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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올 겨울 한파, 어쩌면 지구의 경고일지도

지난 1월 8일, 한반도에는 기록적인 한파가 불어 닥쳤다. 서울의 아침 기온은 영하 18.6℃로 20년 만에 가장 낮은 수치를 기록했고, 경북 지역의 수은주도 영하 15℃ 아래로 떨어졌다. 1964년 이래 57년 만에 제주도도 한파 경보가 발효되는 등 실로 어마어마한 한파가 한반도를 매섭게 할퀴었다.갑자기 폭설도 내리는 바람에 도로가 아수라장이 되고 곳곳의 수도 계량기가 동파되기도 했다. 그리고 이사 오고 3년 간 한 번도 언 적이 없었던 우리 집 수도도 얼었다.불과 하룻밤 사이의 일이었다. 내일 일어나면 수도가 얼지 않도록 물을 살살 틀어놔야지 마음을 먹고 잠들었는데, 그 하룻밤 만에 수도가 얼어붙은 것이다. 수도가 얼자 나는 더 이상 이 집에서 생활을 할 수 없게 되었다. 수도가 얼었다는 것은 물이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고, 물이 나오지 않는다는 것은 화장실을 사용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씻는 건 둘째 치고 기본적인 생리현상을 해결할 수 없다는 이야기이다. 얼어붙어버린 집에서 나는 몇 시간도 버티지 못하고 짐을 싸서 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로부터 일주일, 나는 친구 집과 아버지 집을 전전하며 떠돌이 생활을 했다. 자연재해의 피해자가 되어 (사실상)집을 잃기는 처음이었다. 얼어버린 수도가 자연스레 녹길 기다리며 며칠을 버티다 결국 동네 철물점 사장님께 수십만 원을 드리고 배관을 녹일 수 있었다. 우리 집 배관은 보일러실부터 계량기까지 싹 다 얼어붙어 있었다. 불과 하룻밤 사이에 말이다.이번 한파는 역설적이게도 지구 온난화가 그 원인이라고 한다. 지구가 따뜻해지는데 어째서 한반도는 더 추워진 것인가. 이번에 뉴스를 보며 공부한 바에 의하면 이러하다. 겨울철 한반도의 추위는 주로 북서쪽 시베리아 기단의 영향인데, 겨울철 한반도와 시베리아 사이에는 고맙게도 시베리아 기단을 가로막는 제트기류가 형성된다고 한다. 그런데 지구의 온도가 상승하면서 제트기류의 양 끝 지점의 온도차가 줄어들고, 그로 인해 이 제트기류가 힘을 잃게 되는 것이다. 제트기류가 약해지면서 한반도를 쉽게 침범하지 못하던 시베리아 기단이 마음껏 한반도로 넘어와 이번과 같은 한파를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어쨌거나 요약하자면, 지구온난화로 몸살을 앓던 지구가 ‘콜록’하고 기침 한 번 한 바람에 한반도에 한파가 몰아치고 폭설이 내리고 도로가 마비되고 계량기 7천여개가 망가지고 우리 집 수도가 얼어붙고 내가 일주일간 이재민 아닌 이재민이 된 것이다.강백수세상을 깊이 있게 바라보는 싱어송라이터이자 시인. 원고지와 오선지를 넘나들며 우리 시대를 탐구 중이다.나는 사실 환경 문제에 관심이 별로 없는 편이다. 쓰레기를 버릴 때에도 분리수거는 대충대충 흉내만 낼 뿐, 페트병에 붙어있는 비닐 라벨을 떼거나 종이박스에 붙어있는 비닐 테이프를 제거하는 일까지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왔다. 쓰레기를 거의 배출하지 않는 ‘제로웨이스트’를 실천하는 지인들을 보며 ‘뭘 굳이 저렇게까지…’라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그런데 이번 일을 겪고 나니까 문득 자신에게 무관심했던 나에게 지구가 ‘이놈’하며 가벼운 호통을 한 번 친 느낌이었다.지구 온난화가 불러온 한파 때문에 하얗게 얼어붙은 동네를 보며 재난영화 ‘투모로우(2004)’가 떠오르기도 했다. 지구온난화로 인해 남극과 북극의 빙하가 다 녹고, 이로 인해 지구에 빙하기가 찾아온다는 내용의 이 영화에는 이런 대사가 나온다. “우리는 깨달았습니다. 분노한 자연 앞에서 인류의 무력함을. 인류는 착각하고 있었습니다. 지구의 자원을 마음대로 쓸 권한이 있다고. 허나 그건 오만이었습니다.”이번에는 고작 우리 집 수도가 어는 정도의 경고였을지 모른다. 그러나 계속해서 우리가 ‘지구의 자원을 마음대로 쓸 권한’과 같은 오만이나, 환경문제에 대한 나와 같은 무관심으로 일관한다면 지구는 더욱 더 엄중한 방식으로 우리에게 항의를 해 올지도 모를 일이다.

2021-01-18

참사람 장경식

북극한파와 함께 폭설이 쏟아진 지난 6일, 제주도에서 부고 하나가 날아들었다. 제주 ‘봄 연구소’ 장경식 소장이 새해 첫 날 뇌출혈로 쓰러진 후 결국 세상을 떠난 것이다. 역사나 인명사전에 등재될 수 없는 한 개인이지만, 이 땅에서 60년을 지내온 그의 삶을 공적인 사건으로 기록하고 싶다. 그는 사회적 약자와 공동체를 위해 헌신하며 특히 제주 지역의 건강한 발전을 위해 힘써왔다. 그가 지향한 ‘발전’은 물질적인 것이 아니라 정신적, 문화적 가치를 기반으로 한 연대의 감각이 지역은 물론 우리 사회 전체에 봄비처럼 퍼지는 일이었다. 아내인 봄 정신건강의학과 신윤경 원장과 함께 그 봄비의 마중물이 되어 왔다.‘장경식 추모’ 단체채팅방에는 200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슬픔과 위로를 나누며 고인을 추억했다. 빈소에는 대안학교인 제주 볍씨학교 학생들이 한달음에 달려와 생전 고인이 좋아했던 노래 ‘그대와 함께 평화가 되어’와 ‘아침이슬’을 울먹이며 합창했다. 유가족들은 너무 이른 이별에 황망해 하면서도 더운 파도처럼 밀려오는 조문객들의 손을 잡고 의연하게 슬픔을 견뎠다. 청소년, 이주노동자, 영세상인, 가톨릭 신부, 스님, 작가, 교수, 음악가, 공무원 등 수많은 이웃들이 마지막 가는 길을 배웅했다. 발인일에는 솜뭉치 같은 함박눈이 하염없이 내렸다. ‘장경식의 친구들’은 펑펑 내리는 눈을 맞으며 손에 손 잡고 하늘 향해 “안녕, 안녕!” 외쳤다. 고인이 어떠한 삶을 살아 왔는지 짐작할 만하다.2008년, 아내와 제주도로 온 후 이주민이라는 제한적 위치에도 아랑곳 않고 ‘불의 전차’처럼 달리며 지역을 위한 활동들을 펼쳤다. 그가 걷어 부친 굵은 팔뚝은 척박한 땅을 일구는 개척의 호미나 다름없었다.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는 이들도 있었지만 활달한 생명력이 우렁우렁 넘치는 그의 호탕한 웃음은 끝내 여러 장벽과 빗장을 열었다. 아내가 개원한 봄 정신건강의원에 별도의 사무실을 두고 ‘돌봄’, ‘들여다봄’, ‘새싹이 돋는 봄’이라는 뜻의 봄 연구소를 열어 지역민들에게 인문학을 통한 마음 치유와 회복을 선물했고, 초록우산 어린이재단과 볍씨학교 등을 물심양면 후원하며 아동과 청소년 봉사에 힘썼다. 또 제주에 온 예멘 난민들을 향해 혐오와 적대감이 일어날 때 그들을 위한 거처를 마련하고, 지역사회 인식을 바꾸어 난민들이 안전하게 정착하도록 밤낮없이 일했다.이병철 문학평론가이자 시인. 낚시와 야구 등 활동적인 스포츠도 좋아하며,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유목민’이라는 인문학 모임을 이끌며 독서와 영화 감상, 명사 초청 강연 등을 펼쳤고 그 모든 활동 안에는 반드시 토론이 자리 잡게끔 했다. 그가 꿈꾼 세상은, 사람들이 서로의 차이를 존중하며 다양한 생각들이 막힘없이 흘러 큰 바다를 이루고, 그 바다에서 생명과 평화가 탄생하는 ‘행복의 나라’였다. 그는 물리적인 연대보다 정서적, 정신적 연대야말로 세상을 바꾸는 힘이라고 믿었다. 그리고 그 아름다운 연대를 위해 불쏘시개, 마당발, 스피커를 자처했다. 불의를 참지 못하고, 감정표현에 거침없으며, 주관이 뚜렷하고 고집 센 데다 ‘투머치토커’라 때론 일부러 피해야했지만, 그는 어린아이에게도 늘 배우려 했고, 자신과 다른 정치적 견해에도 귀 기울이는 열린 사람, 넓은 사람이었다.채현국 효암학원 이사장, 재야운동가 백기완 선생, 김종철 녹색평론 발행인, 인권운동가 서승 교수 등을 아버지처럼 모셨고, 청소년, 어린아이, 여성, 이주노동자를 살뜰하게 챙겼다. 단체채팅방 인원의 몇 배나 되는 사람들이 그에게 신세를 졌다. 그는 모든 사람에게 진심이었다. 막걸리와 꽃과 사람을 뜨겁게 사랑한 참사람, 장경식 소장은 레비나스가 말한 타자 윤리, 타자에 대한 무한 책임이라는 비대칭적 관계를 온몸으로 살다 갔다.그는 떠났지만, 그가 수많은 이들에게 남긴 감명은 늘봄처럼 환한 빛이 되어서, 그를 기억하는 한 사람 한 사람이 주변의 10명에게, 그 10명이 다시 10명에게, 그렇게 또 10명, 10명씩 빛을 나눌 때, 볍씨학교 학생들이 그의 영전에 바친 노래처럼, 제주를 넘어 “온 누리 흘러넘치는 평화의 물결”이 될 것이다. 그렇게 계속 살아 있을 것이다. 안녕, 안녕!

2021-01-11

낙태죄 폐지 이후 나아가야 하는 것

2021년 1월 1일부로 낙태죄가 입법 공백 상태에 놓였다. 지난 2019년 4월 헌법재판소는 헌법 불합치 결정을 내리면서 2020년 12월 31일까지 대체 입법을 시행하기로 했다. 그러나 대체 입법 기간을 지난 현시점에선 낙태죄 일부 효력이 상실되었고 명확한 대체 입법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사실상 낙태죄는 폐지된 것에 가깝다고 볼 수 있지만 완전한 폐지는 아니다. 현재 입법이 공백으로 놓여 있기 때문에 의료계와 여성계 전반적으로 혼란이 일고 있다. 의료계는 선별적 낙태 거부를 선언하였고, 이에 따라 병원과 의료진마다 낙태 가능 여부나 금액이 천차만별이다. 또한 여성이 안전하게 임신을 중지할 수 있는 대책 마련과 법적인 보호 장치가 없어, 빠르게 해결해야 할 과제로 남아 있다.그간 임신 중지가 필요한 여성들은 암암리에 인터넷 사이트나 비공개 카페를 통해 임신 중지에 관련된 정보를 얻었다. 미프진과 같은 유산 유도제를 비밀리에 구하고, 잘못된 방식으로 복용하거나 부작용으로 인해 응급실을 찾는 여성 또한 적지 않았다. 앞으론 이와 같은 상황을 줄이기 위해 누구나 간편하고 빠르게 정보를 찾아볼 수 있도록, 임신중지를 위한 각종 정보와 자료가 제시되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한 상담이나 구체적인 의료 가이드라인 또한 의료진과 전문가의 충분한 논의를 통해 제정되어야 한다.낙태죄 폐지를 말하는 여성들은 ‘여성의 재생산권’에 대한 분명한 목소리를 꾸준히 냈다. 재생산 권리는 성관계, 임신과 출산 여부와 시기, 자녀의 수 등 출산에 해당하는 모든 행위를 포함하여 여성이 스스로를 결정할 수 있는 권리를 뜻한다. 모자보건법 14조는 본인이나 배우자가 유전으로 정신 장애나 질병이 있을 시, 강간 또는 준강간에 의한 임신, 혈족이나 인척간의 임신, 임신 지속이 모체 건강에 악영향을 끼칠 시에만 임신 중단이 가능하다고 명시되어 있었다. 그렇지만 강간, 준강간의 경우 입증이 어려웠으며, 여성의 입장에서는 신체 자기 결정권을 침해한다고 여겨졌다. 또한 과거 국가 차원에서 산아 제한 정책을 펼치며 오히려 임신 중단의 범위를 허용하는 법으로 기능했다. 새로 개정되어야 하는 모자보건법의 방향은 임신과 출산이 더는 국가의 인구 정책 수단이 아닌, 개인의 선택이자 권리가 되어야 한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리고 있다.윤여진 2018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 부문에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현재보다 미래가 기대되는 젊은 작가.남녀의 결혼 제도 없이 자발적으로 임신을 선택하는 ‘자발적 미혼모’가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최근 방송인 사유리 씨는 자신의 SNS를 통해 “고심 끝에 결혼하지 않고 엄마가 되기로 결정했다”고 말하며 임신 소식을 알렸다. 산부인과 검진 결과 자신의 난소 나이가 48세라는 이야기를 듣고 어서 아이를 낳아야겠다고 결심했다고 한다. 그녀는 원치 않는 결혼 대신, 자신이 직접 아이를 선택하여 낳아 기르는 것을 택했다.중국 광저우에 살고 있는 이에하이양은 갈색 머리와 하얀 피부, 푸른 눈을 가진 아이를 안고 있다. 밝게 웃는 아이의 얼굴은 얼핏 보아도 서양인에 가깝다. 28살, 사랑하는 남자는 없지만 아이를 갖고 싶었던 이에하이양은 외국으로 가서 정자를 직접 고른 뒤 자신의 딸인 ‘도리스’를 낳았다. 홀로 화장품 사업을 시작하였고 몇 년 뒤 놀라울 만한 성과를 이끌어낸 그녀는 자신의 경제적 여유와 아이를 낳아 기를 수 있는 책임감을 고려한 뒤, 스스로 임신과 출산을 결정했다.그녀들은 자신의 의지로 출산을 택해 새로운 가족 형태를 꾸렸다. 과연 한 사람이 두 사람 몫을 해낼 수 있을지 의문과 우려를 내비칠 수 있겠지만, 누구도 한 가정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거나 개인의 행복을 정의할 수 없다.아직 임신 중단 세부 절차나 구체적인 법안 등 남아 있는 문제로 갈 길이 멀다. 낙태죄가 사라진 공백을 채울 수 있는 실질적이면서도 유용한 법안들이 마련될 수 있도록 개인의 지속적인 관심뿐만 아니라 사회적 인식이나 문화, 교육 등 바뀌어야 할 것이 많다. 임신중지에 취약한 여성에게, 같은 고민을 나누는 친구에게, 여성 스스로가 신체 결정권을 내릴 수 있는 날이 어서 주어지기를 바란다.

2021-01-11

시간의 밖에 있는 괄호

인간이 살아가면서 자신도 모르게 긋게 되는 경계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켄 윌버의 책 ‘무경계’. /정신세계사늘 그렇듯 한 해의 시작은 기대와 설렘을 몰고 온다. 힘겨웠던 2020년을 지나 보내고 나니 새해라는 단어가 더욱더 귀하게 여겨진다. 이러한 마음으로 2021년을 맞이한 모두가 각자의 소망을 움켜쥔 채로 힘차게 나아가는 중일 것이다.한 해를 떠나보내면서 내가 꼭 지키는 규칙이 하나 있다. 이루고자 하는 목표를 다이어리의 가장 마지막 장에 적어두는 것이다. 실현 가능한 포부를 최대한 구체적으로 적되 그것에 집착하거나 일부러 곱씹지 않는다. 열두 해를 살아가며 내가 어떤 각오를 다졌는지 까맣게 잊어버리다가 12월의 마지막 날 비로소 다이어리의 마지막 장을 펼쳐본다. 목표한 바를 이루기도 그렇지 못하기도 하지만 성공 여부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 막막한 종이를 앞에 두고 골몰하던 작년의 나를 돌아보며 새롭게 나아갈 힘을 얻는다.이 작업은 해마다 달라지는 나의 상태를 조망할 수 있기에 흥미롭다. 건강과 주변의 안녕 또는 작년보다는 조금 더 두툼해진 지갑을 바랄 때도 있다. 공통된 점이라 하면 당시의 상황에서 결핍된 무언가를 원한다는 것이다.이따금 씁쓸해지기도 한다. 이루고자 하는 바가 나의 기준에 입각한 것이라기보다는 사회적 통념에 따라 흔들리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때가 그렇다.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나이라는 숫자에 연연하면서 조바심을 내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기도 한다.켄 윌버의 저서 ‘무경계’에서는 인간이 살아가면서 자신도 모르게 긋게 되는 경계에 관해 이야기한다. 어떠한 관념이 나뉘어 있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자기 자신이 하나의 세계로부터 두 개의 세계를 만들어내는 행동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크고 작음, 빈곤과 부, 흑과 백, 젊음과 늙음. 이것은 모두 다르긴 하지만 결국 단일한 사건을 나타내는 서로 다른 표현일 뿐이다. 긍정적이라고 생각하는 반쪽에만 집착하며 다른 쪽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여기는 것은 출구가 없는 입구만의 세계를 얻으려고 애쓰는 것과 같다.문은강 ‘춤추는 고복희와 원더랜드’로 주목받은 소설가. 2017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작가로 등단했다.시간 역시 마찬가지다. 우리는 어제에 살면서 내일을 꿈꾼다. 그렇게 해서 하나의 시간을 둘로 나눈다. 과거와 미래가 압박하고 있다는 기분과 함께 괴로워하며 자신을 속박하게 된다.우리가 무엇보다 중요한 ‘지금 이 순간’을 얼마나 허망하게 흘려보내고 있는지에 관해 저자는 다음과 같이 표현한다. ‘현재는 한정되고, 담으로 둘러싸이고, 제한된다. 열린 순간이 아니라 짓눌린 순간, 압착된 순간, 즉 그저 스쳐 지나갈 뿐인 덧없는 순간이 된다. 과거와 미래가 너무나 실재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샌드위치 속의 고기인 현재의 순간은 단지 얇은 종잇조각처럼 축소되고 우리의 실재는 이내 내용물 없는 두 조각의 빵이 되어버린다.’우리는 언제나 더 나은 내일을 원한다. 그러나 힘겹게 걸어온 끝에 당도한 순간이 바로 현재라는 것은 쉽게 망각하곤 한다.미셸 투르니에의 ‘외면일기’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크리스마스와 정월 초하루 사이의 기이한 일주일은 시간의 밖에 있는 괄호 속 같다.’ 주요한 명절을 앞뒤로 두고 마치 공백으로 남은 것처럼 느껴지는 시간을 탁월하게 묘사한 것이다.어쩌면 우리는 소중한 매일을 이러한 기분으로 살아가는 것은 아닐까. 아직 진짜가 아니라고, 더 중요한 것은 다른 어딘가에 있다고 믿으면서 말이다. 고요히 내리는 눈을 그저 바라보는 대신에 꽝꽝 얼어붙은 도로의 출근길을 맞이해야 하는 내일에 대해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른다.과거의 기억에서 벗어나 미래를 예측하려는 시도를 멈추는 것만으로 우리는 한결 더 가벼워질 수 있다. ‘바로 지금’ 보고 느끼는 것만큼 중요한 체험은 없다. 변화와 지속이 공존하는 삶 속에서 미래는 현재의 연속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으리라. 새해에는 그런 다짐을 해본다.

2021-01-04

기다림의 끝이 보일 무렵

2021년 새해가 밝았다. 나이를 한 살 더 먹는 것이 즐거운 사람이야 얼마나 되겠냐마는 2020년을 마감하는 것에 대한 내 주변 사람들의 반응은 주로 아쉬움보다는 드디어 지긋지긋한 한 해가 끝났다는 후련함이었다. 2020년 한 해가 그만큼 지긋지긋했던 이유는 다름 아닌 코로나19 때문이었을 것이다.불과 일 년 전만 해도 매일매일 착용해야 하는 마스크, 그래서 돋아나는 뾰루지, 사이버 강의, 음식점 및 주점 아홉시 이후 영업 금지, 헬스장을 비롯한 운동시설 집합금지, 하나하나 영업을 포기하는 작은 가게들과 같은 풍경들이 일상이 아니었다면 믿을 수 있겠는가. 마스크 하나 쓰지 않고 옹기종기 모여 영화를 보고, 공연을 보고, 밤새도록 이야기를 나누던 풍경이 불과 일 년 전의 것이라면 믿을 수 있겠는가. 이러한 기억들이 까마득한 이유는 그만큼 우리에게 이 시절이 길게 느껴졌기 때문이었으리라.차라리 코로나 19와의 싸움이 끝나는 날이 정해져 있었다면, 그 날까지의 기다림이 일 년이건 이 년이건 그 기간을 미리 알 수 있었다면 우리의 마음이 이토록 힘들지는 않았을지도 모른다. 원래 기약 없는 기다림은 그 기다림 자체보다 기약이 없다는 사실로 인해 더욱 고통스럽기 마련이므로.새해의 시작부터 그나마 반가운 소식이 하나 들려온다. 정부가 미국 제약사인 모더나와 2천만 명분의 코로나19 백신 구매 계약을 체결했다는 소식이다. 질병관리청은 이번 계약으로 인해 정부가 구매한 백신의 수는 인구의 100%를 상회하는 5천600만 명분이 되었고, 5월부터 백신의 접종이 가능하다고 발표했다.강백수. 세상을 깊이 있게 바라보는 싱어송라이터이자 시인. 원고지와 오선지를 넘나들며 우리 시대를 탐구 중이다.멀든 가깝든, 그 끝이 정해져 있는 기다림은 그렇지 않은 기다림에 비해 훨씬 수월하다. 지긋지긋했던 우리의 기다림에도 드디어 예정된 끝이 희미하게나마 보이게 되었다. 적어도 여태까지 우리가 기다린 것보다 앞으로 기다려야 할 시간이 길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생각하니 한결 희망적인 기분이 된다.그런데 어떤 이들에게는 모두의 기다림을 끝내는 일보다 당장 작은 것들을 누리는 것이 더욱 중요한 모양이다. 간절곶, 호미곶, 해운대, 정동진, 성산 일출봉 등 해돋이 명소를 보유한 지자체들은 제발 해돋이를 보기 위해 모이지 말아달라며 1월 1일 당일 해당 장소들을 폐쇄하겠다고 발표하고 해돋이 인파를 막기 위해 총력을 다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사람들이 폐쇄된 해맞이 명소들의 변두리에서라도 해돋이를 보겠다며 해당 장소들에서 장사진을 이루었다는 기사를 접했다. 그곳에서마저 거리두기 등 방역지침조차 지키지 않는 일부 시민들을 보며 기분이 씁쓸해진다. 그들 중 대다수는 떠오르는 태양을 보며 자신들과 주변 사람들의 건강과 행복을 빌었을 것이다. 코로나 방역지침을 어겨가며 빌었을 소원이 건강과 행복이라니, 이보다 더한 역설이 또 있을까.올해는 기필코 이 긴 기다림을 끝내야 한다. 우리는 다시 마스크를 벗고 서로의 얼굴을 보며 이야기를 나누어야 한다. 회사원이건 자영업자건 자신의 일터로 돌아가 걱정 없이 일할 수 있어야 한다. 일이 끝난 후에는 다섯 명이건 여섯 명이건 상관없이 모여 자신들의 하루에 대해 이야기 나눌 수 있어야 하며, 거리를 밝힌 음식점과 주점의 간판들은 아홉시건 열시건 꺼지지 않고 반가운 손님들을 맞이해야 할 것이다. 그럴 수 있는 날이 머지않았다. 그러나 그날은 거저 오지는 않을 것이다.여태까지 해온대로 지루하고 고단하게, 우리의 즐거움을 조금씩 희생하며 정부의 방역지침을 지키는 것이 긴 기다림의 끝을 하루라도 앞당기는 일이 될 것이다. 온라인으로 중계되는 2021년 새해의 해돋이를 바라보며 부디 얼마 남지 않은 이 기다림이 무사히 끝나기를 간절히 바라본다.

2021-01-04

변창흠, 말로 흠을 만들다

얼마 전 SNS에서 화제가 된 영상이 있다. 미국의 무명배우 루카스 게이지는 집에서 화상 오디션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가 간절함을 담아 마지막 대사 연습을 하고 카메라 테스트를 마칠 무렵, 마이크 끄는 것을 깜빡한 감독의 부적절한 말이 들려왔다. “가난한 사람들은 저런 작은 아파트에 사는군. 저 낡은 티브이 좀 봐” 당혹스러울 만도 한데 게이지는 “음소거가 되어 있지 않네요. 저도 알아요. 형편없는 아파트죠. 제가 좋은 집에 살 수 있도록 기회를 주세요”라고 의연하게 대처했다. 감독은 즉시 사과했다. 스스로에게 모멸감을 느낀다는 감독에게 게이지는 “누구나 할 수 있는 실수예요. 저는 작은 상자 안에 살고 있지만, 작품에 출연할 기회를 주신다면 우리는 괜찮아질 겁니다”라며 오히려 위로를 건넸다. 막말을 한 감독은 트리스트램 샤피로. 1966년생인 그는 루카스 게이지보다 서른 살 더 많다. 나이, 경력, 지위, 물질적 풍요와 인격의 성숙은 결코 비례하지 않는다.부패한 정치권력을 소재로 한 영화에서 자주 나오는 장면이 있다. 어느 국회의원 후보가 티브이 연설을 한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여러분을 섬기고 사랑하겠습니다” 온화한 얼굴로 연설을 마친 그는 카메라가 꺼지자마자 돌변한다. “멍청한 개돼지들이 뭘 알기나 해? 이만큼 먹고 살게 해주는 걸 감사할 줄 알아야지” 곧이어 재래시장을 방문해 억울한 일을 겪은 상인의 호소에 귀를 기울인다. 연민의 표정을 짓는 그에게 상인은 와락 안기며 눈물을 쏟는다. “제가 다 해결해드리겠습니다. 걱정 마세요” 상인의 등을 토닥여주던 그는 재래시장을 나서자마자 보좌관의 뺨을 때린다. “더러운 것들이 감히 내 몸에 손을 대? 막지 않고 뭐했어?” 썩은 오물이라도 묻은 듯 신경질적으로 옷을 터는 국회의원 후보를 보며 관객들은 씁쓸함을 느낀다. 영화 속 가상인물이지만, 현실을 보는 것 같기 때문이다.공직 근처에는 평생 가볼 일 없는 내게도 부끄러운 ‘막말의 추억’이 있다. 15년 전쯤인가 다니던 교회에서 지역주민들을 위한 바자회 겸 야외 음악회를 열었는데 내가 기획 및 MC를 맡았다. 이전에 트로트나 사물놀이를 공연했을 때는 반응이 좋더니 바이올린과 첼로 등 클래식 연주를 한 그날은 영 썰렁하고 산만했다. 연주자들이 정성껏 연주하는 동안 누구도 음악에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연주자들 보기 민망하기도 하고, 화도 났던 것 같다. 미성숙한 이십대 초반, 왜곡된 문화의식을 가졌을 때다. 다른 진행 스태프에게 “이런 공연은 강남 같은 데서 해야지 우리 동네랑은 수준이 안 맞는다”라고 말했다. 그러자 지나가던 한 주민이 그걸 듣고는 “말을 그렇게 하면 안 된다”며 항의했다. 그 즉시 여러 번 고개 숙여 사과했다. 해명할 것도 없는 명백한 잘못이었다. 그분이 사과를 받아주어 일단락됐지만 그 말실수를 떠올리면 아직도 부끄럽다.그 일을 통해 나는 말의 경솔함을 경계하게 됐으므로 실수도 좋은 경험이겠지만, 깨달음의 대가로 부끄러움은 평생 안고 가야 할 몫이 됐다. 한 번 뱉어진 말은 발화자의 입을 떠나도 세상에 내내 떠돌기 마련이다.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의 막말 논란이 여전히 뜨겁다. 2016년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고로 사망한 비정규직 노동자 김 군을 두고 “사실 아무것도 아닌데 걔가 조금만 신경 썼으면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될 수 있었다”며 사고의 책임을 김 군에게 돌렸다. 노동자와 노동 현장에 대한 왜곡된 인식을 여실히 드러낸 막말이다. 또 이런 말도 했다. 공공임대주택 공유주방 사업 논의 중 “못 사는 사람들은 밥을 집에서 해 먹지 미쳤다고 사 먹냐”라면서 임대주택 입주 대상자인 서민들을 비하했다. 얼마 전 그걸 해명한답시고 한 말은 더 가관이다. “특히 여성은 화장을 해야 하기 때문에 모르는 사람과 아침을 먹지 않으려 한다”고 했는데, 그가 평소 여성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대충 짐작이 된다.각각의 막말마다 그럴듯한 해명을 내놓긴 했지만, 말이라는 것은 뱉어지는 순간 그 소유관계가 달라진다. 말한 사람이 말의 진의를 ‘가나다라’ 주장해도 듣는 사람이 ‘아자차카’ 들으면 그 말은 결국 ‘아자차카’가 된다. “엎질러진 말은 주울 수 없다”라든가 “발 없는 말이 천리 간다”는 격언은 초등학교 때 배우는 건데, 너무 오래되어 까먹었는지도 모르겠다. 말 한 마디로 수많은 이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줄 수도, 상처와 절망을 줄 수도 있는 공직자라면 자기 말에 부드러운 깃털이 달렸는지 아니면 날카로운 가시와 이빨이 달렸는지 철저한 자기검열을 해야 한다. 특히 그는 주거와 교통 등 국민의 기본 생활을 관장하는 부서의 장관이다. 나 같은 삼류 시인의 글도 1차, 2차, 3차 교정을 거쳐야만 세상에 나오고, 막걸리 한 병을 생산하기 위해 양조장의 설비 시설은 수차례의 품질 검사를 진행한다. 변 장관 막말의 경우, “말이야 막걸리야”라는 속어는 막걸리 입장에서 치욕이다. 음가를 가지고 유치한 이름 풀이를 해보자면, 변창흠은 ‘말로 흠을 만든 사람’이 된다.말의 진의가 어떻든 국민이 듣는 ‘아자차카’는 이렇게 풀이된다. “걔가 조금만 신경 썼으면” 운운은 “위험의 외주화 등 열악한 노동 현실을 계속 쉬쉬하며 덮을 수 있었는데 재수도 없게 노동자 하나가 사고를 쳐서는 골치 아프게 됐다”, “못 사는 사람들” 어쩌고는 “공공임대주택 입주자들은 ‘임거(임대아파트 거지)’들인데 분수도 모르고 무슨 외식을 하겠냐”, “여성은 화장을” 저쩌고는 “여자들은 반드시 화장을 해야 한다. 화장을 안 하면 얼굴을 알아볼 수 없다” 그게 아니라고, 억울하다고 아무리 항변해도 소용없다. 그렇게 들리는 걸 어쩌란 말인가? 그러니까 말을 가려 했어야 한다. 말의 무서움을 알고, 말하기 전에 생각하고 또 생각했어야 한다. 하지만 말이라는 것은 결국 가치관과 인식의 표현이므로, 한 인간의 사고는 어떻게든 말을 통해 표출된다. 말에 나타난 변 장관의 노동인식, 사회인식, 여성인식은 공직자의 것으로는 부적합하다.이병철 문학평론가이자 시인. 낚시와 야구 등 활동적인 스포츠도 좋아하며,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그동안 많은 공직자들이 막말과 말실수로 몰락했다. 2008년 당시 한나라당 정몽준 의원은 “버스 요금이 70원쯤 하나?”라고 했다가 민생을 전혀 모른다고 맹비난을 받았다. 그 말실수는 정 의원의 정치 여정에서 중요한 순간마다 서민과 괴리된 재벌 이미지를 극복하지 못하게 하는 걸림돌이 되었다. 한편 2004년 당시 열린우리당 정동영 의장은 “미래는 20대, 30대들의 무대라고요. 그런 의미에서 한걸음만 더 나아가 생각해 보면 60대 이상 70대는 투표 안 해도 괜찮아요. 그분들이 꼭 미래를 결정해 줄 필요는 없단 말이에요. 그분들은 어쩌면 곧 무대에서 퇴장하실 분들이니까 그분들은 집에서 쉬셔도 돼요”라고 했는데, 노인을 폄하했다며 거센 반발을 불렀고 그 결과 정 의장은 강력한 차기 대권 후보의 아우라를 상실하고 말았다. 정몽준 의원과 정동영 의장의 말은 막말이라기보다 말실수에 가깝고, 변창흠 장관에 비하자면 아무것도 아니다.지난 2016년 교육부 정책기획관이었던 나향욱은 “민중은 개돼지”라고 했고, 이듬해 충북도의원 김학철은 “국민은 레밍”이라고 했다. 이런 게 진짜 막말이다. 무슨 이솝우화도 아니고 국민을 개, 돼지, 쥐에 비유한 상소리에 사람들은 분노했다. 당시 야당이던 더불어민주당은 두 사람의 사퇴 및 제명을 촉구했다. 변창흠에게도 똑같이 해야 하거늘 정부와 여당은 국민의 분노와 실망에도 불구하고 장관 임명을 강행했다. 변창흠의 장관 임명은 이번 정부의 도덕성과 직결된 문제다. “저쪽은 더 심했는데…”라는 볼멘소리가 이번만큼은 씨도 안 먹힐 듯하다. 변창흠 장관의 막말은 비교불가 ‘역대급’이다. 많은 국민들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부디 정부와 여당에서 “사실 아무것도 아닌데 변 장관이 조금만 말에 신경 썼으면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될 수 있었다”고 여기지 않기를 바란다. 막말도 문제지만 말만 번지르르한 것도 곤란하다. 국민들은 도덕성과 청렴성, 철학, 능력을 두루 갖춘 인사를 원한다. 대단하고 특별해보이지만 사실 그것들은 공직자가 갖춰야 할 기본 자질일 뿐이다.

2020-12-29

그럼에도 희망하는 것

올해가 끝나간다. 머지않은 날에 2020년도를 돌이켜 보며 ‘맞아, 2020년은 유독 다사다난한 해였지’ 말하며 아무것도 가리지 않은 입으로 환하게 웃을 수 있을까.올 한해는 코로나19로 인한 질병의 두려움으로 혼란스러웠고 여전히 세상 안팎에선 많은 사건 사고가 오갔다. 그럼에도 봄과 여름, 가을과 겨울엔 때에 맞춰 꽃이 폈고 기온이 오르내렸다. 꿈쩍하지 않을 것 같았던 한 해가 끝나간다니. 아직 모든 것이 코로나19 이전으로 회복되진 못 했지만, 한 해의 끝에서 올해를 돌아보자니 나의 생활에도 큰 변화가 있었다. 적게 소비하고 소유하는 미니멀라이프와 플라스틱 사용을 줄이고 제한하는 제로 웨이스트 라이프를 지향하면서 내가 가진 것으로만 생활하고 기쁨을 느끼며 현재는 새로운 삶의 방식에 무척 만족하고 있다.코로나 블루로 인해 우울감을 느끼는 나날이 많았지만, 그럼에도 웃음을 자아내는 이들에게 눈이 오래 머물렀다. 구독자 57만 명을 보유하고 있는 유튜버 ‘핏블리(FITVELY)’는 국제 트레이너이자 스포츠 영양코치다. 주로 운동 콘텐츠를 올리던 그는 코로나로 인해 개업을 앞둔 헬스장을 닫아야 하는 위기에 처했다. 열지 못한 헬스장 안에서 치킨을 먹으며 하소연하는 방송을 진행하자 신기하게도 많은 이들의 관심을 받았다.건강한 몸을 위해 영양학적 지식을 쌓으려 영양학 자격증까지 딸 정도로 공부한 그는 평소 절대 먹지 않을 음식들을 한 상 가득 차려 맛있게 먹는다. 난생처음 맛보는 치즈볼 먹방이나 케이크, 마카롱, 족발 등 고칼로리 먹방을 선보이며 타락한 헬스인, 코로나19가 만든 괴물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한 포털사이트에서 자신이 야간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이라 밝힌 닉네임 ‘월터’는 “단골 가게에서 매일 시켜 먹는 메뉴에 내 닉네임이 추가 됐다”는 글을 올렸다. 인천 남동구에 위치한 ‘짐승파스타’에서 가게 단골 손님이 매일 감바스를 시킨다는 이유로 배달 앱 내 메뉴 이름인 ‘감바스 알 아히요‘를 ‘월터 감바스 알 아히요’로 수정한 것이다. 이 유쾌한 사연은 순식간에 각 커뮤니티와 SNS에 화제가 되며 실시간 검색어에 올랐다. 과거 폐업까지도 고민했던 ‘짐승파스타’였지만 현재는 본점에 이어 부평점을 오픈하는 등 큰 인기를 끌고 있다.코로나19로 경기가 침체되자 코로나가 이어지는 기간 동안 임대료를 면제하는 착한 건물주의 사례나 어려운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저렴한 가격을 그대로 유지한 채 메뉴를 판매하는 가게의 선행도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불러일으켰다. ‘매출로 혼쭐을 내주자’라며 사람들은 가게의 상호를 공유하고 리뷰를 남기며 현재까지도 선한 영향력을 활발히 나누고 있다.지난 1일 사다리차로 인명을 구한 한상훈 씨의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다. 인테리어 자재 운반을 하던 한상훈 씨는 불길 속 베란다 난간에서 구조 요청을 하는 주민을 발견한 뒤, 자신의 사다리차를 이용하여 주민을 구했다.이어 구조 요청을 하지 않는 학생 2명을 발견하고 사다리차가 망가질 것을 감수하면서도 학생들을 구조했다. 긴박한 상황이었음에도 자신의 안전보다 타인을 위해 기꺼이 나서는 용기 있는 행동에 많은 이들의 경직된 마음에 따스함을 안겨 주었다.코로나19의 위기 속에서도 우리는 웃음을 찾고 따스한 것에 본능적으로 눈길을 둔다. 어쩌면 지금 우리가 가장 간절한 것은 사람과의 대화뿐만 아닌, 서로가 지닌 온기나 존재감, 우리가 여기 함께 있다는 믿음이나 확신이 아닐까.코로나19는 그간 볼 수 없었던 새롭고도 독특한 문화 양상을 보여주었다.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는 기간이 길어지면서 사람들은 평소에 하지 않던 즐길거리를 집 안에서 찾기 시작했다. 올해 초 인스턴트 커피와 설탕, 약간의 물을 넣은 뒤 400번 저어야 만들 수 있는 달고나 커피나 1000번 저어 만드는 수플레 계란말이, 1000번 이상 주물러 만드는 아이스크림 등 오랜 시간 공들여 만들어야 하는 레시피가 큰 인기를 끌었다.N차 신상은 또 어떤가. 코로나19로 인한 경기 불황으로 사람들은 새로운 물건을 구입한다기보단 집에 잠자고 있는 안 쓰는 물건을 팔아 돈을 벌고, 그 돈으로 저렴한 가격의 필요한 물건을 산다. 최근 지역 기반으로 물건을 사고팔 수 있는 당근마켓이 큰 인기를 끌면서 중고거래는 하나의 새로운 놀이문화가 됐다. 희소성을 가진 한정판 운동화나 구하기 힘든 명품 의류나 가방을 거래하며 신상이 아닌, N차 신상이라는 용어를 만들어 냈다. 뿐만 아니라 취향이 유사한 사람들끼리 모여 이야기를 나누거나 제품의 사용법을 공유한다. 단순히 가격만 보고 사고파는 것이 아닌 공감대를 형성하며 취향을 나누는 모이는 모임이 성행하고 있다.코로나19는 글로벌 색채전문기업인 팬톤(PANTONE)의 올해의 컬러에도 영향을 미쳤다. 매년 12월 올해의 컬러를 선정하는 팬톤(PANTONE)은 다양한 분야의 디자인에 영감을 주며, 한 해의 컬러 트렌드를 이끌고 있다. 지난 10일 발표한 2021년의 컬러를 대표하는 두 가지 색상은 일루미네이팅(Illuminating)과 얼티밋 그레이(Ultimate Gray)다. 밝은 노란빛으로 보이는 일루미네이팅은 따뜻한 햇살을 떠올리게 하며 긍정, 낙관을 의미를 담고 있다. 다소 차분한 회색빛의 얼티밋 그레이는 풍화를 견디는 해변의 자갈 같은 회색으로 견고함과 회복을 의미한다. 팬톤은 위 색상을 코로나19로 불확실하고 우울했던 한 해를 격려하고 극복해 나가자는 메시지를 담았다고 말했다.윤여진 2018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 부문에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현재보다 미래가 기대되는 젊은 작가.일루미네이팅과 얼티밋 그레이 색상이 재미있는 것은 두 가지 색상은 빛과 그림자처럼 상반되는 색을 띠었다는 점이다. 로리 프레스만 부사장과 레트리스 아이즈만 전무 이사는 “코로나19로 거리를 둬야 했지만 동시에 서로가 필요함을 체감한 한 해를 보냈다”고 말하며, 두 가지의 색상을 올해의 컬러로 지정한 이유에서는 ‘강인하고 희망찬 두 컬러의 화합을 통해 우리에게 극복할 수 있는 희망의 메시지를 줄 수 있을 것’이라는 의미로 위 컬러를 선정했다고 말했다.코로나19로 인해 내가 지향하는 삶의 방향성은 간략하고 분명해졌다. 화장품이나 옷을 사는 대신 꼭 필요한 것들로만 내 안을 채우는 소비 습관을 지니는 것은 물론 필요 없는 물건이나 관계마저 정리하게 되었다. 혼란의 폭풍 속에서 한 발짝 멀어져 휘청거리던 나를 다시금 바로 세우는 일은 많은 죄책감을 갖게 했지만 어떠한 용기가 생겼다. 타인을 멀리하고, 그러다 쉽게 배제도 되었지만 역설적이게도 거리두기의 시간은 사람의 정과 온기를 그리워하게 했다.그럼에도 늘 세계는 혐오와 증오로 점철되어 있고, 나 또한 어느 순간에는 나만이 아는 무지의 동굴로 빠져들지만 그런데도, 정말 그럼에도 불구하고 뒤돌아보게 되는 것이 있다. 그것이 무척 이기적이고 무모하고 난해하더라도 동굴 속의 빛을 쫓듯 아직 오지 않은 시간의 희망을 바라고 믿어보는 것이다.

2020-12-22

성공한 이들의 TV, 그리고 미란이

코로나19 감염자 수가 연일 세 자릿수를 기록하는 가운데 내가 살고 있는 수도권 지역의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가 2.5단계로 격상된 지 며칠이 지났다. 틈나는 대로 전시회 보는 것을 즐기고, 저녁이면 친구들과 만나 소주 한 잔 씩 나누는 것이 인생의 낙이었으나, 아무래도 외출을 삼가야 하는 시기이니만큼 나의 삶은 여러모로 달라졌다. 커다란 변화를 꼽자면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집에서 보내게 되면서 TV시청 시간이 대폭 늘었다는 것을 이야기할 수 있겠다. 이름 그대로 버라이어티한 버라이어티 쇼들을 보고 있으면 시간이 잘 간다. 그런데 요즘 TV프로그램들을 보면 과거에 느끼지 않았던 헛헛함 같은 게 느껴진다.그 헛헛함의 원인에 대해 고민하다가, 한 누리꾼이 SNS에 적어둔 짧은 글을 우연히 접하고 무릎을 탁 쳤다. “예전에는 가난하고 어렵지만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 장애도 치료해 주거나 집을 고쳐주는 방송도 있었는데, 요새는 연예인들이 방송사 돈으로 국내외 여행가고 먹고 마시거나 준재벌 3세의 수십 억대 아파트 소개하거나 가난하지 않은 연예인들 집 정리를 도와주는 방송들이 나온다. 방송들이 낯설다.”코로나 19로 경기는 점점 어려워지는데, TV속에는 언제나 성공한 사람들이 나온다. 1인 가구의 삶을 조명하겠다는 취지로 시작한 MBC의 ‘나 혼자 산다’에는 언제부터인가 강남이나 한남동 같은 곳에 수십 억대 주택에 사는 연예인들이 출연하고 있다. 처음에는 다소 협소한 빌라에 살거나 어딘가에 얹혀살던 출연진들도 모두 고가의 주택에서 생활하며, 그들의 생활을 시청하는 이들과는 전혀 다른 규모의 경제생활을 해 나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얼마 전 한 언론은 우리나라 1인가구 10가구 중 4가구에 해당하는 38%가 월세로 생활하고 있으며 1인가구의 평균 연 소득은 2116만원이라고 발표한 바 있다. 평균적인 1인가구 생활자의 시각으로 이 프로그램을 보면 출연진과 자신의 삶 사이의 간극을 필연적으로 느끼게 되고, 그로 인해 심리적 박탈감을 느끼기도 하는 것이다. 최근 ‘온앤오프’라는 프로그램으로 논란이 되어 누리꾼들로 하여금 ‘플랙스님(Flex 스님)’이라 별명을 지어 부르는 등 수많은 원성을 듣는 승려 혜민의 사례는 어쩌면 앞서 말한 것과 같은 방식으로 응집된 박탈감이 터져 나오며 일어난 현상일 수도 있다.다른 프로그램들도 마찬가지이다. 온갖 프로그램에서 연예인들의 집과 일상이 공개된다. 그들의 집과 일상은 우리의 것과 다르다. 새로이 정리된 집을 보면서 눈물을 흘리는 ‘신박한 정리’의 출연진들도 마찬가지이다. 누구나 미니멀하게 정돈된 집에서 살고 싶다. 그러나 좁아터진 원룸에서 무슨 미니멀 라이프가 가능하겠는가. 그나마 정리가 가능한 것은 그들이 살고 있는 넓은 집 덕분일 것이다. ‘슈퍼맨이 돌아왔다’에 나오는 귀여운 아기들, 그들의 부모가 돈 걱정 하는 것을 본 적이 있는가? 좁아터진 집에 발 디딜 틈 없이 늘어놓은 아기 장난감들 탓에 인테리어고 무엇이고 포기해버린 가정을 본 적이 있는가?과거의 어느 예능 프로그램에는 그런 사람들이 등장하기도 했다. MBC의 ‘느낌표’라는 프로그램의 ‘눈을 떠요’라는 예능에서는 가난을 이유로 치료를 받지 못하던 시각장애인들에게 개안수술을 해 주기도 했고, ‘일요일 일요일 밤에’의 인기코너였던 ‘신동엽의 러브 하우스’는 열악한 주거 환경 속에서도 열심히 사는 이들에게 주택 리모델링을 선물해주기도 했다. 보통의, 혹은 보통보다 조금 열악한 환경에 놓인 사람들에게 새 희망을 주는 장면 장면은 충분히 감동적이었지만 이제는 찾아볼 수 없게 되어버렸다. 부유하고 성공한 사람들만 등장하는 TV 속 세상은 국제 스포츠행사의 개최를 앞두고 거리의 부랑자들을 ‘청소’라는 명목으로 수용소에 가둬버렸던 어느 정권의 만행을 떠올리게 만든다.이것이 꼭 방송사 제작진들의 ‘잘못’이라고 할 수는 없다. 경제적 풍요만을 비추는 프로그램의 제작 배경에는 그러한 콘텐츠를 원하는 대중의 부추김이 필연적으로 존재했을 것이므로. 최근 일본에서는 만화 콘텐츠에 대한 소비 경향이 바뀌었다고 한다. 과거 ‘드래곤볼’이나 ‘슬램덩크’같은 만화는 재능은 있으나 처음부터 모든 면에서 특출나지는 않았던 주인공들이 숱한 위기와 노력을 통해 성장하고 그 세계의 최강자가 되는 모습을 그려냈다. 그런데 경기침체가 장기화되고, 청년들 사이에서 노력으로 무언가를 달성한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의식이 팽배하면서 새로운 경향의 만화 콘텐츠가 유행하게 되었다. 처음부터 주인공이 범접할 수 없을 정도로 막강한 능력을 가지고 있어서 순조롭게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먼치킨’류가 바로 그것이다. 어차피 현실이 나아지지 않는다면 차라리 아예 비현실적인 세계에 몰입함으로써 현실을 망각하려 한다는 것이다. 어쩌면 우리 대중들도 열심히 살다보면 좋은날이 올 것이라는 믿음을 언젠가부터 포기하게 되었고, (적어도 대중들의 눈으로 보기에는)애초부터 막대한 부를 갖춘 셀러브리티들의 삶 속으로 피신하고 싶어지게 된 것이 아닐까.이처럼 허탈한 생각들로 TV를 보다가 특별히 눈길이 가게 된 프로그램이 있었다. 바로 힙합 경연 프로그램인 쇼미더머니9 였다. 가장 주목받는 출연자는 아마 여성 랩퍼인 ‘미란이’일 것이다.Hey new water new vv 난 알바 째고 무대 위Yeah go get it go get it 가사 위 가난이 빛나지안 가 무한리필 살아봐야겠어 내 빌딩 Yeah개 같던 세상의 뒤통수 치러 왔지더 크게 Callin’ ma name 모두 날 보고 놀래‘미란이가 TV에’ 떼버려 Tag사 새롭게 Yeah yeah 타고 비행Skrr skrr 난 올라가 Skrr skrr 난 빛이 나내가 뭐라 했어 Mom 꺼내겠다고 포차맨 밑바닥의 소녀 엄마의 술병이 날 만들어허기져 이를 꽉 물어 Chit chat bout me 덤벼 겁쟁이 너VVS on ma neck 꿈 앞에 녹슨 팔찌 버려 문 앞에구제 벨트 아직 허리에 원망하던 과거와 춤출래-VVS 중 미란이 part.강백수세상을 깊이 있게 바라보는 싱어송라이터이자 시인. 원고지와 오선지를 넘나들며 우리 시대를 탐구 중이다.포차를 운영하는 어머니와 함께 가난 속에서 자란 소녀가 랩퍼가 되고, 쇼미더머니9에 출전해 패자부활전을 통해 겨우 살아남더니 이제는 동료 랩퍼인 머쉬베놈과 함께 꾸민 무대가 유튜브 1000만 뷰를 돌파하고, 방탄소년단을 제치고 음원차트 1위까지 쟁취해내는 모습은 드래곤볼의 손오공이나 슬램덩크의 강백호와 같은 성장형 캐릭터들의 방불케한다.그에게 열광하는 대중들이 이토록 많은 것을 보면 아직까지 우리에게는 평범한 사람들의 희망 스토리가 필요한 것 같다. 2021년에는 부디 보면서 주눅 드는 TV보다, 보면서 희망을 얻는 TV가 되길 바란다.

2020-12-15

6펜스가 필요한 세상에서 달을 보는 일

서머싯 몸의 소설 ‘달과 6펜스’의 주인공 찰스 스트릭랜드는 안정적인 중산층의 전형으로 전혀 특별할 것 없는, 그야말로 틀에 박힌 삶을 살아가는 재미없는 남자다. 그는 어느 날 돌연 직장과 가정을 떠나 파리의 뒷골목을 떠돈다. 그뿐 아니다. 제 발로 태평양의 외딴 섬을 찾아가 깊은 숲에 자리 잡고 문둥병에 걸려 장님이 된 채로 생을 마감한다.그는 왜 이런 무모한 행동을 했던가. 가슴 한구석에서 시작된 예술에 대한 열망이 걷잡을 수 없이 타올랐기 때문이다. 그는 그림을 그리고 싶었다. 그의 아내의 말대로 그림은 생활을 영위하면서도 지속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자신에게 주어진 안락과 명예를 버리고 예술을 향한 본능을 따라간 것이다.스트릭랜드가 후기 인상주의 화가 폴 고갱을 모티프로 하고 있다는 건 잘 알려진 사실이다. 물론 고갱의 삶을 있는 그대로 옮겨놓은 것은 아니다. 작가는 이야기를 더 극적으로 끌고 가기 위하여 인물의 삶을 단순화시켰고 그로 인해서 스트릭랜드는 기이하면서도 신비하고 보다 더 천재에 가까운 예술가로 포장되었다. 아마 작가는 고갱의 그림을 보았을 때 느꼈던 강렬함을 토대로 하여 가공의 인물로 만들었을 것이다.우리는 흔히 예술가를 바라볼 때 보통의 사람과는 다른 구석이 있으리라 생각한다. 스트릭랜드처럼 예술을 위해 자신을 내던질 각오가 되어 있는 사람들. 거기까지 가지 않더라도 일말의 거리낌 없이 고통을 향해 스스로 걸어 들어가는 모습이 연상된다.나는 이따금 현실감각이 없다는 말을 듣곤 한다. 창창한 나이에 소설을 쓰겠다고 나선 것부터 그렇다. 다달이 통장에 찍히는 월급은 포기한 지 오래다. 당연히 안정된 미래가 보장되어 있지도 않다. “사대 보험은? 저금은? 노후준비는? 경제적 혹독함이 얼마나 무서운 줄 모르는군.” 하는 말을 들으면 어쩐지 발끈해 나 자신을 변론하고 싶다. 하지만 별다른 대책이 없는 것은 정말 사실이라 어떤 대꾸도 못 한 채로 입을 다물고 만다.반대로 직접 만나보니 생각보다 예술가 같지 않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한다. 동글동글한 분위기에 허파에 바람 든 것처럼 잘 웃어서 오히려 상대를 당황하게 하고 만다. 냉철하고 신랄한 느낌을 기대했지만, 예상보다 고분고분한 모습에 조금 실망했다는 경우도 있다.나 자신을 스스로 예술가라고 선언하는 것이 낯부끄러운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전의 나 역시 예술가에 대한 환상을 품고 있었다. 그들은 현실에서 빗겨나 자유로운 삶을 살아가는 것은 물론이고 세상에 관해 어떤 초월적인 태도를 지니고 있으리라고 상상했다.바로 이런 것들이 예술가를 낭만화시키려는 경향이다. 이 때문에 원고료를 제대로 정산받지 못해 항의하면 세속적이라는 답을 듣던가, 예술가라면 응당 고독과 불행을 당연시 여겨야 한다는 편견이 만연했다.동시대를 살아가는 젊은 작가들은 이러한 이중적 시선에 관하여 의문을 제기한다. 또한 예술에 대한 전근대적인 인식을 벗어나기 위한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그중에도 글쓰기는 분명한 노동이며 그에 따른 대가가 있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눈에 띈다.청탁 시스템 속에서 글을 쓰는 작가들은 글이 발표되지 못하면 돈을 받지 못한다. 시간과 노력을 들여 작업한 원고가 잉여 자원으로 취급당하게 되는 것이다. 이에 자신을 ‘활자 노동자’로 칭하고 글을 파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움직임이 생겨났다. 그들의 글을 받아보고 싶은 사람들에 한하여 정기적으로 시나 소설, 에세이를 보내주는 메일링 서비스가 그러하다. 다매체 시대에 걸맞게 출판사를 통하지 않고 작가가 직접 독자를 만나는 시스템을 구축한 것이다. 미등단 작가나 지면의 기회가 적었던 신인 작가들은 다양한 플랫폼으로 자신의 작품을 세상에 선보인다. 이러한 흐름은 점점 커져 시장의 하나의 형태로 자리 잡았다.메일링 서비스는 간단하지 않다. 단순히 텍스트를 쓰는 것을 넘어서 콘텐츠를 기획하고 홍보하면서 구독자를 모집하고 발송하는 등 모든 영역을 혼자 진행하고 책임져야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형태는 노동에 가깝다. 이들은 창작물을 작업할 뿐 아니라 품이 드는 일까지 자처하고 있다. ‘6펜스’(구제도하에서의 은화) 없이는 고개를 들어 ‘달’을 바라보기는커녕 허리 통증 치료도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예술가들이 겪는 경제적인 어려움은 분명하게 존재한다. 우리는 이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전업 작가를 꿈꾸지만 정작 글쓰기만으로 현실을 살아갈 수 있는 작가는 소수에 불과하다는 것 역시 알고 있다. 생계 걱정을 하지 않으면서 작품 활동에 매진한다면 당연히 훨씬 질 높은 창작물이 탄생할 것이다. 그러나 공고한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 예술가는 영원한 비정규직 노동자일 수밖에 없다.나 역시 마찬가지다. 소설을 쓰는 것만으로는 생활할 수 없다. 돈을 벌어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이 가혹한 세상 속에서 고고하게 자기 삶을 유지한다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나는 소설을 발표하는 것 이외에도 학생들을 가르치거나 여러 영역에서 글을 써서 고료를 받는다. 그 돈으로 관리비를 내고 밥을 먹고 커피를 마시면서 소설을 쓴다. 책상 앞에 앉아 작업하는 시간을 최저시급으로 계산한다면 먹고사는데 충분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수도 없이 하면서.하지만 정말로 이것이 자본으로 치환된다면 대체 얼마여야 하는 것일까. 물론 소설만으로 돈을 벌면 좋겠지만 나는 돈을 벌기 위해서 소설을 쓰려고 마음먹은 것이 아니다. 이 작업은 절대로 값을 매길 수 없고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가치를 지닌다.그러니 이러한 물음도 가능할 수 있다. 예술을 하나의 상품으로 취급하거나 완전한 자본의 논리 안에서 포함하여 보는 일이 과연 가능한가에 대한 의문이다. 예술은 견고하게 존재하는 세계에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고 균열을 내는 일을 한다. 노동을 자본을 창출하기 위한 것이라는 개념에서 봤을 때, 예술을 단순한 노동으로 치부하기에는 무리가 있다.‘달과 6펜스’에서 스트릭랜드는 그저 천재적인 예술가로만 묘사되진 않는다. 세상의 윤리로 보면 그는 이기적이면서도 괴상한 사람이다. 비정상적인 충동에 시달려 가족을 버렸고 주변의 사람들을 고통받게 한다. 만일 당신이 훨씬 더 가난해진다면, 몸이 아프게 된다면 지금의 행동을 후회하게 될 것이라고 선언하는 이들에게 오히려 그는 의문을 던진다. 세속의 가치에 절절매는 것, 빈곤과 고통과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은 그의 일이 아니었다. 실제로 그는 스스로 가난하기를 택했다. 문둥병에 걸리게 되지만 절망에 빠지기는커녕 담담하게 받아들인다. 이 모든 일은 불행이 아니었다. 삶을 살아가는데 찾아온 하나의 사실에 불과했다.문은강 ‘춤추는 고복희와 원더랜드’로 주목받은 소설가. 2017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작가로 등단했다.이것이 스트릭랜드가 예술을 바라보는 태도다. 예술은 상품이 아니며 “더 높은 것, 아름다움과 진실을 통찰하는 것”이라며 예술의 숭고함을 중시했던 칸트도 “최고의 예술은 비즈니스”라며 예술의 상업성을 내세운 앤디 워홀도 시대를 관통하는 철학자이자 예술가였다. 이들은 인간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에 관하여 골몰했고 거기에 가 닿기 위해 노력했다. 사회적 통념이나 타인의 시선은 중요하지 않았다.예술은 시대적 상황에 순응하지 않고 불화하려는 시도이다. 이것이 바로 창조성이다. 창조를 향한 충동은 우리 모두에게 있다. ‘달과 6펜스’가 시대를 넘어 많은 이들에게 널리 읽히는 이유는 여기에 있을 것이다.세상에는 세상을 균열 내려는 이들이 더욱더 많아져야 한다. 그럴수록 사회 전체의 창조적이고 생산적인 힘은 커진다. 컴컴한 하늘에서도 기어코 별을 찾아내는 이들 덕분에 밤이 오는 것이 무섭지 않다는 생각을 한다. 동그랗고 반짝이는 것 중 꼭 하나를 선택해야만 했을 때, 동전 대신 달을 택하고자 하는 많은 이들을 응원한다.

2020-12-08

혜민 스님과 마라도나

아라파호 인디언들은 11월을 ‘모두 다 사라진 것은 아닌 달’이라고 했다. 들소 떼의 이동을 따라 유목생활을 했던 인디언들이 농사꾼처럼 추수가 끝난 11월의 들판을 보며 그런 은유를 떠올려내진 않았을 것이다.단순하게 생각해보면, 잎사귀를 떨군 나무들과 초록빛을 잃어버린 풀들, 땅에 떨어진 열매들, 금방 어두워지는 하늘 등 초겨울이 자아내는 쇠락의 분위기 속에서도 무언가 희망적인 일들을 기대하는 마음의 표현이 아닐까 싶다. 보다 상상력을 발휘해보면, 매년 11월마다 환절기 질병이 돌아 목숨을 잃는 이들이 많지 않았을까? 월동을 앞두고 부지런히 먹이를 찾는 곰이 인디언 주거지역까지 침범해 인명피해가 자주 발생했을 지도 모른다. 사람은 사라져도 그의 영혼은 바위와 구름과 강물에 남기에, 그를 기억하는 이들의 정신에 각인되기에 인디언들은 11월을 ‘모두 다 사라진 것은 아닌 달’이라고 부른 듯하다. 써놓고 보니 근사하다. 앞으로 이렇게 우길 작정이다.지난 11월, 서로 아무 관련 없는 두 사람이 세상을 떠났다. ‘세상을 뜨다’라는 말은 중의적 표현이다. 한 사람은 속세를 떠났고, 한 사람은 이승을 떠나 저세상으로 갔다. 속세를 떠난 이는 ‘라이언 봉석 주’라는 영어 이름을 지닌 ‘스타 승려’ 혜민이고, 이승을 떠난 이는 ‘축구의 신’ 디에고 마라도나다. 혜민은 부처의 가르침을 설파했고, 마라도나는 스스로 신이 되었다. 혜민을 따르는 수많은 중생들과 마라도나를 숭배하는 신흥종교 ‘마라도나교’를 떠올리면 둘 사이에 아무 접점이 없는 것만도 아니다. 두 사람 다 종교적 광휘를 입고 대중의 마음을 움직이는 멘토이자 우상이었다.혜민은 쓰는 책마다 베스트셀러가 되고, SNS에 글을 올리면 수십만 회 공유되는 ‘셀럽’이었다. 40대의 젊은 승려가 대중들로부터 이렇게 큰 주목을 받는 일은 그동안 없었다. 미국 하버드와 프린스턴에서 각각 종교학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고, 햄프셔대학교에서 교수를 지낸 이력이 ‘스펙’에 열광하는 한국인들의 관심을 끌었다. 그 스펙을 내려놓고 돌연 출가해 승려가 된 ‘무소유’의 삶이 한 편의 드라마처럼 소개되어 사람들을 더욱 매료시켰다. 온갖 방송 출연과 대중 강연으로 친근한 이미지를 얻으면서 그는 ‘국민 멘토’로 각광받았다. 무소유, 비움, 내려놓기, 멈추기 등 욕심에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이 곧 부처의 가르침이라고 설파했다.그런데 얼마 전 ‘무소유’가 ‘풀(full)소유’임이 탄로 나면서 큰 비판을 받았다. 현각스님은 ‘기생충’, ‘도둑놈’, ‘연예인’, ‘사업가’ 등 원색적인 비난을 퍼붓기까지 했다. 발단은 혜민이 한 방송에 출연해 남산이 한 눈에 보이는 고급 대저택에서의 ‘럭셔리 라이프’를 소개한 것이었다. 호화주택에서 명상 어플리케이션 홍보와 유튜브 구독자 늘리기에 매진하는 일상은 참선이나 수행과는 거리가 멀어보였다. 무욕의 형식으로 물욕을 추구해온 라이언 봉석 주의 민낯에 대중들은 실망과 분노를 토했다. 결국 혜민은 SNS에 참회의 글을 올리고 모든 활동을 중단했다. 속세를 떠난 척 세속도시의 즐거움을 만끽하다가 된통 걸려 자의반 타의반 정말로 속세를 떠났다. 미련이 크게 남을 것이다.마라도나는 ‘축구의 신’이다. 1986년 멕시코 월드컵 잉글랜드와의 8강전에서 핸들링 파울을 헤딩으로 교묘히 위장해 골을 넣은 후 ‘반은 신의 손이 넣었다’고 말하면서 신화의 플롯이 짜이기 시작했다. 논란의 득점 바로 5분 뒤, 70미터를 드리블하면서 잉글랜드 수비수 6명을 제치고 넣은 추가골은 월드컵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골로 회자된다.그는 혼자서 아르헨티나를 월드컵 우승으로 이끈 후 이탈리아 프로축구에 진출해 만년 하위팀 나폴리에게 리그 우승컵과 UEFA(지금의 챔피언스리그) 우승컵을 안겼다.그렇게 부에노스아이레스와 나폴리에서 신이 되었다. 상징적 표현이 아니라 진짜 신으로 추앙받았다.하지만 늘 ‘악동’이라는 오명이 따라다녔다. 찬란한 영광은 마약, 술, 금지약물, 폭력, 탈세로 얼룩졌다. 현역에서 은퇴한 후 지도자로 처참히 실패했다. 온갖 궤변과 기행을 일삼아 눈총을 받기도 했다. 그는 죄를 짓고 패배하는 신, 마치 아즈텍인들이 숭배하던 케찰코아틀 같았다. 폭음, 폭식, 흡연 등 무절제한 생활은 병을 키워, 최근 뇌수술을 받은 후 심장마비로 쓰러져선 끝내 일어나지 못했다.속세를 떠난 것과 실제 죽음은 만져지는 부재의 질감이 서로 다르다. 당연히 후자가 훨씬 두텁고 짙고 무겁다. 그러므로 둘을 나란히 두고 비교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아니다. 안 될 것도 없다. 죽은 사람은 그를 기억하는 이들이 있는 한 언제까지나 ‘부재하는 현존, 현존하는 부재’(김현)이기 때문이다. 잠시 종적을 감춘 것이든 영영 사라진 것이든 세상에 영향을 끼친 이들의 부재는 완전한 사라짐이 될 수 없다. 그들이 남긴 것들에 대해 생각해봐야 한다.혜민이 남긴 것은 실망감과 배신감이다. 앞뒤가 다른 위선에 대중들은 분노했다. 이 분노는 결국 ‘이미지’가 허상이라는 데서부터 발생한 것이다. 겉을 포장해 사람들을 현혹하는 ‘가짜’들은 혜민 말고도 넘쳐난다. 직접 요리하는 대신 인스턴트를 사 먹는 현대인들은 생각도 남이 대신 해주길 바라고, 마음도 남이 가꿔주길 바란다. ‘내가 의지하고 마음을 맡겼던 멘토가 사기꾼이었다니’라는 허탈감은 스스로 생각하는 능력과 마음을 다잡는 지혜를 잃어버린 대중들 자신이 초래한 것이다. 혜민도 남들처럼 부와 명예를 좇은 지극히 평범한 인간이었을 뿐이다. 더 영악한 가짜들은 본모습을 들키지 않는다. 세속의 가치, 즉 ‘인간’을 내려놓으라고 하면서 끝내 인간을 벗지 못한 혜민은 그렇게 인간 세상을 떠났다. 그가 설파했던 부처의 가르침과 멘토로서 사람들에게 준 감명, 그의 선한 이미지는 모두 사라져도 곳간에 쌓은 물질적 풍요는 다 사라지지 않을 테니, 꽤 남는 장사였는지도 모른다.이병철 문학평론가이자 시인. 낚시와 야구 등 활동적인 스포츠도 좋아하며,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마라도나가 남긴 것은 스포츠의 감동과 환희, 열정, 꿈 그리고 희망이다. 물론 나쁜 짓도 많이 했다. 탐욕이라면 혜민은 상대도 되지 않는다. 평생 돈과 명예에 집착하며 코카인과 금지약물과 쿠바산 시가와 색욕을 즐겼으니 불가의 표현으로 ‘마귀’라 할 만하다. 하지만 그의 죽음 앞에 전 세계가 슬퍼하는 것은 그가 인류에 남긴 위대한 유산들이 개인 생의 과오를 덮고도 남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위선자가 아니었다. 인간 욕망에 솔직하고 충실했다. 그러면서 인간을 초월했다. 혜민이 만인을 위하는 척 자신만을 배불린 데 비해 마라도나는 오직 자기 앞의 싸움인 축구에 육체와 영혼을 다 던져서 전 세계인들에게 감동과 영감을 주었다. 한 사람의 쾌락적 인간으로는 타락했지만 축구 선수로는 어린이들에게 용기를 주고 롤모델이 되었다. 그는 늘 사회적 약자의 편에 서고자 했다. 미국과 유럽의 제국주의에 저항하면서 중남미의 혁명가들과 친분을 쌓았다. 자선 축구경기를 열어 수익금을 교황청에 기부하기도 했다. 마라도나의 육체는 모두 사라져도 그가 보여준 열정과 집념, 조국과 민중에 대한 사랑은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혜민과 마라도나, 두 ‘떠남’을 보면서 엉뚱하게도 나는 인문학 회의론자, 마음 불신자가 될 것만 같다. 마음은 교활하고 육체는 정직하다. 마음은 여러 개로 갈라질 수 있지만 육체는 오직 하나 뿐이다. 말과 지식이라는 것이 얼마나 쉽게 사람의 마음을 속일 수 있는지, 진짜는 사라지고 가짜만 횡행하는 지식인 사회와 종교계가 좀스럽게 보이기 시작했다. 진짜가 아니면 살아남을 수 없는 스포츠 세계야말로 정토(淨土)가 아닐까. 그 어떤 사상가, 대문호, 종교지도자보다 나는 무하마드 알리, 마라도나, 마이클 조던이 더 위대하다고 믿는다. 니체가 말한 초인은 돈과 명예를 좇아 욕망 안에 갇히는 바보가 아니라 매 순간의 한계를 이겨내며 마침내 육체를 초월하는 운동선수들, 또 가난과 소외를 내내 견디며 지금껏 세상에 없던 것을 창조하려는 이름 없는 예술가들이다. 그들은 지극히 인간이지만 때로 인간을 뛰어넘는다. 그렇게 인간에서 자유롭다. 아, 혜민이 사라져도 우리에겐 흥민이 있다. 마라도나만큼 위대해질 것이다.

2020-12-01

스마트폰 없는 주말

현대인들은 하루 중 어떤 물건과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낼까?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나는 스마트폰으로 많은 시간을 보낸다. 일단 아침에 눈을 뜨면 스마트폰을 찾아 시간을 확인한다. 밤새 확인하지 못 한 문자나 메일을 보며 답장을 한 뒤, 포털 사이트 어플에 들어가 실시간 검색어를 클릭한다. 이동하거나 짬짬이 시간이 날 땐 습관적으로 SNS에 들어간다. 지인의 사진에 ‘좋아요’를 클릭하고 인기 게시글을 빠르게 훑는다. 어느 때엔 이미 본 것이라도 또 본다.하루를 마무리하는 시간엔 독서등 하나만 켜둔 채 침대에서 넷플릭스 드라마를 보는 걸 좋아한다. 그러나 많은 이들의 추천으로 보기 시작한 드라마가 취향에 맞지 않을 때나 삼십 분이나 걸려 클릭한 영상이 오 분도 못 가서 종료 버튼을 누르고 마는 순간엔 길을 잃은 사람처럼 난감하다. ‘내 황금 같은 쉬는 시간을 삼십 분이나 소비했는데! 어서 더 재미있는 걸 보여줘!’ 답답한 마음에 아무거나 눌러보지만 어느 것 하나 만족하지 못 하고 힘만 빠지게 된다.인터넷 세계는 한 번도 가보지 못 한 이국적인 거리를 보여주고 다양한 언어를 들려준다. 손가락 터치 몇 번만으로도 새로운 지식과 정보를 습득하고 아이디어를 얻는다.문제는 많은 이들이 스마트폰이 없을 때 불안을 느끼는 ‘스마트폰 중독’에 걸린다는 것이다. 디지털 세계에 중독되어 지나친 시간을 소비하는 탓에 일상생활에 지장이 생기는 경우가 크다. 기억력과 집중력 저하, 거북목, 손목 통증 등 다양한 몸의 문제를 불러일으키기도 한다.한국과학기술개발원에서 진행한 설문 결과 우리나라에서 스마트폰 중독군에 속하는 사람은 39.8%, 위험군에 속한 사람은 19.5%로 상당수가 이미 스마트폰 중독에 해당한다고 한다.그러나 자신이 중독인지 아닌지 묻는 문항에서는 단 1퍼센트만이 스스로를 스마트폰 중독이라고 답했다. 이처럼 스마트폰 중독은 자신이 중독인지 의식조차 할 수 없다는 문제점도 있다.나 또한 중독을 안고 있는 건 아닌지 의심이 되자 디지털 디톡스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디지털 디톡스란 디지털(digital)과 ‘독을 해소하다’라는 뜻을 가진 디톡스(detox)를 결합한 용어로, 디지털 기기 사용을 잠시 중단하고 휴식을 통해 몸과 마음을 회복시키는 것을 의미한다.디지털 디톡스엔 몇 가지 방법이 있다. 가장 쉽게 해볼 수 있는 건 휴대폰 사용 시간을 정하는 것이다. 주 업무 외에 인터넷 서핑 시간을 제한하여 정하거나, 자기 전 휴대폰을 침대에 가지고 가지 않겠다는 스스로의 약속을 해볼 수 있다. 정기적으로 계속 울리는 어플의 각종 알람을 끄거나 필요 없는 어플을 삭제하는 방법도 있다. 스마트폰을 쓰지 않는 시간에는 집중력을 요구하지 않는 멍 때리기나 단순 취미 활동, 산책을 통해 질 좋은 휴식을 취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디지털 디톡스를 돕는 각종 어플도 있다. ‘스테이프리(StayFree)’는 원하는 시간만큼 핸드폰 사용을 제한하고 사용 시간과 사용 빈도를 상세히 알려준다. ‘타임스프레드’는 스마트폰을 쓰지 않는 15분마다 1캐시씩 적립된다. 캐시를 모아 아이스크림이나 음료 등 원하는 물건으로 교환할 수 있다.‘스라밸’은 부모와 자녀가 함께 스마트폰의 사용 시간을 제한하도록 돕는다. 스마트폰 잠금 뿐만 아니라, 자녀의 스마트폰 사용 시간을 공유하고, 데이터 사용량을 확인할 수도 있다.‘Forest: 집중하기’는 숲에 씨앗 하나를 심는 것으로 시작한다. 스마트폰을 쓰지 않을 때 씨앗이 자라 나무가 된다.하루에 한 그루씩 나무를 만들어 숲이 되는 성취감을 느낄 수 있으며 전 세계 사용자와 자신의 숲을 공유할 수도 있다. 프리미엄 버전을 따로 구매했을 때 아프리카에 실제 나무를 한 그루씩 심을 수도 있다.디지털을 사용할 수 없는 새로운 여행지도 주목받고 있다. 강원도 홍천의 ‘힐리언스선마을’은 휴대폰 통신망이 잡히지 않는 곳에 위치해, 마을에 들어섬과 동시에 디지털 기기를 사용할 수 없다. 잣나무 숲길 걷기와 명상을 할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되어 있고, 이곳에서 제공되는 모든 음식이 저염식으로 구성되어 있어 신체 디톡스 또한 진행할 수 있다.경상북도 영주에 위치한 ‘국립산림치유원’은 숲의 다양한 환경요소를 활용하여 인체의 면역력을 높이고 신체와 정신 건강을 회복시키는 산림치유 프로그램을 운영한다.이곳은 TV가 설치되어 있지 않고 와이파이 또한 쓸 수 없다. 디지털과 단절된 채 오롯이 홀로 숲속을 걷거나 휴식하며 규칙적인 생활 리듬을 회복한다.윤여진 2018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 부문에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현재보다 미래가 기대되는 젊은 작가.사실 장시간 손에 쥐고 있었던 스마트폰을 갑자기 내려놓기란 어려운 일이다. 나는 자주 사용하던 앱을 화면 안에서 따로 분리하여 정리한 뒤, 하루에 십 분에서 십오 분씩만 사용할 수 있도록 스스로 제한했다. 종이책을 읽는 것과 종이에 메모를 하는 습관을 들이려 노력했고, 스마트폰을 쓰지 않는 시간에는 집안일이나 취미 같은 단순하고 가벼운 일에 관심을 쏟기 시작했다.스마트폰 사용을 제한하면서 혼자 생각에 잠기는 시간이 많아졌다. 그간 일과를 파악하기 위해서 휴대폰 속 달력과 메모장을 번갈아 열어 보았다면, 이제는 멍하니 생각하는 시간 속에서 일과나 약속을 정리한다.그러면서 어린아이와 눈이 마주칠 때에는 용기 내어 손을 흔들어 보기도 하고, 노선을 묻는 이에겐 길을 가르쳐 주기도 한다. 어르신께 지하철 자리를 내어드리면 내 짐을 자신의 무릎 위에 올려두겠다는 고마운 말도 받는다. 평소엔 스마트폰만 붙잡고 있을 두 손이 조금 쓸모 있게 부지런해졌다.가을이 지나간다. 지금 사는 집은 창이 무척 커서 울긋불긋 물든 나무를 내려다보는 일이 즐겁다. 스마트폰이 없는 주말엔 창문에 붙어서 글도 쓰고, 일도 하고, 커피도 마시고 그간 미뤄두었던 고민도 한다. 좋아하는 길을 산책할 땐 가을이 끝나간다는 아쉬움 때문인지 눈으로 천천히 풍경을 뜯어보고 손으로 만져보고 계절의 냄새도 맡아본다. 카메라를 꺼내는 대신 내 옆에 있는 사람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이 좋은 순간을 기억하려고 “또 오자”는 말을 또박또박 건넨다.디지털을 스스로 제한했을 때, 그렇게 스스로 필요한 때에 맞춰 조절할 수 있을 때에 자신이 일과 쉼의 경계 중 어느 부분에 위치해 있는지 파악할 수 있다.스스로 일상의 균형을 재어보며 정작 놓치고 있는 건 무엇인지, 내게 현재 어떤 게 중요한 지 정리해 볼 수도 있다. 비록 스마트폰이 없는 일상은 고요하고 심심하지만 잔잔히 오래 이어지는 소소한 기쁨은 무척 크다. 주말 하루 만큼은 스마트폰을 멀리 두면서, 올해의 가을을 천천히 잘 보내줄 것이다.

2020-11-24

고양이와 함께 사는 세상

아침 최저기온이 어느 새 0도 아래로 떨어지고 있다. 겨울이 온 것이다. 겨울은 누군가에게는 첫눈과 크리스마스, 그리고 신년의 설렘을 가득 담은 즐거운 계절일 수 있겠으나 우리 주변의 어떤 이웃들에게는 가혹한 계절일 수 있다. 전국적으로 100만 정도가 살고 있다는 이들은 우리와 같은 공간을 삶의 터전으로 삼고 있다. 겨우내 기갈과 추위와 싸워야 할 이 이웃들의 이름은 바로 길고양이이다. 길고양이는 집고양이와 대비되는 말이지만 사실 대부분의 길고양이가 애초에 집고양이였거나 그들의 번식을 통해 태어난 고양이들임을 감안한다면 이를 구분하는 기준은 단지 현재 그들이 어디에 머물고 있는가일 뿐이다.길고양이들을 일컫는 말로 ‘도둑고양이’가 있었으나 이는 부정적인 이미지가 덧 씌워진 말이므로 이제는 권장되지 않는다. 사실 도둑고양이라는 말도 도둑질이라는 범죄와 관련된 말이 아니라 조심조심 움직이며 사람들의 시야를 피해가는 모습에서 유래된 것일 텐데, 이는 다시 말해 인간의 영역을 거의 침범하지 않는다는 것과 같은 의미일 것이다. 길고양이가 인간에게 주는 피해는 아주 자잘하다. 먹이를 찾기 위해 음식물 쓰레기 봉지를 찢어놓고, 발정기에 다소 신경 쓰일만 한 울음소리를 내는 정도. 그마저도 적절한 먹이주기와 중성화수술을 통해 교정할 수 있다. 그들은 인간을 먼저 공격하지도 않고 보행로를 배설물로 더럽히지도 않는다. 도둑이라는 별명을 붙이기에는 그들은 너무 무고하다.얼마 전 방영된 다큐멘터리 SBS 스페셜 ‘길고양이K’는 이름 없이 살다 가는 길고양이들의 생태를 집중 조명했다. 해당 프로그램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고양이들은 다른 나라의 고양이들에 비해 인간에 대한 경계심이 심하다고 한다. 인간으로부터 받은 상처가 더 많다는 것이다.실제로 수많은 길고양이 학대사건이 전국 각지에서 벌어져왔다. 사제 총으로 쇠못을 발사해 고양이들을 사냥한 사건이나 쥐약이 든 먹이로 고양이를 학살한 사건은 실로 충격을 금할 수 없게 만들었다. 꼭 그 정도 수준이 아니더라도 일상적으로 가하는 고양이들에 대한 위협과, 부정적인 인식들은 그렇지 않아도 고달픈 길고양이들의 삶을 더욱 힘들게 만든다. 다큐멘터리에 의하면 길고양이들은 수명이 15년에 이르는 집고양이와 달리 평균적으로 3∼4년 밖에 살지 못한다고 한다. 그리고 새끼 고양이가 성체까지 자랄 확률은 불과 30% 정도라고 한다. 길고양이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자연스럽게 길고양이의 개체수가 조정되도록 하는 방법이다.2008년부터 서울시는 ‘길고양이 중성화 사업’을 시행중이다. 길고양이들을 포획하고 중성화 수술을 마친 뒤 다시 거리로 돌려보내는 사업이다. 2017년까지 약 6만5천여 마리가 중성화 수술을 받았고, 그 결과 25만 마리였던 서울의 길고양이들은 13만 9천 마리 정도로 급격히 감소했다. 굳이 나서서 고양이들을 내쫓으려 애쓰지 않아도 고양이의 개체수는 빠른 속도로 줄어들 전망이다.우리가 길고양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고양이를 사지 않는 일이다. 도시의 많은 길고양이들은 반려동물로서 키워지다가 주인의 책임감 부족으로 방사되어 야생화 된 경우들과 그들이 번식한 경우들이다. 섣부르게 고양이를 들일 것이 아니라 충분한 고민의 시간을 갖고 여러 변수들을 고려한 다음 반려묘를 맞이해야 할 것이다. 더 이상의 유기묘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고양이의 개체수를 조절하는 것보다 시급한 일일 것이다.그리고 반려묘를 맞이하는 과정에서는 가급적 구매의 방법보다는 입양의 방법을 선택할 것을 권장한다. 품종묘를 구매하는 일은 품종묘의 무분별한 생산을 부추기는 일이 된다. 반면 길고양이를 입양하는 것은 길고양이의 개체수를 줄이는 일이니 길고양이로 인한 갈등을 완화하는 데 도움이 된다. 내게도 입양을 통해 가족이 된 고양이가 한 마리 있다. 고양이 한 마리가 입양되는 과정을 알리기 위해 나와 나의 고양이가 만나게 된 과정을 밝히고자 한다.내 반려묘의 이름은 ‘삼봉이’. 좋아하는 대하드라마 ‘정도전’에 나오는 삼봉 정도전 선생의 호에서 이름을 땄다. 재작년 이맘때쯤부터 나와 함께 살게 되었다. 사실 고양이를 집에 들이고 싶다고 생각했던 것은 그보다도 1년 전 정도였다. 꿈속에서 귀여운 고양이를 만나고 처음 고양이를 들이고 싶다는 생각이 들던 날, 나는 그날부터 1년을 고민의 기간으로 정했다. 한 번 고양이를 들이면 적어도 10년은 함께 지낼 텐데, 10년간의 책임감을 위해서 그 정도의 고민 기간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1년이 지나서도 고양이를 들이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 그때 고양이를 들이기로 마음먹었다.고민의 기간 동안 나는 유튜브를 통해 ‘고양이를 기르면 안 좋은 점’, ‘당신이 고양이를 키우면 안 되는 이유’와 같은 영상들을 찾아보며 반려묘와 함께 지내며 겪게 될 어려운 점들을 학습했다.강백수세상을 깊이 있게 바라보는 싱어송라이터이자 시인. 원고지와 오선지를 넘나들며 우리 시대를 탐구 중이다.1년의 고민 기간을 채우고서야 나는 입양할 고양이를 찾아보기 시작했다. 유기견 유기묘 입양 어플인 ‘포인핸드’를 통해서 수많은 고양이 사진을 찾아보다가 한 마리가 눈에 들어왔다. 동물 보호 단체인 ‘동물과 함께 행복한 세상’이라는 단체에서 구조하여 한 회원이 임시 보호를 하고 있던 아이였다. 서울에 있는 폐장된 놀이공원인 ‘용마랜드’에서 구조되어 ‘용마’라 이름 붙여진 아이였다.내가 꿈에서 만난 녀석과 비슷하게 생긴 치즈 빛깔 녀석을 입양하기 위해 신청서를 적었다. 입양 신청서에는 입양 올 동물이 편안하고 안락한 환경과 음식, 의료적 뒷받침을 제공할 수 있는지, 또는 동물을 악용하거나 유기할 사람은 아닌지를 판단하기 위한 문항들이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마지막 절차로 보호 단체의 운영진이 우리 집에 방문해 고양이가 자랄 환경을 체크한 뒤, 고양이의 중성화를 위한 보증금을 납부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비로소 용마랜드에 살던 길고양이 한 마리는 우리 집 고양이 삼봉이가 될 수 있었다. 이처럼 값비싼 돈을 주고 품종묘를 사는 대신, 품종묘 못지않게 예쁘고, 오히려 품종묘보다 건강한 유기묘를 입양하는 문화가 확산되면 확산될수록 길고양이 문제는 빠르게 해소될 것이다.유기묘의 구조와 입양에 힘쓰는 분들에게 경제적 후원을 하는 것도 길고양이 문제의 해결을 위한 방법이 될 수 있다. 우리 주변에는 이를 위한 비영리 단체들이 아주 많이 있다. 이러한 적극적인 방법이 아니더라도 우리 주변의 길고양이들을 조금 너그럽고 친절한 태도로 대하는 노력도 필요하다.길 가는 고양이를 위협한다거나 먹이를 얻어먹으러 오는 고양이를 학대하는 등의 행위를 하지 않는 것. 추운 날 혹시 자동차 밑이나 안에 들어있을지도 모르는 고양이를 위해 보닛을 몇 번 두드려주는 친절, 허기지고 목마른 고양이에게 길고양이 급식소를 제공하는 방법을 고민하는 일, 길고양이 중성화 사업에 사용되는 노력을 아깝다고 여기지 않는 마음, 우리가 살고 있는 땅의 주인이 우리만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조금 더 따뜻한 마음으로 길고양이들과의 공존을 모색하는 것. 겨울은 그런 것들이 필요한 계절이다.

2020-11-17

필요한 건 당신 근처에

빈티지 물건을 좋아한다. 공장에서 생산된 각 잡힌 새 상품보다 사람의 손을 타고 구겨진 것들에 더 매력을 느낀다. 연식이 오래된 물건을 만나면 너는 이 험한 세상에서 어떻게 지금까지 살아남았니, 하고 질문하고 싶어진다. 누군가 사용했던 물건이 시공간을 타고 이리저리 흘러 내 앞에 나타나는 일. 그건 일종의 운명적 만남처럼 느껴지기도 한다.스무 살 무렵에는 광장시장이며 동묘를 습관처럼 방문했고, 해외여행을 계획할 때면 벼룩시장에 들르는 코스도 빼놓지 않았다. 그곳에는 별별 것들이 다 있었다. 다양한 물건들은 편안하고 익숙한 감각과 함께 자신을 알아봐 줄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렇게 멀쩡한 것들이 버려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 조금 슬프기도 했다. 끊임없이 새로운 상품이 태어나는 세계 속에서 오래된 물건만이 가지고 있는 분명한 매력이 있다고. 어쩌면 나 역시도 그런 존재가 아닐까 하는 감상에 빠지면서.중고물품을 피하는 사람 중에서는 모르는 이가 썼던 물건이라는 것에 거부감을 가지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이게 만약 평생을 불운하게 살았던 사람의 접시면? 죽기 전에 입었던 코트면? 하지만 그런 것쯤은 내게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어차피 인생에는 행운보다 불운이 더 자주 찾아오고 사람은 언젠가 죽기 마련이니. 나는 중고서적을 자주 구입하는 편이다. 뻣뻣한 종이의 질감보다 누렇게 변색하여 버석버석한 느낌이 더 좋다. 떠오르는 생각을 적고 밑줄을 그어가며 읽는 습관이 있기 때문에 새 책은 부담스럽게 느껴지기도 한다. 책을 읽다 문득 발견하게 되는 낙서도 어떤 설렘을 몰고 온다. 책장 귀퉁이의 고불고불한 글씨를 마주하며 손끝이 맞닿은 이의 막연한 얼굴을 떠올리게 되는 것이다.그런 내게 ‘당근마켓’의 등장은 정말이지 반가운 소식이었다. 매일같이 온라인으로 열리는 동네 벼룩시장이라니! 그야말로 인터넷 공화국다운 면모가 아닌가.다양한 중고거래 앱이 있지만, 그중에도 당근마켓은 사람들의 폭발적인 관심으로 압도적인 존재감을 뽐낸다. 서비스 시작 5년 만에 월간 실 이용자 수 800만 명을 끌어모으며 현재 국내 중고거래 앱 중에서 독보적인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이러한 성장의 이유로는 단연 거래의 편의성과 접근성을 들 수 있다.당근마켓은 ‘당신 근처의 마켓’을 줄인 말이다. 이용자가 사는 지역에서 앱을 접속해서 GPS 인증을 받으면 가까운 이웃과 소통할 수 있게끔 되어있다. 이들끼리 중고 물품을 사고팔 수 있으며 동네 생활에 대해 잡담을 나누고 숨은 맛집이나 편의시설을 공유하는 커뮤니티 기능도 있다. 특히 당근마켓의 주목할 점은 거래의 지역을 제한하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기존의 온라인 중고 장터와의 확실한 차별성이 보인다. 집 근처의 이웃을 직접 만나서 거래하기 때문에 물건의 상태를 직접 확인할 수 있다. 이런 직거래 시스템은 중고 거래의 고질적 문제였던 사기 피해의 가능성을 현저히 낮췄다. 사용 방법도 간편하다. 가입하고 사진을 찍어서 올리면 끝이다. 그렇기에 뭐든 부담 없이 매물로 올릴 수 있다. 정말 이런 걸 산단 말이야? 하는 의구심이 들기 마련이지만, 정말 사는 사람이 있다. 그건 내가 보장할 수 있다.내가 처음으로 당근마켓에 판 물건은 머리핀이다. 머리카락을 짧게 자르고 나니 더 이상 필요가 없어진 물건이었다. 평소였다면 어느 구석에 처박아놓거나 쓰레기장에 버렸을 것이다.나는 머리핀을 깨끗하게 닦은 뒤 사진을 찍어서 당근마켓에 올렸고 몇 시간 만에 거래하자는 연락이 왔다. 근처 지하철역에서 만나자는 약속을 잡기까지도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마스크로 가려진 얼굴 사이에서도 구매자의 모습은 한눈에 들어왔다.“저 혹시 당근…?” 쭈뼛쭈뼛 다가가니 “네. 당근….” 하는 대답이 돌아왔다. 짧은 인사를 나누고 머리핀과 현금을 교환했다. 나는 그 돈으로 와인을 사서 집으로 돌아왔다. 더 이상 쓰지 않는 머리핀을 와인과 바꾸다니. 정말이지 만족스러운 교환의 경험이었다.과거의 나는 물건을 깨끗하게 쓰는 편이 아니었다. 어차피 소모품이라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이다. 질 좋고 튼튼한 상품을 사서 오랫동안 사용하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절약이었다. 하지만 중고거래를 일상화하면서부터는 자연스럽게 내가 구입한 물건을 언젠가는 다른 누군가가 다시 쓸 수도 있다는 생각으로 바뀌었다. 이것은 내 습관에도 사소한 변화를 불러왔다. 내가 완전히 물건을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누구와도 공유할 수 있다는 가치관이 정립되자 어떤 것이든 허투루 대하지 않게 되었다.누군가에겐 필요 없어진 것이 내겐 절실하게 필요할 때가 있다. 당근마켓은 필요한 물건을 구매하기에도 좋다. 중고 상품의 메리트는 역시 저렴한 가격이다. 새 상품을 사는 것보다 훨씬 적은 돈으로 필요한 것을 구입하는 이점을 누릴 수 있다. 이뿐 아니다. 거래를 하다 보면 이따금 사탕꾸러미나 ‘잘 사용하시길 바라요’ 하는 쪽지같이 달콤한 선물을 받기도 한다.그런 다정한 마음을 받으면 마음이 몽글몽글해지는 기분이다. 맞아, 우리는 근처에 살고 있던 사람들이었지, 하는 당연한 사실이 떠오른다. 멀게만 느껴졌던 이들이 성큼 가깝게 다가오게 된다.문은강 ‘춤추는 고복희와 원더랜드’로 주목받은 소설가. 2017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작가로 등단했다.무엇보다 중고 거래는 환경에 미치는 피해를 최소화하는 지속가능한 소비다. 우리는 현재 환경오염과 쓰레기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 수준에 다다르고 있는지 잘 알고 있다. 환경문제는 실생활과 동떨어진 것이 아니다. 창문을 열면 마주하는 미세먼지와 급격한 기후 변화는 인류가 지구에 발 디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경고문처럼 여겨진다. 미세플라스틱이 바다를 점령하고 해양생물이 고통스럽게 죽어가는 다큐멘터리를 보며 가슴 아파하는 와중에도 어디선가 쓰레기는 차곡차곡 쌓여가고 있다.특히 SNS는 거대한 백화점이나 마찬가지다. 인스타그램에 전시된 인플루언서의 삶의 방식이나 유명 유튜버의 ‘쇼핑하울’은 매일같이 새로운 소비를 부추긴다. ‘이 물건이 당신에게 행복을 가져다 줄 것’이라는 카피는 우리의 마음을 흔들기에 충분하다. 소비를 권장하는 사회는 소비 이후에 대해서는 절대 책임지지 않는다. 나를 설레게 했던 상품이 하루아침에 쓰레기가 되어버리는 세상 속에서 우리는 숨 쉬고 있다.실제로 당근마켓에서는 중고거래로 인해 누적 19만t에 달하는 온실가스 감소 효과를 만들었다고 밝혔다. 자원의 재순환으로 환경을 보호한 좋은 사례다. 서로가 서로의 주변에 있다는 것을 인지하며 물건을 공유하는 것. 이런 행동은 이제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 잡았다. 타인이 사용했던 상품을 단순히 ‘헌 것’으로 치부하는 것이 아닌 ‘윤리적인 것’이라고 여기는 의식으로 발전한 것이다. 이러한 시각의 변화를 토대로 우리는 더 나은 내일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환경오염의 문제가 절실하게 다가오는 요즘, 우리는 우리의 일상적 소비에 관하여 골몰해 보아야 한다. 갈수록 소비는 편리해져 간다. 손가락 하나로도 값비싼 제품을 뚝딱 결제할 수 있다. 찰나의 순간에 내 몫의 거대한 물건을 떠안게 된다. 그러니 우리는 늘 의식적으로 경계하며 소비를 부추기는 사회의 틈새를 걸어가야 한다. 내가 행하는 소비가 합당한가. 이 욕망이 정말 내 것이 맞나. 날카롭게 질문을 던져보자. 필요한 건 항상 우리 근처에 자리하고 있다는 것을 기억하면서.

2020-11-10

아이린, 이미지의 왕국에서 추방되다

아이돌그룹 레드벨벳의 멤버인 아이린(배주현)이 한 잡지사 에디터에게 폭언과 삿대질 등 ‘갑질’을 해 화제가 됐다. 갑질을 폭로한 에디터의 SNS 글이 삽시간에 퍼지며 파장을 일으켰는데, 그 글에 다른 에디터들과 스타일리스트, 백댄서 등 업계 종사자들이 ‘좋아요’를 눌러 공감을 표시했다. “나도 당했다”는 댓글들도 심심찮게 보였다. 그동안 업계에서 쉬쉬해온 게 이번에 제대로 터진 모양이다. 아이린은 사실을 인정하고 “어리석은 태도와 경솔한 언행으로 마음의 상처를 드려 진심으로 죄송하다”는 사과문을 올렸다. 갑질 피해자인 에디터를 찾아가 직접 사과도 했다. 그럼에도 아이린을 향한 대중의 분노는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티브이 화면에서는 청순하고 선한 이미지였는데 실제로는 인성이 나쁘다는 이유다.철학자 장 보드리야르는 현대 사회는 실재 사물의 세계가 아니라 자본주의 상품과 욕망이 만들어낸 가상성, 즉 시뮬라시옹의 세계라고 말했다. 그의 말마따나 현대인들은 이미지를 소비하며 살아간다. 벤츠를 타고 싶어 하는 것은 주행 성능과 승차감 때문이 아니라 ‘벤츠’라는 이미지를 갖기 위함이다. 사람들은 경기도 안양의 호화 아파트보다 서울 강남의 낡은 아파트에 살고자 한다. 집의 주거환경이라는 실체를 떠나 ‘강남’이라는 이미지가 ‘안양’을 압도하는 까닭이다. 이 가상성의 세계에서 대중들은 그동안 ‘아이돌 걸그룹계의 얼굴천재 여신 아이린’이라는 이미지만을 볼 수 있었는데, 어쩌다 이미지 뒤편에 가려진 실체를 확인하게 되면서 실망하고 분노했다. 반성하고 또 자숙하고, 봉사와 나눔을 실천하면서 성숙한 인격으로 거듭난다 하더라도 한 번 깨진 환상은 복원되기 힘들다.연예인은 사진 속 인물이다. 사진이 구겨지면 아무리 펴도 자국이 남기 마련이다. 이미지가 망가질 대로 망가진 아이린이 다시 엔터테인먼트 산업이라는 가상성, 아니 환상성의 세계로 복귀할 수 있을까?아이린의 행동은 지탄받아 마땅하지만 미성숙한 인격 문제가 오직 그녀 개인의 잘못이라고는 할 수 없다. 그래서 어떤 마음으로는 안타깝기도 하다. 아이돌 업계라는 쇼윈도의 왕국에서 ‘걸그룹계 여신’이라는 이미지를 아이린에게 입히기 위해 ‘이미지 메이킹’을 해 온 연예기획사와 방송제작자들에게 따져 묻고 싶다. 아이돌 가수들에게 춤과 노래와 외국어와 예능감을 열심히 가르치면서 이미지의 위험성에 대해서는, 그것이 얼마나 쉽게 부서질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왜 말해주지 않았느냐고. ‘스캔들에 의한 상품성 파손 주의’는 강조하면서 왜 ‘미성숙한 인격이 초래할 인생 파손 주의’는 경고하지 않았느냐고. 화면에 비치는 ‘아이린’의 매력 발산보다 화면 뒤의 인간 ‘배주현’의 내적 성숙이 훨씬 중요하다는 사실을 왜 일러주지 않았느냐고.대부분 아이돌 가수들은 10대 때 기획사에 캐스팅되어 연습생 생활을 시작한다. 회사 내 숙소에서 엄격한 감시와 통제 아래 마치 군인처럼, 운동부 선수들처럼 합숙 훈련을 받는다. 그때부터 철저히 ‘상품’으로 준비된다. 춤, 노래, 랩, 화술, 패션, 외국어를 배우고, 인터뷰 요령과 스캔들 대처법, 팬서비스 등도 연습한다. 짧게는 2~3년, 길게는 10년 이상 트레이닝을 받으면서 대부분의 시간을 기획사 안에서 보낸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학교나 사회보다 연습실이 더 익숙하고, 평범한 또래집단 친구들보다 ‘업계’ 관계자들과의 소통과 교류가 훨씬 잦다. 자아를 탐색하며 사회화 과정으로 나아가야할 청소년기에 아이돌 연습생들은 진짜 자기 대신 기획사에 의해 만들어진 가상의 ‘나’, 이미지에 불과한 시뮬라크르 복제품을 자기존재로 받아들인다.아이린도 그랬을 것이다. 무수한 유리들이 빛을 난반사하는 이미지의 궁전 속에서 거울에 비친 자기 모습이 진짜 자신인 줄 알았을 것이다. 기획사도, 방송국도 최고의 상품인 ‘걸그룹계 여신’을 계속 판매하기 위해 금지옥엽 다루듯 했을 게 뻔하다. 행여나 깨질까봐 조심조심, 방송을 앞두고 혹시라도 심기가 불편해보이면 이리저리 어르고 달래면서. 그러니 매니저도, 코디네이터도, 백댄서도, 스타일리스트도, 에디터도 다 알아서 기었을 테고, 아이린은 그들의 굴종이 자신이 마땅히 누릴 권리인 줄 착각했을 것이다. 현장 스태프들 사이에서 ‘인간’ 배주현이 어떤 평판을 얻고 있는지 모르는 채, 화면에 비친 ‘여신’ 아이린에 열광하는 팬들의 사랑이 자신을 대하는 타인들의 공통된 태도라고 오해했을 것이다.인간은 환경의 영향을 받는다. 가상 상황이라도 깊이 몰입하면 그것이 실제 상황인 줄 혼동한다. 스탠리 밀그램의 복종 실험이나 스탠퍼드대학교 감옥 실험 등이 이를 증명한다. 역할극에 집중하다가 극 속의 세계에 갇혀버리는 어린아이처럼, 어떤 아이돌 가수들은 엔터테인먼트 산업이라는 그들만의 세계에 갇힌 채 ‘진짜 세상’으로 나오는 법을 잊어버린다. 도박, 탈세, 원정 성매매 의혹 등으로 얼룩진 빅뱅의 승리가 그렇다. 마약 투여 혐의를 받은 탑, 지드래곤, 비아이 등도 마찬가지다. 이들처럼 청소년들에게 악영향을 끼치고 사회적인 물의를 빚은 연예인들도 있지만, 언론의 자극적 보도와 네티즌들의 악플로 인해 생을 저버린 설리, 구하라 같이 안타까운 경우도 있다. 유리로 지은 궁전이 깨졌을 때, 날카로운 조각들이 마음을 찔러 얼마나 아팠을까. 부서진 유리의 성에서 무사히 빠져나오는 방법을 정녕 누구도 알려주지 않았던 걸까. 그들을 키워낸 기획사와 방송국의 어른들은 ‘양육’을 끝까지 책임지지 않은 채 새로운 ‘상품’을 발굴해 대중을 매혹시킬 이미지를 입히는 데만 몰두했을 것이다.하긴 누가 누구를 훈육하겠는가. 지금 기획사 대표와 임원들 중에는 1990년대 1세대 아이돌, 2000년대 2세대 아이돌 출신들이 많은데, 그들 중 상당수가 과거 부끄러운 사건 및 사고로 사회에 파장을 일으킨 자들이다. 과거를 청산하고 성숙한 인격으로 거듭나면 좋으련만 여전히 범죄에 연루되거나 소속 가수와 직원들에게 갑질을 하는 등 그들만의 작은 왕국에 갇혀 철없는 행동을 반복한다. 그쪽 업계에는 어째선지 제대로 된 어른이 없다.방송제작자들도 마찬가지다. 오디션 프로그램의 순위를 조작해 연습생들의 꿈과 희망을 짓밟는다. ‘악마의 편집’으로 자극적인 영상만 송출해 시청률을 올리고 어린 가수들이 받을 상처는 나 몰라라 한다. 오직 잘 팔리는 이미지만을 만들어내는 데 여념 없다.이병철문학평론가이자 시인. 낚시와 야구 등 활동적인 스포츠도 좋아하며,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아이돌 가수들이 예능프로그램에 나와 자기 소속사 대표 성대모사 하는 것 좀 그만 보고 싶다. 그게 자기들한테나 재밌지, 도무지 뭐하는 짓인지 모르겠다. 한편으로는 안타깝다. 그들이 모사할 만한 모델이라고 해봤자 기껏 소속사 대표인 것이다. 하나도 재미없는데 방송 진행자, 패널들이 웃어주니까 그 웃음이 정말 자신을 향해 지어주는 천사의 미소인 줄 안다. 그토록 순진하다. 하루가 영원인 줄 알고는 부지런히 날갯짓하다 가는 하루살이처럼, 그렇게 한철 춤추다 이미지가 다 소비되면 진짜 세상으로도, ‘이미지의 왕국’으로도 가지 못한 채 허깨비처럼 과거의 환상 언저리만을 배회한다.공정함과 평등, 정치적 올바름, 공인의 성숙한 사회인식에 대한 기준이 높은 요즘 젊은 세대가 아이돌 가수의 팬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단순히 음악만 잘한다고, 연기만 잘한다고 팬들의 사랑을 받을 수 있던 시대는 지났다. 팬들이 아이돌의 이미지를 소비하며 내는 비용 안에는 그들이 인격적으로 성숙하리라는 기댓값도 포함되어 있다. 안타깝고 또 안타깝다. ‘여신’ 아이린이 ‘조현아’와 연관 검색어로 묶일 줄이야. 한 번 망가진 이미지는 회복하기 쉽지 않겠지만, 그녀가 진정성 있는 반성을 거쳐 다시 복귀를 희망할 때, 팬들이 너그러이 받아주는 것 역시 아이돌 음악 산업이라는 고립된 왕국이 현실 세계에서 괴리되지 않게 하는 소중한 노력이 될 것이다.

2020-11-03

깡 신드롬과 환불원정대를 탄생시킨, 댓글 ‘판’ 짜는 MZ세대

사회적 거리 두기의 영향으로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OTT) 플랫폼의 시장이 더욱이 급성장하고 있다. 나 또한 하루에도 적지 않은 시간을 스트리밍 플랫폼에 사용하고 있는데, ‘넷플릭스’의 시리즈물 드라마나 다큐멘터리는 이미 본 것이라도 습관적으로 틀어 놓는 편이다. 영화가 보고 싶을 땐 ‘왓챠’ 서비스를 애용하고, 연재 중인 만화를 다시 보고 싶을 땐 ‘라프텔’을 이용하고 있다.OTT 플랫폼인 ‘디즈니 플러스’는 최근 ‘그룹 스트리밍 서비스’를 공개했다. 그룹 스트리밍 서비스란 각기 다른 곳에 있는 이용자들이 같은 영상을 보며 실시간으로 댓글을 나눌 수 있는 서비스다. 가까운 지인이나 연인과 함께 장소나 시간의 구애 없이 영화와 TV쇼를 보며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실제로 한 공간에서 수다를 떠는 듯 흥미롭고 생각보다 영화의 몰입도 또한 나쁘지 않다. 최대 7명까지 시청할 수 있으며 PC나 모바일, 스마트 TV에서 사용할 수 있고, 영화의 몰입감에 방해된다면 이모티콘을 사용해 감정을 표현할 수도 있다.‘넷플릭스’와 ‘왓챠’도 그룹 스트리밍 서비스를 제공한다. ‘넷플릭스 파티’는 크롬 기반의 웹브라우저를 통해 URL을 생성하고, 공유 링크를 통해 이용자가 접속해 같은 콘텐츠를 감상할 수 있다. 채팅방에 입장한 모든 이들이 동영상을 멈추거나 돌려볼 수 있으며 실시간 채팅도 가능하다. 각자의 공간에서 함께 보는 듯한 분위기를 만들어 주어 새롭고도 안정된 시청 환경을 느낄 수 있다.‘왓챠 파티’ 또한 공유 링크를 통해 이용자들이 입장할 수 있다. 왓챠에서 제공되는 모든 콘텐츠를 왓챠 파티로 감상할 수 있어 영화 감상 모임을 꾸리거나 아이돌 영상을 찾아보는 특정 팬덤이 만나 작은 콘서트를 만들어 볼 수도 있다. 언택트 시대에 걸맞은 색다른 소통법이자 함께 콘텐츠를 공유하고 교감하며 늘 플랫폼으로 연결되어 있는 MZ세대의 소통법과도 무척 닮았다.그룹 스트리밍 서비스는 게임 영상 스트리밍 플랫폼인 ‘트위치’가 앞서 시작했다. 게이머는 스트리머(Streamer)로 불리며, 스트리머가 게임을 하면 실시간으로 시청자들은 댓글을 달며 소통에 참여한다. 게임을 이기는 조건으로 후원금을 걸거나 특정 행동을 주도하는 등 흥미 요소를 일으키고 분위기를 이끈다.댓글 달기는 혼자가 아니라 다 함께 즐기고 교류하며 MZ세대 사이에서 하나의 놀이 문화로 자리 잡았다. 콘텐츠를 그저 보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는 것이다.댓글 문화의 영향력은 상상이상으로 크다. 가수 비는 지난 2017년 미니 앨범 ‘MY LIFE愛’의 타이틀 곡 ‘깡’을 발표했다. 음원을 발표한 당시 일관성 없는 가사와 독특한 안무로 혹평을 들으며 빠르게 묻혔지만 호박진서연이란 유튜버가 1일 1깡 챌린지(하루에 한 번씩 춤을 추는 ) 동영상을 유튜브에 올린 이후에 다시금 주목받기 시작했다. 비의 춤을 자신만의 스타일대로 우스꽝스럽게 춘 것인데 의외로 이 동영상에 많은 이들이 몰렸다.그들은 오히려 역대급 혹평에 관심을 가지며 댓글을 달았고, 댓글에 대댓글을 달아 동조하며 또 하나의 재미를 만들어 냈다.비의 노래 제목인 ‘깡’에 걸맞게 ‘깡’으로 끝나는 과자 제품 광고를 찍어야 한다는 댓글에는 실제로 의견이 반영되어 과자 회사의 마케팅으로 활용됐다. 가수 비에게 제2의 전성기라 불릴 만큼 새로운 밈(meme)을 일으켰다.MZ세대는 센스 있고 재미있는 댓글을 발견하는 ‘댓글 맛집’ 영상을 찾아다닌다.올해 초 ‘숨듣명’이라는 유행어를 자주 볼 수 있었는데, 숨듣명이란 ‘숨어 듣는 명곡’이라는 뜻으로 나에게는 명곡이지만 밖에 나가 듣기에는 꺼려지는 노래를 일컫는다.주로 2010년대 발표작이며 독특한 음과 난해하고 모순적인 가사로 당시에는 주목받지 못했던 노래가 주를 이룬다. 비의 ‘깡’을 시작으로 제국의 아이들의 ‘마젤토브’, 틴탑의 ‘향수 뿌리지마’, 유키스의 ‘만만하니’ 등 발표된 당시 잠잠했던 곡들이 다시금 수면 위로 떠올랐다.해당 영상뿐만 아니라 반응이 좋은 동영상의 댓글을 모은 ‘댓글 모음’ 콘텐츠는 현재까지도 성행하고 있다.숨듣명은 유튜브 채널 ‘문명특급’에서 처음 시작되었다. ‘문명특급’은 숨듣명 콘텐츠로 MZ세대 사이에서 큰 화제를 모았다.2010년 전후 당시 괴작 취급을 받았던 가요를 재발굴해 새롭고도 신선한 콘텐츠를 이끌어 냈다는 평을 받았다.MZ세대는 2010년 전후에 즐겨 들었던 가요를 중심으로 추억 여행을 한다. 노래가 출시되었을 때의 자신의 모습을 떠올리거나 노래 가사와 얽힌 웃긴 일화를 댓글로 공유한다.여기에 B급 정서의 노랫말과 일반인은 소화하지 못 할 가수의 의상, 한때 유행이었던 패션 소품을 보는 재미를 나눈다. 그간 완벽한 발라드곡에 지친 이들이 심플한 댄스곡이나 B급 감성이 느껴지는 단순한 곡을 선호하는 것 같다는 의견도 있다.그렇게 MZ세대는 콘텐츠를 소비하며 재미있게 놀 수 있는 그들만의 ‘판’을 짠다. MBC ‘놀면 뭐하니?’의 회심작 그룹 ‘환불원정대’는 SNS의 댓글에서 시작되었다. 한 댓글인은 한 때 가요계를 대표했던 여성 가수와 현재 강한 인상으로 트렌드를 이끄는 가수를 모아 환불원정대의 데뷔를 제안했다.댓글을 본 가수 이효리의 긍정적인 반응으로 인해 엄정화, 이효리, 제시, 화사 등 4명의 가수가 빠르게 모여 그룹이 탄생했다. 환불원정대는 데뷔 과정으로 예능 프로그램을 성공적으로 이끌 뿐만 아니라 많은 이들의 관심과 주목 속에서 화려하게 데뷔했다.MZ세대는 어디에서나 그들만의 판을 다양한 콘텐츠로 이끌어 가고 있다. ‘에브리타임’은 전국 대학생의 휴대폰에 하나씩은 꼭 깔려 있는 애플리케이션이다. 대학교 시간표 스케줄을 보기 쉽게 정리할 수 있으며, 여기에 대학교 커뮤니티의 역할을 겸하고 있어 대학생들 사이에서 이용률이 매우 높다.앱을 사용하여 휴대폰 배경화면에 시간표를 띄울 수 있는 것은 물론이고 학점 계산기, 강의평 열람도 가능하다. 주로 사용하는 건 커뮤니티인데 그들만의 강의 후기를 공유하거나 취업 이야기, 편입 상담, 스터디 모집, 중고 서적 거래, 드라마 추천, 물건 나눔 등 고루 이루어진다.윤여진 2018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 부문에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현재보다 미래가 기대되는 젊은 작가.익명성이 보장되는 댓글 문화 덕분에 자신만의 경험이나 노하우 등을 빠르게 공유한다. 학교별 커뮤니티의 경우 이메일로 재학생 인증 절차를 거쳐야 하기 때문에 정보를 나누는 댓글은 신뢰도가 높다.콘텐츠를 소비하는 이들이 만드는 문화의 비중이 중요해졌다. 참신하고 독특한 문화의 새로운 방향성은 환영이지만 익명성에 기대어 차별과 혐오의 장으로 전락해서는 안 된다. 자신에게도 하지 못할 말은 아무에게도 아무 곳에서도 하지 말자. 새로운 콘텐츠를 만들어 가는 문화가 많은 이들에게 웃음을 줄 수 있는, 더 옳은 방향으로 나아가길 바란다.

2020-10-27

‘오그라들다’, 그리고 ‘진지충’이라는 말

저 산은 내게 우지마라우지마라 하고발아래 젖은 계곡 첩첩산중저 산은 내게 잊으라잊어버리라 하고내 가슴을 쓸어내리네아 그러나 한줄기바람처럼 살다 가고파이 산 저 산 눈물 구름 몰고 다니는떠도는 바람처럼저 산은 내게 내려가라내려가라 하네지친 내 어깨를 떠미네-양희은의 ‘한계령’ 중가을이 되면 나는 꼭 가수 양희은의 목소리가 떠오른다. 특히 이 노래, ‘한계령’은 가을에 세상을 떠난 우리 엄마가 가장 좋아하던 노래 중 하나여서 더욱 사무친다. 올해도 별 생각 없이 가을을 맞아 이 노래를 듣다가 문득 이 노래가 언제 나온 것인지 궁금해졌다.1985년. 이 노래를 부를 당시 양희은은 지금의 나와 같은 서른네 살이었고, 그 노래를 좋아하던 우리 엄마는 스물여섯 살이었다.정덕수 시인의 ‘한계령에서’라는 연작시로부터 영감을 얻어 하덕규가 작사, 작곡한 ‘한계령’의 주제는 인생이다. 세상의 번뇌로부터 벗어나 바람처럼 살고 싶은 마음을 노래한 곡이다. 나는 새삼 신기한 마음이 들었다. 1985년 당시에는 이와 같이 삶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담은 곡이 2030세대의 히트곡이 될 수도 있었구나.또 하루 멀어져 간다내뿜은 담배 연기처럼작기만 한 내 기억 속에무얼 채워 살고 있는지점점 더 멀어져간다머물러있는 청춘인 줄 알았는데비어가는 내 가슴 속엔더 아무것도 찾을 수 없네계절은 다시 돌아오지만 떠나간 내 사랑은 어디에내가 떠나보낸 것도 아닌데 내가 떠나온 것도 아닌데-김광석의 ‘서른 즈음에’ 중1994년 김광석의 앨범을 통해 발표된 강승원 작사, 작곡의 노래 ‘서른 즈음에’ 에도 인생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나타난다. 나의 기억을 채우는 것이 무엇인지, 어째서 내 가슴 속은 공허해지기만 하는지에 대한 의문은 삶 자체를 관통하는 철학적인 질문이다. 이토록 진지한 질문을 김광석과 강승원은 그야말로 ‘서른 즈음에’ 자신에게 던지고 있다.이러한 이야기들이 다소 비현실적으로 느껴지고 신기하기까지 한 것은 그런 진지한 대화가 나와 내 친구들 사이에서는 도통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우리는 유튜브에서 본 재미난 동영상에 대해 이야기 하고, 어느 연예인에 대해 새로 알게 된 사실에 대해 이야기 하고, 며칠 전 우연히 마주친 어여쁜 사람에 대해 이야기 한다. 새로 개봉한 영화에 대해 이야기하고, 오르기 전에 팔아버린 주식에 대해 이야기 하고, 진작에 샀어야 했을 부동산에 대해 이야기한다. 우리 나이를 관통하는 인생 자체에 대한 이야기나 사랑과 이별의 본질에 대한 이야기 같은 건 거의 해 본 적이 없다. 그래서 우리 시대의 대중가요에서도 그런 진지함은 찾아보기가 어렵다.우리는 확실히 점점 진지함으로부터 멀어지고 있다. 학부시절 과 학생회실에서 오래된 노트 수십 권을 찾았던 적이 있었다. 1980~90년대 학번 선배들이 학생회실에 방문할 때마다 적어 내려간 공동 일기장 같은 것이었다.저마다의 고민과 사상을 진지하게 장문으로 적어낸 노트는 이후 개인 홈페이지로 대체되었고, 페이스북과 트위터를 거치며 활자의 양은 점점 줄어들었다. 이제는 활자를 거의 필요로 하지 않는 SNS매체인 인스타그램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활자의 양이 줄었다는 것은 할 말이 줄었다는 것이고, 할 말이 줄어들었다는 것은 진지한 사고의 빈도가 줄었다는 이야기와 다르지 않다.우리가 진지해지는 것을 가로막는 말들이 있다. 하나는 ‘오그라든다’는 말이다. 예전에 친구와 술을 마시다 ‘오그라든다’는 말을 듣게 될까봐 삼키게 되는 말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이 표현은 2002~2003년 쯤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어느 인터넷 커뮤니티를 통해 유행하게 되었고 꾸준히 확산되어 이제는 일상 언어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원래는 어느 유머 게시물의 ‘손발이 오그라든다’라는 문장으로부터 비롯되었는데, 이후 ‘오그라든다’는 축약형이나 ‘오글오글’이라는 의태어로 매우 창피한 기분이 들었을 때, 충격과 공포를 느낄 때, 차마 눈뜨고 보지 못할 만 한 것을 보았을 때, 유치한 것을 마주할 때 사용되었다. 그러다가 이제는 누군가의 진지한 언행을 마주할 때 주로 사용되는 말이 되었다. 진지한 언행은 처음에는 어느 정도의 어색함을 동반한다. 그때 누군가 ‘어휴, 오그라들어’ 하고 말한다면 받게 될 타박에 대한 공포가 우리를 도저히 진지해질 수 없게 만드는 것이다.한 술 더 떠서 ‘진지충’이라는 표현이 있다. 웃자고 하는 말에 과도하게 진지한 반응을 보이는 사람에게 사용했던 ‘진지병’이라는 말로부터 비롯된 말이다.‘진지병’은 원래 부적절한 상황에 진지한 반응을 보이는 이들에게만 사용하던 말이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진지한 이야기를 자주 꺼내곤 하는 이를 일컬어 그 상황의 적절성을 막론하고 ‘진지충’이라 부르는 풍조가 생겼다. 여기서 ‘-충’은 명백한 혐오의 표현이다. 요즘 우리들이 진지한 분위기를 얼마나 혐오하는지를 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어째서 우리는 이처럼 진지한 대화를 혐오하게 되어버린 것일까. 추측하건대 나는 그것이 우리가 처한 경제적 상황과 관련성이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누군가는 우리 세대를 일컬어 ‘부모보다 가난한 최초의 세대’라고 했다. 그에 따른 박탈감은 우리에게 먹고 사는 문제에 대한 막대한 양의 고민을 선사했다. 그런데 생에 대한 진지한 성찰은 많은 정신적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 먹고 사는 일이 걱정인 세대에게 그런 식의 에너지 소비는 합리적이지 못한 행위일 수 있다. 진지한 대화에까지 에너지를 쏟고 싶지 않은 것 아닐까. 철학이니 인생이니 하는 이야기들을 사치스러운 것으로 여기는 것인지도 모르지.나는 우리 세대에게 제안하고 싶다. 우리 머릿속의 사전에서 ‘오그라들다’와 ‘진지충’을 삭제할 것을. 진지한 대화의 실종은 우리의 삶을 인문학적으로 피폐하게 만든다. 누구도 이 두 단어를 두려워함으로써 진지한 대화를 삼키고 마는 일이 없도록, 서로에게 건네는 진지한 대화를 반기며 귀를 기울일 것을 권하고 싶다. 삶이 아무리 각박해도 각자가 각자의 삶에 대해 어설픈 철학이나마 가질 수 있기를 희망한다.강백수세상을 깊이 있게 바라보는 싱어송라이터이자 시인. 원고지와 오선지를 넘나들며 우리 시대를 탐구 중이다.

2020-10-20

1인 가구의 탄생

가족의 형태를 초등학교 교과서를 통해 처음으로 배웠다. 그 시절 나는 굉장한 우등생이었다. 난 백 점인데 넌 몇 점이야? 시험지를 앞에 두고 좌절하는 친구를 약 올리는 것은 물론이고 선생님의 질문에 가장 먼저 손을 들고 대답하는, 그야말로 얄미운 짝꿍의 전형이었다. 아마 사회 교과를 배우는 시간이었을 것이다. 선생님은 대가족과 핵가족의 개념을 설명했다. 가족은 다 함께 모여 사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현대 사회는 급속도로 핵가족화되어 간다고. 멀쩡한 구조가 이상하게 변해가고 있다며 열변을 토하던 목소리가 생생하다.세상에는 가족 만들기를 포기하고 혼자 사는 사람도 있는데, 그건 아주 특수한 형태라는 말도 덧붙였다. 아, 혼자 사는 건 이상한 일이구나. 어린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모름지기 선생님의 말씀을 잘 들어야 한다고 배웠던 나는 백 점의 어른, 기성세대가 동그라미를 그려주는 완벽한 미래를 고대했다.굴뚝이 있는 이층집에서 다정한 남편, 올망졸망한 아이들, 애교 많은 강아지와 함께 멋진 가족을 이룰 것이라고 다짐했다. 생을 살아내는 것도 우등생답게 거뜬히 해낼 줄만 알았다.시간은 무럭무럭 흘러 정신을 차리고 보니 어느덧 나는 선생님이 그렇게나 한심하게 생각하던 혼자 사는 여자가 되어 있었다.난 이모랑 살아. 친구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넘어가면 될 것을 “왜?” 하고 질문해서 분위기를 무겁게 만들었던 경험이 있다. 나의 되물음에 친구는 우물쭈물하다가 몰라, 그냥 나는 그렇게 살아, 하고 말을 맺었다. 그가 내보이던 난처함에 어떤 의미가 담겼는지 알게 된 것은 훗날의 일이다.나는 그가 사회가 인정한 ‘정상 가족’ 안에 살고 있지 않다는 생각을 기저에 깔고 그 이유를 설명하기를 바랐다. 악의를 가진 말보다 더 날카로운 무지로 친구에게 상처를 줬다. 그 죄책감은 마음 한구석에 묵직하게 남아있다.가족의 형태는 다양하다. 이 당연한 사실을 알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나는 피를 나눈 사람들, 그러니까 조부모, 부모, 형제, 자매가 함께 사는 것만이 가족이라고 생각했다. 우리 집이 그랬고 옆집이 그랬으니까. 하지만 건너편 집의 누군가는 사돈의 팔촌과, 애인과, 햄스터와, 스마트폰이나 텔레비전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이건 결코 이상한 일이 아니다.미국 ABC 방송에서 인기리에 방영되었던 드라마 ‘모던 패밀리’는 다양한 가족의 형태를 보여준다. 각기 다른 성향을 지닌 삼 남매를 키우는 부부, 중소기업을 운영하는 백인 남자와 재혼한 라틴계 여자, 게이 커플과 그들이 베트남에서 입양한 아이, 뚜렷한 개성을 지닌 이들은 각자의 삶을 살아가면서도 묘하게 어우러지며 가족이라는 형태를 어렴풋이 만들어낸다.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영화 ‘어느 가족’에서 등장하는 가족은 사회 규범적으로 옳지 못한 행동으로 이루어진 공동체다. 이들은 이들만의 규칙을 가지고 있고 거기에서 안정과 위안을 얻는다. 우리가 그렇게도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족보’ 따위 없는 이들은 그 무엇보다 가족에게서 요구되는 이해와 사랑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렇듯 현대적 가족이 의미하는 것은 혈연으로 묶인 공동체가 한 지붕 아래에서 사는 것만이 아닐 것이다.그렇다면 홀로 살아가기를 택한 1인 가구는 어떨까. 1인 가구는 우리 사회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이들의 비율은 꾸준히 증가하여 작년에는 무려 30.2%에 다다랐다. 크게 놀라운 일은 아니다. 내 주위에도 혼자 사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예능 프로그램 ‘나 혼자 산다’에 출현하는 연예인 역시 그렇지 않은가. 이들은 홀로 산다는 것이 얼마나 유의미한지 보여주기 위해 노력한다. 맛있는 식사를 하고 운동을 하고 친구를 만나고 집을 가꾸며 충만한 하루를 보냈다고 자부한다. 불 꺼진 집으로 들어가는 것을 외로움보다는 편안함으로 받아들이며 허심탄회하게 나 자신과 마주 앉아 사색하기도 한다. 이들의 모습에 우리는 모종의 대리 만족을 느낀다.혼자의 삶을 선택하는 것이 부끄럽던 시대는 지났다. 홀로 라이프를 즐길 수 있는 상품은 시장에 즐비하게 나와 있다. 혼자 밥을 먹을 수 있게 테이블을 배치한 식당은 물론이고 1인 분량의 재료를 소분한 상품을 여러 곳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영화, 독서, 코인 노래방, 컬러링북, 다이어리 꾸미기 등 혼자 노는 방식도 무궁무진해서 집에서 보내는 24시간이 모자랄 정도다. 무엇보다 혼자여서 좋은 점은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나 나 자신과 강하고 다정한 관계를 형성하게 된다는 것이다.하지만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미디어는 물론이고 사회 전반에서는 1인 가구에 대한 무례한 언행을 서슴지 않았다. 우리는 ‘노처녀’ 혹은 ‘노총각’이 얼마나 시대착오적인 말인지에 관해 잘 알고 있다. 마치 어떤 하자가 있기 때문에 가족 제도에 편입하지 못했으며 출산과 같은 복잡한 일은 피하는 이기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다는 식이었다.물론 아직까지 이런 교묘한 시선은 남아 있어서 명절과 같이 친인척들이 모이는 날이면 “그래서 너는 결혼 언제 한다고?”와 같은 구시대적 질문을 들어야만 한다. 혼자 살 거라는 대찬 포부를 밝히면 별 이상한 소리를 다 듣겠다는 얼굴로 되묻는다. 사람이 어떻게 혼자 살 수가 있어?한집에서 함께 산다는 것은 인간이 가진 주요한 특징처럼 보이지만, 이는 인간성이라기보단 동물성에 가깝다.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에서 볼 수 있는 아프리카의 얼룩말이나 우리나라의 겨울 철새는 모두 무리를 이뤄 사는 동물이다. 이들은 다양한 이익을 얻기 위해 무리를 형성한다. 포식자의 공격을 빨리 알아차리고 먹이를 쉽게 발견할 수 있으며 안정적으로 종족 번식을 할 수 있다. 가장 원초적이고 본능적인 이유, 생존을 위함이다. 인간은 단순히 먹고사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사느냐’를 끊임없이 고민하는 존재다. 이것이 여타의 동물과 다른 지점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은 정치적 동물’이라고 말했다. 이들은 무리 생활을 넘어 한 차원 높은 형태인 가족을 형성한다. 가족 공동체는 사회로 국가로 뻗어 나간다. 언어와 이성을 가진 존재인 인간은 끊임없이 더 나은 삶을 위해 나아간다. 토론하고 설득하고 이해하며 삶의 모양을 만들어가는 건 인간의 권리 중 하나다.다양한 사람이 다양한 이유로 1인 가구가 되기를 선택한다. 그러나 비자발적으로 떠밀린 경우도 있다. 사별로 혼자 된 사람들이나 자녀와 함께 살지 않는 노인 계층이 그렇다. 또한 제도 속에 편입되고 싶지만 사회가 인정해주지 않는, 이를테면 동성 부부의 경우는 1인 가구로 분류될 수밖에 없다. 이들은 이성 부부와 다름없는 생활을 하지만 제도적 혜택을 받지 못하는 위치에 놓여 있다. 이성 커플이지만 결혼이라는 사회적 규약을 거부하고 동거 형태를 유지하는 이들 역시 1인 가구에 포함된다. 요즘에는 하우스 메이트를 구해 함께 사는 방식도 심심치 않게 보인다. 공간을 쉐어하는 목적으로 만나 각자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을 정도의 거리를 유지하며 경제적 절약을 추구하는 것이다. 개와 고양이와 같은 반려동물이나 반려 식물과 함께하는 삶도 있다.인생은 정답이 있는 시험지가 아니다. 선입견에 갇혀 타인의 삶에 빗금을 긋는 과오를 저질러선 안 된다. 또한 비자발적으로 1인 가구로 편입된 이들이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법과 제도는 시대적 흐름에 발맞춰 새로운 가족의 형태와 그를 뒷받침하는 역할에 관해 골몰해야 할 때다.문은강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영화 ‘어느 가족’은 현대적 가족의 의미를 기존과 다른 방식으로 드러냄으로써 관객들의 주목을 받았다. /(주)티캐스트

2020-10-13

아, 훈아 형!

추석 전날 낮잠 늘어지게 자다가 해질 무렵에야 마스크 쓰고 집 앞 안양천을 산책했는데, 천천히 걷던 어르신들이 갑자기 경보선수마냥 빠른 걸음으로 나를 추월하시는 게 아닌가. 무슨 일일까? 다들 마스크로 입을 가리고는 “나나”, “나오나” 중얼거렸다. 뭐라는 건지 궁금했는데, 가만 들으니 그 소리는 “나훈아”였다.어르신들은 텔레비전에서 방영해주는 나훈아 공연을 보려고 축지법까지 쓰면서 귀가를 서두른 것이었다. 아직 노래는 시작도 안 했는데, 어르신들에게 청춘을 돌려주는 나훈아의 위력에 감탄했다.나훈아 노래 한 곡 안 들어본 사람이 있을까?1966년 데뷔한 이후 60년 가까이 최정상 가수로 군림해온 ‘트로트의 전설’이다. 생긴 것도 꼭 시베리아 호랑이상이라서 ‘군림’이라는 말이 적확하다. 중학교 때부터 ‘잡초’, ‘건배’, ‘갈무리’ 같은 노래들을 따라 부르기도 했고, 짙은 눈썹, 부리부리한 눈, 큰 머리, 벌어진 어깨가 닮았다는 소리 꽤 들은 나 역시 팬의 한 사람으로서 막걸리 한 병과 동태전을 늘어놓고 텔레비전 앞에 앉았다. 공연을 보면서 후회했다. 나훈아 콘서트는 ‘모엣 샹동’ 같은 고급 샴페인을 마시며 봐야만 하는 것이었다. 현장 공연은 티켓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라던데, 방구석 1열에서 즐기는 이 디너쇼는 어쩌면 코로나가 준 선물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메뉴 구성에서 ‘가황(歌皇)’을 맞이할 준비가 다소 미흡했지만, 장면 하나 소리 하나 놓치지 않으려고 집중했다.‘대한민국 어게인 나훈아’. 공연 타이틀에서부터 급이 다른 위엄이 느껴졌다. ‘대한민국’과 자기 이름을 나란히 걸고 명절 지상파 방송에 공연을 송출할 수 있는 뮤지션은 나훈아와 조용필 둘 뿐이다. 스케일이 크고 무대연출이 화려한 나훈아의 공연은 올림픽 개회식 뺨친다더니 아니나 다를까 시작부터 커다란 여객선을 몰고 등장했다. 이래저래 마음 헛헛한 추석 전야, 기차 경적소리와 함께 “코스모스 피어 있는 정든 고향역”이 울려 퍼졌다. 고향 못 간 이들의 마음이 젖어들기 시작했다. 사전 신청제로 모집된 국내외 1000명의 관객들이 스크린과 마이크를 통해 비대면 객석을 이루었다. 언택트(untact) 시대의 진풍경이었다.아직도 근육이 탄탄하게 박힌 구릿빛 몸에 주름 없이 팽팽한 이마, 찢어진 청바지와 하얀 셔츠는 칠십이 넘은 그의 나이를 의심케 했다.고음과 저음, 단음과 장음을 자유롭게 오가며 미세한 음 하나 하나에 감정과 서사를 싣는 특유의 가창력은 변함없었다. 아니 소리가 예전보다 더 짱짱한 느낌이었다. 노래 부르면서 춤도 추고 점프도 하고 기타도 치고 북도 때렸다. ‘고향역’, ‘물레방아 도는데’, ‘홍시’, ‘무시로’, ‘18세 순이’, ‘갈무리’, ‘영영’, ‘잡초’, ‘청춘을 돌려다오’, ‘번지 없는 주막’ 등 총 30곡을 세 시간 가까이 열창했다. 트로트를 헤비메탈, 펑크록, 댄스, 가스펠, 뮤지컬 등과 결합하여 세상 어디에도 없는 ‘나훈아’라는 장르로 바꿔냈다. 대체 뭘 드시기에 저렇게 기운이 넘쳐날까, 궁금했다. 공연 끝나고 다시 안양천에 나가보니 낮에 그 아저씨 할아버지들이 모두 같은 마음으로 팔굽혀펴기와 맨손체조를 하는 것이었다.순간 최고 시청률 40퍼센트를 넘겼고, 포털 사이트 검색창과 뉴스란을 잠식했다. 대한민국이 들썩였다. 공연 후 여기저기서 “테스 형!”(나훈아 신곡 ‘테스형’에서 ‘소크라테스’를 칭하는 가사)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무대에서 그가 한 발언들은 정치권의 화두가 되었다. “세월에 끌려가지 말자”, “안 해 본 일들에 도전하자”, “의료진들이 우리의 영웅이다”, “국민이 힘이 있으면 나쁜 위정자들이 생길 수 없다” “대한민국 국민들은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국민들이다” 한 사람의 대중음악가가 코로나로 지친 온 국민을 위로하고, 계층과 세대, 남녀노소, 지역, 종교, 이념을 모두 뛰어넘어 사회 전체에 울림 있는 메시지를 전했다. 나훈아 말고 누가 또 그렇게 할 수 있을까? 그에게는 대체 대중을 휘어잡는 어떤 마력이 있는 걸까?‘나훈아’라는 신화를 떠받치는 부력은 그의 철저한 자기관리다. 몸매, 체력, 가창력, 젊은 감각을 유지하기 위한 부단한 노력과 함께 그는 대중가수로서의 상품가치, 최고의 스타만이 갖는 희소성을 지키고자 구도자와 같은 삶을 살아 왔다. 재벌가로부터 내밀한 공연 요청을 받고는 “표 사서 봐라”라고 단칼에 거절했다는 일화는 ‘나훈아’의 값은 오직 그 자신 나훈아만이 매길 수 있다는 고고한 예술가적 자존, 대중을 위해서만 기꺼이 상품이 되겠다는 대중연예인으로서의 직업의식 등 그의 철학을 함축해 보여준다. 국가가 수여한 훈장을 거부하면서 “예술가는 자유로워야 한다”고 말했는데, 권력 언저리를 기웃거리는 문화예술인들이 들으면 부끄러울 것이다.‘신비주의’로 오해 받을 만큼 사생활을 공개하지 않는 그는 스타는 밤하늘에 별로 떠 있을 때에만 존재가치가 있다는 평소 신념대로 예능 프로그램 등에 출연하는 일이 없었다. 반세기 넘도록 대중과 친밀하게 호흡해온 ‘나훈아’는 오직 노래 안에, 무대 위에만 있다. 가수는 노래로 말하는 것이 당연한데도 곡 작업을 위해 그가 두문불출할 때마다 흉측한 루머가 돌았다.그래도 그는 대응하지 않고 침묵했다. 일부 언론이 무책임하게 뜬구름을 부풀리는 사이 소문과 전혀 무관한 지중해 해변이나 중앙아시아 고원을 걸으며 낯선 풍경들로 묵은 감각과 상상력을 씻어내는 데만 몰두했다.문화예술계 거장이나 유력 정치인들이 스캔들로 평생 일궈온 명예와 경력을 잃는 일이 많은데, 온갖 루머와 “이제 끝났다”는 평가가 끈적끈적한 콜타르마냥 이름을 뒤덮을 때마다 나훈아는 극적으로, 자기를 불살라 다시 날아오르는 불새처럼 더 환한 빛과 뜨거운 열기를 뿜으며 돌아왔다. 그렇게 많은 루머로부터 공격 받았는데도 여전히 최정상에서 건재하다면,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나기도 한다는 걸 이제는 세상이 좀 알아야 하지 않을까.이질적이고 낯선 것들을 향해 열린 태도는 그의 음악이 ‘뽕짝’에 머무르지 않고 락, 클래식, 댄스, 가스펠, 리듬앤블루스, 힙합, 뮤지컬, 국악, 마당놀이 등과 결합한 새로운 장르로 다시 태어나게 했다. 타자성을 수용하는 열린 세계관은 단순히 음악적 시도에만 국한되는 게 아니라 그의 예술가적 삶 전체를 관통하는 인식소가 되었는데, 영남을 대표하는 가수인 그가 5·18 광주를 추모하기 위해 지난 1987년 ‘엄니’라는 곡을 썼다가 전두환 정권으로부터 탄압 받은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지연, 학연, 계층이라는 울타리를 쌓아 기득권을 유지해온 정치 이기주의, 지역 및 집단 이기주의가 한국 근대사를 지배해왔다면, 나훈아의 노래는 도시빈민, 고향을 떠나온 사람들, 이주노동자, 일용직 근로자, 샐러리맨, 농사꾼 등 시대의 ‘잡초’들 사이를 흐르면서도 부자, 권력자, 지도자, 교육자, 사상가라고 불리는 이들의 애창곡이 되었다. 음악은 만인에게 평등하다는 명제는 “홍시가 열리면 울 엄마가 생각이 난다”(‘홍시’)는 노래가 서울 세종문화회관과 곡성 오일장에 두루 퍼질 때, 빈부를 가리지 않고 사람들 입에서 흘러나오며 모성에 대한 그리움을 환기시킬 때 성립된다.이병철 문학평론가이자 시인. 낚시와 야구 등 활동적인 스포츠도 좋아하며,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무대 연출, 장치, 소품, 컴퓨터 그래픽, 출연진의 동선까지 무대의 모든 부분에 직접 관여했을 것이다. 한 음절마다 감정과 표정을 싣는 연기력 또한 세밀하게 준비된 것이리라. 이러한 완벽주의는 ‘나훈아’라는 상품을 구매한 관객들에게 지금껏 단 한 번도 실망을 주지 않았다.이번 공연은 ‘다시보기’ 없이 오직 단 한 번만 방영되었다. 발터 벤야민은 “예술작품이 있는 시간과 장소에서 그것이 뿜어내는 일회적인 빛”을 아우라(aura)라고 불렀는데, 현장성이 아닌, 텔레비전 화면이라는 기술복제 안에서 뿜어지는 나훈아의 빛은 아우라 그 자체였다. 변화하는 시대적 상황 속에서 변하지 않는 영원한 아름다움을 추출하는 것이 근대성이라던 보들레르의 말을 떠올리면, 나훈아는 근대 이후 대한민국 최고의 대중예술인이 틀림없다. 아우라, 가까이 있지만 멀리 있는 어떤 것의 영적인 광휘, 나훈아는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우리 곁에 있지만 저 높이, 저 멀리 있다.

2020-10-06

현재 우리에게 필요한, 가장 절실한 생략은

많은 이들이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코로나19를 두고 깊은 우울감과 무기력증을 겪고 있다. 사소한 일에도 자극을 받아 울컥하거나, 감흥을 느끼지 못하거나, 자주 체하거나 소화가 되지 않는 몸의 아픔을 느끼기도 한다. 최근 수도권 거리두기가 2.5단계로 격상되던 때에는 내면의 침잠이 한꺼번에 부서지려는 듯 휘청였다. 어서 몸을 움직여야 한다는 생각이 쫓기듯 들자 홈트레이닝을 시작하고, 새로운 취미를 찾아 나서고, 새로운 자격증 공부를 도전해보기도 했지만 모두 집 안에서 해결해야 하는 것들이었고, 쉽게 무료해졌다.‘쉼’은 어렵다. 그동안 열정이라는 이유로 욕심껏 가지고 있던 것을 하나씩 내려놓는 데에는 많은 용기와 결단이 필요하다. 쉬고 싶단 이유로 하나씩 내려놓다 보면 결국 그간 쥐고 있던 모든 걸 잃게 되는 것은 아닐까, 두려움이 들기도 한다.마음 깊은 곳에 이고 진 짐들 때문에 작은 움직임에도 방해를 받는다. 최근 유튜브를 보며 가벼운 요가 자세를 따라 하기 시작했지만 집중력이 모자라 빈번히 무너졌다. 마음처럼 따라주지 않는 몸도 문제였지만 습관처럼 따라오는 잡생각은 왜 이렇게 물리치기 어려운지. 유튜브 속 요가 선생님은 이마 위에 작은 점을 그려서, 그 점을 일정한 힘으로 응시하며 자세에 집중하라고 했지만 그 작은 점 하나도 그리기 어려워 시계를 보고, 발가락을 꼼지락거리고, 그러다 휴대폰을 쳐다보기 일쑤였다. 결국 적당한 쉼은 무엇이고, 어떻게 행해야 내 마음의 평온을 찾을 수 있을까, 고민이 시작되었다.티브이 속 ‘여름 방학’이라는 예능 프로그램을 보게 되었는데,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두 배우는 아주 느릿느릿 여유를 두고 살아가는 일상을 보여주고 있었다. 작은 시골 마을 속 오래된 집을 개조해 여행 같은 삶을 즐기는 이들은, 꼭 필요한 물건만을 그때그때 사서 쓰는 ‘미니멀 라이프(minimal-life)’의 삶을 실천하고 있었다. 미니멀 라이프란 불필요한 물건이나 일을 줄이고, 일상생활에 꼭 필요한 물건으로 살아가는 ‘단순한 생활방식’을 지향하는 것을 일컫는다.가장 적은 물건으로만 살아가는 것. 문장만 보면 쉬워 보이나 사실 주변을 잘 둘러보면, 내 몸 하나 존재하는 공간이 너무 많은 사물과 관계에 둘러싸여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여름 방학’은 떠들썩한 움직임도, 큰 사건도, 반전도 없는, 오롯이 ‘먹고 자고 살아가는’ 잔잔한 일상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직접 시장이나 마트에 들려 식자재를 고르고, 제대로 된 한 끼를 위해 오랜 시간을 들여 정성껏 만든다. 많은 시간이 들여야 하는 일을 행하고, 졸음이 몰려올 땐 잠을 잔다. 이외에도 평소 배우고 싶었던 빵 만들기 기술을 익히거나 서핑을 배워 파도 타는 모습을 보여준다. 자신이 하고 싶은 것에 몰두하는 동안 하루가 끝나면 그림으로 자신의 하루를 기록한다. 나무 책상에 앉아 색색의 연필을 들고 하루를 기록하는 일은 시청자들로 하여금 더듬더듬 과거를 돌아보게 만들고, 고민 없이 지냈던 어느 평온한 나날을 자연스레 떠올려보게끔 한다.최근 많은 예능 프로그램은 코로나 시대에 발맞춰 ‘언택트(untact) 예능’을 택하고 있다. 사람들과의 대면 접촉을 최소화하기 위해 작은 시골 마을로 찾아가, 집에서 머무르는 시청자에게 실제로 여행을 하는 듯한 자연경관과 여유로움을 보여준다. 시청자들은 실제로 여행을 하진 않지만 화면 속 느릿한 일상과 거대한 자연을 통해 대리만족을 느낀다.‘바퀴 달린 집’은 커다란 캠핑카를 타고 전국을 유랑하며 자연 속에서 하루를 살아보는 프로그램이다. 이들은 한적한 시골에서 물멍(물속에서 멍하니 넋을 놓거나), 불멍(불을 보며 멍하니 넋을 놓는) 등 한가로운 모습을 보여주며, 게스트와 함께 밥을 지어 먹고, 직접 커피를 내려 마시며, 제한된 물을 쓰고 간소화된 물품을 사용한다. 이 프로그램은 바쁜 도시 생활을 벗어나 진정한 휴식을 실현하고 싶은 현대인의 욕구를 대변해주는 듯, 그저 먹고 이야기하고 자연 속에 놓여 있는 장면뿐인데도, 많은 시청자의 사랑을 받고 있다.다시 미니멀 라이프의 이야기로 돌아와서, 본격적인 쉼을 위해서는 마음 비우기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재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는 집 안을 살폈고, 쌓인 어마어마한 짐들이 눈에 들어왔다. 인터넷에서 찾아본 ‘나에게 꼭 필요한 것’, ‘필요하지 않지만 가지고 싶은 것’, ‘폐기해야 할 것’이라 적은 3개의 상자를 나란히 두고 하나씩 정리해 나갔다. 정말 내가 이걸 다 산 걸까? 싶었던 건, 책이었다. 일 년 전 이사를 하면서 많은 책을 처분했지만 아직도 집 공간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언젠가 이 책이 필요하지 않을까? 글을 쓸 때 필요한 참고 자료가 되지 않을까? 이 책은 소중한 이와 함께 서점에 들러 고른 책이었는데 등등. 한 가지의 물건 속에는 불명확한 목적, 그때의 기분이나 시간, 기억 같은 게 들어있어 버리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조금씩 비우니 보이는 게 있었다. 생각보다 입지 않는 옷이 많았고, 필요 없는 책은 끈으로 묶어 필요한 사람에게 주었다. 현재 생활 습관에 맞춰 가구를 재배치하여 더 넓은 공간을 만들었다. 남은 옷은 몇 벌 되지 않아서 모두 옷걸이에 걸어두고, 양말과 수건은 색깔별로 잘 개켜 서랍 안에 세로로 줄 맞춰 넣었다. 쉽게 버릴 수 있는 것도 있었지만 쉽게 버릴 수 없는 것 또한 있었다. 대학 시절 학보사 기자로 활동했던 기사문, 동아리 일지, 의미 있는 편지, 신춘문예 기간에 시를 보내고 받은 우체국 영수증 등 내게 많은 것을 안겨다 준 물건들이 멋대로 굴러다니고 있었다. 오래전에 받은 게 많아서 이미 프린트나 글씨가 벗겨진 것도 많았다. 좋은 노하우를 참고해 작은 크기의 종이는 속이 비닐로 된 파일 안에 집어넣어 정리하였고, 다소 크기가 큰 종이는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어 A4 용지의 크기로 뽑아 파일 안에 넣었다. 많은 종이와 인쇄물이 한 권의 사진첩으로 정리되자 책장 속 딱 한 칸만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필요한 자리에 알맞게 위치하는 것. 그 적당한 위치와 무게가 어쩌면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코로나19로 적게 소유하고 적게 소비하면서 충만을 누리는 새로운 생활양식이 확산하고 있다. 집 안에 있는 불필요한 물건을 비우고 나니, 소비습관이 조금씩 달라지고 대체 용품을 찾게 되었다. 이제 조금씩 실천하고 있지만, 가장 많이 바뀐 부분은 물건을 고를 때 5년 정도 쓸 수 있는지 생각해 보고 구매를 결정하게 되었다. 또 손수건을 사용하여 휴지 사용을 줄이거나, 장바구니 사용으로 비닐봉지를 쓰지 않는다던가, 식당에서 먹지 않는 반찬은 미리 말해두는 등 실천 가능한 습관을 생각해보고 있다.비워지는 물건의 이후 또한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는데, 미니멀 라이프를 지향하는 이들은 ‘제로웨이스트(zero-waste)’ 움직임을 실천하고 있었다.제로웨이스트는 일회용 포장재, 완충재 등의 사용을 줄이고, 자원과 제품을 재활용할 수 있도록 쓰레기를 최소화하는 사회 운동이다. 많은 클렌징 용품을 대체해 천연 비누를 쓰거나, 세제나 섬유유연제 대신 ‘소프넛’을 대체해 사용한다. 소프넛은 솝베리나무(soapberry·무환자나무)에서 열리는 열매로 수질오염, 환경오염 없이 생분해되는 천연 계면활성제다.윤여진 2018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 부문에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현재보다 미래가 기대되는 젊은 작가.또는 비닐봉지를 줄이기 위해 매립 후 90일 이내 물과 이산화탄소로 바뀌는 생분해 봉지를 사용한다. 편리하게 사용하는 물티슈 또한 생분해 행주로 대체하고 플라스틱 빨대는 소독으로 재사용이 가능한 스테인리스 빨대를 쓴다. 그간 행하던 습관들을 한 번에 고치기는 어렵다. 계산 후 영수증이나 플라스틱 빨대를 받지 않거나 텀블러 사용, 다회용 장바구니 사용, 생분해되는 대나무 칫솔을 쓰는 등의 작은 실천부터 해볼 수 있다.조금만 눈을 돌리면 불필요한 것을 구매하지 않고 현재 내가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도 생활을 채워 넣을 수 있다. 필요하지 않은 것을 줄이면서, 아주 최소한의 물건만으로도 만족감을 느끼는 삶도 있다.비워낸다는 것은 기꺼이 불편함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는 환경을 위해 함께 상생하자는, 같이 살아가자는 건넴이 될 수도 있다. 그렇게 온전히 마음에 꼭 드는 것으로만 채우고, 불필요한 것은 생략하는 법은 코로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자세다.세상은 시끄러우나 내 안의 고요는 비워둔 곳에서 온다. 코로나19로 인해 앞으로 삶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삶의 태도나 자세를 느린 시간 속에서 선명히 그려 보는 시간을 가졌다. 내가 지킬 수 있는 것들을 반듯하게 지키며, 무해하게 살아가는 방법을 더 고민해야 한다.

2020-09-22

우리 안의 인종차별

요즘 미국에서는 프로농구 리그인 NBA 플레이오프 경기가 한창이다. 그런데 경기에 출전해 저마다의 기량을 뽐내는 선수들의 유니폼 등판에 이름과 백넘버가 아닌 구호들이 적혀있는 것이 이색적이다. 적혀있는 글들은 ‘Black lives matter (흑인의 목숨도 소중하다)’, ‘Equality (평등)’, ‘Vote(투표하라)’등으로, 모두 인종차별에 반대하는 구호들이다. 선수들 대다수가 흑인이거나 흑인 혼혈로 구성된 NBA 리그이기에 선수들이 직접 인종차별에 반대하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 것이다.이러한 움직임의 발단은 올해 5월에 발생한 조지 플로이드 사건이었다.편의점에서 20달러짜리 위조지폐를 사용했다는 혐의로 백인 경찰관은 흑인 남성 조지 플로이드를 체포하려 하였다. 플로이드가 저항을 하자 경찰관은 그를 바닥에 눕히고 무릎으로 목을 짓눌렀다. 목이 졸린 플로이드는 숨을 쉴 수 없다며 고통을 호소했지만 경찰은 아랑곳하지 않았다.결국 그는 현장에서 의식을 잃었고 그날 밤 병원에서 사망했다. 경찰의 과잉진압 과정은 현장을 지나가던 행인에 의해 고스란히 촬영되었고 플로이드가 격렬한 저항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영상은 소셜 미디어를 통해 일파만파 퍼져나갔다.이러한 사건은 미국 전역에서 불평등을 경험하고 있었던 흑인들의 전국적 시위의 방아쇠가 되었다. 시위에 참여한 이들은 해당 경찰관에 대한 처벌 뿐 만 아니라 미국 사회에 만연해 있던 흑인에 대한 차별을 근본적으로 해소할 것을 요구하였다. NBA선수들은 이러한 시위에 대한 지지의 의미로 시위대의 구호를 유니폼에 새긴 것이다.이런 인종차별 이슈는 단일민족국가라는 환상에 젖어있는 대한민국 국민들에게는 먼 나라 이야기처럼 느껴지곤 한다. 우리나라가 정말 단일민족국가인가는 논의가 필요한 이야기이지만 그렇다 치고, 그로 인해 인종차별 이슈가 적을 수밖에 없는 국가이기에 그것에 대한 심각성을 잘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이러한 무지로 인해 최근 필리핀 누리꾼 사이에서는 #CancelKorea(한국을 취소하라) 라는 해시태그를 다는 움직임이 들불처럼 번지고 있다. 한국에 대한 반감을 드러내기 위한 구호인데, 이것은 필리핀계 미국인 스타인 벨라 포치가 올린 한 영상이 발단이 되었다. 그가 공유한 영상 속 그의 팔에는 욱일기를 연상하는 문양이 새겨져 있었고, 한국인들은 댓글을 통해 그 문양이 역사적으로 어떠한 의미를 지니는지에 대해 설명했다. 이에 포치는 한국인들을 향해 사과문을 올렸다.사과문의 내용은 “한국인들에게 6개월전에 새긴 붉은 태양과 16개의 광선 문신에 대해 사과한다. 그때는 내가 역사에 대해 무지했다. 그러나 내가 깨닫자마자 즉시 나는 이것을 가렸고, 이것을 제거하기 위한 일정을 잡았다. 나의 행동에 대해 부끄러움을 느끼며 진심으로 사과한다”는 내용이었다.그런데 이러한 충분한 사과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누리꾼들은 해서는 안 될 이야기를 쏟아내고 말았다.포치의 출신 국가인 필리핀에 대해 “못 배워먹고 키 작은 사람들”, “가난한 나라”, “못생긴 민족”이라는 식의 인종차별적 발언을 쏟아내고 만 것이다.이에 항의하기 위해 필리핀 누리꾼들이 #CancelKorea(한국을 취소하라) #ApologizeToFilipinos(필리핀 사람들에게 사과하라) #Apologizekorea(한국은 사과하라)와 같은 해시태그를 달고 있는 것이다.포치 역시 “나를 공격하는 것은 괜찮지만 필리핀에 대한 공격과 비난은 참을 수 없다”며 항의의 뜻을 내비쳤다. 이에 뒤늦게 일부 네티즌들이 #SorryToFilipinos(필리핀 분들에게 사과한다)라는 해시태그를 달며 수습을 하고 있지만 한국인들은 이미 국제사회에 부끄러운 민낯을 드러내고 말았다.인종차별적인 시각은 앞으로 더 큰 문제들을 야기할 수 있다. 대한민국 사회는 더 이상 ‘한민족’이라 불리는 단일민족만이 존재하는 사회가 아니다. 이미 수많은 외국인 노동자들과 이주결혼여성들이 우리 곁에서 생계를 꾸리며 살아가고 있다.다문화 가정의 아이의 이야기를 다룬 ‘완득이’라는 소설이 나온 것이 벌써 12년 전이다. 수많은 완득이들이 이미 대한민국의 사회구성원이 되어 우리 주변에 살아가고 있다. 우리가 인종차별적 시각을 거두지 않는다면 언젠가 대한민국에서도 인종차별 문제가 심각한 사회문제로 떠오르고, 미국과 마찬가지로 대규모 행동을 마주하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우리 안의 인종차별의 씨앗은 아주 사소한 태도로부터 싹트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것은 다른 국가 출신의 사람이나 다른 인종의 사람을 만났을 때 개인으로서의 그 사람보다 그의 국가와 인종에 먼저 집중하는 습관이다.학부시절 교양수업을 같이 듣던 한 친구가 내게 물었다. “저한테 궁금한 게 중국 얘기 밖에 없어요?” 그는 중국에서 온 유학생이었다. 나는 술자리에서 한참동안 그와 대화를 나눴는데, 대화의 대부분이 “중국은 어때?” “중국 사람들도 그래?”같은 식이었다.그는 내게 고민을 토로했다. 사실 그는 중국인이기 이전에 스물한 살, 내 또래의 여자애였고,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연애나 진로에 대한 고민들을 가지고 있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 우리는 그런 고민들을 나누며 다양한 이야기들을 하는데, 사람들이 자신에게만은 오로지 중국 이야기만 묻는 것이 불만이라고 했다. 자기는 중국 국가대표로 여기에 온 것이 아니고, 그냥 나와 같은 학교 학생일 뿐이라고. 그 이야기를 듣고 나니 부끄러운 마음에 얼굴이 붉어졌다. 그때 느꼈던 그 부끄러움은 외국에서 온 친구들을 대할 때 나의 태도의 기준점이 되었다.지금 내게는 두 명의 절친한 외국인 친구가 있다. 한 명은 우크라이나에서 왔고, 한 명은 영국 맨체스터에서 왔다. 그 둘 모두 내게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우크라이나에서 온 친구는 그놈의 ‘김태희가 밭 가는 나라’라거나 ‘장모님의 나라’와 같은 이야기를(이 얼마나 부끄러운 차별 발언인가), 영국에서 온 친구는 ‘두 유 노우 박지성?’을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어왔다는 것이었다.그들은 나와 친해질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해 내가 그들의 나라에 대해 묻기보다 그들 자신을 궁금해 하고 이해하려고 노력하며 다가왔다는 이야기를 한다. 내게 그들은 ‘어디서 온 누구’가 아니고, 그저 ‘내 친구’일 뿐이다. 외국인 친구와 마음 터놓고 지내는 비결은 다름 아닌 그들이 외국인임을 잊는 것이다. 그들과 나의 피부색이나, 성장 배경 같은 차이에 집중하기 보다는 인간 대 인간으로서 느끼는 동질감에 집중하는 것이다. 차별은 차이에 집중하는 태도로부터 출발한다. 차이에 집중하지 않으면 차별을 할 수 없다는 이야기이다.우리가 받아온 차별을 생각해보자. 일제강점기 내내 ‘조센징’이라는 이유로 억압받고, 아직도 못 배워 먹은 일부 서양인들은 우리를 향해 눈을 양쪽으로 찢는 액션을 보이며 조롱한다. 그것이 잘못되었다고 느낀다면 우리부터 우리와 다른 피부색의 사람들, 우리와 이 넓은 지구를 나눠 쓰고 있는 이들에 대한 차별적인 시선을 거두어야 할 것이다. 아울러 이 글을 통해 한국전쟁 당시 우리와 함께 싸워준 국가 필리핀 국민들에게 #SorryToFilipinos라는 해시태그를 통해 사과의 마음을 전한다.강백수싱어송라이터·시인강백수세상을 깊이 있게 바라보는 싱어송라이터이자 시인. 원고지와 오선지를 넘나들며 우리 시대를 탐구 중이다.

2020-09-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