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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에는 1월의 일을

등록일 2022-01-11 19:40 게재일 2022-01-12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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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여러 계획을 다짐하고 그것을 지킬 수 있다고 믿어야 할 때다. /언스플래쉬

1월은 이상한 달이다. 연말만큼의 설렘을 주는 것도 아니면서 무언가를 기대하고 각오하게 만든다. 한 해의 시작이면서 가장 조급한 마음이 드는 때이며 하루하루가 버려지고 있다는 생각에 매분 매초가 아쉽고 아깝게 느껴진다.

작년을 반성하며 올해는 제대로 살아내겠다고 다짐한 것이 불과 얼마 전 일이다. 문득 오늘이 며칠이더라, 하고 달력을 마주한 순간 섬뜩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벌써 1월이 이렇게나 지났어? 이러다 곧 2월 되겠어! 머리카락을 헝클이며 절규해보지만 시간은 아랑곳하지 않고 부지런히 째깍째깍 흘러갈 뿐이다.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는 염연히 같지만 12월 31일의 나와 1월 1일의 나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다. 목욕탕에 들어갈 때와 나올 때의 차이와 비슷하다. 온몸에 덕지덕지 쌓여있던 케케묵은 먼지를 씻어낸 뒤의 가뿐한 기분.

개운한 발걸음으로 찬바람을 맞을 때의 희열. 한 걸음씩 나아갈 때마다 왜인지 모를 힘이 퐁퐁 솟아오른다. 어제의 나라면 도무지 할 수 없는 일도 거뜬히 해낼 수 있다는 믿음이 세포 구석구석을 휘감는다.

어쩐지 강인한 힘을 가지게 된 것 같은 나는 신년을 맞이하면서 올해의 다짐을 빼곡하게 적는다.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평소보다 한 시간 일찍 일어나서 조깅하자. 빈속에 커피 마시는 일은 그만두자. 귀찮더라도 아침밥을 꼭 챙겨 먹자. 원고는 미리미리 써놓고 마감 날짜가 닥치면 괴로워하지 말자. 읽으려고 마음먹었던 작가들의 책을 독파하자. 청소와 빨래와 설거지를 미루지 말자. 자극적인 배달음식을 줄이고 건강한 재료로 만든 음식을 섭취하자.

이러한 다짐을 계획하는 순간만큼은 이미 다 이룬 것처럼 의기양양해진다. 그래, 이제는 정말 달라지겠어. 모두가 나의 부지런함에 깜짝 놀랄 거야. 주먹을 꽉 쥐고 허공에 흔든다. 올해만큼은 다르다고 자부하며 당차게 고개를 끄덕인다.

이 굉장한 결의는 침대에 눕는 순간 모두 휘발되어 버린다. 해야만 하는 일은 어째서 미루고만 싶은 건지. 뜨끈한 전기장판에 등을 지지면서 보는 유튜브 영상은 왜 이렇게 재밌는 건지. 새콤한 귤을 까먹다가 스르르 빠져드는 단잠은 얼마나 달콤한지.

눈을 떠보면 날은 이미 어둑해져 있고 고요한 방 안에 놓인 건 평소와 다름없는 한심한 나 자신이다. 지금이라도 나가서 산책이라도 할까? 이런 생각이 들면 재빨리 고개를 젓는다. 이불 밖은 너무 춥고 어쩐지 온몸이 쑤시는 것만 같다. 함부로 밖에 나갔다가 괜히 감기라도 걸리면 손해이지 않은가.

죄책감이 뱃속을 쿡쿡 찌른다. 이러다간 작년과 똑같은 한 해를 보내게 될 거라고 누군가 귓속에 속삭이는 듯하다. 잠시나마 몸을 일으켜 억지로 움직여보지만 맞지 않은 옷을 입은 것처럼 영 불편하다.

결국 다시 침대로 기어들어 간다. 포근한 이불 속에서 조용히 되뇐다. 아직 1월은 지나지 않았으니 내일부터는 정말 열심히 살아보자고.

작년의 나도 재작년의 나도 지금과 같았을 것이다. 새해의 다짐이 얼마나 무력하게 무너지는지를 분명 깨달았음에도 또다시 새로운 나를 기대한다. 내년의 나도 내후년의 나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문은강 ‘춤추는 고복희와 원더랜드’로 주목받은 소설가. 2017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작가로 등단했다.
문은강 ‘춤추는 고복희와 원더랜드’로 주목받은 소설가. 2017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작가로 등단했다.

책상 앞에 앉아 새로운 나를 다짐하고 몇 시간 뒤에 침대에 누워 시간을 허비할 것이다. 애당초 새해라는 건 사회가 편의에 의해 만들어 놓은 가상의 시간일 뿐 아무런 의미가 없을지도 모른다고 자조하면서.

어리석은 일이다. 그러나 올 한 해를 현명하게 보내기 위해서는 이러한 어리석음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지키지 못할 계획일지라도, 이뤄지지 않을 소망일지라도, 우리는 자꾸자꾸 무언가를 바라야 한다. 내가 달라지기를 기대하고 세상이 나아지기를 원해야 한다.

바뀌지 않는 것들에 분노하고 덧없는 시간 속에서 넘어지더라도 다시 또 일어나서 새로운 마음으로 결심하고 계획해야 한다.

그렇다. 좌절은 이르다. 아직 1월이 지나지 않았으니. 후회는 2022년 연말의 내가 해야 하는 몫이다. 지금은 여러 계획을 다짐하고 그것을 지킬 수 있다고 믿어야 할 때다. 그렇게 1월이 가고 2월이 가고 봄이 오고 다시 겨울이 찾아올 것이다.

결심하고 후회하고 포기하고 다시 기대하면서. 부지런히 매월의 몫을 해내다 보면 느리게 나아지는 자신을 마주하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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