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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륭한 노인 되기

등록일 2025-06-29 18:51 게재일 2025-06-30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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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을 잘 산다는 것은 아마 인생의 순간순간…/챗GPT

조금 불쾌한 일이 있었다. 프로듀싱 하고 있는 음원이 있어서 처음 가 보는 스튜디오에 방문하기로 약속이 되어 있었다. 스튜디오 사장님께 주차를 문의드렸고, 사장님은 건물 앞에 공간이 비어있다면 주차를 해도 된다고 말씀하셨다. 건물 앞에는 내 차가 겨우 들어갈 만 한 협소한 공간이 있었고 나는 여러 번 차를 왔다 갔다 하며 힘겹게 주차를 마쳤다. 

 

그런데 내 차가 건물 앞에 도착했을 때부터 따가운 시선을 보내던 노인이 한 명 있었다. 차에서 내리려고 안전벨트를 풀자마자 노인은 다가와 짜증스럽게 운전석 창문을 두드렸다. “왜 여기다가 차를 대, 차 빼(요).” 내가 ‘요’라는 글자를 괄호 안에 넣은 이유는 그 ‘요’자가 있었는지 없었는지 애매했기 때문이다. 아슬아슬하게 반말과 존댓말 사이를 가로지르는 그 퉁명스러운 말에 나도 기분이 상했다. 스튜디오 사장님이 여기 대라고 이야기를 했더니 “거기는 세입자고, 내가 건물주요. 빨리 차 빼(요).” 건물주랍시고 거들먹거리는 것도 짜증났고 저 반말인지 존댓말인지 모를 명령조의 말도 짜증났는데 거기에 노인은 다시 왔다 갔다 하며 차를 빼고 있는 내게 혼잣말을 가장한 훈계와 재촉을 뱉어대고 있었다. 

 

차를 다른 곳에 주차하고 돌아와 여전히 거기서 짜증 섞인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노인에게 선생님께서 건물주건 하느님이건 내가 반말과 명령을 들을 이유는 없으니 예의를 갖추어 이야기를 해 달라고 말을 했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는 내 뒤통수를 향해 노인은 뭐라 뭐라 소리를 질러 댔는데 굳이 귀기울여 듣지는 않았고, 해프닝은 그렇게 마무리 되었다. 

 

아마 그 노인은 내가 스튜디오를 떠난 뒤 스튜디오 사장님을 찾아가 내 이야기를 하며 버르장머리니 싹수니 하는 말을 꺼내며 욕을 해댔을 것이다. 한국사회에는 여전히 ‘장유유서’라는 말이 존재하고 연장자에 대한 공경을 아주 중요한 덕목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으니 말이다. 문제는 많은 연장자들이 공경을 복종으로 이해한다는 것이다. 공경이라 함은 존경하는 마음으로부터 비롯된 공손한 태도일 것이다. 연장자에 대한 무조건적인 복종이 아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존경하기 힘든 언행 앞에서마저 깍듯이 대하길 바란다면 그것은 공경이라는 말에 대해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내가 좀 더 그릇이 큰 사람이었다면 상대의 무례마저 너그러이 품어낼 수 있었을지 모르지만, 애석하게도 나는 그 정도의 인간은 되지 못한다. 내가 갖고 있는 아량의 총량은 한정되어 있다. 그러므로 그런 사람들에게 베풀 것들을 아끼고 아껴서 내가 사랑하는 사람, 내게 중요한 사람들을 좀 더 너그럽고 따뜻하게 대하는 데 사용해야 하는 처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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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백수 세상을 깊이 있게 바라보는 싱어송라이터이자 시인. 원고지와 오선지를 넘나들며 우리 시대를 탐구 중이다.

하필 그런 내가 예의 없는 노인을 만났고, 노인 입장에서는 하필 간장종지 정도의 그릇을 가진 나를 만나는 바람에 서로가 그 날의 상당부분을 불쾌한 마음으로 보내게 된 것이다. 
여러모로 못난 구석이 많은 나이지만 그래도 기본적으로 이 세상에 먼저 와서 나보다 먼저 삶을 일구고 산 사람들을 공경하고 싶은 마음 정도는 가지고 있다. 그들이 일군 세상이 비록 마냥 아름답지만은 않더라도 어쨌거나 그곳에서 내가 자랐고 그들의 긍정적인 모습과 부정적인 모습 속에서 가르침을 얻으며 부족하게나마 성장하여 사회 구성원으로 자리를 차지하며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 가급적이면 앞선 세대들에게 존경하는 마음을 가지려고 노력하며 살아가고 있다. 

 

사실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는 여전히 어린이들에게 그런 마음들이 가치 있는 것이라 가르치는 나라이기 때문에 다음 세대에게 존경하는 마음과 공경하는 태도를 받아내기가 비교적 쉬운 나라일 것이라 생각한다. 다른 어떤 나라에서는 전쟁영웅이 되어야 하고 산업역군이 되어야 하며 거기다 고매한 인품과 현재의 훌륭한 사회적 지위까지 갖추어야 받아낼 수 있는 것들을 이 나라에서는 아주 약간 친절하게 대해 주는 것, 아니 그저 무례하지 않게 대하는 것 정도로 받아낼 수 있다는 것이다. 

 

가만 생각해보니 어려서부터 훌륭한 어른이 되어야 한다고만 배웠지, 어른이 된 다음에도 훌륭한 노인이 되기 위해 노력해야한다는 것은 배워본 적이 없었다. 착하고 건강하게 잘 자라라는 말은 있는데 착하고 건강하게 잘 늙으라는 말은 없는 것이다. 아무리 노인을 규정하는 연령대를 상향시키는 논의가 이루어진다고 해도 어쨌거나 사회는 급격하게 고령화되고 평균수명은 늘어나 노인으로 살아야 하는 시간이 인생에서 많은 부분을 차지하게 되었다. 인생을 잘 산다는 것은 아마 인생의 순간순간 좋은 인간인 상태를 유지해내는 일일 것이다. 그러한 노력은 나이와 관계없이 인간이라면 누구나 해야 하지 않을까.
/강백수(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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