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산조각 난 유리창 앞에 서 있는 기분을 아는가. 나는 아주 잘 알고 있다. 대학교 일 학년 때의 일이다. 한 남학생과 싸움이 붙었다. 시작은 사소했으나 과격한 말다툼이 이어졌다. 순간 그의 주먹이 내 얼굴 쪽으로 날아왔다. 나는 꼼짝없이 저 커다란 주먹에 맞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머릿속에는 별생각이 다 들었다.
아, 남자애의 주먹이란 정말 단단하고 크구나. 저기에 볼이 닿으면 만화에서 보았던 것처럼 우스꽝스럽게 뭉개질지도 몰라. 오래된 시멘트벽처럼 후드둑 부스러질 수도 있고. 맞은 후에는 곧장 경찰에게 신고해야겠지. 그러면 저 아이는 감옥에 가게 되는 걸까. 그나저나 나 괜찮은 거야? 숨 쉬지 못할 정도로 아플 거야. 차라리 정신을 잃었으면 좋겠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남학생의 주먹은 내 얼굴을 피해 창문으로 가 닿았다. 유리창은 그야말로 산산조각이 났다. 남학생의 주먹에서 피가 뚝뚝 흘렀다. 수업을 듣던 선배들이 뛰쳐나왔다. 너희 미쳤느냐고, 제 정신이냐고 불같이 화를 냈다. 남학생은 병원으로 이송되었다. 널브러진 유리 파편, 바닥에 묻은 핏자국과 그것을 수습하려는 사람들. 주변이 바쁘게 돌아가는 가운데 나는 현실감각을 잃은 사람처럼 깨진 유리창 앞에 서 있었다.
그 일은 한동안 나와 친구들의 안줏거리였다. 우리는 그날의 사건이 정말 별것 아니었던 것처럼 웃어넘겼다. 내가 얼마나 무력했는지에 관한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하고 싶지 않았다는 말이 더 정확할 것이다. 그날을 정밀하게 들여다보는 행위는 너무나 괴로운 일이었으니까. 학과 복도를 오갈 때마다 깨진 상태로 봉합되지 못한 유리창이 보였다. 새로운 유리창으로 고쳐지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고 나는 시도 때도 없이 그의 주먹을 상기해야만 했다.
그때 나는 폭력이란 아주 복잡한 형태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손을 대지 않고도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것도 알았다. 결론적으로 그 아이는 팔이 부러졌고 나는 상처 하나 나지 않았다. 다친 사람은 그 아이 하나였다. 누군가는 우스갯소리로 말했다. 너는 입으로 남자애의 팔을 부러뜨렸네. 나는 정말 아무런 상처도 입지 않았던가? 그날을 떠올리면 가슴이 조일 듯하고 숨이 막혀 온다. 두꺼운 손이 내 눈 앞을 스쳐 지나가던 그날의 공포. 폭력은 필연적으로 흔적을 남긴다. 눈에 보이지 않더라도 매우 선명하게 일상을 맴돈다.
어느 식사 자리에서 가족이 모여 유년에 관한 이야기를 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오빠와 자라면서 크고 작은 싸움이 잦았는데, 부모님은 그때의 일을 대수롭지 않게 꺼냈다. 그때 말이지, 얘가 얼마나 유난이었느냐면, 오빠가 아주 살짝 건드리기만 해도 세상이 떠나갈 듯 울었던 거야. 그러면 얘 오빠는 얼마나 억울해. 조금 건드렸다는 이유만으로 맨날 혼나는 거지. 모두가 동시에 웃는 식탁 위로 나는 들고 있던 유리컵을 깨뜨리는 상상을 했다. 유리컵이 깨지고 날카로운 소리를 지르며 일어나는 가족들. 유리컵 하나 깨뜨렸을 뿐인데 왜 세상이 떠나갈 듯 소리를 질러요? 그 앞에서 와하하 웃는 내 모습을 그렸다.
그러나 나는 그들을 다치게 하고 싶지 않았다. 당신들의 말이 나를 아프게 하고 있다는 말을 꺼내는 순간, 또 다른 생채기를 내는 일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폭력은 폭력을 낳기 마련이다. 뾰족한 마음을 억지로 삼키며 식사를 재개했다. 식도가 따끔했다.
지난 3일 대통령이 비상계엄령을 선포했다. 이후 “국정 최고 책임자로서의 절박함에서 비롯된 것”이라 했다. 내 귓가에서 무언가가 쨍그랑 깨지는 소리가 났고 그간 겪어온 폭력의 기억이 몰려왔다. 네가 다친 곳이 어디 있다고 그래… 살짝 건드렸다고 울었어… 그와 비슷한 말이 국민을 위해 일한다는 이들의 입을 통해 들려온다. 그 말은 오묘한 형식으로 재생산된다. 한밤의 해프닝으로 일축한다. 심정은 이해하지만,이라는 말이 따라붙는다. 그래요. 그것은 분명히 잘못된 행동이 맞습니다. 그러나 이번 사건은 과거와는 다릅니다… 그래서 누가 다쳤습니까?
온몸이 따끔하다. 이 고통은, 이 상실감은 어디서 기인한 것일까. 내가 겪어온 폭력의 경험, 선배들에게 무수히 들어왔던 과거의 역사, 그간 읽고 보았던 처절한 기록이 내 안에 고스란히 새겨져 있다. 주먹은 날아왔고 등 뒤의 유리창은 깨졌다. 우리는 깨진 유리창 앞에 서서 외친다. 어서 빨리 이것을 복구하라고. 틈 사이로 닥쳐오는 찬바람이 얼마나 매서운 것인지, 상흔을 가진 이들에게 그것이 얼마나 쓰라리게 다가오는지 느끼라고. 이 일에 손실을 따지며 계산기를 두드리는 이들을 본다. 이제 나는 거대한 벽에 가로막힌 기분 또한 알 것 같다. 겨울이 끝나기엔 멀었다는 실감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