남들이 흔히 택하지 않는 길을 택하려던 결과인지도 모르겠다. 이십 대 내내 내가 앓고 있던 수준의 과도한 홍대병은 바람직하다고 보기 어렵다. 자신이 비주류 문화를 향유하는 것은 취향의 스펙트럼을 넓히는 바탕이 되곤 하지만 주류문화를 깔보는 것은 사회 전체가 좋은 것이라고 합의한 많은 것들을 즐길 수 있는 기회를 차단하는 태도가 되기도 한다. 대중은 바보가 아니다. 오히려 대다수의 개인보다 대중이 옳은 선택을 하는 경우가 많이 있다. 세상에는 고평가된 것들이 수도 없이 존재하지만 그것들 중 대부분은 그럴 만 한 이유가 있어서 그렇게 된 것들이다. 이러한 사실들을 배워가는 것도 어른이 되는 과정 중 하나이다. 나도 이제는 흔히 ‘정답’이라고 말하는 주류적 선택을 하게 되는 일들이 많이 있다. 이를테면 내가 차는 시계가 딱 그렇다. 내가 매일 차는 시계는 당시 시계 구입을 위해 마련된 예산 안에서 가장 대중적이고 취향을 타지 않는 모델이었다. 시계에 대해 별다른 지식이 없었던 나는 주변에서 시계에 대해 가장 많은 지식을 가진 친구에게 가장 안전하고 무난한 선택지를 달라고 부탁했고, 친구는 주저 없이 지금 내가 차고 있는 시계의 브랜드와 모델명을 추천해 주었다. 휴대폰이나 컴퓨터 같은 전자제품들을 살 때도 나는 가장 많은 사람들이 선호하는 제품을 선택하는 편이고, 다음에 구매하려고 눈여겨보고 있는 자동차도 나와 비슷한 여건에 놓인 사람들이 가장 많이 선택하는 것 중에 하나라고 볼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정답이라고 합의한 것을 선택하는 것은 편리하다. 그 선택에 대해 나무라는 사람도 없고 귀찮은 질문을 하는 사람도 없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경우 딱히 후회할 만 한 상황이 발생하지 않는다는 점도 좋은 점이고, 무엇보다 무언가를 고민할 때 소모되는 시간과 에너지를 절약할 수 있다는 점도 매력적이다. 세상을 살아가며 우리가 해야 하는 선택이 얼마나 많은가. 일일이 자신만의 취향을 고집하는 것은 피곤하고 비효율적인 일이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주류를 선택하는 행위가 가진 효율성이 점점 나를 개성 없는 인간으로 만들고 내 삶을 삭막하게 만드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각종 음원 사이트에서 인플루언서들이 만들어 놓은 플레이리스트를 재생하며 더 이상 음악을 집중해서 듣지 않는 나 자신을 발견한다. 그 옛날 음반가게에 가서 삼십 분이고 한 시간이고 씨디를 고르고, 한 트랙 한 트랙을 소중하게 듣던 시절에 비하면 음악 듣는 재미가 현저히 줄어들었다는 것을 느낀다. 플레이리스트는 수십 곡의 히트곡들을 들려주지만 기억에 남는 건 아무것도 없다. 강백수 세상을 깊이 있게 바라보는 싱어송라이터이자 시인. 원고지와 오선지를 넘나들며 우리 시대를 탐구 중이다. 멀티플렉스에 대기업이 걸어 둔 천편일률적인 흥행작을 아무런 고민 없이 예매하고, 서점에 들러 습관적으로 베스트셀러코너 최상단에 놓여 있는 책을 고른다. 심지어 식사 메뉴마저 내가 먹고 싶은 것을 고민하기보다는 인근에 별점 높은 식당의 주력 메뉴가 무엇인지를 우선순위에 놓고 선택한다. 내내 정답만을 선택하다보니 정작 내가 주도적으로 내린 결정이 하나도 없는데 그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한 채 매일 매일이 흘러간다. 편리함에 속아 자신의 취향은 실종되어버리고 그러는 사이에 나는 천편일률적인 인간군상 중 한 명이 되어있는 것이다. 섬뜩한 기분이 들지만 지금도 세상은 더욱 편리한 선택을 제시한다. 개개인의 취향과 의견이 하나하나 빅데이터로 대체되어버리고 만다. 우리는 그런 시대에 살고 있다. 취향의 실종은 곧 자아의 실종이다. 나의 자아가 사라져버리기 전에 나는 나의 취향을 회복해야 한다. 물론 모든 분야에 있어 능동적인 선택만을 할 수는 없다. 나는 여전히 시계나 전자제품, 자동차로까지 나의 개성을 드러내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적어도 나의 에너지가 허락하는 선 안에서는 스스로 고민하고 결정하며 살아가야 할 것이다. 나는 무엇이 먹고 싶은가. 나는 무엇을 읽고 보고 듣고 싶은가. 내가 좋아하는 것은 무엇이고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 것은 또 무엇인가.

2024-11-25

도움받는 일

지금 내가 살고 있는 곳은 어시장 근처다. 어쩌다 그곳에 살게 되었어요? 나에 관해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은 의아하다는 듯 묻는데 구구절절 설명하기가 어려워 부모님 집이에요, 하고 얼버무린다. 장성한 청년이 부모님의 도움을 받고 있다고 말하기가 참 머쓱하지만 그것이 또 사실이기도 하여서 머리를 긁적이는 순간이 잦다. 온전히 자립하게 되었다는 감각은 대체 언제 느끼게 될까? 애초에 그런 것이 가능하기는 할까? 어쨌든 지금의 나로서는 이 동네를 떠나지 못하는 처지다. 이곳에 관해 말해 보자면, 펄떡거리는 생명력으로 가득한 공간이라고 할 수 있겠다. 문밖을 나서면 관광객들의 흥성거림을 어렵지 않게 느낄 수 있고 주말에는 지하철역에서 파도처럼 밀려 나오는 인파를 마주하기 일쑤다. 여기서 살며 두드러지게 발달한 감각은 취객을 알아보는 능력이다. 적당히들 마시고 들어가세요, 하는 눈짓으로 맨정신이 아닌 사람들을 요령껏 피해 가는 재주가 꽤 뛰어나다고 자부한다. 이러한 동네의 분위기가 달갑지만은 않다. 내가 살고 싶은 동네는 느리고 조용한 곳이다. 인적이 드물수록 좋다. 모르는 사람과 어깨를 부딪치는 일은 내게 항상 큰 부담이었으니까. 그런 면에서 지금의 동네는 어딘지 모르게 나와 어긋나 있다. 언제부터일까. 나는 이곳에 묘한 친밀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것은 어시장의 상인에게서 기인한 것이다. 작업실을 가기 위해선 시장을 꼭 지나쳐야 하는데, 자연스레 그들을 자세히 바라볼 기회가 생겼다. 거기에 더해서 내가 다니는 사우나에서도 자주 마주치는데, 그들이 서로 나누는 이야기를 듣다 보니 아주 가까운 사람을 마주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것이다. 요즘 그들의 입에서 자주 나오는 단어는 ‘김장’이다. 절인 배추가 얼마고 양념에 무엇을 넣으면 맛있다는 정보, 그럼 다음 주에 내가 언니네로 갈게, 하는 대화 같은 것을 사우나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훔쳐 들었다. 얼마 전, 시장을 지나면서 매대 뒤편에 커다란 대야를 놓고 네댓 명이 둘러앉아 김장을 하는 모습을 목격할 수 있었다. 혹시 사우나에서 본 사람이 이 사람인가 저 사람인가 하는데 “왜요? 뭐 줄까?”하고 여자 중 한 명이 말을 걸어왔다. 아니에요, 하는 내 등 뒤로 “우리 여기 집 도와주는 거야.”하며 누군가 큰 소리로 외쳤다. 내게 상황을 설명한다기보다 저들끼리 웃고 떠들기 위해 하는 말이었다. “도와주긴 뭘 도와줘, 염병!” 그 말이 끝나자마자 웃음이 와르르 쏟아졌다. 바지런히 손을 움직이는 이들을 뒤로한 채 시장을 빠져나왔다. 이곳에서 느껴지는 특유의 활기가 늘 부담스럽다고 생각했는데 또 막상 그렇지만은 않은 모양이었다. 나도 모르게 킥킥 웃었다. 이런 식의 우스갯소리를 목격하고 정색할 순 없는 노릇이다. 나는 여자들의 삿된 소리만큼 재미있는 것은 또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니까. 사람들을 만나는 일이 어렵다고 생각하는 최근이다. 그 어느 때보다 집 안에 갇혀 혼자 있는 시간이 가장 편안하다. 누군가를 만나고 돌아오면 끙끙 앓으며 악몽까지 꿀 정도다. 내가 실수를 한 것이 아닐까. 거기서 그 말은 하지 말아야 했는데.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면 끝이 없다. 무엇보다 타인과 도움을 주고받는 일이 괴롭다. ‘나를 도와줄 수 있나요?’ 하는 이야기를 제대로 하지 못해서 일 처리를 못한 날도 있고 혼자 해결할 수 있다고 자신하다가 엉뚱한 결과를 낳은 적도 있다. 문은강 ‘춤추는 고복희와 원더랜드’로 주목받은 소설가. 2017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작가로 등단했다. 생각해 보면 용기를 그러모아 타인에게 도움을 요청하였을 때 명쾌하게 해결된 경우가 더 많았다. 그러나 나는 나의 무능을 들키고 싶지 않고 그렇기 때문에 손을 내미는 일을 자꾸 꺼리게 된다. 타인에게 도움받는 일을 부끄러워하지 말자고 결심해 본다. 조금은 뻔뻔해져도 된다고. 사실 나는 이미 너무나 많은 사람의 도움을 받으며 살아가고 있다. 그러니 어떤 면에선 이미 뻔뻔한 사람일지도 모른다. 뻔뻔하고 무능한 사람. 그게 뭐 나쁜가 싶기도 하다. 인생이 관성의 법칙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말이 정말 사실이라면 생각보다 많은 일들이 단순하게 해결될 것이다. 슬픈 일이 있다면 곧 기쁜 일이 찾아올 것. 도움받는 일이 있으면 응당 도움을 주는 상황도 생길 것. 둘러앉아 빨갛게 김치를 버무리는 상인들을 떠올려 본다. 그들은 꽤 즐거워 보였고 덕분에 나는 이 동네가 한 뼘 더 좋아졌고 우리는 함께 살고 있다는 것만은 분명하다는 사실이 실감 나곤 한다.

2024-11-25

수카바티 안양!

인구 55만명의 위성도시 안양에는 프로스포츠 구단이 세 팀이나 있다. 농구의 정관장 레드부스터스, 아이스하키의 안양한라 아이스하키단, 그리고 축구의 FC안양이다. 스포츠에 대한 지역민들의 관심이 굉장히 뜨거운데, 특히 FC안양 향한 사랑은 애틋하고도 감동적이다. FC안양의 창단에는 눈물겨운 서사가 있기 때문이다. 안양에는 1996년부터 2004년까지 안양 LG 치타스 프로축구팀이 있었다. 지역민들의 자부심이라고 할 만큼 안양 LG를 응원하는 팬들의 함성은 굉장했다. 서포터즈 ‘RED’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큰북을 치면서 선수들을 응원했다. 하지만 2004년 안양 LG는 열성적인 서포터즈와 지역민들을 버리고 서울로 연고지를 옮겨 버렸다. 당시 지역에서 강한 반발이 일어 연고지 이전을 반대하는 삭발 투쟁과 가두행진, LG전자 불매운동 등이 펼쳐졌지만 소용없었다. 팬들은 하루아침에 그들이 사랑하는 팀을 빼앗겼고, 그때부터 무려 9년 동안 안양에는 축구팀이 없었다. 그 9년 동안은 눈물겨운 세월이었다. 지역민들을 배신하고 팀명을 바꾼 FC서울은 빅클럽으로 승승장구했다. 안양 축구팬들은 FC서울을 ‘북쪽 패륜아’로 부르며 야유했지만 그 야유는 공허한 마음을 더욱 시리게 만들었다. 안양에 다시 축구팀을 유치하기 위해 시민들이 나섰다. 공청회를 열고, 서명운동을 하고, 축구계에 호소하면서 다수의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해 애썼다. 서포터즈를 비롯한 시민들의 갖은 노력에 안양시가 응답하면서 마침내 2013년, 시민이 주인인 시민구단 FC안양이 창단됐다. 우리나라 프로축구 K리그는 승강제로 운영된다. FC안양은 창단 이후 계속해서 2부 리그인 K리그2에 있었다. K리그2 우승팀은 K리그1로 자동 승격된다. 10년 동안 K리그1 승격의 문을 끊임없이 두드렸지만 좀처럼 열리지 않았다. 하지만 2024년 11월, FC안양은 K리그2 우승을 확정지으며 꿈에 그리던 K리그1 무대를 내년부터 밟을 수 있게 됐다. 승격이 확정된 날 팬들과 선수단, 구단주인 최대호 시장까지 모두가 얼싸 안고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2000년대 초반 안양 축구를 사랑하던 20대 청년들은 어느새 40대 중년이 됐지만 가슴속 붉은 불꽃은 꺼지지 않았다. 이병철 문학평론가이자 시인. 낚시와 야구 등 활동적인 스포츠도 좋아하며,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승격을 확정하고 홈구장인 안양종합운동장 ‘아워네이션’으로 돌아오는 선수단을 위해 특별한 이벤트가 열렸다. 수백 명의 서포터즈가 안양 축구 응원의 상징인 홍염을 환하게 밝히고 응원가를 부르며 구단 버스를 맞이한 것이다. 선수들은 기쁨을 이기지 못하고 버스에서 내려 서포터즈와 함께 춤추고 노래했다. 시즌 최종전이 열린 지난 11월 9일에는 아예 시 차원에서 공식 축하 행사를 열었다. 구단주 하려고 시장 출마한다는 우스개가 있을 만큼 축구에 진심인 3선의 최대호 시장이 주장 이창용 선수와 함께 머리를 보라색으로 염색했다. 승격 공약을 지킨 것이다. 안양종합운동장에서 시청까지 2㎞ 도로를 안전하게 통제한 뒤 3000여 명의 시민과 서포터즈, 선수단이 함께 어깨를 부여잡고 행진했다. 거리 곳곳에 승격을 축하하는 보랏빛 현수막이 내걸렸다. 안양은 예로부터 포도 농사로 유명한데, 포도의 보랏빛이 안양 축구를 상징하는 색깔이 됐다. 시민들이 이룬 보랏빛 물결이 늦가을 노을과 어우러져 장관이었다. 축구 사랑이 뜨거운 독일이나 영국에서 볼 법한 광경이 경기도 안양에서 펼쳐진 것이다. 시민들과 선수단은 한 목소리로 ‘수카바티 안양!’을 외쳤다. ‘수카비티’는 산스크리트어로 ‘극락’을 뜻한다. 안양(安養)은 괴로움이 없고 지극히 안락한 불교의 ‘안양정토(安養淨土)’에서 온 지명이다. 시민들은 모처럼 걱정도 고민도 없이 마냥 기쁘고 평안한 주말을 보냈다. 하지만 내년부터는 전쟁이다. 안양 시민들은 FC서울을 안양종합운동장으로 불러들여 경기하는 날만을 기다려 왔다. 그 경기에서 승리한다면? 아마 도시 전체가 열광의 도가니가 될 것이다. 이제 안양에 이사 온 지 5년이 된 나는 조금씩 안양시민이라는 지역적 정체성을 쌓아가고 있는데, FC안양의 감동적인 서사 덕분에 내가 사는 동네를 더 사랑하게 됐다. 내년 봄 나는 시즌입장권과 보랏빛 유니폼을 구입할 것이다. 그리고 외쳐야겠다. 수카바티 안양!

2024-11-18

2024년과 보통의 일상

2024년도 얼마 남지 않았다. 되돌아보면 참 여러 일이 있었고 일도, 주변 사람도, 환경도, 사는 곳도 참 빠르게 바뀌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내 곁에 남아 좋은 영향을 주는 것들이 있어 올 해도 참 부지런히 행복했다는 생각이 든다. 올해 배운 것 중에 가장 좋은 것은 뜨개질이다. 뜨개질은 앞을 향해서만 나아간다는 점에서 달리기와 비슷하다. 달리기는 일정한 호흡과 함께 더 멀리, 더 빠르게 몸을 활용하여 나아가는 것이면, 뜨개질은 바늘과 실을 반복해서 통과하며 정신으로 집중해서 나아간다. 달리기가 온몸으로 하는 것이라면 뜨개는 고도의 집중력으로 섬세하게 나아가는 일종의 정신 수련과도 같달까. 물론 달리기와 뜨개질이 크게 다른 점이 있는데, 앞으로 빠르게 뛰는 달리기와는 다르게 뜨개질은 다시 뒤로 되돌아 갈 수 있다는 점이 있다. 안뜨기나 바깥뜨기만을 반복하는 대바늘 뜨기는 특별한 기법이 없어 단순하다. 쉬운 난이도 덕분에 뜨개를 처음 접할 때에 가장 먼저 배우는 기법 중 하나기도 하다. 단순히 반복되기 때문에 어렵지 않게 할 수 있지만, 그 때문에 오히려 자칫 쓸데없는 생각에 빠져 들기도 쉽다. 생각이 다른 길로 세는 순간 바늘은 기다렸다는 듯 엉뚱한 실의 구멍으로 들어가 버린다. 바늘코가 빠져 커다란 구멍이 생기거나 또는 패턴이 망가져 전체적인 편물의 모양에 흠이 나고 만다. 정갈하게 촘촘히 짜여있는 패턴에 흠 하나가 너무 잘 보일때의 스트레스란… 어느 때엔 화가 나서 씩씩거리게 되지만 그럴 땐 빨리 마음의 평화를 찾으며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 확인해야 한다. 푸는 방법은 간단하다. 모조리 바늘에 걸린 실을 모두 빼어 그대로 쭉 풀면 된다. 어느 때엔 잘못 뜬 부분을 늦게 발견해서 한 두시간 뜬 결과물을 모조리 풀어야 할 때도 있다. 물론 실 특성마다 달라 풀자마자 끊어져 버리거나 눈에 띄게 상하는 실도 있어 되도록 실수는 안 하면 좋다. 다행히 두께가 어느 정도 있거나 비교적 튼튼한 실일 경우엔 어느 정도 부담을 덜고 풀 수 있다. 뜨개인들은 잘못 뜬 부분을 다시금 푸는 것을 ‘푸르시오 엔딩’이라고 하는데, 실수를 자책하는 시간에 어서 이 실패의 엔딩을 끝맺음하고 실을 다시금 모조리 풀으라는 뜻의 우스갯소리다. 푸르시오 엔딩이 유독 잦은 날은 화가 많이 나는 날이나 또는 과거의 사건에서 자꾸만 마음이 머물러 뜨개에 집중하지 못할 때다. 과거 내가 한 선택들로 현재까지 이어져 온 결과들, 어쩔 수 없는 상황과 나의 실수로 멀어진 사람들, 과거와 내가 크게 달라진 부분 등등. 왜 자꾸만 과거를 떠올렸는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아마 앞자리가 바뀌는 나이, 그에 따른 책임감, 어른으로서의 일인분의 몫은 무엇인지, 내가 과연 지금 잘 살아가고 있는 것인지에 대한 의아함에 뒤숭숭했기 때문이었을 것이고, 괜시리 그 답을 자꾸만 과거에서 찾으려고 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윤여진 2018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 부문에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현재보다 미래가 기대되는 젊은 작가. 아직도 어른으로서의 의문은 여전하지만, 그래도 이젠 뜨던 편물에 구멍이 생겨도 조금 여유롭게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잔 실수로 구멍이 여기저기 얼룩덜룩 보이는 결과물일지라도 여전히 형태는 여전하고 가치 또한 그대로 유지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잔 실수가 보여도 조금 더 너그럽게 애정을 가지고 차분히 뜨개질을 하면서 겨울에 쓰일 유용한 물건들을 이것저것 많이 만들고 있다. 뜨개를 좋아하는 이유 중 또다른 하나는 단순 반복 행위는 오히려 자칫 지루한 삶을 견디게 해준다는 것을 알려주었기 때문이다. 아침에 일어나 이불을 정리하는 것, 창문을 열어 환기를 시키는 것, 간단한 아침식사를 꼭 하고, 주 2회 정도는 되도록 저녁 일곱시쯤 운동 하기, 주말엔 정해 놓은 공부를 한 시간 정도 하는 것 등등. 일상에 정해 놓은 반복되는 일들은 자칫 지루할지라도 일정한 손놀림으로 만들어내는 손뜨개처럼 소박하고 정직하다. 특별할 것 없는 평범한 하루하루이지만 결국 무탈한 한 해가 되면서, 생의 지루함에서 조금 물러나 충직하게 살아가게끔 한다. 하루하루 또는 매해가 영화 속 주인공처럼 특별하지 않아도 된다. 거대한 사건이나 이벤트가 생기지 않는 다소 심심한 일상이어도 그저 현재에 충실하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어딘가 심심하고 무언가 지루하지만 충실히 하루하루를 살아내는 것. 뜨개질이 알려준 행복에 충실했던 올해가 빠른 속도로 가고 있다.

2024-11-18

그곳에 있다는 믿음으로

만화 ‘원피스’는 오다 에이치로가 1997년부터 연재 중인 만화다. 세계 제일의 보물이라고 일컬어지는 원피스를 찾아 떠나는 이야기로 주인공인 루피와 그가 이끄는 밀짚모자 해적단의 모험을 그린다. 작품의 제목이자 주인공을 추동하는 보물이 무엇인가에 관한 의견 또한 분분했는데, 혹자는 동료들과의 우정, 꿈과 열정같이 추상적인 개념으로 추측하기도 했다. 그러나 작가는 자신의 목소리로 직접 ‘원피스는 실체가 있는 무언가’라고 일축하며 독자의 기대감을 고조시켰다. 해적왕 로저가 찾아낸 보물, 원피스의 정확한 형태는 알 수 없지만 그것의 성격에 관해서는 이야기를 통해 조금씩 드러나고 있는데, 해적왕이 원피스의 정체를 알고 폭소하였다는 것과 보물을 남긴 자가 ‘Joy Boy’라고 불린다는 것, “이 세상에서 가장 자유로운 사람이 해적왕이야!”라는 대사 등을 미루어 보아 생각보다 가볍고 단순한 것이지 않을까 하는 것이 개인적인 추측이다. 나아가 작가는 최근 만화가 최종장에 진입했다고 발표하였으니, 모험의 대장정이 곧 끝날 것이라는 아쉬움과 설렘으로 연재를 지켜보고 있는 독자들이 많을 것으로 안다. 거기에는 나도 포함이다. 어린 시절부터 집 앞의 만화방에 들락거리며 “아저씨, 원피스 최신 권 나왔어요?” 하고 묻던 발랄한 꼬마가 어느덧 삼십 대가 되었다. 당시 만화 한 권을 빌리는 값이 삼백 원쯤 되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일주일에 천 원씩의 용돈을 받던 나는 한 시간 분량의 유희에 내가 가진 모든 돈을 투자하는 것에 거침없었다. 만화를 읽고 있노라면 나의 마음 깊은 곳에서 무언가 타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그것은 아마 소년 만화가 건네는 특유의 힘이 아니었을까 싶다. 따지고 보면 ‘원피스’는 내 안의 의협심과 투지를 만들어 준 원료였던 셈이다. 처음 이 만화를 접했을 때 어떤 감정이었나 생각해 보면, 주인공인 루피가 해적왕이 되는 것에 성공하느냐 마느냐는 그렇게 중요한 문제는 아니었던 것 같다. 그가 바다로 나가 동료를 모으고 다양한 사람을 만나는 과정을 들여다보는 것 자체에 흥미를 가졌으니. 여러 섬에 정박하며 많은 문제에 봉착하고 그것을 그만의 방식으로 해결해 나가는 것에 일종의 해방감을 느꼈다. 어느 순간 나는 이불 속에 누워 만화를 읽는 행위를 멈춰야만 했다. 더 중요한 일이 생긴 것이다. 학교에서 친구들과 관계를 맺어야 했고 대학에 가야 했으며 먹고 살기 위해 돈을 벌어야 했다. 그동안 루피는 점점 더 강해지고 있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고 새로운 동료를 찾았으며 많은 적을 물리쳤고 여러 존재에게 도움을 주었다. 단 하나의 꿈.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항해를 계속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 사실을 놀라워해서는 안 된다. 루피가 첫 출항을 했을 때의 나이가 열일곱이고 작중 나이가 열아홉이니 그는 그 안에서 여전한 청춘이다. 현실은 흘러가지만 이야기는 계속해서 같은 자리에 있다. 그렇기 때문에 밀짚모자 해적단을 보고 있노라면 언제든 만화방으로 향하는 꼬마의 마음으로 돌아갈 수 있다. 그 사실을 실감한 순간 나는 꽤 대단한 세상의 진실을 손에 넣은 듯 우쭐해졌다. 그러니까 ‘원피스’가 어떠한 형태를 지녔든 그것은 결국 하나의 상징일 수밖에 없다. 젊음, 낭만이나 꿈, 열정과 같은 개념. 그저 아름답게만 들리는 이러한 상태는 영원히 지속될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은 지난한 일상의 대척점에 놓여 있다. 열정은 사그라지고 모험은 끝을 맺어야 한다. 종결 또한 삶의 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문은강 ‘춤추는 고복희와 원더랜드’로 주목받은 소설가. 2017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작가로 등단했다. 우리는 알고 있다. 이야기가 전개되는 한 그 안에서 유지되고 있는 불씨는 꺼지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삶의 내부에서 세상을 바라볼 수밖에 없고 한 가지 인생밖에 경험할 수 없다. 언제나 가능성만이 존재할 뿐이다. 그런 면에서 보물을 찾는 자의 모험을 바라본다는 것은 또 다른 체험의 방식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보물도 마찬가지다. 그것은 언제나 눈에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보물은 숨겨져 있을 때 진정한 힘을 발휘할 수 있다. 보물의 또 다른 말은 희망이다. 그것은 우리를 끝내 앞으로 나아가게 만든다. 그것을 찾는 여정이 쉽지 않다는 것을, 결국 막을 내릴 것을 알면서도 말이다. 글을 쓰는 내내 당연한 사실을 떠올렸다. 우리는 아직 ‘원피스’가 어떤 것인지 알지 못한다는 것. 그러니 마음껏 추측하고 상상할 수 있다는 것. 이런 사실을 떠올리면 지루한 일상도 자못 유쾌해진다. 기쁜 마음으로 기다리게 된다. 보물이 그곳에 있다는 믿음으로.

2024-11-11

좋은 보컬과 좋은 사회 구성원

며칠 전, 친구가 직장인 밴드 공연을 한다며 초대를 해 주어 응원을 하러 다녀왔다. 친구는 대학시절 동아리 활동을 함께 했던 친구들과 함께 졸업 이후에도 인연을 이어가며 즐겁게 음악생활을 해 나가고 있었다. 많은 밴드 동호회가 그러하듯 밴드의 멤버는 고정되어 있지 않았다. 여러 명의 보컬리스트들이 번갈아 노래를 부르고 또 여러 연주자들이 교대하며 다채로운 구성으로 다양한 음악을 들려주었다. 내가 평소 일을 하며 보게 되는 프로연주자들의 무대와 비교하자면 약간의 인간미가 느껴지는 부분들도 있었지만 취미생활임에도 불구하고 개개인이 많은 노력을 해왔고 그들이 오랫동안 끈끈하게 합을 맞추었다는 것을 짐작케 하는 부분도 있어서 흥미롭게 구경을 잘 하고 왔다. 아무래도 공연을 할 때 내 포지션이 보컬리스트이다보니 무대에 오르는 여러 보컬리스트들에게 좀 더 많은 관심이 갔던 것이 사실이다. 가장 크게 다가온 부분은 역시 우리나라에 노래 잘 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다. 무대에 올랐던 보컬리스트들 모두 수준급의 실력을 뽐내 주었다. 악기연주자는 악기를 구매해서 숙련의 과정을 어느 정도 거치지 않으면 밴드에 참여할 수 없지만 노래는 사실 아무나 다 부를 줄 안다. 그 사람들 중에서 밴드의 보컬을 하겠다고 나설 수 있으려면 동호인 사회라 할지라도 어느 정도의 역량은 갖추어야 할 테니 가창력 면에서 특별한 부족함을 느끼지는 못했다. 그런데 무대를 보면서 두 가지 의문점이 들었다. 하나는 비슷비슷한 수준의 가창력을 가진 그 보컬들 중에서도 눈과 귀를 더 사로잡는 구성원이 있었는데 그 차이는 어느 지점에서 발생하는가 하는 것이었고, 또 하나는 어떤 프로들과 비교하자면 나을 수도 있는 가창력을 지녔음에도 불구하고 어딘가 그들을 동호인처럼 보이게 하는 부분이 있었는데 그것의 실체가 무엇일까 하는 것이었다. 무대를 한참 지켜보다가 공연이 끝날 무렵쯤 나는 그것에 대한 답을 얻을 수 있었다. 어떠한 역할을 잘 수행해내기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그 역할에 대해 고민한다. 좋은 보컬리스트가 되기 위해서는 좋은 보컬리스트가 무엇인지 깊이 고민을 해 봐야 하는 것이다. 보컬리스트는 물론 노래를 부르는 사람이기 때문에 노래를 잘 불러야 하는 것이 맞다. 그런데 그게 전부라고 볼 수는 없다. 대부분의 밴드에서 보컬리스트는 한복판에서 무대 전체를 이끌고 나가는 프론트맨의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노래를 잘 부르는 것과 함께 내가 어떤 무대를 만들 것인지 상을 그려내는 능력도 필요하고, 그러기 위해서 동작과 시선, 멘트, 호흡까지 하나하나 디자인해나가는 능력도 필요하다. 그날 무대 위에서 가장 빛났던 보컬리스트가 한 명 있었는데 그 분이 다른 분들에 비해 훌륭하게 보였던 점은 이러한 프론트맨으로서의 역할을 고민했던 흔적이 역력했기 때문이었다. 프로 보컬리스트와 아마추어 보컬리스트가 다르게 보이는 상황도 그 역할에 대한 고민이 있고 없고의 차이로부터 발생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강백수 세상을 깊이 있게 바라보는 싱어송라이터이자 시인. 원고지와 오선지를 넘나들며 우리 시대를 탐구 중이다. 우리 모두 사회에서 밴드의 멤버들처럼 저마다의 포지션을 하나씩 점유하고 각자의 역할을 하며 살아간다. 앞서 이야기 한 역할에 대한 고민은 사회에서 자신의 책임을 다하기 위해서도 필요하다. 전문직 종사자들도 자신의 전문영역에서의 기술적인 역량과 동시에 자신이 속한 조직이나 수행하고 있는 프로젝트 전반에 대한 이해를 갖추어야 하고 그 안에서 기술적인 것 외에 자신이 책임져야 하는 다양한 부분들에 대해서 고민해야 한다. 축구 경기를 뛰는 스트라이커는 골을 넣는 사람이지만 슛을 차는 것 외에도 다양한 움직임에 대해 고민해야 하고, 야구장의 4번타자도 홈런을 치는 일만 고민할 것이 아니라 작전을 수행하고 공수교대 이후에는 수비를 견고히 하는 일까지 게을리 해서는 안 된다. 좀 더 발전시키자면 직업적인 것 외에도 개개인이 맡고 있는 다양한 역할에 적용시킬 수 있는 생각이다. 사회의 가장 작은 단위인 가정에서 나의 역할은 아빠다. 돈 잘 벌고 아이가 원하는 것을 가질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도 아빠의 역할이겠지만, 아이와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내며 그 성장을 지켜보는 것이나 아이에게 정서적인 버팀목이 되어주는 것, 그리고 엄마에게 좋은 남편이 되어주는 것까지 모두 고민해야 진정으로 좋은 아빠가 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좋은 아들도, 좋은 친구도, 좋은 선후배도 모두 그런 고민 이후에 될 수 있는 것이리라. 뜨거운 조명 아래서 오랫동안 열심히 준비해준 공연을 훌륭하게 보여준 직장인 밴드 ‘씨즌’ 멤버들과 내 친구 하헌재 덕분에 이런 저런 생각들을 해 보게 되었다.

2024-11-11

침묵의 소리 안에서

무미건조한 삶의 불안에게서 도망치는... /언스플래쉬 삶이라는 거대한 미션 속에서 너무 도망치고 싶거나 의기소침한 마음이 들 때쯤 영화 ‘졸업’의 마지막 장면을 떠올리게 된다. 영화 ‘졸업’에선 상류층 가정에서 부모님 뜻대로 착실히 살아온 스무살 초반의 벤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대학 수석 졸업을 마치고 집으로 금의환향한 벤은 부모님이 마련한 성대한 파티에 참석한다. 그는 상류층 집안에서 부모님의 뜻에 따라 착실히 순종적으로 지낸 아들이면서, 명문대학을 수석으로 졸업한 명석한 두뇌의 엄친아이기도 하다. 겉으로 보기엔 누구나 부러워할 법한 그의 스펙이지만 실은 벤은 계속해서 물에 잠겨 있거나 넓은 바다 위를 홀로 외롭게 부유하고 있는 듯한 느낌을 어쩐지 떨어뜨릴 수 없다. 무언가 단단히 길을 잃어버린 것만 같아 극도의 불안을 느끼는 벤. 하지만 그런 착잡한 마음을 아무도 알아주지 못해 시간이 흐를수록 거듭 외로워질 뿐이었다. 그러한 불안의 상황속에서 갑작스레 벤 앞에 나타난 로빈슨 부인. 그녀는 의도적으로 벤과 부적절한 관계를 취하고 벤 또한 옳고 그름을 판단하지 못하는 상황 속에서 그녀의 손아귀에 이끌려 다니게 된다. 부적절한 관계 속에서 공허하고 혼란스러워하던 벤이었지만 자신의 아버지의 소개로 로빈슨 부인의 딸 일레인과 만나게 되고, 일레인과의 데이트 도중 그녀에게 사랑에 빠지고 만다. 점차 자신의 감정이 깊어져 가던 도중 일레인에게 벤자민 부인과의 있었던 일을 솔직하게 털어놓게 되지만 일레인은 자신의 어머니와 부적절한 관계를 맺은 벤을 용서하지 못하고 자신이 다니던 대학으로 멀리 떠나게 된다. 벤은 자신의 눈앞에서 사라진 일레인의 부재를 견디지 못하고 그녀의 대학까지 쫓아가 일레인을 다시금 붙잡아 보지만 일레인의 마음은 이미 혼란스러운 상태. 벤은 처음으로 자신의 삶에서 일레인이라는 주체적인 선택을 하고, 일레인의 마음을 얻기 위해 부던히도 노력한다. 하지만 일레인은 결국 벤을 떠나 은신하며 다른 남자와의 결혼을 선택하게 되고 이를 알아챈 벤은 소식 없이 사라진 일레인의 뒤를 쫓아 결혼식장까지 난입하게 되는데, 여기서 그 유명한 장면인 웨딩드레스를 입은 일레인과 손을 잡고 도망가는 장면이 등장한다. 결국 도망치는 데에 성공한 벤과 일레인은 버스를 잡아 타고선 서로를 향해 활짝 웃어보이는데 영화의 막바지에 다다를수록 둘은 애매한 표정을 짓는다. 그리고 착잡과 두려움, 혼란과 절망이 모두 담긴 표정이 클로즈업 되며 영화는 생뚱맞게 막을 내린다. 그 장면 속에 삽입된 폴 사이먼의 The Sound Of Silence의 곡 또한 “반갑네, 내 오랜 친구 어둠이여. 다시 한 번 말을 나누려 왔다네”, “현자의 말이란 오직 지하철 역사의 벽이나 노숙 시설의 벽 따위에 적혀 있도다. 그렇게 속삭였네, 침묵의 소리로”라는 가사가 등장하며 인생의 공허와 불확실성을 내포한다. 그리고 영화의 마지막 장면과 어우러지며 삶의 불안은 언제나 누구나 겪는 것이며, 삶의 불안에게선 절대 도망칠 수 없고 외면할 수 없단 메시지가 드러난다. 윤여진 2018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 부문에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현재보다 미래가 기대되는 젊은 작가. 벤과 일레인, 그들은 여전히 미래로부터 불안하고 현재라는 삶의 불확실함 한가운데에 서 있다. 이 메시지를 전달한 영화 ‘졸업’은 1967년 개봉작이며, 개봉 당시 60년대 미국은 기성세대 간의 갈등이 심했던 시기이기도 하다. 때문에 벤은 자신의 부모님인 기성세대의 뜻에 반하여 자신의 커리어와 재력을 모두 버린 채 오직 일레인만을 선택한다는 행동이 더욱 강조되기도 했다. 또한 60년대 말은 베트남 전쟁으로 혼란스러웠던 시기로 꿈과 희망을 담은 영화의 주제를 전달하기 보단 혼란스럽던 시대 그대로를 고스란히 담은 영화가 흥행하던 시기이기도 하다. 이 때 열풍이 불었던 아메리카 뉴웨이브 시네마는 당시 미국 사회 현실을 냉철하고 적나라하게 드러내며 결국 해피엔딩만이 인생의 전부가 아니라는 굵직한 주제의 영화가 주로 등장했으며, ‘졸업’도 그 중 하나의 대표작이라 볼 수 있다. 무미건조한 삶의 불안에게서 벤과 일레인처럼 마냥 도망칠 수만은 없을 터. 그렇다고 슈퍼히어로처럼 막대한 힘으로 이길 수만은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언젠가는 지며, 또는 언젠가는 두 눈을 부릅뜨며 유연하게 나아가는 수밖엔 없지 않을까. 가수 아이유의 아이와 나의 바다라는 곡의 마지막 가사처럼. ‘그럼에도 여전히 가끔은 삶에게 지는 날들도 있겠지만’, ‘또다시 헤매일지라도 돌아오는 길을 알고 있다면’ 말이다.

2024-11-04

아우라와 지속적인 체험

길버트 카플란(1941~2016)은 스물세 살 평범한 경영대학원생이었다. 1965년 그는 뉴욕 카네기홀에서 열린 아메리칸 심포니 오케스트라 연주회에 갔다가 구스타프 말러의 교향곡 2번 ‘부활’을 듣고 엄청난 충격과 감동에 휩싸인다. 그의 표현을 그대로 빌리자면 “번개가 나를 꿰뚫고 가는 듯한” 전율을 체험한 것이다. 그날 이후 그는 엉뚱한 꿈을 품는다. 단 한 번도 정규 음악 교육을 받아본 적이 없는 ‘음알못’이지만 언젠가는 꼭 말러 교향곡 2번을 지휘하는 지휘자가 되겠다고 마음먹은 것이다. 대학원 졸업 후 금융전문잡지를 창간해 큰 성공을 거둔 그는 백만장자가 됐는데, 젊은 날의 꿈을 잊지 않았다. 개인 교사를 고용해 하루에 몇 시간씩 화성학, 대위법, 지휘법 등을 배우기 시작한다. 철학자 발터 벤야민은 ‘아우라(Aura)’를 “예술작품의 여기와 지금으로서, 곧 예술작품이 있는 시간과 장소에서 그것이 뿜어내는 재현 불가능한 단 한 번의 영적 광휘”라고 정의한다. 사진술과 영상술, 레코딩 기술이 발명되면서 이 아우라는 위기를 맞는다. 사진으로 복제된 이미지와 음반은 언제 어디서든 내가 원하는 시간과 장소에서 예술작품을 무한대로 반복해서 감상할 수 있게 해주고, 그러면서 예술작품은 그 신비의 베일이 벗겨져 감상자는 이제 숭배가 아닌 비평을 하게 된다. 이는 대중문화의 시대를 여는 중요한 변화가 되었다. 하지만 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실시간으로 현장에서 감상하는 예술작품의 감동, 아우라까지는 재현할 수 없다. 벤야민은 아우라의 붕괴를 긍정적인 변화로 여기면서도 인간에게서 ‘지속적인 체험의 기회’를 앗아간 것을 안타까워했다. ‘모나리자’를 본다는 것은 그냥 그림 한 장 보는 게 아니라 파리의 공기와 분위기, 루브르 박물관 외벽에 드리워진 햇살, 그림이 걸린 벽면의 명암과 조명, 그림 앞에 선 사람들의 경탄 어린 표정까지를 모두 포함하는 체험인 것이다. 무언가를 알기 위해, 보기 위해, 사랑하기 위해 우리는 그것이 있는 시간과 장소로 나아가야 하고, 그 나아감 가운데 다채롭고 우연한 아름다움들과 마주하게 된다. 스마트폰 검색을 통한 예술 감상에는 이러한 지속적 체험이 없다. 수년의 노력 끝에 길버트 카플란은 말러 교향곡 2번을 지휘할 수 있는 수준에 이른다. 처음 말러를 듣고 전율한 지 18년만인 1981년, 카플란은 자비로 카네기홀을 빌리고 아메리칸 심포니 오케스트라를 섭외했다. 세상은 백만장자의 과시욕이나 엉터리 괴짜의 기행쯤으로 여겼지만 그의 손에 들린 금빛 지휘봉이 공중에 우아한 선을 그으며 1시간 20분짜리 대곡의 마지막 5악장을 마치는 순간 환호와 박수가 터져 나왔다. 이후 그는 말러 교향곡 2번만을 지휘하는 전문 지휘자가 되어 세계를 돌며 공연했다. 누군가는 카플란이 지휘하는 ‘부활’을 들으면서 과거의 그가 그랬던 것처럼 번개 맞은 듯한 감동을 느꼈을 것이다. 아우라를 체험한 사람은 아우라의 생산자가 된다. 내 시를 읽으면서 어떤 숭고한 광휘를 느낀 독자가 과연 있을까마는 내가 지금껏 문학가로 살 수 있던 것은 문학과 음악과 미술을 통해 감각한 아우라 덕분이다. 아우라가 있는 시간과 장소에 도달하기까지 체험한 세계의 다채로움 덕분이다. 이병철 문학평론가이자 시인. 낚시와 야구 등 활동적인 스포츠도 좋아하며,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소설 ‘그리스인 조르바’를 읽은 스물두 살 여름, 크레타에 무작정 가고 싶어 아르바이트로 여행 경비를 마련해 그리스 땅을 밟았다. 영화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를 보고는 영화 속 북유럽 풍경에 매료돼 통장을 탈탈 털어 노르웨이로 가는 항공권을 끊기도 했다. 스페인 문학에 등장하는 새끼돼지 통구이 ‘코치니요 아사도(Cochinillo Asado)’를 꼭 한번 먹고 싶어 바르셀로나 외곽을 헤매거나 티브이에서 녹화 중계해준 베를린 필하모닉 공연의 감동을 직접 느끼고자 독일에 가는 동안 대출금은 늘어나고, 여행 후 삶이 고달파졌다. 하지만 전혀 후회하지 않는다. 이 가을, 예술작품이 있는 시간과 장소로 직접 나아가보라. 가는 길의 햇살과 단풍과 낙엽을, 설렘으로 부푸는 가슴의 떨림과 친구의 웃음소리와 호수에 비친 산그림자를 모두 몸과 마음에 담으면서. 이런 지속적 체험을 통해 우리는 보편적 타인과 구별되는 개성을 갖게 되며, 영원히 아름다운 예술작품처럼 찬란한 아우라를 발산하는 고유한 개인이 될 수 있다.

2024-11-04

빈자리를 채우는 방법

최근 음악계의 동향 중 가장 반가웠던 것은 미국의 밴드 린킨파크의 복귀 소식이었다. 나는 이것이 가능할 것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린킨파크가 그 여정을 멈춘 까닭은 보컬리스트이자 핵심멤버인 체스터 베닝턴이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린킨파크가 돌아오기 위해서는 그를 대체할 수 있는 보컬리스트를 찾는 것이 필수적인 일이라고 생각했고 이는 불가능하다고 믿었다. 일정하게 쭉 뻗는 가운데 적당히 목을 긁어서 파괴력을 극대화한 그의 보컬 스타일은 아무나 흉내 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보통 사람이 따라하다가는 한 곡도 채 부르지 못하고 쇳소리 섞인 기침을 연신 내뱉게 될 것이 분명하다. 그는 존재 자체가 기적이었고, 기적이 두 번 일어나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린킨파크가 돌아온다고 했을 때 나는 밴드 저니의 사례를 떠올렸다. 체스터 베닝턴 이전에 존재했던 불세출의 보컬 스티브 페리가 저니를 떠난다고 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이제 저니는 재기하기 힘들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스티브 페리가 누구인가. 1980년대를 주름잡던 당대 최고의 팝스타들이 모여 녹음한 ‘위 아 더 월드’ 녹음 현장에서도 단연 발군의 기량을 뽐냈던 세계 최고 수준의 보컬리스트가 아니었나. 그런데 저니는 뜻밖의 장소에서 스티브 페리의 완벽한 대체자를 발견해냈다. 바로 필리핀의 식당과 나이트클럽에서 노래를 부르던 무명의 보컬 아넬 피네다였다. 지구를 반 바퀴 돌아 동양의 언더그라운드에 그들이 찾던 보석이 있으리라 저니의 멤버들은 상상이나 할 수 있었을까, 그런데 그들은 결국 찾아내고 만 것이다. 그런 기적이 또 일어났나 싶었는데 그런 일은 없었다. 린킨파크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체스터 베닝턴의 빈자리를 채워나가겠다고 선언했다. 린킨파크의 새로운 보컬리스트는 뜻밖에도 여성이었다. 새 멤버 에밀리 암스트롱의 보컬이 체스터 베닝턴의 그것과 공통점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여성의 보컬로 남성의 보컬을 대체한다는 것은 상상도 하지 못할 일이었다. 그들의 라이브 영상을 찾아보았더니 ‘페인트’도, ‘인 디 엔드’도 내가 알던 것과는 전혀 다른 곡이 되어 있는 것 같았다. 그런데 과거의 향수를 잠시 미뤄두고 다시 들어 보니 나름 신선한 느낌이 들고 또 다른 매력을 가진 곡으로 재탄생했다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그들이 함께 만들어 발매한 신곡은 여태까지 린킨파크가 걸어온 것과는 다른 궤적을 그리고 있었지만 분명 진보된 모습을 보여 주고 있었다. 강백수 세상을 깊이 있게 바라보는 싱어송라이터이자 시인. 원고지와 오선지를 넘나들며 우리 시대를 탐구 중이다. 커다란 부재가 발생했을 때 과거에 존재했던 대상과 정확히 일치하는 대체재를 찾는다면 그것은 가장 편리한 방식의 대처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반드시 그것만이 옳은 방식인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린킨파크의 음악을 듣는 내내 머릿속을 맴돌았다. 전혀 다른 성격의 대체재로 부재를 극복하고 새로운 길을 모색하는 방안도 존재한다는 사실을 그들을 통해 배울 수 있었다. 살다 보면 소중한 무언가를 잃게 되는 일이 종종 발생한다. 그것은 사람일 수도 있고 물질적인 것일 수도 있고 무형의 어떤 것일 수도 있다. 무언가 잃으면 그것과 딱 들어맞는 것을 찾게 되고, 세상에 그런 것은 없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깊은 좌절에 빠지기 일쑤인데 그럴 필요가 없었구나. 상실을 기점으로 인생의 방향을 전환할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어쩌면 때로는 그 부재를 비슷한 성격의 대체재로도, 다른 성격의 대체재로도 메우지 않는 것을 선택하는 것이 최선일 때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대뜸 떠오른 이들이 한국의 보이그룹 중 내가 가장 멋지다고 생각하는 팀인 ‘샤이니’이다. 그들 역시 걸출한 메인보컬을 안타깝게 잃었지만, 앞서 언급한 것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대중 앞에 돌아와 활동을 하고 있다. 최근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남은 네 명의 멤버들이 5인조 시절 때보다 비약적으로 발전한 실력과 존재감으로 메울 수 없을 것처럼 보였던 구멍을 훌륭하게 메우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메인보컬이 아니었던 모든 멤버들이 메인보컬의 역할을 수행해내는 모습을 보며, 그들이 얼마나 필사적으로 노력했을지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다.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에는 ‘매일 이별하며 살고있구나’라는 노랫말이 등장한다. 우리는 매일 무언가를 떠나보내고, 잃고, 되찾지 못하며 남은 인생을 살아갈 것이다. 그 상실을 극복하는 방법은 내가 최근 찾은 것만 세 가지가 있다. 잃은 것과 딱 들어맞는 것을 찾는 것, 전혀 다른 대체재를 찾고 새로운 길을 모색하는 것, 여전히 남아있는 자원들을 적극 활용하고 발전시키는 것. 마냥 슬퍼만 하고 좌절만 하고 살기에는 인생이 너무 길다.

2024-10-28

눈을 보고 말을 믿고

최근 새롭게 생긴 습관이 있다. 사람들의 눈을 관찰하는 것. 소심하고 낯을 가리는 성격 탓에 처음 보는 사람의 눈을 쳐다볼 자신은 없지만, 누군가와 한 뼘 가까워졌다고 느끼면 나의 시선은 거침없이 그곳으로 향한다. 눈은 누구도 속일 수 없는 명명백백한 세계처럼 느껴진다. 파도처럼 일렁이는 눈동자를 마주하노라면 온 우주가 그 안에 담겨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한 버릇은 다름 아닌 나 자신을 돌아보는 것부터 시작되었다. 바쁜 나날 속에서 내 안의 괴로움과 상반되게 잘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는 요즘이다. 정신없이 일하는 것을 하나의 미덕으로 보는 우리 사회의 기조 때문일까. 목표를 성취하기 위해서 일상을 전부 버려서라도 일에 매달리는 모습에 오히려 박수를 받으면서 ‘내가 아니면 안 돼’라는 강박에 사로잡히기도 했다. 내 안에는 웅크리고 울고 있는 사람이 있는데, 겉으로는 더 크게 웃고 더 빠르게 걸었다. 엉켜있는 내부를 타인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은 마음이었다. “고민 있어요?” 함께 일하는 동료의 질문이었다. 그 말을 들은 나는 무언가에 머리를 얻어맞은 기분이 들었다. 나는 내 앞에 놓인 업무를 잘하고 있다고 생각했고 나 자신을 증명하고 싶은 마음으로 최선을 다했다. 겉으로는 전투적인 기세로 일하고 있지만 심리적으로는 피로와 무기력증에 사로잡혀 있던 것을 모르는 건 아니었다. 그러나 타인이 그것을 눈치챌 것이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입으로 뱉는 말은 얼마든지 거짓으로 꾸며낼 수 있다. “고민 같은 거 없어요. 하나도 힘들지 않아요.” 나는 그렇게 대답했지만, 상대는 계속해서 미심쩍음을 느꼈다. 나아가 어째서 내가 계속해서 거짓말을 하고 있는지 알고 싶어 했다. 안타깝게도 그에 대한 대답을 나는 알지 못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단지 괜찮다는 말만 앵무새처럼 반복하는 것뿐이었다. 인간의 감정을 파악할 줄 안다는 것은 삶을 사는 데 필요한 정보를 습득할 수 있다는 것과 같다. 나 자신은 언제 기쁨과 충만함을 느끼는가? 무엇을 선택하고 또 무엇을 피해야 안정감을 느끼는가? 그것은 살아가며 필연적으로 맞닥뜨리는 선택지를 늘리거나 줄이는 일이 된다. 그렇게 자기 자신을 파악하는 일은 타인으로 확장될 수 있고 상대를 이해할 수 있는 시선으로 바뀌게 된다. 나는 힘들지 않다고 말했지만, 그것을 동료가 믿지 않은 이유는 내 안에 깊숙이 숨겨져 있는 무언가를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정오의 소나기처럼 요동치는 눈동자를 포착한 순간 입 밖으로 나오는 모든 말은 거짓이 된다. 나는 계속해서 내 상태를 제대로 말해보려고 시도했지만 결국 실패하고 말았다. 어쩌면 그 실패야말로 나의 의도였을지도 모른다. 불명확한 감정들 사이에서 간신히 길어 올린 말은 나를 우려하는 동료에게 걱정을 끼치고 싶지 않다는 마음뿐이었다. 내게도 상대의 눈을 바라보는 습관이 생겼다는 것은 어떤 면에서 기만에 가까울지도 모른다. 나는 나를 들키고 싶지 않지만 상대의 진짜 마음을 들여다보고 싶다는 이기적인 욕망에서 기인한 행동이다. 그렇지만 알고 있다. 나는 결국 아무것도 알 수 없게 되리라는 것을. 폴 오스터가 말했던 것처럼. “누구도 경계를 넘어 다른 사람 속으로 들어갈 수는 없다. 누구도 자기 자신에게 다가갈 수 없다는 바로 그 간단한 이유로.” 문은강 ‘춤추는 고복희와 원더랜드’로 주목받은 소설가. 2017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작가로 등단했다. 안희연의 시 ‘나의 시드볼트’에는 이런 대목이 있다. “그는 귀신같이 내 눈빛을 읽는다/누가 누굴 구할 수 있다고 생각해? 신이라도 된 것처럼 말하네/너는 나의 진짜 얼굴을 본 적이 없어” “한 방울씩 물 떨어지는 소리가 들릴 거야, 그게 너의 영원이야”, “아무리 둘러보아도 물 새는 곳은 없다/그래도 물이 떨어진다” 시인이 표현하는 것처럼 우리는 영원히 ‘나의 진짜 얼굴’을 볼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어디선가 한 방울씩 물 떨어지는 소리는 들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어디서 물이 새고 있는지 찾아봐도 눈으로는 발견할 수 없는 아주 미세한 틈을 통해 우리는 매일 증발하고 있다. 그러한 기류를 눈치 채고 안부를 물어와 주는 동료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괜찮다고 말할 수 있는 근거는 충분하다. 오늘도 나는 상대의 눈을 바라본다. 그에 관해 무언가를 알거나 이해할 수 없다고 할지라도. 명확한 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알지만, 그 안에 담긴 아름다움을 보는 것만으로도 상대에게 조금이나마 더 가까이 다가가고 있다는 기분이 든다.

2024-10-28

문학이 온다

21년 전 너는 아무것도 모르면서 문예창작과에 왔다. 원태연, 용혜원의 글과 판타지 소설 몇 권이 문학인줄 알았다. 첫 수업에서 교수님으로부터 시를 배웠다. 너는 벼락을 맞은 듯한 충격과 감동을 받았다. 이런 세상이 있구나! 살면서 아무것도 되어본 적 없는 너는 시 안에서는 무엇이든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날 너는 시인이 되겠다고 마음먹었다. 동기들이 술 마시러 가자고 해도 학교 옥상으로 도망가 노을과 별의 시간까지 홀로 시를 썼다. 그러면 교수님도 너를 기다렸다. 어둑한 복도에 홀로 불 밝힌 연구실에 가 시를 보여드리면 애써 쓴 문장들에 빨간 줄이 사정없이 그어졌다. 할퀸 상처처럼 아팠지만 너는 그 상처가 좋았다. 그렇게 찢어진 마음에서 돋은 새살이 시가 됐다. 매년 겨울이면 ‘신춘병’을 앓았다. 우체국도 믿을 수 없어 원고를 품에 안고 추운 광화문 거리를 돌아다니며 신문사에 직접 투고했다. 원고를 내고 나면 가슴에 품어 키우던 새가 날아간 것 같았다. 새의 온기가 사라진 자리엔 뼛속까지 아린 추위가 파고들었다. 심사평과 본심진출 명단에 이름이 없다는 건 너라는 존재 자체가 이 세상에 없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이불 뒤집어쓰고 있으면 눈물이 흘렀다. 너는 그걸 10년 넘게 했다. 너는 대학을 졸업하고 대학원에 갔다. 사랑하면서 두려웠기 때문이다. 공부를 더 하면 혹시 시를 잘 쓸까봐, 학교라는 울타리를 벗어나 홀로 외롭게 쓰면 결국 손에서 시를 놓칠까봐. 그렇게 계속 쓰다 보니 재주가 없는데도 지방신문 신춘문예에 입선하고, 문예지 신인상을 받아 등단했다. 시를 잘 쓰고 싶어 평론을 썼더니 운 좋게 평론으로도 등단했다. 이십대에는 시가 돈이 되지 않아도 행복했다. 아무도 걷지 않은 오솔길의 왕이 된 것만 같았으니까. 서른 살이 되자 너는 돈이 되지 않는 시를 계속 붙잡을 수 없어 달아났다. 달아날수록 시는 너를 더 잡아당겼다. 직장에 다니며 돈을 벌었다. 하지만 돈보다 시가 좋았다. 그래서 결국 돌아왔다. 집안 어른이 네게 말했다. 요리학원에 가서 음식을 배워 장사라도 하라고. 친구가 말했다. 문학이 돈이 되냐고, 너도 이제 네 앞가림을 해야 하지 않겠냐고. 후배가 말했다. 형도 하상욱처럼 쓰면 되는 거 아니냐고. 선배가 말했다. 시는 아무도 안 읽으니까 맛집 소개하는 글이나 쓰라고. 시인이라고 하니 모임에서 처음 보는 사람들이 신기하다는 듯 환호하며 요청했다. 시 한 수 읊어달라고, 삼행시 좀 지어달라고. 그때마다 너는 문학을 한다는 게 괜히 죄스럽게 느껴졌다. 문학을 무용한 일이나 음풍농월쯤으로 여기는 세상의 무지와 폄하, 냉대와 오해에 마음을 다쳤다. 하지만 그럴수록 너는 문학으로 무언가를 이루고 싶어졌다. 뭘 이룰 수 있는지도 모르면서 뭐라도 이루겠다고 다짐했다. 이병철 문학평론가이자 시인. 낚시와 야구 등 활동적인 스포츠도 좋아하며,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지금 너는 대학에서 강의를 한다. 국문학 박사학위를 받고, 시집과 평론집 등 열 권의 책을 낸 너는 문학연구자이자 시인, 평론가로서 쌓은 나름의 경력보다 학교에서 학생들과 문학을 향유하는 삶이 훨씬, 확실히 ‘이룬 것’이라고 믿는다. 비록 비전임 계약직 교원이지만 상관없다. 문학이라는 캄캄한 동굴 안에서 네가 더듬거리며 지나 온 시간들이 이제야 조금씩 환해진다. 저 멀리서 학생들이 눈을 반짝이며 자신들이 걸어 나갈 길을 밝히면서, 네가 걸어 온 길에도 빛을 비춰주는 까닭이다. 세대는 달라도 문학이라는 영원 안에서 모두 다 어린아이처럼 천진한 수업 시간을 너는 사랑한다. 한강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받은 날, 오전에 너는 한 고등학교에서 윤동주의 시와 삶에 대해 강연했다. 수상 소식을 들은 저녁에 너는 네가 상을 받은 것도 아니고 한강 작가와 일면식도 없으면서 마음의 균형이 무너져 어쩔 줄 몰랐다. 왜 그렇게 눈물을 흘렸는지 너도 모른다. 고작 삼류 시인이자 무명 평론가지만 지금껏 문학을 놓지 않고 해왔다는 것, 그리고 앞으로도 붙들고 온몸으로 나아가리라는 것, 너보다 더 문학을 사랑하는 학생들에게 문학의 아름다움을 이야기하는 사람으로 살고 있다는 것이 뭉클했겠지. 감격에 겨운 너는 한강 작가가 ‘소년이 온다’에서 구사한 독특한 2인칭 화법을 빌려 이 글을 쓴다. 너는 이제 더 이상 ‘문학’을 해명하지 않아도 된다. 오해 받지 않고 무시당하지도 않는 문학이 온다. 이미 왔다.

2024-10-21

고단함을 잊는 법

현생의 고단함을 느낄 때 나는 잠시 눈을 감고 어릴 적 걱정 없이 즐거웠던 때로 잠시나마 돌아가 본다. 모래밭에 손을 묻고 두꺼비집 노래를 부를 때나 꽃이나 풀을 돌맹이로 짓이기며 소꿉놀이에 쓸 저녁 반찬을 만들 때, 나는 힘껏 내려가 있던 입꼬리를 다시금 큰 힘을 들이지 않고도 옅게 웃어 보일 수 있다. 삭막한 사무실 책상에 앉아 현생이 괴로울 땐 이렇게 작은 구멍 하나를 만들어 잠시나마 어린 시절 추억 속으로 빠져본다. 그리고 퇴근 후나 주말이 되면 어린 시절 만끽했던 자유로운 일상을 꼭 즐기리라 다짐하며 다시금 타자기에 손을 올린다. 주말이 되면 어릴 적 즐겨 먹었던 불량식품들을 찾아 일부러 초등학교 앞 작은 문방구에 들린다거나, 계절마다 엄마가 조각조각 잘라주던 제철 과일들을 먹기 위해 마트로 장을 보러 간다. 어린 시절 사소한 습관부터 작은 기억까지 다 복기해보며 따라하다보면 삶의 지루함과 어려움에서 조금이나마 멀리 벗어나 볼 수 있다. 이렇게 나처럼 어린 시절의 향수로 물건을 구매하는 키덜트 족은 대략 십년 전부터 주요 소비자층으로 자리 잡았다. 키덜트족이란 키드(kid:아이)와 어덜트(adult:어른)의 합성어로 어른이 지만 여전히 어린 시절의 분위기와 감성을 추구하는 성인들을 일컫는 말이다. 퇴근길에 뽑기 기계 앞에서 동전을 한 가득 손에 쥐고 인형 뽑기에 열중하다 집에 가는 길에 작은 인형 하나 손에 들려 있다면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의 큰 기쁨과 만족감이 든다. 돈을 얼마를 썼거나 인형에 큰 의미가 있진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스스로 이상하다고 여기거나 철이 없다고 느끼진 않는다. 그저 그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오늘 나의 현실적인 문제들로부터 벗어나 마음이 만족하다면 되는 것이다. 나와 같은 키덜트 족은 옷이나 특정 상품을 구매할 때에 물건의 사용 가치를 재고하는 것이 아닌 어린 시절 즐겨 보던 만화나 기억속 함께 커왔던 캐릭터 상품을 구매함으로써 심리적 만족감을 채운다. 가격 대비 마음의 만족인 가심비를 추구하는 경향으로 상품의 가격이나 쓸모, 가치 보단 주관적 마음의 만족감을 더 중요시하게 여기는 것이다. 더 나아가 fun(재미)과 consumer(소비자)를 결합한 펀슈머는 단순히 물건을 사는 것이 아닌, 물건을 구매할 때에 재미를 추구하는 소비자를 뜻한다. MZ세대 중심에서 시작된 펀슈머는 가격 대비 재미를 쫒는 이른바 ‘가잼비’를 추구하며 소비 과정에서 재미와 즐거움의 경험을 중시한다. SPC 삼립의 대표 스터디셀러 제품인 정통 크림빵은 60주년 기념으로 기존 사이즈 대비 약 7배 정도 큰 사이즈로 ‘크림대빵’을 출시한 바 있다. 성인 두명의 얼굴을 가릴 정도로 점보 사이즈로 출시되었던 대왕 크림빵은 보자마자 웃음을 자아낼 정도로 커다란 사이즈에 이색적이었고 처음 출시됐을 때엔 품귀 현상까지 생겨 중고거래 플랫폼에서 출시가 대비 약 2배 넘는 가격으로 거래되었을 정도였다. 윤여진 2018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 부문에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현재보다 미래가 기대되는 젊은 작가. 이어 대왕 시리즈라 불리는 8인분의 양이 담긴 세숫대야 냉면, 팔도 도시락 8인분이 합쳐진 대왕 팔도 점보 도시락, 공간춘 대왕 짬짜면 등이 출시되어 가잼비와 가심비를 더한 상품들을 마트나 편의점에 심심찮게 볼 수 있게 되었다. 상품들 모두 출시 전부터 화제성이 있었으며 출시되자마자 중고 거래 사이트에서 웃돈이 붙어 거래되었을 정도라니 익숙한 상품에 웃음 요소를 더한 상품이 현재까지 꾸준히 인기를 끌고 있다. 덕분에 나는 더욱 즐겁게 마트나 편의점, 문방구 등 여러 장소를 돌아다니며 재미를 찾고 추억에 젖어 현실의 고단함을 조금 잊어볼 수 있게 된다. 누군가는 나의 이런 소비 습관을 보며 철없어 보인다고 고개를 저을 수도 있겠지만 그러면 뭐 어떤가. 이 단순한 행위로도 작은 기쁨을 맛볼 수 있고 생의 즐거운 면을 조금이나마 추구할 수 있다면 다시금 어린 시절 반짝였던 두 눈과 튼튼한 다리를 가지고 이곳 저곳 쏘다녀볼 수 있다. 오늘은 또 어떤 새롭고 재미있는 일이 기다리고 있을까. 고단함을 잊는 법은 이렇게 단순하고 쉽다. 덕분에 새로운 한 주를 다시금 활기차게 살아갈 수 있게 한다. 시원해진 가을 바람을 맞으며 운동화 끈을 꽉 매고 다시금 뚜벅뚜벅 걸어가본다. 이렇게 걷다 보면 고단함보다는 일상이 즐거움으로 가득 차게 될 것이다.

2024-10-21

기후위기로부터 우리를 지켜낼 노래들

의미 있는 앨범 하나를 내게 되었다. 우리의 일상을 위협하는 기후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만들어진 세 곡의 노래가 담겨있는 디지털 EP 앨범 ‘기후 레시피’다. 기후위기와 관련된 세 곡이 수록된 이 앨범은 오는 10월 15일 정오에 모든 음원사이트에서 만나볼 수 있다. 기후위기라는 문제에 본격적인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작년, 한 예술 사업을 만나면서부터이다. 한국예술인복지재단은 ‘예술로’라는 이름의 예술인 파견 사업을 꾸려나가고 있는데, 이는 사업에 지원한 각종 기관과 예술인들을 매칭하여 사회적으로 의미있는 활동을 하도록 지원하는 내용의 사업이다. 나는 작년부터 이 사업에 참여하게 되었고 여러 예술인들과 더불어 서울에 있는 마을 카페인 ‘즐거운 반딧불이’와 매칭이 되었다. 즐거운 반딧불이가 예술인들과 함께 해 나가려고 했던 일은 기후위기에 예술활동으로 한 번 맞서보고자 하는 것이었다. 나를 비롯한 참여 예술인들은 자주 모여 이 문제들에 대하여 공부를 하고 세미나를 갖기도 하며 우리가 직면한 상황의 심각성에 대해 배울 수 있었고, 우리가 가진 능력을 활용해 어떠한 방식으로 대응해 나가면 좋을지에 대해 함께 고민하기도 하였다. 우리가 내어 놓은 결과물은 몇 가지가 있었지만 내가 중심을 잡고 이끌었던 것은 일명 ‘기후송’이라 부르기로 한 캠페인 송을 제작하고 이를 디지털 싱글로 발매하는 프로젝트였다. 작년 10월에 발매된 ‘땅으로부터’가 그렇게 만들어진 노래이다. 당장 그 파급력이 발현되지는 않았지만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릴 수 있는 뜻 깊은 노래를 만들어 배포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유의미한 결과를 이끌어낼 수 있으리라는 생각에 팀원들과 기관, 재단 관계자들까지 모두 공감해주었다. 대중들에게 널리 보다 즉각적인 결과를 이끌어낼 수 있는 방안은 없을까 하는 숙제를 남긴 채 첫 해의 사업은 마무리 되었다. 그리고 2년차, 즐거운 반딧불이와의 논의 끝에 기후송 제작에 조금 더 무게를 싣는 방향으로 사업을 진행하기로 결정했고 이에 따라 여섯 명의 예술인으로 이루어진 현재의 모습으로 예술인 집단을 재구성했다. 리더인 싱어송라이터 강헌구 님을 필두로 나(싱어송라이터 강백수)와 싱어송라이터 이매진 님이 각각 한 곡 씩을 만들어 세 곡으로 이루어진 앨범을 제작하기로 결정했다. 싱어송라이터 각자가 하나씩 기후 캠페인을 진행하여 이를 통해 곡의 내용을 확보하기로 하였다. 이 캠페인 전체를 지원하고 활동 전반의 컨트롤 타워 역할은 베테랑 연극인 권기대 님이 맡게 되었고, 영상예술인인 정훈 님과 최휘찬 님이 이 모든 과정을 기록하여 다큐멘터리로 제작하게 되었다. 강백수 세상을 깊이 있게 바라보는 싱어송라이터이자 시인. 원고지와 오선지를 넘나들며 우리 시대를 탐구 중이다. 첫 번째 곡인 ‘나의 작은 기후 선언’은 내가 만들고 부른 곡이다. 즐거운 반딧불이를 찾아주신 손님에게 기후위기를 막아내기 위해 직접 실천할 수 있는 작은 일들 한 가지씩을 적어달라고 부탁드렸다. 수십 분의 손님들이 사소하지만 중요한 실천거리들을 적어주셨고 이를 바탕으로 노랫말을 완성했다. 나는 이 노래를 통해 많은 이들이 자신이 행할 수 있는 작은 실천에 대해 고민해보길 바란다. 작고 사소한 걸음일지언정 모두가 함께 내딛는다면 그것은 그 어떤 도약보다 위대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두 번째 곡은 강헌구 님의 ‘기후 레시피’. 강헌구 님이 즐거운 반딧불이에서 운영하는 ‘탄생화(탄소 중립 생활화)’ 모임과 함께 친환경 세제 만들기 활동에 참여하며 만들게 된 노래다. 지구를 해치지 않고 청결을 유지할 수 있게 해주는 친환경 세제 레시피를 아주 깜찍하고 발랄한 멜로디에 담아 누구라도 한 번 쯤 만들어보고 싶게 만드는 중독성 있는 노래다. 세 번째 곡은 타이틀곡으로, 이매진 님의 ‘나는 나무잖아’. 이매진 님은 이번 활동 기간 중에 가로수의 생태에 관심을 갖자는 취지의 ‘트리허그’ 캠페인을 진행하였다. 수많은 시민들이 가로수를 힘껏 끌어안으며 감사와 애정의 마음을 일깨우게 된 의미 있는 행사였다. 이매진 님은 노래 속에서 직접 한 그루의 가로수가 되어 도시의 한켠을 지켜내는 외롭고도 고단한 마음을 서정적으로 노래했다. 우리는 이 노래들이 반드시 히트곡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만 누군가의 귀에 닿고 마음에 닿아 그들의 삶의 궤적을 미세하게나마 이 행성의 생태계를 지켜내는 방향으로 틀어볼 수 있다면 대성공이라고 생각한다. 모두가 당장 제로웨이스트를 실천하고 비건채식주의자가 될 수는 없다. 다만 노래 몇 곡 들어보며 나와 이 아름다운 행성에 대해 생각해볼 시간을 잠시 가져볼 수는 있으리라 생각한다.

2024-10-14

은밀하게 선 넘기

사람들 안의 선은 결코 무의미하지 않다. /언스플래쉬 아, 정말 어렵네. 요즘 책상 앞에 앉아 가장 많이 하는 말이다.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생각이나 손끝에서 나오는 문장이 모조리 틀린 것만 같다. 이것은 글쓰기가 제대로 풀리고 있지 않다는 투정만은 아니다. 내 안의 무언가가 조금씩 변하고 있는데 내가 가진 언어가 그것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숙련되지 못한 까닭이다. 답답하다. 그러다 보니 자꾸만 편한 방식으로 문장을 쓰게 된다. 좋지 않다. 같은 자리를 계속해서 돌고 있는 기분이다. 이런 고민에 빠진 것이 나뿐만은 아닌 것 같다. 친구들을 만나면 이와 비슷한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삼십 대가 되고 비로소 안정을 찾았다는 안도감은 허상이었던 걸까. 애인과 만난 지 육 년이 넘어가는데 결혼으로 나아가기엔 용기가 없다는 친구부터 십 년 넘게 다닌 직장을 그만두고 싶지만 먹고 사는 일이 걱정된다는 친구까지.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라는 것을 느끼지만, 단 한 발을 내딛고 있지 못하다는 자각이 든다는 것이다. 어려운 일이지. 그들의 이야기에 맞장구를 친다. 내 이야기도 얹고 싶으나 그럴 수 없다. 그들에 비해 내 고민의 규모는 민망스러울 정도로 작기 때문이다. 비슷한 하루의 연속이다. 일을 하고 글을 쓴다. 정해진 시간에 출퇴근을 반복하고 마감일을 지켜야 한다. 다이어리에 빼곡하게 차 있는 일정에 하나씩 줄을 그으며 하루를 살아내는 중이다. 책임의 무게가 착실히 늘어나고 있다. 분명 나는 한 뼘 더 자랐다. 사회가 말하는 사회적 인간에 조금 더 가까워졌다. 이십 대에는 거침없이 국경을 넘어 다녔다. 커다란 배낭 하나 메고서. 단지 한 발 더 갔을 뿐인데 사용하는 언어가 바뀌고 풍경이 새로워졌다. 무엇 때문일까. 보이지 않는 선이 세계를 구분하고 있다. 선. 그것은 항상 내 눈앞에 놓여 있었다. 지금도 나는 어떤 선 안에 놓여 있는 것 같다. 사실 이것은 내가 최선을 다해 그어놓은 것이다. 망망한 백지만큼 막연한 건 또 없으니까. 최대한 반듯하게, 예쁘게. 그리하여 이 안의 내가 안온함을 느낄 수 있도록. 이것을 만들기 위해 나는 아주 많은 공을 들였다. 선을 넘으면 어떤 일이 일어나게 될까? 요즘의 나는 그런 것이 궁금하다. 내가 열심히 만들어 놓은 것을 자꾸만 밟고, 지우고, 넘고 싶어지는 것이다. 맘껏 엉망으로 만들어놓고 시치미 떼고 싶다. 금기된 영역으로 나아가는, 사회의 선을 거침없이 밟는 사람을 보면 해방감을 느낀다. 나 역시 그러려고 해봐도 도무지 되질 않는다. 강한 힘이 나를 자꾸만 주저앉힌다. 이상한 일이다. 나를 보호한다고 믿었던 견고함이 내 목을 옥죄고 있다는 기분으로 바뀌다니. 과감하게 선을 넘는 것이 어렵다면, 은밀하게 스리슬쩍 넘어볼까 싶었다. 처음에는 아주 사소한 것으로 시작했다. 평소라면 먹지 않았을 음식 먹기. 혹은 만나지 않을 사람들을 만나기. 나는 점점 더 과감해졌다. 속에 꾹꾹 누르며 하지 않았을 말을 해보기도 했다. 분위기를 깨지 않기 위해 억지로 미소 짓는 것도 관둔다. 상대의 말에 습관적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것도 멈춰 본다. 이것은 나 혼자만이 느끼는 아주 미세한 변화. 물론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 문은강 ‘춤추는 고복희와 원더랜드’로 주목받은 소설가. 2017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작가로 등단했다. 이것은 글을 쓸 때도 적용할 수 있다. 너무 무거워서 평소엔 쓰지 않을 것 같은 단어를 사용해 본다. 문장 사이사이에 조금씩 장난을 쳐 본다. 꼭 필요하다고 믿었던 것을 완전히 삭제해 보기도 한다. 더하고 덜어내고 어쩐지 이상해 보이는 것들을 그대로 둔다. 언어라는 건 참 이상해서 가까이 다가가려고 하면 할수록 더욱 멀어지는 것만 같다. 안으로 가두려고 할수록 손에서 벗어난다. 그러니 놓아본다. 마음껏 선을 넘도록. 세상에, 이런 것이 재미있다니. 어린 시절 운동장에서 땅따먹기하던 것이 떠오른다. 너 선 밟았어, 나가! 그 외침이 정말이지 싫었다. 맥이 풀려 한쪽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있노라면 저 멀리서 즐거워하는 친구들이 보였다. 나도 저 안으로 들어가고 싶어. 여전히 나는 그런 것을 바라는 것일까. 선 밖은 외롭다. 그러나 자유롭다. 규칙에 얽매이지 않고 무엇이든 할 수 있다. 알고 있다. 내 안의 선이 무의미하지 않다는 걸. 이 또한 삶을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부분이다. 그러나 그것은 언제든 수정될 수 있다. 언제고 넘나들 수 있어야 한다. 좀 더 유연해질 필요가 있다. 선을 조금씩 옮겨 긋다 보면 내가 예상하지 못한 모양이 만들어질지도 모른다. 어떤 것일까. 이런 기대를 가지고 오늘도 책상 앞에 앉는다.

2024-1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