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오피니언

참을 수 없는 소유의 무거움

아무 일도 하지 않던 때가 있었다. 오지 않는 청탁 전화만 기다리다가 하루가 끝나기도 했다. 그때의 나는 일 년에 두어 편의 소설을 발표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통장 잔고는 바닥이었고 카페에서 커피 한 잔을 사서 먹는 일도 고심했었다. SNS에 접속하면 가까운 친구들의 소식이 와르르 쏟아졌다. 먼 나라로 여행을 간 친구, 결혼식을 준비하는 친구, 성과급으로 명품 가방을 산 친구, 바쁜 일 때문에 정신이 없다는 친구. 나는 그들의 숨 가쁜 시간을 바라보며 어떤 사건도 일어나지 않는 나의 일상을 돌아보곤 했다.그날들을 버틸 수 있게 해준 건 내가 글을 쓰는 사람이라는 자의식이었다. 마음이 베이듯 쓰린 순간이 찾아와도 쓰고자 하는 욕망이 나를 일어서게 했다. 글을 쓰는 데는 대단한 것이 필요하지 않았다. 목이 다 늘어난 티셔츠에 밑창이 떨어진 슬리퍼를 신고 매일같이 도서관으로 향했다. 손에 잡히는 책을 읽고 이런저런 생각을 노트에 끼적였다. 가진 것이 없었기 때문에 오히려 홀가분하기도 했다. 뭔가를 잃을까 봐 전전긍긍하지 않았고 큰 것을 얻고 싶어 안달 내지 않았다. 넘쳐흐르는 시간을 오직 읽고 쓰는 일에만 썼다. 도서관 휴게실에 앉아 꼭꼭 씹어 먹던 도시락과 근처 공원에서 만끽하던 바람의 감촉이 아직도 선명하다.지금은 어떠한가. 그때와 비교하자면 삶은 훨씬 안정되었다. 꼬박꼬박 들어오는 일정한 돈이 있고 쾌적한 오피스텔에서 머물고 있으며 내 명의의 자동차도 생겼다. 고민 없이 커피를 테이크아웃하며 고마운 지인에게 선물을 할 수 있는 여유도 있다. 당장 내일의 생활비를 걱정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 가장 감사한 일이다. 나는 이러한 일상에 만족스러워하면서도 또 다른 걱정을 느끼고 있다. 오로지 나를 위해 쓰이던 시간은 이제 더 이상 없다. 매일 바쁘게 이런저런 일에 치이면서 책임져야 할 것들이 늘어났다. 소유하는 물건들도 많아졌다. 사회적 활동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필요한 것들이 생겼고 그것을 감당하는 것조차 내 역할이 되었다.사람들을 만나면 주식이나 코인 이야기가 빠지지 않는다. 회사에서 받는 월급만으로는 집 한 채 살 수 없는 세상이라고, 온종일 직장에서 일해 봐야 남는 건 하나도 없다고. 이제 겨우 남들만큼 돈을 벌기 시작한 나는 의문한다. 정말 그런가. 건강한 노동으로 벌 수 있는 돈이 제한적이라면 우연에 기댄 일확천금을 노려야 하는 것밖에 답은 없는 것일까. 돈으로 모든 것을 살 수 없다는 말은 그만큼 돈이 충분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냉소적인 농담을 곱씹어본다. 물건뿐 아니라 진정으로 가치 있는 인간의 근원적인 부분조차 돈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분위기가 요즘 사회에 만연한 듯하다.일하지 않는 젊은이들이 현대 사회의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는 기사를 마주한다. 대표적인 것이 프리터족이다. 자발적 프리터족은 특정한 직업 없이 자유롭게 시간을 보내면서 아르바이트로 최소한의 생계를 이어간다. 물질에 대한 욕심을 버리고 꼭 필요한 것들로만 자신을 구성한다. 기성세대의 걱정처럼 그들은 단순히 게으른 젊은이가 아니다. 자기 자신의 가치를 남들만큼 살아가는 것에 두지 않고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에 관해 골몰한다. 유한적인 삶을 그저 노동에 묶인 채 살아가지 않겠다는 신념에 가까운 것이다. 문은강 ‘춤추는 고복희와 원더랜드’로 주목받은 소설가. 2017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작가로 등단했다. 동시에 나는 돈이 없기 때문에 강제로 좁아져야만 하는 세계에 대해서도 알고 있다. 타인에게 나눠주는 다정함을 포기하는 것, 다양한 맛을 경험하는 대신에 허기를 채우기에 급급한 음식을 섭취하는 것, 예기치 못한 사건으로 단단한 자존심이 무너져 내려야만 하는 것.나는 이 모든 일을 경험했었다. 가볍고 자유로운 만큼 고독하고 불안해지는 삶과 다양한 것을 누리고 무거워지는 만큼 책임과 구속이 늘어나는 삶. 어떤 것을 택할 것인지는 결국 선택의 문제다.어제는 내 실수 때문에 자동차 범퍼가 망가졌다. 수리 센터에 가는 내내 수리비는 얼마나 나올까 전전긍긍하며 자책했다. 수리 기사님은 차 상태를 보더니 혀를 쯧쯧 찼다. 그리곤 나를 향한 위로의 한마디를 던졌다. “괜찮아요. 차 끌고 다니려고 돈 버는 거죠, 뭐.” 수리를 맡기고 나오면서 나는 씁쓸한 뒷맛을 삼켰다. 뭔가를 얻기 위해서 또 얼마나 많은 것을 잃어야 하는가 고민하면서. 나는 계속해서 살아가야 했고 자의든 타의든 더 많은 것을 가져야만 할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어쩐지 어깨가 무거워졌다.

2021-07-05

기회는 평등, 과정은 공정?

작가라면 누구나 작품집 원고를 묶어 유명 출판사에 투고해 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채택되지 않을 경우 친절한 출판사는 원고에 대한 상세한 피드백을 담아 회신해준다. “이러이러한 부분은 좋았으나 이러저러한 점이 아쉬워 원고를 돌려드린다”고 말해주면 납득이 된다. 도저히 결과를 받아들일 수 없는 경우는 출판사가 원고를 제대로 읽어보지도 않은 것 같을 때다. 작품에 대한 구체적인 말은 한 마디도 하지 않고 “저희 출판사의 출간 방침과 맞지 않다”고 한다든가 최소한의 설명도 없이 “출간할 수 없다”고 하면 따져 묻고 싶다. 대체 내 작품이 왜 채택되지 않았느냐고, 영 형편없는 저 아무개의 작품보다 내 글이 못한 게 무엇이냐고.도쿄 올림픽 야구 국가대표팀 엔트리 선발 과정에서 잡음이 일었다. 올 시즌 최고의 활약을 보이고 있을 뿐 아니라 지난 시즌에도 꾸준히 잘한 한화 불펜 투수 강재민이 선발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 성적 지표상 다른 선수들보다 모든 부분에서 뒤쳐진 NC 2루수 박민우가 뽑힌 것도 의아함을 자아냈다. 선수 선발 전권을 가진 김경문 감독은 나름대로 이유를 설명하긴 했지만 티브이 중계화면 말고 현장을 직접 볼 수 없는 팬들은 답답할 수밖에 없다. 선발 과정이 투명하게 공개된다면 불식될 논란이다.국민의힘 이준석 당 대표가 연일 정치판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고 있다. 경선에서 강조했던 공정과 경쟁이 주요 당직자 임명 과정에 뚜렷하게 나타나면서 호평을 얻는 중이다. 대변인단을 선출하는 토론배틀 ‘나는 국대다’의 경쟁률이 무려 141대 1이고, 치열한 경쟁을 뚫고 16강에 오른 참가자들의 면면이 화제가 되고 있다. 토론배틀 다음은 ‘정책 공모전’이라고 한다. 인재를 등용하고 정책을 수립하는 과정을 모든 사람이 알 수 있도록 투명하게 공개하는 것이다. 보수야당은 이렇게 새로운 시도로 국민의 이목을 모으는데, 여당은 ‘페라가모 구두’, ‘따릉이’, ‘병역 의혹’, ‘X파일’ 같은 구태 공작 카드만 남발하고 있다. 국민들은 피곤할 따름이다.청와대는 최근 25세 대학생인 박성민 씨를 청년비서관으로 임명했다. 1급 공무원에 해당하는 고위직이다. 박성민 비서관의 능력이 뛰어나다고 하지만, 이준석 돌풍에 어떻게든 대응하고자 부랴부랴 기획해낸 이벤트성 인사로 보일 뿐이다. 자질은 둘째 치고 많은 국민들이 제기하고 있는 ‘공정성 문제’에 대해 청와대가 곱씹을 필요가 있다. 선발 과정이 공정하고 투명했느냐는 것이다. ‘낙하산’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청와대와 여당은 “이준석 대표도 박성민 비서관이 훌륭하다고 말했다”며 박 비서관의 능력과 자질을 주목해 달라 읍소하는 중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이번 정부가 지닌 고질적인 근시안이 드러난다. 국민들 특히 2030세대는 박 비서관의 실력을 가지고 왈가왈부하는 게 아니라 뛰어난 실력을 가진 인재가 어떤 선발 과정을 거쳐 그 자리에 임명되었는지 궁금하다는 것이다. 이준석 대표와의 비교도 어불성설인 게 이 대표는 여론조사, 토론회, 당원과 일반 국민이 참여한 투표 등 전국에 생중계된 치열한 경선 과정을 거쳐 선출됐고, 박 비서관은 느닷없이 임명됐다. 인사에는 구체적이고 명확한 기준이 있어야 하지만, 박 비서관 임명을 두고 정부는 ‘젊고 능력 있다’는 피상적 인상만 국민들에게 주장할 뿐이다. 이병철 문학평론가이자 시인. 낚시와 야구 등 활동적인 스포츠도 좋아하며,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일각에서는 정당 활동 외에 취업 경력이 없는 박 비서관이 대학 졸업도 하지 않고 1급 공무원에 발탁된 것 자체가 불공정이라고 말한다. 명문대 졸업생이 5급 행정고시에 도전할 때 보통 3년 이상을 공부하는데, 행정고시는커녕 그 어떤 경쟁도 치르지 않고 고위 공무원이 된 박 비서관을 보면서 박탈감을 느낀다는 것이다. 그동안 해온 노력들이 다 헛되다는 허무함마저 든다고 한다. 실력이 뛰어나다면야 파격 승진도 물론 가능하다. 실력을 의심하는 게 아니라 자격을 의심하는 것이다. 그 실력을 가지고 다른 실력자들과 공정한 경쟁을 벌여 선발되었어야 한다는 것이다. 오직 실력만이 자격요건이라면 실력이 입증될 만한 검증 과정이 공개되었어야 한다는 것이다.박성민 비서관보다 더 유능한 청년들이 얼마나 많을까? 아무리 뛰어난 스펙을 쌓아도 지원 자격조차 얻을 수 없는 수많은 청년들이 청와대와 박 비서관을 지켜보고 있다. 합당한 인사였다는 것을 국민들이 납득할 수 있게, 부디 제대로 된 청년정책을 펼쳐주길 바란다. 그 뛰어나다는 실력을 아낌없이 발휘해주길 기대한다.

2021-06-28

배달 음식 공짜로 먹는 방법?

한 달 정도 채식 위주의 식습관을 공들이고 있지만, 어쩔 수 없이 금요일 저녁이 되면 배달 앱을 열어보게 된다. 클릭 몇 번만으로도 깨끗하게 손질된 샐러드와 채소 주스를 집 식탁 위에서 손쉽게 먹을 수 있으니까. 훨씬 다양한 재료가 섞인 질 높은 샐러드를 먹는 것도 좋거니와 직접 채소를 고르고 씻고 손질하여 믹서기에 갈아야만 주스 한 잔이 완성되는, 그 아주 번잡한 수고로움을 거치지 않아도 된다니! 게다가 식사를 마친 뒤 남는 시간엔 취미도 즐길 수 있고, 잠도 빨리 잘 수 있으니 얼마나 합리적으로 손쉬운 행복인지!그치만 이 편안한 과정을 습관으로 삼는 순간 식사는 끼니를 해치우는 행위로 변질하고 만다. 마트에서 장을 보고, 미리 반찬을 만들어 두고, 밥을 지어 냉동고에 소분 해 놓는 과정 자체가 확연히 생략되니 일상의 질도 ‘빨리’와 ‘대충’으로 대체된다.게다가 일회용품이 가득 쌓인 쓰레기통을 보자면 대단한 잘못을 저지르고 있단 위기감마저 드는데, 나의 쾌적함을 위해 택하는 것들이 지구에 사는 생명체에게 피해를 입히고 있으니 어쩔 수 없이 괴로울 수밖에.최근 인터넷에선 배달 음식 공짜로 먹는 방법에 대한 글이 화제로 떠올랐다. 음식을 시킨 뒤에 재료가 상했다는 둥, 맛이 변했다는 둥, 열어 보니 알 수 없는 벌레가 들어 있다는 등의 불만을 배달 앱 고객센터에 전화하여 ‘있지도 않은 문제점을 애써 발설’하면 된다는 것이다. 그럼 대부분 환불을 통해 문제를 해결해주니 결론은 음식을 무료로 먹을 수 있다는 것.이처럼 코로나로 인해 자영업자가 배달 업체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이용해 별점이나 리뷰를 악용하는 이를 블랙 컨슈머라 부르는데, 나날이 그들은 자신이 가진 별점과 댓글을 권력이라 착각하며 여러 문제점을 낳고 있다.최근 한 블랙 컨슈머가 자신이 주문한 새우튀김이 상했다며 무리한 환불을 요구하자 이를 대응한 해당 점주가 뇌출혈로 사망한 사건이 있었다. 위의 문제가 심각히 불거지면서 각 배달 앱에선 리뷰 전담 대응팀을 꾸리고 있으나 아직까지도 구체적인 대책은 없는 상태다.한 배달 업체 측은 악성 댓글이나 별점 테러가 심각하다 판단할 경우 30일 비공개 처리를 할 수 있는 방법을 선택했다.30일간 비공개 처리되는 동안 새로운 리뷰가 쌓여 아래로 밀릴 테니 거의 삭제나 다름없는 방법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 또한 일시적으로 보이지 않게끔 하는 것일 뿐, 별점 하나에 자신의 인생까지 되돌아보게 된단 자영업자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은 분명하다.불랙컨슈머가 나날이 날뛰는 데에는 이 사람이 블랙컨슈머인지 판단할 수 없는 불투명한 정보 때문일 것이다. 가게의 인상을 좌지우지하는 그들이 행사하는 권력에 비해 이 사람이 몇 번째 주문인지, 과연 댓글이 믿을 만한 정보인지, 일반 소비자 입장에서는 판단할 수 있는 팩트 체크가 없다.그러니 아이디 옆엔 신뢰성을 확인 할 수 있는 등급이라든지 어떠한 표식이 있다면 좋지 않을까. 블랙컨슈머는 하나의 가게에서만 별점 테러를 남기는 것이 아닌 여러 가게를 돌며 같은 행위를 반복하므로, 이 사람이 블랙컨슈머라는 걸 누구나 알 수 있도록 말이다. 윤여진 2018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 부문에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현재보다 미래가 기대되는 젊은 작가. 또한 별점 높은 순으로 음식점을 정렬하는 부분도 불필요하단 생각을 한다. 가게를 별점으로 성적을 매겨서 나누어버리는 건 특정 사람의 입맛에 맞추어 획일화하겠단 것으로 보일 수 있으니까. 사람마다 입맛은 다르고 각 가게마다 음식 맛이 다를 수 있는데, 굳이 별점을 내세워 순위로 나열하는 것이 꼭 필요한 건가 싶다.별점이 높을수록 맛집으로 평가되는 만큼, 별점 조작이나 알바를 고용하여 리뷰 작업을 맡기는 문제는 지속적으로 이어지고 있다. 더는 리뷰가 정보 공유를 하는 공간이 아닌 상업적으로 이용되는 공간으로 변질되므로, 결국 가장 피해를 보는 건 정직하게 장사하는 가게와 아무것도 모르는 소비자들뿐이다.이런 말을 할 때마다 누군가는 세상살이 다 그런 거라며, 정직함만으로 세상을 헤쳐 나아갈 수 없단 말을 덧붙이지만. 글쎄, 세상은 왜 헤쳐 나아가야 하는가. 댓글과 별점 테러로 내가 가진 힘만 과시하는 것이 아닌 서로가 서로의 없는 부분을 보완하며, 나란히 걸어가는 삶도 있다. 그리고 인간은 후의 세상을 꼭 필요로 한다.

2021-06-28

사소한 재능이라도

몇 년 전 어느 텔레비전 강연 프로그램에서 강연을 한 이후, 가끔 기업이나 학교에서 강연 요청이 오기도 한다. 얼마 전에는 한 대학에서 특강 강사로 초청을 해 주어서 다녀왔다. 강연 내용은 별 것 아니다. 그냥 내가 여태까지 음악을 하고 글을 쓰면서 느낀 것들을 늘어놓을 뿐이었는데 학생들이 눈을 빛내며 경청해주어서 나도 행복하게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강연 시간보다 더 즐거운 시간은 학생들의 질문을 받는 시간이다. 요즘 친구들은 이런 고민들을 하고 사는구나 싶을 때도 있고, 예전에 내가 했던 고민을 똑같이 하고 있는 것을 보며 마음이 애틋해질 때도 있다. 그 날도 몇몇 학생들이 질문을 해 주었는데, 그 중에 하나는 이런 거였다.“강사님. 저는 진짜 아무리 생각해도 잘 하는 게 없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뭘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그것은 나도 꽤 오랫동안 했던 고민이었다. 나도 오랫동안 자기소개서의 ‘특기’란을 채우기를 힘겨워했다. 남 얘기 같지가 않아서 되도록 도움이 될 만 한 이야기를 해주고 싶었다.“정말 없을까요? 하나도요?”“네. 진짜 많이 고민을 해봤는데요, 없어요.”“혹시 재능이라는 단어를 너무 대단하게 생각하는 건 아닐까요? 분명히 어떤 장점이 있는데 ‘이까짓 게 무슨 재능이야’ 하면서 넘겨버리고 있는 것일 수도 있거든요. 재능이라는 것의 기준을 좀 낮춰 보면 의외로 쉽게 찾을 수 있을지도 몰라요.”사실 이 이야기는 예전에 친구들과 축구게임을 하며 쓸데없이 ‘박지성은 축구 천재인가’에 대한 논쟁을 하다가 나온 것이었다. 누군가는 박지성이야말로 노력의 표본이라고 외쳤고, 누군가는 그가 타고난 실력이 없었다면 그 위치에 갈 수 있겠냐며 핏대를 세웠다.그런데 나는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애초에 ‘축구를 잘 하는 재능’이라는 것이 존재할 수 있는 것인가? 재능이라는 것은 선천적으로 무언가를 잘 하는 능력이다. 그런데 축구는 결국 사람이 발명한 것이다. 축구가 자연 발생한 것이 아닌데, 그것을 잘 하는 능력이라는 것이 자연 발생할 수 있는 것인가?축구를 잘 하는 재능이라는 것은 허구인지도 모른다. 다만 폐활량이 좋고, 발이 빠르고, 하체 힘이 좋고, 시야가 넓은 것과 같은 단순한 재능들이 존재할 뿐이다. 박지성은 이러한 재능들을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는 축구라는 종목을 선택한 것이다.국민MC, 유느님이라고 불리는 유재석. 그에게는 ‘방송진행을 잘하는 재능’이라는 것이 있었을까? 방송이라는 산업 역시 사람이 발명한 것이다. 유재석에게는 타인의 말을 경청하는 능력, 누구 하나 소외되지 않도록 하는 배려심, 대화의 흐름을 캐치하는 눈치, 다른 사람들의 능력을 파악하는 눈썰미, 그리고 다양한 어휘를 조합해서 문장을 만들어내는 언어능력이 있었을 것이다. 방송진행에 있어서 천부적이라고 하는 그의 재능은 어찌 보면 사소하다고 볼 수 있는 여러 가지 장점들을 훌륭히 조합해 만들어낸 재능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강백수 세상을 깊이 있게 바라보는 싱어송라이터이자 시인. 원고지와 오선지를 넘나들며 우리 시대를 탐구 중이다. 이런 식의 재능이라면 누구나 몇 가지는 발견할 수 있다. 누구는 손이 크고, 누구는 손가락이 길다. 누구는 후각이 예민하고, 누구는 손놀림이 야무지다. 누구는 눈치가 빠르고, 누구는 매사에 끈기가 있고, 누구는 붙임성이 좋고, 누구는 조심성이 있다. 어지간한 개성이나 특징은 다 사소한 재능이 될 수 있다. 이런 것들을 모아두고 보면 의외로 내가 잘 할 수 있는 일은 간단하게 발견할 수 있다. 나 같은 경우 목소리가 큰 편이고, 성대가 건강한 편이다. 폐활량이 좋고, 부끄러움을 잘 타지 않는 성격을 가지고 있다. 이런 장점들을 긁어모아 가수를 해서 먹고 살고 있는 것이다.“나는 뭘 잘하는지 고민하기보다는 사소한 재능들을 한번 샅샅이 찾아보세요. 정말 이런 게 재능일 수 있을까 싶은 사소한 것이라도 괜찮아요. 그런 것들을 싸그리 모아 놓고 보면 내가 뭘 하면 좋을지 발견할 수 있을 거에요.”나의 이야기를 들은 학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후 내가 다른 질문들에 대답을 하는 내내 그는 생각에 잠겨 있었다. 강단에서 내려올 때까지 나는 그런 그를 슬쩍슬쩍 바라봤다. 그는 어떤 사소한 재능들을 발견했을까. 그렇게 발견한 재능들에 어울리는 진로를 찾는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조금 더디더라도 그가 잘 할 수 있는 일을 꼭 찾아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2021-06-21

안전과 책임

광주에서 철거작업 중이던 건물이 무너지면서 공사장 앞 버스정류장에 정차돼 있던 시내버스를 덮쳤다. 그로 인해 9명이 숨지고 8명이 중상을 입었다. 버스에 있던 승객들은 평소와 다름없는 일상을 살던 시민이었다. 거리는 극단적인 위험의 모습을 가지지도 않았을 것이었다. 어느 평범한 오후 일어나지 않을 수 있었던 사고. 이러한 참극을 단지 ‘운이 나빴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인가.경기 평택항에서는 이선호 씨가 개방형 컨테이너 벽체에 깔려 숨졌다. 그는 아버지를 따라 용돈을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던 청년으로 원래 업무와는 무관하게 현장에 투입되었다. 그를 위한 안전교육이나 장비도 없었고 사고 현장에는 안전관리자조차 없었다.어째서 우리는 계속해서 이러한 이야기를 접해야 하는 걸까. 건물과 다리가 속수무책으로 무너지고 현장에서 일하던 노동자가 죽어나는 사건들. 안전을 위한 예방에 만전을 기했다면 충분히 일어나지 않을 수 있었던 재난들. 그 끔찍한 일을 기어코 마주하고 나서야 시스템의 개선을 말하는 사람들.우리는 우리를 비극으로 몰아넣었던 여러 사고를 경험해왔다. 그래서 무엇이 달라졌는가. 참극 이후를 살아가는 우리의 태도는 어떠한가. 아무것도 바뀐 것이 없다는 생각에 마음이 참담해지는 것이다.우리의 일상은 안전하지 않다. 그것은 하나의 사실이 아니라 하나의 상태인 것처럼 보인다. 계속해서 같은 결과가 변주될 뿐이다. 어느 누가 죽음을 맞이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가지고 시내버스를 타고 노동 현장으로 투입될까. 어쩌면 우리는 우리가 안전하다는 가정에 얽매인 채 그 환상 안에서 살아왔을지도 모른다.우리 사회는 그렇다. 어디서든 효율성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생산성 향상을 요구한다. 회사에서는 ‘빨리빨리’ 완벽한 결과물을 내어놓기를 바라며 개인이 가진 에너지를 남김없이 다 소진하기를 바란다. 무엇이든 빨리 허물고 새롭게 지어야 한다는 압박감. 언제든지 다른 인력으로 교체될 수 있다는 불안함. 이러한 사회에서 노동자의 건강과 안전은 늘 뒤로 물러나기 마련이다.번듯하게 만들어진 건물을 바라보며 무너짐을 상상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늘 높이 치솟은 휘황찬란한 모습에 감탄하는 것으로 끝내기 마련이다. 그것을 위해 희생당한 이들은 아무렇지 않게 잊힌다. 공고한 세계를 지키고 있는 사람들이 있고 동시에 끊임없이 배제되는 사람들이 있다. 묵묵하게 일하며 지반을 떠받치고 있는 이들의 발화는 너무나도 쉽게 흩어지기 마련이다.그렇다면 이토록 끔찍한 사건을 누가 책임질 것인가? 사실상 어느 누구도 이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다. 주문한 음식이 약속된 시간에서 조금만 늦어져도 배달원을 탓하며 서비스직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실수에 엄격하게 반응하는 일들은 우리 주변에도 빈번하지 않은가. 일상에서 노동자의 희생을 당연한 일로 여긴다. 그로 인해 벌어지는 참극을 ‘운이 나쁜’ 어느 사고라고 치부하기도 한다. 과연 그러한가. 우리에게는 일말의 책임도 없는가. 그 괴로운 질문에서 빠져나오기 위해서 우리는 그들의 죽음을 쉽게 잊어버리고는 한다. 문은강 ‘춤추는 고복희와 원더랜드’로 주목받은 소설가. 2017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작가로 등단했다. 마크 피셔는 “세상의 종말을 상상하는 일이 자본주의의 종말을 떠올리는 것보다 더 쉽다”고 말했다. 자본의 논리 안에서는 한 푼의 돈이 한 사람을 지키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로 작동하기도 한다. 이윤보다 사람이 먼저라는 전언은 그저 허울 좋은 말에 불과하다.한 사람의 목숨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것을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처럼 부조리한 일이 또 있을까. 그러므로 우리는 오늘의 참극을 기억해야 한다. 그것은 분명한 우리의 책임이다. 무엇이 잘못되었는가. 그 안타까움을 상기하며 끊임없이 되물어야 한다. 동시에 사회적 책무도 물어야 한다.비극적인 죽음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근본적인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단 한 사람도 잃어서는 안 된다는 마음으로 건물을 짓고 그러한 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를 위한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누구도 죽거나 다치지 않고 안전이 보장되는 사회가 와야 한다는, 너무도 상식적이고 당연한 이야기를 외쳐본다.

2021-06-21

비건으로 가까워지는 삶

비건의 삶은 지구와 생명체를 위한 일이 아닐까. 2주 전 주말이었다. 침대에서 몸을 뒤척이는데 무거워진 몸이 버겁게 느껴졌다. 스트레스를 음식으로 풀어서인지 폭식은 또다시 습관이 되어 있었고, 어느샌 음식을 배가 고파서가 아닌 기분이 좋지 않단 이유로 의무적으로 먹기 시작 했다. 그렇게 겨울 내내 옷 태가 달라졌고, 알레르기를 심하게 앓는 피부와 비염도 극심해져 몸 전체가 망가지고 말았다. 그럴 때마다 열패감에 시달리곤 했는데, 다시 굶기 시작하면 원래 몸무게로 돌아갈 수 있을거란 믿음을 스스로 주입하며 되뇌곤 했다.난 몸무게가 고무줄처럼 오가는 편이다.스스로를 프로다이어터라고 칭하는 만큼 폭식과 절식을 극단적으로 행하는데 수험 스트레스가 극에 달했던 18살엔 일 년 사이에 몸무게가 13킬로그램 정도 증가하기도 했다. 갑자기 살이 찌면 피부가 늘어나서 빨간 자국이 몸 곳곳에 새겨진 다는 걸 그 때 알았다. 22살이 되던 해에는 운동 없이 절식만으로 17킬로그램을 뺐다. 딱히 다이어트를 해야겠단 동기가 있었던 건 아니었지만 아무 것도 먹지 않고 음식에 대한 욕망이 사라질 때의 공허한 기분을 조금 즐겼던 것 같기도 하다.갑자기 살이 빠지니 변화된 몸에 대한 칭찬을 정말 많이 들었다. 인물이 산다거나, 드디어 얼굴에 꽃이 폈단 말을 부모님이나 친구들, 선생님들, 주변 어르신들 너나 할 것 없이 자주 들었다. 무엇보다 가장 끔찍하다고 생각이 들었던 건 굶을수록 스스로를 대견해하며 우월감이나 성취감에 빠졌단 거였다. 그것도 얼마 지나지 않아 탄력 없이 축 늘어진 피부와 원인 모를 알레르기가 찾아 왔다. 머리카락과 얼굴은 푸석푸석했고, 무엇보다 자주 무기력해졌다. 외출 후 한 시간만 지나도 극심한 피로가 찾아와서 상대와 눈을 맞추는 것도 힘겨울 정도였으니까.어쨌거나 극단적인 다이어트가 스스로를 파멸시킨단 생각이 들자, 먹는 것에 대한 강박을 내려 놨다. 몸무게는 나날이 증가했지만, 그렇게 몇 년간은 음식에 대한 스트레스를 덜 받으며 지내왔다.그런데 이주 전 침대 위에서, 이젠 도저히 맘 놓고 먹어선 안 된단 생각이 문득 들었다. 하루 세 잔씩 커피를 달고 사는 데다 아홉 시간 반씩 사무실 의자에 앉아 퀭하게 모니터를 바라보고 있자니 하루의 운동량이 거의 제로에 가까웠다. 마침 늘 관심사로 두고 있던 비건이 생각나자 그 자리서 바로 검색해보기 시작했다.비건은 흔히 채식주의자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실은 섭취 방법에 따라 프루테리언, 비건, 폴로 베지테리언, 플렉시테리언 등등 다양하게 나누어진다. 상대적으로 익숙한 이름의 비건은 고기나 동물성 식품을 먹지 않고, 생선이나 계란, 우유, 버터 같은 동물의 희생으로 발생되는 식품까지 포함하여 섭취하지 않는다. 프루테리언은 비건보다 한 차원 높은 채식을 지향하는데 이들은 식물도 살아 있는 생명이라 여겨 과일이나 견과류 종류만 먹는다. 폴로 베지테리언은 유제품과 계란, 어패류, 날개 달린 고기까지 먹는 단계로 상황과 때에 맞춰 자신이 선택하여 먹을 수 있다. 플렉시테리언은 평소 채식을 하다 가끔 고기를 먹는다. 비교적 선택지의 폭이 넓어 자유롭게 섭취할 수 있단 특징을 지니고 있다.그런데 무조건 채식을 한다고 해서 건강해지는 건 아니었다. 동물성 식품을 배제하는 완벽한 채식을 하기 위해선 정말 많은 공부가 필요했다. 내 몸에 부족한 부분을 인지하는 것도 어려운데 좋은 탄수화물과 단백질, 지방을 고루 채울 수 있는 식단을 스스로 마련하는 것도 지식 없인 난감했다. 윤여진 2018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 부문에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현재보다 미래가 기대되는 젊은 작가. 처음부터 고기를 끊긴 어려워서 상황에 따라 채소와 육류를 선택하며 먹었고, 되도록 채소 섭취를 우선으로 했다. 중요한 건 내 체질에 맞게 식재료를 선택할 줄 알아야 했는데, 필수 영양소에 대한 공부뿐만 아닌 내 몸과 마음의 균형에도 시간을 들이게 됐다.비건에 눈을 돌리니 동네 마트만 가도 비건을 위한 식품이나 간식이 시중에 많이 나와 있는 게 보였다. 우유를 아몬드 두유로 교체할 수 있는 카페도 많았고, 대형 프랜차이즈 가게에선 비건을 위한 메뉴가 꾸준히 출시된다는 것도 알게 됐다.이제 겨우 이 주 정도 지났지만 속이 편해졌고 몸의 붓기가 많이 빠졌다. 생활의 질이 높아진 건 물론, 비건으로 가까워지는 삶은 궁극적으로 지구와 모든 생명체를 위한 일이라는 걸 깨달았다. 어떤 신념을 유지한다는 건 이토록 수고로운 일임을 다시금 깨닫고 있다.

2021-06-14

Brava! 클라라 주미 강!

클라라 주미 강의 바이올린으로 5월을 닫고 6월을 열었다. 롯데콘서트홀과 경기아트센터에서 연이틀 공연을 보고 황홀했다. 이번 무대에서 그녀는 바흐 무반주 바이올린 전곡을 연주했다.바흐 무반주 바이올린 전곡은 연주시간만 140분에 달한다. 극심한 난이도와 체력 부담, 바이올린 한 대만으로 무대를 채워야 하는 연주자의 심리적 압박까지, 바이올리니스트에겐 최고의 도전이자 거장으로 나아가는 수행의 과정이다. 마라톤이나 히말라야 14좌 완등에 비견되곤 한다. 나는 주미 강의 연주에서 종교적 광휘를 느꼈는데, 봉쇄수도원에서 고행하는 수도자가 보이기도 하고,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필사하는 새벽 신도가 보이기도 하고, “얇은 사 하이얀 고깔 고이 접어 나빌레라”의 여승이 보이기도 했다.롯데콘서트홀 무대에 주미 강이 등장할 때, 1년 반 동안 잘려나간 삶의 절단면이 복구되는 걸 느꼈다. 코로나 이전, 객석에서 주미 강의 연주를 감상하는 일은 일상의 특별한 행복이었는데, 그게 중단되자 낭만도 몽상도 시들어 나는 가뭄이고 폐허였다. 그녀가 다시 1708년산 ‘엑스 스트라우스’를 들고 무대에 서는 모습을 보니 눈물이 났다. 그 눈물을 봄비 삼아 오뉴월 초록이 마음으로 번질 때, g minor 코드의 고혹적인 보잉과 함께 주미 강의 바흐가 시작됐다.주미 강은 바흐가 꿈꾼 오직 바이올린만의 광활 우주를 이상적으로 재현해냈다. 그녀의 아우라는 소리가 빠져나갈 구멍 없이, 관객의 집중이 새나갈 틈 없이 완벽한 밀도를 이뤘다. 바이올린으로 낼 수 있는 가장 작은 소리부터 큰 소리까지, 제일 두꺼운 소리부터 가느다란 소리까지, 짧은 소리부터 긴 소리, 어두운 소리부터 환한 소리, 속주부터 비브라토까지 자유롭게 오갔다. 첼로, 콘트라베이스, 피아노, 바이올린을 동시에 연주하는 것만 같았다.프랑크 소나타나 브루흐의 스코티시 판타지 등 장조 곡을 연주하는 모습이 내겐 익숙한데, 단조 위주인 바흐 무반주의 짙고 무거운 격랑 속에서 주미 강은 ‘밤의 여왕’이었다. 그녀의 연주에선 35년의 한 생애 전체가, 지나온 시간과 아직 오지 않은 시간들이, 삶과 죽음이, 바흐의 300년과 엑스 스트라우스의 300년이 휘몰아쳤다. 밤바다에서 죽고 태어나는 파도의 하얀 뼈와 사막의 지평선으로 자맥질하는 별들과 황금처럼 빛나는 무거운 안개들을 보았다. 가장 캄캄한 밤부터 환한 아침까지, 깊은 물속의 소리부터 구름 위 하늘의 소리까지, 작은 나뭇가지가 움직이는 떨림부터 숲 전체가 일어서서 걸어오는 지진까지를 들으며 나는 말러 2번 ‘부활’에서 느끼던 것과 비슷한 장중함과 숭고미에 두 손을 모았다.경기아트센터 1부에선 에어컨 기계음에 여린 소리와 잔향이 먹혔는데, 소매를 걷어붙인 주미 강의 바이올린은 공연장을 금세 장악했다. 공간도 시간도 무화되어 여기가 서울인지 수원인지 상관없었다. 에어컨 소리도 기침소리도 핸드폰 소리도 다 집어삼켜버렸다. 오직 바이올린만 있었다. 바이올린을 자유롭게 하는 주미 강만 있었다. 그녀는 3시간 내내 행복해 보였다. 나는 그녀가 위대한 바이올리니스트보다 행복한 바이올리니스트이길 늘 바란다. 바흐의 음악은 매우 엄격하고, 수많은 규칙들이 존재한다고 들었다. 주미 강은 오히려 엄격함 속에서 자유로움을, 규칙들 가운데서 균형과 조화를, 교리에 충실함으로써 신에 닿는 날개를 얻은 듯했다. 이병철 문학평론가이자 시인. 낚시와 야구 등 활동적인 스포츠도 좋아하며,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연주의 하이라이트인 파르티타 2번 d단조 5악장 ‘샤콘느’에서 보여준 퍼포먼스는 그녀가 연주자로서 새로운 한 차원을 열었음을, 마치 ‘반지의 제왕’에서 회색의 간달프가 죽음ㅡ부활 후 백색의 마법사로 거듭난 것처럼 젊은 마스터에서 거장으로 도약했음을 관객들에게 선언했다. 롯데콘서트홀 1층 C구역 15열쯤에서 정경화 선생이 “Brava!”를 외치며 기립박수를 친 순간도, 박수에 다소 인색하던 경기아트센터 객석이 무려 세 번이나 커튼콜을 요청한 순간도 다 샤콘느의 비장한 마지막 보잉이 멈춘 그때였다.선덕여왕은 잠든 지귀에게 다가가 황금팔찌를 그의 가슴 위에 올려두었다. 잠에서 깬 지귀는 금팔찌를 품에 안고 기뻤다. 그런데 그 기쁨이 불꽃으로 타더니 급기야 온몸을 활활 사르는 불덩어리가 되었다. 주미 강의 샤콘느는 여왕의 팔찌처럼 나를 사로잡아, 나는 무반주 바이올린 선율에 갇힌 2021년 여름을 무한히 반복해서 살지도 모르겠다. 타는 줄도 모르고. 아니 타는 걸 기뻐하며.

2021-06-14

한 번만 끼워주세요

내게 운전은 먼 이야기였다. 학창시절에는 스쿨버스로 통학했고 대학생 때는 학교에서 십 분 거리에서 자취했다. 어쩌다 먼 곳으로 놀러 갈 일이 생기면 동행하는 친구의 차에 훌쩍 올라타면 그만이었다. 남의 차를 얻어 타고서는 난폭운전을 하네, 승차감이 별로네, 하고 평가하는 일도 서슴지 않았다.많은 사람이 성인이 되면 이루고 싶은 일 중의 하나가 면허를 취득하는 것이라고들 하는데 내겐 아니었다. 세상에서 가장 편한 게 남이 운전해주는 차인데. 왜 그렇게 힘들여 어려운 길을 가려고 하는가. “나 BMW(Bus, Metro, Walk) 타고 다니잖아” 하는 시답잖은 농담에는 은근한 진심도 섞여 있었다. 자가용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고 대중교통을 타는 것에도 큰 불편함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에 운전면허를 따야겠다는 생각은 미뤄 놓은 지 오래였다.인생이란 결코 뜻대로 흘러가지 않는다고 했던가. 평생 남이 운전해주는 차만 타고 살 것이라는 호언장담이 무색하게 나 역시도 운전해야만 하는 상황에 봉착했다. 경제 사정에 맞춰 이사 간 집의 교통이 좋지 않아 약속을 잡으면 두어 시간은 기본이요, 버스와 지하철 몇 번이나 환승해야 했다. 출퇴근도 문제였다. 차로는 한 시간이 채 안 걸리는 거리가 버스를 이용하면 두 시간이 훌쩍 넘었고 당연히 체력적으로도 무척이나 지쳤다. 고심 끝에 나는 모아둔 돈을 탈탈 털어 차를 구입했다.다들 가지고 있다는 ‘장롱 면허’라도 있으면 곧바로 운전 연수라도 받겠다마는. 나는 면허는커녕 자동차 핸들조차 한 번도 잡아본 적이 없었다. 빨간불이면 멈추고 파란불에는 가야 한다는 사실 정도가 내가 아는 교통 법규의 전부였다.운전면허학원에 등록하던 날, 강사님의 팔을 부여잡고 말했다. “저 꼭 면허 따야 해요. 차 없으니까 너무 힘들어요.” 강사님은 나를 보더니,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내게서 간절함이 엿보인다는 거였다. “이를 악물고 해요.” 강사님의 말에 나는 다짐했다. 운전학원 역사상 최단 시간 내에 운전면허를 취득하는 멋진 모습을 보여주리라.필기시험과 기능시험은 어렵지 않았다. 시중에 있는 모의고사 문제집을 달달 외워 필기시험에 단박에 합격했고 그 어렵다는 직각 주차도 거뜬히 해냈다. 문제는 도로 주행이었다.처음 도로로 나갔을 때는 그야말로 황망한 기분이었다. 아니, 뭘 했다고 내가 벌써 도로를 달리지? 그나저나 원래 도로가 이렇게 살벌했던가? 조수석에 탈 때는 몰랐는데… 머릿속에서 나를 태우고 달렸던 운전자들의 얼굴이 스쳐 지나갔다. 모두 운전 고수였구나. 이 극악무도한 무법지대를 거침없이 누볐구나. 그들의 운전 실력을 멋대로 평가했던 어리석은 지난날의 나 자신을 반성할 수밖에 없었다. 누군가의 말처럼, 정말 인생은 실전이었다.뒤에서 빵빵대는 커다란 버스와 승용차들에 정신이 아득해질 무렵, 공포의 순간이 다가왔다. “정신 차려. 여기서 들어가야 해요.” 강사님의 말에 정신이 아득해졌다. 차선 변경을 해야 하는 상황에 봉착한 것이다. 문은강 ‘춤추는 고복희와 원더랜드’로 주목받은 소설가. 2017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작가로 등단했다. 흔쾌히 속도를 줄여 끼어들 수 있게 해주는 차도 있었지만 반대로 속도를 높여 지나치게 빨리 달리는 차도 있었다. 사이드미러로 보이는 옆 차선에서 차들이 줄줄이 들어와 도저히 끼어들 수 없을 때, 별수 없이 예정된 도로를 지나서 샛길로 빠질 수밖에 없었을 때는 정말이지 울고 싶은 기분이었다. “제발 한 번만 끼워주세요.” 내 절규에 강사님은 고개를 절레절레 들었다. “본인이 끼셔야죠. 누가 끼워줘요.” 아, 그렇구나. 도로는 정말 혼자의 싸움이구나. 나는 순식간에 외로워졌고 동시에 이를 악물었다. 이 작은 공간을 내 손으로 목적지까지 무사히 이끌어야 했고 그러기 위해서는 있는 힘을 다해 차와 차 사이로 끼어들어야 했다. 어쨌든 나는 무사히 면허를 취득했다. 여전히 도로는 무섭지만 익숙해지려고 노력 중이다. 남의 일처럼 여겨지던 휘발유 값과 현재 교통 상황을 알리는 뉴스도 이젠 훌쩍 가깝게 느껴진다. 비상등을 켜면서 고마움을 표시하는 시그널을 목도하면 어쩐지 뿌듯한 마음이 든다. 여기에서도 나름의 소통 방식이 있구나. 그리고 나도 이제 이 세계에 발을 붙였구나. 그런 생각에 스스로가 대견하다.그리하여 어느 도로에서 초보운전 딱지를 붙이고 엉금엉금 기어가는 차를 만난다면 답답해하는 대신에 안쓰럽게 봐주시라. 지금 운전석에서는 누구보다 진지한 눈빛으로 도로를 노려보며 사투를 벌이는 중일 테니.

2021-06-07

문신, 누구에게도 유해하지 않은

어느새 기온이 25도를 넘어서곤 한다. 반팔 티와 반바지가 어색하지 않은 계절이다. 더위를 많이 타는 나는 일찌감치 반팔과 반바지를 입고 다니기 시작했는데 때때로 사람들은 그런 나를 호기심어린 눈으로 바라보곤 한다. 내 팔과 다리에 새겨 넣은 몇 개의 자그마한 문신들 때문이다.나는 이십대 중반부터 최근까지 몇 개의 문신을 몸에 새겼다. 온 팔과 다리를 휘감은 커다란 문신은 아니고, 그냥 좋아하는 문양 몇 개를 조그맣게 몇 군데 새겼을 뿐인데 때로는 사람들의 시선을 본의 아니게 사로잡게 되곤 한다. 제일 오래된 문신은 오른 손목에 새긴 것인데, ‘Difference is not evil’이라는 허세 가득한 문구를 작은 팔찌처럼 둘렀다.가슴에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성(姓)을 새겼고, 왼 손목에는 해와 달이 겹쳐져 있는 모양을 새겼다. 왼쪽 전완근 쪽에는 내가 사랑하는 밴드음악에 사용되는 악기들을 귀엽게 그려넣었고, 오른쪽 이두근 쪽에는 ‘오즈의 마법사’에 나오는 양철나무꾼을 그려넣었다. 오른쪽 발목에는 제일 좋아하는 동물인 범고래 두 마리를 그려넣었고, 양 손날에는 말씀 언(言) 자와 절 사(寺) 자를 새겨 합장을 하면 시 시(詩) 자가 되도록 새겨넣었다. 가장 최근에 받은 문신은 앞서 이야기한 것들과 다른 성질의 것이다. 바로 반영구 눈썹문신이다. 앞서 언급한 것들이 예술적인 목적이나 패션의 목적으로 받은 것이라면, 이것은 미용을 목적으로 받은 것이다. 우리가 문신이라고 부르는 것은 이 두 가지 개념을 모두 포함한다.다 자그마한 것들이지만 개수가 어느 정도 되다보니 주변 사람들에게 질문을 받곤 한다.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은 ‘이거 문신인가요? 그럼 안 지워지나요?’인데, 레이저 시술을 받지 않는 한 지워지지 않는다. 간혹 문신과 타투라는 용어를 달리 생각하여 문신은 안 지워지는 것이고 타투는 시간이 지나면 지워지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지워지는 피부 염료인 ‘헤나’와 타투를 혼동해서 생긴 경우다. 문신과 타투는 같은 말이다. 다음으로 빈번하게 듣는 질문은 ‘아프지 않나요?’인데, 이는 부위마다,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에 정확히 이야기하기 어렵다. 내 경우 도저히 참지 못할 만큼 아픈 부위는 없었고 부위에 따라서 잠시 잠이 들기도 했을 정도로 아프지 않았던 곳도 있었다. 아팠던 곳은 손날과 가슴, 안 아팠던 부위는 팔뚝이었다. ‘왜 했나요?’ 또한 자주 듣는 질문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멋으로 했다. 어렸을 때는 대단한 신념이랍시고 문장이나 글씨들을 새기기도 했지만 이 또한 나름의 멋으로 한 것이고, 대부분의 그림 문신들은 그냥 예뻐서 몸에 새긴 것이다.마지막 질문과 답으로 인해서 간혹 논쟁이 벌어지기도 한다. ‘그냥 예뻐서’ 부모님이 물려주신 몸을 훼손했느냐는 핀잔을 듣기도 하는데, 그렇게 따지자면 귀를 뚫는 행위나 머리카락을 자르는 행위도 효경에 실린 공자의 가르침, ‘신체발부수지부모, 불감훼상 효지시야’에 어긋나는 행위이다. 현대 사회에서 적용되기 어려운 여러 유교적 규범들과 함께 재고가 필요한 문제이고, 오히려 그보다 헌법에 보장된 표현의 자유를 우선시하는 것이 옳다고 볼 수 있다. 강백수 세상을 깊이 있게 바라보는 싱어송라이터이자 시인. 원고지와 오선지를 넘나들며 우리 시대를 탐구 중이다. 작년 10월 21일, 더불어민주당 박주민 의원이 문신사법 제정을 언급하였다. 한국타투협회에 의하면 우리나라의 현행법은 문신 행위에 관한 명확한 법적 근거가 없는 상황이며, 법원은 문신이 의료행위에 해당한다고 보고 의사가 아닌 사람이 문신 업무를 하는 경우에 불법 의료행위에 해당하는 것으로 여겨 의료법 위반으로 처벌하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박 의원은 “많은 시민들이 미용이나 자기표현의 목적으로 여러 종류의 문신 시술을 받고 있는데, 이를 합법화하고 문신사를 전문직종으로 만드는 것이 사회경제적으로나 산업·보건적으로도 모두에게 이득”이라며 문신의 법제화를 주장했다. 한국타투협회는 “직업선택의 자유를 보장하고 연간 국내소비 650만 건의 소비자를 보호하고 직간접적으로 22만여 명의 안전한 일자리 창출과 국민의 건강과 공중보건을 지키기 위하여 문신사법 제정의 절실함을 다시 한 번 호소”한다며 성명을 발표했다.문신은 이미 전세계 대부분의 국가에서 예술행위로 간주되어 자유롭게 행해지고 있다. 많은 선진국들이 문신사에 대한 소정의 자격 또는 요건을 정해놓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는 여전히 법적으로, 그리고 인식면에서 문신사, 그리고 문신 피시술자에 대한 차별이 존재하고 있는 실정이다. 내 팔과 다리에 있는 자그마한 그림들이, 또는 누군가의 몸에 새겨진 크고 작은 문신들이 도대체 누구에게 유해하기에 TV화면은 이를 모자이크 처리해 버리는가. 어째서 눈에 보이는 곳에 문신이 있는 사람은 경찰관이 될 수 없는가. 법률과 인식, 양면으로의 개선이 이루어지길 바란다.

2021-06-07

화음을 쌓는 일

요즘 나는 ‘MSG 워너비’에 푹 빠져있다. ‘MSG 워너비’는 MBC 예능 프로그램인 ‘놀면 뭐하니?’에서 기획한 남성 발라드 프로젝트 그룹이다. 현재는 별루지, 김정수, 강창모, 정기석, 이동휘, 이상이, 원슈타인, 박재정 등 8명의 출연진이 등장하고 있으며, 서바이벌 경쟁을 통해 최종 4명의 가수가 데뷔한다.기존 가수인 SG워너비의 이름을 본 따 만들어진 MSG워너비는 2000년대의 향수를 겨냥한 컨셉으로 과거 유행한 여성 발라드곡인 ‘빅마마의 체념’, ‘태연의 만약에’를 재해석해 새로운 무대를 선보여 화제 되었다.한편 원조 SG 워너비가 방송에 등장하여 히트곡들을 차례대로 부르자 아리랑, 살다가, 라라라 등 수많은 곡들이 역주행하여 각 음원 차트 상위권에 올라 흥미로운 흐름을 보여주기도 했다.나는 평소 좋아하는 가수도, 즐겨 듣는 노래도, 나아가 취미나 취향도 딱히 없는 무색무취의 재미없는 사람이지만, MSG 선발전 무대를 보고난 뒤부턴 어찌나 상기되어 있는지 모른다.8명의 출연진들은 무대 위에서 자신의 자리를 지키며 그들의 감정에 충실히 임한다. 정해진 가사를 부족함이나 과함 없이 감정을 표현하는 것도 대단한데 오롯이 목소리만으로 무대를 장악한다.8명 출연진들의 감미로운 목소리만으로도 충분히 감동을 느낄 수 있지만, 결정적으로 넋을 놓고 반하게 된 데에는 클라이맥스로 치닫을 때에 나오는 화음이었다. 화음은 음악에서 높이가 다른 둘 이상의 음이 동시에 울려 생기는 합성음을 말한다. 서로 다른 음역대가 만나 소리를 쌓고 합쳐 나아가는 것인데 자신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을 정도로 낮게 부르거나, 누군가의 목소리를 묻어 버릴 정도로 너무 크게 부르지 않는다. 서로에 대한 배려와 존중이 깔려 있어 근사한데다 그들의 개성과 열정, 각기 다른 표정과 분위기가 어우러져 흥미롭고도 신비로운 서사를 보여준다. 마치 다양한 색으로 이루어진 무지개를 마주한 듯한 경이로움이라 해야 할까. 서로 다른 것이 만나 공통된 지점에서 발화하는 아름다움은 충분히 마음을 일렁이게 한다.그렇지만 화음은 극히 드물다. 언제나 끊이지 않는 학교와 직장, 병원에서 만연히 이루어지는 집단 따돌림은 불협과 불협이 만나는 끔찍한 노래다. 그들이 만들어내는 목소리에는 수많은 욕설과 소음과 고함으로 엇나간다. 듣는 사람도 인상이 찡그려질 정도인데, 부르는 이들은 얼마나 지옥 같은 마음으로 내지르는 걸까. 자신의 목소리가 옳다는 착각, 개인을 소외시키고 배제시켜야 직성이 풀리는 오만으로는 한평생 하모니를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뛰어난 음악작품 속의 멜로디는 화성진행에서 쓰는 화음의 음만으로 구성되어 있지 않다. 화음에 포함되지 않는 음을 비화성음이라 부르는데, 멜로디의 진행을 매끄럽게 하기 위해서는 비화성음이 반드시 들어간다. 화음 밖의 음들은 기능적으로 안정감을 더하고 다채로운 화성 진행을 통해 더욱 훌륭한 멜로디를 만들어 낸다. 다양함으로 창조된 음악은 듣는 이로 하여금 풍부한 흥미로움을, 굵직한 메시지를, 깊은 위안이 되어주기도 한다. 실제 우리의 태도도 마찬가지이지 않을까. 안팎을 포용하여 전혀 다른 이들을 만나 하모니를 이룰 때에 더욱 고귀한 감정의 결을 알게 될 것이다. 인간은 어쩔 수 없이 타인과 함께 살아가는 존재이므로 독백으로 이룬 무대는 늘 머쓱하고도 외로울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나는 그간 조그맣게 벌린 일 몇 가지를 정리했다. 무엇을 원하고 어떤 걸 쫓는지 모를 지경에 처해 자꾸만 말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동시에 2년 간 근무했던 곳을 벗어나 현재는 새로운 곳에서 전혀 다른 일을 하며 매일 비슷비슷한 일상을 보내고 있다. 이곳에선 정말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있다. 가치관 충돌로 의아하기도, 처음 들어보는 취미나 취향을 발견해서 놀라기도 하지만 그런 대화 속에서 타인을 받아들이는 태도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된다. 물론 복잡하고 힘겨울 수 있겠지만 나름대로 흥미로운 부분도 있다. 나와는 전혀 다른 성향을 가진 타인의 목소리를 듣는 것이 생각보다 재미있는 데다 그들과 나의 공통된 부분을 발견하고 같은 경험을 공유하는 기쁨을 누리는 것 또한 왠지 끌리기 때문이다. 서로 다른 존재가 하나가 되기 위해선 여러 시행착오가 따르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욱이 재미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2021-05-31

백석의 참치회와 낚시금지법

시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시인인 백석은 낚시인들에게도 사랑 받아 마땅하다. “참대창에 바다보다 푸른 고기가 께우며 섬돌에 곱조개가 붙는 집의 복도에서는 배창에 고기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이즉하니 물기에 누굿이 젖은 왕구새자리에서 저녁상을 받은 가슴 앓는 사람은 참치회를 먹지 못하고 눈물겨웠다”(‘시기의 바다’)는 시에서 “배창에 고기 떨어지는 소리”야말로 낚시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소리가 아닌가? “참치회를 먹지 못하고 눈물겨웠다”의 대목에선 선상낚시를 나섰다가 빈손으로 돌아온 ‘꽝조사’의 안타까운 심정이 엿보인다.물론 1930년대 백석이 왕돌초나 관탈도에 가 참다랑어 낚시를 즐겼을 리는 만무하다. 1912년 평북 정주에서 태어난 백석은 청년이 될 때까지 바다를 보지 못했거나 평북 서남부와 인접한 황해를 본 게 전부였을 것이다. 1929년 일본 유학길에 올라서야 처음 대양을 보게 된 백석이 일본 혼슈 지방 어촌의 풍경을 그린 것이 위 시다. 가난한 유학생으로 하숙집에 머무는 시인에게 ‘참치회’란 그림의 떡이었을 것이다. 못 먹어 눈물겨울 정도로 백석은 생선회를 좋아한 모양이다.1935년 백석은 박경련이라는 여인을 짝사랑하게 되고, 이듬해 그녀의 고향인 통영에 세 번이나 찾아가는데, 그때 본 바닷가 마을의 풍경을 그린 작품이 ‘통영’ 연작이다. “전복에 해삼에 도미 가재미의 생선이 좋고/ 파래에 아개미에 호루기의 젓갈이 좋고”, “집집이 아이만한 피도 안 간 대구를 말리는 곳”이라고 노래했는데, 전복, 해삼, 파래, 아개미(명태 아가미젓)는 통영을 대표하는 해산물이다. 도미(참돔, 감성돔, 벵에돔, 돌돔), 가재미(도다리), 호루기(호래기), 대구는 그때나 지금이나 바다낚시의 훌륭한 대상어가 아니었을까?생선은 확실히 특별한 식재료다. 손질된 것을 시장에서 사다가 조리하는 경우엔 다른 음식과 별반 다를 바 없지만, 직접 낚은 물고기의 눈을 바라보며 그 숨을 거두어야 하는 ‘낚시 요리’는 각별하고 애틋한 행위다. 한 그릇 음식이 사람 앞에 오기까지 얼마나 치열하고 숭고한 생멸의 과정을 거쳐야 하는지 일깨워주기 때문이다. 이 여름, 나는 외판 영업사원처럼 분주해질 예정이다. 백조기 같은 반찬용 물고기들부터 귀한 별미인 한치, 문어를 경유해 고급어종인 붉바리까지 잡으려면 매주 서해, 동해, 남해, 제주도로 부지런히 다녀야 한다.먹는 이야기는 잠시 접어둬야겠다. 최근 환경부는 3만5천평 이상 전국 495개소의 주요 저수지를 ‘중점관리저수지’로 지정하여 낚시금지구역으로 봉쇄하겠다고 했고, 전국 지자체들은 서로 경쟁하듯 하천에서의 낚시 행위를 금지시키고 있다. 정부로부터 수질 관리 예산을 지원 받기 위해 일종의 ‘전시 행정’을 펴는 것이다. 낚시가 수질 오염에 미치는 영향은 매우 미미하며, 생활하수가 주원인이라는 게 연구결과로 이미 입증됐는데도 낚시만을 탄압하고 있다. 이에 반발한 낚시인들이 낚시금지법 개정을 위한 국회 청원을 제기했고, 10만 명의 동의를 얻어 현재 국토교통위원회 심사에 회부된 상태다. 외국에서 낚시는 관광자원이자 중요한 여가다. 여행에서 본 유럽과 북미, 일본의 낚시 행정, 낚시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 부러웠다. 우리도 외국 못지않은 천혜의 황금어장을 갖고 있으며, 낚시인들의 의식도 많이 발전해 환경보호, 어자원 보호에 앞장서는데 낚시를 향한 따가운 시선과 근거 없는 풍문들만 여전하다. 낚시인들도 우리 이웃이고 친구다. 그런데 왜 국가는 ‘금지’라는 족쇄를 걸어 예비 범법자 취급을 하는가? 낚시금지법이 바다로 확대되면, 바다낚시 메카인 경북은 지역경제에 큰 타격을 입을 뿐더러 도민들의 생활 만족도도 저하될 것이다. 낚시금지법은 악법이다. 선사시대부터 인류는 낚시를 해왔고, 하천 오염은 물고기를 얻기 위한 낚시 때문이 아니라 고기를 얻기 위한 축산업과 도시 생활에 필요한 물건을 생산하기 위한 공업에서 비롯된 것이다. 어자원 남획의 주범은 불법어업이고, 오히려 낚시는 자연이 허락하는 만큼만 얻어오는 ‘소확행’을 추구한다. 나는 내가 낚시인임이 자랑스럽다. 백석과 동시대에 활동한 윤동주의 시를 패러디하자면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여름으로 가득 차 있”고, “별 하나에 농어와 별 하나에 광어와 별 하나에 한치와 별 하나에 무늬오징어와 별 하나에 백조기와 별 하나에 붉바리… 나는 별 하나에 맛있는 이름 하나씩 불러본”다. “배창에 고기 떨어지는 소리”가 끊이지 않을 이 계절, 낚시인을 친구로 두었다면 생선을 못 먹고 눈물겨울 일은 없을 것이다.

2021-05-31

서른 즈음에게

스물 한두 살 때 쯤, 그러니까 일주일에 술을 여덟 번(하루에 두 번 먹던 날 도 있었으니까)쯤 먹던 개망나니 시절, 학교 과방 소파에 누워 노닥거리고 있는데 후배 하나가 이런 말을 했다. 누구나 그런 시절이 있다. 자신은 매우 특별한 사람이라 무언가 대단한 일을 이루고 난 후, 이전 세상을 살았던 위대한 영혼들처럼 스스로도 가장 빛나는 젊은 시절에 세상에서 사라지고 싶다는 꿈을 꾸는 시절 말이다.“형, 형은 정말 서른까지만 살 것처럼 사는 것 같아요.”“그래? 그럼 그러지 뭐.”이십대 초반이었던 그때의 나는 그랬다. 서른이 아주 많은 나이처럼 생각됐고, 서른 살 이후이 삶은 생각해 본 적도 없었고 그럴 필요도 없다고 생각했다. 서른은 저만치 멀고 시간은 그토록 느리게 가던 시절이었으니까. 그런데 그때는 시간이 점점 빠르게 흘러갈 거라는 건 몰랐다. 지독히 안 가던 하루가 조금씩 조금씩 빠르게 흐르더니 나는 별로 한 것도 없이 서른이 넘어 있었다. 세월은 시위를 떠난 화살과 다를 바 없었다. 그걸 어린 시절엔 몰랐다.커트 코베인은 스물일곱에 죽었다. 짐 모리슨, 지미 핸드릭스, 재니스 조플린, 에이미 와인하우스, 윤동주, 이상. 그들보다 좀 더 산 나는 별다른 업적 없이 팔리지도 않는 것들 몇 개 만들고 허송세월 하고 있었다. 공부는 했으나 당장 아는 게 없고, 사랑은 했으나 당장 아무도 없는 나의 서른. 그래서 그 해에 나온 내 앨범 제목이 ‘설은’이었다. 낯설고, 설익고, 서러운 나이인 것 같아서.시간은 조금 더 흘러 나는 서른다섯이 되었다. 설문조사 같은 걸 할 때 이십대 칸 옆의 삼십대 칸에 체크를 하는 게 이제는 전혀 낯설지 않다. 어느 날 서른을 앞둔 가까운 동생 하나와 소주를 한 잔했다. 돌아보니 후배의 질문에 답하던 시절로부터 10년이 훌쩍 흘러 있었다.“형, 내가 이제 곧 삼십대야.”“그러네. 좀 조급해지나?”“그런 건 아닌데. 어때? 삼십대는?”나는 갓 서른이 되었던 때었다면 하지 못했을 대답을 했다.“재밌어. 난 이십대보다 더 좋아.”진심이었다. 서러운 마음으로 시작된 나의 삼십대는 의외로 이십대보다 재미있다. 그때처럼 온갖 것들이 신기하지는 않지만, 그대신 안목과 취향이라는 게 희미하게나마 생겼다. 재밌는 것, 좋은 것, 맛있는 것을 알고 찾아서 즐길 수 있게 되었다는 거다. 또 생각해보면 이십대 내내 나는 얼마나 궁핍했는가. 교통카드를 충전하기 위해 주머니에 넣어둔 만 원 짜리 한 장을 술값 계산하는 친구에게 쥐어주고 지하철 개찰구를 몰래 넘어가다 붙잡혀 과태료 통지서를 끊어야 했던 그 감각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처럼 나와 우리들의 이십대는 곤궁하고 서글펐다.지금이라고 풍족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그런 지지리 궁상을 떨어야 하는 상황은 아니지 않은가. 연애는 또 어땠나.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다는 김광석 노랫말대로라면 나는 이십대 내내 사랑 한 번 못 해본 가련한 인간일 것이다. 안 아픈 사랑이 없었고 그 앞에 안 서툰 순간이 없었다. 삼십대의 그것은 그때처럼 좌충우돌하는 맛은 없지만 그보다는 평화롭고 때때로 못지않게 뜨겁다. 나이를 먹는다는 게 마냥 슬픈 일은 아닌 모양이다.강백수 세상을 깊이 있게 바라보는 싱어송라이터이자 시인. 원고지와 오선지를 넘나들며 우리 시대를 탐구 중이다.서른이 서러웠던 것은 단지 서른쯤에는 무언가 이루어야 한다는 강박 때문이었다. 그러나 서른이 스스로 무언가 이룰 수 있기나 한 나이인가. 십대까지의 내 삶을 온전히 나의 인생이었다고 하면 좀 억울할 것 같다.그저 시스템이 원하는 대로 착실하게 십대를 마친 뒤에 맞이한 이십대는 비로소 나의 인생이 시작되는 지점일 뿐이다. 그때 이미 무언가를 이룬 비범한 사람들도 있기는 했지만 어디까지나 그것은 그들이 별난 것이지, 누구에게나 시작은 넘어지고 깨지는 경험의 순간일 뿐이다.서른을 눈앞에 둔 그 동생 같은 친구들에게도, 그리고 이십대보다 좋은 삼십대를 보내고 있지만 이따금 고개를 드는 내 조급함에도 이런 말을 해주고 싶다. 서두를 것 없다고. 지금부터라고.

2021-05-24

소설 쓰기의 즐거움

왜 소설을 쓰는가? 그 질문에 굳이 답을 내려야 한다는 생각은 해본 적 없다. 글을 쓴다는 것은 너무 당연하게 내 삶을 구성하고 있는 요소 중 하나였으니까.가끔 그런 이야기를 듣는다. “그래도 너는 좋아하는 일을 하잖아.” 정말 그럴까? 나는 소설 쓰는 것을 정말 좋아하는 것일까? 깜박이는 커서를 앞에 두고 쓴 커피를 연거푸 들이켜며 지끈거리는 머리를 감싸 쥔다. 그러면서 생각한다. ‘대체 나는 왜 이 작업을 지속하고 있는가.’문학을 전공하는 고등학생들과 함께 공부하다 보면 어떤 모순을 발견하게 된다. 단순히 문학작품이 좋아서 글쓰기를 시작했던 아이들은 대학이라는 문턱을 향해 나아가게 된다. 나는 그들을 무사히 졸업시키고 대학에 안착시켜야 한다는 사명을 안고 월급을 받고 있기 때문에 시스템에 편입되기 위한 글쓰기를 가르친다. 마음 한구석에서 양심이 소리친다. 이게 옳은 것인가? 제멋대로 튀어 나가는 아이들의 문장을 천편일률적으로 만드는 것. 다양한 생각을 기성의 틀에 욱여넣는 것이 정말 제대로 된 교육일까? 학생들과 마주할 때마다 가슴이 따끔하다.나 역시 대학에서 문학을 배웠다. 좋은 문학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골몰했고 위대한 작품에 가까워지려고 노력했다.그렇다면 좋은 작품이란 무엇인가? 그것을 정하는 사람은 누구인가? 독자는 진정 자의적으로 문학 작품을 선택하고 있는가?서점에 가면 베스트셀러 코너가 보인다. 자연스럽게 가장 먼저 그쪽으로 발길을 향하게 된다. 책의 겉표지는 화려한 작가의 약력으로 장식되어 있다. 이 책이 얼마나 많이 팔렸는지, 이 작가가 어떤 상을 받았는지, 모두가 알 만한 유명인이 이 작품을 얼마나 감명 깊게 읽었는지. 그것은 책을 비호하고 있는 굉장한 껍데기이며 선택을 종용하는 목소리다. 신춘문예 역시 그런 시스템이다. 심사에서 운 좋게 선택받은 사람이 작가라는 칭호를 부여받게 된다. 수많은 문학상은 문단에 안전하게 편입될 수 있는 자격을 부여하는 것과 같다. 하루에도 수십 권의 책이 세상에 쏟아지고 가지각색의 서사가 범람하고 있다. 자신의 이름을 지우고 오직 글 자체만으로 살아남을 수 있는 작가는 과연 몇이나 될까?등단을 하고 몇 년간은 그 사실이 내 발목을 붙잡았다. 나 역시 그러한 시스템의 수혜자였으며 내게 자격이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었다. 문예지에 글을 발표하고 나면 악몽을 꿨고 작은 지적에도 몸을 움츠렸다. 나는 더욱 자신을 채찍질했다. 더 깊이 있는 사유를 해야 해. 적확하면서 아름다운 문장을 써야 해. 독특한 소재를 찾아서 다층의 서사를 구축해야 해. 그래야만 인정받는 글을 쓰는 작가가 될 수 있어.그때의 나는 단조로운 삶과 미진한 재능을 탓했다. 그러면서도 매일같이 책상 앞에 앉았다. 소설 쓰기의 괴로움은 소설 쓰기만으로 잊을 수 있었다. 어째서일까. 나는 예술이라는 가치보다는 내 삶이 우선인 사람이었다. 그런데도 자신을 고통으로 몰아넣다니.그러다 한 가지, 너무나 단순하고 자명한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이 고통의 과정을 즐거워하고 있었다. 여기서 말하는 즐거움이란 단순한 재미의 개념이 아니다. 그것은 무시무시한 괴물이 들어있을지도 모를 컴컴한 미로 속으로 기꺼이 발을 내딛는 욕망이나 충동에 가깝다.문은강 ‘춤추는 고복희와 원더랜드’로 주목받은 소설가. 2017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작가로 등단했다.글을 쓴다는 것은 나 자신과 세계를 이해하는 일이다. 내 안에 솟아오르는 호기심을 이리저리 살펴본 뒤에 나름의 답을 내어놓는 것이다. 그러한 사고 과정을 기록하는 지난한 행위가 쓰기다. 글을 쓰는 방법은 오직 하나뿐이다. 자리에 앉아 집중하는 것. 이후에 남는 건 일련의 발자국이다. 작업물은 누구의 것도 아닌 나만의 목소리로 박제된다. 시간은 흐르다가 끝나기 마련이지만 소설의 서사는 차원의 벽을 넘어선다. 그러니까 소설을 쓴다는 건 과거의 망령에 조언을 듣고 미래의 인류와 소통하는 일, 상처를 입고 치유 받는 일이 동시적으로 일어나는 일이다. 나는 이러한 작업에 매료되었고 많은 것을 잃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흔쾌히 선택했다.이것은 비단 소설 쓰기에만 국한된 이야기는 아니다. 우리는 각자가 원하는 삶의 지점을 향해 간다. 가끔은 이것이 옳은 방향일까에 대해 의심하기도 한다. 내게 재능이 있을까. 온 힘을 다해 당도한 끝이 허무에 불과하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우리가 허공으로 발을 내딛는 자신을 자랑스럽게 여겼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러한 행위에 ‘즐거움’이라고 이름 붙이자. 그 경쾌한 단어를 원동력 삼아서 어리석고 부당한 세계를 향해 기꺼이 나아가기를 바란다.

2021-05-24

육군 아미타이거

새 군가의 중요성을 말한 남영신 육참총장. /연합뉴스“높은 산 깊은 골 적막한 산하 눈 내린 전선을 우리는 간다. 젊은 넋 숨져간 그때 그 자리 상처 입은 노송은 말을 잊었네. 전우여 들리는가 그 성난 목소리. 전우여 보이는가 한 맺힌 눈동자”군가 ‘전선을 간다’다. 이 곡이 ‘최후의 5분’과 함께 군인들에게 가장 사랑 받는 군가인 이유는 간단하다. 노래가 좋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뮤지컬의 개척자이자 피아니스트로도 활동한 작곡가 최창권의 곡에 영화기획자 우용삼이 가사를 붙였다. 웅장한 오케스트라로 시작해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도입부를 지나 야수의 함성으로 포효하는 클라이맥스까지, 기승전결 구조의 선율에 서정적이고 또 격정적인 가사가 어우러져 명곡이 됐다. 부르다보면 가슴이 벅차 눈물이 맺히기도 한다.나는 아직도 가끔 군가를 부른다. 특히 중요한 일을 앞뒀을 때, 이를테면 소개팅 가는 차 안에서 “아름다운 이 강산을 지키는 우리. 사나이 기백으로 오늘을 산다.…” ‘멸공의 횃불’이라든가 “높은 산 깊은 물을 박차고 나가는 사나이 진군에는 밤낮이 없다…” ‘진군가’를 목 터져라 부르면 테스토스테론이 분비되면서 남성성이 극대화된다. 그러면 자신감이 생겨 말도 잘하고, 상대에게 당당한 인상을 준다. 군대를 다녀온 사람이라면 삶에서 어려움을 겪을 때 자신도 모르게 군가를 흥얼거리며 마음을 다잡아본 적이 있을 것이다.군대에서 군가 부르는 게 유쾌할 리는 없지만, 그마저도 멜로디가 후지거나 노랫말이 저질이면 정말 부르기 싫다. 군가는 병사들의 사기와 연대감을 고양하고, 애국심을 고취시키기 위해 부르는 노래다. 때문에 역동적인 4박자 행진곡풍이 대부분이다. ‘푸른 소나무’, ‘조국이 있다’, ‘육군가’ 등이 명곡으로 꼽힌다. 지난 2011년 연평도 포격도발 당시 전사한 서정우 하사와 문광욱 일병의 영결식에서 해병대 장병들이 벌겋게 물든 눈을 섬광처럼 번뜩이며 ‘나가자 해병대’를 합창하는 장면은 피를 끓게 했다.최근 육군이 신곡을 발표했다. 제목은 ‘육군, We 육군’이다. 이 곡은 현재 복무중인 장병들에게 부끄러운 ‘흑역사’를 생성해줄 가능성이 높다. 뜬금없이 영어를 넣은 제목부터 심상치 않더니 노랫말은 더 해괴하다. “육군 아미타이거 육군 육군 육군 Go Warrior Go Victory 육군 육군 육군(…) 워리어 플랫폼 최강의 전사 AI 드론봇 전우와 함께…” 이게 대한민국 육군 군가인지 ‘파워레인저’나 ‘후레쉬맨’ 따위 아동용 액션 영화 주제가인지 구분이 되지 않을 정도다.가사도 그렇지만 행진곡과는 거리가 먼, 쉼표와 셋잇단음표가 자주 등장하는 지루하고 난해한 멜로디도 괴이하다. 태평소와 꽹과리를 넣은 국악풍 멜로디에 Warrior, Victory 같은 영어 가사가 얹어져 부조화를 이뤘다. 따라 부르기도 어렵고, 따라 부르고 싶지도 않다. 군가는 부르면 기운이 나야 하거늘 ‘육군, We 육군’은 한 소절 부르자마자 자괴감이 밀려온다. 네티즌들은 “있던 애국심도 사라진다”, “전시에 부르면 총 맞아 죽기 전에 웃겨 죽겠다”라며 혹평 일색이다.지난달 22일 육군 최고 지휘부 회의에서 남영신 참모총장은 “새 군가를 기도문처럼 암기하고, 부대마다 가창 점검을 해 잘하는 부대에 포상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장병들은 이 노래를 입이 닳도록 불러야만 한다. 배식은 부실하고, 코로나19 대응도 엉성한 마당에 창피한 노래까지 불러야 하는 장병들이 불쌍하다. 사기 떨어지는 소리가 철책을 넘어갈까 걱정이다.이병철 문학평론가이자 시인. 낚시와 야구 등 활동적인 스포츠도 좋아하며,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3사관학교에서 장교 임관훈련을 받을 때, 음악을 전공한 동기 김경록 군이 작곡하고 내가 작사한 ‘9중대가’는 힘찬 4박자 행진곡이었다. “우리들 가슴속 불꽃은 팔월의 태양보다 뜨겁고 우리들 외치는 함성은 폭풍 속 천둥보다 우렁차. 폼생폼사 최강 9중대! 날개를 펼쳐라. 너와 난 혼자가 아니야. 우린 영원히 함께야. 폼생폼사 최강 9중대! 더 크게 외쳐라. 우린 절대 포기하지 않아. 나가자 최강 9중대. 강하자 최강 9중대!” 일개 사관후보생 둘이 만든 이 군가를 모든 중대원이 즐겨 불렀다. 부르면 전우애가 솟았다. 국방부는 저작권료를 내고 정식 군가로 채택하는 게 어떨까. ‘9중대’를 ‘해병대’라든가 ‘수색대’로 바꾸면 되지 않을까? “육군 아미타이거”보다는 훨씬 낫고, 박목월이 작사한 ‘전우’에 이어 또 한 곡 시인의 명군가가 될지 모른다.

2021-05-17

보고 듣고 만지는 요즘 장난감

요즘 초등학생들 사이에서 ‘팝잇 푸시팝’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팝잇 푸시팝은 실리콘 틀 위의 튀어나온 반구를 손가락으로 눌러 반복적인 동작을 하며 즐기는 손 장난감이다. 외형 또한 실리콘 얼음 틀 같은 단순한 모양인 데다 누르는 것 말고는 별다른 놀이 기능도 없음에도 힘을 주어 구멍을 누르는 촉감과 소리는 특유의 쾌감과 묘한 중독성을 이끌어 낸다. 멍하니 포장용 에어캡을 터뜨린다거나,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손바닥 안에서 호두 알을 굴리던 모습을 떠올리면 이해하기 쉽다.팝잇 푸시팝은 색깔이나 모양, 크기도 다양하다. 휴대하여 플레이 할 수 있는 미니 버전부터, 가방에 달 수 있는 열쇠고리 버전, 기존 사이즈보다 2~3배의 몸집을 자랑하는 빅 버전도 있다. 구매처도 학교 근처 완구점이나 인터넷 문구 쇼핑몰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데다 가격도 천 원에서 만원 안쪽으로 저렴하다.현재 팝잇 푸시팝은 유명 인터넷 문구 쇼핑몰에서 전체 장난감 베스트 순위 1위를 차지할 정도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반에서 가지고 있지 않은 아이를 찾는 게 더 빠를 정도라니 말 다 했다. 유튜브에선 팝잇 푸시팝으로 재밌게 노는 법을 알려주는 영상의 조회 수가 272만 회가 넘을 정도다. 여기에 단순 구매 후기나 플레이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풍선이나 종이박스, 물감을 이용해서 직접 만들어 자신만의 레시피를 공유하기도 한다. 팝잇 푸시팝을 직접 DIY 해서 만드는 영상은 조회 수 250만 회를 자랑한다.이런 종류의 장난감을 ‘피젯 토이’라고 부르는데, 사실 피젯 토이는 성인들 사이에서 꾸준한 인기를 끌고 있다. 피젯 토이는 fidget(꼼지락거리다)+toy(장난감)의 합성어로 손장난하는 장난감을 뜻한다. 단순 행동 반복으로 인해 안정감을 얻고 스트레스를 푸는 용도인데, 그도 그럴 것이 피젯 토이는 처음 1990년대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ADHD)를 위해 만들어졌다. 한 자리에 앉아 집중하지 못하는 이들을 위해 개발한 것으로 ADHD 환자들의 집중력을 높이는 데 효과적이라는 연구 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손가락으로 튕기면 회전하는 피젯 스피너, 조이스틱을 돌리거나 반지처럼 손가락에 끼워 돌리는 피젯 링, 말랑한 재질의 스트레스 볼 등 종류도 무궁무진하다. 대표적으로 많은 이들이 선호하는 피젯 큐브는 주사위 모양으로, 볼펜의 딸깍 소리가 나는 버튼이나 돌릴 수 있는 롤러, 조이스틱, 회전판, 스위치 등이 각 면에 달려 있다. 이걸 무의식적으로 반복 행동하며 일정 클릭음에 안정감을 느끼고, 정교하고 규칙적인 움직임을 보며 심리적인 불안감을 해소한다는 것이다. 피젯펜은 공부하거나 회의를 할 때 자신도 모르게 펜을 돌리거나 손을 끊임없이 만지고 움직이는 등의 습관을 가진 사람들을 위해 만들어졌다. 펜 전체를 구부리거나 뚜껑에 달린 동그란 볼을 떼는 등 손을 계속해서 움직이는 동안 창의적인 생각을 고안해낼 수 있다고 한다.윤여진 2018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 부문에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현재보다 미래가 기대되는 젊은 작가.심지어 antsy labs에서 나오는 피젯 큐브는 국내에서 구하기 어렵다. 피젯 토이가 전 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끌면서 많은 페이크 제품이 만들어졌는데, 국내 또한 페이크 제품을 파는 경우가 대다수이기 때문이다. 정품을 구매하기 위해서는 해외 배송이나 중고 거래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데 이마저도 빠르게 품절 되어 쉽지 않다.주위를 둘러보면 생각보다 집중하기까지 힘겨운 사람, 손톱을 자주 깨물거나 입술을 뜯는 사람, 정적을 견디기 힘들어하는 이들이 많다. 그들에게 피젯 토이는 단순한 장난감만은 아닐 것이다. 직접적인 촉감과 소리로 인해 스트레스와 강박을 풀 수 있는 창구가 되어주며, 스마트폰에서는 느낄 수 없는 소소하고도 새로운 재미가 되어준다. 피젯 토이는 처음 초중고 학생을 위주로 유행했지만 나아가 취업준비생, 수험생, 회사원들의 인기 장난감으로 자리 잡았다. 그들의 자리에서 느끼는 학업 스트레스나, 극심한 경쟁으로 인한 괴로움 등 누군가의 삶에 부족한 부분을 채워줄 수도 있다는 것이다.

2021-05-17

부재를 견디는 방법

엄청나게 살갑다고 볼 수는 없지만, 나는 하나뿐인 여동생과 꽤 친한 편이다. 사실 우리가 친한 편인 줄 몰랐는데, 친구들을 보니 의외로 동생과 별 용무 없이 일상적인 이야기를 주고받는 사례가 드물다는 걸 발견했다. 우리는 그래도 어디 가면 사진도 찍어 보내고, 서로 누굴 사귀면 그런 이야기도 공유한다. 동생은 디자이너이고 유행에 민감한 편이라 내가 앨범을 만들거나 책을 쓸 때 모니터링을 부탁하기도 하고, 디자인 작업을 맡기기도 한다. 이만하면 다른 집에 비해 돈독하게 지내는 편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동생뿐만 아니라 아버지와도 나는 대화가 많은 편이다. 친구들은 아버지와 대화 나누는 일이 어렵다고 하는데, 나는 아버지와 나름 다양한 주제로 대화를 한다. 내 일에 관한 이야기, 주변 친구이나 친척들 이야기, 야구 이야기, 정치 이야기, 그리고 동생 이야기. 가급적 일주일에 세 번 정도는 찾아가 밥도 먹고 이야기도 나누려 한다. 아버지도 내가 갈 때마다 밥도 차려주시고, 핸드드립 커피까지 내려주시고, 돌아갈 때는 주차장에서 차 빼는 것까지 봐 주시곤 한다. 아버지는 내게도 충분히 다정하시지만 동생에게는 몇 배나 더 다정하다. 나와 대화하시는 목소리 톤이 도~ 정도라면 동생에게는 미~ 정도의 톤으로 이야기를 하신다.이런 우리 집 분위기가 부럽다는 사람들이 많다. 어떻게 그렇게 돈독할 수 있냐고, 원래부터 집안 분위기가 그랬냐고 묻곤 한다. 나는 아버지가 원체 다정하시고 나도 동생도 그런 영향을 받아 그렇다고 대답을 하곤 하는데, 사실 우리 셋이 다른 집보다 좀 더 끈끈하게 뭉치게 된 이유는 따로 있다. 그것은 바로 어머니의 부재. 우리는 모두 서로에 대한 어느정도의 연민을 가지고 있다.‘집안의 기둥은 아버지’라는 것이 전통적인 관념이지만 우리집은 꼭 그렇다고만은 볼 수 없었다. 경제적인 것들이야 언제나 아버지의 몫이었지만, 가족이라는 공동체에서 중심적인 역할은 항상 어머니가 맡았다. 어머니가 계시는 동안 우리는 서로를 별로 챙겨 본 적이 없다. 아버지도 어머니가 챙기고, 나도 어머니가 챙기고, 동생도 어머니가 챙겼다. 아버지와 나와 동생 사이에 대화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중요한 이야기들은 대부분 어머니의 입을 거쳤다. 나와 동생의 생활에 문제가 생기면 우리는 그것에 대해 어머니께 이야기했고, 어머니는 그것을 아버지께 상의하는 식이었다.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바라는 부분이 있다면 그 역시 어머니를 통해서 우리에게 전달되었다. 우리를 교육하는 역할, 그리고 아버지를 독려하고 살피는 역할은 모두 어머니의 몫이었다. 어머니는 우리에게 집 자체였다. 아버지와 나와 동생은 그 안에서 서로 다정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그런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셨다는 것은 집안을 지탱하는 중심축이 사라져버렸다는 걸 의미했다. 그런 존재가 사라진다는 것은 가정이 붕괴할지도 모를 위기를 의미한다. 우리 집도 마찬가지였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일은 그야말로 가정 자체가 사라져버리고 마는 것과 같은 충격이었다.강백수 세상을 깊이 있게 바라보는 싱어송라이터이자 시인. 원고지와 오선지를 넘나들며 우리 시대를 탐구 중이다.어쨌거나 우리는 어머니 없이 평생을 버텨야 한다. 우리 셋 다 무너지지 않기 위해서는 서로가 조금씩 어머니의 역할을 짊어지는 수밖에 없다. 어머니가 없는 구멍을 메우기 위해서, 조금씩 더 서로를 염려하고 챙기는 방법을 익혀야 했다. 다행스럽게도 아버지와 나, 동생이 모두 이러한 책임감을 느끼고 있었던 것 같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이후 아버지는 더욱 다정해졌고, 나와 동생은 철이 조금 빨리 들었다. 슬픈 마음은 똑같을 것이 분명했기에 우리는 서로가 안쓰러웠고, 그런 서로를 위해 각자가 나름의 다짐을 했던 것이다.어머니가 떠나신 지 15년이 넘었다. 그동안 우리는 각자에게 주어진 새로운 역할들에 익숙해졌다. 우리 집에는 다른 집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재미난 먹이사슬 관계가 있다.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나는 가끔 아버지가 내게 진지한 말씀을 하시면 거역하기 어렵기만 한데, 아버지는 동생에겐 꼼짝도 못하신다. 아버지께는 버릇없이 굴 때가 많은 동생은 어려운 결정을 하기 전에 항상 내게 상의를 해 오고, 내 의견을 결코 허투루 듣지 못한다. 나와 아버지와 동생이 가위 바위 보처럼 물고 물리는, 이 기묘한 먹이사슬은 달리 말하면 서로 의지하기 위해 터득한 하나의 방식이다. 이런 식으로 우리는 서로의 가슴속에 있는 어머니의 빈자리를 이제는 부족하게나마 메울 줄 알게 된 것이다.

2021-05-10

어느 봄에 만난 사람들

원고에 치여 정신없이 바쁘던, 책상 앞에 앉아 이가 시릴 정도로 차가운 아이스 아메리카노만 벌컥벌컥 들이키며 ‘이건 아니야!’ 하고 애꿎은 머리카락만 쥐어뜯던 어느 봄날, 나는 밀린 일을 제쳐두고 무작정 밖으로 나왔다. 목적지 없이 터벅터벅 걸어가는 중에도 머릿속에는 해야 할 일들이 자꾸만 떠올랐다. 며칠째 제자리만 맴도는 문장과 뜻대로 되지 않는 결과물, 미래에 대한 막연한 걱정이 암담한 폭풍처럼 몰려왔다.나는 누가 봐도 우울한 사람의 얼굴을 하고 집 근처의 공원에 당도했다. 벤치에 앉아 한숨만 푹푹 내쉬고 있는데 저 멀리서 조랑말을 끌고 오는 사람이 보였다. 조랑말이라니. 두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평일 대낮에 조랑말을 산책시키는 사람을 만날 것이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남자는 익숙한 손놀림으로 말을 묶고 있던 로프를 나무 밑동에 매고 빗을 꺼 내들어 털을 빗겨주기 시작했다. 조랑말은 다정한 손길을 받으며 느리고 우아하게 발밑의 풀을 뜯어 먹었다. 나는 그 모습을 눈을 떼지 못하고 지켜보았다. 봄날의 볕을 온몸으로 느끼던 그들은 그렇게 그들만의 시간을 즐기다가 유유히 왔던 길을 돌아갔다. 나는 점점이 사라지는 남자와 조랑말의 뒷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사진이라도 찍어둘걸. 이 장면을 누가 믿겠어.그렇게 다시 벤치에 앉아 있는데 이번에는 외발자전거를 타는 아저씨가 내 앞을 지나갔다. 머리 위로 손뼉을 치면서 요란스럽게 외발자전거를 타는 그를 보고 킥킥대는 사람들도 있었다. 엉덩이를 죽 빼고 위태롭게 앞으로 나아가는 그 모습이 누군가에게는 우스울 수도 있겠지만 내게는 경이로워 보였다. 외발자전거를 타는 일은 그에게 꼭 해내야만 하는 중요한 일처럼 보였고 동시에 정말이지 즐거워 보였기 때문이다.그날 만났던 사람들은 지난한 현실에서 빗겨 난 느낌을 주고 있었다. 시시포스의 바위 굴리기같이 끊임없이 되풀이되는 삶에서 벗어나 다른 온도의 시간을 사는 것처럼 보였다. 회사에서 업무를 처리하고 통장의 돈을 차곡차곡 불리는 시간에 뗏목으로 망망대해를 건너고 자전거로 알프스산맥을 넘는 사람들처럼. 돈을 받거나 사회에 강요되어서 하는 일이 아니라 순수하게 자신의 목표와 즐거움을 위해 나아가고 있는 이들이 떠올랐다.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소설 ‘그리스인 조르바’에서 조르바는 실존적이고 원시적인 삶을 산다. 그는 종교나 학문, 국가 등 어떤 관습에도 얽매이지 않는다. 가슴에 차오르는 감정을 그대로 느끼고 드러낸다. 물레를 돌리는데 거슬린다는 이유로 자신의 손가락을 잘라내고 감정이 차오르면 자갈밭 위에서 춤을 춘다. 그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기 때문에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동시에 나는 우리 청년 세대를 본다. 냉소와 허무를 모자처럼 쓰고 더 이상 미래를 꿈꾸지 않는 젊은이들. 그것은 멀리 있는 일이 아니라 내 주변에 실재하는 친구들의 삶이다. 그들은 하루하루가 눈을 가린 채 미로 속을 걷는 것 같다고 말한다. 언제든지 대체될 수 있는 공장의 부품처럼 살아가는 것이 옳은가 자문하면서 칠흑같이 어두운 방에서 앞을 더듬거리는 기분으로 살아간다. 기계처럼 돈을 버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 살아생전 내 집 마련은 할 수 있을까.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하나 아등바등하면서.문은강 ‘춤추는 고복희와 원더랜드’로 주목받은 소설가. 2017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작가로 등단했다.나 역시 마찬가지다. 지급이 늦어지는 원고료에 조바심을 내고 사소한 일에도 여유를 갖지 못한다. 돈도 벌고 인정도 받기를 원하지만 헛물만 켜는 가난한 작가로 생을 마감하는 것은 아닌가. 이 삶을 언제까지 지속할 수 있을까 고뇌한다. 인생에 대한 자유를 구속하고 내면의 소리에 따라 행동하는 것을 주저하곤 한다. 낭만과 자유라는 관념을 우습게 여기고 현실적 문제에 주의를 기울인다.그럴 때면 어느 봄날에 만났던 조랑말과 위태롭게 외발자전거를 타던 남자를, 조르바의 목소리를 떠올려본다. 조르바는 이렇게 말했다.“인생이란 가파른 오르막과 내리막이 있는 법이지요. 분별 있는 사람이라면 브레이크를 써요. 그러나 나는 브레이크를 버린 지 오랩니다. 나는 꽈당 부딪치는 걸 두려워하지 않거든요.”

2021-05-10

은성수 금융위원장님께

은성수 금융위원장이 생각에 빠져 있다. /연합뉴스안녕하세요. 저는 시와 문학평론을 쓰면서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 30대 후반의 필부입니다. 최근 논란이 된 발언이 아니었다면 위원장님을 알지도 못했을 무지렁이가 이렇게 지면을 빌려 편지글을 띄웁니다. 삿되어 보일지라도 눈과 마음을 기울여 읽어주시길 당부 드립니다. 이 글은 저 한 사람이 아닌 수많은 2030 청년들의 분노와 좌절감이 쓰게 한 것이니 말입니다. 먼저 분명히 말씀드릴 것은, 저는 가상화폐 투자자가 아닙니다.위원장님께서는 지난달 22일 국회 정무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가상화폐 투자에 대해 “많은 사람이 투자한다고 해서 관심을 가지고 보호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세금은 걷겠다”고 하셨지요. 정부가 개입할 시장이 아니라면서 세금은 걷겠다는 황당한 발상에 가상화폐 투자자들은 아연실색했습니다.투자자들은 정부에 보호를 요청한 적 없습니다. 손실에 대해서 책임지라는 것이 아닙니다. 거래소의 시세조작이라든가 입출금 시스템의 불안정성이라든가 하는 위험 요소들을 방지할 최소한의 안전장치를 마련해달라는 것입니다. 투명하고 안정성 있는 거래가 되도록 가상화폐 시장을 제도화시켜 불법 행위들을 감시해달라는 것입니다. 그렇게만 된다면 투자자들은 얼마든지 세금을 낼 수 있습니다. 가상화폐를 제도화할 생각이 없으면 세금을 걷지도 말아야 합니다. 투자자들이 정부에 바라는 것은 그저 아무것도 하지 말아달라는 것, 가상화폐에 대한 충분한 이해 없이 함부로 내뱉는 말로 시장을 교란시키지 말라는 것입니다.4년 전 당시 박상기 법무부장관이 ‘거래소 폐쇄’ 발언을 한 후 가상화폐 시장은 반토막 났습니다. 수많은 투자자들의 자금이 휴지조각이 됐습니다. 네티즌들은 이 사태를 ‘박상기의 난’이라 명명했는데, 4년 후 ‘은성수의 난’이 더 큰 패닉을 일으켰다는 사실을 위원장님께서는 아시는지요? “9월까지 등록이 안 되면 200여개의 가상화폐거래소가 다 폐쇄될 수 있다”는 무책임한 발언을 하신 다음날 가상화폐 시장에는 대폭락이 왔습니다. 위원장님 말씀과 결부시키고 싶진 않지만, 가상화폐가 대폭락한 지난 24일, 강원도에서 코인 투자 실패를 비관한 20대 청년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있었습니다.이병철 문학평론가이자 시인. 낚시와 야구 등 활동적인 스포츠도 좋아하며,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위원장님의 말씀에 정부가 가상화폐를 바라보는 시선이 고스란히 담겼다고 봐도 될까요? 지난 4년간 미국과 독일, 일본 등이 가상화폐를 금융상품으로 인정하고 제도화해서 투자자 보호 및 과세를 합리적으로 해나가려는 것과는 정반대의 기조를 보이니 착잡할 따름입니다. 세계 최대 디지털 자산 투자그룹인 그레이스케일을 비롯해 테슬라, 넥슨, 골드만삭스, 페이팔 등이 코인 시장에 뛰어드는 등 선진국들은 가상화폐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발 빠른 노력을 하고 있는데, 우리나라는 블록체인 기술과 코인 시장에 대한 몰이해로 세계 경제 흐름을 역행하려 하는 건 아닌지 심히 우려됩니다.하지만 가장 우려되는 건 위원장님의 ‘꼰대’적 인식입니다. “잘못된 길로 가면 어른들이 이야기를 해줘야 된다”는 위원장님의 이 한 마디는 가상화폐 투자자들뿐만 아니라 2030세대를 분노하게 했습니다. 평생 성실하게 일해도 서울에 집 한 채 살 수 없는 현실, 위원장님을 포함한 기성세대보다 훨씬 더 노력해서 외국어, 컴퓨터 활용능력, 자격기술 등을 갖추고도 선배들이 채용의 문을 걸어 잠가 취업을 꿈꿀 수 없는 현실, 정작 4050세대는 부동산을 통해 손쉽게 부를 축적하고는 2030세대에겐 온갖 규제로 기회의 사다리를 걷어차 절망만을 안겨준 현실…. ‘잘못된 길’은 누가 만들었는지요? 위원장님은 가상화폐가 “이 시장에 안 들어왔으면 좋겠다는 게 솔직한 심정”이라고 하셨는데, 부동산과 주식 시장을 쥐고 있는 기성세대로서 젊은이들이 돈을 버는 코인 시장이 영 아니꼬워 보인 건 아니신지요?제가 가르치는 학생들 중에도 가상화폐 투자자들이 많습니다. 대부분이 학업과 아르바이트를 병행합니다. 급여로 학자금 대출을 갚고, 자취방 월세를 내고, 공과금을 치르고 나면 남는 게 없습니다. 불공평한 사회 구조에서 아무리 열심히 살아도 허락되지 않는 ‘여윳돈’이라는 걸 좀 가져보려고, 치킨 사 먹고, 부모님 용돈 드리고, 애인에게 작은 선물 하나 해주고 싶어 소액으로 코인 시장에 뛰어든 그 청년들을 ‘일확천금을 노리는 투기꾼’이라 매도하지 마십시오. 이번 기회에 어른들이 만든 ‘잘못된 길’로 청년들을 내몬 과오부터 반성하시길, 공직자의 말 한 마디가 얼마나 큰 파급력을 지니는지 깨달으시길 바라며 이만 줄입니다.

2021-05-03

근사한 할머니가 된다는 건

10대에서 30대까지 대표하는 MZ세대는 요즘 ‘할매니얼’에 푹 빠졌다. 할매니얼이란 할매와 밀레니얼을 합친 용어로 옛 할머니의 감성을 추구하는 새로운 트렌드다. 할매니얼에 열광하는 이들은 ‘그래니룩’ 을 즐겨 입는다. 그래니룩은 할머니를 뜻하는 그래니(Granny)와 패션 스타일을 의미하는 룩(look)을 붙인 합성어로, ‘할머니 같은 패션’을 의미한다. 마치 할머니의 옷장 속에서 발견할 법한 화려한 무늬의 스웨터나 빛바랜 색감의 카디건, 발목까지 내려오는 주름치마나 몸빼 바지처럼 보이는 통 넓은 바지가 그 예다.실제로 10대 20대가 즐겨 구입하는 온라인 쇼핑몰 무신사에서도 무릎을 덮는 롱스커트나 꽃무늬 제품이 오랜 기간 인기 순위에 머무르고 있다. 카디건 판매도 전년보다 164%나 늘었다고 한다.광고계에서도 할매니얼 열풍이 불었다. MZ세대가 즐겨 찾는 쇼핑몰 앱인 ‘지그재그’는 배우 윤여정 씨가 대표 모델로 등장한다. “옷 많이 산다고 무슨 법에 저촉되니? 괜찮아 인생 왔다 갔다 하면서 사는 거지. 그러니까, 너희 마음대로 사세요.” 광고 속 윤여정 씨의 대사다.물건을 구매한다는 의미의 ‘사다(buy)’와 인생을 ‘산다(live)’ 두 가지 의미를 내포하여 던지는 메시지와 강렬한 이미지는 많은 이들의 주목을 이끌었다. 단순히 카피가 좋아서가 아니다. 75세의 윤여정 배우가 내뱉는 대사는 그간 그녀가 지어 왔을 삶의 묵직함이 고스란히 전달되어 신뢰를 더했기 때문이다.햇반컵 광고에서는 81세의 나문희 씨가 등장한다. 핵심연구원 A씨의 실종사건을 다루며 추리게임을 펼치는 내용을 선보였다. 공식처럼 젊은 여배우들이 등장했던 화장품 광고에서도 80세 강부자 씨가 모델로 등장한다. 버스 안에서 노래와 랩을 부르며 요즘의 ‘힙한 할머니’의 위세를 보여주었다.‘할매니얼’의 유행은 먹거리에서도 뚜렷하게 나타난다. 식품업계에선 강릉초당두부케이크, 찰옥수수 케이크, 쌀로 만든 아이스크림 등 소위 할머니 입맛이라 불리는 음식들을 심심치 않게 쏟아냈다. 프렌차이즈 카페나 베이커리에서도 MZ세대의 입맛을 노려 양갱이나 약과 같은 간식을 새롭게 내어놓는다거나 쑥, 흑임자, 인절미맛 디저트를 앞다투어 출시했다.윤여진 2018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 부문에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현재보다 미래가 기대되는 젊은 작가.MZ세대가 이토록 할머니에 열광하는 이유는 뭘까. 레트로 열풍도 한몫했다. MZ세대는 자신이 겪어보지 못한 시대적 분위기에 새로움을 느끼고 이를 그들만의 새로운 스타일로 재해석해 놀이처럼 즐긴다.그렇지만 무엇보다 ‘할매니얼’의 중심은 할머니다. MZ세대를 매료시킨 그녀들은 자신보다 어린 세대와의 소통을 주저하지 않는다. 자신이 쥔 권력을 과시하지 않는 동시에 우아하면서도 지적이다. MZ세대는 자신만의 삶과 철학을 지혜롭게 가꾼 여성을 롤모델로 쫓으며 그녀들의 올곧음과 당당함을 선망하는 것이다.유튜브의 영향력도 크다. 131만의 구독자를 보유한 유튜버 박막례 할머니는 특유의 유쾌함과 경쾌함으로 젊은 세대와 소통을 나눈다. ‘하고 싶은 거 하고 살어’, ‘내 박자에 맞춰 살어.’ 라며 젊은이들의 도전을 응원하고 격려한다. 동시에 삶을 살아가기 위해 그간 포기했던 것들을 뒤로 하고 늘 새로운 것에 망설임 없이 도전하는 모습도 보여준다.구독자 80만명을 보유한 옷 잘 입는 할머니 ‘밀라논나’의 유튜브도 빼놓을 수 없다. ‘논나의 아지트’는 젊은이들의 고민을 듣고 조언을 해주는 콘텐츠다. 나이나 관습에 얽매이지 않는 깨어 있는 조언과 함께 남을 의식하지 않는 솔직하고도 열정적인 모습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젊은 세대를 이해하려는 따스하고도 섬세한 시각이 MZ세대를 사로잡았다.윤여정 배우의 말처럼 우리 모두는 이 생을 처음 살아보는 것이므로. 자신이 체득한 지식과 경험은 전부가 아니고, 모든 것이 상황에 따라 새롭게 변화 한다는 걸 인지해야 한다. 나는 스스로에 대한 맹신이 두렵다. 내가 겪은 고통만 고통이라 여기고, 타인의 고통은 별 것 아니라는 오만 또한 스스로를 과거에 고립시킬 뿐이다. 타인을 수용하는 넉넉한 마음의 크기와 다정하고도 자유로움을 지닌 할머니가 되고 싶다. 이런 고민은 언제나 근사하고 신비롭다.

2021-05-03

80년대생도 있다

최근 1년 간 한국 대중음악계에는 몇 가지 열풍이 있었다. 첫 번째는 BTS 열풍이다. 7인조 보이그룹 BTS는 국내 정상의 자리를 뛰어넘어 빌보드차트 1위에 오르며 세계 무대의 정상에 오른 바 있다. 두 번째는 트롯 열풍이다. TV조선의 미스트롯, 미스터트롯의 연이은 성공에 힘입어 여러 방송사가 앞 다투어 트롯 경연 프로그램을 내어 놓았고, 그로 인해 수많은 트롯 스타가 탄생하였다. 세 번째는 본 연재를 통해 언급한 바 있는 걸그룹 브레이브 걸스의 역주행 열풍이다. 국방 TV 위문열차 프로그램을 시작으로 폭발적인 유튜브 조회수에 힘입어 각종 음원차트와 음악 순위 프로그램의 최정상 자리를 휩쓸었다.이 열풍들은 모두 그것을 촉발시킨 주역이 되는 세대가 있다는 게 주목할 만 하다. 먼저 BTS열풍의 주역은 현재 10대 후반부터 20년대 초반을 이루고 있는 2000년대 생이다. 트로트 열풍은 현재 40대 이상을 이루고 있는 70년대와 그 이전 출생 세대를 중심으로 확산되었고, 브레이브 걸스 열풍은 최근 몇 년 간 군복무의 대상자였던 90년대 후반 출생자들과, 브레이브 걸스 멤버들과 비슷한 연령대인 90년대 초중반 출생자들이 주도하고 있다. 여러 세대가 저마다의 성장 배경과 문화적 환경을 바탕으로 다양한 현상을 이끌어내고 있다는 것이 재미있다.그런데 이러한 열풍들 사이에서 언급되지 않은 세대가 있다. 바로 현재의 30대부터 40대 초반을 아우르는 80년대 생이다. 80년대생이 주도한 가요 열풍은 한동안 거의 찾아볼 수 없다가, 최근 2~3주 사이 눈에 띄는 현상이 하나 발견됐다. 바로 3인조 남성 보컬 그룹인 SG워너비의 역주행 현상이다.김용준, 이석훈, 김진호 등 3명으로 구성된 이 그룹이 한창 인기를 얻었던 시기는 이들이 데뷔한 2004년부터 2010년대에 접어들기 이전까지였다. 이후 한동안 잊혀진 것처럼 보이던 이들이 최근들어 다시 음원차트에 모습을 드러내게 된 계기는 MBC 예능프로그램 ‘놀면 뭐하니’에 출연하게 된 일이다. SG워너비의 유사 그룹인 ‘MSG워너비’를 만드는 프로젝트 도중 원조가수로 등장해 흘러간 그들의 히트곡들의 라이브를 선보인 것이다. 이들의 라이브는 이들의 동세대이자 전성기시절 가장 많은 지지를 보낸 팬들이기도 했던 80년대 생의 향수를 자극했다. 그리고 80년대 생들의 향수는 하나의 문화적 현상이 되어 SG워너비를 음원차트에 다시 불러올렸다. 이 글을 쓰고 있는 현재 국내 최대 음원사이트의 실시간 차트 Top 10 곡들 가운데 ‘Timeless’, ‘라라라’, ‘내 사람’등 이들의 곡이 세 곡이나 올라가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강백수세상을 깊이 있게 바라보는 싱어송라이터이자 시인. 원고지와 오선지를 넘나들며 우리 시대를 탐구 중이다.이러한 현상은 80년대 생이라는 세대의 존재감을 다시 한 번 확인케 한다. 그리고 여전히 문화적 영향력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 최근 인기를 얻었던 두 책 ‘90년생이 온다’와 ‘70년대생이 운다’가 떠오른다. 두 세대 사이에 끼어 상대적으로 덜 주목받고 있는 세대인 그들 역시 현재 90년대생과 2000년대생으로 대표되는 Z세대가 그러하고 그들의 선배세대들인 Z세대가 그러했듯 그들만의 문화를 창조하고 향유했다.이들의 선배들에게 천리안, 하이텔같은 PC통신이 있고 후배들에게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과 같은 모바일 SNS가 있다면 이들은 싸이월드 미니홈피에서 그들만의 독자적인 온라인 문화를 창조하곤 했다. 싸이월드는 최근 기존 운영사인 SK커뮤니케이션으로부터 스카이이엔엠, 인트로메딕 등 코스닥 상장사 2곳을 포함해 총 5개 회사의 컨소시엄, ‘싸이월드제트’로 매각됐다. 80년대생의 향수가 여전히 사업성을 지니고 있다는 증거이다.이들만의 문화를 패러디한 유튜브 콘텐츠 ‘05학번 이즈 백’(피식대학 제작)의 조회수가 최대 350만에 육박한다는 것은 여전히 이들의 문화적 영향력이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라는 것을 증명한다.이 글을 통해서 필자는 동년배인 80년대생들에게 격려와 응원을 건네고 싶다. 비록 때때로 90년대생만큼 트렌디하지 않고, 70년대생들 만큼의 권력을 지니지 못하였다는 이유로 소외되곤 하지만, 회사에서는 신입도 아니고 리더도 아닌 위치에서 겉돌기도 하고, 가정에서는 육아와 내 집 마련이라는 거대한 과업 앞에 주눅 들기도 하지만, 여전히 우리는 문화적으로, 사회적으로 영향력 있는 세대임을 기억하길 바란다.

2021-0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