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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과 책임

등록일 2021-06-21 20:18 게재일 2021-06-22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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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극적인 죽음을 막기 위해선 근본 대책이 필요하다. 붕괴된 광주 철거작업 현장. /연합뉴스

광주에서 철거작업 중이던 건물이 무너지면서 공사장 앞 버스정류장에 정차돼 있던 시내버스를 덮쳤다. 그로 인해 9명이 숨지고 8명이 중상을 입었다. 버스에 있던 승객들은 평소와 다름없는 일상을 살던 시민이었다. 거리는 극단적인 위험의 모습을 가지지도 않았을 것이었다. 어느 평범한 오후 일어나지 않을 수 있었던 사고. 이러한 참극을 단지 ‘운이 나빴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인가.

경기 평택항에서는 이선호 씨가 개방형 컨테이너 벽체에 깔려 숨졌다. 그는 아버지를 따라 용돈을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던 청년으로 원래 업무와는 무관하게 현장에 투입되었다. 그를 위한 안전교육이나 장비도 없었고 사고 현장에는 안전관리자조차 없었다.

어째서 우리는 계속해서 이러한 이야기를 접해야 하는 걸까. 건물과 다리가 속수무책으로 무너지고 현장에서 일하던 노동자가 죽어나는 사건들. 안전을 위한 예방에 만전을 기했다면 충분히 일어나지 않을 수 있었던 재난들. 그 끔찍한 일을 기어코 마주하고 나서야 시스템의 개선을 말하는 사람들.

우리는 우리를 비극으로 몰아넣었던 여러 사고를 경험해왔다. 그래서 무엇이 달라졌는가. 참극 이후를 살아가는 우리의 태도는 어떠한가. 아무것도 바뀐 것이 없다는 생각에 마음이 참담해지는 것이다.

우리의 일상은 안전하지 않다. 그것은 하나의 사실이 아니라 하나의 상태인 것처럼 보인다. 계속해서 같은 결과가 변주될 뿐이다. 어느 누가 죽음을 맞이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가지고 시내버스를 타고 노동 현장으로 투입될까. 어쩌면 우리는 우리가 안전하다는 가정에 얽매인 채 그 환상 안에서 살아왔을지도 모른다.

우리 사회는 그렇다. 어디서든 효율성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생산성 향상을 요구한다. 회사에서는 ‘빨리빨리’ 완벽한 결과물을 내어놓기를 바라며 개인이 가진 에너지를 남김없이 다 소진하기를 바란다. 무엇이든 빨리 허물고 새롭게 지어야 한다는 압박감. 언제든지 다른 인력으로 교체될 수 있다는 불안함. 이러한 사회에서 노동자의 건강과 안전은 늘 뒤로 물러나기 마련이다.

번듯하게 만들어진 건물을 바라보며 무너짐을 상상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늘 높이 치솟은 휘황찬란한 모습에 감탄하는 것으로 끝내기 마련이다. 그것을 위해 희생당한 이들은 아무렇지 않게 잊힌다. 공고한 세계를 지키고 있는 사람들이 있고 동시에 끊임없이 배제되는 사람들이 있다. 묵묵하게 일하며 지반을 떠받치고 있는 이들의 발화는 너무나도 쉽게 흩어지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이토록 끔찍한 사건을 누가 책임질 것인가? 사실상 어느 누구도 이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다. 주문한 음식이 약속된 시간에서 조금만 늦어져도 배달원을 탓하며 서비스직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실수에 엄격하게 반응하는 일들은 우리 주변에도 빈번하지 않은가. 일상에서 노동자의 희생을 당연한 일로 여긴다. 그로 인해 벌어지는 참극을 ‘운이 나쁜’ 어느 사고라고 치부하기도 한다. 과연 그러한가. 우리에게는 일말의 책임도 없는가. 그 괴로운 질문에서 빠져나오기 위해서 우리는 그들의 죽음을 쉽게 잊어버리고는 한다.

문은강 ‘춤추는 고복희와 원더랜드’로 주목받은 소설가. 2017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작가로 등단했다.
문은강 ‘춤추는 고복희와 원더랜드’로 주목받은 소설가. 2017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작가로 등단했다.

마크 피셔는 “세상의 종말을 상상하는 일이 자본주의의 종말을 떠올리는 것보다 더 쉽다”고 말했다. 자본의 논리 안에서는 한 푼의 돈이 한 사람을 지키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로 작동하기도 한다. 이윤보다 사람이 먼저라는 전언은 그저 허울 좋은 말에 불과하다.

한 사람의 목숨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것을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처럼 부조리한 일이 또 있을까. 그러므로 우리는 오늘의 참극을 기억해야 한다. 그것은 분명한 우리의 책임이다. 무엇이 잘못되었는가. 그 안타까움을 상기하며 끊임없이 되물어야 한다. 동시에 사회적 책무도 물어야 한다.

비극적인 죽음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근본적인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단 한 사람도 잃어서는 안 된다는 마음으로 건물을 짓고 그러한 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를 위한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누구도 죽거나 다치지 않고 안전이 보장되는 사회가 와야 한다는, 너무도 상식적이고 당연한 이야기를 외쳐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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