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은 참 이상했다. 2월에 출산 예정이던 새언니가 조산 기운으로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다. 이제 17개월 된 첫째 조카를 돌봐줄 사람을 찾지 못해 부모님이 급하게 아이를 데리고 본가로 가고 있다는 연락을 받았다. 나는 감기 기운과 잡다한 일 처리를 요구하는 연락 때문에 괴로워하던 중이었다. 나의 몸 상태가 실수로 이어지는 것은 아닌지 전전긍긍하며 체크리스트를 정리했다. 급한 것부터 차근차근 처리하자 싶었는데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나는 수시로 스마트폰을 들여다봤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본 뉴스, 제주항공 여객기 사고 소식 때문이었다. 어떤 기적을 바라며 간절히 기도하던. 그러나 끝내 고개를 떨굴 수밖에 없던. 그렇게 되었구나, 하고 중얼거리던 날.
다음 날 강의가 끝나자마자 곧바로 본가로 향했다. 잠깐이라도 조카의 얼굴을 보고 오자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엉망인 컨디션에 장거리 운전까지 더하니 몸이 금방이라도 두 동강 날 것만 같았다. 조카의 상태는 나보다 훨씬 심각했다. 고열에 시달리며 새벽 내내 잠을 이루지 못했다. 하루아침에 부모와 떨어져 지내야 하는 심리적 압박이 육체적 형태로 발현된 것 같았다. 부모님은 회사로 출퇴근해야 했으므로 아이를 돌보는 손이 턱 없이 부족했다. 결국 내가 본가에 일주일을 머무르며 함께 조카를 돌보기로 했다.
조카의 상태는 호전되었지만 나는 그렇지 못했다. 제대로 쉬질 못하니 감기 기운은 점점 더 심해졌고 끝내야 할 일은 줄어들기는커녕 쌓여만 갔다. 약기운에 취해 꾸벅꾸벅 졸고 있었는데 조카가 자지러지게 우는 소리가 들렸다. 화들짝 놀라서 달려가 보니 주위가 엉망이었다. 손이 닿는 곳은 물론이고 서랍장 안의 모든 물건을 꺼내서 아무렇게나 던져 놓고 있던 것이다. 조카가 양손에 쥔 뾰족한 물건을 보자 등골이 서늘해졌다. 익숙한 공간에 당연하게 놓인 것들이 무시무시한 흉기로 보이는 순간이었다.
평소였다면 그런 조카의 행동에 이토록 큰 두려움을 느끼지 않았을 것이다. 아이의 왕성한 호기심 정도로 치부하고 차분히 상황을 정리했을 것이다. 부드러운 인형이나 소리가 나는 장난감처럼 무해한 것들로 유인하며 아이의 관심을 끄는 건 어렵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완전히 지쳐 있었다. 엉엉 우는 아이를 뒤로한 채 위험한 구석이 있는 것들을 모조리 숨겼다. 절대 다쳐서는 안 돼. 조그만 생채기라도 나선 안 돼. 그런 마음으로 억척스럽게 조카를 안았다.
그렇게 새해가 밝았다. 덕담을 건네는 연락이 없었다면 새해라는 것도 인지하지 못했을 것이 분명한 새해였다. 안부를 묻는 메시지를 쉽게 열어볼 엄두가 나지 않았다. 좋은 일 가득한 새해 되세요. 그런 상투적인 답장을 쓰는 것조차 힘이 들었다. 건강히 지내라는 말, 그런 것들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내 머릿속은 어두운 형체가 단단히 똬리를 틀고 있었다. 혼돈과 혼란, 죽음에 관한 것들.
다음 주에 예정된 수업을 위해 다시 집으로 올라오면서 나는 조금 울었다. 하나의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었다. 사소한 일에도 덜컥 겁이 났다. 평범한 하루가 큰 불행으로 확장될 것만 같았다. 와중에 자꾸만 잠이 쏟아졌다. 운전대를 잡은 손이 느슨해졌다. 도로 위로 가벼운 눈이 흩날렸다.
생각해 보면 이러한 감정 상태가 꽤 오래 지속되고 있는 듯하다. 세상의 나쁜 일들이 하나도 해결되고 있지 않은 것 같은 불안에 잠식당하는 중이다. 슬픔과 분노는 사람을 지치게 만든다. 상황에 체념하게 되고 허무와 냉소로 나아간다. 나는 그런 마음을 경계하고자 부단히 노력하는 사람인데 둔탁한 손이 내 무릎을 툭 꺾는 기분이다. 이것은 비단 나만의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황망한 비극은 우리 삶과 얼마나 맞닿아 있는가. 더 이상 겪고 싶지 않은 고통이 반복되고 있다.
따져 보니 그날로부터 일주일이 지났다. 아득한 터널을 지나는 기분은 여전하다. 뉴스를 통해 사람들이 움직인다는 소식을 본다. 자신의 일상을 위해, 기꺼이 도움의 손을 내밀기 위해. 그런 면에서 연재 중인 지면이 있다는 것이 감사하다. 변명의 여지없이 마감이라는 책임을 지켜야만 하는 일이 있다는 사실, 그 하나만으로 나는 순식간에 보통의 날로 돌아온다. 어쩌면 우리를 슬픔의 한복판으로 데려가는 것도, 일상으로 되돌려놓는 것도, 이 가냘픈 책임감의 몫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마음이 원위치로 돌아오기까지 시간이 걸릴지는 몰라도, 궤도가 포물선을 그리며 조금씩 이동하고 있다. 보통의 날을 향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