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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문신, 누구에게도 유해하지 않은

어느새 기온이 25도를 넘어서곤 한다. 반팔 티와 반바지가 어색하지 않은 계절이다. 더위를 많이 타는 나는 일찌감치 반팔과 반바지를 입고 다니기 시작했는데 때때로 사람들은 그런 나를 호기심어린 눈으로 바라보곤 한다. 내 팔과 다리에 새겨 넣은 몇 개의 자그마한 문신들 때문이다.나는 이십대 중반부터 최근까지 몇 개의 문신을 몸에 새겼다. 온 팔과 다리를 휘감은 커다란 문신은 아니고, 그냥 좋아하는 문양 몇 개를 조그맣게 몇 군데 새겼을 뿐인데 때로는 사람들의 시선을 본의 아니게 사로잡게 되곤 한다. 제일 오래된 문신은 오른 손목에 새긴 것인데, ‘Difference is not evil’이라는 허세 가득한 문구를 작은 팔찌처럼 둘렀다.가슴에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성(姓)을 새겼고, 왼 손목에는 해와 달이 겹쳐져 있는 모양을 새겼다. 왼쪽 전완근 쪽에는 내가 사랑하는 밴드음악에 사용되는 악기들을 귀엽게 그려넣었고, 오른쪽 이두근 쪽에는 ‘오즈의 마법사’에 나오는 양철나무꾼을 그려넣었다. 오른쪽 발목에는 제일 좋아하는 동물인 범고래 두 마리를 그려넣었고, 양 손날에는 말씀 언(言) 자와 절 사(寺) 자를 새겨 합장을 하면 시 시(詩) 자가 되도록 새겨넣었다. 가장 최근에 받은 문신은 앞서 이야기한 것들과 다른 성질의 것이다. 바로 반영구 눈썹문신이다. 앞서 언급한 것들이 예술적인 목적이나 패션의 목적으로 받은 것이라면, 이것은 미용을 목적으로 받은 것이다. 우리가 문신이라고 부르는 것은 이 두 가지 개념을 모두 포함한다.다 자그마한 것들이지만 개수가 어느 정도 되다보니 주변 사람들에게 질문을 받곤 한다.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은 ‘이거 문신인가요? 그럼 안 지워지나요?’인데, 레이저 시술을 받지 않는 한 지워지지 않는다. 간혹 문신과 타투라는 용어를 달리 생각하여 문신은 안 지워지는 것이고 타투는 시간이 지나면 지워지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지워지는 피부 염료인 ‘헤나’와 타투를 혼동해서 생긴 경우다. 문신과 타투는 같은 말이다. 다음으로 빈번하게 듣는 질문은 ‘아프지 않나요?’인데, 이는 부위마다,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에 정확히 이야기하기 어렵다. 내 경우 도저히 참지 못할 만큼 아픈 부위는 없었고 부위에 따라서 잠시 잠이 들기도 했을 정도로 아프지 않았던 곳도 있었다. 아팠던 곳은 손날과 가슴, 안 아팠던 부위는 팔뚝이었다. ‘왜 했나요?’ 또한 자주 듣는 질문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멋으로 했다. 어렸을 때는 대단한 신념이랍시고 문장이나 글씨들을 새기기도 했지만 이 또한 나름의 멋으로 한 것이고, 대부분의 그림 문신들은 그냥 예뻐서 몸에 새긴 것이다.마지막 질문과 답으로 인해서 간혹 논쟁이 벌어지기도 한다. ‘그냥 예뻐서’ 부모님이 물려주신 몸을 훼손했느냐는 핀잔을 듣기도 하는데, 그렇게 따지자면 귀를 뚫는 행위나 머리카락을 자르는 행위도 효경에 실린 공자의 가르침, ‘신체발부수지부모, 불감훼상 효지시야’에 어긋나는 행위이다. 현대 사회에서 적용되기 어려운 여러 유교적 규범들과 함께 재고가 필요한 문제이고, 오히려 그보다 헌법에 보장된 표현의 자유를 우선시하는 것이 옳다고 볼 수 있다. 강백수 세상을 깊이 있게 바라보는 싱어송라이터이자 시인. 원고지와 오선지를 넘나들며 우리 시대를 탐구 중이다. 작년 10월 21일, 더불어민주당 박주민 의원이 문신사법 제정을 언급하였다. 한국타투협회에 의하면 우리나라의 현행법은 문신 행위에 관한 명확한 법적 근거가 없는 상황이며, 법원은 문신이 의료행위에 해당한다고 보고 의사가 아닌 사람이 문신 업무를 하는 경우에 불법 의료행위에 해당하는 것으로 여겨 의료법 위반으로 처벌하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박 의원은 “많은 시민들이 미용이나 자기표현의 목적으로 여러 종류의 문신 시술을 받고 있는데, 이를 합법화하고 문신사를 전문직종으로 만드는 것이 사회경제적으로나 산업·보건적으로도 모두에게 이득”이라며 문신의 법제화를 주장했다. 한국타투협회는 “직업선택의 자유를 보장하고 연간 국내소비 650만 건의 소비자를 보호하고 직간접적으로 22만여 명의 안전한 일자리 창출과 국민의 건강과 공중보건을 지키기 위하여 문신사법 제정의 절실함을 다시 한 번 호소”한다며 성명을 발표했다.문신은 이미 전세계 대부분의 국가에서 예술행위로 간주되어 자유롭게 행해지고 있다. 많은 선진국들이 문신사에 대한 소정의 자격 또는 요건을 정해놓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는 여전히 법적으로, 그리고 인식면에서 문신사, 그리고 문신 피시술자에 대한 차별이 존재하고 있는 실정이다. 내 팔과 다리에 있는 자그마한 그림들이, 또는 누군가의 몸에 새겨진 크고 작은 문신들이 도대체 누구에게 유해하기에 TV화면은 이를 모자이크 처리해 버리는가. 어째서 눈에 보이는 곳에 문신이 있는 사람은 경찰관이 될 수 없는가. 법률과 인식, 양면으로의 개선이 이루어지길 바란다.

2021-06-07

화음을 쌓는 일

요즘 나는 ‘MSG 워너비’에 푹 빠져있다. ‘MSG 워너비’는 MBC 예능 프로그램인 ‘놀면 뭐하니?’에서 기획한 남성 발라드 프로젝트 그룹이다. 현재는 별루지, 김정수, 강창모, 정기석, 이동휘, 이상이, 원슈타인, 박재정 등 8명의 출연진이 등장하고 있으며, 서바이벌 경쟁을 통해 최종 4명의 가수가 데뷔한다.기존 가수인 SG워너비의 이름을 본 따 만들어진 MSG워너비는 2000년대의 향수를 겨냥한 컨셉으로 과거 유행한 여성 발라드곡인 ‘빅마마의 체념’, ‘태연의 만약에’를 재해석해 새로운 무대를 선보여 화제 되었다.한편 원조 SG 워너비가 방송에 등장하여 히트곡들을 차례대로 부르자 아리랑, 살다가, 라라라 등 수많은 곡들이 역주행하여 각 음원 차트 상위권에 올라 흥미로운 흐름을 보여주기도 했다.나는 평소 좋아하는 가수도, 즐겨 듣는 노래도, 나아가 취미나 취향도 딱히 없는 무색무취의 재미없는 사람이지만, MSG 선발전 무대를 보고난 뒤부턴 어찌나 상기되어 있는지 모른다.8명의 출연진들은 무대 위에서 자신의 자리를 지키며 그들의 감정에 충실히 임한다. 정해진 가사를 부족함이나 과함 없이 감정을 표현하는 것도 대단한데 오롯이 목소리만으로 무대를 장악한다.8명 출연진들의 감미로운 목소리만으로도 충분히 감동을 느낄 수 있지만, 결정적으로 넋을 놓고 반하게 된 데에는 클라이맥스로 치닫을 때에 나오는 화음이었다. 화음은 음악에서 높이가 다른 둘 이상의 음이 동시에 울려 생기는 합성음을 말한다. 서로 다른 음역대가 만나 소리를 쌓고 합쳐 나아가는 것인데 자신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을 정도로 낮게 부르거나, 누군가의 목소리를 묻어 버릴 정도로 너무 크게 부르지 않는다. 서로에 대한 배려와 존중이 깔려 있어 근사한데다 그들의 개성과 열정, 각기 다른 표정과 분위기가 어우러져 흥미롭고도 신비로운 서사를 보여준다. 마치 다양한 색으로 이루어진 무지개를 마주한 듯한 경이로움이라 해야 할까. 서로 다른 것이 만나 공통된 지점에서 발화하는 아름다움은 충분히 마음을 일렁이게 한다.그렇지만 화음은 극히 드물다. 언제나 끊이지 않는 학교와 직장, 병원에서 만연히 이루어지는 집단 따돌림은 불협과 불협이 만나는 끔찍한 노래다. 그들이 만들어내는 목소리에는 수많은 욕설과 소음과 고함으로 엇나간다. 듣는 사람도 인상이 찡그려질 정도인데, 부르는 이들은 얼마나 지옥 같은 마음으로 내지르는 걸까. 자신의 목소리가 옳다는 착각, 개인을 소외시키고 배제시켜야 직성이 풀리는 오만으로는 한평생 하모니를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뛰어난 음악작품 속의 멜로디는 화성진행에서 쓰는 화음의 음만으로 구성되어 있지 않다. 화음에 포함되지 않는 음을 비화성음이라 부르는데, 멜로디의 진행을 매끄럽게 하기 위해서는 비화성음이 반드시 들어간다. 화음 밖의 음들은 기능적으로 안정감을 더하고 다채로운 화성 진행을 통해 더욱 훌륭한 멜로디를 만들어 낸다. 다양함으로 창조된 음악은 듣는 이로 하여금 풍부한 흥미로움을, 굵직한 메시지를, 깊은 위안이 되어주기도 한다. 실제 우리의 태도도 마찬가지이지 않을까. 안팎을 포용하여 전혀 다른 이들을 만나 하모니를 이룰 때에 더욱 고귀한 감정의 결을 알게 될 것이다. 인간은 어쩔 수 없이 타인과 함께 살아가는 존재이므로 독백으로 이룬 무대는 늘 머쓱하고도 외로울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나는 그간 조그맣게 벌린 일 몇 가지를 정리했다. 무엇을 원하고 어떤 걸 쫓는지 모를 지경에 처해 자꾸만 말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동시에 2년 간 근무했던 곳을 벗어나 현재는 새로운 곳에서 전혀 다른 일을 하며 매일 비슷비슷한 일상을 보내고 있다. 이곳에선 정말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있다. 가치관 충돌로 의아하기도, 처음 들어보는 취미나 취향을 발견해서 놀라기도 하지만 그런 대화 속에서 타인을 받아들이는 태도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된다. 물론 복잡하고 힘겨울 수 있겠지만 나름대로 흥미로운 부분도 있다. 나와는 전혀 다른 성향을 가진 타인의 목소리를 듣는 것이 생각보다 재미있는 데다 그들과 나의 공통된 부분을 발견하고 같은 경험을 공유하는 기쁨을 누리는 것 또한 왠지 끌리기 때문이다. 서로 다른 존재가 하나가 되기 위해선 여러 시행착오가 따르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욱이 재미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2021-05-31

백석의 참치회와 낚시금지법

시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시인인 백석은 낚시인들에게도 사랑 받아 마땅하다. “참대창에 바다보다 푸른 고기가 께우며 섬돌에 곱조개가 붙는 집의 복도에서는 배창에 고기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이즉하니 물기에 누굿이 젖은 왕구새자리에서 저녁상을 받은 가슴 앓는 사람은 참치회를 먹지 못하고 눈물겨웠다”(‘시기의 바다’)는 시에서 “배창에 고기 떨어지는 소리”야말로 낚시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소리가 아닌가? “참치회를 먹지 못하고 눈물겨웠다”의 대목에선 선상낚시를 나섰다가 빈손으로 돌아온 ‘꽝조사’의 안타까운 심정이 엿보인다.물론 1930년대 백석이 왕돌초나 관탈도에 가 참다랑어 낚시를 즐겼을 리는 만무하다. 1912년 평북 정주에서 태어난 백석은 청년이 될 때까지 바다를 보지 못했거나 평북 서남부와 인접한 황해를 본 게 전부였을 것이다. 1929년 일본 유학길에 올라서야 처음 대양을 보게 된 백석이 일본 혼슈 지방 어촌의 풍경을 그린 것이 위 시다. 가난한 유학생으로 하숙집에 머무는 시인에게 ‘참치회’란 그림의 떡이었을 것이다. 못 먹어 눈물겨울 정도로 백석은 생선회를 좋아한 모양이다.1935년 백석은 박경련이라는 여인을 짝사랑하게 되고, 이듬해 그녀의 고향인 통영에 세 번이나 찾아가는데, 그때 본 바닷가 마을의 풍경을 그린 작품이 ‘통영’ 연작이다. “전복에 해삼에 도미 가재미의 생선이 좋고/ 파래에 아개미에 호루기의 젓갈이 좋고”, “집집이 아이만한 피도 안 간 대구를 말리는 곳”이라고 노래했는데, 전복, 해삼, 파래, 아개미(명태 아가미젓)는 통영을 대표하는 해산물이다. 도미(참돔, 감성돔, 벵에돔, 돌돔), 가재미(도다리), 호루기(호래기), 대구는 그때나 지금이나 바다낚시의 훌륭한 대상어가 아니었을까?생선은 확실히 특별한 식재료다. 손질된 것을 시장에서 사다가 조리하는 경우엔 다른 음식과 별반 다를 바 없지만, 직접 낚은 물고기의 눈을 바라보며 그 숨을 거두어야 하는 ‘낚시 요리’는 각별하고 애틋한 행위다. 한 그릇 음식이 사람 앞에 오기까지 얼마나 치열하고 숭고한 생멸의 과정을 거쳐야 하는지 일깨워주기 때문이다. 이 여름, 나는 외판 영업사원처럼 분주해질 예정이다. 백조기 같은 반찬용 물고기들부터 귀한 별미인 한치, 문어를 경유해 고급어종인 붉바리까지 잡으려면 매주 서해, 동해, 남해, 제주도로 부지런히 다녀야 한다.먹는 이야기는 잠시 접어둬야겠다. 최근 환경부는 3만5천평 이상 전국 495개소의 주요 저수지를 ‘중점관리저수지’로 지정하여 낚시금지구역으로 봉쇄하겠다고 했고, 전국 지자체들은 서로 경쟁하듯 하천에서의 낚시 행위를 금지시키고 있다. 정부로부터 수질 관리 예산을 지원 받기 위해 일종의 ‘전시 행정’을 펴는 것이다. 낚시가 수질 오염에 미치는 영향은 매우 미미하며, 생활하수가 주원인이라는 게 연구결과로 이미 입증됐는데도 낚시만을 탄압하고 있다. 이에 반발한 낚시인들이 낚시금지법 개정을 위한 국회 청원을 제기했고, 10만 명의 동의를 얻어 현재 국토교통위원회 심사에 회부된 상태다. 외국에서 낚시는 관광자원이자 중요한 여가다. 여행에서 본 유럽과 북미, 일본의 낚시 행정, 낚시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 부러웠다. 우리도 외국 못지않은 천혜의 황금어장을 갖고 있으며, 낚시인들의 의식도 많이 발전해 환경보호, 어자원 보호에 앞장서는데 낚시를 향한 따가운 시선과 근거 없는 풍문들만 여전하다. 낚시인들도 우리 이웃이고 친구다. 그런데 왜 국가는 ‘금지’라는 족쇄를 걸어 예비 범법자 취급을 하는가? 낚시금지법이 바다로 확대되면, 바다낚시 메카인 경북은 지역경제에 큰 타격을 입을 뿐더러 도민들의 생활 만족도도 저하될 것이다. 낚시금지법은 악법이다. 선사시대부터 인류는 낚시를 해왔고, 하천 오염은 물고기를 얻기 위한 낚시 때문이 아니라 고기를 얻기 위한 축산업과 도시 생활에 필요한 물건을 생산하기 위한 공업에서 비롯된 것이다. 어자원 남획의 주범은 불법어업이고, 오히려 낚시는 자연이 허락하는 만큼만 얻어오는 ‘소확행’을 추구한다. 나는 내가 낚시인임이 자랑스럽다. 백석과 동시대에 활동한 윤동주의 시를 패러디하자면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여름으로 가득 차 있”고, “별 하나에 농어와 별 하나에 광어와 별 하나에 한치와 별 하나에 무늬오징어와 별 하나에 백조기와 별 하나에 붉바리… 나는 별 하나에 맛있는 이름 하나씩 불러본”다. “배창에 고기 떨어지는 소리”가 끊이지 않을 이 계절, 낚시인을 친구로 두었다면 생선을 못 먹고 눈물겨울 일은 없을 것이다.

2021-05-31

서른 즈음에게

스물 한두 살 때 쯤, 그러니까 일주일에 술을 여덟 번(하루에 두 번 먹던 날 도 있었으니까)쯤 먹던 개망나니 시절, 학교 과방 소파에 누워 노닥거리고 있는데 후배 하나가 이런 말을 했다. 누구나 그런 시절이 있다. 자신은 매우 특별한 사람이라 무언가 대단한 일을 이루고 난 후, 이전 세상을 살았던 위대한 영혼들처럼 스스로도 가장 빛나는 젊은 시절에 세상에서 사라지고 싶다는 꿈을 꾸는 시절 말이다.“형, 형은 정말 서른까지만 살 것처럼 사는 것 같아요.”“그래? 그럼 그러지 뭐.”이십대 초반이었던 그때의 나는 그랬다. 서른이 아주 많은 나이처럼 생각됐고, 서른 살 이후이 삶은 생각해 본 적도 없었고 그럴 필요도 없다고 생각했다. 서른은 저만치 멀고 시간은 그토록 느리게 가던 시절이었으니까. 그런데 그때는 시간이 점점 빠르게 흘러갈 거라는 건 몰랐다. 지독히 안 가던 하루가 조금씩 조금씩 빠르게 흐르더니 나는 별로 한 것도 없이 서른이 넘어 있었다. 세월은 시위를 떠난 화살과 다를 바 없었다. 그걸 어린 시절엔 몰랐다.커트 코베인은 스물일곱에 죽었다. 짐 모리슨, 지미 핸드릭스, 재니스 조플린, 에이미 와인하우스, 윤동주, 이상. 그들보다 좀 더 산 나는 별다른 업적 없이 팔리지도 않는 것들 몇 개 만들고 허송세월 하고 있었다. 공부는 했으나 당장 아는 게 없고, 사랑은 했으나 당장 아무도 없는 나의 서른. 그래서 그 해에 나온 내 앨범 제목이 ‘설은’이었다. 낯설고, 설익고, 서러운 나이인 것 같아서.시간은 조금 더 흘러 나는 서른다섯이 되었다. 설문조사 같은 걸 할 때 이십대 칸 옆의 삼십대 칸에 체크를 하는 게 이제는 전혀 낯설지 않다. 어느 날 서른을 앞둔 가까운 동생 하나와 소주를 한 잔했다. 돌아보니 후배의 질문에 답하던 시절로부터 10년이 훌쩍 흘러 있었다.“형, 내가 이제 곧 삼십대야.”“그러네. 좀 조급해지나?”“그런 건 아닌데. 어때? 삼십대는?”나는 갓 서른이 되었던 때었다면 하지 못했을 대답을 했다.“재밌어. 난 이십대보다 더 좋아.”진심이었다. 서러운 마음으로 시작된 나의 삼십대는 의외로 이십대보다 재미있다. 그때처럼 온갖 것들이 신기하지는 않지만, 그대신 안목과 취향이라는 게 희미하게나마 생겼다. 재밌는 것, 좋은 것, 맛있는 것을 알고 찾아서 즐길 수 있게 되었다는 거다. 또 생각해보면 이십대 내내 나는 얼마나 궁핍했는가. 교통카드를 충전하기 위해 주머니에 넣어둔 만 원 짜리 한 장을 술값 계산하는 친구에게 쥐어주고 지하철 개찰구를 몰래 넘어가다 붙잡혀 과태료 통지서를 끊어야 했던 그 감각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처럼 나와 우리들의 이십대는 곤궁하고 서글펐다.지금이라고 풍족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그런 지지리 궁상을 떨어야 하는 상황은 아니지 않은가. 연애는 또 어땠나.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다는 김광석 노랫말대로라면 나는 이십대 내내 사랑 한 번 못 해본 가련한 인간일 것이다. 안 아픈 사랑이 없었고 그 앞에 안 서툰 순간이 없었다. 삼십대의 그것은 그때처럼 좌충우돌하는 맛은 없지만 그보다는 평화롭고 때때로 못지않게 뜨겁다. 나이를 먹는다는 게 마냥 슬픈 일은 아닌 모양이다.강백수 세상을 깊이 있게 바라보는 싱어송라이터이자 시인. 원고지와 오선지를 넘나들며 우리 시대를 탐구 중이다.서른이 서러웠던 것은 단지 서른쯤에는 무언가 이루어야 한다는 강박 때문이었다. 그러나 서른이 스스로 무언가 이룰 수 있기나 한 나이인가. 십대까지의 내 삶을 온전히 나의 인생이었다고 하면 좀 억울할 것 같다.그저 시스템이 원하는 대로 착실하게 십대를 마친 뒤에 맞이한 이십대는 비로소 나의 인생이 시작되는 지점일 뿐이다. 그때 이미 무언가를 이룬 비범한 사람들도 있기는 했지만 어디까지나 그것은 그들이 별난 것이지, 누구에게나 시작은 넘어지고 깨지는 경험의 순간일 뿐이다.서른을 눈앞에 둔 그 동생 같은 친구들에게도, 그리고 이십대보다 좋은 삼십대를 보내고 있지만 이따금 고개를 드는 내 조급함에도 이런 말을 해주고 싶다. 서두를 것 없다고. 지금부터라고.

2021-05-24

소설 쓰기의 즐거움

왜 소설을 쓰는가? 그 질문에 굳이 답을 내려야 한다는 생각은 해본 적 없다. 글을 쓴다는 것은 너무 당연하게 내 삶을 구성하고 있는 요소 중 하나였으니까.가끔 그런 이야기를 듣는다. “그래도 너는 좋아하는 일을 하잖아.” 정말 그럴까? 나는 소설 쓰는 것을 정말 좋아하는 것일까? 깜박이는 커서를 앞에 두고 쓴 커피를 연거푸 들이켜며 지끈거리는 머리를 감싸 쥔다. 그러면서 생각한다. ‘대체 나는 왜 이 작업을 지속하고 있는가.’문학을 전공하는 고등학생들과 함께 공부하다 보면 어떤 모순을 발견하게 된다. 단순히 문학작품이 좋아서 글쓰기를 시작했던 아이들은 대학이라는 문턱을 향해 나아가게 된다. 나는 그들을 무사히 졸업시키고 대학에 안착시켜야 한다는 사명을 안고 월급을 받고 있기 때문에 시스템에 편입되기 위한 글쓰기를 가르친다. 마음 한구석에서 양심이 소리친다. 이게 옳은 것인가? 제멋대로 튀어 나가는 아이들의 문장을 천편일률적으로 만드는 것. 다양한 생각을 기성의 틀에 욱여넣는 것이 정말 제대로 된 교육일까? 학생들과 마주할 때마다 가슴이 따끔하다.나 역시 대학에서 문학을 배웠다. 좋은 문학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골몰했고 위대한 작품에 가까워지려고 노력했다.그렇다면 좋은 작품이란 무엇인가? 그것을 정하는 사람은 누구인가? 독자는 진정 자의적으로 문학 작품을 선택하고 있는가?서점에 가면 베스트셀러 코너가 보인다. 자연스럽게 가장 먼저 그쪽으로 발길을 향하게 된다. 책의 겉표지는 화려한 작가의 약력으로 장식되어 있다. 이 책이 얼마나 많이 팔렸는지, 이 작가가 어떤 상을 받았는지, 모두가 알 만한 유명인이 이 작품을 얼마나 감명 깊게 읽었는지. 그것은 책을 비호하고 있는 굉장한 껍데기이며 선택을 종용하는 목소리다. 신춘문예 역시 그런 시스템이다. 심사에서 운 좋게 선택받은 사람이 작가라는 칭호를 부여받게 된다. 수많은 문학상은 문단에 안전하게 편입될 수 있는 자격을 부여하는 것과 같다. 하루에도 수십 권의 책이 세상에 쏟아지고 가지각색의 서사가 범람하고 있다. 자신의 이름을 지우고 오직 글 자체만으로 살아남을 수 있는 작가는 과연 몇이나 될까?등단을 하고 몇 년간은 그 사실이 내 발목을 붙잡았다. 나 역시 그러한 시스템의 수혜자였으며 내게 자격이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었다. 문예지에 글을 발표하고 나면 악몽을 꿨고 작은 지적에도 몸을 움츠렸다. 나는 더욱 자신을 채찍질했다. 더 깊이 있는 사유를 해야 해. 적확하면서 아름다운 문장을 써야 해. 독특한 소재를 찾아서 다층의 서사를 구축해야 해. 그래야만 인정받는 글을 쓰는 작가가 될 수 있어.그때의 나는 단조로운 삶과 미진한 재능을 탓했다. 그러면서도 매일같이 책상 앞에 앉았다. 소설 쓰기의 괴로움은 소설 쓰기만으로 잊을 수 있었다. 어째서일까. 나는 예술이라는 가치보다는 내 삶이 우선인 사람이었다. 그런데도 자신을 고통으로 몰아넣다니.그러다 한 가지, 너무나 단순하고 자명한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이 고통의 과정을 즐거워하고 있었다. 여기서 말하는 즐거움이란 단순한 재미의 개념이 아니다. 그것은 무시무시한 괴물이 들어있을지도 모를 컴컴한 미로 속으로 기꺼이 발을 내딛는 욕망이나 충동에 가깝다.문은강 ‘춤추는 고복희와 원더랜드’로 주목받은 소설가. 2017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작가로 등단했다.글을 쓴다는 것은 나 자신과 세계를 이해하는 일이다. 내 안에 솟아오르는 호기심을 이리저리 살펴본 뒤에 나름의 답을 내어놓는 것이다. 그러한 사고 과정을 기록하는 지난한 행위가 쓰기다. 글을 쓰는 방법은 오직 하나뿐이다. 자리에 앉아 집중하는 것. 이후에 남는 건 일련의 발자국이다. 작업물은 누구의 것도 아닌 나만의 목소리로 박제된다. 시간은 흐르다가 끝나기 마련이지만 소설의 서사는 차원의 벽을 넘어선다. 그러니까 소설을 쓴다는 건 과거의 망령에 조언을 듣고 미래의 인류와 소통하는 일, 상처를 입고 치유 받는 일이 동시적으로 일어나는 일이다. 나는 이러한 작업에 매료되었고 많은 것을 잃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흔쾌히 선택했다.이것은 비단 소설 쓰기에만 국한된 이야기는 아니다. 우리는 각자가 원하는 삶의 지점을 향해 간다. 가끔은 이것이 옳은 방향일까에 대해 의심하기도 한다. 내게 재능이 있을까. 온 힘을 다해 당도한 끝이 허무에 불과하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우리가 허공으로 발을 내딛는 자신을 자랑스럽게 여겼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러한 행위에 ‘즐거움’이라고 이름 붙이자. 그 경쾌한 단어를 원동력 삼아서 어리석고 부당한 세계를 향해 기꺼이 나아가기를 바란다.

2021-05-24

육군 아미타이거

새 군가의 중요성을 말한 남영신 육참총장. /연합뉴스“높은 산 깊은 골 적막한 산하 눈 내린 전선을 우리는 간다. 젊은 넋 숨져간 그때 그 자리 상처 입은 노송은 말을 잊었네. 전우여 들리는가 그 성난 목소리. 전우여 보이는가 한 맺힌 눈동자”군가 ‘전선을 간다’다. 이 곡이 ‘최후의 5분’과 함께 군인들에게 가장 사랑 받는 군가인 이유는 간단하다. 노래가 좋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뮤지컬의 개척자이자 피아니스트로도 활동한 작곡가 최창권의 곡에 영화기획자 우용삼이 가사를 붙였다. 웅장한 오케스트라로 시작해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도입부를 지나 야수의 함성으로 포효하는 클라이맥스까지, 기승전결 구조의 선율에 서정적이고 또 격정적인 가사가 어우러져 명곡이 됐다. 부르다보면 가슴이 벅차 눈물이 맺히기도 한다.나는 아직도 가끔 군가를 부른다. 특히 중요한 일을 앞뒀을 때, 이를테면 소개팅 가는 차 안에서 “아름다운 이 강산을 지키는 우리. 사나이 기백으로 오늘을 산다.…” ‘멸공의 횃불’이라든가 “높은 산 깊은 물을 박차고 나가는 사나이 진군에는 밤낮이 없다…” ‘진군가’를 목 터져라 부르면 테스토스테론이 분비되면서 남성성이 극대화된다. 그러면 자신감이 생겨 말도 잘하고, 상대에게 당당한 인상을 준다. 군대를 다녀온 사람이라면 삶에서 어려움을 겪을 때 자신도 모르게 군가를 흥얼거리며 마음을 다잡아본 적이 있을 것이다.군대에서 군가 부르는 게 유쾌할 리는 없지만, 그마저도 멜로디가 후지거나 노랫말이 저질이면 정말 부르기 싫다. 군가는 병사들의 사기와 연대감을 고양하고, 애국심을 고취시키기 위해 부르는 노래다. 때문에 역동적인 4박자 행진곡풍이 대부분이다. ‘푸른 소나무’, ‘조국이 있다’, ‘육군가’ 등이 명곡으로 꼽힌다. 지난 2011년 연평도 포격도발 당시 전사한 서정우 하사와 문광욱 일병의 영결식에서 해병대 장병들이 벌겋게 물든 눈을 섬광처럼 번뜩이며 ‘나가자 해병대’를 합창하는 장면은 피를 끓게 했다.최근 육군이 신곡을 발표했다. 제목은 ‘육군, We 육군’이다. 이 곡은 현재 복무중인 장병들에게 부끄러운 ‘흑역사’를 생성해줄 가능성이 높다. 뜬금없이 영어를 넣은 제목부터 심상치 않더니 노랫말은 더 해괴하다. “육군 아미타이거 육군 육군 육군 Go Warrior Go Victory 육군 육군 육군(…) 워리어 플랫폼 최강의 전사 AI 드론봇 전우와 함께…” 이게 대한민국 육군 군가인지 ‘파워레인저’나 ‘후레쉬맨’ 따위 아동용 액션 영화 주제가인지 구분이 되지 않을 정도다.가사도 그렇지만 행진곡과는 거리가 먼, 쉼표와 셋잇단음표가 자주 등장하는 지루하고 난해한 멜로디도 괴이하다. 태평소와 꽹과리를 넣은 국악풍 멜로디에 Warrior, Victory 같은 영어 가사가 얹어져 부조화를 이뤘다. 따라 부르기도 어렵고, 따라 부르고 싶지도 않다. 군가는 부르면 기운이 나야 하거늘 ‘육군, We 육군’은 한 소절 부르자마자 자괴감이 밀려온다. 네티즌들은 “있던 애국심도 사라진다”, “전시에 부르면 총 맞아 죽기 전에 웃겨 죽겠다”라며 혹평 일색이다.지난달 22일 육군 최고 지휘부 회의에서 남영신 참모총장은 “새 군가를 기도문처럼 암기하고, 부대마다 가창 점검을 해 잘하는 부대에 포상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장병들은 이 노래를 입이 닳도록 불러야만 한다. 배식은 부실하고, 코로나19 대응도 엉성한 마당에 창피한 노래까지 불러야 하는 장병들이 불쌍하다. 사기 떨어지는 소리가 철책을 넘어갈까 걱정이다.이병철 문학평론가이자 시인. 낚시와 야구 등 활동적인 스포츠도 좋아하며,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3사관학교에서 장교 임관훈련을 받을 때, 음악을 전공한 동기 김경록 군이 작곡하고 내가 작사한 ‘9중대가’는 힘찬 4박자 행진곡이었다. “우리들 가슴속 불꽃은 팔월의 태양보다 뜨겁고 우리들 외치는 함성은 폭풍 속 천둥보다 우렁차. 폼생폼사 최강 9중대! 날개를 펼쳐라. 너와 난 혼자가 아니야. 우린 영원히 함께야. 폼생폼사 최강 9중대! 더 크게 외쳐라. 우린 절대 포기하지 않아. 나가자 최강 9중대. 강하자 최강 9중대!” 일개 사관후보생 둘이 만든 이 군가를 모든 중대원이 즐겨 불렀다. 부르면 전우애가 솟았다. 국방부는 저작권료를 내고 정식 군가로 채택하는 게 어떨까. ‘9중대’를 ‘해병대’라든가 ‘수색대’로 바꾸면 되지 않을까? “육군 아미타이거”보다는 훨씬 낫고, 박목월이 작사한 ‘전우’에 이어 또 한 곡 시인의 명군가가 될지 모른다.

2021-05-17

보고 듣고 만지는 요즘 장난감

요즘 초등학생들 사이에서 ‘팝잇 푸시팝’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팝잇 푸시팝은 실리콘 틀 위의 튀어나온 반구를 손가락으로 눌러 반복적인 동작을 하며 즐기는 손 장난감이다. 외형 또한 실리콘 얼음 틀 같은 단순한 모양인 데다 누르는 것 말고는 별다른 놀이 기능도 없음에도 힘을 주어 구멍을 누르는 촉감과 소리는 특유의 쾌감과 묘한 중독성을 이끌어 낸다. 멍하니 포장용 에어캡을 터뜨린다거나,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손바닥 안에서 호두 알을 굴리던 모습을 떠올리면 이해하기 쉽다.팝잇 푸시팝은 색깔이나 모양, 크기도 다양하다. 휴대하여 플레이 할 수 있는 미니 버전부터, 가방에 달 수 있는 열쇠고리 버전, 기존 사이즈보다 2~3배의 몸집을 자랑하는 빅 버전도 있다. 구매처도 학교 근처 완구점이나 인터넷 문구 쇼핑몰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데다 가격도 천 원에서 만원 안쪽으로 저렴하다.현재 팝잇 푸시팝은 유명 인터넷 문구 쇼핑몰에서 전체 장난감 베스트 순위 1위를 차지할 정도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반에서 가지고 있지 않은 아이를 찾는 게 더 빠를 정도라니 말 다 했다. 유튜브에선 팝잇 푸시팝으로 재밌게 노는 법을 알려주는 영상의 조회 수가 272만 회가 넘을 정도다. 여기에 단순 구매 후기나 플레이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풍선이나 종이박스, 물감을 이용해서 직접 만들어 자신만의 레시피를 공유하기도 한다. 팝잇 푸시팝을 직접 DIY 해서 만드는 영상은 조회 수 250만 회를 자랑한다.이런 종류의 장난감을 ‘피젯 토이’라고 부르는데, 사실 피젯 토이는 성인들 사이에서 꾸준한 인기를 끌고 있다. 피젯 토이는 fidget(꼼지락거리다)+toy(장난감)의 합성어로 손장난하는 장난감을 뜻한다. 단순 행동 반복으로 인해 안정감을 얻고 스트레스를 푸는 용도인데, 그도 그럴 것이 피젯 토이는 처음 1990년대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ADHD)를 위해 만들어졌다. 한 자리에 앉아 집중하지 못하는 이들을 위해 개발한 것으로 ADHD 환자들의 집중력을 높이는 데 효과적이라는 연구 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손가락으로 튕기면 회전하는 피젯 스피너, 조이스틱을 돌리거나 반지처럼 손가락에 끼워 돌리는 피젯 링, 말랑한 재질의 스트레스 볼 등 종류도 무궁무진하다. 대표적으로 많은 이들이 선호하는 피젯 큐브는 주사위 모양으로, 볼펜의 딸깍 소리가 나는 버튼이나 돌릴 수 있는 롤러, 조이스틱, 회전판, 스위치 등이 각 면에 달려 있다. 이걸 무의식적으로 반복 행동하며 일정 클릭음에 안정감을 느끼고, 정교하고 규칙적인 움직임을 보며 심리적인 불안감을 해소한다는 것이다. 피젯펜은 공부하거나 회의를 할 때 자신도 모르게 펜을 돌리거나 손을 끊임없이 만지고 움직이는 등의 습관을 가진 사람들을 위해 만들어졌다. 펜 전체를 구부리거나 뚜껑에 달린 동그란 볼을 떼는 등 손을 계속해서 움직이는 동안 창의적인 생각을 고안해낼 수 있다고 한다.윤여진 2018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 부문에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현재보다 미래가 기대되는 젊은 작가.심지어 antsy labs에서 나오는 피젯 큐브는 국내에서 구하기 어렵다. 피젯 토이가 전 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끌면서 많은 페이크 제품이 만들어졌는데, 국내 또한 페이크 제품을 파는 경우가 대다수이기 때문이다. 정품을 구매하기 위해서는 해외 배송이나 중고 거래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데 이마저도 빠르게 품절 되어 쉽지 않다.주위를 둘러보면 생각보다 집중하기까지 힘겨운 사람, 손톱을 자주 깨물거나 입술을 뜯는 사람, 정적을 견디기 힘들어하는 이들이 많다. 그들에게 피젯 토이는 단순한 장난감만은 아닐 것이다. 직접적인 촉감과 소리로 인해 스트레스와 강박을 풀 수 있는 창구가 되어주며, 스마트폰에서는 느낄 수 없는 소소하고도 새로운 재미가 되어준다. 피젯 토이는 처음 초중고 학생을 위주로 유행했지만 나아가 취업준비생, 수험생, 회사원들의 인기 장난감으로 자리 잡았다. 그들의 자리에서 느끼는 학업 스트레스나, 극심한 경쟁으로 인한 괴로움 등 누군가의 삶에 부족한 부분을 채워줄 수도 있다는 것이다.

2021-05-17

부재를 견디는 방법

엄청나게 살갑다고 볼 수는 없지만, 나는 하나뿐인 여동생과 꽤 친한 편이다. 사실 우리가 친한 편인 줄 몰랐는데, 친구들을 보니 의외로 동생과 별 용무 없이 일상적인 이야기를 주고받는 사례가 드물다는 걸 발견했다. 우리는 그래도 어디 가면 사진도 찍어 보내고, 서로 누굴 사귀면 그런 이야기도 공유한다. 동생은 디자이너이고 유행에 민감한 편이라 내가 앨범을 만들거나 책을 쓸 때 모니터링을 부탁하기도 하고, 디자인 작업을 맡기기도 한다. 이만하면 다른 집에 비해 돈독하게 지내는 편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동생뿐만 아니라 아버지와도 나는 대화가 많은 편이다. 친구들은 아버지와 대화 나누는 일이 어렵다고 하는데, 나는 아버지와 나름 다양한 주제로 대화를 한다. 내 일에 관한 이야기, 주변 친구이나 친척들 이야기, 야구 이야기, 정치 이야기, 그리고 동생 이야기. 가급적 일주일에 세 번 정도는 찾아가 밥도 먹고 이야기도 나누려 한다. 아버지도 내가 갈 때마다 밥도 차려주시고, 핸드드립 커피까지 내려주시고, 돌아갈 때는 주차장에서 차 빼는 것까지 봐 주시곤 한다. 아버지는 내게도 충분히 다정하시지만 동생에게는 몇 배나 더 다정하다. 나와 대화하시는 목소리 톤이 도~ 정도라면 동생에게는 미~ 정도의 톤으로 이야기를 하신다.이런 우리 집 분위기가 부럽다는 사람들이 많다. 어떻게 그렇게 돈독할 수 있냐고, 원래부터 집안 분위기가 그랬냐고 묻곤 한다. 나는 아버지가 원체 다정하시고 나도 동생도 그런 영향을 받아 그렇다고 대답을 하곤 하는데, 사실 우리 셋이 다른 집보다 좀 더 끈끈하게 뭉치게 된 이유는 따로 있다. 그것은 바로 어머니의 부재. 우리는 모두 서로에 대한 어느정도의 연민을 가지고 있다.‘집안의 기둥은 아버지’라는 것이 전통적인 관념이지만 우리집은 꼭 그렇다고만은 볼 수 없었다. 경제적인 것들이야 언제나 아버지의 몫이었지만, 가족이라는 공동체에서 중심적인 역할은 항상 어머니가 맡았다. 어머니가 계시는 동안 우리는 서로를 별로 챙겨 본 적이 없다. 아버지도 어머니가 챙기고, 나도 어머니가 챙기고, 동생도 어머니가 챙겼다. 아버지와 나와 동생 사이에 대화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중요한 이야기들은 대부분 어머니의 입을 거쳤다. 나와 동생의 생활에 문제가 생기면 우리는 그것에 대해 어머니께 이야기했고, 어머니는 그것을 아버지께 상의하는 식이었다.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바라는 부분이 있다면 그 역시 어머니를 통해서 우리에게 전달되었다. 우리를 교육하는 역할, 그리고 아버지를 독려하고 살피는 역할은 모두 어머니의 몫이었다. 어머니는 우리에게 집 자체였다. 아버지와 나와 동생은 그 안에서 서로 다정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그런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셨다는 것은 집안을 지탱하는 중심축이 사라져버렸다는 걸 의미했다. 그런 존재가 사라진다는 것은 가정이 붕괴할지도 모를 위기를 의미한다. 우리 집도 마찬가지였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일은 그야말로 가정 자체가 사라져버리고 마는 것과 같은 충격이었다.강백수 세상을 깊이 있게 바라보는 싱어송라이터이자 시인. 원고지와 오선지를 넘나들며 우리 시대를 탐구 중이다.어쨌거나 우리는 어머니 없이 평생을 버텨야 한다. 우리 셋 다 무너지지 않기 위해서는 서로가 조금씩 어머니의 역할을 짊어지는 수밖에 없다. 어머니가 없는 구멍을 메우기 위해서, 조금씩 더 서로를 염려하고 챙기는 방법을 익혀야 했다. 다행스럽게도 아버지와 나, 동생이 모두 이러한 책임감을 느끼고 있었던 것 같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이후 아버지는 더욱 다정해졌고, 나와 동생은 철이 조금 빨리 들었다. 슬픈 마음은 똑같을 것이 분명했기에 우리는 서로가 안쓰러웠고, 그런 서로를 위해 각자가 나름의 다짐을 했던 것이다.어머니가 떠나신 지 15년이 넘었다. 그동안 우리는 각자에게 주어진 새로운 역할들에 익숙해졌다. 우리 집에는 다른 집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재미난 먹이사슬 관계가 있다.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나는 가끔 아버지가 내게 진지한 말씀을 하시면 거역하기 어렵기만 한데, 아버지는 동생에겐 꼼짝도 못하신다. 아버지께는 버릇없이 굴 때가 많은 동생은 어려운 결정을 하기 전에 항상 내게 상의를 해 오고, 내 의견을 결코 허투루 듣지 못한다. 나와 아버지와 동생이 가위 바위 보처럼 물고 물리는, 이 기묘한 먹이사슬은 달리 말하면 서로 의지하기 위해 터득한 하나의 방식이다. 이런 식으로 우리는 서로의 가슴속에 있는 어머니의 빈자리를 이제는 부족하게나마 메울 줄 알게 된 것이다.

2021-05-10

어느 봄에 만난 사람들

원고에 치여 정신없이 바쁘던, 책상 앞에 앉아 이가 시릴 정도로 차가운 아이스 아메리카노만 벌컥벌컥 들이키며 ‘이건 아니야!’ 하고 애꿎은 머리카락만 쥐어뜯던 어느 봄날, 나는 밀린 일을 제쳐두고 무작정 밖으로 나왔다. 목적지 없이 터벅터벅 걸어가는 중에도 머릿속에는 해야 할 일들이 자꾸만 떠올랐다. 며칠째 제자리만 맴도는 문장과 뜻대로 되지 않는 결과물, 미래에 대한 막연한 걱정이 암담한 폭풍처럼 몰려왔다.나는 누가 봐도 우울한 사람의 얼굴을 하고 집 근처의 공원에 당도했다. 벤치에 앉아 한숨만 푹푹 내쉬고 있는데 저 멀리서 조랑말을 끌고 오는 사람이 보였다. 조랑말이라니. 두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평일 대낮에 조랑말을 산책시키는 사람을 만날 것이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남자는 익숙한 손놀림으로 말을 묶고 있던 로프를 나무 밑동에 매고 빗을 꺼 내들어 털을 빗겨주기 시작했다. 조랑말은 다정한 손길을 받으며 느리고 우아하게 발밑의 풀을 뜯어 먹었다. 나는 그 모습을 눈을 떼지 못하고 지켜보았다. 봄날의 볕을 온몸으로 느끼던 그들은 그렇게 그들만의 시간을 즐기다가 유유히 왔던 길을 돌아갔다. 나는 점점이 사라지는 남자와 조랑말의 뒷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사진이라도 찍어둘걸. 이 장면을 누가 믿겠어.그렇게 다시 벤치에 앉아 있는데 이번에는 외발자전거를 타는 아저씨가 내 앞을 지나갔다. 머리 위로 손뼉을 치면서 요란스럽게 외발자전거를 타는 그를 보고 킥킥대는 사람들도 있었다. 엉덩이를 죽 빼고 위태롭게 앞으로 나아가는 그 모습이 누군가에게는 우스울 수도 있겠지만 내게는 경이로워 보였다. 외발자전거를 타는 일은 그에게 꼭 해내야만 하는 중요한 일처럼 보였고 동시에 정말이지 즐거워 보였기 때문이다.그날 만났던 사람들은 지난한 현실에서 빗겨 난 느낌을 주고 있었다. 시시포스의 바위 굴리기같이 끊임없이 되풀이되는 삶에서 벗어나 다른 온도의 시간을 사는 것처럼 보였다. 회사에서 업무를 처리하고 통장의 돈을 차곡차곡 불리는 시간에 뗏목으로 망망대해를 건너고 자전거로 알프스산맥을 넘는 사람들처럼. 돈을 받거나 사회에 강요되어서 하는 일이 아니라 순수하게 자신의 목표와 즐거움을 위해 나아가고 있는 이들이 떠올랐다.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소설 ‘그리스인 조르바’에서 조르바는 실존적이고 원시적인 삶을 산다. 그는 종교나 학문, 국가 등 어떤 관습에도 얽매이지 않는다. 가슴에 차오르는 감정을 그대로 느끼고 드러낸다. 물레를 돌리는데 거슬린다는 이유로 자신의 손가락을 잘라내고 감정이 차오르면 자갈밭 위에서 춤을 춘다. 그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기 때문에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동시에 나는 우리 청년 세대를 본다. 냉소와 허무를 모자처럼 쓰고 더 이상 미래를 꿈꾸지 않는 젊은이들. 그것은 멀리 있는 일이 아니라 내 주변에 실재하는 친구들의 삶이다. 그들은 하루하루가 눈을 가린 채 미로 속을 걷는 것 같다고 말한다. 언제든지 대체될 수 있는 공장의 부품처럼 살아가는 것이 옳은가 자문하면서 칠흑같이 어두운 방에서 앞을 더듬거리는 기분으로 살아간다. 기계처럼 돈을 버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 살아생전 내 집 마련은 할 수 있을까.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하나 아등바등하면서.문은강 ‘춤추는 고복희와 원더랜드’로 주목받은 소설가. 2017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작가로 등단했다.나 역시 마찬가지다. 지급이 늦어지는 원고료에 조바심을 내고 사소한 일에도 여유를 갖지 못한다. 돈도 벌고 인정도 받기를 원하지만 헛물만 켜는 가난한 작가로 생을 마감하는 것은 아닌가. 이 삶을 언제까지 지속할 수 있을까 고뇌한다. 인생에 대한 자유를 구속하고 내면의 소리에 따라 행동하는 것을 주저하곤 한다. 낭만과 자유라는 관념을 우습게 여기고 현실적 문제에 주의를 기울인다.그럴 때면 어느 봄날에 만났던 조랑말과 위태롭게 외발자전거를 타던 남자를, 조르바의 목소리를 떠올려본다. 조르바는 이렇게 말했다.“인생이란 가파른 오르막과 내리막이 있는 법이지요. 분별 있는 사람이라면 브레이크를 써요. 그러나 나는 브레이크를 버린 지 오랩니다. 나는 꽈당 부딪치는 걸 두려워하지 않거든요.”

2021-05-10

은성수 금융위원장님께

은성수 금융위원장이 생각에 빠져 있다. /연합뉴스안녕하세요. 저는 시와 문학평론을 쓰면서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 30대 후반의 필부입니다. 최근 논란이 된 발언이 아니었다면 위원장님을 알지도 못했을 무지렁이가 이렇게 지면을 빌려 편지글을 띄웁니다. 삿되어 보일지라도 눈과 마음을 기울여 읽어주시길 당부 드립니다. 이 글은 저 한 사람이 아닌 수많은 2030 청년들의 분노와 좌절감이 쓰게 한 것이니 말입니다. 먼저 분명히 말씀드릴 것은, 저는 가상화폐 투자자가 아닙니다.위원장님께서는 지난달 22일 국회 정무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가상화폐 투자에 대해 “많은 사람이 투자한다고 해서 관심을 가지고 보호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세금은 걷겠다”고 하셨지요. 정부가 개입할 시장이 아니라면서 세금은 걷겠다는 황당한 발상에 가상화폐 투자자들은 아연실색했습니다.투자자들은 정부에 보호를 요청한 적 없습니다. 손실에 대해서 책임지라는 것이 아닙니다. 거래소의 시세조작이라든가 입출금 시스템의 불안정성이라든가 하는 위험 요소들을 방지할 최소한의 안전장치를 마련해달라는 것입니다. 투명하고 안정성 있는 거래가 되도록 가상화폐 시장을 제도화시켜 불법 행위들을 감시해달라는 것입니다. 그렇게만 된다면 투자자들은 얼마든지 세금을 낼 수 있습니다. 가상화폐를 제도화할 생각이 없으면 세금을 걷지도 말아야 합니다. 투자자들이 정부에 바라는 것은 그저 아무것도 하지 말아달라는 것, 가상화폐에 대한 충분한 이해 없이 함부로 내뱉는 말로 시장을 교란시키지 말라는 것입니다.4년 전 당시 박상기 법무부장관이 ‘거래소 폐쇄’ 발언을 한 후 가상화폐 시장은 반토막 났습니다. 수많은 투자자들의 자금이 휴지조각이 됐습니다. 네티즌들은 이 사태를 ‘박상기의 난’이라 명명했는데, 4년 후 ‘은성수의 난’이 더 큰 패닉을 일으켰다는 사실을 위원장님께서는 아시는지요? “9월까지 등록이 안 되면 200여개의 가상화폐거래소가 다 폐쇄될 수 있다”는 무책임한 발언을 하신 다음날 가상화폐 시장에는 대폭락이 왔습니다. 위원장님 말씀과 결부시키고 싶진 않지만, 가상화폐가 대폭락한 지난 24일, 강원도에서 코인 투자 실패를 비관한 20대 청년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있었습니다.이병철 문학평론가이자 시인. 낚시와 야구 등 활동적인 스포츠도 좋아하며,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위원장님의 말씀에 정부가 가상화폐를 바라보는 시선이 고스란히 담겼다고 봐도 될까요? 지난 4년간 미국과 독일, 일본 등이 가상화폐를 금융상품으로 인정하고 제도화해서 투자자 보호 및 과세를 합리적으로 해나가려는 것과는 정반대의 기조를 보이니 착잡할 따름입니다. 세계 최대 디지털 자산 투자그룹인 그레이스케일을 비롯해 테슬라, 넥슨, 골드만삭스, 페이팔 등이 코인 시장에 뛰어드는 등 선진국들은 가상화폐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발 빠른 노력을 하고 있는데, 우리나라는 블록체인 기술과 코인 시장에 대한 몰이해로 세계 경제 흐름을 역행하려 하는 건 아닌지 심히 우려됩니다.하지만 가장 우려되는 건 위원장님의 ‘꼰대’적 인식입니다. “잘못된 길로 가면 어른들이 이야기를 해줘야 된다”는 위원장님의 이 한 마디는 가상화폐 투자자들뿐만 아니라 2030세대를 분노하게 했습니다. 평생 성실하게 일해도 서울에 집 한 채 살 수 없는 현실, 위원장님을 포함한 기성세대보다 훨씬 더 노력해서 외국어, 컴퓨터 활용능력, 자격기술 등을 갖추고도 선배들이 채용의 문을 걸어 잠가 취업을 꿈꿀 수 없는 현실, 정작 4050세대는 부동산을 통해 손쉽게 부를 축적하고는 2030세대에겐 온갖 규제로 기회의 사다리를 걷어차 절망만을 안겨준 현실…. ‘잘못된 길’은 누가 만들었는지요? 위원장님은 가상화폐가 “이 시장에 안 들어왔으면 좋겠다는 게 솔직한 심정”이라고 하셨는데, 부동산과 주식 시장을 쥐고 있는 기성세대로서 젊은이들이 돈을 버는 코인 시장이 영 아니꼬워 보인 건 아니신지요?제가 가르치는 학생들 중에도 가상화폐 투자자들이 많습니다. 대부분이 학업과 아르바이트를 병행합니다. 급여로 학자금 대출을 갚고, 자취방 월세를 내고, 공과금을 치르고 나면 남는 게 없습니다. 불공평한 사회 구조에서 아무리 열심히 살아도 허락되지 않는 ‘여윳돈’이라는 걸 좀 가져보려고, 치킨 사 먹고, 부모님 용돈 드리고, 애인에게 작은 선물 하나 해주고 싶어 소액으로 코인 시장에 뛰어든 그 청년들을 ‘일확천금을 노리는 투기꾼’이라 매도하지 마십시오. 이번 기회에 어른들이 만든 ‘잘못된 길’로 청년들을 내몬 과오부터 반성하시길, 공직자의 말 한 마디가 얼마나 큰 파급력을 지니는지 깨달으시길 바라며 이만 줄입니다.

2021-05-03

근사한 할머니가 된다는 건

10대에서 30대까지 대표하는 MZ세대는 요즘 ‘할매니얼’에 푹 빠졌다. 할매니얼이란 할매와 밀레니얼을 합친 용어로 옛 할머니의 감성을 추구하는 새로운 트렌드다. 할매니얼에 열광하는 이들은 ‘그래니룩’ 을 즐겨 입는다. 그래니룩은 할머니를 뜻하는 그래니(Granny)와 패션 스타일을 의미하는 룩(look)을 붙인 합성어로, ‘할머니 같은 패션’을 의미한다. 마치 할머니의 옷장 속에서 발견할 법한 화려한 무늬의 스웨터나 빛바랜 색감의 카디건, 발목까지 내려오는 주름치마나 몸빼 바지처럼 보이는 통 넓은 바지가 그 예다.실제로 10대 20대가 즐겨 구입하는 온라인 쇼핑몰 무신사에서도 무릎을 덮는 롱스커트나 꽃무늬 제품이 오랜 기간 인기 순위에 머무르고 있다. 카디건 판매도 전년보다 164%나 늘었다고 한다.광고계에서도 할매니얼 열풍이 불었다. MZ세대가 즐겨 찾는 쇼핑몰 앱인 ‘지그재그’는 배우 윤여정 씨가 대표 모델로 등장한다. “옷 많이 산다고 무슨 법에 저촉되니? 괜찮아 인생 왔다 갔다 하면서 사는 거지. 그러니까, 너희 마음대로 사세요.” 광고 속 윤여정 씨의 대사다.물건을 구매한다는 의미의 ‘사다(buy)’와 인생을 ‘산다(live)’ 두 가지 의미를 내포하여 던지는 메시지와 강렬한 이미지는 많은 이들의 주목을 이끌었다. 단순히 카피가 좋아서가 아니다. 75세의 윤여정 배우가 내뱉는 대사는 그간 그녀가 지어 왔을 삶의 묵직함이 고스란히 전달되어 신뢰를 더했기 때문이다.햇반컵 광고에서는 81세의 나문희 씨가 등장한다. 핵심연구원 A씨의 실종사건을 다루며 추리게임을 펼치는 내용을 선보였다. 공식처럼 젊은 여배우들이 등장했던 화장품 광고에서도 80세 강부자 씨가 모델로 등장한다. 버스 안에서 노래와 랩을 부르며 요즘의 ‘힙한 할머니’의 위세를 보여주었다.‘할매니얼’의 유행은 먹거리에서도 뚜렷하게 나타난다. 식품업계에선 강릉초당두부케이크, 찰옥수수 케이크, 쌀로 만든 아이스크림 등 소위 할머니 입맛이라 불리는 음식들을 심심치 않게 쏟아냈다. 프렌차이즈 카페나 베이커리에서도 MZ세대의 입맛을 노려 양갱이나 약과 같은 간식을 새롭게 내어놓는다거나 쑥, 흑임자, 인절미맛 디저트를 앞다투어 출시했다.윤여진 2018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 부문에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현재보다 미래가 기대되는 젊은 작가.MZ세대가 이토록 할머니에 열광하는 이유는 뭘까. 레트로 열풍도 한몫했다. MZ세대는 자신이 겪어보지 못한 시대적 분위기에 새로움을 느끼고 이를 그들만의 새로운 스타일로 재해석해 놀이처럼 즐긴다.그렇지만 무엇보다 ‘할매니얼’의 중심은 할머니다. MZ세대를 매료시킨 그녀들은 자신보다 어린 세대와의 소통을 주저하지 않는다. 자신이 쥔 권력을 과시하지 않는 동시에 우아하면서도 지적이다. MZ세대는 자신만의 삶과 철학을 지혜롭게 가꾼 여성을 롤모델로 쫓으며 그녀들의 올곧음과 당당함을 선망하는 것이다.유튜브의 영향력도 크다. 131만의 구독자를 보유한 유튜버 박막례 할머니는 특유의 유쾌함과 경쾌함으로 젊은 세대와 소통을 나눈다. ‘하고 싶은 거 하고 살어’, ‘내 박자에 맞춰 살어.’ 라며 젊은이들의 도전을 응원하고 격려한다. 동시에 삶을 살아가기 위해 그간 포기했던 것들을 뒤로 하고 늘 새로운 것에 망설임 없이 도전하는 모습도 보여준다.구독자 80만명을 보유한 옷 잘 입는 할머니 ‘밀라논나’의 유튜브도 빼놓을 수 없다. ‘논나의 아지트’는 젊은이들의 고민을 듣고 조언을 해주는 콘텐츠다. 나이나 관습에 얽매이지 않는 깨어 있는 조언과 함께 남을 의식하지 않는 솔직하고도 열정적인 모습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젊은 세대를 이해하려는 따스하고도 섬세한 시각이 MZ세대를 사로잡았다.윤여정 배우의 말처럼 우리 모두는 이 생을 처음 살아보는 것이므로. 자신이 체득한 지식과 경험은 전부가 아니고, 모든 것이 상황에 따라 새롭게 변화 한다는 걸 인지해야 한다. 나는 스스로에 대한 맹신이 두렵다. 내가 겪은 고통만 고통이라 여기고, 타인의 고통은 별 것 아니라는 오만 또한 스스로를 과거에 고립시킬 뿐이다. 타인을 수용하는 넉넉한 마음의 크기와 다정하고도 자유로움을 지닌 할머니가 되고 싶다. 이런 고민은 언제나 근사하고 신비롭다.

2021-05-03

80년대생도 있다

최근 1년 간 한국 대중음악계에는 몇 가지 열풍이 있었다. 첫 번째는 BTS 열풍이다. 7인조 보이그룹 BTS는 국내 정상의 자리를 뛰어넘어 빌보드차트 1위에 오르며 세계 무대의 정상에 오른 바 있다. 두 번째는 트롯 열풍이다. TV조선의 미스트롯, 미스터트롯의 연이은 성공에 힘입어 여러 방송사가 앞 다투어 트롯 경연 프로그램을 내어 놓았고, 그로 인해 수많은 트롯 스타가 탄생하였다. 세 번째는 본 연재를 통해 언급한 바 있는 걸그룹 브레이브 걸스의 역주행 열풍이다. 국방 TV 위문열차 프로그램을 시작으로 폭발적인 유튜브 조회수에 힘입어 각종 음원차트와 음악 순위 프로그램의 최정상 자리를 휩쓸었다.이 열풍들은 모두 그것을 촉발시킨 주역이 되는 세대가 있다는 게 주목할 만 하다. 먼저 BTS열풍의 주역은 현재 10대 후반부터 20년대 초반을 이루고 있는 2000년대 생이다. 트로트 열풍은 현재 40대 이상을 이루고 있는 70년대와 그 이전 출생 세대를 중심으로 확산되었고, 브레이브 걸스 열풍은 최근 몇 년 간 군복무의 대상자였던 90년대 후반 출생자들과, 브레이브 걸스 멤버들과 비슷한 연령대인 90년대 초중반 출생자들이 주도하고 있다. 여러 세대가 저마다의 성장 배경과 문화적 환경을 바탕으로 다양한 현상을 이끌어내고 있다는 것이 재미있다.그런데 이러한 열풍들 사이에서 언급되지 않은 세대가 있다. 바로 현재의 30대부터 40대 초반을 아우르는 80년대 생이다. 80년대생이 주도한 가요 열풍은 한동안 거의 찾아볼 수 없다가, 최근 2~3주 사이 눈에 띄는 현상이 하나 발견됐다. 바로 3인조 남성 보컬 그룹인 SG워너비의 역주행 현상이다.김용준, 이석훈, 김진호 등 3명으로 구성된 이 그룹이 한창 인기를 얻었던 시기는 이들이 데뷔한 2004년부터 2010년대에 접어들기 이전까지였다. 이후 한동안 잊혀진 것처럼 보이던 이들이 최근들어 다시 음원차트에 모습을 드러내게 된 계기는 MBC 예능프로그램 ‘놀면 뭐하니’에 출연하게 된 일이다. SG워너비의 유사 그룹인 ‘MSG워너비’를 만드는 프로젝트 도중 원조가수로 등장해 흘러간 그들의 히트곡들의 라이브를 선보인 것이다. 이들의 라이브는 이들의 동세대이자 전성기시절 가장 많은 지지를 보낸 팬들이기도 했던 80년대 생의 향수를 자극했다. 그리고 80년대 생들의 향수는 하나의 문화적 현상이 되어 SG워너비를 음원차트에 다시 불러올렸다. 이 글을 쓰고 있는 현재 국내 최대 음원사이트의 실시간 차트 Top 10 곡들 가운데 ‘Timeless’, ‘라라라’, ‘내 사람’등 이들의 곡이 세 곡이나 올라가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강백수세상을 깊이 있게 바라보는 싱어송라이터이자 시인. 원고지와 오선지를 넘나들며 우리 시대를 탐구 중이다.이러한 현상은 80년대 생이라는 세대의 존재감을 다시 한 번 확인케 한다. 그리고 여전히 문화적 영향력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 최근 인기를 얻었던 두 책 ‘90년생이 온다’와 ‘70년대생이 운다’가 떠오른다. 두 세대 사이에 끼어 상대적으로 덜 주목받고 있는 세대인 그들 역시 현재 90년대생과 2000년대생으로 대표되는 Z세대가 그러하고 그들의 선배세대들인 Z세대가 그러했듯 그들만의 문화를 창조하고 향유했다.이들의 선배들에게 천리안, 하이텔같은 PC통신이 있고 후배들에게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과 같은 모바일 SNS가 있다면 이들은 싸이월드 미니홈피에서 그들만의 독자적인 온라인 문화를 창조하곤 했다. 싸이월드는 최근 기존 운영사인 SK커뮤니케이션으로부터 스카이이엔엠, 인트로메딕 등 코스닥 상장사 2곳을 포함해 총 5개 회사의 컨소시엄, ‘싸이월드제트’로 매각됐다. 80년대생의 향수가 여전히 사업성을 지니고 있다는 증거이다.이들만의 문화를 패러디한 유튜브 콘텐츠 ‘05학번 이즈 백’(피식대학 제작)의 조회수가 최대 350만에 육박한다는 것은 여전히 이들의 문화적 영향력이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라는 것을 증명한다.이 글을 통해서 필자는 동년배인 80년대생들에게 격려와 응원을 건네고 싶다. 비록 때때로 90년대생만큼 트렌디하지 않고, 70년대생들 만큼의 권력을 지니지 못하였다는 이유로 소외되곤 하지만, 회사에서는 신입도 아니고 리더도 아닌 위치에서 겉돌기도 하고, 가정에서는 육아와 내 집 마련이라는 거대한 과업 앞에 주눅 들기도 하지만, 여전히 우리는 문화적으로, 사회적으로 영향력 있는 세대임을 기억하길 바란다.

2021-04-26

혐오해도 마땅한?

피터 스완슨의 소설 ‘죽여 마땅한 사람들’에서 주인공 릴리는 말한다. “세상에는 쓸모없는 생명이 너무나 많다. 나쁜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을 괴롭히는 일은 빈번하고 무고한 이들은 피해를 본다. 법은 약자를 완벽하게 보호하지 못하므로 누군가가 직접 나서서 단죄해야 한다.” 릴리는 심판자가 되기를 자처하면서 살인을 실행한다. 그녀가 살해하는 대상은 무고한 사람이 아니라 잘못을 저질렀으며 도덕적 규범에서 벗어난 이들이다. 그 때문에 독자는 릴리의 행동을 마음속으로 은근하게 응원하게 된다.소설은 최근 우리 사회의 분위기와 맞아떨어진다. 일부 사람들은 타인에게 세상에서 사라지라고 발화하는 것에 죄책감을 느끼지 못하는 것처럼 보인다. 도덕적으로 결함이 있는 사람은 벌을 받아야 하며 분명하게 응징해야 한다고 여긴다. 나아가 소설의 주인공처럼 자기 자신이 그들을 단죄하겠다고 나서기도 한다. 대상을 향해 멸시의 시선과 모욕적인 언사를 내뱉는 것에 거리낌이 없으며 그것이 정의로운 일이라고 판단한다.마사 너스바움은 ‘혐오와 수치심’에서 혐오는 인간이 가지고 있는 원초적 감정이며 이를 토대로 전염이나 오염의 상황을 피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런 혐오 감정이 위험 요소가 없는 개인이나 특정 집단에게로 투사되면서 본격적인 문제가 된다. 존엄성을 가진 인간이 순식간에 오염물로 치환되는 것이다. 여기에는 객관적이고 사실적인 시선만이 존재하지 않고 주관적인 가치가 개입된다.사회적 공인이라 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 가해지는 혐오를 떠올려 보자. 그들은 시스템과 구조의 대변인으로 존재한다. 그 때문에 그들을 향한 혐오 표현은 타당성을 지닌다고 생각하기 쉽다. 도덕적으로 지탄받는 문제에서부터 지극히 개인적인 문제들로도 난도질당하기 마련이다. 상대를 혐오 대상으로 낙인찍는 것뿐만이 아니다. 그저 혐오하는 행위 자체가 동기가 되어 지배적으로 작용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최근 연예인들의 자살이 사회적 문제로 부상하며 주요 포털 사이트에서는 연예 기사면의 댓글 기능을 없애기도 했다. 일부는 표현의 자유를 주장하며 유명인은 마땅히 자리의 무게를 견뎌야 한다고 말한다. 너무 늙었다, 멍청하다, 못생겼다 등 혐오에 근간을 둔 표현을 적절한 비난이나 비판으로 생각하는 경우도 있다.인터넷을 떠나 현실에서도 혐오 표현이 범람하고 있다. 이러한 표현은 차별을 정당화하고 강화하는 효과를 본다. 그런 점에서 혐오 표현은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비판과는 분명히 구분된다.문은강 ‘춤추는 고복희와 원더랜드’로 주목받은 소설가. 2017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작가로 등단했다.혐오는 인간이 성장하고 변화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한다. 이것이 혐오의 가장 무서운 점이다. 대상이 되는 개인이나 특정 집단을 그저 오물과 같이 취급한다. 그들이 눈앞에서 사라져 버리기를 원한다. 더럽고 불결한 것들이 사라지면 우리의 문제가 해결되리라 판단한다. 쓰레기가 모조리 사라진 완벽하게 깨끗한 거리를, 청결한 세상을 만들 수 있다고 여긴다. 정말 그럴까?혐오가 우리의 역사 속에서 특정 집단과 사람을 배척하기 위한 강력한 무기로 사용됐다는 사실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제노사이드, 홀로코스트 등의 끔찍한 비극은 우리에게 뼈아픈 교훈을 남겨주었다. 증오와 폭력, 배제와 방관은 답이 될 수 없다. 고통을 고통으로 갚아주는 것, 혐오자를 혐오하는 것은 같은 실수를 반복할 뿐이다.우리는 세상의 문제로부터 자신을 지키고 싶어 한다. ‘나’와 구별되는 ‘너’, ‘우리’가 아닌 ‘그들’이 상정될 때, 나의 반대편에 있는 집단은 열등하고 해악을 끼치는 것으로 치부된다. 나와 우리는 도덕적이고 선량한 사람들이지만 상대편은 그렇지 않다. 이렇듯 선을 긋고 편을 나누는 것은 검열에 의해서다. 검열에 의해 결함이 생긴다. 납득할 수 없는 결함을 가진 타자를 반사적으로 거부하고 밀어내게 된다.혐오를 통해 특정 집단을 배제하는 일은 쉽다. 그리고 게으르다. 감정을 지탱하는 근거 역시 지극히 애매하고 추상적이다. 그런 방식으로는 어떤 것도 바꿀 수 없다. 혐오는 문제를 해결하는 궁극적인 방법이 아니라 상대에게 가하는 하나의 폭력으로 끝날 뿐이다.그러니 ‘우리’라는 개념을 넓혀야 한다. ‘나’로부터 시작된 이해가 집단과 인종, 국가를 넘어 지구적인 공감까지 확장될 때 우리는 모두 비로소 존엄성을 가진 개인으로 존재할 수 있다. 다양한 사람들의 목소리를 듣고 그 이면을 들여다봐야 한다. 이러한 노력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성실함이다.

2021-04-26

20대가 선생이다

서울·부산 시장 재보궐 선거에서 야당인 국민의힘 후보들이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후보들에 압승을 거뒀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박영선 후보에 57.5대 39.18로, 박형준 부산시장은 김영춘 후보에 62.67대 34.42로 이겼다. 이로써 국민의힘은 비록 1년여의 짧은 임기지만 우리나라 수도와 제2도시의 시장을 배출했다. 이번 선거가 내년 대선의 전초전 성격임을 감안하면, 여당이 국회 180석을 차지한 압도적 여대야소 정국에서 야당의 대승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지난 9년 동안 박원순 3선 시장이 재임한 서울은 유권자들의 진보 성향이 강한 도시다. 작년 총선에서 지역구 총 49곳 중 41곳에 민주당 깃발이 꽂혔고, 2030세대가 몰표를 주었다. 그런데 이번 선거에선 2030세대의 표심이 야당을 향했다. 특히 20대 남성의 72퍼센트가 오세훈을 선택했는데, 진보 진영은 문재인 정권의 여성우대정책에 ‘이남자(20대 남자)’들이 분노한 것이라고 말한다. 일부 지식인들도 거기 편승해서 20대 남성들의 여성에 대한 상대적 박탈감이 선거에 영향을 미쳤다고 평한다. 틀려도 한참 틀렸다. 그렇게 어리석으니 선거에서 진 것이다. 어리석은데 교활하다. 20대 남성들을 여성에 열등감과 질투심이나 갖는 졸장부로 만들면서, 남성과 여성을 갈라치기해 지지 세력을 다지려는 속셈이다. ‘우리가 남이가’로 지역감정을 정치에 끌어들인 김기춘과 뭐가 다른가? ‘저쪽이 그랬으니 우린 안 그래야지’가 국민들이 민주당에 기대한 상식인데, ‘저쪽이 그랬으니 우리도 그런다’로 화답했다. 이게 패배의 이유다.20대 남성들은 왜 야당을 지지했을까? 야당을 지지한 게 아니라 여당을 심판한 것이다. 20대 여성들의 51퍼센트는 박영선에게 표를 줬다. 20대 여성들은 왜 여당을 지지했을까? 여당을 지지한 게 아니라 야당을 심판한 것이다. 20대는 진영에 투표한 것이 아니라 정의에 투표했다. 최선도 차선도 없고 최악과 차악만 존재한 선거에서 각자가 생각하는 차악에 표를 던진 것이다. 20대 남성들이 보기엔 국민의힘이 차악이고, 여성들이 보기엔 민주당이 차악이었을 뿐이다.이병철 문학평론가이자 시인. 낚시와 야구 등 활동적인 스포츠도 좋아하며,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세월호 참사 당시 또래들의 죽음을 보면서 기성세대의 무능한 민낯을 똑똑히 목격한 세대다. 몇 개의 계절 동안 “진실을 인양하라”며 목소리를 높였고, 박근혜 국정농단에 맞서 추운 겨울 내내 촛불로 광화문을 밝혔다. 군복무에 성실하고, 여성의 주체성 확장과 소수자 연대, 동물권 신장, 저탄소 환경보호에 앞장서는 세대, 그러면서 학점관리하고 영어공부하고 자격증 따고 고시 준비하며 스펙을 쌓는 세대, 이처럼 자기 삶에 최선을 다하면서 사회 공동체의 일원으로 더불어 사는 것을 실천하는 세대, 하지만 취업도, 결혼도, 작은 방 한 칸도 감히 꿈꿀 수 없는 세대, 다 포기해야 하는 세대가 20대다.20대는 자기 밥그릇이 위태로워졌다고 분노한 게 아니다. 어른들이여, 특히 40대 ‘젊은 꼰대’들이여, 20대 청년들은 당신들과 다르다. 20대를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인 세대라 폄하하는 것을 이제는 멈춰야 한다. 20대는 밥그릇을 두고 공정한 경쟁을 할 수 없게 만든 불공정과 불합리, 비상식에 분노한 것이다. 조국 전 장관 부부의 자녀 입시비리 문제, LH 직원들의 투기 의혹, 변창흠 국토부장관의 노동자 비하 발언, 거듭된 주거 정책 실패와 김의겸, 김상조, 박주민, 손혜원 등 고위공직자 및 여권 인사들의 부동산 논란, 평창올림픽 남북 단일팀 구성 당시 나타난 ‘국가’라는 이름의 전근대적이고 낡은 감수성, 박원순, 오거돈, 안희정의 성추문과 피해자에게 가한 2차 가해, 인천국제공항 정규직 전환 사태까지…. 진보와 개혁을 외치는 세력이 그래선 안 된다고, 이번 선거는 20대가 부끄러운 어른들을 준엄하게 꾸짖은 ‘기성세대 각성’의 교실이다.그러니 부디 20대에게 배우라. 철부지들이 아니라 당신들의 선생이다. 케케묵은 진영논리 대신 공정과 정의, 양심을 선택하는 세대, 보수와 진보 따위 이데올로기 대립 너머 상식과 올바른 가치를 위해 그 무엇과도 싸울 수 있는 세대, 어른들이 만든 세상이 아무리 캄캄해도 오직 순간에 최선을 다하는 정직한 노력들로 자기 생을 밝히며 저마다의 간절한 꿈을 향해 나아가는 세대, 개인의 주체성과 자기감정을 분명히 나타내면서도 나와 다른 타인의 생각과 감정을 존중하는 세대, 앞선 세대가 이루지 못한 성숙하고 세련된 근대 시민…. 모두 20대의 다른 이름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땅히 감사해야 한다. 이 새로운 세대의 출현을.

2021-04-19

보복소비와 양극화

조금 나아지는가 싶더니 다시금 코로나 신규 확진자가 며칠째 600명대를 기록하고 있다. 코로나 4차 대유행의 초기 단계로 들어섰고 경기 침체는 계속해서 지속되고 있지만 이와 다르게 명품에 대한 수요는 증가하고 있다. 최근 에르메스, 루이비통, 샤넬은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2조4000억 원에 달하는 매출을 올렸다. 매장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오프런(매장 문이 열리자마자 물건을 사기 위해 줄을 서거나 뛰는 행위)을 해야 겨우 제품을 볼 수 있을 정도였다. 적지 않은 언론매체가 이런 현상을 여러 차례 보도한 바 있다.TV나 냉장고 등 값비싼 가전제품의 구입 또한 전년도 대비 눈에 띄게 늘었다. 삼성전자는 1분기 영업이익에서 9조3천억 원의 예상 초과의 실적을 기록했다. 중고차 판매와 수입차 판매량 또한 역대 최대 수치를 기록했다.최근 여의도에 서울 최대 규모의 백화점이 문을 열면서 많은 인파가 몰렸다. 개장 1시간 전부터 인근 도로가 정체되는 기이한 현상이 일어났다. 백화점 안에 들어가기 위해서 줄을 서는 풍경이 연출되었고, 잇단 감염자 확진에 입장객을 감축하는 방안이 세워지기도 했다.이에 비해 마트에서는 최저가 경쟁에 불이 붙고 있다. 코로나19 여파로 창고형 할인 매장에 인파가 몰리고, 온라인 유통업계 또한 최저가 경쟁과 신규 회원 이벤트 등을 펼치며 나서고 있다. 유튜브에서는 생활비 절약이나 저렴하게 물건을 구입하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노하우 영상이 조회수 1.9만을 기록할 정도다. 생필품 시장에서는 최저가를 선호하며 소비 양극화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윤여진 2018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 부문에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현재보다 미래가 기대되는 젊은 작가.계속되는 고용난과 실업자 증가로 인해 심각한 경기침체가 지속되고 있다. 자영업자의 회복은 여전히 더디다. 집 근처에 있던 가게도 하나 둘 씩 문을 닫거나 때에 따라 영업을 하지 않는 날도 늘었다. 일용직 일자리센터를 지나갈 때마다 길게 줄 서 있는 사람들, 실업 급여를 받기 위해 모여드는 사람들, 청년 취업난으로 인해 자격증 학원에 몰리는 젊은 인파를 보며 이와는 반대로 명품을 구입하기 위해 줄을 서 있거나, 유명 관광지나 꽃나무 주변에 너나 할 것 없이 돗자리를 펴고 5인 이상 모임을 즐기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 ‘급여와 일자리가 유지되는 자’와 ‘그렇지 못하는 자’의 양극의 차별은 더욱이 뚜렷해지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MZ세대의 ‘플렉스(flex)’ 문화가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 잡은 기이한 문화 현상도 눈에 띈다. 플렉스는 힙합 문화 중 하나로 자신의 성공이나 귀중품을 과시한다는 의미로, 남에게 인정받고 싶어 하는 욕구가 값비싼 소비로 이어지는 현상이다.한국은행과 미래에셋은퇴연구소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30세대의 재무적 목표에 대한 질문에 답변자들은 61%의 선택으로 주택 구입을 위한 재련 마원을 꼽았다. 그러나 계속되는 청년 고용 불안정과 고용난, 부동산 자산을 소유할 수 있는 기회 상실감으로 인해, 청년들은 ‘플렉스 문화’에 눈을 돌려 명품 구입이나 단순 소비 욕구를 택하고 있다.유행처럼 번진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의 줄임말)과 욜로(YOLO)문화 또한 현재의 만족감과 개인의 행복에 의미를 둔다. 주택 구입, 취업, 결혼 등 미래의 불투명함을 생각한다기보단, 일상의 작은 행복을 추구하며 삶을 즐겁게 살려는 욕구에 치중하는 것이다. 위와 같은 소비형태는 교묘히 바뀌어 점심시간 포장 용기에 마시는 아이스 아메리카노, 유행에 맞춰 계절마다 구입하는 옷, 시즌마다 구입하는 텀블러와 리유저블 컵, 패션 아이템으로 전락한 에코백, 손쉽게 허기를 채우는 배달음식 등 단순하고도 빠른 소비 형태로 이어진다. 손쉬운 소비는 심각한 환경오염을 일으키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코로나로 인한 플라스틱 용기 사용 증가와 일회용 마스크 증가는 이미 심각한 환경 문제로 대두되었다. 인간이 만들어낸 기이한 문화 현상으로 인해 전염병이 확산되었지만, 개인위생을 위한 일회용품 사용과 마구잡이식 보복소비로 인해 또다시 심각한 환경오염을 낳고 있다는 것이다.이상 기후 현상은 전 세계 곳곳에서 흔히 일어나고 있다. 사하라 사막은 수년간 눈이 내리는 이상 기후를 겪고 있다. 아열대 기후인 대만은 급작스러운 한파로 사망자가 발생했다. 미처 대처하지 못하여 피해를 입은 이들은 대부분 노인이었다. 이 멈출 수 없는 굴레에 인류가 있다. 인류가 무엇을 향해 가고 있는지 이제는 현실을 마주해야 한다.

2021-04-19

‘왜’를 기억한다는 것

무슨 일을 하건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일을 하는 이유를 잊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무언가 해 나가다 보면 다른 욕망이 끼어들게 된다. 행복한 가정을 꾸리겠다며 취업을 했는데, 나보다 앞서 나가는 동료들을 보며 조급해진다. 성과에 집착한 나머지 가족들에게 소홀해져버린다는 이야기는 흔하다. 교육이야말로 가장 숭고한 일이라며 교사가 되어서는 대기업 다니는 친구의 연봉을 부러워하는 친구도 있었다. 그 친구는 만나기만 하면 주식이나 가상화폐같은 이야기만 늘어놓곤 한다. 돈 벌어서 세계여행 가는 게 소원이라더니 힘들게 번 돈이 아까워서 못 간다는 친구도 있다. 모두가 처음 그 일을 시작할 때 마음을 잊어버리고 사는 사람들이고, 불행하다.나는 분명 즐거워서 음악을 시작했다. 대학 졸업하자마자 기타를 메고 홍대 놀이터나 이대 앞 공터 같은 곳에 나가 앰프도 마이크도 없이 매일 노래를 불렀다. 팁 박스라도 하나 가져다 놓았다면 간혹 천원짜리건 만원짜리건 넣어주는 이들도 있었을 텐데, 일부러 가지고 다니지 않았다. 팁을 주면서 신청곡을 요구하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신청곡을 부르는 것보다 자작곡을 부르고 내 이야기에 호응하는 사람들을 보는 편이 훨씬 재미있었다. 유명해지고 싶은 욕구가 없진 않았는데, 이름을 알리기 위한 최소한의 노력도 하지 않았던 것을 보면 그렇게 간절하진 않았던 것 같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다른 욕망이 끼어들기 시작했다.“너는 언제 뜨냐?”“네 노래는 언제 노래방에 나오니?”“너도 뜰 수 있을 것 같은데...”“이제 슬슬 TV에도 나오고 해야 하는 거 아니야?”한 해 한 해 갈수록 그 목소리들은 점점 커지고 많아졌다. 처음에는 웃으면서 넘기던 나도 나중에는 그런 말들에 부담을 느꼈고, 언젠가부터 마치 그 ‘떠야한다’는 것이 처음부터 내 욕망이었던 것처럼 착각하게 되었다.그 무렵 한창 오디션 프로그램 열풍이 불었다. 슈퍼스타K, K-Pop 스타, 보이스 코리아 같은 프로그램들의 시청률이 하늘을 찔렀고, 스타도 많이 배출해내던 시절이었다. 주변 사람들이 나가보라고 부추기기도 했고, 무엇보다 언젠가부터 내 안에 주입된 ‘떠야한다’는 욕망이 나를 오디션 프로에 집착하게 만들었다. 대부분의 오디션에서 예선탈락만 반복하던 어느 날, 드디어 TV에 출연하게 되었다. MBC ‘위대한 탄생 3’의 최초 예선을 통과하고 드디어 방송 오디션 무대에 서게 된 것이다. 당시 어느 작가는 내게 따로 제작진이 기대하는 바가 크니 오디션을 잘 보라고 이야기를 해주기도 했다. 나는 이미 슈퍼스타가 된 기분이었다. 그리고 방송 촬영 당일, 나는 처참하게 탈락하고 말았다.“너무 실력이 없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난 들으면서 화가 났어요. 정말 그냥 뜨고 싶어서 나온 것 같아요.”심사위원이었던 작곡가 ‘용감한 형제’의 심사평이었다. 그 독설 앞에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뜨고 싶어서 나왔냐는 말이 백 프로 사실이었으니까.그날 많이 울었다. 단지 오디션에서 떨어져서가 아니라, 뭘 해도 뜨지 않는 나 자신이 원망스러웠기 때문이다. 음악을 그만둬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그 무렵, 편도선 수술을 받고 입원을 했다. 목이 아파 노래는커녕 말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그렇게 서서히 음악과 멀어지면 될 것 같았다. 그러던 어느 날, 병실에 누워 잠자고 책읽기만 반복하다가 지겨워 휴대폰 어플을 뒤적거렸다. 예전에 깔아둔 피아노 어플을 발견했다. 나는 이어폰을 꽂고 건반을 누르고 놀았다. 그러다가 갑자기 욕심이 생겨 곡을 하나 쓰기 시작했고, 끝내 곡을 완성했다. 시간을 보니 두 시간이 훌쩍 가 있었다. 그때 문득 떠올렸다. 음악이 이렇게 재미있었다고. 나는 그래서 음악을 하고 있었던 것이지, 뜨기 위해 음악을 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라고.강백수 세상을 깊이 있게 바라보는 싱어송라이터이자 시인. 원고지와 오선지를 넘나들며 우리 시대를 탐구 중이다.그때 그만두지 않았던 것은, 그리고 지금까지 버틸 수 있게 해주는 것은 바로 그때의 기억이다. 유명해지고 싶고 돈을 벌고 싶은 마음이야 여전하지만, 어쨌거나 나는 재미있어서 음악을 시작했다. 그것을 망각하자마자 음악을 하는 게 힘겨웠다. 여전히 재미만 있다면 계속 해 나갈 이유는 충분한 것인데, 그것을 망각한 채 다른 욕망이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힘들어했던 것이다. 생각해보면 참 미련한 일이다.여전히 내 귀에는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들이 들리고, 다른 욕망들은 언제건 마음을 단숨에 잠식해버리려고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고 있다. 그럴 때마다 내가 처음 거리에서 노래를 부르던 기억, 그리고 병실에서 곡을 만들던 기억을 떠올릴 수 있길 바란다. 그리고 그때의 나와 마찬가지로 왜 그 일을 시작했는가를 잊고 괴로움만 남은 채 일하는 친구들에게도 그런 기억들이 문득 찾아가길 바란다. 어쨌거나 우리는 행복해져야 하니까.

2021-04-12

개인의 시대, 불안과 함께하기

결혼을 앞둔 친구를 만났다. 직장생활 7년 차에 접어들었다는 그녀는 자신의 새로운 인생을 설계하는 일에 여념이 없었다. 나는 흥미진진한 소설을 읽듯 친구의 이야기를 들었다. 긴장 속에서 끝마친 상견례와 주고받은 예물, 예단, 어렵사리 계약한 신혼집의 위치와 남편 될 사람에 관한 이야기들. 헤어지기 직전, 친구는 내게 물었다. “그나저나 너는 괜찮아?” 딱히 괜찮지 않을 것도 없었기에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녀는 내가 걱정이라고 했다. 미래가 불안하지는 않으냐는 것이었다. 그때 깨달았다. 아, 누군가에게 내 인생은 유리 위를 아슬아슬하게 걷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겠구나.나는 2019년을 프놈펜에서 보냈다. 거기에서 소설을 썼다. 한국에 돌아와서는 고향에서 지냈다. 사교활동이나 일을 하는데 불편한 점이 있었지만 그것이 내 생활을 좌지우지할 만큼 커다란 문제는 아니었다. 어차피 나는 글을 쓰는 일을 업으로 삼고 있으니 인터넷이나 전화로도 사람들과 충분히 소통 가능했다. 그런 생활이 가능했던 이유는 하나다. 소속된 곳이 없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자유로웠고 동시에 불안하고 위태로웠다.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는 경제적인 문제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직장을 가진다. 그곳에서 정해진 시간 동안 일하고 약속된 월급을 받는다. 이러한 조직의 형태는 절대 무너지지 않을 것처럼 보였지만 과거에 비해 많은 것이 바뀌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특히 코로나19의 여파로 재택근무가 늘어나면서 장소에 제약을 받지 않고 일하는 것에 대한 가능성이 제시되었다. 하나의 직업을 가지지 않고 다양한 일을 개척하는 잡(Job)노마드나 파트타임으로 생활을 유지하는 프리터 등도 새로운 시대의 흐름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다.직장에 고용되지 않고 일하는 자발적 프리랜서가 더욱 늘어나고 있다. 이들은 조직사회에 속하는 것을 거부하고 자신의 가치는 스스로가 창출하기를 자처하며 삶을 디자인한다. 기업에서 원하는 학벌이나 토익점수, 자격증에 목매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장점을 찾고 그것을 노출하는 것에 주력하는 것이다. 회사의 이익과 발전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이 주체가 되어 만든 콘텐츠를 내보인다. 우리는 주변에서 플랫폼을 통해 투자자를 찾는 크라우드 펀딩이나 단독으로 일하는 1인 크리에이터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이러한 근무 체계에서는 조직의 형태가 흐려지고 오롯이 개인의 능력으로 평가받게 된다.개인의 역량이 중요해졌다는 말은 다르게 해석하면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단단하게 자리하고 있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조직의 보호 아래에서 일을 분담하는 것과는 다르다. 업무적인 실수는 곧바로 개인의 무능과 연결된다. 감당하기에 벅찬 중대한 일 역시 오롯이 혼자 결정해야 하고 그에 따른 결과도 스스로 책임을 져야 한다.게다가 우리가 지금 하는 일은 얼마든지 다른 사람으로 대체할 수 있다. 4차 산업혁명으로 우리의 경쟁 대상은 인간을 넘어 로봇으로까지 확장되었다. 벌써 그렇다. 키오스크로 대체되는 단순 노동 일자리부터 인공지능, 자율주행, 블록체인 등 첨단 기술 데이터까지. 조직이 만들어놓은 틀을 그대로 따라가면 답을 찾을 수 있었던 과거와는 달리 개인이 해낼 수 있는 생산에 대하여 고민하는 시대가 됐다.누구나 경쟁력 있는 사람이 될 수는 없다. 자신의 능력이 보잘것없다는 것을 인정하자는 뜻이 아니다. 누구보다 최선을 다했지만 운이 따르지 못할 수 있고 그건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시스템으로부터 보호받지 못하는 개인은 이렇듯 연약하고 무너지기 쉬운 것이다.문은강 ‘춤추는 고복희와 원더랜드’로 주목받은 소설가. 2017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작가로 등단했다.사실 불안이라는 것은 회사 밖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국한된 말이 아니다. 평생직장이라는 말은 이 시대에 유효하지 않다. 자본주의 사회는 어떤 방식으로든 생산을 종용하며 결국 일종의 무대만 바꾸어놓은 것은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한다.성경에는 “두려워 말라”는 전언이 끊임없이 나온다. 이것은 인간은 태초부터 어쩔 수 없는 불안함을 지니고 있는 존재라는 뜻이기도 하다. 두려움을 물리칠 가장 좋은 방법은 내 안의 두려움을 인정하고 함께하는 것이다.혼자서도 충분히 할 수 있다고 자신만만하게 세상 밖으로 나온 우리는 사회가 녹록지 않는다는 걸 깨달을 테다. 길을 잃고 실수도 할 수 있다. 그럴수록 두려움과 손을 잡고 자신의 고유한 길을 완강하게 걸어가면 된다. 불안을 딛고 세계를 경험하는 것이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는 우리의 자세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2021-04-12

밟고 가라, 밟고 가

사람들이 가장 싫어하는 게 군대 이야기라고 한다. 3월 26일은 천안함 피격 11주기였다. 천안함 피격 사건 재조사를 두고 일어난 논란에 대해선 이 지면에서 말하고 싶지 않다. 한 가지 분명한 건 생존 장병들은 패잔병이 아니라 영웅이라는 사실이다. 사람들이 불편해 하기 때문에 누군가는 꼭 군대 이야기를 해야 한다.내가 군 복무를 한 2008년부터 2011년까지 ‘박왕자씨 피살 사건’, ‘천안함 피격’, ‘연평도 포격 도발’이 있었고, 그때마다 분단 현실이라는 비극에 대해, 또 삶과 죽음에 대해 생각했다. 천안함이 침몰하기 17개월 전인 2008년 10월, 나는 육군 장교 생도로 영천 3사관학교에서 유격훈련을 받고 있었다.어둠 속으로 하나 둘 스러졌다 다시 나타나길 반복하는 동기들의 뒷모습은 마치 유년의 기억들처럼 손닿을 수 없는 곳에 있는 것 같았다. 한나절 영천댐의 숨결을 빨아들인 밤안개가 입김을 뿜어내고, 별들은 캄캄한 하늘에서 눈을 부라렸다. 습기가 등골을 따끈하게, 때론 서늘하게 하던 자정 무렵, 쇠닻마냥 무거운 발걸음은 69번 국도에 간신히 끌려가고 있었다. 이미 유격훈련 입소 행군에서 60km를, 또 훈련 2주차 산악 행군에서 사흘간 90km를 걸은 우리에게 80km의 복귀 행군은 처절한 싸움이었다.열 시간쯤 걸었을까. 행군 초반의 패기는 사라지고, 행군을 격려해주던 영천 시민들도 모두 잠든 밤. 육체의 고통보다 견디기 힘든 건 낙오할지 모른다는 두려움, 멀리 보이는 불 켜진 집들의 온기, 동기들과 함께임에도 문득 내려앉는 외로움, 엄마… 갈증보다 더한 그리움 같은 것들이었다. 무뎌진 발소리와 거친 숨소리가 뒤섞인 행군 대열은 상처 입은 짐승처럼 비틀거렸다.발바닥에 가득 잡힌 물집이 통증을 온몸에 전송했고, 완전군장의 무게는 점점 육체와 정신을 짓눌렀다. 포기하고 싶었다. 낙오자가 되는 편이 낫겠다고 생각했다. 그때 우리를 인솔하던 훈육대장이 대열 중간까지 왔다. 나는 일부러 더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훈육대장을 바라보았다.“힘들면 열외하고 차에 타라”라는 말을 기다리는데, 훈육대장이 입을 열었다. “힘드나?” 우리들이 대답했다. “아닙니다!” 그가 다시 물었다. “발에 물집이 잡혀 걸을 수가 없나?” 웅얼웅얼, 대답소리가 기어들어갔다. 이제 “힘든 인원은 뒤로 열외해라”라는 훈육대장의 한마디가 나올 차례, 그러나 기대가 여지없이 깨진 순간, 나는 뭐랄까, 정신의 벼락을 맞은 듯했다.“밟고 가라, 밟고 가!”그 음성을 아직 잊지 못한다. 무언가 뜨거운 게 가슴에서 솟구쳐 올라 결국 눈물로 쏟아져 내렸다. 나는 그 눈물이 진주알보다 귀한 것이라고 지금도 생각한다. 동기들을 바라보았을 때, 어둠 속에서 시커먼 위장크림을 칠한 얼굴들이 전부 눈에 횃불을 밝혀두고 있었다. 훈육대장의 그 외침이 행군뿐만 아니라 앞으로의 군 생활, 그리고 살아갈 모든 날들 동안 우리 앞에 나타날 숱한 장애물과 함정, 가시밭길 앞에서도 망설이지 말고 밟고 가라는, 그 어떤 어려움이라도 다 밟고 나아가라는 요청임을 다들 알았던 것이다.이병철 문학평론가이자 시인. 낚시와 야구 등 활동적인 스포츠도 좋아하며,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이 이야기를 꺼낸 것은 천안함 장병들을 기억하기 위함이다. 천안함 피격 소식을 들었을 때 ‘최후의 5분’이라는 군가가 맴돌았다. “숨 막히는 고통도 뼈를 깎는 아픔도” 다 견디며 “버티고 버텨”주기만을 간절히 바랐지만, 46명의 청춘들은 끝까지 싸우다 스러졌다. 매년 3월 26일이면 천안함 희생 장병들을 기리는 추모제가 열린다. 올해는 ‘서해 수호의 날’과 함께 치러졌다. 그런데 천안함 용사들의 숭고한 정신을 기리기는커녕 정쟁과 진영논리의 장이 되고 있다. 추모제니 재조사니 하는 ‘형식’보다, 하찮은 정치적 입장 따위보다 장병들의 희생과 헌신이라는 ‘내용’만 청년 세대에게 기억됐으면 한다. 화염에 싸인 조타실 안에서 죽음의 순간까지 키를 놓지 않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던 그들처럼 청년들이 캄캄한 현실의 절망을 돌파해내고자 한다면 그 용기야말로 가장 가치 있는 추모가 될 것이다.LH 투기에 허탈감을 느낀 청년들이 비트코인 시장에 몰려 ‘한탕’을 노리고 있다고 한다. 충분히 이해한다. 하지만 죽음과 싸운 장병들에 비하자면 오늘 우리가 맞닥뜨린 현실의 문제들은 한 판 붙어 이겨볼 만한 것이다. 나는 나에게, 청년들에게 외치고 싶다. 절대 낙오하거나 포기하지 말자고, “밟고 가라, 밟고 가!”라고.

2021-04-05

내 안의 가장 가까운 혐오

‘비혼모 출산 부추기는 공중파 방영을 즉각 중단해주세요!!!’ 지난 3월 25일 국민청원에 위와 같은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현재 방송인 사유리 씨는 자발적 비혼모로 공중파 육아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 중이다. 자발적 비혼모란 결혼 없이 정자를 기증받아 출산한 것을 말한다. 청원의 내용은 이렇다. “비혼모를 등장시켜서 청소년들이나 청년들에게 비혼 출산이라는 비정상적인 방식이 마치 정상인 것처럼 여겨질 수 있는 ‘***’라는 일본 여자를 등장시키려 하고 있습니다.”방송인 사유리 씨의 출산 방식이 올바른 가족관이 아닌 비정상적이며 청소년이나 청년의 비혼자 출산을 부추긴다며 공중파에서 출연을 막아야 한다는 입장이다.정상과 비정상의 기준은 모호하다. 국립국어원의 사전에서는 정상을 ‘특별한 변동이나 탈이 없이 제대로인 상태’를 말한다. 또는 ‘있어야 할 상태에 바로 있는 것. 또는 그런 상태’를 뜻한다. 사전적 의미의 정상은 그대로 있는 상태를 말하는데, 그대로 있는 상태라는 뜻은 대상의 위치를 뜻하는 건지, 대상은 정확히 무엇인지 의미조차 모호하다. 때문에 정상과 비정상이 아닌 ‘이상’과 ‘비이상적’이라고 판단하는 게 더 올바르다.비혼모 출산을 두고 아버지의 부재에 대해 염려하는 의견도 많다. 아이가 사춘기를 겪으며 부재한 가장의 자리에 결핍을 느껴 늘 자신감 없는 아이로 자란다는 것이 그 이유다. 여기서도 부모 중 한쪽이 부재하는 삶은 불행할 것이라며 섣불리 판단한다. 아이를 이끌어줄 수 있는 역할에는 ‘부’의 ‘가장’으로서의 역할에 초점을 맞추어 강조하고 단정 짓는다. 그러나 아이가 혼란을 느끼는 데에는 혼란을 부추기는 어른의 시선과 입장뿐이다. 아이에게 혼란을 주고 싶지 않다면 정상 가족에 대한 프레임을 걷어낼 수 있도록 앞선 어른들이 노력해야 한다.정상적인 가족은 무엇일까. 단순히 부모-자식 간의 3~6인을 유지한 구성 형태가 정상 가족일까. 그 안에서 벌어지는 체벌, 학대, 과거로부터 당연시되어 왔던 희생, 억압, 규칙은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오랜 기간 이어져 왔다. 정말이지 가족이라는 관대한 이름 아래에 용서와 화해는 무조건적으로 가능한 것일까.몇 달 전 처음 보는 이들과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대뜸 한 사람은 내게 부모의 존재 여부와 직업, 본가의 위치를 물었다. 가족 구성원의 여부에 따라 나는 딱하거나 딱하지 않거나, 온전하거나 온전하지 않은 사람이 됐다. 낯선 자리에서 가족을 묻는 이들은 가족의 형태에 매달린다. 동시에 가족사 없는 집은 없다며 그 안에 일어나는 희생과 결핍에 대해서는 관대하다. 많은 이들이 가족이라는 형태가 유지되기까지의 소외된 이름을 묵인한 채 가족이라는 타이틀 앞에선 한없이 연약해진다.세상엔 많은 형태의 가족이 있다. 조립식 가족, 비혼모 가족, 다문화 가족, 동성 부부, 반려견·반려묘 가족 등 다양한 모양의 가족이 전 세계적으로 급증하고 있다. 자신이 속해있지 않은 범주 바깥의 존재는 모두 비정상적이라고 무차별적으로 비난할 순 없다. 다양한 형태로 가족을 이루는 삶을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한다.윤여진 2018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 부문에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현재보다 미래가 기대되는 젊은 작가.사유리 씨는 자신의 삶과 아이를 택했다. 한 사람의 충분한 관심과 사랑이 있다면 아이는 가정의 형태와는 무관하게 사랑하고 사랑받는 올곧은 삶을 살 것이다. 혐오와 배제가 만연한 비이상적 사회가 두렵다면, 당장 스스로 해보아야 할 것은 조금씩 자신을 다듬고 고쳐 세상을 다시금 바로잡아 보는 것이다.나 또한 어느 순간 나도 모르는 차별과 실수를 할지 모르겠다. 그러므로 더욱 자신을 경계해야 한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이 정말 옳은 것인지, 나의 생각이 내가 만든 편협한 틀에 갇혀 있는 것은 아닌지 스스로 되돌아보고 살피며 불공정한 것에 대한 목소리를 올바르게 내야 한다. 한 사람이 옳은 방향을 정립하여 많은 다양성과 가능성을 존중하고 인정한다면 전보다 조금 더 나은 변화가 찾아올 것이다.

2021-04-05

너의 MBTI가 궁금해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 으레 나누게 되는 말들이 있다. 이름, 나이, 사는 곳 등 우리는 서로에게 이런저런 것을 묻고 답한다. 혹자는 ‘호구조사’를 하는 것이냐며 냉소를 보내기도 하지만, 나는 이런 행동이 상대를 향해 손을 내미는 노력이라고 생각한다. 무엇이든 질문을 던지는 것은 상대의 일면을 파악함과 동시에 대화를 이어갈 수 있는 실마리를 제공한다. 예컨대 중앙동에 거주한다는 말을 들으면 “아, 거기에 슈크림 빵이 맛있는 제과점 있잖아요”와 같이 시답지 않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것이다. 소소하고 작은 공감이 조금씩 쌓여가면서 서로를 향한 친밀도가 형성되는 것을 느낄 수 있다.요즘은 이 ‘호구조사’에 재미있는 것이 하나 더 추가된 것 같다. 상대의 MBTI가 무엇인지 질문하는 것이다. MBTI 성격유형 검사는 꽤 이전부터 밀레니엄 세대 사이에서 크게 유행했다. 잠깐의 성행이라고 생각했지만 그 관심은 지금까지도 사그라지지 않았다. 청년층 사이에서는 이 검사를 안 해본 사람이 없을 정도이며 인간을 판단하는 과학적 근거처럼 자리를 지키고 있다.MBTI는 마이어스-브릭스 유형 지표(Myers-Briggs Type Indicator)로 대중적으로 가장 잘 알려진 성격 유형 검사 도구이다. 12분 이내에 주어진 질문에 따라 답을 내리게 되고 그에 따라 개인을 16가지 심리 유형 중 하나로 분류한다.문은강 ‘춤추는 고복희와 원더랜드’로 주목받은 소설가. 2017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작가로 등단했다.자신의 MBTI가 무엇인지 알려주면 단번에 그가 어떤 사람인지 이해할 수 있다. 만일 상대가 자신을 ‘ENFP‘라고 한다면 그는 외향적이고 직관적이며 감정적이면서 새로운 가능성을 찾고 시도하는 전망적인 특성을 가진 사람이라는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당신은 사람을 만나는 것보다 혼자 있는 시간을 더욱 중요하게 생각하나요?” 혹은 “당신은 자신에게 엄격한 편인가요?” 같은 질문을 하는 대신에 사용할 수 있는 좋은 요령이 될 수도 있다. 그러니까 이제 우리는 처음 만난 사람의 내밀한 부분에 대해서도 알 수 있게 된 것이다.이런 현상이 아주 새로운 것은 아니다. MBTI 테스트가 유행하기 전, 우리는 혈액형이나 별자리로 개인의 성격을 규정짓곤 했다. A형은 소심하고, O형은 활발하고, AB형은 종잡을 수 없이 독특하다는. 혹은 황소자리는 고집이 세고, 물병자리는 지적 호기심이 많다는 식으로. 거기엔 과학적 근거가 없지만 우리는 쉽게 고개를 끄덕인다.왜 우리는 자꾸만 자신을 틀에 가두어버리는 것일까? 자기 존재를 타인과 분별할 수 없이 동일한 것으로 만들고 싶은 것일까?우리는 평생에 걸쳐 스스로가 어떤 사람인지, 내가 이 세상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를 골몰한다. 그건 너무도 관념적인 일처럼 여겨진다. 당장 눈앞의 먹고사는 문제와 비교하면 사소하지만 동시에 우리의 인생을 관통하고 있는 중요한 일이다. 그 때문에 마음 한구석에 꼭 풀어야 하는 숙제처럼 존재에 관한 질문을 간직하고 있다.우리는 대부분의 시간을 현명하지 않은 방식으로 보낸다. 살면서 다양한 선택을 하고 그것은 삭제할 수 없다. 그것이 바보 같고 멍청한 일일지라도. 나라는 사람을 임의로 규정짓고 거기에 따라서 내 행동에 당위성을 부여하는 것은 어떤 측면에서 본다면 꼭 필요한 일이다. 내가 이상한 것이 아니라는 건, 나와 비슷한 사람들이 엇비슷하게 살아가고 있다는 건 더할 나위 없이 큰 위안이 되기 때문이다.나와 같은 유형의 동료가 있다는 건 감정적 유대를 느끼게 하지만 동시에 어떤 의문을 품게 한다. 짧은 질문과 답으로 개인을 완전하게 판단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다양한 문학 작품은 인간이 얼마나 복잡한 생물인지에 관해 이야기해왔다. 분명하고 환한 빛으로 길을 밝혀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누구인지, 어디로 갈지 모른 채 표류하는 인간들을 보여주었다. 인간은 자신의 선택과 모호한 결론에 울기도 웃기도 하면서 자신만의 답을 찾아가는 존재라고 말이다.그러니 스스로가 어떤 사람이라고 분명하게 정의 내릴 필요는 없다. 그건 자기 세계를 확장할 수 있는 가능성을 막아두는 것이 된다. 그보다 내 안에 다양한 면이 있다고 인지하고 그에 관해 얘기하는 행위 자체가 중요하다.관계란 상대에 대한 호기심에서부터 시작한다. 가까워지고 싶은 누군가를 만난다면 이런 질문도 좋겠다. 당신은 어떤 날씨를 좋아하는지, 무슨 음식을 먹을 때 가장 큰 행복감을 느끼는지. 타인에 대해서 모든 것을 다 알 수 없다는 건 알면서도, 매번 무력하게 미궁 속에 빠질지라도 말이다.

2021-03-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