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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건으로 가까워지는 삶

등록일 2021-06-14 18:57 게재일 2021-06-15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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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건의 삶은 지구와 생명체를 위한 일이 아닐까.
비건의 삶은 지구와 생명체를 위한 일이 아닐까.

2주 전 주말이었다. 침대에서 몸을 뒤척이는데 무거워진 몸이 버겁게 느껴졌다. 스트레스를 음식으로 풀어서인지 폭식은 또다시 습관이 되어 있었고, 어느샌 음식을 배가 고파서가 아닌 기분이 좋지 않단 이유로 의무적으로 먹기 시작 했다. 그렇게 겨울 내내 옷 태가 달라졌고, 알레르기를 심하게 앓는 피부와 비염도 극심해져 몸 전체가 망가지고 말았다. 그럴 때마다 열패감에 시달리곤 했는데, 다시 굶기 시작하면 원래 몸무게로 돌아갈 수 있을거란 믿음을 스스로 주입하며 되뇌곤 했다.

난 몸무게가 고무줄처럼 오가는 편이다.

스스로를 프로다이어터라고 칭하는 만큼 폭식과 절식을 극단적으로 행하는데 수험 스트레스가 극에 달했던 18살엔 일 년 사이에 몸무게가 13킬로그램 정도 증가하기도 했다. 갑자기 살이 찌면 피부가 늘어나서 빨간 자국이 몸 곳곳에 새겨진 다는 걸 그 때 알았다. 22살이 되던 해에는 운동 없이 절식만으로 17킬로그램을 뺐다. 딱히 다이어트를 해야겠단 동기가 있었던 건 아니었지만 아무 것도 먹지 않고 음식에 대한 욕망이 사라질 때의 공허한 기분을 조금 즐겼던 것 같기도 하다.

갑자기 살이 빠지니 변화된 몸에 대한 칭찬을 정말 많이 들었다. 인물이 산다거나, 드디어 얼굴에 꽃이 폈단 말을 부모님이나 친구들, 선생님들, 주변 어르신들 너나 할 것 없이 자주 들었다. 무엇보다 가장 끔찍하다고 생각이 들었던 건 굶을수록 스스로를 대견해하며 우월감이나 성취감에 빠졌단 거였다. 그것도 얼마 지나지 않아 탄력 없이 축 늘어진 피부와 원인 모를 알레르기가 찾아 왔다. 머리카락과 얼굴은 푸석푸석했고, 무엇보다 자주 무기력해졌다. 외출 후 한 시간만 지나도 극심한 피로가 찾아와서 상대와 눈을 맞추는 것도 힘겨울 정도였으니까.

어쨌거나 극단적인 다이어트가 스스로를 파멸시킨단 생각이 들자, 먹는 것에 대한 강박을 내려 놨다. 몸무게는 나날이 증가했지만, 그렇게 몇 년간은 음식에 대한 스트레스를 덜 받으며 지내왔다.

그런데 이주 전 침대 위에서, 이젠 도저히 맘 놓고 먹어선 안 된단 생각이 문득 들었다. 하루 세 잔씩 커피를 달고 사는 데다 아홉 시간 반씩 사무실 의자에 앉아 퀭하게 모니터를 바라보고 있자니 하루의 운동량이 거의 제로에 가까웠다. 마침 늘 관심사로 두고 있던 비건이 생각나자 그 자리서 바로 검색해보기 시작했다.

비건은 흔히 채식주의자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실은 섭취 방법에 따라 프루테리언, 비건, 폴로 베지테리언, 플렉시테리언 등등 다양하게 나누어진다. 상대적으로 익숙한 이름의 비건은 고기나 동물성 식품을 먹지 않고, 생선이나 계란, 우유, 버터 같은 동물의 희생으로 발생되는 식품까지 포함하여 섭취하지 않는다. 프루테리언은 비건보다 한 차원 높은 채식을 지향하는데 이들은 식물도 살아 있는 생명이라 여겨 과일이나 견과류 종류만 먹는다. 폴로 베지테리언은 유제품과 계란, 어패류, 날개 달린 고기까지 먹는 단계로 상황과 때에 맞춰 자신이 선택하여 먹을 수 있다. 플렉시테리언은 평소 채식을 하다 가끔 고기를 먹는다. 비교적 선택지의 폭이 넓어 자유롭게 섭취할 수 있단 특징을 지니고 있다.

그런데 무조건 채식을 한다고 해서 건강해지는 건 아니었다. 동물성 식품을 배제하는 완벽한 채식을 하기 위해선 정말 많은 공부가 필요했다. 내 몸에 부족한 부분을 인지하는 것도 어려운데 좋은 탄수화물과 단백질, 지방을 고루 채울 수 있는 식단을 스스로 마련하는 것도 지식 없인 난감했다.

윤여진 2018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 부문에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현재보다 미래가 기대되는 젊은 작가.
윤여진 2018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 부문에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현재보다 미래가 기대되는 젊은 작가.

처음부터 고기를 끊긴 어려워서 상황에 따라 채소와 육류를 선택하며 먹었고, 되도록 채소 섭취를 우선으로 했다. 중요한 건 내 체질에 맞게 식재료를 선택할 줄 알아야 했는데, 필수 영양소에 대한 공부뿐만 아닌 내 몸과 마음의 균형에도 시간을 들이게 됐다.

비건에 눈을 돌리니 동네 마트만 가도 비건을 위한 식품이나 간식이 시중에 많이 나와 있는 게 보였다. 우유를 아몬드 두유로 교체할 수 있는 카페도 많았고, 대형 프랜차이즈 가게에선 비건을 위한 메뉴가 꾸준히 출시된다는 것도 알게 됐다.

이제 겨우 이 주 정도 지났지만 속이 편해졌고 몸의 붓기가 많이 빠졌다. 생활의 질이 높아진 건 물론, 비건으로 가까워지는 삶은 궁극적으로 지구와 모든 생명체를 위한 일이라는 걸 깨달았다. 어떤 신념을 유지한다는 건 이토록 수고로운 일임을 다시금 깨닫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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