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운전은 먼 이야기였다. 학창시절에는 스쿨버스로 통학했고 대학생 때는 학교에서 십 분 거리에서 자취했다. 어쩌다 먼 곳으로 놀러 갈 일이 생기면 동행하는 친구의 차에 훌쩍 올라타면 그만이었다. 남의 차를 얻어 타고서는 난폭운전을 하네, 승차감이 별로네, 하고 평가하는 일도 서슴지 않았다.
많은 사람이 성인이 되면 이루고 싶은 일 중의 하나가 면허를 취득하는 것이라고들 하는데 내겐 아니었다. 세상에서 가장 편한 게 남이 운전해주는 차인데. 왜 그렇게 힘들여 어려운 길을 가려고 하는가. “나 BMW(Bus, Metro, Walk) 타고 다니잖아” 하는 시답잖은 농담에는 은근한 진심도 섞여 있었다. 자가용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고 대중교통을 타는 것에도 큰 불편함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에 운전면허를 따야겠다는 생각은 미뤄 놓은 지 오래였다.
인생이란 결코 뜻대로 흘러가지 않는다고 했던가. 평생 남이 운전해주는 차만 타고 살 것이라는 호언장담이 무색하게 나 역시도 운전해야만 하는 상황에 봉착했다. 경제 사정에 맞춰 이사 간 집의 교통이 좋지 않아 약속을 잡으면 두어 시간은 기본이요, 버스와 지하철 몇 번이나 환승해야 했다. 출퇴근도 문제였다. 차로는 한 시간이 채 안 걸리는 거리가 버스를 이용하면 두 시간이 훌쩍 넘었고 당연히 체력적으로도 무척이나 지쳤다. 고심 끝에 나는 모아둔 돈을 탈탈 털어 차를 구입했다.
다들 가지고 있다는 ‘장롱 면허’라도 있으면 곧바로 운전 연수라도 받겠다마는. 나는 면허는커녕 자동차 핸들조차 한 번도 잡아본 적이 없었다. 빨간불이면 멈추고 파란불에는 가야 한다는 사실 정도가 내가 아는 교통 법규의 전부였다.
운전면허학원에 등록하던 날, 강사님의 팔을 부여잡고 말했다. “저 꼭 면허 따야 해요. 차 없으니까 너무 힘들어요.” 강사님은 나를 보더니,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내게서 간절함이 엿보인다는 거였다. “이를 악물고 해요.” 강사님의 말에 나는 다짐했다. 운전학원 역사상 최단 시간 내에 운전면허를 취득하는 멋진 모습을 보여주리라.
필기시험과 기능시험은 어렵지 않았다. 시중에 있는 모의고사 문제집을 달달 외워 필기시험에 단박에 합격했고 그 어렵다는 직각 주차도 거뜬히 해냈다. 문제는 도로 주행이었다.
처음 도로로 나갔을 때는 그야말로 황망한 기분이었다. 아니, 뭘 했다고 내가 벌써 도로를 달리지? 그나저나 원래 도로가 이렇게 살벌했던가? 조수석에 탈 때는 몰랐는데… 머릿속에서 나를 태우고 달렸던 운전자들의 얼굴이 스쳐 지나갔다. 모두 운전 고수였구나. 이 극악무도한 무법지대를 거침없이 누볐구나. 그들의 운전 실력을 멋대로 평가했던 어리석은 지난날의 나 자신을 반성할 수밖에 없었다. 누군가의 말처럼, 정말 인생은 실전이었다.
뒤에서 빵빵대는 커다란 버스와 승용차들에 정신이 아득해질 무렵, 공포의 순간이 다가왔다. “정신 차려. 여기서 들어가야 해요.” 강사님의 말에 정신이 아득해졌다. 차선 변경을 해야 하는 상황에 봉착한 것이다.
흔쾌히 속도를 줄여 끼어들 수 있게 해주는 차도 있었지만 반대로 속도를 높여 지나치게 빨리 달리는 차도 있었다. 사이드미러로 보이는 옆 차선에서 차들이 줄줄이 들어와 도저히 끼어들 수 없을 때, 별수 없이 예정된 도로를 지나서 샛길로 빠질 수밖에 없었을 때는 정말이지 울고 싶은 기분이었다. “제발 한 번만 끼워주세요.” 내 절규에 강사님은 고개를 절레절레 들었다. “본인이 끼셔야죠. 누가 끼워줘요.” 아, 그렇구나. 도로는 정말 혼자의 싸움이구나. 나는 순식간에 외로워졌고 동시에 이를 악물었다. 이 작은 공간을 내 손으로 목적지까지 무사히 이끌어야 했고 그러기 위해서는 있는 힘을 다해 차와 차 사이로 끼어들어야 했다.
어쨌든 나는 무사히 면허를 취득했다. 여전히 도로는 무섭지만 익숙해지려고 노력 중이다. 남의 일처럼 여겨지던 휘발유 값과 현재 교통 상황을 알리는 뉴스도 이젠 훌쩍 가깝게 느껴진다. 비상등을 켜면서 고마움을 표시하는 시그널을 목도하면 어쩐지 뿌듯한 마음이 든다. 여기에서도 나름의 소통 방식이 있구나. 그리고 나도 이제 이 세계에 발을 붙였구나. 그런 생각에 스스로가 대견하다.
그리하여 어느 도로에서 초보운전 딱지를 붙이고 엉금엉금 기어가는 차를 만난다면 답답해하는 대신에 안쓰럽게 봐주시라. 지금 운전석에서는 누구보다 진지한 눈빛으로 도로를 노려보며 사투를 벌이는 중일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