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은 한 해를 떠나보내고 새로운 한 해를 맞이하였다. 떠나보낸 어떤 것에 대한 인상은 마지막 모습에 의해 좌우되기도 하는데, 그런 측면에서 보았을 때 2024년은 많은 이들에게 아름답게 기억되기는 어려울 것 같다. 대통령의 계엄 선포를 둘러싼 정치권의 갈등과 혼란, 그에 따른 심각한 경제적 타격, 결코 일어나서는 안 되었을 끔찍한 참사. 2024년은 분노와 슬픔으로 얼룩진 한 해로 많은 이들의 기억 속에 남을 것 같다.
그러나 나라는 한 개인에게는 조금 특별한 의미를 가진 해로 기억될 것이 분명하다. 2024년은 내가 나의 아들을 처음 품에 안은 해이고, 아빠라는 존재로 다시 태어난 해이기 때문이다. 새해를 맞이하는 기분은 이전과 다르다. 나의 세상을 화려하게 만들어가는 일보다 아들에게 아름다운 세상을 열어주는 일 쪽에 삶의 비중을 더 두기로 결심한 터라 이전과는 조금 다른 염원을 가슴에 품게 되는 것이다. 아들은 하루가 다르게 자라며 빠른 속도로 세상을 향해 나아가게 될 것이다. 나는 소망한다. 아들이 만날 세상이 부디 험하고 추운 곳이 아니라 부드럽고 따뜻한 곳이기를. 내가 물려줄 세상이 한 번 살아볼 만한 아름다운 곳이기를.
그런 세상을 구체적으로 설명하자면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다. 먼저, 나는 아들의 세상에 희망이라는 것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당장은 힘겹더라도 버텨내고 나면 지금보다는 분명히 나아지리라는 확신을 갖고 살 수 있는 세상이길 바란다. 나는 이 사회와 국가에 희망이 있다고 믿고 싶은 사람이다. 그런데 요즘은 자꾸만 마음이 약해지곤 한다. 1%대까지 떨어져버린 경제 성장률, 국가의 존폐를 걱정하게 만드는 인구 지표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뚜렷한 대책을 내어놓기는커녕 이미 이 나라를 지키며 열심히 경제활동을 하는 사람들마저 맥 빠지게 만들고 급기야는 떠나고 싶은 마음을 품게 만드는 정치권의 행태. 개개인이 노력한다면 정말로 다시 좋았던 시절을 회복하고 다음 세대에게 지난 세대가 살았던 세상보다 풍요로운 세상을 물려줄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해서 이제는 아무런 확신도 가질 수가 없다. 언젠가 아들에게 희망이라는 단어를 설명해 주어야 할 텐데, 그것이 너무나 어려운 일이 되어버렸다. 더 늦기 전에 정신 차려야 할 사람들이 정신을 차리고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하여 국민들로 하여금 이 나라를 포기하지 않게 해 주었으면 좋겠다.
또한, 서로에 대한 믿음 속에서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물려주고 싶다. 누군가가 나를 해할 것이란 의심 없이, 내가 잘못하지 않았는데도 불행한 사건이 내게 일어날 수 있다는 공포 없이 살 수 있는 세상 말이다. 우리는 이미 이웃의 SNS 게시물을 이용하여 딥페이크 성범죄를 저지르는 장면을 목격한 바 있다. 부동산 전세 사기를 당해 괴로워하는 모습도 주변에서 여러 번 볼 수 있었다. 규칙을 어기는 것을 넘어 자신의 욕망을 위해 타인에게 신체적·정서적 위해를 가하고, 아무렇지도 않게 남의 것을 빼앗곤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아직 너무나 작고 연약한 나의 아들을 지켜내야 한다는 사실이 끔찍할 정도로 괴롭고 두렵다. 내 아들을 그러지 않는 인간으로 길러내야 하는 것으로 충분했으면 좋겠다. 내가 타인을 해하지 않는다면 타인도 나를 해하지 않는다는 믿음을 가르치고 싶다.
마지막으로 이야기 하고 싶은 것은 어떤 상황에서도 정의가 승리하는 공정한 세상이다. 그것은 악행을 저지르고 타인에게 피해를 끼친 사람이라면 지위의 고하나 재산의 많고 적음과 관계없이 똑같이 처벌 받는 세상이다. 다른 이들을 두렵게 만든 이, 자기 자신을 지키기 위해 공동체에 피해를 끼친 이, 사람들을 현혹시키고 세상을 어지럽게 만드는 이가 권력으로부터 비호 받지 않는 세상을 물려주고 싶다. 그것이 전제되지 않는다면 어떻게 내 소중한 내 아들에게 바르게, 정직하게 살라고 가르칠 수 있겠는가. 지금 우리 집 책장에 꽂혀 있는 동화책에는 선한 자는 상을 받고 악한 자는 벌을 받는다는 이야기가 적혀있을 것이다. 그것이 진리라고 가르치고 싶다.
너무나 당연한 것들이 당연하지 않게 되었다. 내가 품고 있는 새해 소망이 대단한 것이 아닌데 왜 이렇게 허황된 것처럼 느껴지는 것인가. 누가 세상을 이렇게 만든 것인가. 나는 내 세대가 안타까운 세대로 기록되길 바란다. 마지막으로 혼란을 겪은 세대, 비록 자신들은 한 때 불안과 절망 속에서 살았을지언정 다음 세대에게는 평화와 희망을 물려준 세대라고 평가받길 간절히 바란다. 나의 아들은 부디 내가 살았던 것보다 나은 세상에서 살 수 있다면, 그리고 우리 모두 작년보다는 나은 올해를 살 수 있다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