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부안 격포에 다녀왔다. 낚시용 레저보트를 장만한 후 처음으로 멀리까지 가 낚시를 했다. 농어를 노리고 배를 띄웠는데, 결과부터 말하자면 꽝이다. 같이 간 일행이 장대와 어름돔을 잡았지만 대상어종인 농어가 아니므로 꽝이나 마찬가지다. 어름돔의 경우 제주도와 남해에 주로 서식하는데, 서해 격포에서 잡히는 걸 보니 수온이 오르긴 오른 모양이다.
그렇다. 수온이 문제다. 기온이 32도인데 수온도 32도였다. 바람도 없고 파도도 없는 날씨에 뙤약볕을 그대로 빨아들인 해표면은 사우나 온탕이나 다름없다. 수온이 높으니 농어들도 깊은 자리에 틀어박혀 움직이지 않은 것이다. 이렇게 또 핑계를 대본다.
낚시만큼 시도 대비 실패가 잦은 행위도 없다. 강에만 가면, 바다에만 가면, 배만 타면 물고기를 잡을 것 같지만 막상 쉽지 않다. 내가 가입한 레저보트 동호회 카페에 어느 회원이 글을 올렸다. 보트 구입 후 자신이 저지른 초보적인 실수들을 나열하면서 마지막 열 번째, 보트를 산 지 1년이 다 돼 가는데 아직 고기를 한 마리도 잡지 못했다고 했다. 거기 다 적진 않았지만 매번 다채로운 실패의 변이 있을 것이다.
낚시꾼만큼 핑계가 많은 사람도 없다. 수온이 높아서 안 잡힌다. 반대로 수온이 낮아서 안 잡힌다. 냉수대가 유입돼서, 일본에 지진이 나서, 적조가 발생해서, 돌고래가 날뛰어서 낚시가 안 된다. 바람이 불어서, 바람이 안 불어서, 비가 와서, 비가 안 와서, 기압이 높아서, 기압이 낮아서, 너무 환해서, 너무 어두워서, 수량이 많아서, 수량이 적어서, 물색이 맑아서, 물색이 탁해서 꽝이다. 그럼 도대체 언제 잡는가?
낚싯배를 타거나 고기가 잘 잡힌다는 지역에 가 낚시를 하면 선장이나 현지의 고수들이 하는 말이 있다. 1번 “있으면 잡혀요”, 2번 “물 때 되면 물어요” 뻔하고 당연한 이야기. 고기가 있겠거니, 곧 물겠거니 집중해도 입질은 전혀 없다. 그때 압권의 3번 “어제까지 잘 나왔는데”가 나온다. 낚시꾼 속은 뒤집어진다.
물고기는 기억력이 아예 없다던가. 낚시꾼도 물고기 못지않다. 한 마리도 못 잡고 씩씩대며 집에 와서는 낚시장비를 정리해두자마자 다시 물가로 가고 싶은 게 낚시꾼이다. 인간은 어리석고 같은 실수를 두 번 반복한다던데, 실패로부터 학습하는 게 없는 어리석은 자만 낚시꾼이 될 수 있다. 아니다. 실패 따위 아랑곳하지 않아야 낚시꾼이다. 낚시꾼이야말로 긍정적 사고로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이다.
온라인에서 ‘럭키비키’라는 말이 유행이다. 아이돌 가수 장원영이 언제나 긍정적인 사고로 자신에게 닥친 불운마저 행운으로 여기며 예컨대 “앞사람이 빵을 다 사가는 바람에 새로 갓 나오는 빵을 살 수 있게 됐어. 완전 럭키비키잖아”를 외치는 데서 유래했다. 비키는 장원영의 영어 이름이고 ‘럭키비키’는 이른바 ‘원영적 사고’로 불리기도 한다. 지난주 농어낚시의 아픔을 잊은 나는 어제 서천 마량진항으로 백조기 낚시를 다녀왔다. 낚시 도중 예보에 없던 폭우와 풍랑, 낙뢰에 급히 항구로 들어와 정박한 다른 배에 배를 묶어두고 화장실에서 비를 피했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팬티까지 다 젖었지만 선크림을 안 챙겨 왔는데 얼굴 안 타서 럭키비키잖아!’ 긍정적 사고에 힘입어 만선으로 입항했다.
나는 사람들이 ‘낚시꾼적 사고’를 가졌으면 좋겠다. 낚시꾼은 스스로를 탓하지 않는다. 살면서 자책하는 낚시꾼을 단 한 명도 본 적이 없다. 낚시꾼에겐 다 핑계가 있고 변명이 있다. 주변을 탓하고 상황을 탓하고 초자연적인 운을 탓한다. 그러면서 실패쯤은 웃어 넘긴다. 못 잡으면 사 먹으면 된다며 ‘카드채비’(신용카드와 낚시채비의 합성어)를 필살기를 꺼내든다. 어시장에 가 고기를 사서는 직접 낚시로 잡은 거라며 집에다 뻥을 친다.
자신에게 닥치는 모든 불행과 불운과 좌절과 패배와 실패에는 다 원인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 원인에서 자신은 쏙 빼는 낚시꾼의 뻔뻔함이야말로 ‘팍팍한 인생살이 다 나 때문’이라고 자책하는 이들에게 필요한 마음가짐 아닐까. 어제 실패한 낚시꾼은 오늘 다시 바다로 간다. 오늘 실패하고 내일 또 간다. 실패 따위 적당한 핑계로 둘러대고 새 마음으로 다시 도전하는 것이다. ‘수온이 높아 한 마리도 못 잡은 덕분에 다음번 잡을 농어들을 두 배로 남겨뒀어. 완전 럭키비키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