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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사람들

등록일 2025-06-29 18:50 게재일 2025-06-30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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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스스로를 ‘좋은 사람’이라 말할 수 있는지./언스플래쉬

당신은 당신을 기꺼이 ‘좋은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흔한 수사적 표현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어떤 면에서 윤리적 판단을 요구하는 질문이기도 하다. 사회에 해를 끼치지 않는 것, 타인의 고통에 무감하지 않은 것. 그것으로 충분할까? 더 적극적인 선의는 대체 무엇일까? 이렇듯 막상 좋은 사람의 기준을 정하려면 막막해진다. ‘좋음’의 무게를 제대로 가늠해 보려는 순간, 자신을 스스로 좋은 사람이라고 칭하는 것이 어쩐지 민망하기도 하다.

 

그렇다면 ‘나쁜 사람’은 어떻게 생겼을까? 당신은 머리에 뿔이 돋았거나 사악한 웃음을 짓는 만화 속 악당을 떠올릴지도 모른다. 혹은 등 뒤로 욕망을 감춘 음흉한 얼굴, 삐딱하게 구부러진 자세 같은 것들을 조합하며 어디서 본 듯한 악인의 상을 재구성할 수도 있다. 이것은 꽤 멀리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가끔 매일 마주치는 동료 모습 속에서 그 단서를 발견하는 날이 생긴다. 점심 메뉴를 독단적으로 정하는 직장 상사에게서 ‘사실은 이 사람이 진짜 나쁜 사람은 아닐까?’ 하고 의심하게 되는 순간도 찾아온다.

 

재밌는 것은 자기 자신이 ‘좋은 사람’인 이유를 설명하는 것만큼이나 ‘나쁜 사람’이라고 선언하는 일도 꽤 어렵다는 점이다. 타인을 선악의 기준에 두는 것보다 나 자신을 그 안에 놓는 것이 훨씬 더 껄끄럽다. 선과 악의 경계는 언제나 흐릿하고 상황과 입장에 따라 흔들리기 마련이다. 나는 나의 서사와 당위성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이므로, 나 자신을 정의하는 일은 언제나 유보되고 만다.

 

미국 문학의 거장 코맥 매카시는 이러한 지점을 집요하게 파고드는 작가다. 그의 대표작 ‘로드’는 문명이 붕괴한 세계를 배경으로 아버지와 아들이 남쪽을 향해 걸어가는 여정을 그린다. 실제로 매카시에게는 늦은 나이에 낳은 아들이 있었다. 아들이 아홉 살이던 해 그는 아들과 여행을 떠났다. 호텔 방에서 아이는 곁에서 곤히 잠들어 있었고 그는 창밖을 바라보다가 문득 어떠한 이미지를 떠올렸다. 그 순간 그가 본 세계는 폐허였다. 치솟는 불길에 모든 것이 전소된 세상과 자신의 옆에서 잠든 아들. 소설 ‘로드’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소설 내부에서 중요한 상징 가운데 하나는 ‘불’이다. 그들이 불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은 단순한 설정을 넘어 이야기 전체를 관통하는 지점으로 작동한다. 추위와 어둠 속을 걷는 이들에게 불은 실제로도 생존의 수단이다. 동시에 이 여정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신호이기도 하다. “우리는 불을 옮기는 사람들”이라는 남자의 말은 단순한 생존 의지를 넘어서 삶을 지속하게 만드는 어떠한 신념에 가깝다. 

 

그러나 모든 것이 무너진 세계에서 사람들은 더 이상 믿을 수 없는 존재가 되었다. 살아남기 위해 서로를 공격하고 약탈하며 인간성을 잃어버렸다. 그들을 마주할 때면 남자는 망설이지 않는다. “내 일은 널 지키는 거야. 하나님이 나한테 시킨 일이야. 너한테 손을 대는 사람이 있으면 누구든 죽일 거야.” 그러자 소년은 묻는다. “우리는 지금도 좋은 사람들인가요?” 그러한 질문에 남자는 거침없이 대답한다. “그래. 우린 지금도 좋은 사람들이야.”
소년에게 남자가 반복해서 들려주는 말은 실제로 그들이 좋은 사람이라는 보증이 될 수 없다. 그럼에도 소년은 계속 질문한다. 이유는 하나다. 그 말이 진실이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언제나 그렇다. 선함은 증명되는 것이 아니다. 다만 그것이 분명히 존재한다고 믿어야만 하는 순간은 반드시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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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은강 ‘춤추는 고복희와 원더랜드’로 주목받은 소설가. 2017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작가로 등단했다.

끔찍한 소식이 빗줄기처럼 쏟아지는 현대 사회에서 ‘좋은 사람’이라는 선언은 어떠한 의미도 가지지 못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 게 어디 있어, 하고 냉소하는 편이 더 쉬울지도 모른다. 먹구름에 가려져 앞을 가늠할 수 없을 때에도, 우리가 붙들 수 있는 건 각자의 마음속에 남은 작은 불이다. 그 불이 완전히 꺼지지 않는 한, 우리는 계속해서 말할 수 있다. 우리는 좋은 사람들이야. 

 

그것은 불을 최초로 발견한 인간이 어둠 속에서 중얼거렸을지도 모를, 인류가 끝끝내 포기하지 못하는 최후의 주문인지도 모른다. 분노와 단죄가 팽팽하게 맞서며 서로를 잠식하는 시대에 그 말은 더 이상 증명되지 않는 가치이며 동시에 증명되기를 바라는 마음이기도 하다. 

 

이제 당신은 기꺼이 당신을 ‘좋은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여전히 어려울 것이다. 그 머뭇거림이야말로 당신을 선함을 포기하지 않으려는 사람으로 만든다. 어렵지만 간절히 바라는 일이지 않은가. “누구도 해치지 않는 불을 꿈꾸었다(안희연, ‘불이 있었다’)”라는 시인의 문장처럼.
/문은강(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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