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초엔 내내 우울했다.
가깝게 지내던 K형이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었다. 형은 마흔을 앞 둔 나이에 암을 발견했고, 일 년 정도 병마와 싸우다 잠들었다. 누구의 죽음이 슬프지 않겠냐마는 형의 죽음은 유독 안타까웠다. 삶을 마감하기에는 너무 젊기도 했고, 무엇보다 그동안 너무나도 열심히 살아온 사람이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형은 의사였다. 뒤늦게 시작한 의학전문대학원 시험 준비가 좀 오래 걸린 편이었다. 나이 서른이 넘도록 한 번 제대로 놀아보지도 못하고 공부를 하고, 대학원에 들어가서도 국가고시에 매달리고, 고되다는 전문의 과정을 거쳐서 삼십 대 중반이 되어서야 비로소 어엿한 의사가 되었고 재작년에는 사람 좋고 능력도 있는 분을 만나 결혼도 했다. 그 고생을 해서 의사가 되었으면 사치도 좀 부리고 이래저래 으스댈 만도 한데 형은 그런 게 하나도 없었다. 초창기에 나온 스마트폰을 십 년 씩이나 쓰고, 차 욕심이 없다며 버스와 지하철을 고집하다가 끝내 300만원 짜리 중고차를 하나 샀다고 자랑을 하던 사람이었다. 생전 멋 한 번 부릴 줄 몰랐고, 비싼 술 한 번 먹으러 가자고 이끄는 일도 없었다. 나는 도대체 형은 의사 월급 어디다 쓰는 거냐며, 그 돈 쌓아뒀다 도대체 뭐할 거냐고 놀리곤 했다. 원하던 바를 이룬 뒤에도 성실하고 검소했던 사람. 누구도 형의 찬란한 미래를 의심하지 않았다.
그런 형이 세상을 떠났다고 했을 때 형을 아는 많은 이들이 나와 같은 생각을 했을 거다. 이렇게 될 줄 알았더라면 그렇게 열심히 살지 않아도 좋았을 텐데. 공부에 이십대를 통째로 바치지도 않았을 거고, 공부로부터 해방된 이후에도 누릴 수 있는 것을 마음껏 누리며 지냈을 텐데. 그랬더라면 이렇게 떠났더라도 조금이나마 덜 아쉬울 텐데. 그런 생각에 나는 더 깊이, 오래 속상했다.
몇 해 전에도 나는 가까운 형을 한 명 잃었다.
S형은 얼마 전 떠난 K형과 비슷한 나이에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S형의 삶은 K형과는 대조적이었다. 이른 나이에 모두가 부러워 할 만 한 직장을 얻어 순탄한 생활을 했지만, 형은 배우가 되고 싶었다. 결국 형은 모두의 ‘미쳤다’라는 이야기들을 외면하며 퇴사를 했고 마음껏 배우 생활을 했다. 그가 갑작스레 세상을 떠났을 때도 사람들은 그의 죽음을 안타까워했지만, 한 편으로는 이런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그래도 회사 그만두고 하고 싶은 일을 하다 간 것이 그로서는 최고의 선택이었다”고.
결과론적인 이야기지만 두 형의 삶과 죽음이 내게 던지는 메시지는, 지금 당장 하고 싶은 것을 하고 누릴 수 있는 것을 마음껏 누리는 것이 낫다는 것이다. 언제 떠날지 모르는 것이 인생이다. 당장 한 치 앞을 장담할 수 없는데 미래를 위한 투자나 희생 같은 것이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내일 같은 것은 생각하지 말고 현재에 충실하며 살아가는 것이 현명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그렇게 생각하다가도 가끔 주변 친구들의 앞날 걱정을 들어보면 그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얼마 전에는 친구와 이런 이야기를 나눴다. 이제 금방 마흔이 되고 시간은 점점 빨리 가니까 또 금세 쉰이 될 텐데, 만약에 그때 더 이상 우리를 찾아주는 이들이 없다면 우리는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 기술 없는 노년의 남성이 할 수 있는 일이래 봐야 몇 가지 안 되고, 그러니 사람들은 그 직업들을 향해 모여들어 치열하게 경쟁할 텐데 우리는 그 안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돈을 모아 자영업을 해도 망하는 사람들이 더 많고, 그렇게 망하면 또다시 그 경쟁 속에 던져질 것이 분명하다. 혹시 모를 노후를 위해 일찌감치 자격증이라도 하나 따 둬야 할 것 같은데, 어떤 자격증을 따야 나이가 들어서도 일을 할 수 있을까. 행사장으로 가는 몇 시간 동안 우리는 그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처음에는 농담처럼 시작한 말이었지만, 나중에는 우리 둘 다 마음이 무거워지고 말았다.
나는 아직도 정답을 모르겠다.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시키는 일 따위 하지 않고 지금 당장 즐길 수 있는 것들을 마음껏 즐기며 사는 삶이 정답인지, 아니면 혹시 모를 미래를 미리 착실하게 대비해가며 살아가는 삶이 정답인지. 애초에 답을 찾을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은 알지만 그것이 지금 내게는 가장 큰 고민거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