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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피로는 어디로 실려가는 걸까

등록일 2021-07-12 19:45 게재일 2021-07-13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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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은 의문이다. 무엇이건 빠른 현대도시가 마냥 좋기만 한 것일까? /언스플래쉬 제공

금요일 오후 일곱시 반 인천행 열차에 몸을 실었다. 퇴근 시간이니 당연히 빈자리가 있을리는 없을 테고 서서 가는 동안에 다른 사람과 몸이 부딪치지 않았으면, 누군가 내 가방을 휙 치고 지나가지 않았으면, 불쾌한 냄새가 나지 않았으면 하고 계속 생각했던 것 같다. 하필 그날은 휴대폰도 꺼진 상태라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멍하니 바깥을 보거나 깊은 생각에 잠기는 일 뿐이었다.

집으로 가는 데엔 한 시간이나 걸리므로 그날따라 왜 하필 불편한 신발을 신었을까 스스로를 자책하던 와중 한 역에서 열차가 멈췄다. 이윽고 사람들이 우르르 타기 시작했는데 내 또래로 보이는 여성분이 자연스레 비어 있는 임신부 좌석에 털썩 앉았다. 그리고선 통화를 이어가기 시작했는데 다소 조용하던 열차 안에 통화 내용이 울려 퍼지니 자꾸만 그 사람에게 시선이 갔다.

사실 늘 흔히 봤던 광경이지만 그날따라 왜 이렇게 짜증이 솟구치는지. 그 사람의 말투, 다소 높은 목소리, 과장된 행동 등 모든 게 마음에 들지 않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 이외에는 신경 쓸 겨를도 없다는 듯 모두가 이어폰을 끼고 스마트폰을 보기 바빴는데 순간 왜 이렇게 숨이 막히는 건지, 이대로 어디에 당도하는 지 도저히 분간 할 수 없어 결국 도중에 낯선 역에 내려 숨을 골라야 했다.

서울에 처음 올라왔을 땔 기억한다. 작은 시골 마을에서 나고 자라서인지 대도시에 대한 막연한 동경심이 있었다. 크고 높은 건물, 화려하고 깨끗한 공간, 티비속에서만 보던 유명 맛집들, 각자의 개성으로 빛나는 카페들이 근사해보였다. 특히 하루하루 치열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부러웠다. 각자의 일에 충실하고, 그 충실함 속에서의 자신만의 여유를 발견하여 끊임없이 노력하며 살아가는 현대인의 라이프스타일이란 시골의 적막과 심심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시골은 마음만 먹으면 하루 내내 누구도 만나지 않을 수 있다. 워낙 사람이 적으니 아침이든 저녁이든 늘 조용하다. 가만히 바깥에 앉아 있으면 적막함이 귀를 가득 메우는데 그 느낌이 소름끼치게 싫었다. 손쉽게 진공 상태의 우주 바깥으로 밀려나가는 기분이었달까. 그렇게 누구도 만나지 않고, 누구와 말하지도 않고 영영 도태될 것만 같단 위기감이 이십대 초반까지 내내 사로잡혀 있었던 것 같다.

그런 내가 자처해서 서울로 향한 까닭은 사회 구성원에 속해 있단 소속감을 느끼고 싶어서였다. 게다가 서울은 무엇이든 빨랐다. 앱으로 장을 보면 한 시간 이내에 물건을 가져다준다거나 새벽 세시에도 원하는 브랜드의 햄버거를 먹을 수 있다. 집 앞만 나가도 브랜드 카페가 무수히 줄지어 있으며, 웬만한 패션 브랜드 쇼룸도 한 시간 이내의 거리에 위치해 있었다. 서울은 무엇이든 원하는 걸 빠르게 손에 쥘 수 있는 곳. 재화만 있다면 곧 단순해지는 곳. 하지만 이를 위해선 끊임없이 달려야 했다. 부지런히 움직이고 공부해야만 겨우 한 움큼 편리함을 쥘 수 있었다. 권력은 곧 재화이나 이런 심플함 속에 속해 있지 않는 이들은 가감 없이 도태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외면하던 때였다.

윤여진 2018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 부문에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현재보다 미래가 기대되는 젊은 작가.
윤여진 2018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 부문에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현재보다 미래가 기대되는 젊은 작가.

그리고 나날이 내 안에 커다랗게 자리 한 건 무심함이란 감정이었다. 인상이 좋다는 말로 시작하는 물음을 뒤에 있는 사람에게 떠넘기는 것, 몸이 불편해 개찰구를 통과하지 못한 사람을 가만히 보는 것. 휴대폰을 들 수 없을 정도로 만원인 지하철에서 앞 사람이 내 발을 밟을 때, 익숙하다는 듯 짜증을 안으로 집어 삼키는 내 모습엔 일순간 당혹감을 느꼈다. 어느 날은 의자에 앉아 있다 뒤로 넘어진 할아버지를 도와드린 적이 있다. 그 분은 자신이 넘어졌다는 거에 화가 난 건지 도와드리려 붙잡는 내 손을 내팽겨 치고 말았다. 그리고 무슨 말을 한 것 같은데, 정확히 알아들을 수 없어 재차 묻는 대신 입을 꾹 닫고 말았다.

애매했다. 동시에 서로가 서로에게 피곤이 되는 듯한 이 감정은 전염성이 강하단 걸 알고 말았다. 피로를 잠시 잊기 위해서 단순함을 택한다는 것도. 무더위가 한 김 식은 밤이 되면 하루를 잘 개어 둔다. 그럼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 조금씩 보이는데, 취미를 즐기면서 무심함에 대해 생각한다. 이 고민의 끝엔 깨달음의 안락이 있을 것이다. 그렇게 믿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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