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는 일주일에 한 번 미술 레슨을 받으러 간다. 왔다 갔다 하는 시간과 레슨 시간을 합하면 두 시간 반 정도가 걸리는데, 그동안 육아는 온전히 내 몫이 된다. 평소 둘이 함께 하는 육아가 한 사람의 몫이 되면 체감적으로 서너 배 정도 힘이 드는 느낌이 들곤 하지만 그날은 유독 쉽지 않았던 날이었다. 잘 자던 아기가 배가 고파 깨서 분유를 먹였고, 먹자마자 아기는 큰 볼일을 봤고, 아기를 씻기고 바닥에 잠시 눕히고 기저귀를 가지러 간 사이 아기는 거실 바닥에 작은 볼일을 보고 있었고, 다시 아기를 씻겨야 했고, 이번에는 딸꾹질을 시작했고, 그것을 멈추기 위해 또 분유를 먹이는 길고 긴 과정을 수행해야 했다. 이 모든 상황이 종료되고 다시 아이를 안아 재우고 있을 때 아내가 집에 돌아왔다. 두 눈이 퀭해진 나를 보고 아내가 힘이 들었는지 물었고, 나는 세상 가장 초췌한 표정으로 짧은 시간동안 우리에게 있었던 일들을 하소연했다.
별 것 아닌 이 장면이 우스웠는지 아내는 휴대폰으로 내 모습을 촬영했고, 이것을 살짝 편집해서 SNS에 숏폼 영상으로 올려 보면 어떨까 제안했다. 나는 휘뚜루마뚜루 편집을 해서 대충 나의 SNS계정에 올려두었는데, 뜻밖의 일이 일어났다. 이 영상이 SNS의 알고리즘을 타고 무섭게 퍼져나가기 시작한 것이다. 영상을 업로드한지 48시간 정도가 지난 현재 이 영상의 조회수는 14만을 돌파했고 지금 현재도 그 숫자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이러한 일은 당연히 반갑다. 내 본업으로 얼굴을 알리는 것은 아니지만 어쨌거나 많은 사람들에게 내 SNS가 노출되는 것은 내 창작물들을 홍보하는 데에도 큰 도움이 되는 일이다. 그런데 조금은 허탈한 마음이 들었다. 작년 하반기, 나는 내가 그동안 발표했던 음악들과 시편들을 갖고 수십 편의 숏폼 영상을 제작했다. 작품을 고르고, 자막을 달고, 그와 어울리는 영상을 편집해서 업로드 하는 수고로운 과정을 매일 반복했는데 결과는 신통치 않았다. 피땀 흘려 노래와 시를 창작한 시간까지 더하면 정말 공을 많이 들인 것인 셈인데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아 많이 아쉬웠던 참이다. 그런데 정말 아무 생각 없이 올린 일상 영상이 빵 하고 터져버리다니. 정말 인생은 알 수 없다.
이틀만에 14만이라는 숫자는 그야말로 내게 있어서는 대단한 수치이다. 유튜브에 올려둔 내 뮤직비디오 중 가장 높은 조회수를 기록하고 있는 영상은 ‘집에 가고 싶다’라는 곡의 뮤직비디오이다. 이 영상의 현재 조회수는 39만. 그러나 그것은 업로드 한 지 5년 만에 달성한 결과이다. 그냥 육아가 힘들었다고 아내에게 푸념하는 영상이 그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퍼져나가고 있다니, 실소를 참기가 어려운 일이다.
어떤 일이 이런 식으로 예상을 벗어나는 결과를 만들어내는 일은 내 삶에 종종 있는 일이었다. 앞서 말한 ‘집에 가고 싶다’라는 곡 역시 아무런 기대감 없이 내어 놓은 곡이다. 이 노래가 알려지게 된 사정이 아주 뜬금없었다. 야근하는 직장인들을 위로하기 위해 만들었던 이 노래가 군 복무를 하고 있는 현역 장병들 사이에서 입소문을 타게 되었던 것이다. 요즘 생활관에는 스마트 스피커가 하나씩 있다는데, 장병들이 무심코 ‘집에 가고 싶다’고 외치면 스피커가 내 노래를 재생해주곤 했던 것이 그 시작이었다고 한다.
내가 쓴 일곱 권의 책 중 가장 잘 팔린 것은 ‘사축일기’라는 책이었다. 이 역시 출판사의 제안으로 아무런 기대 없이 쓰기 시작한 것이었다. 앞서 야심차게 내어 놓았던 나의 첫 산문집이 상업적으로 큰 성과를 거두지 못해 의기소침했던 터라 받았던 계약금이 민망하지 않을 정도로만 팔려줘도 좋겠다고 생각하며 글을 썼다. 출판사에서 요청한 것은 가벼운 글이었는데, 나는 그 요청에 맞는 글을 쓰면서도 속으로 ‘이런 글이 독자들에게 사랑받을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을 갖고 있었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이 책은 내가 쓴 첫 번째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짧은 기간 동안 여러 차례 증쇄를 찍으며 유명 대형 서점의 베스트셀러 차트에 오르는 결과를 내어 주었다.
매사에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것은 맞는 말이고, 성공하기 위해 가져야 하는 아주 기본적인 태도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우리가 매번 똑같은 야심과 기대감으로 프로젝트를 마주하는 것은 아니다. 어떤 일은 그야말로 영혼을 갈아 넣었는데 실패하기도 하고, 어떤 일은 가볍게 툭툭 해냈는데 성공하기도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신이 행한 일 앞에서 우쭐해져서도 안되고 함부로 의기소침해져서도 안 된다. 결과는 알 수 없는 것이니 그저 매번 담담하게 계속 해 나가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