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구절의 마침표를 가뿐하게 찍는 작가가 존재할까? 구상 단계에서는 분명 통제할 수 있다고 여겨졌던 이야기들이 제멋대로 흩어지게 되는 것을 경험하고 도무지 알 수 없는 세계를 헤매다 보면 길이 보이지 않는 어두운 터널 속을 더듬거리며 지나가는 감각과 함께 한없이 두려워지기 마련이다.
그렇게 어지러운 와중에서도 작가는 계속해서 이야기의 끝을 생각해야 한다. 끝내기에는 아쉽고, 소설적 사건의 봉합이 제대로 되지 않은 것만 같고, 자신의 편협함과 모자람을 들켜버린 것만 같아도 말이다. 작품을 끝내고도 마음이 편치 않은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마지막 장을 쓰지 못한다면 작품은 미완으로 남는다. 제아무리 빼어난 이야기라고 할지라도 마무리를 짓지 못하면 그것은 뛰어난 작품은커녕 완성품 자체로 인정받을 수 없다. 매정하게 들릴 수 있지만 사실이 그렇다. 받아들이는 사람이 어떠하든 창작자는 나름의 마무리를 기필코 내어놓아야만 한다.
이따금 여러 자리에서 소설을 쓰는 것이 힘들다는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상념을 언어로 풀어내는 것이 어렵다는 이들도 있지만 힘차게 시작했던 이야기의 완결을 도무지 지어낼 수가 없다는 고민도 적지 않다.
스스로 구축한 세계에 애착을 두게 되면 허투루 끝나서는 안 된다는 마음이 들기 마련이다. 거기에서 오는 미련으로 이야기를 한없이 붙잡고 있다 보면 그것은 완성작이 아니라 가능성으로만 존재하게 되며 하드웨어 깊은 곳에서 결코 빠져나오지 못한다.
소설뿐만이 아니다. 어디에서나 끝을 내는 일은 어렵다. 끝이라는, 어쩐지 발음마저도 단호한 이 단어는 냉정하고 무정하며 쌀쌀맞은 느낌까지 든다. 희망찬 포부를 안고 시작했던 일이 끝날 수밖에 없을 때의 참담한 심정은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올해는 더욱 그랬다. 꿈꿔오던 것들을 펼쳐낸 이들이 어쩔 수 없는 상황 때문에 자기 일을 끝내는 상황을 목도할 때마다 마음이 시려왔다. 마지막을 결정하기까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깊은 고뇌의 순간이 있었을 것이다. 이 어려운 시절의 마무리는 어떤 방식으로 지어지는 것일까 의문하면서 우리는 한 해를 보내왔다.
사람 간의 관계도 그렇다. 끝끝내 함께일 것만 같았던 주변의 누군가도 언젠가는 보내주어야 할 때가 온다. 관계의 종말을 고하는 것처럼 고통스러운 상황이 또 있을까. 끝을 받아들여야만 하는 것 역시 괴롭다. 그러한 일은 어느 날 갑자기 벼락처럼 찾아올 수도 있고 부스러지는 가루처럼 조금씩 천천히 다가올 수도 있다.
어떠한 것이든 끝을 내는 일에는 항상 용기와 결단이 필요하다. 따라오는 결과에 책임을 지는 일이 수반되며 상상과는 다른 자비 없는 현실이 자신의 몫으로 남는다.
이런 이야기가 위로가 될까. 모든 마무리는 매끈하지도 완벽하지도 않다. 중요한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무리를 해냈다는 사실이다.
가수 ‘별’의 노래 ‘12월 32일’에서는 올해가 가기 전에 꼭 돌아온다는 누군가를 기다리는 이가 나온다. 온다고 약속했던 이는 결국 오지 않았고 새해가 밝았기에 기뻐하는 사람들 속에서 눈물을 흘린다. 그러니 지금은 새해가 아니라 12월 32일이고, 다음날은 33일이라고, 그리하여 그가 올 때까지 영원히 12월에 남겠다는 절절한 마음을 고백한다.
원하는 것을 원하는 만큼 유예시킬 수 있다면 얼마나 편안할까. 그것이 일이든, 시간이든, 관계이든. 충분히 괜찮아질 때까지 기다린 뒤에 끝을 고할 수 있었다면 삶은 이렇게나 복잡하진 않았을 것이다. 당연히 그럴 수 없다. 시간을 붙잡으려는 미련에 사로잡히게 된다면 시간 밖에서 사는 존재가 되어버린다. 마무리를 짓지 못한 채로 미완성으로 남은 작품들은 나만의 하드웨어에 끝도 없이 쌓여갈 것이며 막무가내로 흐트러진 관계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주변을 괴롭힐 것이다.
다사다난했던 2021년이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이제 우리는 우리만의 마지막 구절을 쓰고 마침표를 찍어야 한다. 두렵고, 아쉽고, 서운하면서도, 잘 가, 고마웠어, 다음에는 좀 더 잘 해볼게, 다시는 오지 마, 하고 외치고 싶은 마음, 그러니까 소설의 마지막 장을 쓰는 마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