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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태죄 폐지 이후 나아가야 하는 것

등록일 2021-01-11 19:47 게재일 2021-01-12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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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인 사유리는 원치 않는 결혼 대신, 자신이 직접 아이를 선택해 낳아 기르는 방법을 택했다. /사유리 인스타그램

2021년 1월 1일부로 낙태죄가 입법 공백 상태에 놓였다. 지난 2019년 4월 헌법재판소는 헌법 불합치 결정을 내리면서 2020년 12월 31일까지 대체 입법을 시행하기로 했다. 그러나 대체 입법 기간을 지난 현시점에선 낙태죄 일부 효력이 상실되었고 명확한 대체 입법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사실상 낙태죄는 폐지된 것에 가깝다고 볼 수 있지만 완전한 폐지는 아니다. 현재 입법이 공백으로 놓여 있기 때문에 의료계와 여성계 전반적으로 혼란이 일고 있다. 의료계는 선별적 낙태 거부를 선언하였고, 이에 따라 병원과 의료진마다 낙태 가능 여부나 금액이 천차만별이다. 또한 여성이 안전하게 임신을 중지할 수 있는 대책 마련과 법적인 보호 장치가 없어, 빠르게 해결해야 할 과제로 남아 있다.

그간 임신 중지가 필요한 여성들은 암암리에 인터넷 사이트나 비공개 카페를 통해 임신 중지에 관련된 정보를 얻었다. 미프진과 같은 유산 유도제를 비밀리에 구하고, 잘못된 방식으로 복용하거나 부작용으로 인해 응급실을 찾는 여성 또한 적지 않았다. 앞으론 이와 같은 상황을 줄이기 위해 누구나 간편하고 빠르게 정보를 찾아볼 수 있도록, 임신중지를 위한 각종 정보와 자료가 제시되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한 상담이나 구체적인 의료 가이드라인 또한 의료진과 전문가의 충분한 논의를 통해 제정되어야 한다.

낙태죄 폐지를 말하는 여성들은 ‘여성의 재생산권’에 대한 분명한 목소리를 꾸준히 냈다. 재생산 권리는 성관계, 임신과 출산 여부와 시기, 자녀의 수 등 출산에 해당하는 모든 행위를 포함하여 여성이 스스로를 결정할 수 있는 권리를 뜻한다. 모자보건법 14조는 본인이나 배우자가 유전으로 정신 장애나 질병이 있을 시, 강간 또는 준강간에 의한 임신, 혈족이나 인척간의 임신, 임신 지속이 모체 건강에 악영향을 끼칠 시에만 임신 중단이 가능하다고 명시되어 있었다. 그렇지만 강간, 준강간의 경우 입증이 어려웠으며, 여성의 입장에서는 신체 자기 결정권을 침해한다고 여겨졌다. 또한 과거 국가 차원에서 산아 제한 정책을 펼치며 오히려 임신 중단의 범위를 허용하는 법으로 기능했다. 새로 개정되어야 하는 모자보건법의 방향은 임신과 출산이 더는 국가의 인구 정책 수단이 아닌, 개인의 선택이자 권리가 되어야 한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리고 있다.

윤여진 2018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 부문에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현재보다 미래가 기대되는 젊은 작가.
윤여진 2018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 부문에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현재보다 미래가 기대되는 젊은 작가.

남녀의 결혼 제도 없이 자발적으로 임신을 선택하는 ‘자발적 미혼모’가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최근 방송인 사유리 씨는 자신의 SNS를 통해 “고심 끝에 결혼하지 않고 엄마가 되기로 결정했다”고 말하며 임신 소식을 알렸다. 산부인과 검진 결과 자신의 난소 나이가 48세라는 이야기를 듣고 어서 아이를 낳아야겠다고 결심했다고 한다. 그녀는 원치 않는 결혼 대신, 자신이 직접 아이를 선택하여 낳아 기르는 것을 택했다.

중국 광저우에 살고 있는 이에하이양은 갈색 머리와 하얀 피부, 푸른 눈을 가진 아이를 안고 있다. 밝게 웃는 아이의 얼굴은 얼핏 보아도 서양인에 가깝다. 28살, 사랑하는 남자는 없지만 아이를 갖고 싶었던 이에하이양은 외국으로 가서 정자를 직접 고른 뒤 자신의 딸인 ‘도리스’를 낳았다. 홀로 화장품 사업을 시작하였고 몇 년 뒤 놀라울 만한 성과를 이끌어낸 그녀는 자신의 경제적 여유와 아이를 낳아 기를 수 있는 책임감을 고려한 뒤, 스스로 임신과 출산을 결정했다.

그녀들은 자신의 의지로 출산을 택해 새로운 가족 형태를 꾸렸다. 과연 한 사람이 두 사람 몫을 해낼 수 있을지 의문과 우려를 내비칠 수 있겠지만, 누구도 한 가정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거나 개인의 행복을 정의할 수 없다.

아직 임신 중단 세부 절차나 구체적인 법안 등 남아 있는 문제로 갈 길이 멀다. 낙태죄가 사라진 공백을 채울 수 있는 실질적이면서도 유용한 법안들이 마련될 수 있도록 개인의 지속적인 관심뿐만 아니라 사회적 인식이나 문화, 교육 등 바뀌어야 할 것이 많다. 임신중지에 취약한 여성에게, 같은 고민을 나누는 친구에게, 여성 스스로가 신체 결정권을 내릴 수 있는 날이 어서 주어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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