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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삶이라는 한 알의 구슬

요즘 비즈발 만들기에 푹 빠졌다. 최근 들어 만나는 지인들에게 새로운 비즈 만들기 취미에 대해 이야기하면 모두 비즈발이 대체 무엇이냐고 물어온다. ‘옛날 주택 현관문이나 가게 출입구에 많이 걸려 있던 것 있잖아요!’ 라고 말하면 모두가 그제야 알아챈다.비즈발은 햇빛 차단용 또는 통풍 그리고 가림막 형태로 많이 사용된다. 문이나 창문을 가릴 정도의 크기라 어느 정도 사이즈가 있지만, 요즘 내가 푹 빠진 비즈발은 창문가나 벽에 거는 손바닥 남짓한 크기의 비즈발이다.한참 유행중인 비즈발 만들기는 이렇게 작은 사이즈 크기로 원하는 그림을 도안으로 그려 만드는 캐릭터 비즈발이 트렌드다. 자신이 좋아하는 대상을 도안으로 그려, 형형색색의 구슬을 사용하여 미니 비즈발을 만드는 것이다.만드는 방법 또한 쉽다. 늘어나지 않는 실과 색색의 구슬들만 있으면 충분하다. 실 끝이 풀리지 않도록 잘 묶어준 뒤 그림을 그린 도안을 따라 구슬을 색에 맞춰 끼워주면 된다. 한 줄씩 완성된 비즈들을 모아보면 꽤 그럴듯한 비즈발이 완성된다. 실 한 줄에 구슬을 차례대로 꿰는 단순 작업 반복임에도 묘하게 중독되는 것은 손을 움직이면서 머릿속의 잡생각을 비우고 마음이 편안해지는 특성 덕분일 것이다.포털 사이트 검색어 트렌드에 비즈발을 검색했을 경우 지난 4월 중순부터 상승세를 보이기 시작하더니 7월인 현재에는 약 2배가량 증가된 수치를 보여주고 있다. 유튜브에 비즈발 만들기 키워드를 검색했을 경우 가장 많은 콘텐츠의 조회수는 87만 회를 기록하고 있으며, 인스타그램의 경우엔 #비즈발 해시태그가 포함된 콘텐츠 수가 약 1000개 정도 노출되어 있을 정도다.가만 보면 비즈 꿰기는 참 재밌다. 구슬 하나라도 잘못 꿰게 되면 전체적인 그림에 묘하게 티가 나기 때문이다. 가까이서 집중하고 보면 어디에 구슬이 잘못 꿰어졌는지 표가 나긴 하지만 멀리서 본다면 그저 하나의 근사한 작품으로 보인다. 여기서, 지난 밤 또다시 돌려보았던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스터츠, 마음을 다스리는 마스터’ 속의 스터츠 박사의 말을 떠올려 본다.삶의 고통과 불확실성의 연속이다. 이 고통 속에서 인간이 해볼 수 있는 것은 앞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의지다. 이 의지를 갖기 위해서 해볼 수 있는 것은 ‘진주 목걸이 기법’이다. 여기서 진주는 행동이고 목걸이는 행동을 계속해서 이어가는 행위다. 아침에 일어나 식사를 차려 먹는 행위도 진주알 하나이고, 내 삶에 깊게 각인될만한 업적 하나도 진주알 하나다. 결론은 진주알에는 더 훌륭하거나 반대로 훌륭하지 않다는 가치가 없다. 내가 옳다고 믿는 것을 진주알로 대입해 그저 계속 행동하며 나아가는 것이다.진주와 비슷한 모양새의 비즈는 어떤가. 비즈알을 명주실에 꿸 때의 집중력, 하나하나 꿰어갈 때의 느릿해지는 호흡과 비즈알끼리 부딪혀 나는 귀를 자극하는 소리까지 비즈알 꿰기는 삶의 진주 목걸이를 만드는 기법과 동일한 면이 있다. 윤여진 2018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 부문에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현재보다 미래가 기대되는 젊은 작가. 비즈의 표면이 매끄러운 것이 있는 반면 어딘가 깨져있거나 금이 가 있거나 또는 구멍이 너무 작아 실에 잘 꿰어지지 않는 구슬도 있다. 진주알에 대입했던 삶도 마찬가지 아닐까. 하루는 엉망진창 일수도, 또 다른 하루는 삶의 가장 큰 기뻤던 하루로 남아있을 수 있겠으나 ‘나의 일상’이라는 본질엔 변함이 없다. 그러니 유독 그 하루가 일이 풀리지 않는다 한들, 또는 실패의 연속인 나날이라며 주눅 들어 있든 일상은 나의 삶이므로. 멋진 비즈발이라는 작품이 완성될 때까지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살아가는 것이다. 삶은 존재 가치가 있는 것이지, 성공과 실패라는 결론이 중요하지 않으므로.이런저런 생각과 함께 비즈를 실에 꿰어 하나씩 모으다 보면 어느새 멋진 비즈발이 완성되어 있다. 세상에, 이렇게나 빨리 내 손으로 이걸 만들었다고? 벽에 걸어 두었더니 여름의 토마토가 그려진 작품이 하나 완성되었다.물론 가까이서 보면 작은 티끌 하나로 어딘가 어색해 보이는 부분이 있고, 본드 자국도 난무하지만 뭐 어떤가. 서툴지만 사랑스럽고 때론 너무 진지해서 픽 웃음이 새어나오는 것이 평소 나의 모습이 아니던가. 그러니 오늘도 다시 책상 앞에 앉아 비즈를 뒤적이며 하나의 작품을 준비해본다. 평소 같았다면 불만투성이인 여름의 초입일 테지만, 좋아하는 일을 손으로 하며 그럭저럭 여름을 잘 나볼 마음의 준비를 해본다.

2024-07-15

기억의 낚시, 망각의 낚시

“Some dance to remember, Some dance to forget” 밴드 Eagles(이글스)의 ‘Hotel California(호텔 캘리포니아)’의 한 소절이다. 어떤 춤은 기억하기 위해 추고, 또 어떤 춤은 잊기 위해 춘다니, 이렇게 시적인 노랫말이 또 있을까? 때때로 노래는 시보다 더 위대한 시가 된다. 물론 음악보다 더 위대한 음악이 되는 시도 있다. 나는 낚시할 때 가끔 이 노래를 흥얼거린다. 그리고 저 대목에서 가사를 바꿔 부른다. “Some fishing to remember, Some fishing to forget”이라고.기억하기 위해 하는 낚시가 있고, 잊기 위해 하는 낚시가 있다. 또 한 번 장마가 오고, 단풍이 들고, 첫눈이 내리고, 다시 꽃이 피고, 매미가 울고, 얼음이 얼고, 계절이 돌아오고 돌아올수록 사랑하던 이들이 하나 둘 곁을 떠나간다. 그러나 세상은 그들을 추억할 틈조차 주지 않는다. 삶이라는 지독한 경주는 뒤를 돌아보지 못하게, 주변을 둘러보지 못하게 우리를 채찍질한다. 그나마 낚시가 나로 하여금 그 각박한 트랙에서 벗어나게 해준다. 낚시를 통해 나는 잠시라도 힘겨운 세상살이를 잊는다. 그게 잊기 위한 낚시다.복잡한 세상살이를 잊는 순간, 그동안 기억 구석에 방치됐던 풍경들이 하나 둘 뿌연 먼지를 털어낸다. 물론 낚시가 잘 되면 낚시에 집중하느라 다른 생각할 여유도 없다. 입질은 없는데 석양은 환장하도록 아름답게 저물고, 찌는 말뚝인데 케미라이트 불빛이 강물 위를 은하수처럼 흐를 때가 문제다. 찌 대신 온갖 추억들이 올라오기 때문이다.“이제 젊은 시절 내가 사랑했던 거의 모든 것들이 사라졌다. 제시마저도. 하지만 여전히 난 그들과 함께 있다. 물론 이제 너무 늙어 훌륭한 낚시꾼이 될 수는 없지만 난 지금도 이 강가에서 홀로 낚시를 한다. 이렇게 날이 저물어가는 계곡에 혼자 있을 때면 모든 존재가 내 영혼과 추억 속으로 스며든다. 빅블랙풋 강의 소리와 4박자의 리듬, 그리고 송어가 뛰어오를 거란 기대감… 결국 모든 것들이 하나로 합쳐진다. 흐르는 강물처럼.”영화 ‘흐르는 강물처럼’에 나오는 주인공 노먼 맥클레인의 독백이다. 팔순의 노조사는 강물에 몸을 담근 채 낚시 매듭을 묶으며 젊은 시절 자신이 사랑했던 목사 아버지, 자애로운 어머니, 일찍 세상을 떠난 동생 폴, 마을 축제에서 만나 결혼해 일생을 함께 산 아내 제시를 추억한다. 모두 다시는 만날 수 없는, 이제는 사라진 사람들이다. 이병철 문학평론가이자 시인. 낚시와 야구 등 활동적인 스포츠도 좋아하며,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그들은 다 사라지고 오직 강물만 남았다. 평생의 추억이 흐르는 빅블랙풋 강에서 낚시를 할 때면 강물 소리와 바람, 무지개송어 입질, 후회, 상처, 사랑했던 모든 사람들의 음성과 눈빛이 하나로 합쳐져 영혼 속으로 스며든다. 노인은 그 모든 것들을 기억하기 위해 낚시를 한다. 문학평론가 김현은 이렇게 말했다. “죽은 사람의 육체는 부재하는 현존이며, 현존하는 부재이다. 그러나 그의 육체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다 사라져 없어져버릴 때, 죽은 사람은 다시 죽는다”고. 내가 살아 있는 한, 살아서 기억하는 한 내가 사랑했던 이들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오직 잊기 위해 하는 낚시도 있다. 그런데 이 낚시는 정말 어렵다. 오래 사랑한 연인과 헤어지고서 그녀를 잊기 위해 뙤약볕 쏟아지는 갯바위에 올랐다. 발밑으로 파도가 부서지고, 거품 되어 사라지는 하얀 포말이 마치 부질없는 인연처럼 느껴졌다. 잊어야지, 잊어야지. 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루어를 던지고 또 던졌다. 그런데 젠장, 입질이라도 좀 있어야 잊을 게 아닌가? 깻잎만한 광어, 손바닥만 한 우럭조차 물지 않으니 빈 바늘에 딸려 오는 건 오직 그녀 얼굴뿐이었다. 잊으려 하면 할수록 더 선명해진다. 낚시를 하면 마음이 정리되기는커녕 더 심란해진다.그래서 어느 시인은 “어느 날인가는 앞강에 낚싯대를 드리우고 앉아 오래 당신을 생각하고 또 생각했던 것처럼 마음에서만 사는 아득한 것들은 또 어떻게 저 별의 시간을 건너가게 되는지”(강경보, ‘우주 물고기’)라고 묻기도 한다. “마음에서만 사는 아득한 것들”은 결코 저 별로 건너가지 못하고 이 별에 머문다. 갯바위, 좌대, 갑판, 강물 속, 방파제가 낚시꾼의 별이다.

2024-07-15

등장인물을 사랑하기

사랑할 수 없을 것 같은 존재를 사랑하는 일은 영화나 소설에 자주 등장하는 소재다. 인물의 감정을 다채롭게 보여줄 수 있으며 얼마간의 사건을 만들어내기 적격이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마음이 변화하는 건 어려운 일이다. 동시에 삶은 우리를 예상하지 못한 곳으로 데려가기도 한다. 두 가지 상반된 진실이 섞이면서 펼쳐지는 이야기는 흥미로울 수밖에 없고 결말을 알면서도 손에서 놓지 못하는, 유쾌한 함정에 빠지게 된다.사실 누구에게나 이런 식의 경험이 존재할 것이다. 그것이 대단히 드라마틱한 일이 아니더라도 말이다. 아이들이 앙앙 우는 소리가 지구상에서 가장 괴로운 소음이라던 친구는 이제 두 아이의 엄마가 되어 놀랍도록 어른스럽고도 다정한 면모를 보여준다. 만나기만 하면 으르렁대며 싸우던 단짝 친구와 결혼식을 올린 지인은 꿀이 뚝뚝 떨어지는 목소리로 서로의 이름을 부른다.내 경우엔 반려견을 들 수 있겠다. 내가 동물과 함께 산다는 생각은 전혀 해본 적 없었는데, 어느 순간 내 삶에 틈입한 이 존재는 나의 모든 것을 바꿔 놓았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강아지는 사랑하기에 너무 쉬운 존재가 아닌가. 동그란 코와 부드러운 털, 무엇보다 녀석은 먼저 마음을 주는 쪽에 가깝다. 온 힘을 다해 나를 사랑한다고 외치는 존재에게 냉담하기란 어려운 일이니까. 곤히 잠든 강아지를 바라보고 있자면 이런 생각을 든다. 언젠가는 정말 싫어하는 사람에게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을까? 그런 게 정말 가능한 영역일까?최근 나는 의외의 인물을 사랑하게 되는 경험을 했다. 미국 드라마 ‘오피스’를 보면서였다. 몇 번이나 보고 또 봤던 시리즈지만 이번에는 어쩐지 색다르게 다가왔다. 그건 아마 내가 일련의 사회생활을 경험하게 되면서 겪은 일들과 겹치는 지점이 많아서일 것이다. ‘오피스’는 던더 미플린이라는 제지회사를 배경으로 벌어지는 일화를 다룬다. 마치 실제 다큐멘터리를 찍듯이 진행되는 것이 큰 특징인데 덕분에 카메라 뒤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나 인물의 숨겨진 감정까지도 세세하게 드러나게 된다.나는 항상 지점장인 마이클 스콧이나 지점장 보조를 자처하는 드와이트 슈르트 같은 괴짜들에게 마음을 빼앗겼다. 로맨스를 담당하는 짐과 팸 커플의 서사도 꽤 좋아했다. 어쨌든 이들은 주인공 격에 속하고 카메라에 자주 비추어졌으니까. 이번에 다시 ‘오피스’를 시청하면서 의외의 인물이 내 마음 안에 들어왔으니, 다름 아닌 영업사원인 필리스다.필리스는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후덕한 인상의 중년 여성이다. 극 내부에서 큰 역할을 하지 않기에 길게 들여다볼 일이 없었다. 아니, 오히려 그녀가 하는 행동에 눈살이 찌푸려질 때가 더 많았다. 일을 처리할 때 빠릿빠릿하지 못하고 성차별적인 발언을 내뱉으면서도 자기 잘못을 알지 못하는 여자. 타인의 소문에 쉽게 키득거리고 가끔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남에게 짓궂게 구는 사람. 그러나 새롭게 포착된 모습은 조금 달랐다.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 누구보다 행복해하며 타인을 위해 손수 뜨개질을 하는 마음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술에 취해 미친 듯이 춤을 추고 열정적으로 사랑을 나누는 모습마저 귀엽게 느껴졌으니. 참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문은강 ‘춤추는 고복희와 원더랜드’로 주목받은 소설가. 2017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작가로 등단했다. 실제로 그녀가 나의 삶에 끼어든대도 이런 애틋한 마음을 가질 수 있을까. 필리스를 같은 동료를 직장에서 만난다면 나는 그녀의 오지랖 넓은 태도에 기가 질려버릴 것이다. 아주 괴로운 사람으로 여기면서 누군가가 그녀를 두고 꽤 괜찮은 사람이라고 말하면 단박에 고개를 저을 것이 분명하다.그러나 그것은 내가 타인의 일면을 볼 수밖에 없는 위치에 서 있기 때문에 가지는 생각일지도 모른다. 내가 든 카메라가 찍을 수 있는 건 세상의 일부에 불과하다. 그들이 집으로 돌아가면 어떤 사람이 되는지, 절친한 친구들과 나누는 농담이 얼마나 유쾌한지 나는 알지 못한다. 카메라 밖에서 짓는 눈물의 의미나 긴 시간 혼자만이 품고 있던 비밀 같은 것도 모른다. 등장인물의 뒷이야기를 이해하는 것은 중요하다. 엉켜있던 오해도 그의 삶을 들여다보는 순간 조금씩 풀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그래서일까. 요즘 나는 내 주변의 인물들이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평소라면 그저 지나쳤던 이들에게 인사를 건네고 친구에게 오랜만의 연락을 보내기도 한다. 어쩌면 이런 식의 마음에서 사랑이 시작되는 걸지도 모르겠다. 반가운 일이다. 내 삶에 등장하는 인물을 사랑하는 것이야말로 아주 쉽게 해피엔딩으로 가는 방법이기도 하니까.

2024-07-08

결혼은 미친 짓인가?

지난 주 경북매일에 실린 이병철 시인·평론가의 ‘결혼은 미친 짓이다’라는 글을 잘 읽었다. 그의 최측근 중 한 사람이자, 불과 몇 해 전까지 그의 의견에 동조하며 결혼 이후의 삶에 대해 상상조차 하려 하지 않은 사람으로서 여러모로 흥미롭다는 생각을 하며 읽어 내려갔다. 또한 아직 결혼한 지 2년이 채 되지 않은 신혼으로서 그가 모르는 세계에 대해 이야기를 해 주고 싶다는 생각이 동시에 들었다. 이 글은 물론 결혼을 옹호하는 글이지만 결코 병철에게 결혼을 강권하는 글이 아니다. 그냥 이런 삶도 있으니 참고 정도 해 보면 어떨까 하는 마음으로 적어보는 글이다.결혼은 미친 짓인가. 결론부터 말하면 일부 맞는 말이다. 약간은 미쳐야 가능한 것이 결혼이라고 생각한다. 며칠 전에 한 친구가 물었다. 결혼은 돌이킬 수 없는 것인데, 정확히 말하면 돌이킬 수는 있지만 그러지 않기로 하는 것인데 그것을 감히 실행에 옮기는 용기는 어디서 나는 것이냐고. 나는 그냥 번지점프 같은 것이라 대답했다. 뛰어들어 보기 전에는 어떤 감각인지 알 수 없으니 눈 한 번 질끈 감고 생각하며 새로운 삶으로 뛰어드는 것이 결혼이라 생각한다고. 일시적으로 이성의 끈을 내려놓아야 이 어려운 결심을 할 수 있는 것이라 이야기 해주었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물론 상대에 대한 믿음이 있었고, 그런 상대를 발견한 나의 안목에 대한 믿음도 있었지만 그래도 무언가 큰마음을 먹기 위해서는 상대에게 미치건 사랑이라는 감정 자체에 미치건 조금은 미쳐야 한다는 말에 동의한다.그래서 그 미친 결정에 대해 나는 후회하는가 묻는다면 전혀 그렇지 않다고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다. 물론 총각끼리 김삿갓 계곡에 가서 물놀이를 하는 모습과 시원하게 낮술을 하는 모습을 SNS를 통해 보며 부러움을 느끼지 않은 것은 아니다. 결혼을 한 이후로 가정 밖에서 누릴 수 있는 자유로부터 멀어지게 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같은 시간 나는 나대로 재미있게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집 앞 편의점에서 아이스크림 하나씩을 사서 입에 무는 일, 집에 와서는 보드게임을 하며 아이스커피 타오기나 설거지 내기를 하는 일, 흘러나오는 음악에 맞추어 말도 안 되는 춤을 추며 깔깔대는 일, 우리에게 못나게 구는 사람들에 대해 시원하게 흉을 보는 일처럼 별 것도 아닌 것들이 전부 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라면 소박하지만 신나는 일들이 된다.이런 일들은 꼭 결혼을 하지 않아도 사랑하는 사람만 있다면 가능한 일이지만, 그렇다면 이건 어떤가. 배우자에게는 연인에게는 보여줄 수 없는 나의 나약하거나 부족하거나 못난 모습들을 얼마든지 보여주고 그에 대해 위로도 받을 수 있다는 것. 가수 이적의 노랫말처럼 힘이 들 땐 눈물 흘릴 수가 있고 되지 않는 위로라도 할 수 있다는 것. 연인이란 점 하나만 찍으면 남이 되는 님이지만, 배우자란 온전히 평생 내 편이 되기로 한 사람이기에. 강백수 세상을 깊이 있게 바라보는 싱어송라이터이자 시인. 원고지와 오선지를 넘나들며 우리 시대를 탐구 중이다. 결혼을 선택하고 나면 또 한 가지 선택지가 생긴다. 바로 출산이다. 이 글을 쓰는 현재 나의 아내는 만삭이고 며칠 내로 출산을 할 예정이다. 아직 육아전선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지 않아 모르겠지만, 아이를 갖고 낳기까지의 지난 10개월간 우리 부부가 느꼈던 경이와 감동은 한두 마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커다란 것이었다. 자식은 아기였던 시절 잘 자라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만으로 평생의 효도를 다 한다고 했던가. 우리 아기 ‘코코’는 이미 어느 정도 효도를 해낸 것 같은 기분이다. 그래서 나는 결혼이란 그래도 해 볼만 한 미친 짓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그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기에 망설이는 마음도 이해한다. 한 조사에 따르면 미혼, 비혼 남녀가 결혼을 하지 않는 이유 중 28.7%가 결혼 자금 부족이고, 14.6%가 고용 상태 불안정이다. 12.8%를 차지하는 출산 및 양육 부담 역시 경제적인 부분에서 오는 경우가 많다는 점을 고려하였을 때 56.1%정도가 경제적인 상황 때문에 결혼을 선택하지 못하고 있다는 결론을 얻을 수 있다. 경제적인 문제는 단지 개인의 잘못이라고만 볼 수는 없다. 사회의 구조를 설계하고 유지, 보수해 나가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역할을 제대로 하지 않은 결과라고 생각할 수 있다.그렇지만 마음 맞는 사람이 생긴다면, 이처럼 결혼하기 어려운 사회임에도 불구하고 모든 상황이 완벽하지 않더라도 한 번 시작해 볼 마음이 있는 사람끼리 만날 수 있다면 나는 얼마든지 이병철을 응원할 준비가 되어 있다. 그가 나의 결혼식에서 멋들어지게 축시를 읽어준 것처럼 말이다.

2024-07-08

불안을 다루는 법

디즈니·픽사의 대표작 ‘인사이드 아웃2’를 보고 왔다. 9년 만에 돌아온 2편 속 주인공 라일리는 13살이 되어 사춘기를 맞이한다. 행복을 위해 매일 바쁘게 머릿속 감정 컨트롤 본부를 운영하는 ‘기쁨’, ‘슬픔’, ‘버럭’, ‘까칠’, ‘소심’ 5인방에 의해 본부는 평화롭게 흘러갔으나 라일리가 사춘기를 맞이한 어느 날부터 ‘불안’, ‘당황’, ‘따분’, ‘부럽’이가 본부에 나타난다.새롭게 등장한 감정인 당황은 많은 사람들 앞에 발표를 할 때나 잘 보이고 싶은 친구들에게 이목이 집중될 때 얼굴이 빨개지며 나타난다. 따분은 어딘가 심드렁해져 스마트폰을 볼 때나 침대 위에 하루종일 누워 뒤굴 거릴 때에 등장하고, 부러움은 멋지게 꾸민 학교 선배들을 볼 때나 근사한 학교 시설을 둘러 볼때 나타난다. 2편에서 가장 중요하게 작용하는 감정인 불안은 언제나 최악의 상황을 대비하기 위해 몇 수 앞을 내다보고 여러 가지의 경우의 수를 세어본다. 불안은 라일리의 행동을 지나치게 제어하며 안정감을 돕고, 이를 지켜보며 불만에 휩싸인 기존 감정들은 새롭게 등장한 감정들과 싸움이 일어난다. 결국 기존 감정들이 본부에서 쫓겨나게 되고, 다시 본부로 돌아가기 위한 여정이 시작되며 이야기는 진행된다.라일리의 의식의 흐름을 타고 흘러가다 보면 신념 저장소라 불리는 아주 깊은 곳에 다다른다. 의식의 끝인 신념 저장소는 경험으로 만들어진 감정 구슬이 자리하고 있으며, 여기서 중요한 감정 구슬은 신념이라는 끈이 된다. 신념의 끈은 라일리를 이루는 가장 중요한 신조가 되어 나는 정말 좋은 사람이라는 잠재의식을 지니게 한다.이러한 잠재의식은 결국 자아가 되고, 라일리를 움직이게 한다. 사춘기를 맞이한 라일리는 변화를 앞둔 성장기의 불안감, 그리고 정체성 혼란이 찾아온다. 타인에 의해 자신의 선호도가 바뀌고 기분 또한 타인에 의해 제어된다. 사춘기와 함께 나타난 불안이는 완벽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불안의 정도가 점점 심해져만 가고 결국 라일리의 ‘나는 좋은 사람이야’라는 신념과는 대비되게 절친이었던 친구들을 외면하고, 거짓말과 그릇된 행동을 하며 자신의 이익을 얻으려 한다. 그 과정에서 여태 자신의 신념이었던 ‘나는 좋은 사람이야’가 무너지게 되고, 내면의 모든 감정과 신념이 한꺼번에 뒤엉키고 폭발하며 자아를 잃게 된다.자아가 파괴된 라일리는 숨을 쉬기 어려울 정도로 괴로워한다. 자신 스스로가 움직이는 것이 아닌 불안이라는 감정이 자신의 신념을 대변했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라일리를 제어하던 불안이도 길을 잃는다. 불안이는 오로지 라일리를 나쁜 환경과 선택에서 지켜주고 싶었으나, 지나친 욕심 탓에 라일리의 자아를 잃어버렸기 때문이다.다행히도 얼마 지나지 않아 본부로 돌아온 기쁨이는 불안이를 안아주며 이 모든 걸 다시 돌려보자고 말한다. 때마침 패닉에 빠져 있던 라일리에게 오랜 친구들이 다가와 도움의 손길을 뻗는다. 그 순간 라일리는 자신의 혼란스러운 환경과 감정을 받아들인다. 그간 멀리 하려던 불안이란 감정이 받아들여질 때, 불안을 벗어날 수 있고 불안은 금새 기쁨과 슬픔, 우울, 소심, 부끄러움 등 여러 감점을 뒤섞인 페르소나의 형태를 보여주며 무너졌던 라일리의 자아가 회복된다. 윤여진 2018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 부문에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현재보다 미래가 기대되는 젊은 작가. 그 후 라일리에겐 커다란 변화가 찾아온다. 그녀의 자아는 ‘나는 선한 사람’이지만, ‘때로는 부족한 사람’일 수도 있고 ‘때로는 이기적인 사람’이라는 다양한 정체성을 지닌 사람으로 변한다. 또한 감정은 자아를 형성하는데 도움을 줄 뿐, 결국 자아와 신념을 만들어가는 것은 라일리 자신임을 인정하고 깨닫고 나서야 사춘기를 넘어 어른으로 성장해 간다.신념에 의해 인간은 움직이고 살아간다. 나는 좋은 사람이라는 신념 한 가지가 있다면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행동을 하고 노력을 한다. 하지만 나는 어딘가 부족한 사람이라는 신념이 중요하게 작용한다면 매사에 자신 없는 행동을 보이거나 금방 불안과 우울에 휩싸여 무엇이든 회피 행동을 보이고 만다. 라일리는 기쁨과 슬픔, 불안 등의 여러 감정 중 그 어떤 것 하나도 내세우지 않고, 여러 감정이 뒤섞인 신념을 가지며, 하나의 자아가 아닌 다채로운 자아를 지닌 사람으로 변하는 성장을 택한다.‘인사이드 아웃 2’에서 불안이는 라일리를 지키기 위해 자신을 스스로 몰아세운다. 그 때문에 커다란 위기가 왔었지만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현재엔 지나치게 불안감이 들 때면 의자에 앉아 잠시 숨을 고르며 불안을 잠재운다. 여태껏 나를 몰아세웠던 건 나를 지키기 위해서 나섰던 불안이었다는 점과 라일리처럼 불안은 자아를 지키기 위해서만 존재한단 점에서, 불안을 단순히 다루는 법에 대해 오래토록 생각하게 했다.

2024-07-01

결혼은 미친 짓이다

1985년생 남성 중 절반이 미혼이라고 한다. 1984년생인 나는 또래 열 명 중 아직 장가 못 간 네댓 가운데 하나니 서러울 것 없다. 주변에서 여자 좀 만나라고 한다. 그러면 대답한다. 만나고 싶어도 여자가 없다고. 말도 안 된다며 너스레 떨지 말라고들 하는데 통계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여아와 남아의 자연적 성비는 100대 104~107 정도다. 한국에서는 이 성비가 197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심각하게 한쪽으로만 치우쳤다. 남아선호사상 때문이다.초음파로 태아의 성별을 감식할 수 있게 된 이후로는 1990년 100대 116.5까지 성비 불균형이 치솟더니 급기야 1994년에는 셋째 아이 이상 성비가 206.9에 달했다고 한다. 딸 하나 태어날 때 아들 둘이 태어난 셈이다.30년에 걸친 남아선호사상 때문에 오늘날 한국은 합계 출산율 0.66명의 초저출생 사회가 됐다. 나 같이 훤칠한 쾌남마저 여태 짝을 못 찾은 걸 보면 과연 성비 불균형의 영향이 없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보다 더 크게 작용하는 건 경력 단절, 양육비 부담, 주거 불안, 돌봄 시설 부족 등 사회 제반의 문제다. 젊은 남녀가 결혼과 출산에 회의적인 것은 서로 싫어서가 아니라 서로 좋아 합쳤더니 “한 천국을 지옥으로 만들”(황인숙, ‘움찔, 아찔’)어 버리는 사회 현실 탓이다.엊그제 죽마고우와 영월 김삿갓계곡에 갔다 왔다. 1984년생 노총각 둘이서 물장구치고 백숙 삶아먹고 민물장어와 한우 갈비꽃살 구워먹고 산메기 잡아 매운탕 끓여먹고 진탕 술 마시고는 한 침대에 등 돌리고 누워 해가 중천에 걸릴 때까지 코골며 잤다. 그렇게 2박3일 잘 놀았다. 얼마나 행복했는지 모른다. 계곡물에 발 담그고 낮술 먹다가 “애인이랑 왔으면 재미없었을 것”이라는 의견 일치를 이뤘다.결혼을 생각할 때면 친구나 나나 막막해진다. 막막하고 자신 없는 걸 할 바에야 그냥 이렇게 둘이 놀러나 다니자며 낮술에 취한 채 진시몬의 ‘보약 같은 친구’를 합창했다. “자식보다 자네가 좋고 돈보다 자네가 좋아…” 통계화되지 않는 사회적 분위기라는 게 있다. 바로 이 지점에서 나의 미혼 사유는 구체화되며 가정을 꾸리지 않겠다는 의지 또한 굳건해진다. 내가 결혼하지 않는(이라고 쓰지만 사실은 결혼하지 못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첫째, 남들처럼 살 자신이 없다. 이상과 현실에 괴리가 있다지만 주변 결혼한 이들을 보면 전부 이상 세계에 살고 있는 것 같다. 화려하고 여유로워 보인다. 다들 수면 아래서는 처절한 물갈퀴질 중일까? 나는 아무리 해도 저렇게 살 수 없을 것만 같다. 발버둥 쳐봐야 안 될 것 같고, 근사하게 살자고 발버둥 치기도 싫다. 남들처럼 살 자신이 없다는 말을 “남들처럼 살고 싶지 않다”로 고쳐본다. 이 가치관이 비슷한 상대를 만나면 좋겠지만 100대 116.5다. 되겠나? 이병철 문학평론가이자 시인. 낚시와 야구 등 활동적인 스포츠도 좋아하며,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둘째, 아이에 대한 애착이 걱정된다. 교권 간섭, 음식점 추태, 차량 뒤에 붙인 ‘까칠한 아이가 타고 있어요’ 문구 따위 아이에 대한 지나친 애착과 과보호, 이른바 ‘내 새끼 지상주의’의 사례들을 보며 혀를 차다가도 ‘내가 아빠가 되면 더하겠지?’ 하는 생각이 든다. 세월호에서, 이태원에서, 군대에서 자식들이 죽었다. 음주운전에 관대하고 아동 성범죄에 자비를 베풀며 밀양 여중생 성폭행 가해자들이 잘 사는 나라에서 어떻게 아이를 키울까? 고슴도치 부모가 되는 건 당연하다. 나는 아이 걱정에 밤잠 설치고 늘 어딘가 곤두선 채로 살게 될까봐, 그리고 그렇게 애지중지하는 자식에게 정작 뭐 하나 제대로 해주지 못할까봐 결혼이 생경하기만 하다.셋째, 혼자서 충분히 행복하다! 이 행복의 울타리 안에 누가 들어오면 함께 더 행복할까? 결혼한 사람들은 왜 결혼하지 말라고 하나. 왜 혼자 살라고 하나. 자기들은 결혼했으면서, 웃긴다 정말. 왜 연예인들은 방송에 나오기만 하면 결혼 생활을 푸념하며 배우자 험담을 하나. 결혼한 친구들 전부 이구동성 “네가 부럽다”고 말한다. 그럴 거면 대체 왜 했느냔 말이다. 내밀한 사정들은 모르지만 어쨌든 결혼한 사람들의 말과 글과 눈물과 한숨과 자기비하와 방황과 가출과 종교에 귀의와 이혼소송 등을 종합해보면 결혼은 고통이자 만병의 근원이며 악의 축인 동시에 생지옥이다.얼마 전 나는 꿈에 그리던 낚시용 레저보트를 장만했다. 한 선배가 말했다. “이제 보트 같이 탈 여자만 있으면 되겠다”라고. 내가 답했다. “보트를 샀다는 건 평생 독신선언 아니겠습니까?”

2024-07-01

분노의 국가, 분노의 계절

날이 덥다. 그래서 주차 문제로 시비가 있었다. 날이 더운 것과 주차 문제로 시비가 붙은 것 사이에 인과관계는 성립할 수 있는가. 그것은 가능하다. 날이 더우면 불쾌지수가 올라가고 자기 안에 내재된 어떠한 화가 치밀어 오를 수 있다. 그것을 참아내는 것은 이성인데 가끔 이성이 제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성미를 가진 사람이 지나치게 높은 기온에 놓이게 되면 이성의 만류를 뿌리치고 덜컥 화부터 내버리게 되는 경우가 있다.공동주택에 유난히 그런 사람이 한 명 살고 있는 것 같다. 며칠 전 주민 단체 대화방에서도 공개적으로 누군가에게 마구 화를 쏟아내더니, 오늘은 주차를 다시 해달라는 나의 요청에 분노를 쏟아내었다. 누가 주차를 잘했고 잘 못했고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문제는 같은 말이라도 화를 내지 않고 할 수 있는 것인데 자신의 불쾌함을 타인에게 무례하게 쏟아내는 태도이다. 장담컨대 그의 화의 원인이 전적으로 나였을 리가 없다. 일상에 내재된 어떤 화가 분명 그의 명치 언저리에서 들끓고 있었을 것이다.특정인에게 이러한 문제가 있었다고 이야기하기 위하여 이 글을 쓰는 것은 아니다. 우리 사회에 이러한 분노가 지나치게 짙게 깔려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갖고 있다. 사람들은 모두 이미 화가 나 있고, 누군가 자신에게 불을 붙여주기만을 기다렸다가 뻥 하고 터뜨릴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누군가 미처 안내문을 보지 못하고 관계자 외 출입금지 구역의 문고리를 붙잡았다고 상상해보자. 관계자가 달려와서 정중하게 ‘거기 들어가시면 안됩니다. 출입금지 구역입니다.’ 라고 말하는 상황보다는 ‘어이! 거기 써놓은 것 안보여요? 출입금지라고요!’ 하며 성내는 장면이 먼저 떠오른다. 영화관에서 누군가의 휴대폰이 빛날 때도 ‘휴대폰 사용 좀 자제 부탁합니다.’ 하면 해결 될 문제를 화로 해결하는 경우를 빈번히 볼 수 있다. 그런 명백한 실수나 실책의 상황이 아니더라도 분노는 너무나도 쉽게 표출된다.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고 했던가. 실제로 옷깃이 스쳤다는 이유로 서로 눈을 흘기는 상황, 아니 눈이 마주쳤을 뿐인데 뭘 보냐며 성을 내는 상황이 우리 주변에는 분명히 존재한다.인터넷 뉴스의 댓글 창을 봐도 온통 분노 투성이. 물론 화가 날 만한 기사에 분노의 댓글이 달리는 것이야 자연스런 일이겠지만 나와 생각이 다른 이를 만났을 때, 내가 좋아하지 않는 연예인이 땅을 사고 집을 샀을 때, 응원하던 스포츠 팀이 원하는 만큼 좋은 성적을 내지 못할 때, 오히려 내가 싫어하는 스포츠 팀이 좋은 성적을 낼 때, 그냥 뭔가 마음에 안 들 때 사람들은 손가락 끝으로 온갖 분노를 터뜨려대곤 한다.나는 이러한 현상이 우리나라의 현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국가경제, 기업경제, 가정경제 어느 하나 잘 풀리고 있는 것이 없는 나라라는 것은 이미 온 국민이 짜증거리 하나를 끌어안고 살아가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일이 술술 풀리고 좋은 일만 가득한 사람은 그렇지 못한 사람보다 분명히 조금은 더 마음의 여유를 쓸 수 있고, 너그러운 태도로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국가적인 우환이라 할 수 있는 경기침체 속의 우리 국민들의 여건상 모두의 가슴 속에 뭐라 설명할 수 없는 분노가 끓어오르고 있으리라는 것은 짐작도 할 수 있고 이해도 할 수 있다. 강백수 세상을 깊이 있게 바라보는 싱어송라이터이자 시인. 원고지와 오선지를 넘나들며 우리 시대를 탐구 중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 분노를 충분히 컨트롤 할 수 있는 존재들이다. 나와 같은 상황에 놓인 다른 사람들을 이해할 수 있고, 조금 답답하고 짜증나더라도 이성으로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누를 줄도 아는 존재들이다. 그게 불가능한 상태를 ‘분노조절장애’라고 한다. 자신이 분노조절장애가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사실은 선택적으로 분노를 표출하는 사람일 뿐일 것이라는 우스개 이야기가 있다. 예를 들면 배우 마동석 씨나 드웨인 존슨 같은 사람 앞에서도 조절되지 않는 분노여야 진정한 분노조절장애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강자 앞에서는 조절되고 약자 앞에서는 조절되지 않는 분노는 분노조절장애의 증상이 아니라 단지 추태일 뿐이다.다시 날씨 이야기로 돌아와서, 참 무더운 요즘인데 앞으로는 장마와 함께 습도도 올라갈 것이라고 한다. 올 여름은 지난 어떤 여름보다 더울 가능성이 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우리들의 불쾌지수는 더 올라갈 것이고 더 많은 분노가 펑펑 터져 나올 것이다. 그 분노로 다치는 사람도 있고 누군가는 생명의 위협을 받게 될지도 모른다. 꼭 그런 극단적 상황에 놓이지 않더라도 불필요한 분노가 우리의 삶의 질을 떨어뜨릴 것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터질 것 같지만 터뜨리지 않고 살아갈 수 있다. 우리는 사실 그런 존재들이다.

2024-06-24

독서의 기쁨과 슬픔

무슨 책을 읽고 있느냐는 질문을 심심치 않게 받는다. 일종의 안부 인사라 할 수 있겠으나 가끔은 난감하다. 뭔가 그럴듯한 대답을 내놓아야 할 것 같아서다. ‘그 작가의 작품을 읽어봤느냐’는 질문에 ‘당연하지’라는 답을 내놓고 싶다는 허영심 때문에 괴로울 때도 있다. 간단한 문제를 뭐 그리 복잡하게 생각하는가 싶지만, 이를 통해 내밀한 부분을 들키는 기분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설령 질문한 상대는 별생각 없더라도 말이다.다시 본론으로 돌아와 말하자면 요즘의 나는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를 읽고 있다. 조금 이상한 말이지만, 고전을 읽는 건 어쩐지 멋이 없어 보인다. 특히 톨스토이 같은 작가가 그렇다. 크롭티와 마이크로쇼츠가 유행하는 와중에 체크무늬 셔츠를 목 끝까지 잠그고 홍대 한복판에 서 있는 기분이랄까.한국 사회는 트렌드에 민감하다. 동시대적 감각을 기민하게 따라가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다가올 유행을 분석하고 한발 앞서 가는 것을 훌륭한 역량으로 평가한다. 그것은 독서의 영역도 마찬가지라서 어떤 상을 받았다든가 화제의 인물이 적극 추천했다는 작품을 읽지 않으면 어떤 흐름에 뒤떨어지는 것처럼 보인다. 나 역시 그러한 분위기에 적극적으로 동참했지만, 최근엔 그다지 큰 재미를 느끼지 못한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고전 작품을 꺼내 드는 빈도가 잦아진다.‘전쟁과 평화’는 나폴레옹 전쟁의 러시아를 무대로 삼기 때문에 기본적인 역사 지식이 필요하다. 덕분에 나는 그와 관련된 역사 서적부터 찾아 읽었다. 본 여행을 위한 준비 과정이 꽤 길었으나 지평을 넓히는 것 또한 책을 읽는 즐거움 중 하나가 아니겠는가. 이윽고 페이지를 펼치자 톨스토이다운 유려한 진행에 감탄하는 것도 잠시, 인물의 이름이 헷갈려 스토리 라인을 놓치는 그야말로 고전적인 위기에 봉착하고 말았다.2024년에 사는 문명인답게 유튜브를 켜고 톨스토이를 검색했다. ‘10분 안에 톨스토이 끝내기’ 혹은 ‘톨스토이 작품 읽은 척하는 법’과 같은 영상이 우르르 쏟아졌다. 벽돌처럼 두꺼운 4권의 책을 완독하는데 소요되는 시간은 얼마나 될까. 그런데 유튜브에선 클릭 한 번으로 작품의 모든 것을 알려주겠다고 말하고 있었다. 유튜브 영상을 통해서 체험을 대리하는 것에 꽤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는데, 그것이 독서의 영역까지 넘어오다니. 묘한 이질감이 들었다.나는 같은 책을 몇 번이고 반복해서 읽는 것을 좋아한다. ‘파우스트’와 ‘싯다르타’는 내가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다는 생각이 들면 다시 읽는다. 몇 번을 읽었는지 손가락으로 꼽지 못할 정도다. ‘안나 카레니나’는 소설이라는 장르를 이해하고 싶거든 꺼낸다. 특히 레빈의 풀베기 장면을 자주 찾아보는데 읽을 때마다 늘 비슷한 감동이 밀려온다. 나는 왜 이런 식의 독서를 하는 것일까. 어쩌면 두뇌 회전이 느리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나는 명석함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니까. 쉽고 빠르게 갈 수 있는 길을 찾지 못해 에둘러 돌아가고 하나의 현상을 미련할 정도로 진득하게 바라본다.누군가에겐 굉장한 시간 낭비로 느껴질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이러한 독서 습관을 교정할 생각이 없다. 같은 텍스트를 반복하면 어느 페이지를 펼쳐도 불편함이 없고 좋은 문장을 찬찬히 곱씹을 수 있다. 어제는 분노로 읽혔던 것이 오늘은 슬픔으로 읽히기도 한다. 문은강 ‘춤추는 고복희와 원더랜드’로 주목받은 소설가. 2017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작가로 등단했다. 무엇보다 작가가 자신만의 삶을 살며 구축한 생각이 내 안으로 조금씩 흘러들어오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내 몸을 직접 통과하지 않은 것들은 쉽게 휘발되기 마련이다. 어떤 슬픔을 직접 겪어본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완전히 다른 것처럼 말이다.독서는 대단할 필요가 없는 활동이다. 글자를 익힌 사람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요즘처럼 모든 것이 빠르게 흘러가는 시대에 텍스트를 읽는 행위는 특별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독서는 쇼츠를 넘기는 것보다 지루하다. 깨알 같은 글자 안에서 인생의 답을 찾아보려 노력하지만 쉽게 되지 않는 순간이 더 많다.그런 면에서 어떤 목적을 가지고 독서에 접근하는 순간 실패할 수밖에 없다. 읽는 것을 통해 뭔가를 체화했다면, 그것은 독서 이후에 생기는 것이지 이전에 얻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낯선 곳을 여행하며 생겨나는 일들을 떠올려도 좋겠다. 뜻대로 되지 않는 것에 대한 좌절과 예기치 않게 찾아오는 기쁨 같은 것들. 직접 경험하면서 생기는 실감은 그 무엇도 대신할 수 없다. 그것은 개인의 고유한 영역이며 타인의 침입이 불가하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독서가 주는 가장 큰 즐거움일 것이다.

2024-06-24

취해라 그리고 걸어라

“취해라, 항상 취해 있어야 한다. 모든 게 거기에 있다. 그것이 유일한 문제다. 당신의 어깨를 무너지게 하여 당신을 땅 쪽으로 꼬부라지게 하는 가증스러운 시간의 무게를 느끼지 않기 위해서 당신은 쉴 새 없이 취해 있어야 한다. 그런데, 무엇에 취하려는가? 포도주든, 시든, 덕이든, 그 무엇이든 당신 마음대로다. 그러니 어쨌든 취해라. (…) 이제 취할 시간이다. 시간에 학대받는 노예가 되지 않으려면 쉬지 말고 취해라. 술이든, 시든, 덕이든, 그 무엇이든 당신 마음대로.”(샤를 보들레르, ‘취해라’)19세기 프랑스 파리에서 활동한 보들레르는 현대시의 시초로 불린다. 1830년대에 프랑스 정부는 포도주에 대한 새로운 과세법을 제정했는데, 이 과세는 도시민으로 하여금 값싼 포도주를 찾아 시외에 자리 잡은 상점으로 가게 만들었다. 그곳에서 파는 세금 없는 포도주는 노동자와 하층민, 가난한 예술가들에게 허용된 유일한 쾌락이었다. 보들레르에게도 술은 정신을 위안할 수 있는 기쁨이었는데, 대표 시집 ‘악의 꽃’에서 그는 ‘술의 넋’, ‘넝마주이들의 술’, ‘살인자의 술’, ‘외로운 자의 술’, ‘연인들의 술’ 등 술 연작을 통해 술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기도 했다.보들레르는 포도주 뿐 아니라 흑맥주를 애호했다고 한다. 보들레르는 현대인들에게 “취해라”라고 말한다. 이는 무분별한 알콜릭이나 쾌락 추구, 방종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19세기 파리는 전근대의 농경사회에서 근대 도시문명으로 전환한 시기다. 불문학자이자 평론가인 고 황현산 선생은 “농경사회에서 시간에 대해 얘기할 때 물처럼 흐른다고 표현하는데요. 보들레르한테 시간은 물 흐르듯, 바람 불어오듯 하는 시간이 아닙니다. 1분, 1초 분할된 시간, 시간 그 자체가 물체화 되어 계속해서 쫓아오고 있는, 이런 시간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또 압박이 사라지면 마음이 편안하느냐, 그것은 아닙니다. 시간의 압박이 사라지면 권태 속에 들어가게 되죠. 바로 이게 산업사회의 시간, 자본주의 사회의 시간입니다.”라고 설명했다.보들레르가 취할 것을 권면하는 까닭이 바로 여기 있다. 현대적 시간의 중력에서 벗어나라는 것! 인간을 불안하게 만들고 초조함과 신경쇠약, 권태와 우울감으로 몰고 가는 도시적 시간으로부터 자유로우려면 그것이 술이든 아니면 음악이든 무엇이든 간에 몰입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편 보들레르 문학과 근대성의 상관관계를 평생 연구한 발터 벤야민은 이렇게 말한다. “위고가 현대 서사시의 영웅으로 대중을 예찬하는 순간, 보들레르는 영웅의 피난처를 대도시의 대중 속에서 찾고 있었다. 시민으로서 위고는 군중 속에 섞여 든다. 보들레르는 영웅으로서 거기에서 떨어져 나온다”라고.벤야민은 빅토르 위고의 작품들을 대중과 함께 호흡한 ‘민중문학’으로 읽은 반면 보들레르의 문학은 대중성으로부터 떨어져 나와 홀로 솟아오르려는 영웅적 행위로 보았다. 보들레르가 대도시의 군중에서부터 스스로를 분리시키기 위해 채택한 방법은 바로 걷기다. 보들레르는 술만큼이나 걷는 걸 좋아한 ‘거리산보객(flanuer)’이었다. 산보객이란 대도시의 거리 곳곳을 정처 없이 거니는 사람을 뜻한다. 이병철 문학평론가이자 시인. 낚시와 야구 등 활동적인 스포츠도 좋아하며,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목적을 가지고 분주히 움직이는 군중과 완전히 대비된다. 일상은 지루하고, 현실원칙의 중력은 무겁기만 하다. 1분, 1초 단위로 등 뒤에서 달려드는 현대적 시간에 쫓기면서 몸도 마음도 피폐해져만 간다. 현실에만 충실히 복종하면 강박주의자가 된다. 누군가와 교류하는 것이 피곤해지고, 타인에게 엄격해지기만 한다. 그렇게 점점 혐오와 갈등, 분리의 감각에 익숙해진다. 일상의 무게를 벗어나려면 꿈을 꿔야 한다. 꿈이 있는 곳으로 가야 한다. 현실의 속박이 없는 시간과 공간에서 마음껏 취하고 걸어야 한다.취하는 사람은, 취해서 걷는 사람은 꿈의 파랑 속에서, 환상의 리듬 속에서 생을 긍정하고, 세상을 아름답게 보며, 타인들과 넉넉히 어울리는 방법을 배우는 중이다. 평범한 도시인으로 살 때, 시간에 쫓기며 압박당하는 군중의 한 사람으로 살 때 도시는 각박하고 권태로운 곳이지만, 무언가에 취해서 산보객으로 살 때 도시는 감동과 도취, 새로움으로 가득한 역동적 세계가 된다. 2024년을 사는 우리에게 1800년대 보들레르가 말한다. “취해라 그리고 걸어라!”

2024-06-17

새로운 시작 앞에서

오랜 기간 골치 아팠던 문제에서 드디어 벗어났다. 이럴 때 생각나는 두터운 책 한 권이 있다. 2년 만에 펼쳐들어 3번째 완독을 마친 소설. 존 윌리엄스의 ‘스토너’다.스토너는 독서에도 시차가 있음을 알려준 책이다. 마지막으로 읽은 것이 약 2년 전, 그 전에는 약 4년 전에 읽었다. 처음 읽은 스토너는 그저 지루하기 짝이 없었다. 어떻게 이렇게 심심한 인간의 생애가 있는 건지? 특별한 사건 없이 밋밋하게 흘러가는 스토너의 생애 이야기를 몇 장 읽고 덮어두었다가 다시금 꺼내어 꾸역꾸역 읽어 내려갔었다. 어쩐지 심심한 그 감각이 계속 맴돌다가 2년이 지난 후, 두 번째로 꺼내 읽은 스토너는 어쩐지 새로웠다. 너무나 지루했던 그의 인생에서도 사건이라는 흐름이 보였기 때문이었다.윌리엄 스토너는 1910년, 열아홉의 나이로 미주리 대학에 입학했다. (…중략) 그는 조교수 이상 올라가지 못했으며, 그의 강의를 들은 학생들 중에도 그를 조금이라도 선명하게 기억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중략)가끔 어떤 학생이 이 이름을 우연히 발견하고 윌리엄 스토너가 누구인지 무심히 생각해 볼 수도 있겠지만, 그 이상 호기심을 충족시키려고 애쓰는 경우는 거의 없다.스토너의 처음은 이렇게 시작한다. 누군가에게 큰 영향을 끼치지 않는 단순한 인물, 시간의 흐름에 따라 자연스레 잊히는, 지극히 존재감 없는 사람.스토너는 1891년 미주리주 중부의 작은 농가에서 태어났다. 그가 태어났을 때 그의 부모는 고작 스물다섯 살, 어머니는 스무 살이었다. 스토너에게 부모는 늘 늙은 사람이었고, 고된 노동으로 삶을 버티고 인내하는 사람들이었다. 어떠한 열망도 없이 살아가던 스토너는 아버지의 뜻에 따라 별 생각 없이 대학에 입학하지만 그 이후에도 어떠한 즐거움이나 괴로움도 없이, 삶은 반드시 참아내야 하는 긴 한순간이라 여기며 지낸다.얼마 지나지 않아 스토너는 이디스와의 결혼을 하지만, 곧 파국으로 치닫는다. 이디스는 계속해서 아픈 몸, 무기력함, 목적 없는 생의 지루함 때문에 자신의 딸아이인 그레이스를 방치한다. 대부분의 육아와 집안일을 스토너가 맡게 되면서 예상치 못한 부성애를 가지게 된다.스토너와 그레이스간의 사이가 친밀해질수록, 이디스는 질투에 사로잡히면서 히스테릭함이 더욱 극에 달한다. 그러나 스토너는 관조와 무조건적인 이해로만 그녀를 대하고 그녀의 상황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는다.하루도 편안한 날이 없는 폭풍 같은 현실 속에서 세 인물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슬픔의 굴레를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인다. 슬픔을 부정하거나 떠미지 않고, 괴로움을 안고 버티며 모든 것을 인내 한다. 처음에는 이 세 인물이 서로 원치 않는 방향으로 향하는 결말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느릿느릿 문장을 읽다보면 세 인물은 어떻게 자신의 목소리를 잃어버리게 되었는지, 당시 어떠한 시대적 혼란이 있었는지 알 수 있게 된다.모든 것을 인내하는 스토너로 보이지만, 그는 강단에 서서 문학을 가르칠 때만큼은 열정적이었고 자신의 수업을 듣던 ‘캐서린’과 사랑에 빠지게 된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부적절한 관계를 대학 내 모든 사람들이 알게 되면서 결국, 그들은 사랑을 포기하게 된다. 윤여진 2018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 부문에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현재보다 미래가 기대되는 젊은 작가. 스토너는 캐서린과의 이별 이후 빠른 속도로 죽음을 향해 걸어간다. 그는 죽음 끝에서 자신의 삶을 되돌아 본다. 원치 않은 방향으로 흘러간 결혼 생활, 캐서린과의 이별을 겪고 죽음을 앞둔 스토너. 얼핏 보면 그의 삶은 실패로 보일 수 있으나 실은 그의 생은 너무나 평범하다는 걸 알 수 있다.스토너의 죽음은 인간의 삶은 ‘성공’ 또는 ‘실패’라는 결과보다는 그가 얼마나 생을 살아보려 애썼는지, 어떤 시도를 했는지가 더 중요한지를 알려준다. 그는 죽음 앞에 서서 평온하다. 삶을 인내했고 자신의 선택에 대한 책임에 충실했기 때문이었다.하루를 마무리 하며 나의 일상을 돌아볼 때에 나의 생은 왜 이렇게 지루하고 건조해 보이는 건지 고민될 때가 있다. 하지만 이 단조로움 또한 생의 불행과 운을 온 힘으로 버텨내는 안간힘임이 내재되어 있음을 안다. 성공 또는 실패라는 결과보다는 ‘삶을 살아보려는 시도’, 스토너라는 한 사람의 진득한 생애는 내게 새로운 시도의 힘을 갖게 한다.

2024-06-17

경쾌하게 지내기

며칠 전 친구와 긴 통화를 했다. 서로의 근황을 나누다가 요즘 나를 성가시게 하는 일들에 대해 토로하게 됐다. 가만히 듣던 친구가 넌지시 물었다. 그게 너의 평화를 방해할 만큼 큰일이야? 곰곰이 생각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 정도는 아니야. 그렇게 말하니 거추장스럽던 고민이 한순간에 사소한 것으로 변했다. 신기한 일이었다. 통화를 마치면서 친구가 덧붙였다. 은강아, 괜히 어렵게 생각하지 말자. 가볍고 경쾌하게 지내자.그 순간 내 안에 중요한 무언가가 흘러 들어오는 것을 느꼈는데 그것은 마치 더운 여름날 살얼음이 낀 맥주를 들이켜는 감각과 비슷했다. 눈물이 찔끔 날 만큼 시원하면서 따끔한 기분. 친구는 오랫동안 내가 바라던 상태를 딱 들어맞는 언어로 짚어준 것이다.사실 ‘경쾌하다’는 말은 내가 평소에도 자주 사용하는 표현이기도 하다. 러닝머신 위에서 경쾌하게 달려보겠다는 다짐으로 발을 구르고 학생들의 작품을 첨삭하며 조금 더 경쾌하게 진행해 보라는 조언을 내어놓는다. ‘경쾌하다’고 중얼거리면 어쩐지 꽉 막힌 것들이 시원하게 해결될 것만 같다. 그럭저럭 괜찮은 상태가 아니라 좀 더 상쾌하게 쭉 뻗어가는 느낌이랄까. 힘차게 전진하는 쾌속 열차처럼, 천진한 아이의 쾌활한 웃음처럼.‘경쾌하게 지내기’란 언뜻 들었을 때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꽤 어려운 일이다. 물속을 헤엄치는 사람과도 비슷하다. 수중에서 제대로 이동하기 위해선 몸의 정렬을 깨지 않고 올바른 자세를 유지해야 한다. 적당하게 힘을 빼는 것도 중요하고 물을 두려워해서도 안 된다. 멀리서 보면 우아하고 민첩해 보이나 사실 상당한 체력과 노력이 요구된다. 어떤 준비도 없이 물에 뛰어드는 건 위험하다. 요동치는 감정에 휩쓸리는 순간 허우적대다 가라앉을 수도 있다.부정적인 생각은 물먹은 솜과 같다. 나는 왜 이렇게 되는 일이 없을까? 그때 그 사람은 내게 왜 그런 말을 했지? 난 항상 최악의 선택만 하는 것 같아. 생각은 생각을 먹고 더욱 불어난다. 눈에 보이지 않으니 억지로 구겨서 폐기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경쾌하게 나아가기 위해선 먼저 몸과 마음이 가벼워져야 한다.최근 나는 삶을 가볍게 살아가는 방식에 관해 골몰하고 있다. ‘뭐 해 먹고살지?’보다 ‘어떤 자세가 편안하지?’라는 질문에 무게를 두고서. 물론 나는 아직 젊은 나이고 주렁주렁 매달린 고민과 불안이 당연하다는 걸 안다. 그러나 젊다고 해서 괜한 것을 짊어질 이유는 없다. 필요한 물건 대신 무거운 돌을 가방에 넣는 건 그야말로 무의미한 일이니까.때론 복잡하고 부조리한 세계가 나의 다짐을 방해한다.집 앞 새로 생긴 카페의 레몬 케이크, 너무 맛있어! 일상에서 즐거운 일이 생기면 호된 꾸짖음이 들려오는 것 같다. 네가 지금 케이크에 기뻐할 때니? 오늘도 혐오에 기반을 둔 끔찍한 범죄가 벌어졌고 지구 반대편에선 총성이 울려 퍼지고 있어. 그뿐이면 다행스럽게? 자본의 논리 속에 약자는 희생당하기 마련이고 환경오염으로 인한 이상 기온으로 생태계가 엉망이라고. 문은강 ‘춤추는 고복희와 원더랜드’로 주목받은 소설가. 2017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작가로 등단했다. 이것은 용수철처럼 튀어 오르는 마음을 주저앉히기에 효과적이다. 요즘처럼 마음이 편안할 수가 없다고 흐뭇해하기가 무섭게 곧 예기치 않은 불행이 닥쳐올 것이라는 악담이 끼어드는 식이다. 이러한 속삭임은 타인의 언어라기보다 내 안에서 작동되는 장치에 가깝다. 그러니 해결할 수 있는 건 나밖에 없다. 나의 괴로움이 세계의 운명을 바꾸는 것도 아닐 테니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개인이 가져야 할 사회적 책임을 방기 하겠다는 뜻은 아니다. 단지 세상을 헤쳐 나가는 하나의 방식일 뿐이다.인생이라는 바다를 헤엄쳐야만 하는 숙명을 타고난 우리 앞에 거친 파도는 다가오거나 다가오지 않거나 둘 중 하나다. 그것은 내가 어찌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그렇다면 지금, 이 순간만큼은 경쾌하게 지내는 편이 좋지 않을까. 수면 위를 둥둥 떠다니며 햇살과 바람을 느끼고 살랑대는 보사노바에 맞춰 몸을 흔드는 게 나쁜 일은 아니니까. 진한 맥주 한 잔 곁들어도 좋겠지. 그렇게 태평하게 굴다간 무시무시한 태풍에 잡아먹힐지도 몰라. 그런 목소리가 들리면 이렇게 대꾸하고 싶다. 알겠어요. 우선 여기 이 레몬 케이크를 먹어봐요. 정말 맛있다고요.

2024-06-10

서른여덟 살의 기타 유망주

서른여덟에 기타 선수를 꿈꾸는 필자. 요즘 나의 낙은 기타 레슨을 받는 것이다. 싱어송라이터로서 첫 앨범을 낸 것이 2010년. 벌써 데뷔한지 14년이 되었지만 여전히 음악은 새로운 부분들이 많다. 블루스 기타 솔로 연주를 중점적으로 배우다보니 내가 사용하지 않는 음들을 만나게 되기도 하고, 다소 틀에 박혀 있다고 느꼈던 나의 멜로디가 자유롭게 요동치는 것을 느끼기도 한다. 나에게 새로운 세계를 열어주고 있는 선생님은 우연히 알게 된 후배 뮤지션 남경운. 그는 나보다 13살이나 어리고 음악 경력도 짧지만 기타 연주 하나만큼은 기가 막히게 해내는 발군의 연주자이며 재능 넘치는 싱어송라이터이다. 서른여덟 살의 내가 스물다섯 살의 그에게 기타 연주를 가르쳐달라고 말하는 것이 조금은 쑥스러웠지만 용기를 내어 부탁을 했고, 그것은 최근에 내가 한 일 중에 가장 잘 한 일이 되었다.사실 음악을 더 배워야겠다고 마음먹을 수 있었던 것은 형준이 형 덕분이기도 하다. 그는 같이 활동하던 뮤지션 중 한 명이었는데, 음악만큼 사랑하는 일이 바로 복싱이었다. 어느 날 그가 다니던 복싱 체육관의 관장님께서 노환으로 별세하시고, 그가 체육관을 인수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오랫동안 복싱을 해온 터라 누군가를 가르칠 실력은 충분했으나 복싱선수로서의 타이틀이 없었던 형준이 형은 이를 극복하기 위해 프로복싱 신인왕전에 원서를 넣었고 결국 신인왕 타이틀을 거머쥐기에 이르렀다. 그 때 형의 나이가 마흔이 넘은 시점이었다. 지금까지 불혹의 복서로서 2전 2승 1KO라는 성적을 올리고 있는 그를 보며 나는 강한 자극을 받았다.사실 삼십 대 후반으로 접어들면서 나는 내가 더 이상 무언가를 배워서 늘 수 있는 가능성이 몹시 줄어들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특히 어느 정도 숙련도를 가지고 있는 음악이나 문학의 분야에서 만큼은 지금의 기량을 유지하는 정도를 목표로 해야지, 지금보다 실력이 나아질 수 있는 가능성은 닫아놓고 있었다. 그런데 형은 마흔에 신인으로 데뷔를 하였고 꾸준히 실력을 연마해 더 높은 랭킹으로 올라가고 있는 중이라니. 내겐 놀라운 일이었다.또 어느 날은 TV를 보는데 가수 이효리씨가 나왔다. 이효리씨는 요즘 들어 보컬 레슨을 받고 있다고 했다. 사실 뛰어난 보컬을 지녔다고는 할 수 없었지만 이미 1990년대와 2000년대, 2010년대, 2020년대에 차트 1위를 경험한 유일무이한 가수가 된 그다. 충분히 많은 것을 이룬 그가 데뷔 26년차에 자신의 보컬에 부족함을 느끼고 일주일에 세 번씩 학원에 다니고 있다니. 그 열정과 용기가 존경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실제로 최근에 들은 그의 라이브는 예전보다 훨씬 훌륭해져 있었다.돌아가신 작은할아버지 생각도 났다. 나의 이름을 지어주시기도 하셨던 작은 할아버지는 젊은 시절 러시아문학과 인공어인 에스페란토를 공부하고 싶어 하셨다고 한다. 그러나 형이자 가장이었던 우리 할아버지께서 시대적인 이유로 공산권의 언어를 공부하는 것을 반대하시는 바람에 포기하고 교사 생활을 하셨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 은퇴를 하신 뒤에 60대의 나이로 노어노문학과 대학원에 석사과정으로 입학을 하셨고 기어이 학위를 받아내시고 말았다.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아 돌아가셨지만, 본격적으로 하고 싶은 공부를 하시고부터 돌아가시기까지의 그 시간이 아마 작은할아버지께서 가장 행복하셨던 시간이 아니었나 싶다. 강백수 세상을 깊이 있게 바라보는 싱어송라이터이자 시인. 원고지와 오선지를 넘나들며 우리 시대를 탐구 중이다. 배움에는 나이가 없다는 말이 있다. 실제로 그것을 증명하는 이들이 이렇게나 많고 이들 말고도 얼마든지 있다. 그런데 고작 마흔도 안 된 내가 스스로 가능성을 차단하고 이제는 더 나아질 수 없다며 징징대고 있었다니. 부끄러운 일이다. 최근 공연에서는 노래와 노래 사이의 간주에 다른 연주자에게 맡기곤 했던 기타 솔로 연주를 한 두 곡 정도는 내가 시도해보기도 한다. 빼어나다고는 할 수 없지만, 유명한 기타리스트들처럼 지판 위를 날아다니듯 테크닉을 뽐낼 줄도 모르지만, 그럭저럭 다른 기타리스트들이 하는 솔로 플레이 비슷하게는 소리를 내는 나 자신을 보며 흡족한 미소를 짓기도 한다.한 분야에서 배움을 얻고 성장하는 자신을 발견하고나니 또 다른 도전들이 하고 싶어지기도 한다. 음악 영역에서도 여태껏 내 분야가 아니라고 생각했던 분야들에 발을 담가보고 싶어졌고, 문학적으로도 여태 해 보지 않았던 것들을 해 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그렇게 나는 더 도전적으로 이것저것 시도하며 살아보려 한다. 그래, 그런 게 없다면 남은 인생이 너무 지루하지.

2024-06-10

가난이란 무엇인가

최근 타계한 신경림 시인은 ‘가난한 사랑 노래’란 시를 남겼다. /연합뉴스 “가난하다고 해서 외로움을 모르겠는가/ 너와 헤어져 돌아오는/ 눈 쌓인 골목길에 새파랗게 달빛이 쏟아지는데./ 가난하다고 해서 두려움이 없겠는가/ 두 점을 치는 소리/ 방범대원의 호각 소리 메밀묵 사려 소리에/ 눈을 뜨면 멀리 육중한 기계 굴러가는 소리./ 가난하다고 해서 그리움을 버렸겠는가/ 어머님 보고 싶소 수없이 뇌어 보지만,/ 집 뒤 감나무에서 까치밥으로 하나 남았을/ 새빨간 감 바람 소리도 그려 보지만./ 가난하다고 해서 사랑을 모르겠는가/ 내 볼에 와 닿던 네 입술의 뜨거움/ 사랑한다고 사랑한다고 속삭이던 네 숨결/ 돌아서는 내 등 뒤에 터지던 네 울음./ 가난하다고 해서 왜 모르겠는가,/ 가난하기 때문에 이것들을/ 이 모든 것들을 버려야 한다는 것을.”신경림의 시 ‘가난한 사랑 노래’다. 시인은 맑고 뜨거운 눈물의 언어를 우리에게 남기고 얼마 전 세상을 떠났다. ‘파장’, ‘농무’, ‘목계장터’ 등 절창이 셀 수 없으나 대중에게 가장 잘 알려진 건 위의 시다. “이웃의 한 젊은이를 위하여”라는 부제가 달렸다. 가난한 젊은이는 곧 그 자신이기도 하고, 1960년대와 70년대를 거쳐 온 민중이기도 할 것이다. 시인은 젊은 날 광부, 장사꾼, 영어강사 등으로 힘겹게 삶을 이었다.가난을 겪어본 시인이 쓴 이 시는 가난이 무엇인지 말해준다.가난이란 두려워하면서도 기계에 손을 넣거나 용광로 위를 아슬아슬 걸어가는 것이다. 가난이란 버릴 수 없는 그리움을 버리고 사랑을 알아도 몰라야만 하는 것이다. 가난은 꿈과 사랑과 그리움을 다 버려야 하는 상태, 개성이며 취향은 물론 희망과 기대까지 모든 게 끊어져버린 막막한 무저갱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시에 흐르는 가난의 구정물 대신 애처롭게 빛나는 가난의 낭만만을 읽는다.신경림 시인이 하늘로 돌아간 날, 학생들과 박완서의 단편 ‘도둑맞은 가난’을 읽었다. 빈민촌에서 사는 ‘나’는 일가족이 자살해 세상에 홀로 남았다. 얼마 안 되는 봉급이지만 씩씩하게 삶을 꾸리면서 동거남인 상훈과 미래의 알뜰한 행복을 꿈꾼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사라졌던 상훈이 말끔한 양복 차림으로 나타나 말한다. “사실 나는 부잣집 도련님이고 대학생이야. 아버지께서 방학 동안 어디 가서 고생 좀 하고, 돈 귀한 줄도 알고 오라고 해서 너랑 여기서 지낸 거야.”가난을 ‘사서 하는 고생’으로 여기는 풍조는 여전하다. 몇 해 전 쪽방촌 체험 프로그램이 논란이 되기도 했다. ‘나’는 “부자들이 가난을 탐내리라고는 꿈에도 못 생각해 본 일이었다. 그들의 빛나는 학력, 경력만 갖고는 성이 안 차 가난까지를 훔쳐다가 그들의 다채로운 삶을 한층 다채롭게 할 에피소드로 삼고 싶어 한다는 건 미처 몰랐다”며 절규한다. 사람들은 가난에 낭만을 부여하고 서사를 입히기 좋아한다. 같은 성공이라도 자수성가 스토리에 열광하고, 가난해본 적이 있다고 하면 인간적으로 느낀다. 그러니 정치인들이 선거철마다 재래시장에 가 어묵을 먹고, 겨울에 연탄 나르며 흰 얼굴에다 검댕을 처바른다. 연예인들이 빚더미에 앉았다며 생활고를 호소하고, 광고가 끊겼다며 운다. 이병철 문학평론가이자 시인. 낚시와 야구 등 활동적인 스포츠도 좋아하며,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우리의 가난은 대개 상대적 가난이다. 하지만 진짜 가난은 절대적인 것이다. 서로의 가난을 비교하다 그래도 나는 낫구나 싶으면 가난이 아니다. 남보다 나은 게 하나도 없는 가난이 진짜 가난이다. 학생들에게 말했다. “집에서 나와 옷 입고 밥 먹고 여기 앉아 있는 여러분과 나는 가난하지 않다. 결핍과 가난을 혼동하지 말자. 정말 가난한 이들을 욕보이지 말자. 가난을 낭만으로 여기지 말자. 가난을 대상화하지 말자”고.돌아보면 나는 결핍을 가난과 착각해 잘 먹고 잘 사는 생활을 애써 남루하게 만든 적이 많았다. 누군가에게 가난은 타개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 벗어날 수 없는 운명이며 삶 자체다. “가난을 희롱하는 것만은 용서할 수 없지 않은가. 가난한 계집을 희롱하는 건 용서할 수 있다손 치더라도 가난 그 자체를 희롱하는 건 용서할 수 없다. 더군다나 내 가난은 그게 어떤 가난이라고. 내 가난은 나에게 있어서 소명이다. (…) 내 방에는 이미 가난조차 없었다. 나는 상훈이가 가난을 훔쳐갔다는 걸 비로소 깨달았다.”는 소설의 마지막 대목을 읽으며 등골이 서늘하다. 나는 그리움을 알고 사랑을 알고 고기와 술을 먹고 마시며 더 즐거운 내일을 기다리는 사람이 아닌가.

2024-06-03

결혼 이야기

요즘 부쩍 결혼에 대해 생각하고 있다. 주말이 되면 카페에 앉아 가능한 주택 대출제도를 알아보고 앞으로 우리가 살 곳이 어딜지 점찍어 보며 살고 싶은 동네를 찾아가 찬찬히 둘러본다. 그것만으로 벌써 내게 마음에 드는 집 한 채가 생기는 기분. 연인의 손을 잡고 걷는 이 동네가 벌써 우리 것이 된 것만 같아 설렌다.결혼이란 뭘까.사실 깊게 생각해보진 않았으나, 때때로 결혼이란 상대에게 얽매이는 구속 또는 희생처럼 느껴지곤 한다. 그렇게 지레 겁을 먹다보면 현재 내 앞의 행복이 소중하고 아까워서 놓치고 싶지 않아진다,8평 짜리 원룸이지만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가득 찬 자유의 공간. 하지만 사정이 좋지 않아 이곳에 배우자와 함께 살게 된다면? 아주 약간 망설여질 정도로 쉽게 내 공간을 내어주기란 쉽지 않다. 이 협소한 공간 속에서 우린 서로의 눈치를 살피고 양보하며 살아가야 할 거고, 무조건적으로 사랑해야 근사한 결혼 생활이 될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그러던 중 며칠 전 본 영화 ‘결혼 이야기’를 보고 결혼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다.LA 출신 여배우 니콜은 연극 감독인 찰리와 결혼을 하기 위해 배우 커리어를 버리고 그와 결혼해 뉴욕에 산다. 니콜은 결혼 생활 중 고향인 LA로 돌아가고 싶지만 찰리와의 결혼 생활 때문에 쉽게 내려가지 못한다. 그러던 중 니콜이 LA에서 촬영이 진행되는 한 파일럿 프로그램에 들어가게 되고, LA에 생활하며 찰리에게 이혼 신청을 요구한다.그 와중 그들의 싸움은 점점 격해지며 결국 변호사를 고용해 이혼 소송까지 번지게 된다. 이혼 소송에서 일어나는 일과 인물의 감정선을 극의 절정까지 끌어올리며, 두 인물 모두 서툴고 인간적이며, 본인 스스로가 제일 중요한 이기적인 인간상을 날 것 그대로 드러낸다.사랑은 변하기 마련이다. 남녀간의 사랑은 결혼 전과 후 분명히 결이 달라진다. 무수히 많은 상황, 환경, 사건이 있겠고 두 사람의 사이를 갈라놓거나, 변형되거나, 비틀어지거나, 끈끈해지거나, 단단해질 수도 있다.이 영화를 통해 깨달은 건 사랑만으로 완벽한 결혼 생활의 완성을 꿈꿀 수 없다는 점이다. 나와 너는 우리로 묶이지만 어쨌든 다른 개개인의 인간이고, 더군다나 유통기한처럼 소멸하는 연인간의 뜨거운 사랑만으로는 결혼이 성립되지 않는다는 것.영화 속 니콜과 찰리는 웨딩마치 속 화려함이 완벽하게 빼내진 채로 담담하고 솔직하게 마지막을 향해 달려간다. 하지만 니콜은 찰리와 헤어지는 길에서 그의 풀린 신발끈을 정성스레 묶어준다, 이혼을 고려할 정도로 그를 증오하지만 그가 가는 길에 넘어지지 않도록 신발끈을 묶어주며 끝내 서로에 대한 신뢰를 잃지 않는 쪽을 택하는 것이다. 니콜에게 찰리는 ‘우리끼리의 나눈 농담도 다 기억하는 사이’, ‘확신이 없는 나랑은 정반대인, 뭘 원하는지 정확히 아는 사람‘이었으며 무엇보다도 ’그를 본지 2초 만에 사랑에 빠져‘버릴 정도로 내가 깊게 빠져들었던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윤여진 2018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 부문에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현재보다 미래가 기대되는 젊은 작가. 상대를 답답해하고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며 소리를 지르는, 서로에게 상처를 주기 위해 모난 말들만 던지는 싸움 속에서 그간 우리가 쌓아올린 존중과 신뢰의 태도를 굳게 유지하는 것은 쉽지 않다. 싸움은 감정을 소모하는 일이고, 감정이 고조되며, 본능적으로 손해를 보기 싫어하니까. 아담과 찰리도 그렇다. 서로를 위해 고상하게 차 한 잔 나누며 이야기를 이어가지 않는다. 그들은 서로에게 소리를 지르고, 벽을 부수고, 욕설을 내뱉는다. 하지만 그들이 사랑으로 쌓아올린 믿음까지 부수진 못한다. 그들은 과거의 사랑을 바탕으로 각자의 길을 걸어도 서로의 길을 응원하는 사이를 택한다.파경 후 관계를 유지하는 ‘결혼 이야기’를 보며 나는 오히려 그전까진 알지 못했던 사랑에 대한 또 다른 가능성을 보았다. 내가 무서워했던 것은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레 소멸된 애틋한 사랑이었고, 이는 본질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아주 단순한 겁이었음을 알았기 때문이다.사랑은 자연스레 변할 테지만 함께 사랑해온 시간 속의 믿음과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 나는 언제고 연인과의 첫 만남, 우리가 나눈 눈빛, 여행지를 기억할 수 있고 이는 이미 내게 영원한 믿음으로 자리했기 때문이다.

2024-06-03

꼰대학 개론

어도어 민희진 대표의 기자회견이 한동안 이슈였다. 인터뷰의 내용부터 그가 입었던 의상까지 화제가 되었지만 단연 화제의 중심에 있었던 것들은 그가 사용한 자유분방한 어휘였다. 비어와 속어를 넘나들며 등장시킨 단어들은 하나하나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기에 충분했지만 그 중 내게 깊은 인상을 남긴 단어는 바로 ‘개저씨’ 였다.그것은 나의 상황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나는 어느덧 30대 후반이 되었고, 곧 아이 아빠도 된다. 이제 형, 오빠 소리 들을 나이는 지났다는 이야기이다. 누군가 “아저씨!”하고 외치면 가던 길을 멈추고 뒤를 돌아봐야 할 나이. 그 아저씨라는 호칭에 적응을 해야 하는 나이이기 때문에 아저씨와 연관된 단어가 더 인상깊게 남아있는 것이다.개저씨. 개와 아저씨의 합성어로 중장년층 남성 중 무례하고 꽉 막힌 이들을 속되게 칭하는 말이다. 사실 해묵은 표현이라 할 수 있다. 수년 전부터 국민들 상호간에 온갖 혐오들이 난무하며 생겨난 혐오 표현 중 하나이다. 한동안 유행을 타다가 시들해진 말인데, 민희진 대표의 입을 통해 다시 화제가 되었다고 할 수 있겠다. 무례하고 꽉 막힌 어른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 하는데 그 대상을 반드시 남성만으로 한정시킬 의도가 없으며, 다소 거친 표현이기에 이 글에서는 기성세대를 지칭하는 오래된 은어인 ‘꼰대’정도로 바꾸어 이야기를 해 보고자 한다.꼰대란 무엇일까. 이와 같은 질문을 받아본 적이 있다. 몇 해 전, 결혼 허락을 받기 위해 장인어른과 장모님을 처음 뵙는 자리에서였다. 처음 만나는 예비 사위와의 대화가 서먹할 것을 우려하신 장인어른께서는 나름 대화를 나눌 만 한 토픽을 하나 생각해 오셨다. “자네는 꼰대가 무엇이라 생각하나?” 나는 대답했다. “꼰대는 자신이 꼰대일 가능성을 생각하지 못하는 사람들입니다. 혹시 장인어른께서 ‘내가 꼰대는 아닐까?’라는 생각을 가지고 계신다면 그것은 이미 장인어른께서 꼰대가 아니라는 증거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대답했다. 장인어른께서는 흡족한 미소를 지어주셨다.꼰대는 이와 같이 자신이 틀렸을 가능성에 대해 생각하지 못하는 사람이며, 여기에 한 가지 덧붙이자면 타인에 대한 배려가 부족한 사람이다. 이 두 가지 특성이 절묘하게 버무려져 권위의식이라는 결과물을 도출해내기도 한다. 자신이 젊은 세대보다 위에 있다고 생각하고, 그러므로 젊은 세대에 대해 예의를 갖추지 않아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사람. 이들이 바로 꼰대이다.꼰대들에게도 젊은 시절이 있었을 것이다. 이들 모두가 그때부터 꼰대였으리라고 생각하기는 어렵다. 그렇다면 꼰대는 어떻게 탄생하는 것일까? 꼰대의 기질은 사실 누구에게나 있다고 생각한다. 누구나 자기가 옳다는 아집이 있고, 때로 무례해지는 순간도 있다. 그렇지만 그 정도에 차이가 있고, 그것을 얼마나 잘 억누르고 사느냐의 차이도 있다. 젊어서는 깊은 곳에 숨겨 두었던 꼰대 기질이 나이를 먹으며 자연스레 발현된다. 계기는 사람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결국은 ‘그래도 된다’라는 사실을 발견하는 것이 꼰대 기질 폭발의 시발점이 된다. 무조건 나는 옳고 너는 틀리다는 이야기를 쏟아냈는데, 그리고 무례한 행동을 했는데 내게 돌아오는 불이익이 없었던 경험들. 그것이 반복되며 ‘아, 나는 이래도 되는 사람이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만들고, 이런 것들이 몸에 배며 한 사람의 꼰대가 탄생하는 것이다. 강백수 세상을 깊이 있게 바라보는 싱어송라이터이자 시인. 원고지와 오선지를 넘나들며 우리 시대를 탐구 중이다. 그렇다면 이걸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유전적으로 질병 인자를 갖고 있다고 해서 누구나 이른 나이부터 그 질병으로 고통 받으며 살아가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는 앞으로 발현될 질병을 미리부터 검진을 통해 예방하려 노력하고, 또 누군가는 이 질병이 고개를 들기 시작할 무렵부터 미리 다스리며 질병이 생활을 지배하지 않도록 조치하곤 한다. 우리는 꼰대가 되지 않기 위해 미리 스스로에게 ‘내가 혹시 꼰대는 아닐까?’ 하는 질문을 때때로 던져야 한다. 혹시 스스로의 언행을 돌이켜봤을 때, 권위적이었거나 무례했다는 것이 생각난다면 빠르게 사과하고 반성해야 한다.20대와 30대 시절에는 각기 그 시절에 가지게 되는 특성을 지니며 살아가게 된다. 사람들마다 편차는 있지만 대부분 그 특성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는 것 같다. 그런데 40대 이후로는 사람들의 성격이나 라이프스타일이 천차만별이 된다. 누군가는 여전히 20대 못지않게 ‘힙’하고 누군가는 여전히 30대 못지않게 세련된 삶을 살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또 누군가는 40대에 벌써 꼰대, 개저씨가 되기도 한다. 어떤 삶을 살지는 우리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

2024-05-27

좋은 어른에 대하여

스승의 날을 맞아 학생들에게서 연락이 왔다. 애틋한 마음으로 함께 문학을 공부했던 시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데 문득 한 친구가 그런 이야기를 꺼냈다. 당시 개인적인 상황 때문에 힘들었는데, 그때 내가 좋은 어른의 역할을 해주어서 고마웠다는 것이었다. 망치로 얻어맞은 것처럼 머리가 멍해졌다. 나는 오랫동안 좋은 어른을 만나기를 바라왔으나 그것이 내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그것은 보다 크고 본질적인 영역이었다. 연기처럼 피어나는 의문을 곱씹어보았다. 정말 나는 좋은 어른일까. 그러니까 좋은 어른이란 대체 무엇일까.당연한 말이지만, 나는 어른이다. 친구들은 각자 배우자를 찾았고 한 생명의 부모가 되었으며 자기 분야의 전문가로 거듭나는 중이다. 그러나 그건 삶의 모든 부분을 유려하게 운영하고 있다는 뜻은 아니다. 나는 여전히 과거에 머물러있고 내 안의 어떤 부분은 너무나 유치하고 저열해서 차마 글로 쓰지 못할 정도다. 학생들이 보았던 내 모습은 모두 꾸며낸 것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좋은 사람이라는 가면을 쓰고 어른의 언어를 흉내 내고 있던 것일 수도 있다.돌이켜보면 나는 꽤 요란스러운 사춘기를 보냈다. 내가 어디에 발을 디디고 있는지 이해하지 못했고 끊임없이 시스템에 의문을 품었다. 그런 내게 만족스러운 답을 건네주는 어른은 없었다. 부모님은 늘 바빴으며 선생님은 돌발적인 질문을 달가워하지 않았다. 교실에 앉은 아이들은 모두 같은 자세로 앉아 한 방향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그러면 나는 비뚤어진 마음이 들어 교실을 박차고 나와 버리곤 했다. 교무실 한복판에서 벌을 받고 엄마에게 잔소리를 들으면서도 내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알지 못했다. 주먹을 꾹 쥐고 생각했다. 학교를 벗어나 넓은 세상으로 가면 나를 이해해 줄 사람을 만날 수 있을 거라고.이십 대의 내가 들떠있던 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당시의 나는 나를 옥죄고 있는 모든 형태의 억압에서 벗어난 것 같은 기분에 사로잡혀 있었다. 날이 밝도록 술을 마셨고 아르바이트를 하며 번 돈을 흥청망청 썼다. 그런 행동이 즐겁기는커녕 우울하고 불쾌한 감정이 더 자주 찾아왔다. 둘러보면 모든 것이 엉망이었다. 술집에 둘러앉아 세상의 부조리함에 관해 한참 토로하다 보면 날이 밝았고 나는 패배한 장수처럼 어깨를 늘어뜨리고 집에 돌아와야 했다. 문학하는 선생님들을 따라다니며 그들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문장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날도 잦았다. 그 안에 삶의 거대한 진실이 숨겨져 있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이렇게 말하는 듯했다. 너는 아직 어른이 되지 못했어. 이곳으로 넘어오면 너도 답을 알게 될 거야.시간이 흐르며 나는 내가 제대로 질문하는 법조차 모르는 사람이었단 걸 깨닫게 되었다. 누군가 자신 있게 정답이라고 외쳤던 것이 그의 오만함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았고 억지로 움켜쥔다고 해서 내 것이 될 수 없음을 이해하는 순간도 찾아왔다. 기성세대와 대화하면 경험할 수 있는 묘한 장벽 같은 것이 이런 식으로 생성되는 것일까. 정신 차려보니 나는 삶의 한복판에 놓여있었고 어떤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 위치에 서 있었다. 교실에서 그러했던 것처럼 당차게 삶을 박차고 나오고 싶지만 고개를 젓고 자리에 앉게 된다. 누가 말해주지 않아도 이젠 내가 안다. 도망치는 게 답이 될 수 없다는 것을. 문은강 ‘춤추는 고복희와 원더랜드’로 주목받은 소설가. 2017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작가로 등단했다. 너무 쉽게 타인의 삶을 들여다볼 수 있게 된 요즘이다. 규칙적인 운동과 철저한 식단으로 건강을 관리하는 이들과 사회적으로 성공을 거둔 이들, 괴로운 순간에도 포기하지 않고 위기를 기회로 만든 이들의 이야기를 클릭 한 번이면 무한으로 시청할 수 있다. 그것들은 너무나 매끈하게 빚어져 있어서 이질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그들은 인생의 답을 찾은 듯하고 그를 토대로 젊은이들에게 ‘인생 조언’을 내놓기도 한다. 그토록 원하던 어른들의 이야기가 우르르 쏟아지는 데도 마음이 채워지기는커녕 헛헛하게만 느껴진다.시간은 아이를 어른으로 만든다. 모두가 어른이 되지만 모두가 좋은 어른이 되진 않는다. 어쩌면 좋은 어른이라는 건 허상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 좋은 어른은 꼭 필요하다. 정신적으로 기댈 곳이 없는 젊은이들에게 필요한 건 믿음이다. 믿음은 타인이 주는 것이 아니라 자기 내부에서 생겨나는 것이다. 자신이 어떤 어른으로 살아갈 것인지에 관해 상상하고 그것을 믿어야 한다. 거기서부터 많은 것이 달라질 것이다.

2024-05-27

뜨개질하는 마음

뜨개질을 할 때면 별 다른 걱정이 들지 않는다. 실을 구멍에 넣고 또다른 실을 가져와 한 바퀴를 돌린 후 그저 실 밖을 통과하는 단순 작업의 반복일 뿐인데, 뜨개를 뜨다 보면 왜 이렇게 마음이 편해지는 걸까.뜨개는 대바늘과 코바늘로 나뉜다. 같은 실을 사용할 수 있지만 바늘과 뜨는 기법에 따라 엄연히 다른 작품이 탄생한다. 대바늘은 조금 더 훌렁훌렁하고 부드럽게 떠지기 때문에 주로 스웨터나 목도리를 뜰 때 사용하고, 코바늘은 조금 더 딱딱하고 편편하게 떠지기에 컵 받침대나 수세미 등 작은 소품을 뜰 때 좋다.나는 주로 두 바늘로 편물을 뜨는 대바늘을 더 선호하는 편이다. 두 손으로 두 가지 바늘을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 있어 움직임이 매끄러운데다, 코 수가 틀리면 바로 수정하기 쉽기 때문이다. 또한 두 손에 일정한 힘이 고르게 들어가서 더욱 안정적으로 느껴진다.대바늘 뜨개질의 매력은 쭈욱 같은 행위를 반복하며 잡생각이 들지 않다는 점이다. 요즘 사소한 일에도 잘 집중하기 어려운데, 뜨개질을 할 때면 신기하게도 쇼파에 몸이 파묻힐 정도로 앉아 뜨개를 뜨고 있다.두 바늘을 교차하여 실을 이어 나가는 동안은 떠오르는 걱정이 잠시 물러 난다. 바늘이 나아가는 것만큼 뜨고 있는 편물이 실시간으로 손에 잡히기에 노력 대비 실적이 크게 느껴진다. 그렇게 가방에 달고 다니는 장식품도 만들고 작은 물건을 넣어 다니는 파우치도 만들고, 얇은 원사를 사용해서 여름에 착용하기 좋은 하늘거리는 스카프도 만든다.바구니에 안온하게 들어가 있는 저 평온한 자세. 엎드린 고양이의 등을 쓰다듬는 듯 실뭉치를 만지다 보면 마음이 부드러워진다. 실을 만질 때면 바깥 세상의 뾰족함으로부터 멀리 벗어나는 느낌이랄까.바늘을 손가락으로 어떻게 잡느냐에 따라 뜨는 기법도 다양하다. 잉글리시 니팅은 보통 많이들 사용하는 기법으로, 실을 오른손으로 가볍게 잡아 뜨는 방법을 말한다. 콘티넨틸 기법은 자신이 주로 사용하지 않은 손에 실을 잡고 뜨는 방식이다. 만일 뜨는 사람이 오른손잡이라면 오른손에 바늘을 잡고 왼손에 실을 잡아 뜬다. 레버 니팅은 손을 지렛대로 사용해 속도를 높이는 기법이다. 바늘을 잡는 자세에 따라 편물의 모양이 미세하게 달라지지만 여러 가지를 해보면서 내 손에 맞추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마치 손과 실이 하나가 되어 곡을 리드하는 지휘자의 손놀림과 같달까.리듬에 맞춰 생각없이 이것도 뜨고 저것도 뜨다 보면 내 옆엔 내가 만든, 작품들이라 부르기도 민망한 털뭉치들이 잔뜩 널려 있다. 만들고 남은 자투리 실, 옆선이 울룩불룩 제 멋대로인 편물들, 어딘가 서툴고 부족하지만 직접 만든 물건으로 채워지는 나의 삶을 더욱이 애정 어리게 보게 된다.일반 실에 형형색색의 반짝이가 들어가 있는 실을 합사하여 더 다채로운 색상을 만들어 뜰 수 있다는 점도 매력적이다. 원하는 대로 색을 조합해 더욱 독특하게 만들어 볼 수 있고, 이는 기성품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또다른 매력을 지니고 있다. 윤여진 2018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 부문에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현재보다 미래가 기대되는 젊은 작가. 평소엔 눈 감고도 뜰 수 있던 컵받침 같은 쉬운 것들이 어느 날은 유독 진도가 더디게 떠질 때가 있다. 잔 실수를 계속 하다 길이 한번 잘못 든 실은 간단한 수정만으로도 복구가 되지만, 실수가 계속된다면 결국 그 줄에 있는 전체 코를 전부 다 빼내어 다시 처음부터 해야 한다. 그럴 때 필요한 건 바로 인내심이다. 바깥 생활에서 갈고 닦은 인내심을 이 때 발휘해야 한다. 참을 인을 이마에 그린 후, 다시금 처음부터 천천히 나아가는 것. 굳세게 버티어 계속해서 나아가는 노력의 산물이 바로 뜨개인 것이다.뜨개의 또 다른 매력은 정확한 손놀림이다. 실시간으로 늘어나는 편물을 보고 있노라면 괜시리 욕심이 나서 더욱 손놀림이 빨라진다. 실을 꽉 잡아당기며 손에 힘이 잔뜩 들어간다면 어느새 뜨고 있던 편물의 모양은 이상해진다. 하나의 코가 빠져 있거나 바늘이 다른 구멍으로 들어갔기 때문이다. 잠깐의 욕심이 불러온 참사. 지나친 욕심은 늘 이렇게 괴상한 모양을 띠게 마련이다. 그럴 땐 다시 뜨개를 내려 놓고 심호흡을 하며 시간이 지나가길 기다린다. 후우. 몇 초간 멍을 때리다 다시금 실을 팽팽히 잡아당겨 손끝으로 전해져 오는 장력을 느껴본다. 그리고 또다시 실을 술렁술렁 넘기며 마음의 가벼움을 느낀다. 실을 정확히 컨트롤하며 편물을 뜨는 것. 세상 일처럼 뜨개 마저도 자꾸만 실수를 하기 마련이지만, 그럴 때마다 이렇게 풀고 다시 나아가다보면 근사한 작품이 만들어지지 않을까? 뜨개도, 삶도 말이다.

2024-05-20

금쪽같은 내 가수 김호중?

금같이 귀한 자식을 ‘금쪽같은 내 새끼’라고 하는데, 티브이 프로그램 제목이기도 하다. 방송에서는 시도 때도 없이 욕설을 하거나 폭력을 휘두르는 등 문제 행동을 보이는 아이를 금쪽이라고 부른다. 아동 전문가 오은영 박사가 맞춤 솔루션을 제공해 금쪽이를 변화시켜 나가는 과정을 보여준다.부모의 올바른 훈육 부재와 과잉된 감싸기가 문제 행동을 키운 사례가 대부분이다. 꾸짖어야 할 때도 예뻐만 하다 보니 아이가 자기감정과 충동을 제어하지 못하고 제멋대로 날뛴다. ‘금쪽이’는 문제 아동을 지칭하지만 시청자들은 ‘내 새끼 지상주의’로 아이를 망치고 있는 부모를 먼저 떠올린다.금쪽같은 가수가 있다. 강남의 한 유흥주점에서 나와 차를 몰고 가던 중 택시와 추돌사고를 낸 후 도망쳤다. 매니저와 운전자 바꿔치기를 하고, 블랙박스 메모리카드를 제거해 증거 인멸까지 시도한 정황이 포착됐다. 경찰에 자수한 매니저는 자신이 운전했다고 주장했지만 경찰 조사 결과 운전자는 바로 그 금쪽이, 김호중임이 밝혀졌다.음주 뺑소니가 의심되는 상황에서 소속사는 조직적인 은폐를 시도했다. 김호중 측 주장은 너무 구차해 폭소가 터질 정도였다. “술잔에 입만 댔을 뿐 술은 마시지 않았다”, “매니저가 운전했다”, “대리운전을 이용했지만 술은 마시지 않았다”, “아티스트가 피곤해 해서 대리운전을 맡겼다”, “공황장애가 와 사고 처리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 해명할수록 엉망진창이었다. 눈물겨운 ‘김호중 구하기’가 ‘팀킬’이 되고 있는 가관이 우스웠다.소속사는 “어떠한 경우에도 아티스트를 지킬 것”이라고 선언했었다. 누가 보면 김호중이 민주투사나 정의로운 내부고발자라도 되는 줄 알겠다. 예정된 공연을 강행하겠다는 입장엔 변함이 없었고, 팬덤의 감싸기는 더 극성이었다.“얼마나 지쳤으면 그랬을까. 눈물이 난다”, “사람이 살다 보면 그럴 수도 있다”, “엄청난 스케줄에 힘들었겠다는 생각뿐이다”… JMS를 결사옹위하는 사이비 신도들을 보는 듯하다. 팬클럽 명의로 구호단체에 기부금을 전달했지만 거절당하는 망신도 당했다.몰상식하고 맹목적인 팬덤을 방패삼아 소속사는 법과 대중을 농락하며 패악질을 부렸다. 가장 비겁한 건 그 지경이 되도록 팬덤과 소속사의 암막 뒤에 숨어 침묵하고 있던 김호중이었다.영화 ‘여인의 향기’에서 퇴역군인 프랭크는 명문 사립교 베어드의 징계위원회에 찰리의 보호자로 참석한다. 그는 양심을 지킨 찰리를 변호하고, 비열한 고자질쟁이가 되기를 선택한 조지를 꾸짖으며 일갈한다. “일이 꼬이면 어떤 놈은 도망가고 어떤 놈은 남지. 여기 그 화형불에 맞서는 찰리가 있고, 아빠의 커다란 주머니 속에 숨어 있는 조지가 저기 있네.”팬의 말마따나 사람이 살다 보면 그럴 수 있다. 누구나 실수하고 잘못을 저지른다. 하지만 반성하며 더 나은 사람이 되고자 수치심과 두려운 손가락질 앞으로 나아가는 이가 있는 반면 뉘우칠 용기조차 없이 스스로 파놓은 구덩이 안에서 눈과 귀를 닫은 채 그 협소한 가짜 평화에 평생을 머무는 이가 있다. 그게 지옥인 줄도 모르고. 이병철 문학평론가이자 시인. 낚시와 야구 등 활동적인 스포츠도 좋아하며,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김호중은 이미 불법도박 전력이 있고, 과거 그로부터 상습 폭행을 당했다는 전 여자친구와 진실공방을 벌였으며, 이번에 그가 다녀온 유흥주점은 속칭 ‘텐카페’로 불리는 룸살롱이다.소속사는 검찰총장 직무대행까지 맡은 바 있는 조남관 전 대검찰청 차장검사를 변호인으로 선임했었다. 전관예우를 염두에 둔 것으로 보였다. 어떻게든 아티스트를 지키겠다더니 교묘하게 법망을 피해 갈 계획을 세웠던 것이다. 하지만 대중의 심판마저 피하진 못할 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법을 무력하게 하고 양심과 정의, 도덕이라는 사회적 신뢰를 비웃는 이들에게 휘두를 대중의 회초리는 비판과 불매, 철저한 외면, 그러면서 잊지 않는 것이다. ‘트바로티’가 아니라 ‘비겁한 금쪽이 김호중’으로 내내 기억하는 것이다.거짓은 더 큰 거짓을 부르고 거짓이 태산처럼 쌓이면 결국 그 거짓 세상에서 가짜 인생을 살다가 먼 훗날 자신이 허깨비였음을 알고 가슴 치며 절규하리라. 그때는 이미 늦다. 사죄하고 용서를 구하는 이에게 다시 기회를 주는 관용이 우리 사회에 아직 있다고 믿는다. 순간을 피하고 비겁한 겁쟁이로 평생 살 것인가 잘못 앞에 무릎 꿇고 남은 생애 동안 더 나은 사람으로 살 것인가. 소속사와 팬덤에 묻지 말고 스스로 선택하는 게 성인이다.

2024-05-20

덮어둔 것을 열어야 할 때

양꼬치를 먹다가 어금니가 깨졌다. 탕후루도 아니고 양꼬치에 이가 망가지다니. 고량주를 곁들이던 것이 불행 중 다행이었다. 취기 덕분에 와하하 웃으며 대수롭지 않은 척 넘길 수 있었으니까. 세상의 많은 일이 실없는 웃음처럼 지나가면 얼마나 좋을까. 취기가 가시고 입속의 빈자리가 선명해질수록 두려움이 엄습해 왔다. 오랫동안 덮어왔던 일을 열어야 했다.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치과에 가야 했다.단언컨대 치과야말로 지구상에서 가장 잔혹한 공간임이 분명하다. 단단한 것을 부수고 다시 세우는 과정이 이토록 조그만 입속에서 벌어진다니. 병원에선 공사장에서나 들릴 법한 요란한 소리가 울려 퍼지고 특유의 소독약 냄새에 머리가 아득하다. 진료용 의자에 앉아 의사를 기다리고 있노라면 불안이 점점 커진다. 의자가 뒤로 젖혀지고 천이 얼굴 위로 올라오면 본격적인 고통의 시작. 날카로운 기계가 치아에 맞닿는 감각은 몇 번을 경험해도 익숙해지지 않는다. 시리고 아프다. 눈물이 찔끔 날 만큼.어린 시절부터 이가 약했던 나는 치과에 자주 드나들었다. 사춘기가 되어선 교정 치료 때문에 한 달에 한 번씩 병원에 방문했다. 진료 날짜가 다가오는 게 싫어 억지로 급한 일을 만든 적도 있다. 대기실부터 병원 밖을 나설 때까지 몸도 마음도 편안하지 않았다. 아프면 손을 들라던 의사 선생님은 엄살을 받아주지 않고 간호사 선생님은 치아 관리 잘하라며 무서운 얼굴로 혼냈으니. 내 괴로움을 알아주는 사람은 누구도 없는 것만 같았다.어른이 되면 치과가 무섭지 않을 줄 알았다. 그러나 여전히 치과는 내게 공포의 대상이다. 달라진 게 있다면 두려움의 방향이 조금 틀어졌다는 것. 어금니가 깨진 것 같아요, 하고 접수처에 말하면서도 머릿속에선 단 한 가지 생각만 맴돌았다. 의사의 진단이 끝나고 상담실에 앉아 설명을 들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치아의 상태와 치료를 받아야 하는 이유보다 더욱 중요한 것. 대체 얼마일까? 금액을 받아 들자 머릿속에서 무수한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많은 말들이 떠올랐지만 꺼낼 수 있는 말은 단 하나였다. 그러니까, 무이자 할부 몇 개월 가능할까요.누구도 탓할 수 없다. 이것은 명백한 내 잘못이다. 치과의 권유대로 주기적으로 방문해 치아 상태를 확인하고 스케일링을 받으며 꼼꼼하게 관리했어야 옳다. 아니, 이전에 문제가 생겼을지도 모른다는 예감이 들던 많은 순간이 있었다. 그때 미루지 말고 병원에 방문해야 했다. 비단 치아의 문제만은 아니다. 돌이켜보면 덮어놓고 열어보지 않는 것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방문을 열면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옷가지가 눈에 들어온다. 이번 달이 가기 전에 반드시 고치겠다던 주방 조명도 있다. 흩어져 있는 보험의 약관도 꼼꼼하게 따져보고 정리해야 한다. 자동차 트렁크에 아무렇게나 놓인 물건부터 처리하는 게 먼저일지도 모른다. 이 모든 일을 해결할 가장 쉬운 방법은 필사적으로 모르는 척하는 것이다. 나름대로 타당한 핑계를 대본다. 강의가 있는 날은 몸이 너무 피곤하다. 하루에 두 번 강아지 산책도 시켜야 한다. 부쩍 좋아진 날씨에 반가운 친구들과의 약속은 늘어가고 챙겨야 하는 경조사도 끊이질 않는다. 덮어놓은 일이 머릿속에 불쑥 떠오르면 희미한 죄책감이 함께 따라붙는다. 정말이지 너무나 싫은 기분이다. 문은강 ‘춤추는 고복희와 원더랜드’로 주목받은 소설가. 2017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작가로 등단했다. 언제까지 덮어놓을 수만은 없다. 자의든 타의든 반드시 직면해야 할 때가 온다. 그 상황이 유쾌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알고 있다. 자책보다는 책임이 먼저 해야 한다는 것을. 미뤄둔 일을 하나씩 처리하다 보면 사실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는 것을 체감하게 된다. 힘들 줄만 알았는데 도리어 개운한 기분도 든다. 앞으로 나아간다는 건 대단한 이벤트가 벌어지는 게 아니라 이런 사소한 일에서 시작되는 것일지도 모른다.일 년에 두 번씩 치과에 방문하기로 약속하며 선물로 칫솔을 받았다. 사탕 대신 칫솔이라니. 이래서 치과가 무섭다니까. 연두색 칫솔을 가방에 넣으면서 피식 웃었다. 치아와 잇몸은 자가 회복 능력이 없어요. 간호사가 말했다.그러니까 더 신경 써야 해요. 아직 젊잖아요. 맛있는 것 실컷 먹고 건강하게 지내야죠. 그 진부하고도 다정한 말이 사탕보다 더 달게 느껴지는 이유는 뭘까. 병원에서 나오며 그간 덮어놓은 일들에 관해 생각했다. 조급해 말고 천천히 시작하면 되는 것이다. 우선 양치부터 꼼꼼히.

2024-05-13

회전초밥 같은 사람들

나는 마마보이였다. 그래서 19살에 겪었던 어머니와의 이별은 커다란 후유증을 남겼다. 스무 살이 되고 대학에 가며 나는 이전에 만났던 것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고 그들 중 아주 많은 수의 사람들과 유대감을 쌓아갔다. 어머니가 떠난 빈자리를 수많은 사람들로 어떻게든 채워보려 했던 것이다. 대인관계가 양적으로 늘어나는 것은 나로서는 뿌듯하고도 자랑스런 일이었다. 대학 시절 내내 이 건물에서 수업을 마치고 다른 건물로 수업을 들으러 가는 동안 수많은 친구, 선후배들과 인사를 나누며 요즘 말로 ‘핵인싸’임을 과시하는 것이 나의 커다란 기쁨이었다.그러나 머지않아 나는 그 모든 사람들을 내 품안에 두는 것이 무리라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다. 원하는 모든 사람들을 곁에 두기엔 나라는 사람의 그릇이 작기만 했다. 가만히 둬도 내 곁에 있어주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애써 지켜내야 하는 관계들도 있었다. 어쩔 수없이 소홀해지는 관계들이 생겨나면 그들은 여지없이 내 곁을 떠나곤 했다. 그 사실들을 뒤늦게 알아채고 나는 아쉬워했고 때때로 괴로워했지만 인연이라 믿었던 사람들은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모래알갱이들처럼 흩어져버리고 말았다.붙잡아둘 수 없는 사람들이 생겨나는 것은, 그리고 그들이 나를 떠나거나 잊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받아들이기 시작한 것은 나이를 몇 살 더 먹은 뒤의 일이었다. 멀어지는 사람들에게 애쓰는 일을 멈추니 마음이 한결 후련해졌다. 그리고 매 시절마다 내게 찾아오는 새로운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떠날 사람을 붙잡는데 쓰던 마음을 내게 다가오는 새로운 인연에게 쏟는 것이 더 낫다고 결론지었다. 물론 그들도 언젠가 내 곁을 떠나갈 수 있겠지만 그때가 되면 또다시 내 곁을 찾아올 이들이 있을 테니 별 문제가 되지 않을 것 같았다.또 몇 살을 더 먹으며 새로이 발견하게 된 사실이 있다. 멀어졌다 생각한 어떤 사람들은 우연한 기회에, 또는 뜬금없는 타이밍에 내 곁으로 돌아오기도 한다는 것이다. 기훈이형이 내게는 그런 사람 중 하나다. 우리가 처음 만난 것은 지금으로부터 십 년은 더 거슬러 올라가야 하는 먼 과거의 일이다. 나는 대학로에서 열린 한 축제의 출연자였고, 형은 그 축제의 기획단과 출연자들에게 직접 디자인한 티셔츠를 납품하는 젊은 사업가였다. 우리는 모두 이십대였고 그 나이대의 많은 이들이 그랬듯 금세 친해져 같이 술을 먹기도 하고 그의 집에서 잠을 자기도 했다. 그러다 그 역시 다른 사람들처럼 자연스레 멀어져 내 기억에서 잊혀져갔다.서른이 넘은 어느 날, 몇 년 만에 기훈이형에게서 연락이 왔다. 작가로 활동하는 내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고 자신은 출판사를 차렸으니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어 보자는 것이었다. 우리는 만들어갈 책에 대해 대화를 나누었지만 별다른 결실을 보지는 못했다. 또다시 서로의 기억에서 지워져갔다. 그리고 다시 몇 년이 흘러 이번에는 내가 그를 찾았다. 야심차게 준비한 샘플 원고가 있었는데, 출판사를 물색하던 도중 문득 기훈이형이 떠오른 것이다. 어느새 그는 세 아이의 아버지가 되어 있었다. 최근에는 빈티지샵을 열었다고 거기로 놀러오라고 했다. 나는 단숨에 원고를 들고 그의 가게로 달려갔다. 결과적으로 우리는 함께 책을 만들기로 했고, 그의 빈티지샵에서 교양강좌를 열기도 했고, 음악 공연을 열기도 하는 등 함께 재미있는 일들을 해 나가고 있다. 두 번이나 끊어졌던 관계가 이제는 서로와 함께 또 무슨 재미난 일을 해 볼 수 있을까 궁리하는 관계가 되어 돌아온 것이다. 강백수세상을 깊이 있게 바라보는 싱어송라이터이자 시인. 원고지와 오선지를 넘나들며 우리 시대를 탐구 중이다. 몇 해 전 ‘회전 초밥’이라는 노래를 발표한 적이 있다. 내 곁에 머물기도 하고 떠나기도 하는 사람들이 꼭 빙글빙글 돌아가는 회전초밥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만든 노래다. 레일 위의 모든 초밥이 욕심나지만 내 테이블 공간은 한정되어 있어서 모두를 다 내 앞으로 끌어올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어떤 초밥들은 어쩔 수없이 내 곁을 떠나야만 한다. 그러다 보면 새로운 초밥이 내게 새로이 다가오기도 하고, 아까 떠나보낸 초밥이 돌아오기도 한다. 이 초밥들 하나하나가 나를 둘러싼 사람들이라고 생각해 보았다.외로워지는 것은 무서운 일이지만 떠날 사람을 떠나게 두고 다가올 사람을 다가오게 둔다고 해서 쉽사리 외로워질 것 같지는 않다. 내 곁에는 늘 소중한 누군가가 있기 마련이니까. 이 글을 쓰다 보니 생각나는 얼굴들이 있다. 어떤 얼굴들은 여전히 내 곁에 머물러 주어 고마운 마음이 들기도 하고, 또 어떤 얼굴은 이미 오래 전에 멀어져버려 그리운 마음이 들기도 한다. 그들 중 누군가와 또 어떤 날 어떤 방식으로 재회할 수 있을지 모른다. 이 글을 통해 안부를 전한다. 나는 잘 있고, 언젠가 만날 날을 고대하고 있다고. 설령 만나지 못하더라도 내내 건강하길 바란다고.

2024-05-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