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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카바티 안양!

등록일 2024-11-18 18:14 게재일 2024-11-19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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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 곳곳에 내걸린 승격 축하 현수막.

인구 55만명의 위성도시 안양에는 프로스포츠 구단이 세 팀이나 있다. 농구의 정관장 레드부스터스, 아이스하키의 안양한라 아이스하키단, 그리고 축구의 FC안양이다. 스포츠에 대한 지역민들의 관심이 굉장히 뜨거운데, 특히 FC안양 향한 사랑은 애틋하고도 감동적이다. FC안양의 창단에는 눈물겨운 서사가 있기 때문이다.

안양에는 1996년부터 2004년까지 안양 LG 치타스 프로축구팀이 있었다. 지역민들의 자부심이라고 할 만큼 안양 LG를 응원하는 팬들의 함성은 굉장했다. 서포터즈 ‘RED’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큰북을 치면서 선수들을 응원했다. 하지만 2004년 안양 LG는 열성적인 서포터즈와 지역민들을 버리고 서울로 연고지를 옮겨 버렸다. 당시 지역에서 강한 반발이 일어 연고지 이전을 반대하는 삭발 투쟁과 가두행진, LG전자 불매운동 등이 펼쳐졌지만 소용없었다. 팬들은 하루아침에 그들이 사랑하는 팀을 빼앗겼고, 그때부터 무려 9년 동안 안양에는 축구팀이 없었다.

그 9년 동안은 눈물겨운 세월이었다. 지역민들을 배신하고 팀명을 바꾼 FC서울은 빅클럽으로 승승장구했다. 안양 축구팬들은 FC서울을 ‘북쪽 패륜아’로 부르며 야유했지만 그 야유는 공허한 마음을 더욱 시리게 만들었다. 안양에 다시 축구팀을 유치하기 위해 시민들이 나섰다. 공청회를 열고, 서명운동을 하고, 축구계에 호소하면서 다수의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해 애썼다. 서포터즈를 비롯한 시민들의 갖은 노력에 안양시가 응답하면서 마침내 2013년, 시민이 주인인 시민구단 FC안양이 창단됐다.

우리나라 프로축구 K리그는 승강제로 운영된다. FC안양은 창단 이후 계속해서 2부 리그인 K리그2에 있었다. K리그2 우승팀은 K리그1로 자동 승격된다. 10년 동안 K리그1 승격의 문을 끊임없이 두드렸지만 좀처럼 열리지 않았다. 하지만 2024년 11월, FC안양은 K리그2 우승을 확정지으며 꿈에 그리던 K리그1 무대를 내년부터 밟을 수 있게 됐다. 승격이 확정된 날 팬들과 선수단, 구단주인 최대호 시장까지 모두가 얼싸 안고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2000년대 초반 안양 축구를 사랑하던 20대 청년들은 어느새 40대 중년이 됐지만 가슴속 붉은 불꽃은 꺼지지 않았다.

이병철 문학평론가이자 시인. 낚시와 야구 등 활동적인 스포츠도 좋아하며,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이병철 문학평론가이자 시인. 낚시와 야구 등 활동적인 스포츠도 좋아하며,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승격을 확정하고 홈구장인 안양종합운동장 ‘아워네이션’으로 돌아오는 선수단을 위해 특별한 이벤트가 열렸다. 수백 명의 서포터즈가 안양 축구 응원의 상징인 홍염을 환하게 밝히고 응원가를 부르며 구단 버스를 맞이한 것이다. 선수들은 기쁨을 이기지 못하고 버스에서 내려 서포터즈와 함께 춤추고 노래했다. 시즌 최종전이 열린 지난 11월 9일에는 아예 시 차원에서 공식 축하 행사를 열었다. 구단주 하려고 시장 출마한다는 우스개가 있을 만큼 축구에 진심인 3선의 최대호 시장이 주장 이창용 선수와 함께 머리를 보라색으로 염색했다. 승격 공약을 지킨 것이다. 안양종합운동장에서 시청까지 2㎞ 도로를 안전하게 통제한 뒤 3000여 명의 시민과 서포터즈, 선수단이 함께 어깨를 부여잡고 행진했다. 거리 곳곳에 승격을 축하하는 보랏빛 현수막이 내걸렸다. 안양은 예로부터 포도 농사로 유명한데, 포도의 보랏빛이 안양 축구를 상징하는 색깔이 됐다. 시민들이 이룬 보랏빛 물결이 늦가을 노을과 어우러져 장관이었다. 축구 사랑이 뜨거운 독일이나 영국에서 볼 법한 광경이 경기도 안양에서 펼쳐진 것이다.

시민들과 선수단은 한 목소리로 ‘수카바티 안양!’을 외쳤다. ‘수카비티’는 산스크리트어로 ‘극락’을 뜻한다. 안양(安養)은 괴로움이 없고 지극히 안락한 불교의 ‘안양정토(安養淨土)’에서 온 지명이다. 시민들은 모처럼 걱정도 고민도 없이 마냥 기쁘고 평안한 주말을 보냈다. 하지만 내년부터는 전쟁이다. 안양 시민들은 FC서울을 안양종합운동장으로 불러들여 경기하는 날만을 기다려 왔다. 그 경기에서 승리한다면? 아마 도시 전체가 열광의 도가니가 될 것이다. 이제 안양에 이사 온 지 5년이 된 나는 조금씩 안양시민이라는 지역적 정체성을 쌓아가고 있는데, FC안양의 감동적인 서사 덕분에 내가 사는 동네를 더 사랑하게 됐다. 내년 봄 나는 시즌입장권과 보랏빛 유니폼을 구입할 것이다. 그리고 외쳐야겠다. 수카바티 안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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