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다수 한국 남성의 의식 구조는 군복무 경험을 바탕으로 재구조화 된다. 남성의 삶은 군대에서의 경험을 토대로 의미화 되며, 사회생활은 이를 바탕으로 이루어진다. 정신분석학의 관점에서 바라볼 때, 이와 같은 재구조화는 군복무 경험이 한국 남성에게 있어 치유될 수 없는 상처, 극복될 수 없는 트라우마, 돌이킬 수 없는 왜상임을 의미한다.
현재 한국 사회는 군복무의 피해 당사자가 스스로의 경험을 발화하는 것을 제한한다.
표면적으로 이러한 발화 행위는 군복무 경험을 특권화시킴으로써 한국 사회 내 남성 화자의 위치를 특권화 시키는 효과를 발생시키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논리는 한국 사회가 구성원의 남성성을 착취하는 구조를 은폐시키는 역효과 또한 발생시키며, 한국 남성의 젠더 이슈에 대한 비합리적이고 편향된 시각을 합리화시키는 내적 기제를 형성하고 공유하게 만듦으로써 동성 간 유대감을 더욱 공고히 만드는 효과를 발생시킨다. 군복무 경험에 대한 발화 행위를 제한하는 것이 젠더 문제를 더욱 심화시키는 기제이기도 한 것이다.
군복무 피해를 사회적 이익의 문제로 환원시키는 것 역시 문제적이다. 이는 ‘사회적 참사의 피해자인 너는 그러한 피해로부터 충분한 사회적 이익을 취했으니 그에 대한 발화를 멈춰야 한다’는 논리와 동일한 것으로, 이때 피해자는 이익의 실제적인 유무와 관계없이 이미 충분한 보상을 받은 것으로 전제된다.
하지만 이러한 논리는 실증적인 것이 아니며, 공동체를 위해 너의 사적 피해를 공공연히 드러내지 말라는 전체주의적 태도를 대리한다는 점에서 더욱 문제적이다. 이는 군복무 피해자를 향한 이차 가해의 한 사례일 뿐이다. 과거에 비해 군대가 편해졌으니 군복무 경험을 트라우마라 말하는 것은 과잉된 해석이라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논리적으로 생각해보자. 그와 같은 논리는 피해자로 하여금 자신의 고통을 과소평가하게 만듦으로써, 자신의 경험을 의미화하고 이를 인격에 통합하는 과정에 있어 불필요한 왜곡을 초래한다. 이와 같은 발언 역시 2차 가해의 한 사례인 셈이다.
한국 사회에서 군복무 피해의 당사자들은 자신의 경험에 대해 정당한 의미화의 기회를 갖지 못한다. 동일한 경험을 한 피해 당사자들의 집단 내에서만 의미화의 기회가 주어지는데, 이러한 구조 속에서조차 개인의 트라우마는 한국 사회가 요구하는 젠더 롤에 맞춰 왜곡된 형태로 의미화 된다. 동성 내 담화 속에서 개인의 트라우마는 수평 구조가 아니라 사회가 요구하는 젠더 역할에 기인한 수직 구조의 형태로 의미화 되며, 그러한 기제 속에서 피해자의 발화는 동성에 의해서도 다시금 제한을 받게 되기 때문이다. 동성 간 군복무 경험에 대한 담화에서도 2차 가해는 발생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한국 남성은 최근의 위문편지 문제와 같은 젠더 이슈에 대해 언어를 통한 성폭력의 방식으로 반응하는 것일까. 나는 그러한 반응이 자신의 피해 경험을 합리적 언어로 의미화 시키지 못했기에 발생하는, 자신의 피해 사실을 인격에 통합하는 과정을 원활하게 수행하지 못하여 형성된 인격의 병리적 사례라고 생각한다.
타인의 언어를 자신의 남성성에 대한 공격으로 받아들이고, 자신의 남성성이 훼손되었다고 느껴 이를 회복하기 위해 타인에게 언어를 통한 성폭력을 수행하는 구조이다.
그러나 이를 군복무라는 트라우마에 따른 병리적 반응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하는 의견은 찾아보기 힘든 것이 현실이다. (이는 한국 남성 대다수가 경험하는 자기 인식으로서의 남성성이 한국의 기형적 구조 속에서 형성된 병리적 증상임을 전제한다. 군 복무를 경험한 사람뿐만 아니라 그러한 경험이 예정되어 있는 사람에게도 증상은 동일하게 나타난다.)
위문편지 문제를 ‘단순화된’ 젠더 갈등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심각한 오판이다. 이는 한국 사회에 내속된 문제를 일차원적인 젠더 갈등의 사례로 치환하여 본질적인 문제를 은폐시키며, 실존하는 젠더 갈등의 복잡성을 훼손시킨다는 점에서 더욱 문제적이다.
젠더 갈등의 복잡성에 대해 충분히 고려하면서, 한국 사회가 어떻게 남성성과 여성성을 설정하고 이를 소비하는지, 기형적 사회 구조의 영속화에 기여하고 있는지 따져야 한다. 지금이야말로 군복무로 인한 피해 경험을 왜 언어화 시켜야 하며, 어떻게 언어화 시킬 것인지에 대해 사유해야 하는 시점인 것이다. 과거와는 다른 방식으로, ‘지금-여기’의 군복무 피해 경험에 대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