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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

등록일 2021-07-12 19:45 게재일 2021-07-13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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흘러가는 대로 그저 즐겁게 둥둥 떠다니는 여행 같은 삶도 나쁜 게 아니다. /언스플래쉬 제공

책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의 저자 하완은 평범한 직장인이었다. 반복되는 야근과 회식과 쥐꼬리만 한 월급은 그의 몸과 마음을 갉아먹었다. 하지만 그를 가장 괴롭게 한 것은, 더듬이를 잃어버린 곤충처럼 자신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알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인생의 방향감각 상실. 도대체 무엇을 위해 매일 아침마다 ‘지옥철’에 끼여 출근을 해야 하는지, 누구를 위해 매일 밤마다 폭탄주에 스트레스와 분노를 섞어 삼켜야 하는지, 성공에 대한 강박과 실패에 대한 불안으로 왜 밤잠을 설쳐야 하는지, 입만 열면 불평불만을 토해내는 직장 생활을 계속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사는 게 왜 즐겁지가 않은지…. 그는 스스로에게 질문하기 시작했고, 회사에 사표를 내는 것으로 그 질문들에 답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에 이런 장면이 나온다. 태평양에서 조난당한 두 남녀가 바다 위에서 만난다. 튜브에 몸을 의지한 채 맥주를 마시며 대화를 나누다가 여자는 어딘가에 있을 섬을 찾아 헤엄쳐 가고, 남자는 그냥 그 자리에 남아 계속 맥주를 마신다. 며칠 뒤 여자는 죽을 고생 끝에 섬에 도착하고, 남자는 술에 취한 채 구조대에 의해 구조된다. 몇 년 후 이들은 우연히 만나게 되는데, 여자는 열심히 헤엄친 자신과 아무것도 안 한 남자가 똑같이 살아남았다는 사실에 큰 충격을 받는다.

저자는 하루키 소설의 한 장면을 통해 “열심히 노력했다고 반드시 보상받는 것은 아니며, 열심히 안 했다고 해서 아무런 보상이 없는 것도 아니”라는 깨달음을 얻는다. 세상에서 강요하는 대로 노력하고 최선을 다하고 인내했지만 행복하지 않았다. 노력과 최선과 인내는 초조함과 불안과 스트레스만을 가져다줬다. 그 불행한 결과를 그는 ‘노력의 배신’이라고 부른다. 노력은 항상 인생을 배신하기 마련인데 “내가 이만큼 노력했으니 반드시 이만큼의 보상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순간부터 우리는 괴로워진다는 것이다.

회사를 그만 둔 그는 “노력하지 않는 삶”, “애쓰지 않고 흘러가는 대로 그저 즐겁게 둥둥 떠다니는 여행 같은 삶”을 시작한다. 늦은 점심을 먹고 빈둥거리다 맥주를 마시거나 책을 읽거나 이런저런 아이디어를 메모한다. 그러다보면 금방 저녁이 되고, 또 밥을 먹고 누워 잔다. 경쟁도, 성공과 실패도, 노력도, ‘노오력’도 없는 생활…. 늘 짧기만 하던 하루가 길게 느껴진다. 창밖으로 하루의 빛이 변하는 풍경들을 찬찬히 바라보며 바람 소리와 햇살의 냄새에 눈과 코와 귀를 기울일 수 있게 되었다.

고교 시절 미술 입시반이었던 그는 “홍대가 아니면 안 된다”는 강박 때문에 무려 4수 끝에 홍대에 입학했다고 한다. 어른들은 좋은 대학에만 들어가면 인생이 완성되는 것처럼 이야기했지만,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다. ‘홍대’만 바라보고 경주마처럼 달려간 4년 동안 오히려 많은 것을 잃었다. 친구들을 잃고, 20대의 추억들을 잃고, 시간을 잃었다. 그는 대학을 졸업하고도 3년간 백수로 지냈다. 또래들보다 7년쯤 뒤처졌다는 ‘지각 인생’에 대한 자괴감은 직장 생활을 할 때 극에 달해 ‘나만 낙오하는 게 아닐까?’하는 불안감이 들었다. “그 나이 먹도록 뭐했냐?”, “모아둔 돈도 없고 집도 없다고?”, “결혼은 대체 언제 할 거냐?” 주변 사람들의 따가운 눈총까지 견뎌야 했다.

이병철 문학평론가이자 시인. 낚시와 야구 등 활동적인 스포츠도 좋아하며,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이병철 문학평론가이자 시인. 낚시와 야구 등 활동적인 스포츠도 좋아하며,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내가 정말 부끄러워해야 할 것은 나이에 걸맞은 것들을 소유하지 못한 게 아니라, 나만의 가치나 방향을 가지지 못하고 살아왔다는 사실”임을 깨달은 저자는 남들에게 좋아 보이는 것, 남들이 가리키는 것을 위해 살지 않겠다고 선언한다. 그리고 청년들에게 말한다. 취업난, 대출빚, 결혼 포기…. 실패는 당신들이 노력하지 않은 결과가 결코 아니니까 고개 숙이지 말라고, 사람에겐 각자의 속도가 있으니 남들과 속도를 맞추려 애쓰지 말라고, 자기 속도를 지키는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이 지독한 경쟁사회도 바뀔 것이라고.

세상이 정한 기준에 맞추느라 ‘자기’를 잃어버리지 말라고 말하는 이 책은 2018년 출간 이후 3년 넘게 베스트셀러, 스테디셀러를 지키고 있다. 진짜 제목은 ‘하마터면 남을 위해 열심히 살 뻔했다’가 아닐까? 내가 강의하는 학교의 학생들은 수업을 듣고, 밤새워 과제를 내고, 창작을 하고, 시험을 치르고, 성적에 울고 웃고, 패스트푸드점과 커피숍에서 아르바이트하며 학자금 대출을 갚고, 비좁은 기숙사나 고시원에서 잔다. 나는 그 학생들의 열심이 오직 자신의 행복만을 위한 것이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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