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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사랑 이야기

등록일 2021-08-03 18:21 게재일 2021-08-04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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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랑이라는 감정을 처음 느낀 대상. 그건 다름 아닌 나와 함께 사는 강아지였다. /언스플래쉬

더위가 기승이다. 몸도 마음도 흐물흐물 녹아가는 날씨에 교실의 아이들은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아무리 재밌는 소설을 읽어도 분위기가 축 처지는 것은 매한가지였다. 그때 한 학생이 외쳤다.

“선생님, 첫사랑 이야기 들려주세요!”

과연 고등학생다운 진부함이었다. 나 역시 학창 시절에 젊은 남자 선생님을 당혹하게 하기 위해 같은 말을 던진 적이 있었으니. 그러나 역으로 내게 이런 질문이 다가오자 십 년 전의 그처럼 당황하고 말았다. 동시에 고민에 빠졌다. 숱한 연애를 해왔다. 그중에서 나의 첫사랑이라고 호명할 수 있는 인물은 누구일까. 고민 끝에 떠오르는 얼굴을 붙잡았다. 사랑이라는 감정을 처음 느낀 대상. 그건 다름 아닌 나와 함께 사는 강아지였다.

다시 생각해도 신기한 일이다. 나는 동물애호가는커녕 동물을 낯설어하는 사람에 가까웠다. 인터넷을 떠도는 강아지나 고양이의 귀여운 사진을 봐도 어떤 감흥도 생기지 않았다. 그들은 나와 전혀 다른 세계를 살고 있는 생명체였다. 우리에게 교집합 따위는 없었다. 그런 내게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우연한 기회로 내 삶에 끼어든 작은 개는 내 모든 것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았다.

우리가 만난 첫날을 기억한다. 부산에서 구조되어 4시간의 여정 끝에 마침내 내 품에 당도한 개는 코를 킁킁대더니 집 안 구석구석에 오줌을 갈겨놓았다. 그도 모자라 잔뜩 흥분한 상태로 잡히는 것을 모조리 물어뜯었다. 나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로 개의 만행을 지켜보기만 할 뿐이었다. 내가 상상했던 개는 이렇지 않았다. 인간에게 다정하며 사랑스러운 애교를 부리는 모습을 기대했었다.

하지만 눈앞에 놓인 개는 이빨을 드러내며 온몸으로 나를 거부하고 있었다. 나는 개를 거실에 두고 방문을 닫았다. 이런저런 생각으로 머릿속이 어지러웠다.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고 다시 거실로 나오니 개는 여전히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푸르스름한 새벽빛이 우리를 감싸 안았다. 나는 낯선 생명의 동그란 눈동자를 마주했다.

나와 비슷한 감정을 느끼는 생명. 낯선 환경에 무섭고 두렵고 불안해하는 아이. 나는 조심히 개의 곁으로 다가갔다. 여전히 나를 경계하는 것이 느껴졌다. 나는 몸을 둥글게 말고 누워 개의 곁에서 잠을 잤다. 눈을 떠보니 우리의 거리는 어제보다 조금 가까워져 있었다. 그날 이후 우리는 한 가족이 되었다.

이제 우리는 서로의 습관을 완벽하게 알고 있다. 나는 이 작은 개가 배가 고플 때나 밖으로 나가고 싶을 때 어떤 표정을 짓는지 안다. 몸이 아프거나 행복할 때 내는 소리의 차이를 안다. 언제나 내 곁을 지키며 사랑한다고 온몸으로 외치는 것을 듣는다.

동시에 나는 대가를 치러야 했다. 그토록 좋아하던 즉흥적으로 떠나는 여행도, 밤새워 술을 마시는 일도 하지 못하게 되었다. 친구들과의 약속을 잡아도 집을 비운다는 죄책감에 시달리기 일쑤였다. 그런 것은 괜찮다. 정말로 괴로운 것은 이 작은 개로 인하여 또 다른 세계를 알아버렸다는 것이다.

문은강 ‘춤추는 고복희와 원더랜드’로 주목받은 소설가. 2017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작가로 등단했다.
문은강 ‘춤추는 고복희와 원더랜드’로 주목받은 소설가. 2017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작가로 등단했다.

복날을 앞두고 동물보호소에 있던 유기견들이 사라졌다는 기사를 접한다. 강아지를 도로에 버리고 가는 사람들의 무정함을, 자동차의 뒤꽁무니를 쫓아가는 강아지의 애달픈 걸음을 본다. 학대당하는 개를, 그런 아픔을 겪었으면서도 자신을 향해 손을 내미는 이를 향해 꼬리를 흔드는 바보 같은 개의 모습을 본다. 그것은 나와 멀리 떨어져 있던 현실의 한 토막이었다. 이제 이 끔찍한 이야기는 나를 괴롭게 만든다. 분노하고 슬퍼하고 아파하고 행동하게 만든다.

나는 사랑에 환상을 품은 아이들에게 말하지 못했다. 사랑은 너희가 상상하는 것만큼 즐겁고 아름다운 것만은 아니라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에 빠진 사람이 여기에 있다고 말이다.

그러니까 사랑은 끊임없는 자기모순을 경험하는 것. 마주해야만 하는 현실의 고통을 감내하는 것. 그에 따른 슬픔까지 기꺼이 껴안고 마는 것. 영원히 함께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기에 이 순간을 무엇보다 소중히 여기는 마음을 가지는 것.

나는 그 사실을 이 조그만 생명을 통해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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