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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유튜브의 이면, 진정성 찾기 위해서는

유튜버 ‘뒷광고’ 논란이 연일 화제다. ‘뒷광고’란 유튜버가 특정 업체로부터 광고 대가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공지하지 않은 채 자신의 콘텐츠에 상품을 소개, 노출하는 것을 말한다.최근 유명스타일리스트는 유튜브에서 자신이 직접 샀다는 신발을 소개했으나 수천 만 원의 광고비를 받은 제품으로 밝혀 논란을 일으켰다. 이에 유명가수도 자신이 직접 샀다는 속옷을 소개했지만 추후 유료 광고임을 정확히 표기하지 않아 문제가 되었다. 유명 연예인을 시작으로 인기 유튜버와 인플루언서(온라인에서 영향력 있는 사람) 또한 뒷광고를 받았다는 사실이 줄줄이 드러났다.게임, 먹방, 뷰티, IT, 패션, 수험, 음악, 의료 등 다양한 분야의 유튜버들이 사과문, 해명문, 입장문 등을 줄지어 발표했다. 대부분은 유튜브 안에서 구독자들이 쉽게 찾아 읽기 힘든 더보기란이나 고정 댓글을 통해 교묘히 광고나 협찬임을 표기했다. 광고나 협찬의 차이를 몰라 정확히 표기하지 않은 점의 문제도 있었다. 제품을 소개하는 영상에서 ‘내돈내산(내가 직접 돈주고 산)’을 밝히며 ‘그만큼 믿고 사는 좋은 상품’을 강조했지만, 결국 광고임이 밝혀져 소비자를 기만했다는 비판 여론이 더욱 거세졌다.먹방 유튜버 사이에서도 뒷광고는 그들만의 암묵적인 비밀이었다. 지난 8월 1일, 먹방 인기 유튜버인 ‘홍사운드’는 광고주가 전체메일로 유튜버들에게 광고 제안을 전달할 정도로 뒷광고는 만연한 일이라며 폭로했다.이번 뒷광고 논란의 파장은 계속되고 있다. 이름만 대면 대부분이 알 법한 유명 유튜버들이 뒷광고를 오래전부터 꾸준히 만행했다는 점도 충격이었지만, 처음 뒷광고 문제가 불거졌을 때 대부분의 유튜버가 ‘자신은 그럴 일이 없다’며 무시를 하거나 댓글을 삭제했기 때문이다. 문제가 대두되자 계속되는 말의 번복과 사과문 대필 의혹, 잠적 등 태도의 문제가 불거져 더욱 분노와 비판을 받았다.그간 유튜브에선 의료행위나 건강기능식품 관련 광고 등 처벌수위가 높은 불법행위를 저지른 사례가 빈번했다. 의료인이 아닌 개인이 시술을 받는 체험기, 수술 부위 노출, 해당 병원을 조금씩 언급하는 등의 문제가 있어 다수 유튜버가 처벌을 받기도 했다. 초기 유튜브에 먹방을 알렸던 한 유튜버는 식품 관련 광고를 무분별하게 진행해 논란이 되었고 이후 시청자의 신뢰를 잃어 꾸준히 하락세를 띄고 있다. 이에 대한 5년 이하의 징역, 5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의 처벌 기준이 있지만 처벌에 비해 얻는 이익이 훨씬 크기에, 지속적으로 불법이 자행되는 현상을 빚어 논란이 일고 있다.뒷광고를 행한 유튜버들은 처벌을 받을 수 있을까? 드라마나 예능에서 자주 보이는 간접광고(PPL)는 방송법상 방송 프로그램 안에서 상품을 소품으로 활용하여 상품을 노출시키는 형태를 광고로 규정하고 있다. 간접광고는 해당 방송 프로그램 시간의 100분의 5를 초과할 수 없고, 화면 크기의 4분의 1을 넘을 수 없으며, 간접광고가 포함되어 있음을 자막으로 표기하여 시청자가 명확히 인지할 수 있도록 하는 철저한 규제를 받는다.그러나 유튜브는 방송이 아닌 부가통신사업자로 분류되기 때문에 정보통신망법이 적용된다. 방송법 규제를 받지 않기 때문에 ‘간접광고’ 규제 또한 받지 않아 사실상 유튜버에 관한 처벌이 어렵다고 한다. 표시광고법 제3조인 ‘기만적인 표시·광고’에 대해서는 공정거래위원회가 시정명령이나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으나, 사업주만을 처벌 대상으로만 하고 있는 모순을 띈다. 이처럼 뒷광고는 만연해질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고 언젠가 크게 터져 나올, 누구나 예상 했을 법한 문제였다.오는 9월 1일부터 ‘뒷광고’를 규제하려는 목적으로 ‘추천·보증 등에 관한 표시·광고 심사지침’ 개정안을 시행한다. 이번 개정안에 따라 유튜브 콘텐츠에는 게시물 제목이나 영상 시작과 끝 부분에 경제적 대가를 받았다고 표시해야 한다. 해당 문구는 영상 안에서도 반복적으로 잘 보이도록 넣어야 한다. 현재까지는 광고를 의뢰한 광고주만을 처벌이 가능해 어설픈 제재가 아니냐는 문제가 있었지만 다음달부터는 막대한 수익을 얻은 유튜버, 인플루언서를 ‘사업자’로 인정해 처벌하는 것도 가능하다. 유튜버나 인플루언서는 지침을 꼼꼼히 확인하여 영상 제작에 있어 더욱 신중해야 한다. 시청자와 소비자 또한 규제의 사각지대에 놓인 SNS의 인플루언서, 그리고 유튜버에 대한 제재가 어떻게 촘촘히 적용될지 지켜보아야 한다.이번 유튜브 뒷광고 사태를 보며, 나는 그간 유튜브에서 느껴온, 한 문장으로 명징할 수 없는 괴이와 이질감을 느꼈다. 뒷광고 폭로가 줄지어 이어지자, 뒷광고 정황이 없는 유튜버의 댓글창에도 ‘뒷광고 하셨어요?’라는 댓글이 연이어 달렸다. 어떤 이들은 유료광고 배너, 제목, 더보기란, 댓글을 해당 유튜버가 수정하거나 삭제한 것 같다는 추측글을 거듭 올리며 무작위로 비판을 가했다.뒷광고를 받지 않은 유튜버는 자신의 의혹을 겨우 해명하지만, 의문을 제기하던 이들은 아무런 책임 없이 홀연히 사라지고 없었다. 이처럼 대부분의 유튜버들에게 “뒷광고 했지?”라고 몰아붙인 뒤 ‘아님 말고’식의 의혹제기가 빈번히 나타났다. 근거 없는 루머와 추궁, 무분별한 비난이 난무하며 한 인간에 대한 평가와 잣대뿐인 댓글 창을 읽으며 눈앞이 아찔해졌다. 아주 가까이 그 말을 마주한 듯 혼란스러웠다.유튜브 이용자가 급증하면서 유튜브의 영향력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유명 유튜버들의 말은 유행어가 되기도 하고 그들이 입은 옷과 신발, 화장품, 먹는 음식이 주목 받기도 한다. 방송연예계나 각 프로그램에서도 유튜브 채널을 만들 정도로 많은 이들에게 다양한 콘텐츠로 다가가는 시도를 하고 있다. 유명 유튜버들이 많은 사랑을 받는 건 1인 방송 안에서 친구이자 자매, 형제, 남매 등 가깝고도 친밀한, 솔직한 모습을 내세워 다가오기 때문이 아닐까. 그간 티비나 스크린에서 본 연예인이나 배우는 내 이상과 가까운, 어쩌면 다른 곳에 있을 존재라 여겨지는데 비해, 1인 방송안의 유튜버는 자신의 일상을 드러내고, 소개하고, 소통하려 하기에 언젠가 만날 수 있는 가까운 친구로 느껴지는 특별함을 가지고 있다.윤여진 2018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 부문에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현재보다 미래가 기대되는 젊은 작가.작년 6~7월 한 달간 교육부가 7500명 초등학생의 장래 희망 직업을 조사한 결과 유튜브 콘텐츠 크리에이터가 초등학생 희망 직업 3위에 올랐다. 이는 전문직 의사를 밀어낸 결과였다. 희망직업이 있다고 한 학생들은 그 직업을 고른 이유에 대해 약 50%가 ‘내가 좋아하는 일이라서’, 약 20%가 ‘내가 잘 해낼 수 있을 것 같아서’라고 답할 정도로 유튜버에 대한 친밀감과 호감도를 높게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유튜브 속의 광고는 더 자연스럽게, 또 더 정확하게 구독자들이 볼 수 있도록 표기되어야 한다. 역설적으로 광고를 더 드러낸다던지, 오히려 개그 소재로 사용해 돋보이게 하는 등의 홍보 기법이 눈에 띄고 있다. 이는 광고를 숨기고 자신이 직접 산 것처럼 흉내 내는 것보다 훨씬 호쾌하게 받아들여진다.100만을 훌쩍 뛰어넘는 구독자 수, 팬들과 나누었던 시간과 소통, 무언가를 만들었을 때의 첫 마음, 그리고 공을 들여 만들었을 동영상은 뒷광고와 함께 전부 삭제되거나 비공개 처리되었다. 정직과 신뢰를 쌓기 위해서는 수많은 시간이 필요하지만 거짓으로 인한 불신은 한순간 소용돌이가 지나간 듯, 홀연히 사라지고 없다.

2020-08-25

집 사서 부자 되는 사회를 살아가며

이제 나의 친구들은 더 이상 우리가 사랑했던동화 속의 주인공들을 이야기하지 않는다고흐의 불꽃같은 삶도, 니체의 상처 입은 분노도스스로의 현실엔 더 이상 도움 될 것이 없다 말한다-신해철 ‘나에게 쓰는 편지’ 중.친구들과의 술자리는 내겐 가장 큰 낙이었다. 신해철 노래처럼 ‘고흐의 불꽃같은 삶’이나 ‘니체의 상처 입은 분노’에 대해 이야기 한 건 아니지만 설익은 머리로 쥐어짜낸 개똥철학을 나누는 게 좋았다. 아니면 재밌게 본 영화 얘기, 재수 없는 누군가를 향한 뒷담화, 요즘 만나고 있는 사람 이야기, 야구 이야기, 음악 이야기, 그냥 영양가 없는 우스갯소리들. 그렇게 다채롭게 시시껄렁한 이야기들이 좋아 그렇게 술을 마셔대곤 했다. 그런데 서른이 지나고 언젠가부터 술자리의 재미가 뚝 떨어져버렸다. 우리는 이제 ‘스스로의 현실엔 더 이상 도움 될 것이 없는’ 것들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게 되었다.밤새워 침 튀어가며 떠들던 이야기들이 머물던 곳에는 새로운 이야깃거리들이 자리를 잡게 되었다. 우량주니 잡주니 하는 주식 이야기, 누구랑 누구의 팔자를 고치게 해 주었다는 가상 화폐 이야기, 그리고 요즘은 뭐니 뭐니 해도 부동산 이야기. 어제 만난 친구들도, 그 전에 만난 친구들도 한참을 부동산에 대해서 떠들었다.친구 A가 무리한 은행 대출로 집을 사겠다고 말했을 때 나는 그를 말렸다. 결혼을 하고 아이가 태어나면 더 큰 집이 필요해질 텐데, 무리해서 집을 살 필요가 있겠느냐고. 이미 천정부지로 올라버린 서울 집값이 설마 더 오르겠냐고. 그런 나의 이야기를 비웃듯 집값은 폭등했고, 친구는 그 재미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고 한다. A 본인에게는 성공신화일지 모르겠으나 자리에 있던 나머지들에게 그 이야기는 다소 허탈했다. 늘 그랬다. 가상화폐 투자로 누가 대박이 났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도, 어디 어디 주식을 사서 재미를 쏠쏠하게 봤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도 나는 무언가 허탈한 기분을 감출 수 없었다. 누군가에게 투자가 성공신화로 다가올 때, 대부분에게는 그때 빚을 내어서라도 했어야 하는 것, 그렇게 하지 못해 원통한 것이 되어 돌아온다.어느 날 타임머신이 발명된다면 1991년으로 날아가한창 잘 나가던 30대의 우리 아버지를 만나 이 말만은 전할거야아버지 6년 후에 우리나라 망해요 사업만 너무 열심히 하지 마요차라리 잠실 쪽에 아파트나 판교 쪽에 땅을 사요 이 말만은 전할거야-강백수 ‘타임머신’ 중.사회적 성공에는 여러 가지 방식이 있겠지만 대개는 비약적인 경제적 성취를 사회적 성공이라 일컫는다. 그리고 노동이나 자영업, 소규모 사업 같은 행위를 통해 그것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은 순진한 사람들이 흔히 갖고 있는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 성공을 위해 우리가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분야는 어떤 때는 주식이었고, 어떤 때는 가상화폐였으며, 언제나 부동산이었다. 이런 사회에서 부동산에 투자하지 않고 작은 ‘사업만 너무 열심히’하다가 ‘6년 후에 우리나라 망’하며 속절없이 무너져버린 우리 아버지나, 그런 아버지를 보면서도 글 쓰고 노래를 지어 부르는 노동을 통해 언젠가는 대단한 부는 아니더라도 가족들 번듯하게 건사할 수 있을 만큼의 경제적 성취를 이룰 수 있으리라 믿는 나는 바보가 되어버리고 만다.인간이 행복하게 살아가려면 현재를 버텨나갈 수 있는 동력과 미래에는 현재보다 상황이 나아지리라는 희망이 동시에 필요하다. 그것을 위한 일이 아버지에게는 작게나마 사업이었고, 내게도 어설프게나마 대중예술이다. 현재를 살아나가기 위한 동력으로서도 위태롭기만 한 직업인데, 지금보다 미래에 상황이 비약적으로 나아질 수 있으리라는 희망은 언제나 희박하기만 했다. 그나마 ‘좋은 직업’이라 여겨지는 안정적인 직업들을 가진 친구들 역시 현재를 살아나가는 데에는 유리하지만 더 나은 미래를 꿈꾸는 것은 까마득하기만 하다고 말한다. 노동으로 삶이 나아질 수 없는 세상 속에서 방법은 오로지 투자, 부동산일 수밖에 없다.정부는 8월 4일, 새로운 부동산 대책을 내어 놓았다. 그런데 이 대책이 정말 새로운 대책이라 생각하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포털사이트에 ‘부동산 대책’이라고 검색했다가 나는 깜짝 놀랐다. 8.4 부동산 대책만 있는 게 아니라 7.10부동산 대책이 있었고, 6.17 부동산 대책도 있었다는 것이다. 이번 대책까지 현 정부는 스무 번이 넘는 대책을 내어놓았다는 것. 현 정부만 그랬을까, 여태까지 어떤 정부도 ‘부동산 불패’의 신화를 막아낸 적이 없다. 그러니 내 친구들은 누구도 이번 대책이 부동산 폭등 현상과 투기를 훌륭하게 막아낼 거라고, 집이 ‘사는 것’이 아니라 ‘사는 곳’이 될 거라는 오래된 이야기를 현실화 할 거라고, 20년 넘게 이루지 못한 숙원을 정부가 이루어낼 거라고 믿지 않는다.나라의 똑똑한 분들이 다 같이 모여 머리를 맞대도 해결할 수 없는 문제에 대해 나라고, 우리라고 뾰족한 수가 있을까. 어쨌거나 우리는, 동풍에 나부껴 눕고 바람보다 먼저 눕는 풀떼기 같은 우리들은 이러한 상황 속에서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하고, 그 와중에 헌법에 적혀있는 것처럼 행복을 추구하며 살아가야 한다. 어디서 주워들은 이야기라도 정보랍시고 주고 받아야 하고, 집 잘 사서 부자 된 친구들을 칭송하며 그들로부터 뭐라도 비결이 있을까 기웃거려야 하고, 없는 살림에 어떻게든 빚을 져서라도 내 인생을 역전시킬 집 한 칸을 살 궁리를 해야 하고, 그 조차도 어렵고 어두운 나 같은 애들은 멍한 얼굴로 그렇게 재미없는 대화들이 오가는 술자리에서 아무래도 나는 잘못 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나 하며 지루함을 견딜 수밖에.강백수세상을 깊이 있게 바라보는 싱어송라이터이자 시인. 원고지와 오선지를 넘나들며 우리 시대를 탐구 중이다.나만 혼자 뒤떨어져 다른 곳으로 가는 걸까가끔씩은 불안한 맘도 없진 않지만걱정스런 눈빛으로 날 바라보는 친구여우린 결국 같은 곳으로 가고 있는데-신해철 ‘나에게 쓰는 편지’ 중.여러 정부를 거치며 많은 분들이 개선을 위한 노력이야 해 오셨겠지만, 나는 진실로 이러한 현실이 아름답지 못하다고 생각한다. 발 빠르게 집을 얻고, 그 집의 가격이 오르는 것으로 우리 인생의 성공 여부가 판가름 난다는 것은 사회 구조에 무언가 잘못된 점이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부동산을 비롯한 투자정보가 풍요롭기 위한 필수조건이 되는 것이 아니라, 이 나라의 모든 이들이 제 자리에서 사회 구성원으로서 각자에게 주어진 역할을 잘 하는 것만으로 남부럽지 않은 풍요를 누릴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즐겁기 위해 모인 친구들과의 술자리에서, 자신의 삶을 성실하게 살아가는 누군가가 ‘나만 혼자 뒤떨어져 다른 곳으로 가는 걸까’ 하며 ‘불안한 맘’을 느끼지 않아도 되는 나라가 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부디 부동산 가격이 안정되어 모두가 투자, 혹은 투기에 목메지 않아도 되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는데, 이 모든 일들은 과연 가능할까. 그걸 가능케 하는 것이 바로 정부와 의회의 역할이겠지. 나는 그런 세상을 기다리며 내가 있는 곳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 그러니까 부동산과 주식과 가상화폐의 은혜로부터 소외된 이들과 공감하고 그들을 위로하는 일을 열심히 해 볼 생각이다. 그런 사회를 만드는 것이 자신의 역할인 이들이 꼭 그렇게 해 주리라 한 번 더 믿어보며.

2020-08-18

익숙함과 새로움의 경계에서

레트로 열풍이 한창이다. ‘김희선 곱창밴드’로 시대를 풍미했던 헤어 스크런치가 다시 유행하고 배꼽티와 통 넓은 바지가 옷가게 여기저기에 걸려있다. 추억의 경양식 돈가스를 전면에 내세운 식당은 인테리어며 식기며 심지어 콜라병조차 이전에 생산되었던 모양을 고수한다. 음악은 또 어떤가. 최근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혼성그룹 ‘싹쓰리’로 활동하고 있는 이효리, 유재석, 비는 90년대 느낌이 물씬 나는 청량한 노래를 발표했다. 어딘지 모르게 익숙한 비트를 듣고 있노라면 코끝이 찡해진다. 눈을 감으면 새하얀 백사장과 파도가 일렁이는 어느 여름 바닷가가 펼쳐지는 듯하다. 그러다 문득 의문이 든다. 나는 무엇을 그리워하고 있는 거지? 사실 미디어에서 주입하는 추억은 내 추억이 아니다. 어쩌면 나는 그리움마저 답습해버린 세대가 되어버린 것은 아닐까.나의 추억에는 멋이 없다. 초등학생일 때부터 휴대전화를 썼고 방과 후엔 컴퓨터 학원에 다녔으며 만화영화로 ‘스폰지밥’과 ‘파워 퍼프 걸’을 즐겨봤다. 이문세의 ‘붉은 노을’보다 빅뱅의 ‘붉은 노을’이, 산울림의 ‘너의 의미’보다 아이유의 노래가 익숙하다. 종로의 LP바에서 “아, 심신 최고였지”하는 선배의 넋두리를 들으며 어색하게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다. 미안해요. 난 이 노래 몰라요. 나 때는 동방신기가 최고였다고요.11학번의 문학도로 나는 꽤나 갈팡질팡한 대학 시절을 보냈다. 대학생이라는 자아와 문학도라는 자아가 만나 이상하리만치 비대한 자아가 탄생했는데, 그건 비단 나만의 문제가 아닌 듯했다. 우리는 우리가 생각하는 ‘문학 하는 사람’의 흉내를 냈다. 옆구리에 보들레르 시집을 끼고 미간을 살짝 찌푸려 고뇌에 빠진 표정을 짓는 건 기본이었다. 윤동주와 기형도를 그리워하며 눈물을 흘리고 통기타에 김광석의 노래를 흥얼거리던 남학생들도 있었다. 우리 학교에는 학생운동 시절부터 전통으로 내려오는 ‘문선’이란 것이 있었다. ‘바위처럼’이나 ‘가자, 노동해방’과 같은 노동요에 맞춰 정해진 율동을 하는 행위였다. 학교 축제가 되면 무대에 올라 사회에 저항하는 몸짓을 선보이는 것이 관습이었다. 나는 무려 문선장을 맡아 이마에 빨간 띠를 두르고 “마침내! 노동 해방!”을 부르짖었다. 문선을 가르쳐주던 선배들은 말했다. “질문은 허용하지 않는다. 당연히 해야만 한다.” 나 역시 후배들에게 그렇게 일렀다. “너희들은 이 명맥을 꼭 이어가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뭔 진 몰라도) 아주 큰 일이 날 것이다.”실제로 우리는 이 전통을 이어가기 위해 굉장한 노력을 했다. 수업이 끝나면 강제로 남아 빈 강의실에 모여 밤늦게까지 율동을 익혔으며 완벽한 ‘칼군무’를 위해 주말에도 학교에 나왔다. 시큼한 땀 냄새를 풀풀 풍기며 ‘바위처럼’을 오백 번도 넘게 들어야만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얼굴 찌푸리지 말아요’의 율동을 열심히 연습하던 친구가 운동화를 벗어 자신의 양말을 보여주었다. 거기에는 아이돌그룹 샤이니의 멤버인 태민의 캐릭터가 그려져 있었다. “은강아, 사실 나 샤월(샤이니 월드)이야. 태민이 최애야.” 그랬다. 그녀는 유재하도 김광석도 아닌 샤이니의 팬이었던 것이다. 나는 그녀의 손을 맞잡았다. “내 모닝콜도 ‘누난 너무 예뻐’야.” 그런데 왜 우리는 지금 노동요에 맞춰 춤을 추고 있지? 무엇을 위하여? 어쩌면 과거의 선배들도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을지도 모른다. 세상에나, 너희 아직도 이거 해?나는 왜 “노동 해방”을 외치면서 “문선 해방”은 외치지 못했는가. 그야말로 구시대적 행위를 대학 시절 내내 고수했던 이유는 무엇인가. 간단히 말하자면, 나는 그것이 멋있어 보였다. 자신을 내던져서 정치적 열망을 부르짖는 행위는 내가 생각했던 진짜 대학생의 모습이었다. 문선을 연습하는 동안 나는 체제에 저항하며 대단한 일을 행한다는 자기애에 빠질 수 있었다. 결론적으로는 유튜브 동영상 박제라는 끔찍한 벌을 받게 되었지만.돌이켜보면 그랬다. 가끔은 이전 세대를 지나왔던 이들을 질투했다.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을 시청하며 내 것이 아닌 향수에 잠기기도 했다. 민주주의의 쟁취라는 내러티브를 살아보고 싶었다. “겪어보지도 못한 네가 뭘 아느냐”며 배제 당하는 일은 억울하지 않은가.뉴트로의 탄생엔 이런 맥락도 있을 것이다. 뉴트로란 새로움(New)과 복고(Retro)를 합친 신조어로 과거의 것을 새롭게 향유하는 현상을 말한다. 레트로가 단순히 과거를 추억하며 향수를 느끼는 것이라면 뉴트로는 과거의 모습에서 색다름과 신선함을 느낀다. 단순한 과거의 재현이 아니라 새로운 콘텐츠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현재의 시선을 통해 전혀 색다른 종류의 질감을 가지게 된다. 미지의 문화를 직접 발굴해낸다는 일종의 고고학적 감수성과도 궤를 함께하게 되는데, 나는 이 강렬한 경험에 공감한다.나는 첫 번째 장편소설의 주인공을 50대 여성으로 설정했다. 1980년대를 청년 세대로 살아온 그녀를 표현해내는 것은 꽤 어려운 작업이었다. 누군가에겐 당연하게 존재했던 시간이 내겐 불가해한 우주를 탐사하는 것과 같았다. 집필을 하며 가장 도움을 많이 받은 사람은 부모님이다. 나는 그들의 젊은 시절을 생생하게 전해 들었다. 정치적 열망이 가득했던 그때를. 사랑과 낭만이 흐르던 어느 밤을. 동시에 부모님 역시 나의 이야기를 경청했다. 내가 생각하는 시스템의 문제와 나를 억압하는 시선에 관하여. 우리는 한곳에 모여 끊임없이 이야기를 나누었고 각자의 정체성을 이해하는 것이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서로의 삶은 더 이상 상상의 영역으로 존재하지 않았다. 그리고 깨달았다. 시야를 공유하면 확장된 세계를 마주할 수 있다는 것을. 지금보다 더 큰 세계를 알게 되는 일. 다양한 상황을 받아들이게 되는 일. 그것은 단순한 답습도 강요도 아니다. 함께 공존하며 만들어낼 수 있는 새로운 가치다.어쩌면 미래의 아이들은 지금의 일상을 신기하게 생각할지도 모른다. 할머니 세대에는 스마트폰을 손에 들고 다녔다면서요? 분리수거도 운전도 직접 했다면서요? 완전 멋지다. 그렇게 말하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으이구 무지몽매한 어린 것들”하고 혀를 쯧쯧 차는 할머니가 되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분명 그때의 나는 샤이니의 노래가 얼마나 좋았는가에 관한 연설을 장황하게 늘어놓으며 즐거워할 것이다.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에서는 말한다. “여기 머물면 여기가 현재가 돼요. 그럼 또 다른 시대를 동경하겠죠. 상상 속의 황금시대. 현재란 그래요. 늘 불만스럽죠. 삶이 원래 그런 거니까.”문은강 ‘춤추는 고복희와 원더랜드’로 주목받은 소설가. 2017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작가로 등단했다.추억은 아름답다. 우리는 거꾸로 된 거름망을 가지고 있다. 거기에 일상을 집어넣으면 무겁고 커다란 절망이 가장 먼저 빠져나가고 아픔이 점점 퇴색되어 고통은 지워지고 가볍고 빛나는 것들만 남게 된다. 그것을 아름다움의 형태로 재구성하여 추억이라는 이름을 붙이게 된다. 어쩌면 그리움은 우리가 만들어낸 하나의 생산품일지도 모른다.나의 여름은 현재진행형이다. 바지런히 살아가며 미래의 추억거리를 만들어가고 있다. 조악하게만 느껴지는 현실도 언젠가는 역사가 될 테다. 얼마 전, 엄마와 함께 차 안에서 라디오를 들으며 이효리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엄마는 그녀의 타투가 조금 무섭다고 했고 나는 너무나 간지난다고 했다. 엄마는 그녀가 핑클로 활동했을 때를 추억했고 나는 효리네 민박에 출연했던 모습에 대해 말했다. 삶을 주체적으로 꾸려가며 자기 소신을 지키는 태도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정말 멋있는 사람이야.” 우리는 입을 모아 말했다. 라디오에서 싹쓰리의 노래가 흘러나왔다. 이효리가 40대라니, 시간이 너무 빨리 흐르는 것 같다며 엄마는 작게 웃었다. 가사를 흥얼거리며 생각했다.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가치들이 있지. 그중 하나는 과거의 시간을 지나온 이들을 향한 존경의 마음일 거라고.

2020-08-11

코로나 이전의 삶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이른바 ‘2030세대’는 기성세대와는 전혀 다른 시각과 촉수로 사물과 현상을 바라본다. 고정된 인식의 틀에서 벗어나 새로운 방식으로 사회·경제·정치·문화적 현상을 해석하고 있는 20~30대 4명이 ‘21세기 오늘의 문제’를 독자들과 함께 고민하고자 한다. 고전적 매체인 종이신문에 젊은 감각을 더해줄 이병철(시인), 문은강(소설가), 강백수(뮤지션), 윤여진(시인)이 이어갈 새로운 연재에 관심과 격려를 부탁드린다.코로나 이전의 삶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요즘 가장 많이 하는 생각이다. 나 스스로에게 묻고, 만나는 이들에게 질문하고, 그러다보면 갑론을박 토론이 되는데, 나는 여전히 낙관주의자여서 코로나 이전의 일상을 회복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그런데 내 주변엔 비관하는 이들이 훨씬 많다. 더디기만 한 백신 개발 현황이라든가 바이러스의 변이 가능성 등 객관적 사실을 논거로 내 막연한 희망을 무참히 짓밟으면 “그럼 계속 이렇게 살자는 거야?” 역정을 내며 자리를 뜨곤 한다.주제 사라마구가 ‘눈먼 자들의 도시’와 ‘죽음의 중지’에서 그려낸 ‘기능 마비 사회’를 우리는 현실에서 체험하는 중이다. 최초 확진자가 발생한 지 6개월이 지나는 동안 전염병은 종식될 기미가 보이지 않고, 우리 삶은 너무나도 많이 달라졌다. 소설보다 현실이 더 소설 같다. 기업, 공장, 상점 등의 생산과 소비가 멈추면서 경제가 침체되었다. 국가 간 입출국이 막히면서 무역, 여행, 문화교류가 중단되었다. 국가고시들은 연기되거나 취소되고, 어렵게 개학한 학교들은 다시 문을 닫고 있다. 종교시설은 집단감염의 온상이 되었고, 공연 및 전시, 스포츠도 집단감염 우려로 취소되거나 관객 입장이 제한되었다. 마스크 착용이 필수 에티켓이 되자 이제는 마스크 쓴 사람들이 안 쓴 사람들을 혐오하고, 안 쓴 사람이 착용을 요청하는 이에게 폭력을 휘두르기도 한다. 스트레스를 배출할 창구들이 막히면서 분노와 우울 같은 감정들이 점점 압력을 견디지 못해, 여기저기서 폭력적인 방식으로 터져 나올 게 염려되는 요즘이다.보편적 삶의 양상들이 달라진 만큼 개인의 내밀한 일상에도 변화가 찾아왔다. 나는 ‘국경 없는 세계’를 지향하며 한 해에 한 두 번씩은 꼭 외국엘 가곤 했는데, 마음껏 여행할 수 있던 시절이 몹시 그립다. 여행이 사라진 세상은 너무 뻔하고 지루하다. 이 권태를 견디기 위해 인디밴드의 공연장이나 클래식 연주회에 가고 싶지만 그럴 수도 없다. 사람들로 북적이는 을지로 만선호프에서 생맥주를 마시고 노래방에 가 목이 터져라 노래 부르던 날들은 까마득한 옛일이 되었다. 헬스클럽에서 마스크 쓴 채 운동하느라 숨이 턱턱 막힌다. 외출하는 길에 마스크를 두고 온 게 생각나 다시 집으로 돌아가기 일쑤다. 컨디션이 조금만 안 좋아도 바이러스에 감염되었을까봐 노심초사한다. 지난해 한 매체에 경북 바닷길 기행문 연재한 것을 올해 책으로 낼 계획이었는데, 코로나19 확산 초기에 직격탄을 맞은 지역에 관한 여행서적이 시기적으로 적절치 못해 결국 무산되는 일도 있었다.가장 안타까운 것은 요양병원 면회가 금지되면서 할머니를 뵙지 못하는 슬픔이다. 고관절 골절 수술 후 침상에 누워만 계신지 4년째다. 앞을 못 보는 데다 흡인성 폐렴을 앓은 후엔 콧줄로 식사를 하기에 오직 청각이 세상을 감지할 유일한 감각이지만, 그마저도 가족들이 면회를 가 보청기를 끼워드려야만 가능하다. 며칠 전 괴로운 낮잠 끝에 “병철이!” 내 이름을 큰소리로 부르며 꿈에서 깼다. 할머니 귀에 대고 “할머니, 나 ㅂ, 벼, 병” 말하려는데 소리가 나오지 않아서, 힘껏 쥐어짜 겨우 외쳤다. 그런 잠꼬대는 말이 아니라 울음에 가깝다. 요양병원에 부모를 모신 이들 누구나 그런 속울음을 우는 중이다.요즘 몇 분의 공연기획자, 축제기획자, 무대감독, 연극연출가들과 함께 ‘평화의 이야기를 마주하는 작은 움직임’이라는 프로젝트를 준비 중이다. 시각예술, 다원예술, 전시, 축제, 음악, 무용, 문학 등 각각 예술 분야에서 ‘평화’에 대해 고민해보는 협업이다. 평화란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이 특히 코로나 시대에 어떻게 위협 받고 있는지, 평화를 회복하고 널리 함께 나눌 방법이 무엇인지 탐색하고 연구하는 중이다. 홀로 머무는 공간에서 쓴 글을 온라인으로 전송하면 그만인 문학과 달리 공연과 전시, 특히 축제는 사람과 사람의 접촉이 필수적이다. 관객이 없으면 성립할 수 없기 때문이다.비무장지대에서 평화를 노래하는 음악 축제 ‘DMZ 피스트레인 뮤직페스티벌’의 김미소 총감독이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올해 국내 25개 음악 축제 중 17개가 무기한 연기되거나 취소 또는 아예 개최되지 않았다. ‘피스트레인’ 역시 취소되었다. 이틀간의 축제를 준비하는 데 1년 가까운 시간과 상당한 제반비용, 1만 명에 달하는 인력이 소요된다고 하니 스태프와 뮤지션들, 축제를 기다려 온 관객들의 상실감이 클 것이다. 물론 안 하는 게 맞다. 코로나 극복을 위해서라면 어떤 희생도 감수해야 한다. 하지만 서로 이질적 타자인 수많은 사람들이 한 곳에 모여 자유, 평화, 인권, 소수자의 더 나은 삶, 정치적 올바름을 한 목소리로 외치고, 함께 울고 웃으며 마음의 온도를 나누는 마당이 사라지는 것은, 이미 코로나에 잠식된 우리 일상은 물론 이따금 일상 밖에서 하루쯤 선물처럼 주어지던 평화마저 빼앗기는 일이다. 우리는 다시 모일 수 있을까?사실 나는 코로나 시대를 양가적 감정으로 살아가는 중이다. 이 글 내내 코로나를 원망하며 투정했지만, 나쁜 것만도 아니다. 대학 수업이 비대면 온라인 강의로 진행되면서 강의실이라는 제한적 장소와 시간으로부터 자유로워지자 오프라인에서는 활용할 수 없던 영상, 소리, 이미지, 자막 등을 통해 보다 알찬 수업을 할 수 있었고, 그 결과 강사 생활 5년 만에 강의평가 최고점을 받았다. 강의평가 결과를 확인한 순간 2010년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228.56이라는 꿈의 점수를 받고 놀라던 김연아 풍으로 활짝 웃었다. 이런 얘기는 지극히 개인적이지만 또 보편적이기도 하다. 오프라인 수업이라는 재현 불가능한 원본이 온라인을 통해 시간과 장소에 구애 받지 않고 무한히 반복되면서 아르바이트를 병행하거나 다른 공부를 함께 하거나 기숙사를 나와 고향집에서 수업을 듣는 등 학생들에게 다양한 삶의 선택권이 생겼다. 100년 넘도록 현장성과 일회성을 무기 삼아온 대학의 강력한 권위가 도전 받는 것은 긍정적인 일이다.코로나가 가져 온 가장 긍정적인 변화는 역설적이게도 사람의 차단이다. 앞에서 한 말을 뒤집는 것은 아니다. 축제에 가는 것은 개인의 자발적 의지이지만 회식이나 회의에는 강제성이 있다. 어쩌면 사회적 격리야말로 코로나 시대의 축복인지도 모른다. 불필요한 회식과 모임이 사라지고 개인이 자기 시간을 온전히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공공장소에서 사람과 사람 사이에 ‘안전거리’가 생겼다.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 집단 안에 개인을 편입시키는 폭력적 스킨십이 얼마나 많았는지 새삼 생각한다. 해병대 체험이나 단체 래프팅 따위 ‘애사심과 단결력 고취’를 위한 전체주의적 행사는 물론 ‘술잔 돌리기’ 같은 비위생적 회식문화는 진작 구시대 유물이 되었어야 했다.너무 많던 경조사들이 듬성듬성해진 것도 반가운 일이다. 황금 주말에 교통체증을 견디며 예식장에 가 축의금 내고 지루한 주례사가 언제 끝나나 하품이나 하다가 뷔페 음식 두어 접시 먹고 오는 결혼식만큼 한심한 의식이 또 있을까? 있다. 돌잔치가 그렇다. 결혼도 아이 돌도 가족들끼리 모여 기념하면 그만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가 꽉 조이는 색동옷 입고, 억지로 웃어 사진 찍고, 저급한 유머나 던지던 행사 MC로부터 판사봉 잡아라, 청진기 잡아라 강요받는 건 아동학대라고 생각한다. 결혼도 못하고 애인도 없는 나로서는 결혼식보다 짜증나는 게 돌잔치 청첩이다. 이참에 선언한다. 이제 안 간다!이병철 시인코로나 이전의 삶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간절히 돌아가고 싶다. 여행하고, 공연장에 가고, 전시를 관람하고, 축제에서 춤추던 때로 가고 싶다. 온라인 수업이 아무리 강의평가 점수를 잘 받아도 현장에서 학생들과 묻고 답하고 토론하고 싶다. 요양병원에 가 할머니 귀에 보청기를 끼우고 ‘도라지 타령’ 들려드리고 싶다. 노래방에 가고 찜질방에도 가고 싶다. 북콘서트와 낭독회에서 독자들과 만나고도 싶다. 그러면서 또 간절히 돌아가기 싫다. 회식과 회의와 온갖 쓸 데 없는 모임과 경조사와 오지랖과 훈수와 원치 않는 스킨십이 있던 시절로는 가고 싶지 않다. 코로나 시대에 우리가 노력하는 것은 ‘거리두기’이다. 코로나가 종식되더라도 우리 삶에는 개인과 개인 사이 건강한 간격을 위한 사회적 거리두기가 계속 필요하다. 육체의 질병보다 마음의 감염이 더 고통스럽기 때문이다.

2020-08-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