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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송해 할아버지 안녕히 가세요

송해 할아버지 이제 편히 쉬세요. 덕분에 행복했어요. /연합뉴스 송해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선생님이나 어르신 등 여러 호칭이 있지만 이 글에서는 할아버지라고 부르고 싶다.친할아버지가 돌아가신 뒤로 누구에게 “할아버지!” 부른 일이 없었다. 슬픔과 애틋함, 그리고 사랑을 담아, 할아버지! 참 오랜만에 불러본다. 송해 할아버지… 할아버지!실시간 인기 검색어에 송해 할아버지가 오르면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혹시 무슨 일이 생겼을까 봐. 주무시는 할아버지의 코에 손을 갖다대보는 어린 손자처럼, 조마조마했다. 나만 그런 게 아니라 온 국민이 다 그랬다.여섯 해 전 죽도시장 ‘울릉도 돼지집’에서 머릿고기에 탁주 마시는데, 주인 할머니가 울상이었다.송해 할배 돌아가셨대서 시장 사람들 다 종일 일이 손에 안 잡힌다고. “헛소문이래요. 멀쩡하시대요” 말씀드리자 옆집 아주머니에게 “만우절도 아닌데 왜 거짓말해! 악썽루머 싸이버 수사대에 의뢰한단다!” 역정을 냈다.그 모습이 재밌어 큭큭 웃었다. “건강하단다! 어이고 오래 살겠다!”라던 돼지집 할머니 예언대로라면 백 살은 넘기셨어야 하건만, 너무 일찍 가셨다. 코로나로 야외 공개방송이 중단되면서 에너지를 잃어버리신 게 아닌가 싶다. 계속 팔도를 돌아다니며 무대에 올랐다면 10년은 더 사셨을 것이다.장수의 아이콘이셨다. 제임스 딘, 엘비스 프레슬리, 체 게바라, 레이 찰스보다 형님이고, 그레이스 켈리에게는 오빠이자 마릴린 먼로에게는 한 해 아래 동생이셨다. 백 년 가까운 세월을 살았으니 천수를 누리셨다. 말년에 무의미한 연명치료 받으며 고생하다 가신 것도 아니니 어찌 보면 호상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황망하고 먹먹한 것은, 그분은 정말 천 년 만 년 사실 줄 알았기 때문이다. 언제나 우리 곁에 계실 줄로만 알았다.어린 시절, 일요일 정오가 되면 늘 “전구우욱~! 노래자랑!” 외치는 소리와 함께 “딴따단 딴따단딴” 흥겨운 오프닝 음악이 집안을 가득 채웠다. 아버지와 함께 목욕탕에 가도 “전구우욱~!”, 엄마랑 동네 국수집에 잔치국수 먹으러 가도 “노래자랑!”, 친구네 집에 놀러가도 “딴따단 딴따단딴”, 쌀집에 떡 찾으러 심부름 가도 “딩동댕동” 어느 곳에서나 ‘노래자랑’이었다. 괜히 ‘전국’이라는 총체성의 명사가 붙은 게 아니다. 앞집, 옆집, 뒷집, 너 나 아무개 할 것 없이 누구나 틀어놓는 프로그램, 안 봐도 틀어놓는 프로그램이 ‘전국 노래자랑’이었고, ‘일요일의 남자’ 송해 할아버지의 익살맞고 다정한 음성은 공기처럼, 물처럼 늘 있는 것이었다.온몸에 꿀벌을 두르고 무대에 오른 양봉업자 아저씨 때문에 벌에 쏘이기도 하고, 짜디짠 어리굴젓을 한 움큼 집어 입에 넣어주는 아주머니 손길을 거절 못해 우물우물 잡수기도 하고, 김인협 악단장(2012년 별세)에게 용돈을 갈취(?)해 어린아이들 나눠주기도 하고, 때로는 꼬마아이와, 때로는 백 세 어르신과 함께 덩실덩실 춤추기도 하셨다.‘전국 노래자랑’에는 각 지역의 고유한 특색이 늘 살아 숨 쉬고, 가족과 이웃 공동체의 따뜻한 온정이 있고, 서민의 웃음과 눈물, 삶의 애환과 고락이 흥건했다. 전국 노래자랑이 방영되는 일요일 점심이면 온 나라가 다 시장터고, 약수터고, 광장이고, 가설무대였다. 이병철 문학평론가이자 시인. 낚시와 야구 등 활동적인 스포츠도 좋아하며,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요양병원에 오래 누워 계셔서 이제는 보지도, 거의 듣지도 못하는 나의 할머니께서 ‘테레비’에 나오는 사람 중 가장 좋아하는 분이 송해 할아버지셨다.문맹인데다 눈과 귀가 어두운 할머니는 당신이 아는 기초적이고 직관적인 언어를 조합해 의미를 만들곤 하셨는데, 매주 일요일 정오가 되면 전국 노래자랑이라는 프로그램 이름 대신 늘 ‘산에서 노래하는 거’ 틀어달라고 내게 부탁하시곤 했다.“그 할아버지 웃겨 죽겠어”라며 박장대소하던 할머니와 함께 계란을 삶아 까먹던 그 일요일, 내가 가장 행복했던 시절의 그 모든 일요일들에 언제나 송해 할아버지가 계셨다. 이제 요양병원 면회가 허용되지만, 할머니 귀에 보청기를 껴 드리고 “할머니!”하고 불러볼 수 있지만, 송해 할아버지 소식은 차마 전하지 못할 것 같다.모두의 할아버지에게 작별 인사를 드려야겠다. 송해 할아버지 편히 쉬세요. 덕분에 행복했어요. 이제는 하늘나라에서 “천구우욱~! 노래자랑!” 신나게 외쳐주세요. 이땅의 우리는 아무리 힘들고 괴로워도 할아버지를 기억하며 웃을게요.

2022-06-14

오늘도 나마스떼

요가에서 중요한 건 꾸준함이다. /언스플래쉬 일상이 고되게 느껴질 땐 매트 위로 오른다. 유튜브 즐겨 찾기에 저장해둔 요가 영상을 틀면 잔잔하고도 낮은 선생님의 음성이 수련의 시작을 알린다.요가는 몸의 상하좌우를 균일하게 늘리는 스트레칭으로 시작한다. 어느 한쪽의 방향에 치우치지 않게 몸의 오른쪽을 늘리면 그 다음은 왼쪽을 늘린다. 일직선으로 서 있는 ‘타다이사’나 자세는 머리부터 시작해서 어깨, 골반, 무릎, 발끝까지 일자로 곧게 버티고 서 있는다. 어느 부위 하나 불룩 나오거나 들어가지 않게 힘을 주어 반듯함을 유지한다.소 자세인 ‘비틸라아사나’와 고양이 자세인 ‘마리쟈아사나’, 테이블 자세 등 순서에 맞춰 자세를 취한다. 상체를 길게 늘어뜨려 근육에 자극을 주거나 느슨하게 푸는 이완을 반복하며 몸의 신경이 구석구석 연결되어 있음을 느낀다. 정강이와 종아리 순으로 자극을 옮기고, 오른쪽 손바닥에만 무게를 집중하는 등 의도한 대로 힘을 분산시켜 내 몸에 크고 작은 부위가 자리하고 있음을 느껴본다. 신경이 세밀하게 자리하고 있음이 느껴질 때면 살아있다는 감각이 생생히 전해져서 만족스럽다.요가는 겉으로 매우 정적인 듯 보이면서도 굉장히 동적이다. ‘8개의 가지’란 뜻을 지닌 ‘아쉬탕가’는 60가지 이상의 시퀀스를 쉬지 않고 빠르게 이어서 동작한다. 아직 수련이 부족한 난 뻣뻣한 몸으로 겨우 몇 가지 동작만 해내고, 이마저도 얼마 지나지 않아 흠뻑 땀으로 젖어 기진맥진해버릴 정도다.주로 즐겨하는 ‘빈야사’는 산스크리트어로 연결하다란 뜻을 가졌다. 다양한 동작을 자유로운 흐름으로 이어가는데 개인적으로 아쉬탕가보다 조금 수월하게 느껴진다. 흐름에 맞추어 동작을 행하다 보면 꼭 안무를 추는 것 같기도 하다. 반복적이지만 리듬이 있고 이야기에 기승전결이 있듯 순서에 따라 동작에 깊이감이 존재한다.이외에도 정말 많은 요가 종류가 있지만, 유튜브 영상 속 선생님께선 수련을 할 땐 늘 새로운 경험을 마주해야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씀하셨다. 특히 매번 같은 동작을 반복하다 보면 지루하다고 느껴질 수 있는데, 그럴 때 일수록 움직임 하나하나를 각기 다르게 바라보고 느끼도록 연습해야 한다고 하셨다.하나의 자세를 새롭게 바라보고 임하는 것. 사실 요즘 나의 근황은 썩 좋지 못했다. 비슷한 나날과 비슷한 감정으로 존재하는 동안 나 스스로를 방치하다시피 살아갔지만, 사실 그 누구보다 절실히 새로운 삶의 의미를 찾고 싶어 힘을 응축시킨 채 웅크려 있었다. 그러던 와중 익숙한 것에서의 낯섦을 찾으며 매번 새로움을 경험하고 수련해야 한다는 영상 속 요가 선생님의 말씀에 얼마나 크게 안도했는지 모른다. 본격적으로 요가를 배우고 싶어 최근 집 근처에 위치한 학원에 등록했다. 총 16명이 모이는 오전반으로 아침부터 부지런히 사람들이 모여든다. 매트를 깔고 일정한 거리에서 각자의 수련을 진행하는 동안 학원 원장님은 옆 사람과 본인의 자세를 비교하면 안 된다는 말을 자주 하신다. 자세를 따라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려운 동작 부분에선 무리하지 않고 가만히 숨을 고르는 것 또한 중요하다고 하셨다. 윤여진 2018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 부문에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현재보다 미래가 기대되는 젊은 작가. 신기하게도 매번 매트 위로 오를 때마다 같은 동작임에도 수월히 해낼 때가 있고, 유독 어느 날엔 어렵게 느껴지기도 한다. 날씨도 온도와 습도가 다르게 바뀌듯, 사람의 감정과 체력도 마찬가지라서 해낼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이 매번 다를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러니 중요한 건 꾸준함이다. 새롭게 바라보며 늘 겸손하게 같은 자세를 유지하고 단련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걸 요가를 통해 배웠다.수업을 가는 오전 열시와 끝나고 집으로 향하는 열한시 반은 같은 길을 걸을지라도 많은 부분이 다르게 보인다.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이나 미세하게 다르게 변한 나무의 그림자, 바람의 세기까지 계속해서 변화하는 시공간의 흐름에 따라 새로움을 찾을 수 있도록 유연한 생각을 지녀보려 한다. 그것이 실패와 좌절뿐일지라도 말이다.정상에 오르지 않아도 산행을 만끽할 수 있고, 높이 오르지 않아도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할 수 있음을 알려준 요가 선생님의 말씀을 되짚어보면서 요가의 끝은 합장으로 마무리 한다. 합장 자세는 평온함이자 자기 자신에게 되돌아오는 몸짓이라 한다. 손바닥을 맞대어 우뚝하고도 도저한 산을 흉내내며 오늘도 작게 말해본다. 나마스떼.

2022-06-14

세상의 모든 둘째에게

나는 삼 남매 중 둘째다. 나와 가장 친한 친구들 역시 그렇다. 둘째끼리는 통하는 어떤 지점이 있는 것이 아닌지 쓸데없이 헤아려보곤 한다. 우리 모임은 ‘둘째들’이라는 촌스러운 이름을 갖고 있는데 나는 이 명명이 썩 마음에 든다.우리 ‘둘째들’은 말이 얼마나 잘 통하는지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하면 밤을 새우기 일쑤다. 언니나 오빠에게 당했던 에피소드, 동생에게 화났던 일을 늘어놓으려면 2박 3일도 모자라다. 부모님, 조부모님 관련 이야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끝도 없다. 우리는 둘째라는 것에 대한 묘한 억울함과 설움을 가지고 있다. “언니(혹은 오빠)의 말을 잘 들어야지”라는 말과 “동생에게 양보해야지”하는 말이 뒤섞여서 나는 늘 참아야만 하는 사람인가 하는 의문이 생기고 그렇다면 나는 사랑받지 못하는 자식이 아닌가 하는 결론에 다다르게 되는 것이다.드라마 ‘응답하라 1988’의 주인공 덕선은 이러한 둘째의 전형이다. 집안의 자랑이자 학창 시절 1등을 도맡아 하던 잘난 언니와 하나뿐인 아들이라는 이유로 특별대우를 받는 동생 사이에 샌드위치처럼 끼인 덕선은 유쾌하고 발랄한 성격의 소유자면서 철없는 면모도 다분하지만 주변 사람의 마음을 헤아릴 줄 아는 세심함을 갖추고 있다.덕선은 받는 것보다 양보하고 참는 것을 먼저 배웠다. 엄마의 눈치를 보면서 자신은 계란프라이보다 콩자반이 좋다고 말하고 치킨에서 가장 맛있는 부위인 닭다리를 언니와 동생에게 양보하면서도 괜찮다고 고개를 끄덕인다.쌓여가던 서러움이 폭발하는 사건이 벌어진 어느 날, 덕선은 아이처럼 앙앙 운다. “왜 나만 계란 후라이 안 해줘? 나도 콩자반 싫어하거든? 나도 닭다리 먹을 줄 알거든. 언니는 보라고 동생은 노을인데 왜 나만 덕선이냐고!”덕선의 외침에 내 눈에서도 눈물이 뚝뚝 흘렀다. 그건 비단 나뿐만이 아니라 세상의 모든 둘째가 공유하는 지점일 것이다.언제였던가. 친구 중 한 명이 어릴 때 겪은 일화를 내어놓았다. 자신이 가진 무언가를 언니에게 양보했을 때, 할머니는 “아이고 참 착하다”라며 자신을 칭찬했지만 동생이 자신에게 뭔가를 양보하자 “그럴 필요 없다”고 말했던 일. 그 단호한 어투가 여전히 귓가에 생생하다고 했다. 그럴 때마다 양보할 필요가 없다고 교육받는 기분이 어떤 것인지 의문했더랬다.캐나다로 어학연수 가고 싶다는 남동생에게 부모님이 너희 누나들은 그러고 싶어도 그러지 못했다고 다독이자 그는 “어차피 작은 누나는 그런 것들 필요 없잖아!”라고 소리쳤고 결국 친구는 폭발하고 말았다. 야, 나도 인간이거든. 그저 항상 너한테 양보했을 뿐이었거든. 고성이 오가던 가운데 부모님은 친구의 어깨를 붙잡았다. “둘째야, 그래도 네가 누난데 참아야지.”이야기를 듣고 나는 배를 잡고 웃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가히 ‘둘째들’다운 에피소드였다. 그래, 우리가 참아야지. 항상 그랬듯이. 그러면서도 마음 한편이 씁쓸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야, 둘째라고 가오가 없냐. 쟁취해야 하는 것이 있음에도 욕심내지 않는 건 바보 같은 일이야. 그렇게 서로를 토닥이며 코끝이 찡해오던 밤, 우리는 다짐했다. 가족의 평화를 위해 희생하는 착한 아이로 사는 일은 이제 그만두자고.그래서였을까. 김소영의 ‘어린이라는 세계’를 읽으면서 몇 번이나 고개를 끄덕였었다. “정중한 대접을 받는 어린이는 점잖게 행동한다. 또 그런 어린이라면 더욱 정중한 대접을 받게 된다. 어린이가 이런데 익숙해진다면 점잖음과 정중함을 관계의 기본적인 태도와 양식으로 여길 것이다. 점잖게 행동하고, 남에게 정중하게 대하는 것. 그래서 부당한 대접을 받았을 때는 ‘이상하다’고 느꼈으면 좋겠다.” 어쩌면 우리는 정중하게 대접받지 못한 상황에 자주 노출되었을 수도 있겠구나. 그런 깨달음이 오자 우리가 외치던 부당함이 단순한 투정이 아니었다는 사실이 실감되었다. 문은강 ‘춤추는 고복희와 원더랜드’로 주목받은 소설가. 2017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작가로 등단했다. 첫째만큼의 든든함도, 막내만큼의 깜찍함도 없는 애매한 위치의 둘째들에게 고한다.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그 누가 서러움이 없겠느냐만, 둘째의 설움은 둘째만이 아는 법. 뭐 그런 사소한 것을 마음에 담아 두냐고 혀를 차지만 우리만큼은 서로의 마음을 다독여주자.나 역시 그랬다. 그렇지. 맞아. 서운하지. 그렇게 고개를 끄덕이는 ‘둘째들’이 있었기에 그 시절을 무사히 보내올 수 있었다. 미세한 차이를 경험해본 자들. 이상하고 부당하다고 차마 말하기 어려웠던 상황들을 잘 알고 있기에 서로가 다정하고 애틋해지는 것이다.그리하여 만국의 둘째들이여, 행복하자. 지구의 실세가 언젠가는 둘째들로 거듭나게 될지도 모를 일이니. 그날까지 모두 평온하고 건강하도록.

2022-06-07

가장 느린 해방

그런 경험은 처음이었다. 소설이나 평론을 인용하시던 교수님께서 드라마의 대사를 인용하시다니. 나는 순간 얼어붙었고, 교수님께서 말씀하시는 드라마 내용에 귀를 기울일 수밖에 없었다.교수님께서 하신 얘긴 대충 그런 거였다. 아무렇지 않게 잘 사는 사람들보다, 망가진 사람들이 훨씬 더 정직할 수밖에 없다고. ‘나의 해방일지’에서도 그러지 않느냐고. 항상 소설이나 평론가의 말을 인용하시던 선생님께서 드라마의 제목까지 거론하시며 이야기를 하시다니. 나는 이걸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하나, 아니면 웃음을 터뜨려야 하나 꽤나 고민을 했더랬다.드라마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최근에 재밌게 본 드라마라고 해도 ‘바이킹스’ 뿐이고, 남들 다 좋다던 ‘이태원 클라쓰’도 세 번을 도전했다가 중도 하차했다.드라마 특유의 느린 템포가 내 성미에는 맞질 않았던 거다. (‘바이킹스’를 끝까지 봤던 것도, 아마 한 화마다 한두 번씩은 잔인하고 자극적인 장면이 나와서 버틸 수 있었던 것 같다.) 교수님께서 드라마를 재밌게 보신다니, 말동무라도 해드리려면 나도 봐야할 것만 같았지만, 영화나 소설이나 평론이라면 모를까, 드라마라니. 교수님과 대화를 하기 위해 드라마까지 보는 건 좀 아니다 싶어 몇 주를 미루고 있었다.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쩌다 선생님은 그 말을 했던 거였더라. 왜 잘 사는 사람들보다 망가진 사람들이 정직하다고 하셨던 거였더라. 웃자고 하셨던 건 아니었던 것 같고, 뭔가 다른 이야기를 하시던 와중에 하셨던 것 같은데. 아. 안되겠다. 한 번 그 대사 나오는 대목만 봐야겠다. 그런 마음으로 드라마를 틀어놓았다. 도저히 그 긴 시간을 버틸 수가 없어서 빨래나 개고 바닥이나 닦으면서 볼 요량으로 말이다.사실 첫 화는 그냥 그랬다. 서울에 태어났으면 뭔가 달랐을 거라 말하는 정서를 이해하기 힘들기도 했거니와(나는 서울 토박이라 그 정서를 온전히 이해하긴 힘들었다. 죄송합니다.) 다들 자신이 힘들다고는 하는데, 그들의 삶의 적어도 ‘나’보다는 나아보여서 그렇게 공감이 가지는 않았다. 헌데 2화쯤부터는 내 귀가 점점 드라마에 쏠려가더니, 3화 중반쯤부터는 개던 빨래를 손에 쥔 채 멍하니 열중하고 있었다. 세상에. 내가, 드라마에, 열중을 하다니. 그것도 나보다는 나은 삶을 살고 있는 것 같은 한 사람, 한 사람의 이야기에 말이다.나는 자신의 힘듦을 토로하는 서사에 좀처럼 공감하지 못한다. 그들의 힘듦 그 자체에 공감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지만, 그 힘듦이라는 것이 ‘나’의 힘듦보다 객관적으로 힘든 것인지 자꾸만 비교를 하게 되기 때문이다.그래도 쟤들은 나보다 이런 점에선 낫네, 그래도 쟤들은 집이라도 있네, 그래도 쟤들은 밥걱정은 없네 등등. 그런 푸념을 하며 이야기는 나에게서 멀어지고 마는 것이다.그런데도 내가 ‘나의 해방일지’에 집중하게 되는 건, 그들이 경험하는 사소하고 일상적인 트러블에 공감이 가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이 모든 인물들이 이 일상을 행복도 불행도 아닌 어딘가 쯤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그렇지 않은가. 보통의 사람들에게 일생이란 그다지 불행한 것도, 그다지 행복한 것도 아니다. 크나큰 슬픔이 찾아오는 경우도 드물고 말도 못할 희열의 순간이 찾아오는 경우도 드물다.적당한 슬픔과 적당한 기쁨. 그마저도 적당한 기쁨은 자주 찾아오지도 않으면서 적당한 고달픔만 반복되기에, ‘나’의 삶은 괴롭고 힘들게만 느껴진다. 임지훈 2020년 문화일보, 서울신문 신춘문예 평론 부문에 당선된 문학평론가. 한양대 국문과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보란 듯이 잘 사는 사람들은 그런 정도의 괴로움을 적당히 숨기거나 버틸 수 있다. 하지만 어딘가 망가진 사람들은 작은 자극에도 그 적당히 반복된 고달픔을 우수수 쏟아내고야 만다. 어딘가 마땅한 방향성을 지니지 못한 채 쏟아지는 적당한 고달픔의 말들은 그래서 대단하지도, 거창하지도 못하다. 단지 진심어릴 뿐이고, 그래서 처연하고 사랑스러울 따름이다.‘나의 해방일지’라는 거창한 제목과 달리, 이 드라마는 그렇게 거대한 악과 싸우지도 않으며 거대한 성공을 거머쥐지도 않는다.단지 조용히, 자신을 옭아매오던 작은 고통들과 맞서는 법을 하나씩 배워볼 따름이다. 그래서 이 작은 해방의 과정은 결코 성공을 향해 있지 않다. 다만 조용히 자신의 발밑을 바라보며, 자신이 선 자리를 바라볼 뿐이다. 조금의 해방을 위해서. 잘해야 한다고, 성공해야 한다고. 누구에게도 지적받지 않아야 한다고. 누군가에게든 사랑받아야만 한다는, 누구나 갖고 있는 강박으로부터 아주 조금씩 천천히 말이다.

2022-06-07

우리 모두는 천천히 달려가야 한다

여름이 되면 손에 잡히는 소설이 하나 있다. SF소설인 천개의 파랑은 안락사가 확정된 경주마 ‘투데이’ 위에서 두 번째로 낙마하고 있는 휴머노이드 ‘콜리’의 독백에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멀고도 가까운 2035년에는 인간보다 더 빠른 말의 경주 속도에 짜릿한 전율을 느끼고 선망하는 스포츠인, 경마가 유행하고 있다. ‘어느 무엇보다 더 빨라야 하는’ 인간의 욕심과 욕구가 점철되어 있는 공간은 지금과 변함이 없지만 2035년에는 말의 기수가 휴머노이드로 대체되었고, 경기장뿐만 아니라 세상 곳곳에는 인간 대신 휴머노이드로 대체 된 세계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연재를 만나기 전까지 콜리는 휴머노이드 C-27로 불렸다. 인간의 실수로 탄생된 C-27은 세상의 채도가 높은 것에 놀랄 줄 알고, 노을을 감상하고 감탄하며 단어와 지식을 무작위로 학습한다. C-27은 어느 날 경주마 투데이와 민주를 만나게 된다. 투데이의 움직임을 따라하고 등에 앉아 주로를 질주하는 순간 누군가와 함께 호흡하고 있다는 ‘기쁨’을 알게 된다.그러나 투데이는 최고의 기록을 세우기 위해 혹사당했고, 늘 1위를 유지했던 유망주에서 벗어나는 순간 많은 인간들이 질타를 받게 된다. 몸값이 떨어지고 인간의 관심이 사라지는 동안, C-27은 투데이가 점점 달릴 때 행복을 느끼지 않는 다는 걸 않고 고민에 빠진다.어느 늦여름의 경기에서 투데이가 쓰러질 듯 달리는 걸 깨달은 C-27은 투데이를 지키기 위해 낙마를 선택한다. 뒤따라오는 말발굽에 밟혀 골반과 하반신이 전부 부서지고 결국 자신의 존재 가치를 잃게 된다.곧 자신을 수거해올 하청업체를 기다리는 동안 연재를 만나게 된다. 하늘을 보기 위해 넋을 놓다 말에서 떨어졌다는 말을 들은 연재는 C-27을 자신의 집으로 수거하여 돌본다. 그리고 ‘콜리’라는 이름을 붙여준다. 연재의 동생인 은혜는 다리를 쓸 수 없는 하반신 장애를 가지고 있으며 자신의 모습과 비슷한 콜리에게서 연민과 동질의 감정을 느낀다. 연재와 은혜의 엄마 보경은 로봇 콜리를 만나며 죽은 남편의 모습을 회상하며, 자신의 멈춰버린 시간을 흐를 수 있도록 현재의 행복을 쌓는 방법을 택하게 된다. 그렇게 촛불이 타오르듯 서서히, 그녀들의 평범한 서사가 빛을 발하며 반짝이기 시작한다.그녀들의 서사는 콜리를 만나며 더 이상 개인의 아픔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곧 안락사 위기에 처한 투데이를 다시 한 번 경마장 위에 달려보게 하는 공통된 목적을 갖게 된 그녀들은, 누군가는 타인이라는 이름으로 쉽게 지나칠 법한 아주 작고 사소한 것에 가치를 부여하고 응시한다. 자신 또한 아픔으로 점철되어 있는 인간일 뿐인데도 타인에게 섬세하면서도 정제된 언어를 건넨다. 동시에 자신의 아픔을 돌아보고 보살핀다. 그러한 시도와 용기는 어디서부터 오는 걸까. 의문을 가질 때 콜리는 “저는 실수로 만들어 진거라고 연재가 말했어요. 연재는 실수가 기회와 같은 말이래요.”라며 담담하게 말한다. 윤여진 2018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 부문에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현재보다 미래가 기대되는 젊은 작가. 퇴사를 하고 난 뒤의 일상은 여유와 조급함을 오간다. 어느 날엔 새롭게 시작하는 일을 잘 해낼 수 있을 것 같다고도, 어느 날엔 사소한 일에도 쉽게 무력해지고 만다. 이 소설은 전체적으로 긴장감 있는 반전 서사나 놀라운 반전이 없다. 그저 평범한 인물들이 등장하여 한 걸음씩 천천히 나아간다. 조금 심심하고 담백하지만 호흡하며 읽어나가는 동안 어느덧 책의 끝장에 다다른다.파랑을 떠올리면 하늘이 연상되고, 하늘은 아주 많은 것을 담는 그릇 같다는 생각을 한다. 여러 날씨를 담고, 새를 담고, 무지개도 담고, 수많은 인간의 그리움도 목소리도 담는다. 그래서인지 천 개의 파랑이라는 제목과 책의 이야기는 무척 넓은 품을 가지고 있는 듯 잘 어우러진다. ‘우리는 모두 천천히 달리는 연습을 해야 한다’라는 문구를 휴대폰에 기록하여 작품을 쓰기 시작했다는 작가의 말처럼, 나 또한 오랜 시간 공을 들여 다양한 감정을 느끼고, 감정의 결을 포착해 하나씩 각자의 이름을 붙이고 싶단 생각을 했다. 조급함을 내려놓고 조금 더 천천히 숨을 고르다보면 전에 보이지 않던 것들이 분명 선명히 보일 것이다. 그런 믿음과 함께 여름을 맞이하러 나가본다.

2022-05-31

딸배를 위한 변명

‘딸배’는 온라인상에서 배달 라이더들을 칭하는 은어다. ‘배달’이라는 단어를 거꾸로 뒤집은 건데, 딸딸거리는 오토바이를 타고 다닌다고 해서, 또는 ‘딸통(배달통)’을 달고 다닌다고 해서 ‘딸배’다. 배달 라이더들을 비하하거나 모멸감을 주려 할 때 사용하는 멸칭이다. 이런 단어가 생겨난 것은 전적으로 라이더들의 잘못이다.배달 라이더에 대한 사람들의 시선이 곱지 않을 수밖에 없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아침이나 늦은 밤이나 내가 먹을 귀한 음식을 가져다주는 고마운 존재라고 여기는 사람들도 물론 많지만, 라이더들을 ‘딸배충’이라 부르며 사회의 안전과 평화를 해치는 암적 존재로 생각하는 이들도 많다. 가장 큰 이유는 라이더들의 불법 주행이다. 머플러를 개조해 배기음을 키우거나 다른 운전자의 시야를 방해하는 LED 전구를 주렁주렁 단다거나 하는 불법 개조 역시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모두 다 그런 건 아니지만, 일부 라이더들은 교통 법규를 밥 먹듯이 무시한다. 불법 좌회전, 불법 유턴, 버스 전용차선 달리기, 역주행, 인도 주행 등 타인의 안전을 위협하는 행위를 서슴없이 저지른다. 그러면서 높은 수익을 올린다. 인터넷에 배달 라이더로 돈 벌었다는 자랑 글들이 종종 오는데, 당연히 고운 시선으로 보일 리 없다. 나도 배달 라이더지만 불법 주행하는 오토바이들을 보면 화가 난다.배달 라이더들이 인도 주행을 하거나 신호를 위반하면 사람들은 ‘저 딸배충 돈에 미쳐가지고 묶음 배달하느라 저런다’고, ‘콜 하나라도 더 잡으려고 난리친다’고 생각한다.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하다. 실제로 묶음 배달을 하면 빠른 시간 안에 여러 집을 가야 하기에 서두를 수밖에 없게 된다. 하지만 단건 배달을 해도 서둘러야 하는 경우가 많다. 여기에는 복합적인 구조적 문제가 있다.배달 라이더들의 교통 위반 행위는 분명한 잘못이다. 라이더들은 반드시 운행 습관을 고쳐야 한다. 하지만 라이더들이 불법 주행을 할 수밖에 없게 하는 시스템 역시 개선될 필요가 있다. 소비자는 빠른 배달을 원한다. 배달 주문 고객 요청 사항 중 압도적으로 많은 것이 ‘최대한 빨리 갖다주세요’나 ‘빠른 배달 부탁합니다’다. 그만큼 ‘속도’가 생명인 배달인데, 속력을 낼 수 없게 하는 여러 장애물들이 있다. 음식점의 조리 대기 시간, 지나치게 높은 과속방지턱들, 꽉 막힌 도로 정체, 악천후, 이륜차가 달리기에 너무나도 위험한 노면 상태, 많아도 너무 많은 신호들, 차단기와 공동현관 비밀번호 등 아파트 출입의 까다로운 과정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며 지체되는 시간 등등이다. 하지만 소비자는 이런 사정을 모른다.내가 겪은 일이다. 스쿠터 주차 랙 쇠붙이가 부러져 아스팔트를 텅텅 때리느라 정상적인 주행을 할 수 없었다. 테이프로 칭칭 감아 겨우 응급처치를 하는 데 10분쯤 걸렸다. 예상 시간보다 5분 늦게 도착했는데, 손님은 묶음 배달을 의심하며 화를 냈고, 내 해명은 듣지 않았다. 다음날 내 라이더 평점이 깎여 있었다. 평점이 깎이면 배차 콜도 줄어들게 된다. 이병철 문학평론가이자 시인. 낚시와 야구 등 활동적인 스포츠도 좋아하며,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음식점도 손님도 배달 라이더도 모두 ‘빨리 빨리’를 욕망한다. 그리고 배달 어플은 그 ‘빨리 빨리’에 대한 욕망을 부추기고, 이용한다. 배달 도착 예정 시간을 산출하는 AI는 빅 데이터를 통해 스스로 학습하는데, 배달 라이더들이 원래 20분 걸리는 길을 15분 만에 가기 시작하면 AI는 그 경로를 이제 15분 코스로 인식한다. 교통 상황과 날씨 등 변수는 고려하지 않는다. 라이더들은 그렇게 AI가 단축시킨 시간 내에 배달을 완수해야만 한다. 라이더들이 빠르게 달릴수록 AI는 더 짧은 시간 안에 배달하라 명령하고, 결국 라이더들은 더 빨리, 더 더 빨리 달릴 수밖에 없다.이 사슬을 끊으려면 음식점, 손님, 라이더 모두 ‘빨리’ 대신 ‘천천히’와 ‘안전하게’를 지향해야 한다. 다행히 조금씩 변화하는 게 보인다. 음식을 받아 갈 때 종업원이 “안전운전하세요”라고 당부하고, 손님도 요청 사항에 ‘천천히, 조심히 와주세요’를 입력한다. 라이더들도 교통 법규를 준수해 배달 문화를 바꾸는 자정 노력을 하는 중이다. 그러니 ‘딸배’라고 너무 욕하지 말자. 비바람이 불고 천둥번개가 쳐도 당신의 소중한 치킨과 피자를 싣고 열심히 달려가는 사람들이다.

2022-05-31

그렇게 어른이 된다

나에게는 중학교 때부터 항상 붙어 다닌 세 명의 친구가 있다. 좋은 일도 슬픈 일도, 바보같은 짓도 함께 하며 울고 웃었던 친구들. 서로의 경조사를 항상 함께하며 힘들 땐 위로가, 기쁠 땐 함께 웃어준 누구보다 소중한 친구들. 못난 놈들은 서로 얼굴만 봐도 웃기다고, 우리도 서로 얼굴만 봐도 자꾸 웃게 된다. 다들 밖에서는 존중받고 또 신뢰받으며 살아가는 친구들이지만, 왜인지 모르게 우리끼리 있을 때면 한없이 바보 같고 실없어진다. 나는 친구들의 그런 모습이 서로에 대한 신뢰처럼 느껴지곤 해, 바보 같은 소리를 하며 농담 따먹기를 하는 순간들이 더없이 소중하고 사랑스럽게 느껴진다.우리는 모두 서울 은평구에 살았었다. 둘씩 둘씩 아주 어려서부터 친구였다가, 중학교에서 서로 만나게 되었다. 그때부터 우린 마치 그보다 훨씬 전부터 넷이 하나였던 것처럼 붙어 다녔고, 서로 싸우기도 하고 한없이 의지하기도 하며 20년을 함께 지내왔다. 하지만 나이를 먹고, 교대로 군대를 다녀오고, 이사를 가고 하면서, 이제는 모두 은평구를 떠나고 말았다. 같은 동네를 살 땐 몰랐다. 가까운 거리에 네가, 밤이면 우리가 함께 모일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기쁨이고 축복이었는지 말이다. 이렇게 다들 다른 지역에서 살아가게 되니, 그와 같은 인연이 얼마나 기적 같은 일이었는지 새삼 느낀다.그렇게 우리는 30대가 되었고, 하나 둘 결혼을 하며 가정을 이뤄가고 있다. 이제 우리는 철없는 아이가 아니라, 누군가의 동반자로서, 누군가의 아빠로서 살아가게 되었다. 이제는 마냥 실없는 짓만 할 수는 없게 된 친구들의 모습에 때로는 서운하기도 하고 때로는 질투가 나기도 하지만, 그래도 한편으론 그렇게 변해가는 친구들의 모습을 보는 것이 너무나도 기쁘다.저번 토요일의 일이다. 우리는 넷 중 가장 일찍 결혼해 어느새 한 아이의 아빠가 된 친구의 집에 모였다. 보다 일찍 아이도 보고, 녀석의 사는 모습도 보고 싶었지만, 코로나 시국에 갓난아기를 보러 간다는 게 마음이 편치 않아 미뤄진 자리였다. 그 사이 아이는 어느새 무럭무럭 자라 걷고, 뛰고, 토끼나 아빠, 속닥, 똑딱 같은 간단한 단어를 말할 정도로 커 있었다. 나는 그게 신기해 한참을 보고만 있었다. 너무나 작고, 너무나 부드럽고, 그래서 금방이라도 부서지거나 사라질 것만 같아 조금은 슬퍼지는 행복한 기분이었다.사실 나는 아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이해할 수 없는 말과 행동을 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고 있자면, 내가 어떻게 행동해 주는 게 옳은 건지 알 수 없어 불안하고 무서운 마음이 든다. 하지만 녀석의 딸을 보는 건 조금 다른 기분이었다. 아마 나에게 소중한 사람의, 자신보다 더 소중한 존재이기에 그런 기분이 들었던 것 같다. 신기하다는 말 말고는 어떻게도 표현할 수 없는, 그런 느낌. 하지만 보다 신기했던 건, 그런 아이의 모습보다도 더 신기했던 건, 아이를 시종일관 바라보며 눈을 떼지 못하는 내 친구의 모습이었다. 어느새 녀석은 함께 바보 같은 짓을 하고 밤새 함께 술을 먹고는 부스스한 얼굴로 인사하던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세상의 모든 위험으로부터 아이를 지켜주겠다고 각오한, 이 세상이 위험하고 험한 곳이지만 그곳에 절대 너를 혼자 두지 않겠다고 각오한 남자가 되어 있었다. 녀석은 어느새, 어른이 되어 있었다. 임지훈 2020년 문화일보, 서울신문 신춘문예 평론 부문에 당선된 문학평론가. 한양대 국문과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사실 난 좀 건방지고 오만한 구석이 있어, 내가 세상에서 제일 생각이 깊고 마음이 넓다고 생각할 때가 자주 있었다. 어려서부터 나는 내가 세상에서 가장 성숙한 아이인 것처럼 굴었고, 세상 모든 슬픔과 고통을 미리 경험한 사람인 것처럼, 혹은 전생의 슬픔을 여전히 기억하고 있는 사람인 것처럼 살아왔다. 하지만 나는 어렸고, 어리석었다. 단지 어리고 어리석어 타인은커녕 스스로도 감당하지 못했을 따름이었다. 아이를 바라보는 친구의 모습을 보며, 나는 내가 정말로 그런 사람이 아니라 단지 한없이 어리광을 부리고 있었을 따름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는커녕, 스스로의 마음도 감당하지 못하는 어른아이.그렇게 어른이 된 친구의 집을 나오며 나도 모르게 존경하는 눈빛으로 바라보았던 것을, 너는 알까. 네가 이미 누군가를 지킬 수 있는 힘을 가졌으며, 세상을 향해 인도할 수 있는 존재가 되었다는 사실에, 내가 너를 얼마나 자랑스럽다 생각했는지, 너는 모를 것이다. 처음으로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도 너와 같은 어른이 되고 싶다고. 진심으로 존경하는, 너와 같은 어른이. 아마 너는 아직 모를 것이다. 하지만 이것만은 알아주길. 너에게는 너의 힘듦을 함께하고 너의 아이를 함께 지켜줄 소중한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너의 행복을 지켜줄 친구들이 너의 곁에 항상 함께 있다는 사실 말이다.

2022-05-24

복수, 그 수상함에 관한 단상

얼마 전 학생들과 함께 권여선 작가의 ‘친구’라는 작품을 읽었다. 해옥이라는 여자를 중심으로 진행되는 소설은 짧은 분량이지만 우리의 현실을 완벽하게 그려내며 문학으로 획득할 수 있는 강렬한 페이소스를 보여준다.해옥은 “하루하루에 기쁨이랄 것”이 없이 살아가는 인물이다. 그런 그녀에게는 아무도 모를 두 가지의 기쁨이 있는데 하나는 매일 새벽마다 감사기도를 드리는 신이며 또 다른 하나는 보물과도 같은 아들 민수다. 평소와 다름없이 지난한 일상을 살던 해옥은 담임에게서 아들인 민수가 학교폭력을 당했다는 사실을 듣게 된다. 그간 해옥이 민수의 친구라고 알고 있던 아이들이 민수를 집요하게 괴롭히고 폭력까지 휘두른 것이었다. 무엇보다 소설에서 마음 아프게 다가오는 부분은 해옥과 민수가 폭력을 폭력이라고 인지하지 못하는 상황이며 더 나아가 아들인 민수는 자신을 괴롭힌 가해자들을 친구라는 미명으로 감싸는 모습까지 보인다.텍스트를 읽은 학생들은 저마다의 생각을 내어놓았다. 우리와 맞닿은 현실을 언어적으로 구현했다는 놀라움과 인물의 심리를 날카롭게 응시하는 작가의 시선에 감탄했으며 소설 속 인물인 해옥에 완전히 이입하다 못해 더 나아가 이토록 답답한 상황에 분개하는 학생도 있었다. ‘사이다’ 없이 ‘고구마’로만 끝났다는 것이었다. 해옥과 민수가 받은 폭력을 갚아주는 것까지는 아니더라도 제도적 장치로서 문제를 해결했어야 한다는 의견이었다.어떤 것도 해결하지 못한 채로 이야기의 막을 내린 것은 현실보다 더 현실 같은 허구의 상황을 보여주고자 했던 작가의 의도였을 것이다. 이 이야기를 전혀 다른 방식으로 다뤄볼 수도 있겠다. 해옥의 내면에서 부글거리는 분노의 감정에 초점을 맞춘다면 선하게 살아가는 모자에게 닥친 위기 상황이 종국에는 복수극으로 전환되어 독자로 하여금 일종의 만족감을 선사했을지도 모른다.사실상 ‘복수’라는 키워드는 유구한 역사 동안 다양하게 소비되어 왔다. 서양 최초의 서사시라 일컬어지는 호메로스의 ‘일리아스’ 역시 아킬레우스의 분노와 아가멤논을 향한 복수심으로 시작된다. 일일이 나열할 수 없을 정도로 수많은 작품이 복수의 서사를 사용하면서 법과 규제의 테두리 안에서 만족할 수 없는 인간의 내밀한 감정적 지점을 건드린다.그러나 이러한 복수극의 플롯이 어쩐지 수상하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다. 솟아오르는 감정에 사로잡혀 자기 인생을 내걸고 타인을 파멸시키는 것이 삶의 목적이 되며 결국 자신의 존엄까지 해치는 인물에게 공감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못해 당연해진 시대가 되어버린 것이다. 피해 보는 인생을 살 바엔 차라리 추악함을 택하겠다는 마음도 만연하다. 복수의 무서운 점은 자신이 옳은 일을 하고 있다는 믿음을 갖게 되는 것이다. ‘잘 살아라. 그것이 최고의 복수다.’라는 말이 유행할 정도로 자기 삶의 정확성을 가지는 일조차 누군가를 향한 분노로 추동하고 있지 않은가.그렇다고 해서 사랑과 용서를 설파하기엔 결코 아름답지 않은 세상이다. 세상에 만연한 추악함을 덮을 수 있는 것이 막연한 사랑은 아닐 것이다. 그것은 이청준의 ‘벌레 이야기’에서도 드러나는 문제의식이다. 용서하는 행동이 자신을 구원할 것이라는 종교적 믿음을 붙잡았지만 전지전능하고 공평한 신은 살인자의 마음마저 어루만지며 그를 용서하지 않았는가. 그러니 차라리 자기 손으로 살인자의 목을 조르는 편이 낫겠다고 소리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문은강 ‘춤추는 고복희와 원더랜드’로 주목받은 소설가. 2017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작가로 등단했다. 그런 지점에서 ‘친구’의 해옥은 얼마나 답답한가. 자신의 별 볼 일 없는 삶을 신의 뜻이라고 치부하며 폭력에 노출된 아들을 보면서도 그럴 리 없다고 고개를 젓는다. 그러나 우리는 선량하고 착한 사람들이 획득하게 되는 어떠한 지점에 관해 알아야 한다. 올바르고 완벽한 정답을 인지하지 못하는 어리석음이야말로 그들에게는 일상을 지탱하는 큰 힘이다. 세계의 끔찍함을 완벽하게 응시하는 순간 분노할 수밖에 없고 그 감정에 잡아먹히는 것은 오히려 더 큰 불행을 초래한다. 그러므로 이 모든 상황이 오히려 전지전능한 누군가의 뜻이라고 믿으면서 살아갈 뿐이다.이런 인물들을 그저 답답하다고 치부하기엔 마음 한편이 아려오는 것이다. 어떠한 일의 판단과 결정은 오롯이 그들의 몫이며 무엇도 정답이 될 순 없다. 그래서 우리는 문학 작품을 읽는다. 불합리한 상황에 분노하는 일. 타인의 감정까지 지평을 넓히는 일. 그렇지만 어떤 행동도 하지 못하고 시간이 흘러가게 두는 것이 최선의 선택이라고 믿는 인물 또한 세계에 존재한다는 것을 인지하는 일로 나아가기 위함인 것이다.

2022-05-24

한동훈 인사청문회의 효능(?)

음식점 벽면에 ‘○○의 효능’이라는 설명문이 붙어 있는 걸 자주 본다.보양식으로 알려진 흑염소나 삼계탕, 장어를 파는 집들은 두말할 것도 없고, 순대국밥집에는 ‘순대의 효능’, 삼겹살집에는 ‘돼지고기의 효능’, 족발집에는 ‘족발의 효능’이 붙어 있다. 대개 기력을 보충하고, 위장을 따뜻하게 하며, 피부미용에 좋다는 상투적인 얘기들이다.음식점뿐만 아니다. 사우나나 찜질방에 가면 ‘황토방의 효능’, ‘해수 목욕의 효능’, 심지어 ‘세신의 효능’도 있다. 산림욕장 입구에는 ‘산림욕의 효능’, ‘맨발 걷기의 효능’이 있고, 헬스클럽에는 ‘피트니스의 효능’이, 지하철 계단에는 ‘계단 오르기의 효능’이 있다.이쯤 되면 그야말로 ‘효능의 민족’이 아닌가 싶다. 몸에 좋다더라, 어디에 효과가 있다더라 하면 사람들은 관심을 보인다. 관심을 끌기 위해서, 무수히 많은 ‘효능’들이 태어나고 있다.하도 효능, 효능 하니까 궁금해서 검색해봤다. 과연 이런 것들도 효능이 있을까?햄버거의 효능은 “탄수화물, 단백질, 지방, 칼슘이 고루 들어 있어 골고루 영양소를 섭취할 수 있다”는 것이고, 피자의 효능은 “암 발생 억제 효과가 뛰어나고, 피부미용과 다이어트에 좋으며, 영양학적으로 완벽하다”는 것이다. 떡볶이는 “위장 건강을 개선하고 소화를 촉진”하고, 비엔나 소시지는 “당질의 대사를 도와 에너지를 만들어 피로회복에 도움이 되고, 판토텐산 성분이 동맥경화와 스트레스를 완화시켜준”다. 콜라는 “위장의 산성도를 낮추어 위장을 진정시키는 역할”을 하고, 라면에는 “신경통, 관절염, 편두통, 난청, 야뇨증, 변비, 만성피로를 예방하고 콜레스테롤을 저하시키며 혈소판 응집을 억제하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이렇게 몸에 좋은 음식들을 왜 정크 푸드라 불러온 걸까? 저 휘황찬란한 효능들이 사실이라면 우리는 햄버거, 피자, 떡볶이, 소시지, 콜라, 라면에게 사과해야 한다.이쯤 되니 호기심이 더 깊어진다. 소주의 효능은 다음과 같다. “소변을 잘 나오게 하고 대변을 굳게 하며, 기생충을 없애주고, 뭉친 것을 흩어주며, 가래를 삭히고, 습한 것을 말리고, 한기를 없애준다” 그럴듯하다. 담배의 효능도 있다. “구강 점막을 경화시키며 궤양 점막을 유발하는 입안 세균을 사멸시켜 구내염을 예방한다”고 누군가 적어놨다. 심지어 코인노래방의 효능도 있다. “피부가 탱탱해진다, 여자는 S라인이 되고 남자는 정력이 좋아진다, 칼로리 소모로 살이 빠진다, 우울증이 해소되고 얼굴이 동안이 된다, 득음이 가능하다, 연예기획사에 캐스팅될 수 있다, 남녀가 함께 들어갈 시 ‘썸’을 탈 확률이 높아진다” 등이다. 효능에 미친 ‘효능 공화국’을 유쾌하게 풍자한 것이다.세상 모든 것은 저마다의 존재목적과 가치를 갖는다는 범우주론적 믿음이 수많은 ‘○○의 효능’들을 만들어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나는 얼마 전 ‘인사청문회의 효능’을 제대로 체험했다. 정치 혐오론자, 정치 회의론자인 내가 정치인들 덕분에 웃은 것이다. 웃음에는 “코티솔 수준을 낮추고 면역계를 촉진하여 스트레스에 의한 면역억제 작용을 상쇄하고, 카테콜아민이나 엔도르핀처럼 사람들을 활기차고 건강하게 하는 물질의 분비를 증가시키”는 효능이 있다고 한다. 이병철 문학평론가이자 시인. 낚시와 야구 등 활동적인 스포츠도 좋아하며,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한동훈 법무부장관 후보자의 인사 검증 과정에서 더불어민주당 김남국, 최강욱, 이수진 의원이 보여준 ‘개그 콘서트’가 많은 이들을 웃겼으니, 감사하다. 국민들을 활기차고 건강하게 만들어준 게 아닌가. 이들은 각각 ‘이모 교수’를 엄마의 자매인 이모로 오해하고, ‘한국3M’이 한동훈 후보자의 딸이라 억지 부리고, 술에 취한 듯 고성을 버럭버럭 질러댔다. 오해, 억지, 고성에는 어떤 효능이 있는지 궁금하다.웃음에 효능이 있다지만 쓴웃음에는 아무런 효능도 없을 것이다. 인사청문회를 보다가 결국 쓴웃음을 짓게 됐다. 쓴 약이 몸에 좋다던데, 쓴웃음도 쓸 데가 있지 않을까? 대통령 뽑은 게 엊그제인데 며칠 뒤면 또 선거다. 선거에는 어떤 효능이 있기에 저토록 공천에 매달리고 당선되려 사력을 다하는 걸까? 나에게 있어 선거의 유일한 효능은 공휴일이라는 점이다. 아침 일찍 그나마 덜 웃기는 사람한테 투표하고 낚시나 다녀와야겠다. 낚시에는 스트레스 해소, 체력증진, 제철생선 섭취 등의 효능이 있다.

2022-05-17

아주 약간의 용기만 있다면

집 주변 조금만 돌아다녀도 노숙자를 흔히 만난다.몇몇 분들은 낯이 익기도 하다. 그들은 거대한 쓰레기봉투나 낡은 캐리어를 끌고 다니며 안에 잡다한 물건을 넣어 다닌다. 끌고 다니기 버거울 정도로 물건이 충분해 보이는 데도 혹시 쓸 만한 것이 있는지 쓰레기통을 하염없이 뒤적인다. 그렇게 쓰레기통을 헤집다가 일과를 끝낸 듯 또다시 벤치에 앉아 멍하니 세상과 멀어진다. 두 눈이 텅 빈 채 묵묵히 앉아 있는데도 이상하게, 정말 하고 싶은 말이 많아 보인다.나 포함해서 사람들은 그들을 배경의 일부처럼 여기고 지나친다.눈에 자꾸 밟히고 마음에 걸리는 것도 한 두가지가 아니지만 선뜻 도와주기엔 무섭다. 내 도움이 오히려 우스워지면 어쩌지? 하는 생각과 사실 내가 죄책감처럼 여기는 이 감정이 감히 누군갈 딱히 여기려는 가식이나 거짓일까 두렵기 때문이다.하지만 한 번 마음이 쓰이니 계속 외면만 할 수 없었다. 점점 거리에 앉아 있는 그들의 이야기가 궁금했다. 지갑에 있는 현금을 끌어 모아 주기엔 실질적인 도움이 될 것 같진 않았고, 또한 이 낯설고도 불편한 감정을 너무 쉽게 해결해버리는 것 같아 싫었다. 게다가 거리에 놓인 이들을 대하는 이 알 수 없는 이질감을 위선이나 가벼운 동정이라 간단히 치부하고 싶지 않았다.혹시 도움의 손길을 절실히 필요로 하는 곳이 있을까 싶어 인터넷에서 몇 번 검색하고 여러 단체 사이트에 접속해보니 눈길이 머무는 곳이 한 곳 있었다. 그곳은 일주일에 5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방문하는 이들에게 어떠한 조건 없이 음식을 대접하는 곳이었다. 2003년 4월부터 문을 열어 지금까지도 운영되고 있는데, 간판은 아주 작아 지나치기 쉽고 위치 또한 찾기 어려운 곳인데도 그곳을 찾는 사람들은 끊이지 않는다.게다가 신기하게 식사를 하기 위한 줄을 서지도 않는다. 기다리면 언젠가 자신 차례가 되어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곳은 방문하는 이들을 환대하며 식구라 부르는데 누군가 입을 열어 말을 꺼내면 그 이야기를 듣고 필요 물품을 제공한다. 옷, 신발, 핫팩, 찜질방권을 주고 그들이 자립할 수 있는 의지가 있다면 필요한 부분을 지원하기도 한다.어떠한 조건이나 대가 없이 그들에게 내어주면서 정부 지원이나 예산을 위한 프로그램 공모, 후원회 조직은 일절 받지 않는다.특히나 생색내는 기부자나 부적절하다고 여겨지는 돈은 어떠한 일이 있어도 거절한다. 그러면서 늘 부족한 것이 없다고 말하다. 그래서일까. 매년 개인 후원자나 기부금이 끊이질 않는다. 자원봉사하러 오는 이들도 많다고 한다.그곳의 기록이 담긴 블로그 글을 읽으며 나는 노숙자들의 딱한 상황을 불쌍히 여기고 싶은 게 아니라 그들의 이야기가 너무나 듣고 싶었다는 걸 확신했다.텅 빈 눈으로 시간을 견디던 그들은 사실 그 누구보다 삶을 살아내고 싶은 바람이 있었으며, 배경을 이루는 npc가 아닌 나와 같은 사람이라는 걸 확인하니 안심되었다.거리에 앉은 이들의 생애는 가늠할 수 없이 아득하고 복잡한 이야기였고, 현대사회 어느 한 곳에선 선의를 행하고 있는 곳이 있다는 것을 알았기에 이번 기부가 의미 있게 다가 왔다.세상은 내가 보는 것만큼 결코 단순하고 온전하지 않음을 알았으니 더욱 과감히 시선을 넓히고 행동해야 겠단 생각을 했다. 윤여진 2018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 부문에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현재보다 미래가 기대되는 젊은 작가. 순간 주위를 둘러보니 나는 또 너무 많은 것을 갖고 있었다.너무 잡다한 물건, 너무 많은 욕심, 너무 많은 회피와 주저함, 나를 괴로움으로 내모는 물건은 전부 버리고 포장도 뜯지 않는 이불이나 컵라면 박스는 택배 박스에 담아 문 밖에 내놓았다.필요한 곳에서 딱 필요한 만큼의 나눔을 담으며. 마음이 이끄는 곳으로 향하니 그제야 편했다.기부는 내가 가진 것의 전부를 주는 희생도 아니고 여유가 있을 때에 행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아주 약간의 용기만 있으면 된다. 목적이나 대가 없이 나누며 줄 수 있는 것에 기쁨을 찾아야겠단 생각을 오래 했다.

2022-05-17

다들 이렇게 산다고요?

오월이다. 오월은 이상하게 들뜨는 달. 부쩍 좋아진 날씨에 어디론가 훌쩍 떠나야 할 것만 같고 예기치 못한 수상한 이벤트가 벌어질 것 같은 그런 달이다.오월에도 나는 여전히 같은 자리에 앉아 구름처럼 흘러가는 시간을 꼼짝없이 바라보고 있다. 삼월에도 사월에도 그랬던 것처럼. 매일매일 같은 시간에 눈을 뜨고 비슷비슷한 하루를 살아간다. 이런 일상을 영위하는 일도 나쁘지만은 않다.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남들만큼만 살았으면 좋겠다고 바랐던 시절이 있었기 때문이다. 한 시절이 유한하다는 것을 온몸으로 깨닫는 요즘, 복원할 수 없는 현재를 즐기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일상의 반복이 답답하다는 기분에서 벗어날 수 없다.격무에 시달리고 집으로 돌아오면 곧장 침대 쓰러져서 자고 싶지만 아무렇게나 시간을 흘려보낼 수는 없다. 퇴근 이후야말로 하루 중 유일하게 자유로운 시간이기 때문이다. 가장 먼저 하는 일은 반려견을 위한 산책이다.새로 이사한 집 앞에는 온갖 꽃나무가 흐드러지게 핀 공원이 있다. 한 시간 정도 강아지와 산책을 한 뒤에는 간단한 음식으로 요기하고 집안일을 한다. 설거지, 빨래, 청소… 집안일은 왜 해도 해도 끝이 없는 것인지. 그러다 보면 캄캄한 어둠이 찾아오고 책상 앞에 앉아 소설을 끼적이다가 침대에 드러눕는다. 핸드폰을 뒤적거리면서 인터넷 세상을 기웃거리고 있노라면 ‘이제야 좀 쉬고 있군’이라는 마음이 절로 떠오른다. 침대 위의 휴식 시간에서 가장 많은 지분을 차지하는 플랫폼은 유튜브다.이제는 유튜브와는 뗄 수 없는 시대가 되었다. 정보를 검색하는 것부터 음악 감상까지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이 이 채널 안에 있다. 이러한 니즈에 맞춰 다양한 채널은 질 높은 콘텐츠를 제공한다. 추억의 코미디 프로그램을 짧은 클립으로 잘라서 업데이트하는 것부터 시작해서 짧은 분량의 웹드라마, 콩트까지. 유튜브는 이제 기존의 텔레비전이 담당했던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단순하게 볼거리를 제공하는 것을 넘어서 패션, 요리, 메이크업, 게임 등을 보여주는 다양하고 전문적인 채널도 꾸준히 인기를 얻고 있다.그 안에서 요즘 내가 자주 시청하는 영상은 일상을 찍어 올리는 ‘브이로그(v-log)’다.처음 브이로그를 봤을 때의 당혹감을 기억한다. 한 사람의 일상이 특별하지 않게 흘러가는 것을 지켜보는 일, 그러니까 타인의 삶을 들여다본다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들었다. 카메라를 가운데 두고 담아내는 일상이 완전하게 날 것일 수는 없다. 의도적으로 편집된 부분들과 삭제된 시간들 사이에서 가장 좋은 것, 가장 흥미로운 것을 연출한다는 것도 느껴졌다. 거기에 따라오는 이질감이 불편했던 것도 잠시, 어느 순간 스스로 브이로그를 검색해서 보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들의 아침부터 저녁까지의 삶을 지켜보면서 일종의 동질감과 일말의 위안이 생겼기 때문이다. 화면 너머 바쁘게 움직이는 이들을 보면서 생각한다. 아… 다들 이렇게 사는구나.이토록 망망한 세계를 혼자서 살아갈 순 없다. 타인과의 관계맺음 역시 쉬운 일은 아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좌우를 살피고 함께 걷는 사람들의 얼굴을 들여다본다. 내 걸음이 너무 빠르거나 느린 것은 아닌지 타인을 가늠하고 나 자신의 좌표를 인지한다. 문은강 ‘춤추는 고복희와 원더랜드’로 주목받은 소설가. 2017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작가로 등단했다. 돌이켜보면 오래전부터 그랬다. 까맣게 어둠이 내려앉은 밤, 환하게 불빛을 빛내는 어느 집의 창문을 바라보면서 저곳에는 과연 누가 살고 있을지 궁금해하곤 했었다. 밤하늘의 무수한 별을 헤아리듯 모두의 삶 속에 있는 이야기들을 만져보고 싶었다. 상상의 영역에 존재하던 타인의 삶을 너무 쉽게 볼 수 있게 된 요즘이다. 보이는 영역과 보이지 않는 영역의 경계가 흐릿해진 것이 느껴지면 왠지 모르게 가슴이 철렁 내려앉기도 한다.오늘도 나는 핸드폰을 들어서 타인의 삶을 관망하는 중이다. 이렇게 사는구나. 이렇게도 살 수 있구나. 이런 삶은 어떤 기분일까? 그러한 질문은 돌고 돌아서 다시 내게로 돌아온다.그리하여 너는 어떻게 살고 싶어?답을 내리기엔 골치 아프지만 일상을 지내다보면 순식간에 휘발되고야 마는 물음에 가깝다. 침대 위의 내게 너무 많은 정보가 와르르 쏟아지고 있다. 과연 좋은 시절일까. 안도와 불안 속에서 두 눈을 감는다.결국엔 이렇게 마음을 다잡을 수밖에 없다. 오늘 하루도 고생했다고. 이렇게 차근차근 우리의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중이라고.

2022-05-10

문제는 BTS가 아니다

지난 4월 23일 ‘가디언지’에는 다음의 기사가 올라왔다. ‘BTS 병역 논란으로 분열된 한국’이라는 기사에는 BTS가 기여한 경제 효과가 35억 달러에 이른다는 설명과 함께 요즘 이들의 병역 문제에 대한 한국에서의 논란을 다루고 있었다. 더불어 이 기사에서는 대체복무 혜택을 받은 대표적인 국내 예체능인으로 손흥민과 조성진을 소개하며 한국의 병역 대체 자격 제도에 대해서도 소개했다.BTS의 병역 면제에 대한 이슈는 올해에 처음 시작된 것은 아니다. 시간을 조금 거슬러보자면, 2018년 당시 바른미래당 소속의 하태경 의원이 아시아 게임과 같은 스포츠 종목이 아닌 다른 예체능계에서는 병역 특례가 거의 없다는 점을 지적하며 BTS를 거론한 것이 시초이다. 물론 당시의 하태경 의원의 주장과 현재의 BTS의 병역 특례를 둘러싼 주장에는 다소간 차이가 있겠으나, ‘병역법’에 대한 개정의 필요성이 지적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대다수의 한국인이 알고 있듯, 한국에서는 법적으로 성인 남성은 예외 없이 국방의 의무를 이행해야 한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예컨대 누구나 치러야만 하는 의무에 있어 각종 편법을 통한 면제가 난무하다보니, 같은 남성의 입장에서는 병역과 관련된 문제가 보다 예민하게 다가온다.겉으로 보기에 국방의 의무는 대한민국을 수호하고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한다는 신성한 의무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어떠한가. 군 내부의 만연한 폭력과 각종 부조리를 비롯한 기본권의 무시와 사회진출을 위한 준비를 해야 할 시기에 2년을 강제로 압류 당해야 한다는 박탈감에서부터, 병역 의무 이행자에 대한 사회적 배려가 전무하다는 사회적 문제에 이르기까지, 한국 남성에게 군대란 신성한 의무가 아니라 편법을 취할 수 없어 치러야만 하는 벌칙과 같이 다뤄지기 때문이다. 그것도 개인의 잘못에 대한 벌칙이 아니라, 그와 같은 편법을 저지를 경제적 배경을 지니지 못한 자가 치러야 하는 벌칙 말이다. BTS의 병역 특례와 관련된 이슈를 살펴보고 있자면 병역의 의무를 벌칙처럼 생각하는 사회적 풍조가 만연해있으며, 그것이 더욱 강화되는 것 같다. 특례라는 말에서부터 그렇다. 왜 특례가 필요한 것인가? 국방의 의무가 신성한 것이고 모든 사람들이 치러야 하는, 대한민국의 어쩔 수 없는 의무라면 왜 특례 제도를 통한 면제가 존재하는 것인가. 특례 제도는 법적인 문제이므로 글쟁이인 내가 옳고 그름을 면밀하게 따지기는 어려운 일이겠지만, 30대 남성으로써 느끼는 바는 이와 같은 제도에 전제되어 있는 병역의 의무가 지닌 위상이 그다지 신성하지도, 또 고귀한 것도 아니라는 점이다. 사실 BTS가 그렇게 문제겠는가. 그간 예체능 부류에서는 계속해서 병역 특례가 나왔었다. 가장 훈련에 매진해야 할, 가장 좋은 성적을 얻을 수 있는 시기에 병역의 의무를 다한다는 것이 한 선수의 경력을 단절시키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점에서 그들에 대한 병역 특례를 문제 삼자는 것이 아니다. 아마 이와 같은 기본적인 요소에 대해서는 대다수의 성인 남성이 동의하리라고 본다. 예컨대, 최근의 병역법 개정을 둘러싼 문제에 대해 20~30대 남성의 반응이 거셀 수밖에 없는 것은 BTS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BTS를 둘러싼 법적, 정치적 움직임에 거부감이 들 수밖에 없는 것은 병역을 피해야 하는 요인으로 다루는 시선들과 개인적, 사회적 피해들에 대한 고려가 전무하기 때문이다. 임지훈 2020년 문화일보, 서울신문 신춘문예 평론 부문에 당선된 문학평론가. 한양대 국문과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즉, 이와 같은 문제에서 나타나는 의견들은 BTS라는 가수에 대한 배척의 태도가 아니라 병역 제도 자체에 대한 불신과 불만의 목소리가 훨씬 더 크게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최소한의 선택지조차 없는 채 단지 의무라는 이유로 인생의 귀중한 시간을 할애해야만 하며, 그 대가로 인권 경시와 심지어 생명권의 경시조차 경험해야만 했던 의무 이행자의 입장에서 보자면, BTS는 이런 경험을 안했으면 하는 것이 최소한의 마음이다. BTS만이 아니라, 군입대를 앞둔 모든 남성에게 드는 생각이다. 단지 의무라는 이유만으로 가혹하고 부조리한 환경에 던져지는 것은 과연 합당한 일인가? 합법적이기에 우리가 그것을 합당한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면, 우리는 그 합법성의 요소들에 대해 다시금 고려하고 제도를 수정하는 과정을 거쳐야 하는 것이 아닐까? 병역 제도에 대한 남성들의 발언은 결코 쪼잔한 남성들의 나보다 나은 남성을 향한 한풀이가 아니다. 병역제도라는 대한민국의 근간을 이루는 법적 제도적 장치로 인한 피해자의 증언으로 이 사회가 받아들여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2022-05-10

우주영웅과 전장연 시위

김초엽 소설집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에 실린 단편 ‘나의 우주영웅에 관하여’는 매혹적인 작품이다. 간략하게 소개하자면, 48세의 미혼모 ‘재경’은 인류를 대표해 ‘우주 터널’을 통과할 우주인으로 선발된다. 우주 터널 저편에 있을 새로운 유토피아를 탐사하기 위해, 척박한 우주에서 생존하기 위해 18개월의 신체 개조를 견뎌낸 그녀는 사이보그 같은 초월적 몸을 갖게 된다. 마침내 우주 터널 프로젝트가 개막하는 날, 재경은 우주로 가는 대신 깊은 심해로 몸을 던져버린다. 엘리트주의가 한 개인에게 과도하게 짊어지운 성공 서사의 굴레를 벗어버리고, 주체적 선택을 통해 우주가 아닌 심해라는 제3의 세계, 인류를 위한 것이 아닌 자기 개인을 위한 완벽한 자유를 개척한 것이리라.재경은 동양인, 여성, 미혼모, 48세, 왜소한 신체 등 온갖 소수자적 조건을 갖춘 약자이자 비정상인이다. 이러한 재경이 인류를 대표하는 우주인으로 선발된다는 설정은 엘리트주의가 강요하는 ‘정상성’ 개념을 비판하기 위한 작가의 의도일 것이다. 독자들은 우주가 아닌 바다로 뛰어든 재경의 선택을 두고 생각이 복잡해진다. 정상성이라는 왜곡된 신화를 해체하는, 획일화된 성공 서사를 무력화하는 소수자 여성의 주체성으로 읽으면 응원하게 되지만, 우주 터널 프로젝트에 동원된 사회 자본과 수많은 사람들의 노력을 생각하면 한없이 이기적이고 무책임한 행동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이 양가적 감정 사이에 김초엽은 우리에게 화두를 하나 던진다. 개인의 신념과 행복 추구가 사회라는 전체와 충돌할 때, 또 소수자의 목소리가 보편다수의 평화에 노이즈를 일으킬 때 우리는 과연 그들의 타자성을 어떻게 수용할 것인가 하는 문제 말이다.재경에게 지워진 세계의 과도한 기대와 부담, 그것을 저버린 그녀의 주체적 선택은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 논란을 떠올리게 한다. 정부와 진보 지식인들은 ‘남북 평화’, ‘세계 평화’라는 거대담론을 내세워 선수 개개인에게 남북 단일팀 구성이라는 부당한 희생을 강요했다. 젊은 세대에서 반발이 일자 “어차피 메달권도 아니다”, “올림픽 정신도 모르는 이기적 철부지” 따위 막말도 했다. 국가라는 전체주의의 낡은 망령이 개인에게 가한 이 폭력을 보면서 대부분 사람들은 선수들을 응원했지만, 일각에서는 “국민 세금으로 국가가 제공한 시설에서 운동한 선수들이 국가를 위해 희생하는 게 당연하다”는 반응도 있었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이하 전장연)의 시위를 두고 여론이 팽팽하다. “그만큼 절박하기에 저렇게까지 해서 목소리를 들어달라는 게 아니냐”는 옹호 여론과 “아무리 절박해도 시민들에게 피해를 입히는 건 폭력이다”는 비난 여론이다. 나는 전장연의 시위가 벼랑 끝에서 살려달라고 간신히 내뱉는 신음 같아서 안타깝고 아프다. 그들의 행동이 다 옳은 건 아니지만, 그럴 수밖에 없는 사정을 이해하고 응원하는 입장이다. 이병철 문학평론가이자 시인. 낚시와 야구 등 활동적인 스포츠도 좋아하며,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장애인들을 향해 손가락질하는 사람들이 야멸치게 느껴진다. 그런데 ‘당사자성’이라는 네 글자가 가슴 깊은 곳에 가 박히면 꽉 막힌 체증이 된다. 전장연 시위로 인해 중요한 취업 면접에 가지 못했다는 한 청년의 사연이 내 이야기였다면 나는 과연 지금처럼 고상하고 정의로운 척 그들을 옹호할 수 있을까?사회의 소수자, 약자들이 절박한 목소리를 낼 때, 그들의 권리 추구가 사회라는 전체, 보편다수의 ‘정상성’과 충돌할 때, 소수자들을 위해 다수가 자신들이 누리는 이익과 편리와 평화의 일부를 희생해야만 할 때, 그들로 인해 우리가 피해를 감수해야 할 때, 멀리서 쉽게 정의를 노래하다가 내가 피해의 직접 당사자가 될 때 우리는 과연 그들을 수용하고 보듬을 수 있을까?레비 스트로스가 지적한 대로 인류의 가장 큰 고민은 늘 ‘타자성’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의 문제였다. 김초엽 소설집의 또 다른 단편 ‘스펙트럼’에서 외계인 ‘루이’는 지구인 ‘희진’을 처음 본 순간 자신의 노트에 이렇게 적었다. “그는 놀랍고 아름다운 생물이다” 놀라움은 이질적 타자에 대한 본능적 반응이고, 아름다움은 감성, ‘생물’이라는 단어는 합리적 이성을 지시한다. 소수자의 타자성 앞에서 우리는 감성과 이성의 균형을 지켜야 한다. 어려운 얘기다.

2022-05-03

쓰는 비건

실외마스크 착용 의무가 해제되면서 다시금 색조 화장품에 관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일상 회복에 대한 기대감이 상승해선지 지난 달 색조 화장품 중심 매출이 최대 40% 증가하였고 로드샵과 면세점, 백화점 아울러 전반적인 화장품 매출 증가가 급증하였다고 한다.실외 마스크 착용 의무 해제로 코로나19 사회적인 분위기 흐름이 조금 달라지면서 ‘비건’에 대한 관심도도 높아지고 있다. 특히나 최근 ‘비건 뷰티’가 핫한 키워드로 떠오르고 있는데, 비건 화장품은 동물실험을 거치지 않고 동물성 원료를 대신하여 친환경 성분만을 사용하여 만드는 제품을 일컫는다. 비건 제품은 동물 실험으로 인해 얻어지는 성분과 원료를 포함하고 있지 않으며 과거 무작위로 착취 해왔던 동물 실험 자체도 일절 이루어지지지 않는다.많은 이들이 비건 뷰티에 관심을 갖기 이전, 그간 가루 형태의 파우더나 반짝이는 펄은 전부 동물이나 생선의 비늘에서 원료를 얻었다. 속눈썹을 길고 짙게 보일 수 있도록 해주는 마스카라의 경우엔 인체에 무해한지 실험하기 위해 토끼를 대상으로 실험 하였으며 화장할 때 흔히 쓰이는 붓의 경우엔 다람쥣과의 청설모 털을 사용하는 등 동물성 털로 만들어졌다.문제는 원료를 생산해내는 과정이 굉장히 비윤리적이라는 점이었다. 털이나 재료를 얻기 위해 감금은 물론 학대와 폭력이 동반되었기 때문이다.그런데 이젠 소비자의 인식이 분명히 변하고 있는 듯하다. 스킨이나 수분 크림 같은 기초 제품이 비건 위주로 쏟아지는 데다 최근에는 색조 제품 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게 되었다. 비건 립밤은 물론 선크림, 파운데이션, 마스카라, 아이쉐도우, 하이라이터, 립스틱, 틴트까지 그간 동물성 원료가 필수적으로 들어갔던 색조 화장품은 비건 제품으로 대체되어 종류가 무궁무진 증가하였다.더 놀라웠던 건 일반 화장품과 비교했을 때 결코 제품력이 떨어지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비건 인증기관에서의 까다로운 기준과 인증 과정을 거쳐야만 출시되는 데다 FSC 인증을 받은 포장재 사용, 화장품 공병 수거를 위한 캠페인 진행으로 지속 가능한 자원 순환과 나아가 환경 보호를 지향한다는 점도 놀라움을 자아냈다.비건 마크를 확인하는 방법으론 화장품 케이스 뒷면에 영국의 비건 소사이어티, 프랑스의 이브 비건, 한국비건인증원 비건 마크를 확인 하면 되어서 비교적 판별도 쉬워 구매하기에 용이하다.패션 업계 또한 비동물성 소재만을 사용하는 비건 패션이 중요 트렌드로 자리했다. 명품 브랜드 구찌의 최고경영자인 마르코 비자리는 더는 모피를 제작하거나 팔지 않겠다는 반모피 운동을 선언했고 줄줄이 조르지오 아르마니와 베르사체 등 모피 사용을 중단하는 등의 행보를 보였다.많은 패션 브랜드들 또한 그간 동물 학대와 착취를 통해 얻어지던 가죽과 모피를 사용하지 않고 그것을 대신할 소재를 찾아 나서고 있다. 특히나 겨울용 옷에 필수적으로 들어가는 메리노 울은 양의 엉덩이쪽 살을 비윤리적으로 잘라내어 무작위로 생산해내는데, 더 많은 양의 울을 얻기 위해 일부러 양의 엉덩이쪽 살을 쭈글쭈글하게 만들어 개량하기도 한다. 비건 패션은 이렇게 강제적으로 채취하는 울이나 모피를 대신하기 위해 인조 모피와 에코 퍼 소재를 대체하여 사용한다. 윤여진 2018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 부문에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현재보다 미래가 기대되는 젊은 작가. 또한 말하지 않으면 알아차리기 힘들 정도로 다양한 소재가 개발되고 있는데, 와인 찌꺼기로 만든 가죽이나 파인애플 잎으로 만든 천연 섬유 또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먹는 비건 뿐만 아닌 내가 쓰는 물품도 비건을 지향할 수 있단 사실이 알면 알수록 놀라웠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씻곤 했던 손세정제나 옷, 화장품, 붓 등 얼핏 보면 작고 사소한 물건이지만 가늠할 수 없을 만큼의 동물들이 희생되었단 사실은 간담을 서늘하게 했다.그러니 이제부턴 물건을 구매할 때 더욱이 신중을 기하기로 했다. 사실 조금 더 시선을 확장해보면 별다른 수고로움 없이도 너무나 쉽게 비건 제품을 만나볼 수 있다. 무엇이든 내가 할 수 있는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고 그것이 무언가에게 도움이 되는 옳은 방향이라는 생각이 들 때엔 내 자신이 조금 더 맑고 선명해지는 기분이 든다. 먹는 비건이 어렵다면 쓰는 비건부터 차근차근 실행해보는 것이 비건을 시작하는 좋은 방법 같다.

2022-05-03

그 많던 꿀벌은 어디로 갔을까

영화감독 M.나이트 샤말란은 초현실적인 요소를 바탕으로 현실적인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독특한 개성을 지닌 감독이다. 많은 이들에게 알려진 ‘식스 센스’에서부터, ‘싸인’, ‘언브레이커블’ 3부작, ‘데블’, ‘비지트’, 최근의 ‘올드’에 이르기까지, 감독은 하나의 이상 현상을 전제한 후 이로 인해 벌어지는 일상의 뒤틀림을 예민하게 포착한다. 이상 현상을 영화의 주된 장치로 활용한다는 점에서, 샤말란 감독의 영화가 포착하는 세계란 이해할 수 없고 저항할 수 없는 현실로 인해 느끼는 공포가 어떤 것인가를 극대화시킨 세계라 할 수 있다.그렇기에 샤말란 감독의 영화는 ‘코즈믹 호러’와 닮아있다.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인간이 감히 대적하거나 지각할 수 없는 거대한 미지’로 인해 촉발되는 공포다. 오로라나 거대한 협곡, 인간의 인지를 아득히 뛰어넘는 크기의 현상을 마주할 때 느끼는 경이로움과 숭고함과 같은 부류의 공포감이라 할 수 있다. 예컨대 영혼이나 악령 혹은 초능력자나 시간 가속과 같은 비일상적이며 불가해한 사건 앞에서 우리는 어떻게 반응할까. 샤말란 감독의 영화에 등장하는 초현실적인 장치란 그러한 질문을 던지기 위한 전제라 할 수 있다.그런 샤말란 감독의 영화들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은 ‘해프닝’이다. 여기에서 등장하는 것은 인간의 이유 없는 ‘자살’이다. 어느 날 사람들은 아무런 이유 없이 스스로의 목숨을 끊기 시작한다. 문제는 이와 같은 현상이 특정한 개인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인류 전체에게 발생한다는 점이다. 산책을 하던 사람이, 책을 읽던 학생이, 일을 하던 인부가 갑작스레 스스로의 목숨을 끊는다. 그러나 인간은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지 이해하지 못한다.때문에 사람들은 그러한 현상을 해석하고자 여러 가지의 가설을 내놓기 시작하고, 독가스 테러일 것이라 가정한다. 때문에 영화에서 사람들은 이와 같은 가정에 초점을 맞춰 살아남기 위한 행로를 결정하지만, 그와 같은 가정과 가설은 보기 좋게 빗나가고 만다. 대도시를 중심으로 한 테러일 것이라는 예측에 그들은 한적한 교외로 향하지만, 그곳에서도 마찬가지의 사건이 벌어지며 사람들은 패닉에 빠져버리고 만다.이유를 알 수 없는, 그러나 계속해서 벌어지는 ‘해프닝’ 앞에서, 인간은 속수무책으로 무너진다. 이유를 알 수도, 그렇기에 저항할 수도 없는 불명확한 대상 앞에서 인간은 전능한 존재가 아니라 한없이 무력한 존재에 불과할 뿐이다. 나이트 샤말란 감독의 영화가 으레 그렇듯, 이 영화 또한 우연의 우연이 중첩되며 가까스로 사태는 진정되지만 공포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이상 현상이 사실은 자연이 인간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낸 방어 기제로 인해 만들어진 독소로 인한 것이었으며, 때문에 언제든 사태는 반복될 수 있다는 암시가 남기 때문이다.물론 이와 같은 가정은 비과학적이며 극단적인 사례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영화를 쉽사리 무시하고 지나칠 수 없는 것은 영화의 초반부에 제시되는 하나의 설정 때문이다. 그것은 꿀벌의 실종이다. 갑작스럽게 시체도 없이 사라져버리는 꿀벌들은 왜, 그리고 어떻게 사라지는 것인가. 이것은 단지 영화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지금 경험하고 있는 현실이기에 더욱 섬뜩할 수밖에 없다. 현실에서도 꿀벌의 실종에 대해 여러 가설을 내놓고 있지만, 그 이유를 완전하게 해명하지는 못하고 있다. 임지훈 2020년 문화일보, 서울신문 신춘문예 평론 부문에 당선된 문학평론가. 한양대 국문과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이와 같은 현실을 과연 ‘해프닝’으로 치부할 수 있을까? 영화에서 꿀벌의 실종이 인간의 집단 자살 현상이라는 파국적인 결말의 전조로 설정되어 있었던 것을 떠올려보자면, 현실의 이와 같은 사건 또한 더 큰 비극과 파국이 다가오고 있음을 알리는 전조일지도 모른다. 지구 온난화를 비롯한 환경오염으로 인해 초래될 비극의 전조 말이다.우리가 지구 온난화와 환경오염의 문제를 더 이상 쉽사리 여겨서는 안 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인간은 자연에 대해 충분히 알고 있으며 이를 통제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인간은 눈앞에 벌어지는 자연 현상에 대해 전지전능하지 않다. 이해할 수 없는 사례들을 단지 ‘해프닝’으로 치부함으로써, 우리가 자연을 충분히 이해하고 통제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을 따름이다. 그러나 이것은 견고한 환상에 불과하다. 우리의 무지와 환상의 대가는 언제 어떤 형태로 우리에게 닥쳐올지 모른다. 어쩌면 우리는 이미 샤말란 감독의 영화 속에 들어와 있는지도 모른다. 그것을 알지 못하는 것은 우리 자신뿐인 채로.

2022-04-26

사랑하는 일

설레는 순간을 경험해본 적 있을 것이다. 커피를 몇 잔이나 들이켠 것처럼 심장이 자꾸만 뛰고. 늦은 밤 침대에 누워도 잠은 쉽게 오지 않고. 양 발이 허공에 붕 떠 있는 것만 같은 기분.이따금 우리는 이러한 상태를 사랑이라고 생각하곤 한다. 그러다보면 흔히 사랑의 반대편에 있는 말로 외로움과 고독을 떠올리기도 한다. 외로움과 고독은 모든 것을 무자비하게 집어 삼키는 괴물처럼 성큼성큼 다가온다.그것은 인식할수록 선명해지는 것이라서 무엇보다 인간이 혼자 있을 때 더욱 거세게 문을 두드린다. 우리는 이 괴물이 두려워서 타인을 찾아가기도 한다.누군가가 곁에 있어주면 외로움과 고독은 완전히 소멸된 것처럼 느껴지고 일종의 안심 상태에 빠지기 때문이다. 괴물은 언제고 다시 찾아올 수 있으므로 불안한 마음은 쉽게 사라지지 않고 자신을 구원해줄 미지의 상대를 간절히 기다리기도 한다.불안과 고독을 다스리는 것이야말로 사랑을 찾기 위한 첫 번째 걸음이 아닐까.혼자서 무시무시한 괴물을 물리치는 법을 익혀야 하는 것이다. 처음부터 그 일을 완벽하게 해낼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분명 몇 번이고 무너질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스스로를 먼저 보살피는 것이며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일이다.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의 쓸모없게 느껴지고 아름답지 않은 부분까지도 감싸 안을 수 있는 너른 포용력이 필요하다. 불완전한 존재인 자신을 이해하고 그 마음을 신뢰하게 되었을 때, 내가 누구인지, 무엇을 원하는지, 어렴풋하게 느끼게 된다. 자신을 사랑하는 일은 결국 타인을 사랑하는 일까지 나아가게 된다.불가해한 타인을 사랑한다는 건 문자 그대로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 까다로운 일을 번번이 해내는 이상한 존재들이다.사랑에 빠진 사람은 아름답다는 말이 있다. 여기에서 말하는 아름다움은 겉으로 보기에만 예쁘고 반짝이는 모습이 아니다. 무언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오히려 괴로운 일에 가깝다. 대상을 사랑하는 일은 영원할 수 없다. 언젠가는 상실될 수밖에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언제나 이별은 힘겹다. 사랑했기 때문에 더욱 괴롭다. 이럴 거였으면 차라리 사랑하지 않았으면 더 좋았겠다고 외치고 싶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사랑을 한다. 설레고 기쁘고 즐거운 것을 넘어서서 아픔과 고통까지도 감내한다. 그러니 사랑은 슬픔까지도 기어이 껴안고야 마는 행위이며 이는 무엇과도 비견할 수 없을 만큼 아름다울 수밖에 없다.사랑은 이전과는 전혀 다른 세계를 만나고자 하는 노력의 영역이다. 인간은 평생 오직 자신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밖에 없다. 어떤 것이 좋거나 싫다고 결정하는 건 다른 누구도 아닌 자기 자신밖에 할 수 없는 일이다. 사랑은 타인의 눈으로 세상을 보게 한다. 혼자였다면 결코 맛보지 않았을 음식의 맛을 느끼게 되고, 묻지 않았던 질문에 관한 답을 찾게 되며, 그동안 자신이 아니라고 믿어왔던 것을 긍정하게 되는 일을 경험하게 된다. 누군가를 사랑하기 때문에 그가 바라보는 세상은 어떤 모습일지 의문하게 되며 타인의 감정에 공감하고 이해하게 된다.사랑하는 대상이 많아질수록 자기에게 갇혀 있던 시야는 계속해서 넓어지게 된다. 상대의 어려움을 고민하고 인간을 넘어선 생명의 영역에 대해 생각한다. 문은강 ‘춤추는 고복희와 원더랜드’로 주목받은 소설가. 2017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작가로 등단했다. 아스팔트 사이로 아무렇게나 피어난 들꽃을 바라볼 수 있는 사람은 일상의 아주 작은 영역까지도 사랑하는 사람이다. 사랑은 자기 반경을 무한히 넓히는 일이며 끊임없는 성장을 하게끔 하는 놀라운 힘이 있다.세상의 모든 언어를 쥔다고 해도 사랑이라는 감정을 완전하게 표현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온갖 감정들이 차곡차곡 쌓여가고 놀라운 형식으로 발현될 때 우리는 어렴풋하게 그것이 사랑은 아닐까 하고 생각할 뿐이다.‘자기 앞의 생’의 마지막 구절은 ‘사랑해야 한다’고 외치면서 끝난다. 그렇다. 우리는 사랑해야 한다. 끊임없는 자기모순을 경험하면서도 종국에는 자기 자신을 긍정하게 되는 일. 마주해야만 하는 현실의 고통을 감내하면서도 타인을 신뢰하게 되는 일. 영원히 함께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기에 지금 이 순간을 무엇보다 소중하게 여기는 마음을 가지는 일. 슬픔까지 기꺼이 껴안으면서도 이토록 복잡한 세계까지 이해하게 일. 일말의 가능성을 믿는 일. 이 모든 것이 우리가 끝끝내 해내야만 하고 자신도 모르게 이행하고 있는 신비한 사랑의 영역이다.

2022-04-26

누구에게나 편리해야 할

키오스크(터치 스크린 방식의 무인 단말기)를 이용할 땐 약간의 긴장을 하게 된다. 시력이 좋지 않기 때문에 늘 화면 앞에서 눈을 부릅떠야하고, 글자는 작고 메뉴는 설명 없이 사진만 덩그러니 놓여 있기 때문에 고르는 데도 은근 어렵다. 무사히 메뉴를 다 정했다면 포인트 적립이나 카드 할인 혜택, 결제 방식 등의 단계를 맞닥뜨리게 된다.괜히 포인트 적립이나 카드 할인 혜택을 받겠다며 이것저것 잘못 누르다간 시간 초과로 처음 화면으로 돌아가게 되니, 웬만하면 복잡한 과정 거치지 않고 빠르게 결제를 향해 달려야 한다. 거북이의 속도로 키오스크 한 대를 내 것 마냥 점령했다간 뒤에서 빨리 좀 끝내라는 은근한 압박이 날아올 수도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미션 임파서블의 한 장면처럼 신속하면서도 능숙하게 모든 과정을 끝내면 결제가 완료 되었단 영수증 하나를 받아볼 수 있다. 겨우 메뉴 하나 주문하는 게 이토록 복잡하고 어려울 필요 있는 건지, 손바닥 만한 작은 종이 쪼가리를 집어들며 괜스레 머쓱해진다.최근 코로나19로 인해 비대면 서비스가 증가하면서 키오스크 보급률이 대폭 증가했다고 한다. 2021년 기준 과학기술정보통신위원회가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26,574대의 키오스크가 신규 보급되었고 햄버거 프렌차이즈 버거킹의 경우 코로나 이후 키오스크 도입 비율을 95%나 늘렸다고 한다.이제는 음식점뿐만 아니라 영화관이나 카페 은행이나 병원 관공서 등 일상 곳곳에서 키오스크를 쉽게 찾아볼 수 있게 되었다. 디지털에 익숙한 세대에겐 쉽고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지만, 이에 반해 65세 이상의 고령 소비자인 디지털 취약 계층은 무인기기 사용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한국소비자원의 조사에 따르면 최근 1년 동안 키오스크를 경험한 65세 이상의 고령 소비자 245명을 대상으로 설문해보았더니 평균 난이도 75,5점으로 많은 고령층이 키오스크 이용에 어려움을 겪고 있음을 드러냈다. 병원과 외식업 대중교통과 문화시설 관공서 순으로 다양한 장소에서의 어려움을 느끼고 있었다.고령 소비자는 익숙하지 않은 용어나 외래어, 조작방식을 이해하는 데에 어려움을 겪었다. 한글 글자 크기조차 작은데다 외래어까지 섞여 있으니 충분히 어려울 만도 하다. 더군다나 각 키오스크마다 내장된 하드웨어가 다르고 메뉴를 택할 수 있는 인터페이스 구성이 다르기 때문에 더욱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대형 마트의 경우엔 옆의 직원이 상주하고 있다지만, 무인 카페나 편의점인 경우엔 도와주는 사람도 없는데다 안내 음성도 없으니, 이러한 곳은 시각장애인이나 어린이 또한 출입조차 불가능할 정도다.편리함을 목적으로 모습을 드러낸 키오스크지만 특정 계층에서 불편함을 겪고 있고 소외 현상이 느껴진다면 서둘러 운영 상황을 개선하고, 누구나 쉽게 사용할 수 있도록 해결되어야 할 것이다.이에 각 기업은 디지털 소외계층이나 휠체어에 탑승한 고객도 쉽게 손이 닿을 수 있도록 화면을 아래쪽에 배치하는 등의 개발 노력을 하고 있다. 디지털 기기 이용에 어려움을 느끼는 이들을 대상으로 기기 사용을 가르쳐주는 디지털 배움터 또한 각 17개 광역시·도 별로 상세히 운영하고 있다.다양한 스마트 기기를 상시 체험할 수 있고 키오스크 외에도 태블릿 PC나 AI 스피커 등의 사용법을 익힐 수 있고 디지털 강사의 강의도 무료로 들을 수 있다. 윤여진 2018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 부문에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현재보다 미래가 기대되는 젊은 작가. 국회에서도 디지털 포용법 제정에 논의가 한창이다. 사회의 모든 구성원이 소외와 차별 없이 디지털 기술을 활용할 수 있도록 포용적인 사회를 만들어야 한단 취지다.디지털 취약 계층을 비롯하여, 어린이와 시각 장애인 등 사회에서 배제되는 일이 없도록 모두가 전보다 보다 편리하고 나은 삶을 택하여 누릴 수 있어야 한다.이 때문에 난 아직도 키오스크가 마냥 편하지 않다. 물론 아직까지 사람에게 직접 가서 주문하는 것이 훨씬 편하고 좋다.단골이라며 늘 덤을 챙겨 주는 카페 직원 언니와 주기적으로 근황을 나누어야 하고, 위염 때문에 자주 뵙는 간호사 선생님께 꾸준히 충고도 들어야 하니까.어쩐지 막연히 기계 앞에서 헤매고 있는 사람들을 바라볼 때면, 키오스크에 더 느리게 적응해도 좋을 것 같다.

2022-04-19

쓸 수 있다

매일 밤 책상 앞에 앉아 무언가 쓴다. 뭐가 걸려 올라올지 모르는 채 바다로 나가는 어부가 그럴까. 생계를 위한 하루의 노동을 마치면 정신의 노동이 시작된다. 그것은 생계를 위한 것이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고 위협하는 것이기도 하다. 나를 위한 것인지 잘 모르겠다. 누구를 위한 것인지, 무엇을 위해 쓰는지 모르면서 쓴다. 나는 시를 위해 시를 쓰는 것이다, 라고 혼잣말하면서도 시가 뭔지 모르겠다. 20년째 같은 혼잣말을 하고 있다.먼저 모드를 전환해야 한다. 일하던 몸, 먹고 사는 일 앞에 걱정하고 두려워하던 몸, 인사하고 부탁하고 아부하고 싸우던 몸을 시 쓰는 몸으로 바꿔야 한다. 생각에서 감각으로, 이성에서 직관으로, 베타파에서 알파파로 모드를 바꾸기 위해 핸드 그라인더로 커피 원두를 간다. 촛불 냄새, 연필심 냄새, 나무 냄새, 새벽 이불 냄새, 비 내린 저녁 냄새 같은 커피향이 방 안에 진동한다. 호흡이 차분해진다.너무 작아져서 더는 사용하지 않는 비누, 그래서 녹을 수 없는 비누, 거의 소멸됐지만 소멸이 유예된 비누에 대해 쓰고자 한다. 생각이 도무지 나아가지 않는다. 비누를 들여다보고 냄새 맡아보고 손에 쥐어본다. 비누가 말을 걸어오길 기다린다. 비누는 말이 없고, 옆집 변기 물 내리는 소리, 고양이 비명, 담배 연기만 수런거린다. 이 짓을 하고 있다 보면 이상(李箱)이 떠오른다. 시 쓰기는 육체의 일인가 정신의 일인가, 노동인가 아니면 유희인가 생각하는 것이다.“박제가 되어버린 천재를 아시오. 나는 유쾌하오. 육신이 흐느적흐느적 하도록 피로했을 때만 정신이 은화처럼 맑소”라던 이상의 고백은 가난이 예술가에게 질병과 굶주림이라는 절망을 가져다 줄 때 오히려 정신은 풍요롭다는 역설이다. ‘육체’의 세계인 자본주의 도시, 대중성과 결별하여 정신적 공간인 ‘방’ 안에 스스로 고립되는 순간 예술가는 마침내 ‘천재’를 회복해 “유쾌하다”고, 이상은 말한다. 하지만 나는 시 쓰는 게 유쾌하지 않다. 내가 천재가 아니라는 걸 깨달은 이후로 시는 언제나 고통이고 절망이다.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내가 이상보다 12년을 더 살았다. 김유정보다, 기형도보다 10년을 더 살았다. 나는 이미 그들처럼 될 수 없다.그럼에도 여전히 나는 무언가 쓰고 있다. ‘박제가 되어 버린 천재’이고 싶지는 않다. 천재는 애초에 틀렸고, 박제가 되기 싫다. 잘 살고 싶다. 건강하게, 남들처럼, 돈 벌고, 결혼하고, 주말엔 외식하고, 저축하고, 4대 보험의 혜택 안에서 살고 싶다. 밤마다 세속적 욕망과 문학에 대한 열정이 격렬하게 싸운다. 삶과 문학 사이에서 길항하다보면 삶도 문학도 다 이룰 수 없다는 걸 두려워하면서도.20대에는 시가 돈이 되지 않아도 행복했다. 아무도 걷지 않은 오솔길의 임금이 된 것만 같았으니까. 서른 살이 되자 돈이 되지 않는 시를 계속 붙잡을 수 없었다. 멀리 달아났다. 그런데 달아나면 달아날수록 시는 더 세게 나를 잡아당겼다. 돌아선 뒤통수에 쏟아지는 시의 따가운 눈총이 괴로워 취해버린 밤도 많았다. 돈 잘 벌고 ‘잘 나가도’ 시 한 편 쓰는 성취감에 비할 바 아니었다. 그래서 돌아왔다. 붙잡혀 끌려왔다는 편이 더 정확하겠지만. 이병철 문학평론가이자 시인. 낚시와 야구 등 활동적인 스포츠도 좋아하며,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30만원짜리 반지하 월세방에서 10년을 살았다. 많은 시와 평론, 논문을 썼다. 방 세 개 전셋집으로 이사했지만 시를 쓴다는 건 여전히 죄스럽다.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일을 한다는 누명이 억울하기도 하다. 세상의 냉대와 외면, 왜곡과 오해에 떠밀려 마음의 거처는 여전히 반지하에 머무는 날이 많다. 그때마다 시로 무언가를 이뤄야겠다고 다짐한다. 뭘 이룰 수 있는지도 모르면서 뭐라도 이루고 싶다.시 쓰면 굶어죽는 줄 알았는데 아직 살아 있고 건강하다. 등단을 했고, 시집도 냈다. 물론 등단이나 시집이 대단한 성취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어느 해엔가는 밥벌이를 다 잃고선 글만 써서 즉석밥과 라면을 먹었다. 이런저런 원고료로 전기세, 가스비 내고 방값도 냈다. 이룰 수 없는 문학을 붙잡고서 최소한의 생활을 유지해왔다. 시를 이루다보면 삶도 이뤄지는 기적을 믿을 수밖에 없다.이수명 시인은 내게 “시는 이뤘으나 이룰 수 없으므로 늘 이루지 못하게 한다”고 말했다. 시 쓰기는 언제나 무승부인 싸움, 또는 언제나 내가 지는 시합이다. 도대체 이걸 왜 붙잡고 있냐고, 나는 스스로에게 묻는다. 내 질문에 나는 뭐라 답해야 할지 모르면서, 흔들리면서, 여기저기 부딪치면서 어디론가 나아간다.비누를 들여다본다. 오늘밤 나는 쓸 수 있다.

2022-04-19

생각보다 이 세계는 나쁘지 않아

그런 상상을 해본다. 지금의 내가 과거의 내게 한 마디를 전할 수 있다면? 로또 당첨 번호를 외치는 것도 괜찮고 부동산 시장에 관해 귀띔하는 것도 좋겠다. 그러다 고개를 갸우뚱. 그게 정말 최선일까. 다시 한 번 곰곰이 생각해본다. 나는 내게 어떤 말을 건네야 할까. 막막한 시간 속에서 힘이 될 수 있는 말. 무수한 조언들 사이에서 시간을 정면으로 맞이할 수 있게 하는 말. 그렇다면 역시 이렇게 외칠 수밖에 없겠다.“생각보다 이 세계는 나쁘지 않아.”돌아보면 그랬다. 나는 현재에 안주하는 법이 없었고 보다 더 잘 살아가고 싶은 욕심으로 가득했다. 언젠간 져버리진 않을까 하는 걱정은 접어둔 채로 미래에 대한 기대는 자꾸자꾸 부풀어만 갔다. 십대에는 성인이 된 내 모습을 기대하며 수능특강을 풀었고 대학에 입학한 뒤엔 서른이 되면 경제적 자유를 누릴 것이라고 상상하며 캠퍼스를 거닐었다.서른이 되면 세상에 대한 많은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라고, 그러니 지금의 힘든 일은 언젠가의 추억거리가 될 것이라고, 그렇게 생각했다.열정이 넘치지만 불안은 가득한 이십대를 지나면서 미래에 대한 갈망을 더욱 커져만 갔다. 무엇이 되어도 지금보다는 나을 것이라며 현실을 외면하기도 했었다. 여긴 완결된 페이지가 아니야. 더 멋진 무언가가 기다리고 있을 거야. 그렇게 믿으면서 삶의 어떤 부분을 미래의 나에게 미루었다. “내 꿈은 서른이 되는 것”이라며 떠들고 다니기도 했는데 친구들은 내게 너무 쉬운 꿈을 가졌다며 놀려댔었다. 그때의 내게 서른이란 ‘진짜 어른’이 되는 것의 상징에 가까웠다. 내게도 그날이 찾아온다는 건 일말의 위안이었다.물론 미래를 상상하는 건 즐거운 일만은 아니었다. 소설을 쓰겠다고 선언했을 때, 몇몇 선배는 심각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왜 글을 쓰려고 해? 이거 쉬운 일 아니야.”나는 그런 이야기가 유난스럽다고 생각했고 나를 좌절시키려는 그들의 태도가 원망스러웠다. 소설가로서의 삶이 대부분이 평균적이라고 생각하는 삶에서 벗어나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으므로 그들의 이야기가 어쩐지 섬뜩하게 들리기도 했다. 그건 내가 가보지 못한 세계에 대한 모종의 두려움이었다.서른이 된 지금, 선배의 마음을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을 것도 같다. 이제 나는 돈을 벌기 시작했고 진짜 어른의 세계에 들어간 것 같다. 하지만 나는 아직도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싫어하는지 스스로 알지 못한다. 아무리 열심히 노력해도 얻어낼 수 없는 일이 있다는 것을 경험했다. 서른이 되면서 느끼는 이 흐릿한 패배감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세상의 많은 부분이 내 뜻대로 따라주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으며 내겐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 누군가에겐 하찮은 일 중 하나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나이를 먹을수록 아는 게 많아질 줄 알았는데 사실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을 자꾸자꾸 깨닫는 중이다.과거의 나를 만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과거의 나와 비슷한 시기를 지나고 있는 후배들에게 그런 말들을 늘여놓는 것은 아닐까. ‘나 때는 말이야’라고 시작하는 조언에는 그 시간을 지나온 자의 쓰디쓴 경험이 담겨있는 것일지도 모른다.그래서일까. 이따금 소설을 쓰겠다는 후배들을 만나면 언젠가 선배가 지었던 그 표정을 나도 모르게 따라하게 된다. 더 나은 선택지가 있을 텐데, 하는 말들이 불쑥불쑥 튀어나온다. 그러다가 고개를 젓는다. 나는 이 선택을 후회하는가? 그렇지 않다. 두려워할 필요 없다. 생각보다 이 세계는 나쁘지 않아. 그런 이야기는 결국 그 시간을 지나온 내가 듣고 싶었던 이야기일 것이다. 문은강 ‘춤추는 고복희와 원더랜드’로 주목받은 소설가. 2017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작가로 등단했다. 이곳은 꿈과 희망이 가득한 모험의 세상도, 사랑과 낭만이 가득한 곳도 아니다. 그렇지만 이제 나는 성공이라는 단어가 명예 혹은 경제적인 부의 동의어가 아님을 알고 있다. 나 자신을 조금씩 알아가는 것만으로도 지난한 시간을 기꺼이 견딜 가치가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이제 다시 나는 다가올 미래를 기다린다. 미래의 나는 지금의 내게 무슨 말을 건넬까? 현재의 나로서는 도무지 알 수 없는 영역이다.가끔은 나 자신이 민들레 홀씨 같다는 기분이 든다. 목적지에 정확하게 안착하지 못하고 바람이 부는 대로 아무렇게나 부유하는 느낌이다. 무력하게 흘러갈지언정 끝끝내 어딘가에 내려앉겠지. 그리하여 꽃을 피우겠지. 이렇게 생각할 수 있는 나를 만든 과거의 나 자신이 기특하고 자랑스럽다. 할 수만 있다면 캄캄한 내일을 향해 고군분투하던 나를 안아주고 싶은 마음이다.

2022-04-12

보호자의 두 가지 책임

오은영과 강형욱의 공통점은 잘못된 행동에 대해서는 가차 없이 잘못되었다고 말한다는 점이다. 잘못된 태도를 취하는 보호자를 향해서는 확실하게 잘못되었다고 말하고, 이러한 행동이 아이나 반려동물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알려준다. 그와 더불어 보호자가 대상에 대해 어떤 자세와 태도를 취하는 것이 옳은지 명확하게 선을 그어준다.두 사람의 이와 같은 태도는 보호자에게 한 가지 사실을 일깨운다. 무조건적인 애정은 결코 옳은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아이나 반려동물의 행동을 무조건적으로 옹호해주고, 문제 상황으로부터 벗어나게 해주는 것은 무책임한 것과 결코 다르지 않다는 뜻이다. 물론 보호자는 대상을 어떤 위험이나 문제 상황으로부터 보호해야 할 책임이 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보호자는 자신이 보호해야 하는 대상이 자신이 살아가야 하는 사회에서 문제를 일으키지 않고 사회적 존재로서 살아가는 방법을 알려줄 책임이 있다.아주 당연한 사실이지만, 우리는 자주 이와 같은 보호자의 두 가지 책임을 헷갈려하거나 잊어버리곤 한다. 예컨대, 무조건적인 사랑을 베풀어야 할 때에 사랑이라는 미명 하에 아이나 반려동물을 지나치게 통제하기도 하고, 반대로 통제하고 훈육해야 할 때에 ‘그럴 수 있지’라고 넘겨버리거나 무조건적으로 옹호해주는 행동을 하기도 한다. 그 가운데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건 비일관적인 보호자의 태도다. 동일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어떨 때에는 대상을 나무라기도 하고, 어떨 때에는 대상을 무조건적으로 옹호하기만 한다면, 이와 같은 보호자의 태도는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까?조금은 우스운 이야기일수도 있겠지만, 오은영과 강형욱이 우리에게 일러주는 보호자의 가장 큰 책임이란 일관성이 아닐까 싶다. 예컨대, 통제하고 계도해야 하는 상황과 사랑을 베풀어야 하는 상황을 구분하는 것 말이다. 누군가를 보호하고 기르는 것이 어려운 것은, 자신의 감정적인 혹은 공적인 상황에도 불구하고 이와 같은 일관성을 유지해야만 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내가 피곤하더라도, 내가 힘들더라도, 내가 슬프고 괴롭더라도 ‘나’는 보호자로서 그와 같은 일관성을 유지해야만 한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조금은 잘못된 접근일 수 있겠지만, 두 사람이 우리에게 전달하는 지혜를 나는 다른 관계들에 적용해 보고픈 생각이 든다. 단지 부모와 아이의 관계나 반려 동물과의 관계에서만이 아니라 다른 일상적인 관계들에 대해서도 말이다. 예를 들면 연애라거나, 직장 동료라거나, 혹은 이웃과의 관계 같은 것들 말이다. 하지만 여기에서 말한 관계들이 결코 수직적인 관계가 아니라는 점에서, 그러한 방법을 무조건적으로 적용하기란 어려움이 있을 것이다. 하다못해 나라고 해도, 수평적인 관계에 있는 누군가가 나를 통제하려 하거나 일방적으로 훈육하려 한다고 느낀다면 그가 나를 인격적으로 대우하지 않는다고 느낄 테니 말이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수평적인 관계에서도 적용할 수 있는 어떤 지혜가 있다면, 그건 역시나 ‘일관성’이 아닐까 싶다. 내가 다소 감정적인 상황이더라도, 혹은 피곤한 상황이더라도 상대방의 태도에 대해서 일관적인 태도를 유지하는 것. 어쩌면 이것이 누군가와 함께 하는 사람이 짊어져야만 하는 책임감이 아닐까? 이렇게 쓰고 보니, 관계라는 건 참 어렵고도 힘든 것이라는 당연한 생각이 든다. 우리가 너무나도 쉽게 잊어버리는 사실이다. 임지훈 2020년 문화일보, 서울신문 신춘문예 평론 부문에 당선된 문학평론가. 한양대 국문과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타자의 행동에 대해 일관성을 유지하는 게 어려운 까닭은 또 있다. 그건, 우리 또한 타자에 대한 ‘나’의 태도의 옳고 그름을 확신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오은영과 강형욱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건 그런 이유도 있을 것이다. 두 사람은 우리에게 주어진 상황 속에서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옳은 것인가에 대해 아주 확실한 정답을 제시해주곤 하니까 말이다. 하지만 두 사람이 솔루션을 제시하면서 자주 강조하는 사항이 있다. 그건, 어떤 방법이나 방책도 사랑과 애정이 전제가 되어야 한다는 점이다.아이를 키우는 것, 반려동물을 기르는 것은 완벽한 존재를 창조하기 위함이 아니라, 나와 함께 있는 사람을 지켜주기 위한 행동이다. 때문에 솔루션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때에는 다른 방법을 찾아야지, 대상을 포기해선 안 된다고, 그들은 말한다. 그런 의미에서, 두 사람이 우리에게 알려주는 건 사실 ‘정답’이 아니라, 그것을 향해 가는 과정에 필요한 마음가짐과 내면의 힘의 중요성이 아닐까 싶다. 어떤 관계도 한 번에 정답에 이를 수는 없다. 모든 관계는 오답들을 거치며 정답에 가까워지는 것이다. 너무나도 당연한 사실이 깨달음처럼 들려와 마음이 아프다.

2022-04-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