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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림의 끝이 보일 무렵

등록일 2021-01-04 19:24 게재일 2021-01-05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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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해맞이 명소엔 “올해는 오지마세요”라는 플래카드가 붙었다. 내년엔 희망을 품고 모두가 환한 얼굴로 해맞이를 했으면 한다. /경북매일DB

2021년 새해가 밝았다. 나이를 한 살 더 먹는 것이 즐거운 사람이야 얼마나 되겠냐마는 2020년을 마감하는 것에 대한 내 주변 사람들의 반응은 주로 아쉬움보다는 드디어 지긋지긋한 한 해가 끝났다는 후련함이었다. 2020년 한 해가 그만큼 지긋지긋했던 이유는 다름 아닌 코로나19 때문이었을 것이다.

불과 일 년 전만 해도 매일매일 착용해야 하는 마스크, 그래서 돋아나는 뾰루지, 사이버 강의, 음식점 및 주점 아홉시 이후 영업 금지, 헬스장을 비롯한 운동시설 집합금지, 하나하나 영업을 포기하는 작은 가게들과 같은 풍경들이 일상이 아니었다면 믿을 수 있겠는가. 마스크 하나 쓰지 않고 옹기종기 모여 영화를 보고, 공연을 보고, 밤새도록 이야기를 나누던 풍경이 불과 일 년 전의 것이라면 믿을 수 있겠는가. 이러한 기억들이 까마득한 이유는 그만큼 우리에게 이 시절이 길게 느껴졌기 때문이었으리라.

차라리 코로나 19와의 싸움이 끝나는 날이 정해져 있었다면, 그 날까지의 기다림이 일 년이건 이 년이건 그 기간을 미리 알 수 있었다면 우리의 마음이 이토록 힘들지는 않았을지도 모른다. 원래 기약 없는 기다림은 그 기다림 자체보다 기약이 없다는 사실로 인해 더욱 고통스럽기 마련이므로.

새해의 시작부터 그나마 반가운 소식이 하나 들려온다. 정부가 미국 제약사인 모더나와 2천만 명분의 코로나19 백신 구매 계약을 체결했다는 소식이다. 질병관리청은 이번 계약으로 인해 정부가 구매한 백신의 수는 인구의 100%를 상회하는 5천600만 명분이 되었고, 5월부터 백신의 접종이 가능하다고 발표했다.

강백수세상을 깊이 있게 바라보는 싱어송라이터이자 시인. 원고지와 오선지를 넘나들며 우리 시대를 탐구 중이다.
강백수. 세상을 깊이 있게 바라보는 싱어송라이터이자 시인. 원고지와 오선지를 넘나들며 우리 시대를 탐구 중이다.

멀든 가깝든, 그 끝이 정해져 있는 기다림은 그렇지 않은 기다림에 비해 훨씬 수월하다. 지긋지긋했던 우리의 기다림에도 드디어 예정된 끝이 희미하게나마 보이게 되었다. 적어도 여태까지 우리가 기다린 것보다 앞으로 기다려야 할 시간이 길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생각하니 한결 희망적인 기분이 된다.

그런데 어떤 이들에게는 모두의 기다림을 끝내는 일보다 당장 작은 것들을 누리는 것이 더욱 중요한 모양이다. 간절곶, 호미곶, 해운대, 정동진, 성산 일출봉 등 해돋이 명소를 보유한 지자체들은 제발 해돋이를 보기 위해 모이지 말아달라며 1월 1일 당일 해당 장소들을 폐쇄하겠다고 발표하고 해돋이 인파를 막기 위해 총력을 다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사람들이 폐쇄된 해맞이 명소들의 변두리에서라도 해돋이를 보겠다며 해당 장소들에서 장사진을 이루었다는 기사를 접했다. 그곳에서마저 거리두기 등 방역지침조차 지키지 않는 일부 시민들을 보며 기분이 씁쓸해진다. 그들 중 대다수는 떠오르는 태양을 보며 자신들과 주변 사람들의 건강과 행복을 빌었을 것이다. 코로나 방역지침을 어겨가며 빌었을 소원이 건강과 행복이라니, 이보다 더한 역설이 또 있을까.

올해는 기필코 이 긴 기다림을 끝내야 한다. 우리는 다시 마스크를 벗고 서로의 얼굴을 보며 이야기를 나누어야 한다. 회사원이건 자영업자건 자신의 일터로 돌아가 걱정 없이 일할 수 있어야 한다. 일이 끝난 후에는 다섯 명이건 여섯 명이건 상관없이 모여 자신들의 하루에 대해 이야기 나눌 수 있어야 하며, 거리를 밝힌 음식점과 주점의 간판들은 아홉시건 열시건 꺼지지 않고 반가운 손님들을 맞이해야 할 것이다. 그럴 수 있는 날이 머지않았다. 그러나 그날은 거저 오지는 않을 것이다.

여태까지 해온대로 지루하고 고단하게, 우리의 즐거움을 조금씩 희생하며 정부의 방역지침을 지키는 것이 긴 기다림의 끝을 하루라도 앞당기는 일이 될 것이다. 온라인으로 중계되는 2021년 새해의 해돋이를 바라보며 부디 얼마 남지 않은 이 기다림이 무사히 끝나기를 간절히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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