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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증조할머니

등록일 2021-02-15 19:27 게재일 2021-02-16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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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쓰게 되면서 내 증조할머니를 백 년을 살아온 한 명의 인물로 구성할 수 있게 됐다. /언스플래쉬

나의 문학적 감수성이 어디서 기원 되었을까 돌이켜보면 역시 증조할머니에게 많은 빚을 지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할머니는 지금까지도 내 글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인물이며 나의 자의식을 구성하는 데 지대한 역할을 했다.

증조할머니는 외할머니를 키웠고, 엄마를 키웠고, 나를 키웠다. 그녀는 1920년에 태어나 굴곡진 한국사를 온몸으로 경험했다. 어린 시절, 할머니의 무릎을 베고 누워 있노라면 그녀는 쪼글쪼글하고 거친 손으로 톡 튀어나온 내 이마를 쓰다듬어주었다. 나는 그 다정한 손길을 무척이나 좋아했다. 하지만 그 평화로운 시간도 잠시, 오빠가 집에 돌아오면 나는 자리를 비켜줘야 했다. 증조할머니에게는 다른 어떤 것보다 아들이 가장 귀했다. 자신이 죽으면 제사를 지내줄 사람이 없다며 양아들을 들일 정도였으니까.

나는 그녀의 사랑을 받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지만 오빠와의 경쟁에서 무참하게 패배할 수밖에 없었다. 할머니는 내가 백 점짜리 시험지를 가지고 와도 무심했으며 오히려 그것이 오빠의 기를 죽이지 않을까 걱정했다. 할머니의 논리는 단순했다. 오빠는 증손자, 나는 증손녀. 할머니에게는 그 사실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부당하다는 생각이 든 건 당연했다. 나는 중학생이 되었고 차별이라는 단어에 대해 곱씹게 되었으며 내 의견을 당당하게 피력할 수 있게 되었다. 할머니가 서운한 행동을 보일 때마다 나는 “그건 잘못된 거야”라며 항변했다. 그러자 내 세계를 좌지우지할 만큼 거대한 힘으로 작동하던 할머니가 조금씩 작아지기 시작했다. 새롭게 생겨난 집 밖의 세상은 언제나 나의 상상을 뛰어넘었고 지나온 과거는 아둔해 보일 뿐이었다.

할머니와 멀어진 건 당연한 일이었다. 맛있는 걸 먹으면 할머니부터 생각나던 어린 시절은 끝나 있었다. 그러는 사이 할머니는 나이가 들었고, 이런저런 병을 진단받았으며, 결국 요양원으로 가게 되었다.

요양원에서도 할머니는 꼬장꼬장한 성격을 버리지 못했다. 병동을 함께 쓰는 사람들이 “너희 할머니는 대체 왜 그러냐”는 말을 하면, 내심 ‘그래도 아직 우리 할머니의 더러운 성격은 건재하군’ 하고 안심했더랬다. 할머니는 병원에서 배식 받은 음식을 이불 밑이나 베개 속에 감춰놓았는데, 그 이유는 “자는 사이에 누군가가 먹을 것을 훔쳐 갈까 봐 그런다”는 것이었다.

문은강 ‘춤추는 고복희와 원더랜드’로 주목받은 소설가. 2017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작가로 등단했다.
문은강 ‘춤추는 고복희와 원더랜드’로 주목받은 소설가. 2017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작가로 등단했다.

그 모습을 보자 익숙한 기억이 선연하게 떠올랐다. 할머니는 집에 손님이 찾아오면 꼭 사탕이나 과자 같은 것을 벽장에 감춰놓았다. 그리고 손님들에게 물 한 잔도 내어주지 않았다. 모두가 집으로 돌아가면 그제야 벽장을 열고 먹을 것을 꺼내서 “이건 은강이 너만 먹어라” 하면서 주었다. 나는 그런 할머니가 부끄러웠고 제발 그만하라고 소리치고 싶었다.

소설을 쓰면서 그런 할머니의 모습을 자주 복기하게 되었다. 글을 쓴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던 것을 이해하게 되는 과정이니까. 어느 순간 그녀는 나의 증조할머니가 아니라 백 년이라는 시간을 살아온 한 명의 인물로 구성되어 눈앞에 나타났다.

그녀는 위안부에 동원되지 않기 위해 열다섯에 모르는 남자와 결혼한 사람, 징용에 끌려간 남편이 살아 돌아오기를 기다리며 혼자 출산의 고통을 감내하던 사람, 남편과 핏덩이 같은 어린 자식 두 명을 저세상으로 떠나보낸 사람, 아들이 없다는 이유로 동네에서 손가락질 받던 사람, 여자의 몸으로 홀로 전후 시대를 지나오며 먹고 살기 위해 이를 악물고 지금까지 버텨온 그런 사람.

스스로가 그토록 조소하던 어른의 모습이 되었다고 느껴지면 나는 나의 증조할머니를 떠올린다. 이제 할머니는 통제된 요양 시설에서 2021년의 코로나바이러스를 견뎌내고 있다. “건강하게 오래 사세요”라는 새해 인사조차 무색한 지금, 나는 어떤 태도로 우리 할머니를 떠나보내야 하는지 고민한다. 그녀 앞에만 가면 나는 사랑 받기 위해 투정만 부리는 어린아이가 된다. 언제나 모자라고 어리석은 당신의 증손녀는 여전히 세상을 살아가는 법을 모르겠노라고 고백하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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