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 한두 살 때 쯤, 그러니까 일주일에 술을 여덟 번(하루에 두 번 먹던 날 도 있었으니까)쯤 먹던 개망나니 시절, 학교 과방 소파에 누워 노닥거리고 있는데 후배 하나가 이런 말을 했다. 누구나 그런 시절이 있다. 자신은 매우 특별한 사람이라 무언가 대단한 일을 이루고 난 후, 이전 세상을 살았던 위대한 영혼들처럼 스스로도 가장 빛나는 젊은 시절에 세상에서 사라지고 싶다는 꿈을 꾸는 시절 말이다.
“형, 형은 정말 서른까지만 살 것처럼 사는 것 같아요.”
“그래? 그럼 그러지 뭐.”
이십대 초반이었던 그때의 나는 그랬다. 서른이 아주 많은 나이처럼 생각됐고, 서른 살 이후이 삶은 생각해 본 적도 없었고 그럴 필요도 없다고 생각했다. 서른은 저만치 멀고 시간은 그토록 느리게 가던 시절이었으니까. 그런데 그때는 시간이 점점 빠르게 흘러갈 거라는 건 몰랐다. 지독히 안 가던 하루가 조금씩 조금씩 빠르게 흐르더니 나는 별로 한 것도 없이 서른이 넘어 있었다. 세월은 시위를 떠난 화살과 다를 바 없었다. 그걸 어린 시절엔 몰랐다.
커트 코베인은 스물일곱에 죽었다. 짐 모리슨, 지미 핸드릭스, 재니스 조플린, 에이미 와인하우스, 윤동주, 이상. 그들보다 좀 더 산 나는 별다른 업적 없이 팔리지도 않는 것들 몇 개 만들고 허송세월 하고 있었다. 공부는 했으나 당장 아는 게 없고, 사랑은 했으나 당장 아무도 없는 나의 서른. 그래서 그 해에 나온 내 앨범 제목이 ‘설은’이었다. 낯설고, 설익고, 서러운 나이인 것 같아서.
시간은 조금 더 흘러 나는 서른다섯이 되었다. 설문조사 같은 걸 할 때 이십대 칸 옆의 삼십대 칸에 체크를 하는 게 이제는 전혀 낯설지 않다. 어느 날 서른을 앞둔 가까운 동생 하나와 소주를 한 잔했다. 돌아보니 후배의 질문에 답하던 시절로부터 10년이 훌쩍 흘러 있었다.
“형, 내가 이제 곧 삼십대야.”
“그러네. 좀 조급해지나?”
“그런 건 아닌데. 어때? 삼십대는?”
나는 갓 서른이 되었던 때었다면 하지 못했을 대답을 했다.
“재밌어. 난 이십대보다 더 좋아.”
진심이었다. 서러운 마음으로 시작된 나의 삼십대는 의외로 이십대보다 재미있다. 그때처럼 온갖 것들이 신기하지는 않지만, 그대신 안목과 취향이라는 게 희미하게나마 생겼다. 재밌는 것, 좋은 것, 맛있는 것을 알고 찾아서 즐길 수 있게 되었다는 거다. 또 생각해보면 이십대 내내 나는 얼마나 궁핍했는가. 교통카드를 충전하기 위해 주머니에 넣어둔 만 원 짜리 한 장을 술값 계산하는 친구에게 쥐어주고 지하철 개찰구를 몰래 넘어가다 붙잡혀 과태료 통지서를 끊어야 했던 그 감각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처럼 나와 우리들의 이십대는 곤궁하고 서글펐다.
지금이라고 풍족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그런 지지리 궁상을 떨어야 하는 상황은 아니지 않은가. 연애는 또 어땠나.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다는 김광석 노랫말대로라면 나는 이십대 내내 사랑 한 번 못 해본 가련한 인간일 것이다. 안 아픈 사랑이 없었고 그 앞에 안 서툰 순간이 없었다. 삼십대의 그것은 그때처럼 좌충우돌하는 맛은 없지만 그보다는 평화롭고 때때로 못지않게 뜨겁다. 나이를 먹는다는 게 마냥 슬픈 일은 아닌 모양이다.
서른이 서러웠던 것은 단지 서른쯤에는 무언가 이루어야 한다는 강박 때문이었다. 그러나 서른이 스스로 무언가 이룰 수 있기나 한 나이인가. 십대까지의 내 삶을 온전히 나의 인생이었다고 하면 좀 억울할 것 같다.
그저 시스템이 원하는 대로 착실하게 십대를 마친 뒤에 맞이한 이십대는 비로소 나의 인생이 시작되는 지점일 뿐이다. 그때 이미 무언가를 이룬 비범한 사람들도 있기는 했지만 어디까지나 그것은 그들이 별난 것이지, 누구에게나 시작은 넘어지고 깨지는 경험의 순간일 뿐이다.
서른을 눈앞에 둔 그 동생 같은 친구들에게도, 그리고 이십대보다 좋은 삼십대를 보내고 있지만 이따금 고개를 드는 내 조급함에도 이런 말을 해주고 싶다. 서두를 것 없다고. 지금부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