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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하게 사랑하기

등록일 2021-02-08 20:07 게재일 2021-02-09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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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방향으로 깊이 사랑하면 다른 모든 방향의 사랑도 깊어진다는 걸 알려준 고양이.

아침에 눈을 뜨면 가장 먼저 창문을 본다. 오늘의 날씨는 어떤지 직접 두 눈으로 보기 위해서다. 미세먼지가 잔뜩 낀 먹먹한 하늘이나 눈이 내리는 날은 만날 수 있는 확률이 극명히 낮아지기에 걱정이 앞선다. 반면 볕이 느껴지는 따뜻한 날에는 일렁이는 마음을 잠잠히 누르며 여분의 생수와 사료가 있는지 확인한다. 쾌청한 날 느지막한 오후에는 흰 고양이가 집 앞으로 찾아오기 때문이다.

몇 주 전 쯤 집 앞 화단에서 흰 고양이를 만났다. 평소 집 근처에서 자주 보이곤 했던 고양이였지만 사실 그간 별 감흥이 없었다. 어렸을 때 작은 사건으로 인해 동물에 대한 막연한 거부감과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날 지인을 기다리던 와중 흰 고양이가 나타났고, 한두 번 울음을 뱉더니 내 발치 아래로 와서 자신의 등을 비비기 시작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얼어붙은 내게 고양이는 돌연 자신의 배를 보여주었다. 마치 만져보라는 듯 이리저리 몸을 구르는데 그 행동을 이해할 수 없어 멀뚱히 바라보기만 했다. 조금씩 손가락을 펼쳐 흰 등을 쓸어보니 고양이가 대답에 응하는 듯 활발히 움직였다. 몸을 구부릴 때마다 뼈가 두드러졌고 고양이가 내뱉는 숨에 따라 손이 오르내렸다. 조금씩 옮겨져 오는 고양이의 체온에 한동안은 손바닥을 꼭 쥐고 있었다.

흰 고양이는 자신의 구역이 있는 건지 볕이 좋은 날에만 모습을 드러냈다. 어느 날은 줄무늬 고양이 두 마리도 함께였는데 가까이 다가가자 재빨리 도망갔다. 아직까지도 줄무늬 고양이들과는 늘 일정 거리를 둔 채 물끄러미 바라보기만 한다. 그럴 때 비어있는 두 손이 부끄럽기만 하다.

길고양이에 대한 지식이 없던 나는 인터넷에 검색해보고 영상을 찾아보며 정보를 습득했다. 길고양이를 만났을 때는 무작정 예쁘다고 만지거나 아무 먹이나 주어서는 안 된다는 걸 알았다. 길고양이를 위한 급식소가 따로 있는데, 만약 급식소가 없는 곳에서 굶주린 고양이를 발견한다면 깨끗한 생수와 사료를 주어도 된다. 사료는 고양이가 한 끼 먹을 만큼만 주어야 하며 먹이를 주는 통은 재활용이 가능한 플라스틱을 사용하는 것이 좋다. 또, 먹는 걸 천천히 지켜보다 다 먹은 그릇을 확인하는 게 중요하다. 그릇과 물통은 제때 치워야 한다.

윤여진 2018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 부문에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현재보다 미래가 기대되는 젊은 작가.
윤여진 2018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 부문에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현재보다 미래가 기대되는 젊은 작가.

자동차 엔진룸에 들어간 고양이를 확인하기 위한 라이프 노킹(Life Knocking)이나 밥을 챙겨주는 장소에서 TNR(길고양이 중성화 사업)이 되지 않는 고양이를 파악하는 것 또한 내가 할 수 있는 일 중 하나였다. 라이프 노킹이란 겨울날 따듯한 곳을 찾기 위해 자동차 엔진룸에 들어가는 고양이를 확인하기 위해 창문을 두드리거나, 차 문을 힘껏 닫아 소리로 확인하는 방법이다. TNR은 Trap(포획), Neuter(중성화 수술), Return(리턴)의 앞글자를 딴 것으로, 도심에 살고 있는 길고양이의 개채 수를 적절하게 유지하기 위해 시행하고 있는 중성화 사업이다. 인도적인 방법으로 고양이를 포획하여 중성화수술 후 원래 장소에 풀어주어 부상과 질병에 노출되지 않도록 돕는다. TNR은 마친 고양이들은 왼쪽 귀 끝부분이 조금 잘려 있어 구분하기 쉽다.

동물은 예쁘다고 마음껏 만질 수 없다. 안쓰럽고 가엽다는 이유로 길가에 놓인 고양이를 모조리 만지고 지나치게 먹이를 챙겨주는 태도는 경계해야 한다. 나의 능력으로 내가 책임질 수 있을 만큼만 행동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선 규칙이 필요하다. 다른 구역에서 넘어오는 고양이가 있을 수 있기에 제시간에 맞춰 같은 장소에 밥을 주기, 밥을 먹은 자리는 깨끗하게 유지하기, 너무 사람의 손을 타지 않도록 적당한 애정을 주는 등 분명한 기준을 통해 행해야 한다.

고양이를 좋아하는 이들이 있다면 싫어하는 이들 또한 있다는 걸 잊지 않아야 한다. 함께 살아가는 이웃의 의견을 존중하여 타협점을 찾아 나가야 하며 반려동물 등록제, 입양 문화, 반려동물 놀이터 확충 등 동물 보호 행정을 파악하고 구체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지켜봐야 한다.

무언가 급하게 쫓기는 날에는 볕 아래 몸을 만 고양이를 생각한다. 작고 하얗고 단단하게 놓인 고양이의 묵묵하고도 순수한 등을. 안네-소피 스웨친은 한 방향으로 깊이 사랑하면 다른 모든 방향으로의 사랑도 깊어진다고 했던가. 조금만 눈을 돌리면 주변에서 무수히 많은 사랑을 발견할 수 있다. 날이 흐려도 고양이가 있던 쪽을 계속해서 기웃거려 보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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