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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예술과 우울

예술가의 뇌는 우울증을 앓는 사람의 뇌와 비슷하다는 견해가 있다. 보통 사람들은 알아채지 못하는 미미한 자극에도 예민하게 반응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우울한 감정이 창조성을 발휘하는 데 영향을 미친다는 정신 분석가들의 결론이 아니더라도 이것은 얼마든지 추측할 수 있는 사실이다. 역사상 위대한 예술가로 칭해지는 이들은 때때로 우울증을 앓았다. 빈센트 반 고흐, 슈베르트, 말러, 헤밍웨이…. 이들의 작품은 섬세하며 이성적인 동시에 감정을 건드리고 추동력이 있으며 한없이 경계가 넓어지는 경험과 함께 강한 충격을 안겨주기도 한다.에트바르트 뭉크 역시 마찬가지다. 그의 대표작으로 칭할 수 있는 ‘절규’를 보고 있노라면 시각적 이미지로 국한되지 않고 청각과 촉각적 지점까지 확장되는 것을 느낄 수 있다.그림에서 얼굴에 손을 대고 있는 인물은 정면으로 관객을 향하고 있다. 관객에게 자신의 얼굴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복잡하지 않고 단순한 형태다. 거기에서는 공포가, 절규가, 찢어지는 것과 같은 비명이 흘러나온다. 같은 주제로 그린 그의 소묘 작품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덧붙여 있다.“두 친구와 함께 산책을 나갔다. 햇살이 쏟아져 내렸다. 그때 갑자기 하늘이 핏빛처럼 붉어졌고 나는 한 줄기 우울을 느꼈다. 친구들은 저 앞으로 걸어가고 있었고 나만이 공포에 떨며 홀로 서 있었다. 마치 강력하고 무한한 절규가 대자연을 가로질러 가는 것 같았다.”정수리 위로 해가 내리쬐는, 별다를 것 없는 일상적인 날, 친구들과 길을 걸어가던 뭉크는 문득 공포를 느낀다. 그것은 세상을 있는 그대로만 관찰한다면 볼 수 있는 이미지가 아니다. 내적으로 발동된 잠재된 불안과 두려움에 가깝다. 그러나 뭉크에게 그것은 분명 실재하는 감각이었을 것이다.그와 함께 같은 거리를 산책하던 친구들은 느끼지 못했던 원천적인 고통과 슬픔. 뭉크에게 그토록 섬세한 감정의 파동을 일게 했던 건 대체 무엇이었을까?뭉크에게 죽음은 머나먼 추상적 개념이 아니었다.그는 어린 시절 어머니와 누나를 폐렴으로 잃었고, 같은 해 남동생 역시 같은 병으로 죽었다. 강압적으로 그를 통제하던 아버지 역시 세상을 떠났다. 뭉크는 “나는 인류에게 가장 두려운 두 가지를 물려받았다. 하나는 신체적인 허약함이고, 하나는 정신병이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그는 깊은 우울증에 빠져 자살 충동을 느끼기도 했다. 과도한 불안증세와 심지어 환각 증세까지 겪게 되면서 정신병원에서 입원 치료를 받았던 전적도 있다.그의 작품을 그의 삶과 연결시키지 않더라도 그는 다른 사람보다 확실히 예민하게 감각하는 사람이었음은 확실하다. 그의 내면에서는 강렬한 추동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우울증이라는 병으로 명명하기에는 부족한, 정신이 망가졌다는 것으로 국한할 수 없는, 감정의 소용돌이. 뭉크는 그것을 외면하지 않았다. 있는 그대로 응시하고 표현해내려고 노력했다.그건 뭉크뿐만이 아니다. 우리는 살면서 가끔 유령처럼 속삭이는 텅 빈 목소리를 듣게 된다. 삶의 무용함, 혼란, 외로움, 불가능한 이해와 관계, 붙잡을 수 없는 감정들…. 그것을 듣는 일은 분명히 고통스럽다. 불가해하고 어리석다. 그것에 대해 생각하고 표현해내는 것 역시 그러하다. 문은강 ‘춤추는 고복희와 원더랜드’로 주목받은 소설가. 2017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작가로 등단했다. 그러나 그것을 듣고 생각하고 표현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이 바로 예술가들이다. 우리가 마주하는 위대한 작품들은 개인의 고통스러운 투쟁의 결과인 것이다.우리의 생각의 끝은 어딜까. 생각하고 또 생각하고, 그리하여 그 생각의 끝에 도달하게 되면 거기에는 과연 무엇이 있을까. 생을 살아가는 우리는 결코 거기에 가 닿을 수 없다. 그러므로 매번 생각의 과정 중에서 좌절할 수밖에 없다.지금 여기에 존재하고 있는 것만으로는 결코 완성할 수 없는 피안의 세계. 그것을 단지 ‘죽음’이라는 관념으로 치환할 수는 없다.예술가들은 그곳에 끝끝내 가닿기 위해 늦은 밤 혼자 책상 앞에 앉아 마음껏 괴로워하는 것이다. 그 불분명하고 고통스러운 행위가 그들을 좌절시키고 또 기적처럼 살아가게 하는 것이다.

2021-10-19

우리들의 오징어게임

‘오징어게임’이 넷플릭스가 서비스되는 모든 국가에서 시청률 1위를 달리고 있다. 외국인들은 딱지치기,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구슬치기, 달고나 뽑기 등 한국의 골목 놀이에 열광한다. 프랑스 파리에 오픈한 오징어 게임 체험관에는 드라마 속 놀이들을 직접 해보려는 파리지앵들이 긴 줄을 서기도 했다. 거액의 상금이 걸린 살인 게임이라는 설정이 긴장감을 유발하면서 시청자들을 몰입시킨다. 독특한 의상, 기묘한 화면의 구도와 색감이 청년 세대의 트렌드를 반영한 것도 인기 요인으로 꼽힌다.무엇보다 빈부격차, 양극화 등 세계 공통의 시대적 요소를 담아낸 것이 주요했다. 특히 젊은 세대로부터 폭발적인 호응을 얻고 있는데, 청년들은 드라마 속 캐릭터들에게 자신을 투영한다. 성기훈, 조상우, 강새벽, 알리, 지영 등 등장인물들은 저마다 생의 벼랑 끝에 몰려 더는 갈 데가 없는 이들이다. 게임에서 탈락하면 죽는다는 걸 알면서도 목숨을 건 데스매치에 참가한다. 현실에서의 삶이 더 지옥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결국 서로 죽고 죽이는 처절한 싸움을 벌인다.이 사람도 살아야 하고, 저 사람도 살아야 한다. 꼭 살아서 상금을 차지해야 할 각자의 사정이 있다. 하지만 단 한 명만 살아남을 수 있다. 게임을 거듭할수록 생존자는 줄어들고 탈락자의 목숨 값인 상금은 오른다. 삶과 죽음을 가르는 것은 물리적 힘, 두뇌 회전 속도, 행운과 불운의 차이지만, 현실의 지옥 대신 차라리 목숨을 걸고 인생 역전을 노리는 이들의 절박함만큼은 우열을 가릴 수 없다.가장 역겨운 장면은 깡패 덕수와 한미녀의 화장실 정사 신도 아니고, 자신을 따르던 외국인 노동자 알리를 속여 죽음에 이르게 한 상우의 야비함도 아니다. ‘VIP’로 불리는 세계 각국의 부자들이 동물 가면을 쓴 채 마치 경마를 즐기듯 가난한 사람들의 살인 게임을 관람하던 대목이다. 시청자들은 그제야 ‘오징어게임’이 사람을 체스마로 삼은 부자들의 유희였음을 알고 씁쓸함을 느낀다. 사채업자에게 신체 포기각서를 써주고 어머니의 수술비를 마련하기 위해 게임에 참가한 456번, 외국인 노동자로 고국의 가족들을 먹여 살려야 하는 199번, 북한에 있는 엄마를 데려오고, 보육원에 맡긴 동생과 함께 지낼 방 한 칸을 얻어야 하는 67번… 이 모든 ‘사람’의 간절함이 VIP들에게는 그저 벌레들의 우스꽝스런 몸부림으로 보일 뿐이다. 라운지에서 게임을 내려다보는 VIP의 시선으로 화면이 전환될 때, 시청자들은 마치 자신의 삶이 농락당하는 것 같은 당사자성을 감각하게 된다.대장동 개발 비리에 수많은 공직자와 여야 정치인들이 연루되었다. 국민의힘 곽상도 전 의원의 아들은 화천대유로부터 50억 원의 퇴직금을 받았고, 박근혜 전 대통령 국정농단을 수사했던 박영수 전 특검도 특혜 의혹에 휩싸여 있다. 국민들의 박탈감과 분노가 극에 달한 가운데 문재인 정부는 전세자금대출과 신용대출을 규제하면서 무주택 실수요자들의 주거 안정 기회를 산산조각 내버렸다. 집값을 올려놔 내 집 마련은 꿈도 못 꾸게 해놓고, 전세를 장려하더니 막상 전세대출을 막아버린 것이다. 정부가 가계부채를 줄이겠다며 대출을 틀어쥐는 동안 33세의 한 중국인이 89억 원짜리 도곡동 타워팰리스 펜트하우스를 전액 은행 대출로 매입한 사실이 알려져 국민들을 허탈하게 했다. 한편 내년 1월부터 암호화폐 과세가 시행되는데, 주식에 비하면 갈취라 할 만큼 형평성이 맞지 않는다. 투자자 보호는 하지 않고 세금만 걷겠다는 정부 방침에 2030 투자자들은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계층 이동의 사다리를 걷어 차버리는 기성세대의 행패로밖에 보이지 않는 것이다. 이병철 문학평론가이자 시인. 낚시와 야구 등 활동적인 스포츠도 좋아하며,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금요일 저녁, 차가운 가을비가 내린다. 다음 문장을 골똘히 생각하는데 핸드폰이 울린다. 배달대행 라이더 어플에서 피크타임이라며 높은 단가에 배달하라고 부추긴다. 원고도 쓰고 강의 준비도 해야 하는데…. 빗길 운전은 위험하다. 하지만 단가가 높다. 고민을 거듭하다 한 5만원이라도 벌고 오자며 우비를 챙겨 입고 스쿠터에 시동을 걸었다. 몇 건의 배달을 마치고 집에 와 다시 책상 앞에 앉았다. 이번 판에선 살아남았지만 다음 판에선 죽을 수도 있다. 자동차들이 쌩쌩 달리는 빗길에서, 컨베이어 벨트가 돌아가는 공장에서, 거리두기로 파리만 날리는 식당에서 우리들의 오징어게임은 계속 된다. 한국사회의 VIP인 고위 공직자와 정치인들은 저 높은 곳에서 가면을 쓴 채 낮은 데서 벌어지는 비참한 생계의 분투를 웃으며 지켜볼 것이고, 우리끼리 죽고 죽이게 할 것이다.

2021-10-12

루저들의 참혹한 놀이터

오징어게임 열풍이 한창이다.‘오징어게임’은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시리즈로, 456억 원의 상금이 걸린 생존 게임에 참석하게 된 기훈(이정재 분)의 이야기를 다루었다.벼랑 끝에 몰린 삶을 사는 기훈은 상금에 혹하여 게임에 참석하게 되고, 이는 곧 목숨이 걸린 기이한 생존 게임으로 이어진다.게임은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와 설탕 뽑기, 줄다리기와 구슬치기, 징검다리 건너기 등 어릴 적 동심을 떠올리게 하는 단순 게임으로 구성되어 있다.하지만 여기서 반전은 게임에 탈락하는 순간 가차 없이 게임 관리자들에 의해 목숨을 잃게 된다는 것.오징어게임은 국내에서도 뜨거운 인기를 끌고 있을 뿐만 아니라 현재 세계 90개 국에서 1위를 차지하고 있다.최근엔 미국 인기 토크쇼인 ‘더 투나잇 쇼 스타링 지미 팰런’에서도 오징어게임 출연진의 인터뷰가 진행될 정도였으니 이전에는 쉽게 보지 못했던 실로 대단한 인기다.인기를 몸소 체감했던 건 인터넷이나 유튜브에 오징어게임에 대한 이야기가 끊이질 않는다는 것. 해외 유명 먹방 유튜버들 또한 달고나 먹방을 진행하며 엄청난 조회 수를 기록하고 있을 정도다.전 세계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는 이유는 뭘까. 이야기는 어느 사회에서나 만연한 사회 계층과 빈부 격차 문제를 한 회도 빠짐없이 끈질기게 담아내고 있다.구조조정 후 이혼을 하게 된 기훈은 빚에 쫓기는 동시에 돈 때문에 치료를 포기한 어머니를 잃기도 한다. 돈의 부재로 극단의 벼랑에 몰린 기훈은 온갖 소외와 부당함으로 괴로움을 겪는 인물이며 한국 사회의 소외 계층 시선을 가감 없이 보여주기도 한다.어릴 적 누구나 한번쯤은 해봤을 단순 놀이가 생존 게임으로 이어진 점도 흥미로운 포인트다.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와 설탕 뽑기 등 외국인들의 시각에선 처음 보는 놀이이기에 새로울 것이며, 단순하고 명쾌한 놀이는 흥미를 벗어나 죽음으로 곧장 이어지는 신선함도 담고 있다.게임 플레이 또한 플레이어 간 공평함을 기준으로 정해놓았지만 점차 온갖 실수와 꼼수로 관문을 통과한다. 게임 주최 측 또한 이를 암묵적 허용하며 즐긴다.이는 한국 사회의 경쟁과 생존의 현실을 담아낸 것은 물론, 선과 악이 긴밀히 섞인 캐릭터들이 연달아 등장하며 흥미를 자극한다.오징어게임을 시청하는 이들은 드라마 내 대사를 바탕으로 밈을 형성하고 있다.실시간 SNS으로 글과 영상으로 패러디되고 있으며 그것을 이해하고 공감하기 위해 전 세계적인 유행의 흐름을 보이고 있다,감독은 루저들끼리 싸우고 그 루저들이 어떻게 죽어가는지를 다룬 것이라 밝히며 이어 현실에 게임을 돌파하는 멋진 히어로는 없는 것이라 말한다. 영화나 드라마에서나 나오는 순수와 선으로 이루어진 100% 인간상은 없다는 것이다.그래선지 기훈 또한 모든 관문을 평이하게 통과하지 않는다. 선과 악 사이에서 몸 붙이며 순수와 잔혹 사이를 아슬아슬 넘나든다.어린 아이들이 뛰어노는 놀이터도 엄연히 승과 패가 난무하는 장소다. 제일 마지막인 오징어게임도 그렇지 않은가. 윤여진 2018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 부문에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현재보다 미래가 기대되는 젊은 작가. 선 안에서 게임이 진행되며, 돌진하는 이는 막는 이를 몸으로 밀치며 일정 장소에 도달해야 한다. 막는 이는 어떤 수를 써서라도 돌진하는 이가 통과하지 못하도록 한다.이 단순하고도 거친 게임에서 승리하는 이는 일정한 성취감을, 패배하는 이에겐 슬픔과 당혹감, 그리고 선망과 두려움 같은 얼굴빛이 읽힌다. 이러한 상황은 어딘가 늘 불편하다.경쟁 사회에서 한 두어 발자국 물러난 채로 관조하고 시니컬해지는 것도 마냥 옳다는 건 아니다. 이 모든 게 인간의 도덕성 문제가 아닌 사회 구조적인 시스템 문제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누군가는 클리셰가 난무하는 전형적인 한국 드라마라 말하기도 하지만, 난 충분히 파장을 일으킬 만큼 좋은 작품이라 생각한다. 적어도 9시간 내내 시선을 곧잘 붙들어 놨으니까.세계인들이 한국의 콘텐츠를 소비하고 주목하여 K-붐을 일으키는 것 또한 기쁜 일이다.미국 CNN 방송 홈페이지에도 오징어게임이 한국어로 소개되고, 한국어로 진행한 영상도 볼 수 있을 정도니 말이다. 여러모로 흥미로운 흐름임은 확실하다.

2021-10-12

선생의 책임감

얼마 전 한 대학의 비대면 수업이 사회적 물의를 일으켰다. 오픈 채팅을 통해 강의를 진행한 것, 교수 자신이 집필한 교재를 구입 후 인증하라고 요구한 것, 인증하지 못한 학생을 수업에서 강제로 배제한 것이 논란의 주된 이유였다. 하지만 이 사례가 네티즌들의 공분을 산 건, 결정적으로 그가 했던 말 때문이 아닐까 싶다. 교재를 준비하지 못한 학생을 향해 “가뜩이나 어려운 시절에 강의가 부실해지는 느낌”이라며 “강의를 망치려는 사람”, “강의를 부실하게 만드는 것을 도저히 넘어갈 수 없다”고 비난하며 그를 수업에서 배제했다.네티즌들이 가장 문제 삼은 것은 그의 태도였다. 정작 본인 또한 오픈 채팅을 통해 대학 강의를 진행하는, 교수로서 성실하지 못한 태도를 보였음에도 단지 교재를 준비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학생을 힐난하는 것은 적절치 않은 행동이었다는 것이다.내가 느낀 분노의 초점은 그가 한 대학의 강의를 맡은 교수로서 책임감 있게 행동하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적어도 그는 교수로서, 한 강좌의 선생으로서 학생들에게 최상의 수업을 제공해야 하는 의무가 있었다.물론 그에게도 나름의 사정이 있었을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한 학기 수백만 원을 학비로 내고 제공받는 수업에서 그와 같은 강의 방식을 채택하진 않았을 것이고, 학교 측 또한 그렇게 내버려두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의 사정을 옹호하고 싶지는 않은 건,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최상의 수업을 제공하고자 최대한의 노력을 행해야 하는 게 교수이기 때문이다. 적어도 내가 보고 배웠던 교수들은 모두 그러했다. 어떤 사정에도 불구하고 최선을 다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은 수업을 제공하고자 하는 책임감.그리고 이 책임감에는 학생을 포기하지 않으려는 마음도 포함되어 있다. 선생은 제자가 뛰어나기에 선생을 자처하는 것이 아니다. 선생은 제자가 못난 모습을 보이더라도 선생을 자처해야 하며, 혼을 내서라도 그를 가르쳐야 한다. 하지만 그는 제자를 힐난하고 비난했으며, 그를 타일러 좋은 방향으로 인도하기 보다는 수업에서 배제하는 방향을 택했다. 마치 물건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사지 말라고 으름장을 놓는 악덕 상인처럼…. 그 순간, 그는 선생이길 포기했다. 그는 스스로 학점을 사고파는 악덕상인이 되기를 선택했다.만약 그가 선생이고자 했다면, 그는 학생을 포기하지 않았어야 했다. 그가 교재를 준비하지 못했다면 그에게 교재를 반드시 준비해야 하는 이유를 가르쳤을 것이다. 비록 혼을 내서라도, 그렇게 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이전에, 보다 나은 수업을 위해 오픈 채팅보다 나은 방법을 모색했을 것이다. 어떤 것이 학생에게 더 나은 선택인지에 대해 고민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에게서 어떠한 고민의 흔적도 찾아볼 수 없는 것은 왜일까. 그것은 아마 문제를 직면했을 때 그가 보인 행동이 권위를 내세우는 것이었기 때문일 것이다.누군가 그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어른이 사라진 시대라고. 우리가 기대하는 어른이란, 문제를 직면했을 때 그에 합당한 지혜를 베푸는 사람일 것이다. 하지만 이 시대에, 어느 누구도 쉽사리 우리에게 지혜를 제공하지 않는다. 혹자는 그것을 질문이 사라졌기 때문이라고 말할 테지만, 우리가 질문을 하지 않는 건 질문이 용납되지 않는다는 걸 경험적으로 배웠기 때문이다. 질문에는 권위로, 요청에는 묵살로 대응받은 경험이 우리를 자연스럽게 위축시켰기 때문이다.좋은 질문이 나오기 위해서는 질문하는 법을 가르쳐야만 한다. 그리고 질문에는 대답이 돌아온다는 것을 경험시켜줘야만 한다. 권위 대신 해답을 제시하는 것, 혹은 해답을 찾기 위한 방법을 일러주는 것. 우리 시대에 어른이 없다는 것은 아마도 이와 같은 일을 함께해줄 사람이 없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 학생들이 선생을 공경하지 않는 것 또한 문제겠지만, 공경 받을 만한 선생이 줄어드는 것 역시 문제인 셈이다. 임지훈 2020년 문화일보, 서울신문 신춘문예 평론 부문에 당선된 문학평론가. 한양대 국문과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수업이 학생에게 제공해야 하는 것은 지식만이 아니다. 그들에게 사회생활을 위한 방식을 가르치고, 문제를 직면했을 때 그것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그리하여 삶이란 어떻게 살아가는 것인지를 가르쳐야 한다.그렇다면 저 사례 속에서, 선생은 학생에게 무엇을 가르친 것일까. 도대체 그는 무엇을 가르치려고 했던 것일까. “학교는 좋은 학생만 길러내는 곳이 아니라 좋은 교사도 길러낼 수 있는 곳이어야 한다”던 채현국 선생님의 말이 떠오른다. 그에게도, 그의 학교에게도 전해주고 싶은 말이다.

2021-10-05

눈을 감을까 뜰까, 그것이 문제로다

아가사 크리스티가 추리 소설만 썼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물론, 그녀는 최고의 추리 소설 작가이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그녀는 80여 편의 추리 소설을 발표했으며 ‘애크로이드 살인 사건’, ‘오리엔트 특급 살인 사건’,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와 같은 작품들은 지금까지도 여전히 많은 독자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다.역사상 가장 위대한 추리 소설 작가로 꼽히며 명실상부 영원한 ‘추리의 여왕’이자 캐릭터와 플롯을 능수능란하게 운용하는 작가로도 정평이 나 있다. 무엇보다 그녀의 작품은 재미있다. 영국의 시인 소피 한나는 아가사 크리스티만큼이나 다양하고 흥미로운 추리 소설을 많이 쓴 작가는 없다고 말했으니, 나 역시 그 말에 전적으로 동의하는 바이다.이토록 위대한 작가로 유명세를 날리던 아가사 크리스티는 1930년부터 1956년까지 ‘메리 웨스트매콧’이라는 필명으로 6편의 장편 소설을 발표하게 된다.이것은 당대의 독자들에게 철저한 비밀에 부쳐진 사실이었다. 이렇게 발표한 작품들은 기존의 아가사 크리스티의 플롯을 따라가지 않는다. 피해자와 가해자가 분명한 사건을 해결하는 탐정 소설에서 벗어나서, 인간 특히 여성의 삶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하고 인생의 내밀한 지점을 파헤치며 벼랑에 내몰린 인간의 심리를 세밀하게 묘사한다.그중에서도 ‘봄에 나는 없었다’는 뛰어난 작품이다. 나는 우연히 이 소설을 읽게 되었다. 책 표지와 제목에 이끌려 아무 생각 없이 도서관에서 집어온 책이었는데, 다 읽을 때까지도 아가사 크리스티의 작품이라고 예상조차 못 했다.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면서 ‘와, 이 작가 정말 대단한데?’하고 작가의 이력을 확인하고 굉장한 혼란에 빠졌던 기억이 있다.소설의 주인공은 유능한 변호사 남편과 사랑하는 아이들을 가진, 그야말로 완벽한 인생을 살아왔다고 자부하는 주부, 조앤이다. 그녀는 딸을 만나고 돌아오는 길에 일련의 사건으로 인해 사막의 기차역에서 발이 묶이게 된다. 가만히 앉아 있거나 사막을 걷는 것 외에는 아무 할 일이 없는 허허벌판에서 그녀는 자연스럽게 생각에 잠기고 자신의 과거를 떠올리게 된다. 무시무시한 고요 속에서 그동안 묻어두었던 날카로운 과거의 조각들이 그녀를 아프게 찌르기 시작한다.조앤의 딸은 그녀에게 아무것도 모른다고 했다. 그녀는 정말 몰랐다. 왜냐하면 결코 알고 싶지 않았으니까. 그녀는 자신에게 되묻는다.‘나는 정녕 제대로 살아왔는가?’ 자신을 똑바로 마주할 수밖에 없는 이 순간이 그녀에게는 괴롭기만 하다. 이러한 괴로움 속에서 그녀는 다시 한 번 의심한다. ‘하지만 그것이 정말 진실일까? 그게 진실이라는 증거는 어디에 있는가?’ 결국 조앤은 생각과 고민을 멈춘다. 그리고 현실로, 거짓되지만 안온한 집으로 돌아가기를 선택한다.이러한 고민에 빠진 또 다른 문학적인 주인공이 있으니, 바로 ‘햄릿’이다.햄릿은 그의 숙부가 아버지를 살해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는 깊은 고뇌에 빠진다. ‘To be, or not to be, that is the question.’ 이 유명한 구절은 영문학사 전체에서 제일로 꼽히는 명대사이다. 진실을 파헤치고 복수의 칼날을 뽑을 것인지, 혹은 진실을 바라보는 것을 포기한 채로 삶을 지속할 것인지 선택해야 하는 순간에 놓인 것이다. 혹자는 햄릿이 결단을 미루는 우유부단한 인간상이라고 판단하기도 하지만, 내가 봤을 때는 그렇지 않다.그는 분명하게 자신의 태도를 결정한다. 햄릿은 비극적 운명과 대면하기를 선택하고 숙부에게 칼을 들이댄다. 그로 인해 자신 역시 비참한 죽음에 내몰릴 것이라는 사실을 분명 알고 있었음에도. 문은강 ‘춤추는 고복희와 원더랜드’로 주목받은 소설가. 2017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작가로 등단했다. 조앤과 햄릿의 고민의 지점은 같다. 그러나 그들의 선택은 완전히 상반된다. 조앤은 삶에 자리하고 있는 불편한 진실을 외면하고 그럴듯한 현실 속으로 돌아가기로 마음먹었다. 햄릿은 끝까지 진실을 파헤치고 끝까지 마주한 뒤에 비극적인 결말을 향해 제 발로 걸어간다. 과연 누가 옳은가. 우리는 누구의 손을 들어 줄 수 있고, 누구를 비난할 수 있을까.삶을 살아가는 동안 우리는 이러한 질문과 마주할 수밖에 없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고민해야 할 최대의 과제인 것이다. 우리 앞에 놓인 진실을 분명히 봐야 하는 순간이 왔을 때, 눈을 감을 것인가, 뜰 것인가. 우리는 소설 속 인물들을 통해서 섬뜩한 삶의 굴레 안에 있다는 사실을 또 한 번 실감한다. 어떤 인물에도 탄식할 수밖에 없다. 무엇을 택하더라도 후회할 수밖에 없다. 그 아이러니가 바로 소설을 읽는 이유다.

2021-10-05

가치를 삽니다, 미닝아웃

최근 옷장 정리를 하면서 내가 가진 물건을 다시금 살펴보게 되었다. 한 때 유행이었지만 낡은 브랜드 후드티, 지하상가에서 저렴하게 구입한 검정 코트, 언제 산지 기억도 안 나는 화장품들까지. 정체를 알 수 없는 물건이 한 가득 산을 이루고 있으니, 나의 소비습관이 한참이나 잘못되었단 걸 깨닫고 말았다.그 뒤론 물건을 살 때 고려하는 부분이 까다로워졌는데, 첫 번째는 합리적인 가격이다. 턱없이 비싸거나 또 지나치게 저렴한 것은 의심부터 하고 본다. 과한 소비를 경계하되, 너무 저렴한 것은 겨우 한 계절 입고 버리게 되므로 적당한 가격에서 오래 쓸 수 있는 것으로 고른다.그리고 가장 중요한 두 번째는 바로 제품이 지닌 가치다. 단순히 상품성만 지닌 물건이 아닌, 지속 가능 소재로 만들어진 친환경적인 소재나 리사이클링 제품, 특정 스토리가 담겼거나 옳은 가치관을 품은 제품을 우선적으로 고르게 됐다.이를 미닝아웃이라고 칭하는데, 미닝아웃이란 Meaning(신념)과 Coming out(정체를 드러내다) 두 가지 단어가 결합된 단어로, 자기 가치관과 사회적 신념을 소비를 통해 드러내는 행위를 말한다.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제품이 지닌 가치를 우선적으로 고려하여 구매하는 것이다. 미닝아웃은 MZ세대(1980년대 초반~2000년대 초반 출생 세대) 사이에서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 잡은지 오래다.인종 차별이나 성차별 반대 문구가 쓰인 옷을 입는다거나, 일정 금액 이상이 위안부 할머니에게 기부되는 제품들을 애용한다거나, 세월호 리본을 가방이나 의류에 달고 다니는 등, 개인적 신념을 소비를 통해 적극적으로 드러내는 것이 하나의 유행처럼 자리 잡았다. SNS에서도 미닝아웃의 흐름을 쉽게 볼 수 있는데, 이들은 소비를 통해 자신이 지향하는 가치와 정체성을 가감 없이 드러내어 공유하고 놀이처럼 즐기기도 한다.대부분의 업사이클링 제품은 다소 가격이 나가는 편이다. 버려진 물건이 재활용되기까지 까다로운 공정 과정을 거친다. 사용 가능한 부분을 선별하여 세척하고 가공하는 과정엔 많은 시간과 자본이 들어간다고 한다. 미닝아웃을 지향하는 이들은 물건을 고를 때의 주요 선택 기준은 가격이 아닌, 나의 소비가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는지가 더 중요하다. 또한 업사이클링 제품은 전 세계에서 단 하나밖에 없기도 하다. 같은 제품일지라도 버려진 물건으로 만들어지는 것이기에 디테일적인 부분이 다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희소성과 특유의 감성, 그리고 특수한 가치 발견으로 더욱이 미닝아웃적을 지향하는지도 모르겠다.또한 코로나19가 지속되면서 지구 온난화와 이상 기후 등 환경 문제에 대해 더욱 많은 이들이 집중하고 있다. 개인 텀블러나 에코백 사용, 플라스틱 사용을 일절 줄이는 제로 웨이스트, 비건 지향 등 과거 일부 층에서만 지향했던 흐름들이 점차 많은 사람들로 확대된 영향도 있을 것이다.이 흐름에 발맞추어 몇몇 기업에선 친환경적 경영을 내세우고 있다. 환경보호를 위해 물병을 두른 라벨지를 삭제한다거나, 폐지를 이용해 크라프트 보드를 사용하는 것, 플라스틱 빨대 사용을 전면 중지하고 종이 빨대를 쓰는 등 가치소비 운동의 흐름이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윤여진 2018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 부문에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현재보다 미래가 기대되는 젊은 작가. 사실 난 소비 습관이 엉망인 편이다. 가장 저렴한 물건이나 의류를 하나 산 뒤에, 고장나거나 해진 경우엔 바로 버리고 새로 사곤 했으니까. 심지어 옷의 경우엔 취향도 없고 나와 어울리는 스타일도 몰라서 주로 유행에 맞춰 구매하기도 했다.그래서 의미 있는 가치를 의식하고 나서부턴 전과는 조금 불편한 점이 있긴 하다. 길거리를 지나다니며 눈에 띄는 옷을 빠르게 구입한다거나, 현재 유행하고 있는 옷을 쉽게 사는 편리함이 없으니까. 친환경 브랜드인지 이것저것 따져가며 비교해야 하고, 전과는 다른 시간과 돈이 배로는 들기 때문이다.마트에서 장을 보는 것도 그렇다. 가공육 사는 것을 줄이고, 방사사육 달걀을 선별하여 골라보는 등. 조금 불편함을 감수해서라도 유난을 떨게 되는 것은 좋은 소비를 통한 만족감이 꽤나 컸기 때문이다. 나의 변화가 정말 환경에 도움이 될 수 있을까? 그렇다고 단언할 순 없지만 내가 할 수 있는 몫 안에선 조금씩 동참해보는 중이다.

2021-09-28

어떤 시참

기형도 시집 ‘입 속의 검은 잎’. /문학과지성사 국어사전은 시참(詩讖)이라는 단어를 이렇게 설명한다. “우연히 지은 시가 뒷일과 꼭 맞는 일”이라고. 백석은 1936년에 짝사랑하는 여인 박경련을 만나러 무작정 통영에 갔다가 그녀를 만나지 못하고는 슬퍼서 “내가 좋아하는 그이는 푸른 가지 붉게붉게 동백꽃 피는 철엔 타관 시집을 갈 것만 같은데”(‘통영 2’)라고 썼는데, 이듬해인 1937년 봄 박경련은 백석의 가장 친한 친구였던 신현중과 백년가약을 맺는다.“스물세 해 동안 나를 키운 건 팔 할이 바람이다”라는 명구를 ‘자화상’에 새긴 서정주는 그 시의 다른 대목에 “나는 아무것도 뉘우치진 않을란다”라고 쓰고는 정말 아무것도 뉘우치지 않았다. 자기 평생이 친일, 독재 미화 등 오욕으로 얼룩지리란 걸 젊은 날의 방황 속에서 이미 알았을까?2005년 등단한 신기섭의 한국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나무도마’에는 “아직도 상처받을 수 있는 쓸모 있는 몸, 그러나/ 몸 깊은 곳 상처의 냄새마저 이제 너를 떠난다 (…) 혹은 어떤 상처도 받지 않는 무덤 속 같은/ 너의 몸”이라는 어두운 문장이 있다. 그의 시에는 유난히 죽음에 대한 묘사가 많았는데, 그는 그해 12월 4일, 눈길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시인이 자신의 홈페이지에 마지막으로 남긴 일기는 섬뜩하다. “옥상에 흰 눈이 쌓이고 있다. 눈이 많이 온다는데 새벽에 출장, 영천행. 무언지 모를 불길한 기분… 옥상에 쌓이는 눈은 나 아니면 아무도 밟아줄 사람이 없다”는 독백이 시참이 된 것이다.“한 나라가 다시 살고 다시/ 어두워지는 까닭은/ 나 때문이다. 아직도 내 속에 머물고 있는/ 광주여, 성급한 목소리로 너무 말해서/ 바짝 말라 찌들어지고/ 몇 달 만에 와보면 볼에 살이 찐,/ 부었는지 아름다워졌는지 혹은 깊이 병들었는지/ 아무것도 알 수 없는 고향, 만나면 쩔쩔매는/ 고향, 겁에 질린 마음을 가지고도/ 뒤돌아 큰 소리로 외치는 노예, 넘치는 오기/ 한 사람이, 구름 하나가 나를 불러/ 왼종일 기차를 타고 내려오게 하는 곳/ 기대와 무너짐, 용기와 패배,/ 잠, 무서운 잠만 살아 있는 곳, 오 광주여”라고 노래한 이성부의 시 ‘광주’는 1980년 5월 이후 쓰인 것이 아니다. 이 시는 1972년에 발표됐다. 믿어지지 않겠지만 사실이다. 어떤 시는 그것을 쓴 시인의 자기 운명이 되기도 하고, 또 어떤 시는 훗날 공동체가 겪을 사건의 예지몽이 되기도 한다.“신이여 아이들을 버리소서/ 세상이 이미 아이들을 버렸습니다/ 못 박힐 순결한 손이 필요 없나이다/ 집채만 한 파도가 아이들을 삼켰다 어둠이 하는 일을 어둠은 끝내 알지 못하므로/ 당분간 종려주일은 없을 것이므로”라고 쓴 이원의 시 ‘검은 모래’는 그래서 더 아프고 슬프고 무섭다. 시인의 직관은 미래의 비극을 예감하고 있었을까. 이 시는 2013년 여름에 발표됐다. 시인이란 존재는 샤먼과도 같다.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고, 듣지 못하는 소리를 듣기 때문이다. 그것은 축복인 동시에 저주이기도 하다.기형도는 1989년 초에 발표한 시 ‘빈집’에서 “잘 있거라,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들아/ 나 이제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네/ 가엾은 내 사랑 빈집에 갇혔네”라고 썼다. 그리고 얼마 뒤인 3월 7일, 파고다극장에서 심야영화를 보다 뇌졸중으로 쓰러져 일어나지 못했다. 그의 나이 만29세였다. 이병철 문학평론가이자 시인. 낚시와 야구 등 활동적인 스포츠도 좋아하며,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열무 삼십 단을 이고/ 시장에 간 우리 엄마/ 안 오시네, 해는 시든 지 오래/ 나는 찬밥처럼 방에 담겨/ 아무리 천천히 숙제를 해도/ 엄마 안 오시네, 배추잎 같은 발소리 타박타박/ 안 들리네, 어둡고 무서워/ 금간 창 틈으로 고요히 빗소리/ 빈방에 혼자 엎드려 훌쩍거리던”(기형도, ‘엄마 걱정’) 시인은 유년 시절에도, 어른이 돼서도 “우리 엄마 안 오시네” 걱정했는데, 이승에서의 생보다 더 길고 오랜 저세상에서도 내내 엄마 걱정을 했을 것이다. 지난 22일, 시인의 어머니인 장옥순 여사께서 소천했다. 아들과 남편이 잠든 안성천주교묘원에서 영원한 안식을 누리게 됐다.에디뜨 피아프가 부른 ‘사랑의 찬가’엔 “신께서 사랑하는 사람들을 다시 만나게 해주시겠지요”라는 노랫말이 있다. 연인 마르셀 세르당을 비행기 사고로 잃고서 찢긴 가슴으로 부른 노래다. 그 또한 아름다운 시참일 것이다. 이제 시인은 오래 기다리던 ‘엄마’를 하늘에서 만나게 됐다. “어둡고 무서웠”던 죽음의 세계에도 재회의 기쁨 있으리라.

2021-09-28

예민함이라는 능력

“넌 참 예민하고 피곤하다.” 어렸을 때부터 듣던 말이다. 가족들은 물론이고 친구들에게도 자주 들었다. 누군가가 나를 그렇게 보고 있다는 사실이 썩 유쾌하진 않았다. 그 말을 들으면 발끈해서는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한참 동안 피력하기도 했다. 그러한 행동이 내가 예민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방증이었다는 건 나중에야 깨달은 일이다.본인이 예민하다고 여기는 사람들은 공감할 것이다. 타인의 사소한 언행이 일순간 날카롭게 바뀌어 가장 아픈 곳을 찌르는 경험을 말이다. 어떤 순간은 가시처럼 박혀서 꽤 오랫동안 깊은 상처로 남는다. 누군가는 아무렇지 않게 넘기는 일이 굉장히 언짢고 불편하다. 이러한 성정에 공감하는 사람을 만나면 기쁘다. 그래, 나 같은 사람이 또 있던 거야. 뿌옇던 유리창이 맑아지는 것처럼 선명하게 깨닫게 되는 것이다.정말이었다. 나는 계속해서 불합리한 것들을 발견해냈다. 그건 아주 미세한 지점이었다. 식탁 위의 맛있는 반찬은 항상 오빠 쪽으로 기울어져 있다던가, 텔레비전의 리모컨을 쥔 사람은 늘 엄마라는 식의 일들. 나에게 레이스가 달린 불편한 옷을 선물하는 아빠는 어째서 활동성 좋은 옷을 입고 명절에 음식을 만들고 치우는 식구들은 왜 여자들뿐인가. “이건 불공정하다”라고 소리치면 “예민하고 유난이다”라는 답만 돌아왔다.왜 남자애들은 학교 운동장을 누비면서 축구를 하고 제멋대로 웃통을 벗어젖히는 동안에 여자애들은 구석에 그려진 좁은 선에 갇혀 서로를 향해 공을 던져야 하는가. 같은 반 친구에게 괴롭힘을 당해도 걔들은 원래 그렇다고, 착한 네가 참으라는 말을 들어야 하는가. 가만히 있어도 땀이 흐르는 여름에 교복 셔츠 위로 브래지어 자국이 비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한 겹의 옷을 더 껴입는 일, 선생님의 폭언에도 대꾸하지 못하고 고개를 숙이는 일, 우등생의 실적을 위해 내가 하고 싶은 활동을 포기하는 일은 여린 마음을 무자비하게 찌르기에 충분했다.나는 끊임없이 분노했다. 그러한 태도로는 어떤 것도 해결되지 않았다. 부당하다는 말을 할수록 사람들은 나를 불편해했다. 예민하고 피곤한 사람이라는 판단은 어린 나를 주눅 들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그러한 비난으로부터 나를 방어해야 했다. 나는 주문처럼 외쳤다. ‘이 세계는 원래 그렇다. 좋은 게 좋은 거다.’ 어찌 보면 간편한 일이었다. 그저 내 성격을 탓하면 끝나는 일이었으니까. 무던해지려고 애썼다. 다양한 삶의 지점에서 불편하다는 생각이 들면 눈을 질끈 감았다. 아끼던 물건이 마모되어 돌아와도 무례한 언사를 들어도 참아냈다. 그리고 그저 사람 좋은 웃음으로 대신했다. 그러면 많은 일이 해결되는 것처럼 보였다.그러니까 나의 사춘기는 나 자신을 부정하면서 동시에 인정하는 과정이었다. 나 자신과 그를 둘러싼 세계를 명명백백하게 논리적으로 설명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 일이었다. 나의 비뚤어진 부분을 발견하고 온 힘을 다해서 거부하지만 결국 그런 인간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순간, 나는 어른이 되었음을 직감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어느 순간부터 나는 나의 예민함을 받아들였다. 글을 쓰게 되면서 예민함은 귀한 재료로 사용되기도 했다. 예민하다는 것은 삶에서는 불행일지 모르지만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는 힘이 된다. 아무도 발견하지 못한 균열의 지점을 포착하는 능력이 이 예민함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문은강 ‘춤추는 고복희와 원더랜드’로 주목받은 소설가. 2017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작가로 등단했다. 때때로 길가에 앉아서 오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골똘히 쳐다본다. 그들의 고단한 걸음걸이를, 해를 등지고 길게 늘어지는 그림자를 응시한다. 그리고 생각한다. 그들에게는 분명 내게 보이지 않는 서사가 있을 것이라고. 머리맡에 다양한 이야기가 잔뜩 운집해 있기에 언제 쏟아져 내려도 이상하지 않다. 나는 가시 돋친 서사에 기꺼이 손을 댄다. 따갑고 아프지만 내 안에서 새롭게 피어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이것은 기민한 눈으로 주변을 둘러볼 수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그러니 자신의 예민한 성정으로 괴로워하는 누군가에게 말하고 싶다. 당신은 아주 귀한 능력을 갖추고 있다고.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 사이에 숨겨진 경계를 발견하여 아낌없이 꺼내어 놓는 일은 실로 대단한 것이라고. 그리하여 확장되는 시야는 분명 유의미하다고. 어쩌면 그토록 불편한 우리가 이토록 부당한 세계를 바꿀 수도 있다고 말이다.

2021-09-14

레트로가 지나간 자리에서

영원할 것 같던 레트로 열풍도 이제는 한 풀 꺾인 모양이다. 패션, 음악, 영화, 사진, 음식, 인테리어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사물들이 90년대 감성으로 포장되어 거리를 꾸미던 모습은 우리를 그리웠던 옛 시절로 데려가기 충분했다.듀스를 좋아했던 나에게 ‘여름 안에서’를 떠올리게 하는 노래들은 분명 반가움 이상의 무언가가 있었다. 하지만 그걸 뭉클했다고 말하기에는 어딘가 찜찜한 기분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아마 90년대에 유년시절을 보낸 나에게는 레트로가 만든 풍경이 익숙하면서도 어딘가 이질적이었기에 그랬던 것 같다.과거를 회상한다는 건 분명 단순한 되새김질이 아니다. 이제는 볼 수 없게 된 사람들과 함께 보낸 시간, 사라진 장소를 거닐었던 순간을 떠올린다는 건 우리의 마음을 손쉽게 간지럽힌다.자그마한 화단이 가운데 놓인 ㄷ자 모양의 슬레이트집, 매일같이 골목길에 모여 고무공을 차고 놀던 친구들, 도무지 내용이 기억나지 않는 유치원의 연극, 처음으로 교복을 입고 거닐었던 중학교의 운동장, 하릴 없이 쏘다니던 개천변의 풍경 같은 것들.이제는 사라진 극장에서 영화를 보던 기억이나 학교를 땡땡이 치고 패스트푸드에서 시간을 뭉개던 재수시절 같은 것들은 평범하지만, 그래서 더 소중하게 남은 시간이 아닐까.하지만 그 기억들이 마냥 기쁨과 환희의 시간이었느냐고 묻는다면 그건 아니었던 것 같다. 세상 대부분의 사람들이 떠올리는 과거가 그러하듯 내가 가진 유년의 기억들에는 늘 한편에 얼룩 같은 것이 묻어있다.하교 길에 성폭행을 당할 뻔 했던 누나에 대한 기억, 시도 때도 없이 찾아오던 지긋지긋한 빚쟁이들, 매일같이 친구들과 모여 놀던 골목에서 형들에게 이유 없이 맞았던 기억이나 금품을 갈취당한 기억 같은 것들 말이다.단지 가난이라고 말하기에는 일그러진, 나의 그리운 1990년대. 이런 유년의 시간들을 마냥 행복했다고 말하기엔, 나의 마음은 여전히 성글다. 누구라도 그럴 것이다.이런 말을 할 때면 친구들은 이렇게 말한다. 너무 복잡하게 생각하는 거라고. 레트로 문화라는 건, 그냥 그런 느낌을 즐기는 거라고. 하지만 나에겐 그 감성이 ‘그냥’ 즐기기엔 너무 무겁고 힘들었다. 세상을 인식하는 방식은 각자가 다르다. 레트로가 한 때의 유행으로 지나가버린 지금, 안도감을 느낄 정도로 말이다. 사실 이건 지나치게 개인적인 이야기로 들리지만, 마냥 개인적인 이야기는 아니다.내가 느낀 이질감의 정체는 이런 게 아니었나 싶다. 90년대에 우리가 함께 겪었던 슬픔과 고통들이, 레트로의 열풍 속에서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는 사실. 삼풍백화점에서부터 성수대교, 대구 상인동, 씨랜드, 연천 예비군 훈련장, 서해 훼리호…. 그리고 IMF까지.지금 우리가 선 자리는 그런 크고 작은 사건과 참사들 위에 세워진 것 아니었나. 항상 기억하자고 말하던 우리는, 모두 어디로 사라진 걸까. 그렇게 슬픔과 고통을 잘라내고 유흥과 부흥을 기워넣고는 ‘레트로’라는 이름으로 웃고 떠드는 모습이 나는 슬펐던 것 같다. 임지훈 2020년 문화일보, 서울신문 신춘문예 평론 부문에 당선된 문학평론가. 한양대 국문과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나의 슬프고 찬란한 기억이 단지 가벼운 농담이 되어버린 것 같아서…. 레트로라는 유행 속에서, 그 모든 것을 웃고 즐기기에 나는 너무 무거운 사람이었던 것 같다. 천성이 그런 탓일 게다. 상품이 되어버린 기억을, 나는 조금 버티기 힘들었다.과거가 돌아온다는 건, 지금처럼 웃고 즐기는 형태로 돌아오는 것만을 의미하지는 않는 것 같다. 그건 우리가 은연중에 억압해온 무언가, 우리가 지금의 삶의 형태를 유지하기 위해 배제하고 은폐했던 그것이 섬광처럼 우리의 삶을 잘게 찢는 순간도 분명 포함하고 있을 것이다.언젠가 우리 앞에 과거가 돌아온다면, 그건 우리가 레트로 열풍 속에서 삭제했던 부분들이 우리 삶의 한복판에 나타나는 일일지도 모른다.그러니 가끔은 그런 일도 필요할 것이다. 우리가 걸어온 시간을 기쁨과 환희를 통해 들여다보는 것이 아니라 슬픔과 고통의 표정으로 바라보는 것 말이다.

2021-09-14

촉법소년, 우리 모두의 문제

최근 한 동영상을 보았다. 외제차를 훔쳐 달아난 이들이 경찰에 붙잡혔는데, 차에서 내린 이들은 한 눈에도 앳되어 보이는 어린 소년들이었다. 차를 왜 훔쳤냐는 기자의 질문엔 손가락 욕설과 입에 담기 힘든 욕으로 대답을 대신하는 모습이 카메라에 고스란히 담겼다. 이들 중 2명은 촉법 소년으로, 훔친 차로 운전을 했지만 만 14세 미만의 청소년이란 이유로 형사처벌을 면했다.촉법소년이란 만 10세이상 14세 미만 형사 미성년자이다. 만 14세 이상 19세 미만의 범죄 소년은 죄질에 따라 형사처벌이나 소년재판을 받게 되지만, 14세 미만의 청소년은 촉법 소년이라 분류되며 범죄를 저질렀을 시 형사처벌이 아닌 보호처분을 받게 된다. 보호처분을 받게 될시엔 범죄의 강도에 따라 보호관찰서로 인계되거나 정해진 시설로 넘겨지는 시설위탁처분, 소년원 송치처분등이 내려진다고 한다. 여기서 가장 의아한 건 어떠한 전과기록도 남지 않는다는 거다.이러한 너그러운 법안을 악용해 촉법소년들은 더한 범죄를 저지른다. 과거 서울에서 차를 훔친 8명의 청소년들은 대구까지 내달렸으며 경찰과의 추격 도중 대학생이던 배달기사의 오토바이를 쳐선 사망에 이르게 했다. 결국 얼마 못 가 붙잡혔으나, 경찰서 안에서 셀카를 올리며 ‘한 달 뒤에 보자’는 글을 sns에 올려 반성 없는 태도를 보이기도 했다.이들은 이전에도 주유소에서 돈을 훔쳐 달아나거나, 차량을 절도하는 행위를 반복했음에도 촉법소년이라 매번 풀려났다고 한다. 결국 운전대를 잡은 청소년만 소년원으로 송치되었으며 나머지 소년들은 경찰 조사 후 곧장 훈방되었다.아주 오래 전부터 소년 범죄나 만행은 대두되어왔지만 날이 갈수록 죄질의 양상이 달라지고 있다. 이들의 성에 대한 관념 또한 옳지 못한 방향으로 흐르고 있는데, 최근 CCTV가 없는 지하실에 또래 여학생을 데려가 성추행한다거나, 동영상을 몰래 찍어 신고하겠다며 협박하는 일례가 또 발생했다. 또래 아이를 성추행하거나 성폭행 하는 사건은 십여 년 전부터 끊임없이 문제되곤 했지만 여전히 아무것도 변한 게 없으니 안타깝다.N번방 사건의 일부 가담자 중엔 촉법소년도 포함되어 있다고 한다. 피해자는 깊은 상처를 가슴 속에 묻으며 영원히 사회 복귀에 실패하지만, 가해자는 어린 나이에 잠시 비행을 했단 이유로 솜방망이 처벌과 교화를 통해 사회 복귀에 안전하게 성공한다. 깨끗한 전과 기록으로 사회에 복귀하여 거리를 활보할 수 있도록 법이 나서서 도와주기 때문이다.촉법소년의 범죄 유형은 살인, 강도, 절도, 폭력 등의 강력범죄 죄목에 해당된다. 실제로 만 13세부터 꾸준히 범죄가 급증하고 있으며 대검찰청은 3회 이상 재범을 저지를 확률이 높다고 발표하기도 했다.현재 여러 나라에서도 소년법을 나이에 따라 처벌을 달리하는데, 검색해본 결과 스코틀랜드는 촉법소년에 해당되는 연령을 8세 미만이라 규정했으며 미국의 일부 주에선 7세 미만 정도로 해당 연령이 낮은 편이다. 최근 국내에서도 촉법소년들의 잇따른 만행에 형사 미성년자와 촉법소년의 연령대를 낮춰야 한다는 여론이 들끓고 있다. 윤여진 2018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 부문에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현재보다 미래가 기대되는 젊은 작가. 물론 어느 정도 가이드 기준이 있어야겠지만 단순하게 나이로 죄질을 달리하여 책임을 묻는 것이 최선인가 싶다. 나이와 무관하게 죄는 죄고 저지른 건 실수가 아니라 책임을 물어야 한다. 그러니 저지른 범죄에 중점을 두어 합당한 처벌과 교육을 받아야 한단 생각이다. 이 문제는 꼭 청소년들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자극적인 영상을 창출해내는 어른의 책임, 법적 교육의 부실 문제나 가해자를 묵인하려는 태도와 가벼운 비행이라 치부하며 넘어가는 어른의 잘못도 분명히 있다.영화 ‘시’에 등장하는 양미자는 세상은 아름답고 시는 숭고한 것이라 믿는다. 자신의 손자가 성폭행으로 한 여학생을 죽음으로 내몰았단 걸 안 뒤론 세상이 결코 아름답지 않음을 알게 된다.대부분의 어른, 특히 가해자의 부모들은 불쾌한 현실에 눈을 돌리거나 상황을 덮기 바쁘지만 양미자는 추악한 현실에 두 눈을 맞추어 고통에 응한다. 결국 모든 구성원이 힘을 합쳐 자세히 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건 모두가 해결해나가야 하는 문제다.

2021-09-07

시간강사로 산다는 것

얼마 전 급하게 돈 들어갈 데가 있어 은행에 신용대출을 신청했다. 승인을 거의 앞두고 급여 소득 증빙 차 건강보험자격득실 확인서를 제출해야 한다고 해서 서류를 발급했는데, 어찌된 일인지 직장 가입자가 아닌 지역 가입자로 되어 있었다. 그래서 대출을 받지 못했다. 지난 2년간 한국연구재단 박사 후 국내 연수 연구원으로 4대 보험 혜택과 함께 고정 급여를 받았는데, 그게 종료되면서 건강보험 자격에도 변동이 생긴 것이다. 세 곳의 대학에서 시간강사로 출강하고 있지만, 월 60시간 미만 근로자로 분류되어 국민연금, 산재보험, 고용보험까지만 적용이 되고 건강보험은 해당되지 않는다.인문학 연구자들은 대학에서 자리 잡지 못하면 그야말로 ‘잉여인간’이 된다. 박사학위까지 받느라 고생한 걸 생각하면 이제 와 다른 일을 할 수도 없거니와 이미 30대 중후반을 넘긴 나이다. 시간강사를 속칭 ‘보따리장수’라고 부르는 것은 이 학교 저 학교를 떠돌아다니며 강의 시수대로 급여를 받기 때문이다. 내 경우에는 이번 학기 세 학교에서 다섯 개 강좌 총 14시간 수업을 한다. 시간당 강의료는 3만5천원에 불과하다. 다 합해봐야 월 200만원이 채 되지 않는 박봉이다.세 시간짜리 수업 하나를 위해 강의록을 만들고, 교재 연구를 하고, 강의 및 평가 계획서를 작성하고, 학생들의 과제물을 읽고 일일이 피드백을 해준다. 비대면 온라인 수업 환경에서는 품이 더 많이 들어간다. 25분짜리 수업 영상 세 개를 촬영하고, 자막을 입히고, 인코딩을 하고, 인터넷 강의실에 업로드하는 데 10시간 가까이 소요된다. 거기에다 아동학대 예방교육, 성폭력 예방교육, 청탁금지법 교육, 교수법 특강, 산업안전 교육, 장애 인식 개선교육 등 온갖 교육까지 이수해야 한다. 교강사 업적평가에 포함되기에 밤을 새워서라도 영상 강의를 다 시청해야만 한다. 녹록지 않지만 문학을 가르친다는 것에 자부심을 갖고 최선을 다하고 있다. 학생들도 그 노력을 좋게 봐줘서 매번 강의평가 때마다 높은 점수를 받고 있다. 작년에는 학교 전체 교강사 중에서 강의평가 3등 했다. 그래도 강의료는 3만5천원이다.박봉보다 더 서글픈 것은 시간강사를 그저 소모품 정도로 여기는 대학과 정부의 인식이다. 며칠 전 아동학대 예방교육을 이수하러 교육부 중앙교육연구원 사이트에 접속했다. ‘직급명’을 필수 입력해야 해서 직급코드 조회란에 ‘강사’라고 쳤더니 ‘전임강사’는 나오는데 시간강사는 없었다. 전임강사가 아닌 나는 어떤 직급명을 택해야 하나 한참 고민하다가 결국 ‘직급없음(방과후강사)’을 클릭했다. 교육부의 직급코드 데이터베이스에 시간강사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출강하는 한 학교에서는 내게 ‘캡스톤디자인’이라는 교과목을 맡겼다. 학과에도 처음 도입되는 수업 모듈을 시간강사인 내가 잘 알 리 만무하다. 용어조차도 생소하지만 대충 요약하자면 산업체와 협업해서 무언가 실용적인 결과물을 도출해내는 산학 협력 프로젝트다. 시를 읽고 쓰는 문예창작과 시 창작 수업을 산업체와 어떻게 연결해야 할지 막막하다. 담당 강사인 내가 직접 프로젝트를 구상하고, 협업할 산업체를 선정하고, 과제 신청서와 결과보고서를 작성해 제출하고, 지원받는 과제 경비 정산을 해야 한다. 학과에는 최대 2천만원의 지원금이 나오고, 산업체 담당자와 학과 전임교수에게는 멘토 수당이 지급되지만 정작 교과목 운영 강사에게는 지급되지 않는다. 이병철 문학평론가이자 시인. 낚시와 야구 등 활동적인 스포츠도 좋아하며,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강사법이 시행된 지 2년이 다 되어가지만 강사들이 처한 상황은 더 악화되고 있다. 2019년과 비교해 강사 자리는 2만여 개 줄었고, 정부는 사립대 시간강사 지원 예산을 삭감했다. 개정된 강사법대로라면 대학은 강사에게 1년 이상 전임교원 자격을 부여하면서 국민연금 등 4대 보험을 적용하고, 방학 중 임금 및 퇴직금을 지급해야 하지만, 강사법의 사각지대를 교묘하게 이용해 처우는 제대로 보장하지 않으면서 강사에게 수업 외 업무까지 떠맡긴다. 게다가 대학들은 재정악화를 이유로 강사 수를 줄이고, 초빙교원과 겸임교원을 늘리는 편법으로 강사법을 무색하게 하는 중이다.손 놓고 있을 수만은 없어 당근마켓에서 2006년식 낡은 스쿠터를 40만원 주고 사서는 배달대행 부업을 시작했다. 엄마한테는 괜히 말했다 싶다. 배달 라이더들 사고가 많은 요즘, 아무리 걱정하지 말라 한들 엄마는 걱정하실 것이다. 속이 탄 엄마는 “공부를 그렇게 많이 했으면서 할 일이 그것밖에 없어?” 말했고, 나는 “공부를 많이 해서 할 일이 이것밖에 없는 거야” 대답했다.

2021-09-07

나는 나를 사랑할 줄 몰랐습니다

1년에 한 번씩은 그런 시기가 온다. 나는 대체 뭘 하고 있나 싶은 기분이 몰려드는 시기가. 10대 때에는 공부가 아닌 무언가가, 내가 더 잘할 수 있는 무언가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시달렸다. 대체 왜 공부를 해야 하는지, 남들과 똑같은 길을 가야만 하는 건지, 내 삶이 낭비되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생각해보면 그때 나는 그런 고민을 하고 있다는 사실 하나 만으로 타인에 대해 우월감을 느꼈던 것 같다. 나는 당신들처럼 되는 대로 인생을 살지 않는다는, 진지하게 내 삶을 바라보고 있는 거라는 우월감. 어째서 사람들은 질문을 품지 않는지, 스스로의 인생에 회의하지 않는지…. 그건 그들이, 나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스스로의 삶에 무책임하고 무능력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20대가 되어서도 그 질문은 사라지지 않았다. 나는 진짜를 갖고 싶었다. 술에서 깨어났을 때 찾아오는 허무감 같은 행복이 아니라, 나를 충만하게 해줄 그런 기분 말이다. 하지만 30대가 되어서도 그런 건 찾지 못했다. 지금은 또 왜 이런 대우를 받으면서까지 내가 이런 일을 해야 하는가라는 생각에 시달리고 있다. 이런 기분이 몰려들 때면 극심한 회의감에 아무것도 좀처럼 손에 잡히지 않는다. 아무리 급한 일이 있어도 마음은 움츠러들 뿐이고, 단지 초조한 기분에 마음을 갉아 먹힐 뿐이다. 나는 정말 진정한 내 삶을 살고 있는 걸까. 내가 생각해온 삶은, 정말 이런 거였나? 고작?한 때는 이런 질문들이 정말 쓸모없는 질문이라고, 단지 내 삶을 갉아먹을 뿐인 질문이라고 생각했던 때도 있었다. 그건 모두 내가 스스로의 나약함을, 나의 무능을 받아들이지 못했기에 드는 생각일 뿐이라고. 지금 나에게 중요한 건 내 앞에 있는 할 수 있는 일들과 해야 하는 일들을 하는 것이라고 굳게 다짐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그러다가도 어느 순간이면 나는 다시금 10대의 모습으로 되돌아가고 만다. 극심한 회의감과 우울감, 무기력감이 나를 엄습해오고, 어딘가에 나의 진짜 삶이 있을 것만 같은 기분에 시달린다. 그래. 나는 결국 버리지 못한 것이다. 어딘가에 진짜 내가, 진정한 나의 삶이 있을 거라는 생각을 말이다. 그렇다보니 나의 다짐들은 늘 쉽사리 무너졌고, 술을 마실 때면 늘 이런 푸념을 쏟아내곤 했다. 나는 이런 사람이 아니다, 나는 이런 삶을 살 사람이 아니다. 누구 때문에, 혹은 어떤 사건 때문에, 하다못해 어떤 이유 때문에, 나는 나의 꿈을 접어야만 했다고…. 누군가를 쉽사리 원망하곤 했다. 어머니를, 아버지를, 할머니를, 나의 누나를, 나의 친구를, 나의 연인을, 그 모든 당신을. 나는 진심으로 당신을 미워했던 것이 아니다. 내가 정말로 미워했던 건, 이런 내 자신이었다.내가 당신에게 쏟아냈던 모든 말들…. 미움과 증오와 욕설로 가득했던 그 말들은, 사실 당신을 향한 게 아니었다. 그 말들은, 모두 나 자신을 향해 했던 말이었다. 무능하고, 무력하며, 화내야 할 사람을 향해서는 화내지 못한 채, 스스로 삭히는 게 버릇이 되어버린 멍청한 나를 향해서 했던 말들이었을 뿐이다. 나는 늘 남들이 세상에 굴복하고, 세상에 휘말려 떠내려갈 뿐이라고 비난하곤 했지만, 그러는 나 또한 그랬을 뿐이었다. 정말로 세상에 굴복한 건 나였고, 휘말려 떠내려갈 뿐이었던 것도 나였다. 그래서 나는 당신을 욕하고, 당신을 증오해야만 했다. 모든 것이 당신의 탓이라고 믿어야만 했다. 나는 누구보다 나약한 한 사람이었으므로. 임지훈 2020년 문화일보, 서울신문 신춘문예 평론 부문에 당선된 문학평론가. 한양대 국문과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안타깝게도 이 이야기에는 아직 드라마틱한 결말이 없다. 나는 여전히 당신에게 사과하지 못했고, 시간은 여전히 흘러가고 있을 뿐이다. 단지 바뀐 게 있다면, 이제는 내가 당신을 정말로 미워하는 지 알 수 없게 되었다는 것. 그것이 나의 진심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는 것. 이 말을 내가 당신에게 전한다면, 당신은 나의 머리를 한 번쯤은 쓰다듬어 줄까. 아니면 이제는 당신도 나를 미워한 나머지 그런 가증스러운 말 하지 말라고 화를 낼까. 알 수 없다. 이 모든 이야기의 결말은 여전히 저 멀리 있으므로. 나의 생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으므로. 그러니, 이 이야기의 결말까지, 나는 무언가를 써나가야만 한다.하지만 이 이야기는 내가 진정한 나를 찾아가는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단지 살아가고, 살아갈 뿐인 이야기에 불과할 것이다. 우리가 그걸 평범한 삶이라고 부를 수 있으면 좋겠다. 우리의 평범함을 꽤 괜찮은 삶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다면 좋겠다.(개인 사정으로 이번 주부터 필자가 강백수씨에서 임지훈씨로 바뀝니다.)

2021-08-31

당신의 가이드 러너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던 중이었다. 일순 하늘이 흐려지더니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요란한 폭우였다. 고속도로 위에서 갑자기 벌어진 상황이었기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애꿎은 핸들만 으스러질 듯 세게 쥐었다.몰아치는 빗물을 와이퍼로 닦아내도 망막에 뿌연 장막을 덧씌운 것처럼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때 나는 순간적인 당황과 두려움을 느꼈다. 이토록 궂은 날씨에 운전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차 안에는 나 혼자뿐이었기에 도움을 요청할 사람도 없었다. ‘이러다 큰일 나면 어떡하지’하고 중얼거리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그러던 중 앞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는 비상등을 켜고 서로의 불빛을 의지해서 가야 한다는 이야기가 떠올랐다. 나는 미간을 잔뜩 찌푸리고서 앞차가 내뿜는 희미한 빛을 바라보았다. 사방을 분간하기 어려운 빗길에서 간신히 보이는 비상등은 내게 안도로 다가왔다.거센 빗줄기가 요동치는 희뿌연 세상을 의지해서 헤쳐 나가는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은 실로 커다란 위안이었다.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타인의 빛을 따라 차근차근 앞으로 나아가다 보니 어느새 목적지에 다다를 수 있었다.최근 온라인에서는 패럴림픽 육상 경기가 화제다. 도쿄 패럴림픽의 개막과 더불어 이전 경기에서 선수들이 보여줬던 감동적인 장면들이 재조명되고 있다. 시각 장애인 육상 경기는 시각 장애 등급이 있는 선수와 비장애인 가이드 러너가 한 팀이 되어 경기를 치르게 된다. 가이드 러너는 선수에게 출발선을 알려주고 자세를 잡아준다. 출발 직전 옆에 나란히 선 다음에 손을 끈으로 묶어 서로를 연결한다.가이드 러너는 선수보다 앞서서 달릴 수 없고 일정한 거리를 유지해야 한다. 결승선을 향하여 빠르게 달려 나가는 것은 선수의 역할이며 가이드 러너는 호흡을 맞추고 방향을 지시하며 한 몸과 같은 조력자의 역할을 한다.본디 한 사람이었던 것처럼 발맞춰 경기하는 두 사람을 보고 있노라면 그간의 노력이 고스란히 눈에 보이는 듯하다. 실제로 가이드 러너는 선수와 생활까지 같이하면서 늘 선수와 함께 호흡을 맞춘다. 보이지 않는 가운데 경기에 참여한다는 것은 그만큼의 신뢰가 바탕이 되어야 가능한 영역이기 때문이다.사람들을 더욱 감동하게 만드는 것은 그들이 모든 순간을 ‘함께’ 한다는 지점일 것이다. 준비는 물론이거니와 경기를 시작하는 순간부터 마치는 순간까지 함께 호흡한다. 승리의 단상에도 함께 올라가게 된다. 기쁨을 나누고 격려를 하는 것 역시 마찬가지다. 환희의 눈물을 닦아주거나 서로를 안아주는 모습을 목도하노라면 서로를 향한 뚜렷한 감정이 느껴지면서 나 역시 가슴 한쪽이 찡해진다.인생의 가이드 러너는 누구에게나 있다. 나는 내가 영원히 젊고 건강할 줄로만 알았고 그것을 누구의 도움도 없이 혼자서 얻은 것으로 생각했다. 이제 막 태어난 새끼 고라니처럼 나약한 주제에 걷는 법을 스스로 깨우쳤다고 자신한 것이다.그러나 시간을 지나오는 동안에 나를 나로 만들 수 있게 만들어준 수많은 조력자가 있었음을 깨달았다. 부모님, 선생님, 친구들, 그리고 글을 통해 만난 작가들의 무수한 언어가 지금의 길로 인도했다는 것을 떠올리면 실로 감사하고도 아득해진다. 문은강 ‘춤추는 고복희와 원더랜드’로 주목받은 소설가. 2017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작가로 등단했다. 가끔 우리는 서로가 서로에게 얼마나 큰 영향으로 존재하는지에 관하여 쉽게 잊곤 한다. 각자의 세계는 적당히 맞닿아 있을 뿐이며 하나의 끈으로 손을 잇는 것을 거추장스럽다고 여기기도 한다. 그러한 삭막함 사이에서 느끼는 균열의 지점 때문에 목적지를 잃고 헤매기도 한다. 타인을 완전한 타인으로 규정하는 순간 인생이라는 레이스가 외롭고 두렵게만 느껴지게 되기 때문이다.그럴 때면 세찬 비바람 속에서 지치지 않고 깜박이던 자동차 불빛을 떠올린다. 동시에 내 차의 불빛 역시 누군가가 앞으로 나아갈 힘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기억한다. 그 희미한 빛줄기가 서로의 구원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그러니까 인생의 가이드 러너는 아주 오랜 시간 동안 호흡을 맞춘 친구가 아니어도 괜찮지 않을까. 어느 낯선 이가 건네는 다정한 친절 정도로도, 우연히 마주친 누군가의 진솔한 문장 정도로도, 폭우 속에서 점멸하는 앞차의 비상등 정도로도, 우리는 결승선까지 나아갈 힘을 얻게 되는 것이다.

2021-08-31

말 많고 탈 많은 노튜브 존

출퇴근 길, 그리고 잠들기 전 꼭 빼놓을 수 없는 건 유튜브다. 언제부턴가 책 대신 유튜브로 빈 시간을 때우게 됐는데, 택스트를 읽는 것보다 피로감이 덜하고 손쉽게 유쾌함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다수의 연예인이 유튜브에 뛰어 들었고, 먹는 방송은 ‘mukbang’이란 이름으로 전세계적인 유행을 이끌고 있다. 초등생의 직업 선호 1위도 유튜버라니. 유튜브는 생각한 것보다 훨씬 일상 가까이 거대하게 존재하고 있다.며칠 전 유명한 식당 앞에서 유튜버는 받지 않겠다는 안내문을 봤다. 일명 노튜브 존(No-Youtuber zone)이라 부르는데, 말 그대로 유튜버는 식당 입장이 제한되며 이 안에선 어떤 영상 촬영물도 찍을 수 없단 뜻이다.한때 논란을 일으킨 노키즈존에 이어 최근엔 맛집 위주로 노튜브 존이 성행하고 있다. 사전에 합의 없이 대뜸 현장에서 촬영 가능 여부를 묻는다거나, 약속 없이 주방까지 촬영을 하는 무분별한 방송인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단 이유에서다. 2019년 한 개인 방송인이 동의 없이 가게 주방에 들어가 점원과 손님에게 피해를 준 이후 생기기 시작했다.유명한 일례로 다수의 구독자를 보유한 유명 유튜버 또한 가게에 들어가 음식이 맛이 없단 평을 남겼고 결국 그 가게는 손님의 발길이 끊겨 폐업의 위기를 맞기도 했다.엄밀히 말하면 피해를 입히는 방송인은 유튜브라는 플랫폼에만 있는 게 아닌, 다양한 인터넷 방송 플랫폼에서 쉽게 볼 수 있다. 자극적인 영상물, 과감 없이 드러내는 콘텐츠로 이슈를 만들어 내며 문제를 일으키는 것도 오래전부터 빈번했다. 개인방송에 대한 엄격한 규제나 가이드라인이 없기 때문에 일부 가게가 나서서 노튜브 존을 선언한 것으로 보여진다.모든 크리에이터들이 그렇다는 건 아니지만 길거리에서 큰 소리로 이야길 한다거나, 대뜸 춤을 추거나 과한 리액션으로 사람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몇몇 개인 방송인을 본 적 있다. 한때 한 플랫폼에선 길거리에서 예쁜 여성을 발견 하여 외모 평가를 하고 인터뷰를 요청하는 콘텐츠가 유행하기도 했다.몇몇 개인 방송인은 야외 촬영시 시청자가 후원하면 금액에 맞는 리액션을 장소나 상황 불문 보여준다. 그들에게 문제가 되는 건 태도다. 무엇이든 가리지 않고 공공장소에서 춤을 춘다거나 과도한 리액션으로 사람들의 주목을 받는 데 개의치 않아 한다.문제는 이 뻔뻔한 행동을 유머로 승화시키고 금전적인 이익을 얻으며, 이를 단순 흥미로 받아들여 즐기는 구독자가 존재한단 거다. 10대와 20초반 사이에서 자주 쓰는 언어나 유행어도 대부분 이들의 영상 속에서 등장한 것인데, 다소 격양된 목소리로 비아냥거리는 유행어나 성적 조롱은 정말 가만히 듣기 힘들 정도다.그러니 노튜버 존을 내건 식당들의 입장도 이해 간다. 실시간 방송은 주위 손님의 얼굴을 모자이크 처리할 수 없으니 고스란히 얼굴이 공개 되는데, 이에 대해 불만을 느끼는 손님도 상당하기 때문이다. 조용히 촬영을 한다고 해도 시청자와 꾸준히 소통을 해야 하기 때문에 소음이 발생하고 식사를 즐기러 오는 사람에겐 충분히 방해 될 수 있다. 더한 문제는 무료 홍보를 약속하며 공짜 식사나 서비스를 요구하기도 하는 방송인도 있다는 점이다. 윤여진 2018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 부문에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현재보다 미래가 기대되는 젊은 작가. 무례한 개인 방송인 때문에 양심적인 방송인 까지 모두 난처한 상황이 안타깝지만 엄연히 사업장은 업주가 노력을 들인 공간이고, 진상 고객을 거부하는 것 역시 가게 주인이 주장할 수 있는 권리다. 출입 금지라는 극단적 상황에 안타까우나, 법으로 규제가 어려운 상황이니 어찌할 수 없이 택한 선택일 것이다.게다가 노튜브존만 성행하는 것이 아닌, 중고등학생의 출입을 막는 노 유스 존, 카페에서의 공부를 막는 노 스터디 존, 침을 뱉는 다거나 고성방가를 하는 행위 때문에 등장한 노 래퍼 존 등등 다양한 이유와 형태로 입장을 막는 곳도 있다. 어떤 이유로 특정인의 출입을 막는 곳이 있다는 건 마냥 이해가 되는 것이 아닌 씁쓸함을 남기기도 한다. 최선은 나의 태도를 다시금 점검해보는 일일 것이다. 많은 이들의 인상을 찌푸리게 하는 건 어떤 이유든 정당화 될 수 없다.

2021-08-24

낄끼빠빠 합시다

‘낄끼빠빠’라는 말은 “낄 데 끼고 빠질 데 빠지자”라는 뜻이다. ‘낄끼빠빠’만 잘 해도 어디 가서 욕먹을 일 없다. 사회생활, 특히 인간관계에서 꼭 필요한 게 이 ‘낄끼빠빠’의 지혜다. 학생들 술 마시러 가는 데 꼭 껴서 같이 놀려는 교수님, 친구 커플들 여행가는 데 같이 놀러가겠다는 모태솔로, 결혼식장에 신부보다 더 화려한 드레스를 입고 온 하객, 주인공은 가만히 있는데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려고 오버하는 조연 배우… ‘낄끼빠빠’는 곧 눈치가 있고 없음의 문제다. 염치의 척도이기도 하다.물론 나라고 ‘낄끼빠빠’ 잘 하며 산 건 아니다. 학부 시절 학과에 좋아하던 여학생이 있었다. 나중에 안 얘기지만 그 애는 나 아닌 다른 녀석에게 이미 관심이 있었다. 그것도 모르고 어떻게든 마음을 얻으려고 설쳐댔다. 둘이 놀고 싶지만 학과에 소문 날까봐 괜히 마음에도 없는 말로 “병철아 너도 같이 놀자” 한 건데, 나는 혹시나 싶어 정말 적극적으로 열심히 놀았다. 얼마나 보기 싫었을까? 지금 돌아봐도 얼굴이 화끈거린다.시간강사가 돼서도 마찬가지다. 재작년 수업했던 4학년 학생들이 제주도로 졸업여행을 가겠다고 해 나도 마침 제주도에 낚시 가는 일정이 있어서, 학생들에게 숙소와 렌터카를 제공해주겠다는 약속을 했다. 학비 버느라 아르바이트하며 아끼고 모아 여행 경비를 마련했을 텐데, 졸업 선물을 해주고 싶었다. 그런데 내 역할은 딱 거기까지여야 했다. 괜한 오지랖을 부려 운전기사를 자청해서는 학생들의 여행 일정 내내 동행했다. 자기들끼리 찍는 기념사진에도 등장하고, 저녁마다 한 테이블에 앉아 술을 마셨다. 얼마나 불편했을까? 미안한 마음 감출 길 없다.그렇다고 끼지 말아야 할 데 끼고, 빠져야 할 데 안 빠지기만 한 건 아니다. 시인이자 문학평론가로 활동하면서 그동안 여러 군데 문예지와 문학 단체 등에서 편집위원이나 임원을 맡아달라는 제의를 받았지만 다 거절했다. 내 경력과 자질이 부족하다고 생각해서다. 어떤 형태든 ‘감투’라는 걸 쓰면 사람이 우스꽝스러워진다는 게 내가 가진 아름다운 편견이다. 그 편견이 나를 나로 살게 해준다. 나는 아직도 ‘글은 혼자 쓰는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다.‘낄끼빠빠’ 못하는 사람들 때문에 지난 얼마간 시끄러웠다. 김연경 선수에게 무례한 질문과 감사 인사를 강요한 배구협회 유애자 홍보부위원장이 논란이 됐다. 여자 배구선수 중 세계에서 가장 비싼 몸값을 받는 선수에게 “포상금이 얼마인 줄 아느냐”를 계속 묻더니 배구연맹 총재, 배구협회 회장, 금융회사 회장 이름을 줄줄이 읊어댔다. 그러고는 대통령에게 감사 인사하라고 강요했다. 그야말로 ‘안물안궁’(안 물어봤고 안 궁금하다)이다. 윗선에 잘 보여 출세의 동앗줄 잡으려는 이들의 과잉충성은 언제쯤 사라질까? 익명으로 돈만 보내고 생색은 내지 않는 성숙한 후원 의식은 언제쯤 자리 잡을까?경기관광공사 사장으로 내정됐다가 당내 계파 간 갈등으로 번져 후보 사퇴한 음식평론가 황교익씨 소동도 ‘낄끼빠빠’ 문제다. 후보로서 자격을 갖추고 절차를 준수했다 하더라도 유력 대권후보와 밀접한 관계에 있는 자신의 지원서 제출이 임명권자에게 일종의 ‘청탁’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어떻게 모를 수 있단 말인가? 관광공사 사장으로 하고 싶은 일이 정말 많다고 했는데, 아무리 의욕이 있고, 또 잘 해낼 능력이 있더라도 더 의욕 있고 더 잘 할 사람에게 양보했어야 한다. 이병철 문학평론가이자 시인. 낚시와 야구 등 활동적인 스포츠도 좋아하며,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2019년 강릉국제영화제 구경 갔을 때의 일이다. 개막식에 앞서 레드카펫 행사가 진행됐다. 맨 처음 안성기 배우가 등장해 환호성이 컸는데, 곧이어 국회의원이 레드카펫에 오르면서 본격적인 고요속의 워킹이 시작되었다. 호텔 사장, 부구청장, 도의회 의원들이 줄줄이 오르자 정말이지 박수는커녕 야유가 쏟아졌다. 이건 뭐 레드카펫이 아니라 수치스런 조리돌림이 되어갈 무렵, 당시 드라마 ‘스카이캐슬’로 인기 절정이던 김서형 배우가 등장해 죽어가던 레드카펫을 겨우 살렸다. 빛이 난다. 영화인들과 관객들의 축제에 정치인, 기업가, 지역유지들이 왜 얼굴을 들이미는 지 모르겠다. 과잉의전은 언제쯤 사라질까? 레드카펫 행사 제안을 받더라도 내가 낄 데가 아니라며 거절할 줄 아는 눈치를 높으신 분들에게 기대해볼 수는 없는 걸까? 제발 ‘낄끼빠빠’ 좀 잘 합시다!

2021-08-24

초보자의 마음으로

코로나 19로 인해 멈춰있는 상태지만 꽤 오랫동안 운영했던 클래스가 하나 있다. 이름하여 ‘강백수의 작작 클래스’. 여기서 작작은 작사와 작곡이다. 노래를 한 번도 만들어 본 적이 없는 사람들에게 태어나서 처음 자신만의 자작곡을 만들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주는 수업인데, 수십 명의 수강생이 첫 자작곡을 완성했다. 사실 수강생들에게 내가 해 주는 것은 별로 없었다. 작곡이라고 해봐야 간단한 코드 몇 개를 알려주고 그에 맞추어 멜로디를 자유롭게 흥얼거리도록 했을 뿐이었고, 작사라고 해봐야 자신의 이야기를 자유롭게 적은 글을 멜로디에 맞게 다듬는 것 정도만 알려주었을 뿐이다. 그런데 의외로 당장이라도 훔치고 싶을 만큼 참신하고 기발한 곡들이 많이 나왔다.그 중에 특히 재미있었던 곡들을 조금 꼽아보자면, 스물 다섯 살 연극배우 Y와, 여행을 사랑하는 자유로운 싱글, H누님의 노래들이 먼저 생각난다. Y는 “너는 애가 매사에 왜 그렇게 어중간하니?”라고 비아냥거리는 한 선배에게 “그래, 나 어중간하다. 심지어 좋아하는 숫자도 어중간하게 ‘5’야. 그런데 그가 뭐 어때서? 어중간 한 게 아니고 적당한 거거든?” 이라고 발칙하게 대드는 노래를 만들었다. 그리고 H누님은 나를 디스하는 곡을 만들었다. 누님은 노래 속에서 ‘수업에 오면 다 초짜들만 있을 거라고, 누구나 쉽게 기타와 작사 작곡을 배울 수 있다고 해서 수업에 들어왔건만, 나만 빼고 다 잘하는 것 같고 이 놈의 F코드는 왜 이렇게 안눌러지냐’고 따졌다. 노래의 킬링파트는 ‘강백수 뻥쟁이’라는 가사였다.이 노래들을 비롯해 재기발랄한 노래들이 정말 많다. 수업 마지막에는 스튜디오에 가서 각자의 창작곡들 레코딩하기도 했는데, 그 결과물들이 담겨있는 내 컴퓨터 속 어느 폴더는 그야말로 보물창고 같다.그들이 이렇게 보석같은 자작곡들을 만들 수 있었던 것은, 오히려 그들이 초보자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음악가가 아니기 때문에 잘 해야 한다는 욕심으로부터, 그리고 남들이 이 음악을 좋아해 주어야 한다는 부담감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었을 것이다. 대중의 반응을 미리 예상하고 의식하며 노래를 만들어야 하는 나와는 달리 그냥 맘이 이끄는 대로 흥얼거리고 이야기할 수 있기에, 판에 박힌 노래가 아니라 정말 세상에 단 하나뿐인 색깔로 빛나는 노래들을 빚어낼 수 있었던 것이다.가끔은 무언가 능숙하게 해내려고 애쓰는 것보다, 초보자의 마음으로 돌아가 그저 본능에 맡기는 것이 필요한 때가 있다. 이노우에 다케히코의 만화 ‘슬램덩크’의 주인공 강백호는 농구를 시작한지 몇 달 밖에 안된 풋내기로 나온다. 강백호가 속해 있는 북산과 강호 능남의 전국대회 도 예선 최종전, 초보자 강백호 덕분에 북산은 승리를 거둘 수 있었다. 그야말로 한 골로 승부가 결정될 수 있는 그 때, 능남의 에이스이자 농구천재인 윤대협은 골밑을 날카롭게 파고들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거기에 다른 선수를 마크하고 있었어야 할 강백호가 있었다. 강백호에게 공격을 차단당한 윤대협은 다시 공을 잡고, 이번에는 센터 변덕규에게 기가 막힌 패스를 뿌렸다. 변덕규를 마크하던 채치수가 한 발 늦었다고 느낀 순간, 또다시 강백호가 나타나 변덕규의 슛을 블로킹 해냈다. 강백호야말로 북산의 불안요소라며 승리를 확신하던 능남의 유명호 감독은 놀라서 외쳤다.“어째서 강백호가 거기에 있는 거냐!” 강백수세상을 깊이 있게 바라보는 싱어송라이터이자 시인. 원고지와 오선지를 넘나들며 우리 시대를 탐구 중이다. 강백호는 그저 초보자답게 몸이 이끄는대로 공을 따라 움직였을 뿐이다. 그런데 이렇게 제멋대로인 플레이 덕분에 천재 윤대협의 파상공세를 막아낼 수 있었던 것이다.그래, 우리는 사람들의 허를 찔러야 한다. 모두의 예상을 뛰어넘는 결과물을 내어 놓고 싶다. 그런데 때로는 우리의 능숙함이 오히려 그것을 방해할 때가 있다. 글을 쓰고 노래를 만들다 보면, 어쩐지 이 대목쯤에서는 남들 다 하는 기교를 한 번 넣어 줘야 할 것 같고, 이런 이야기는 대중들이 좋아하지 않을 것 같다며 자기검열을 해버리는 때가 있다. 이런 식으로는 참신한 결과물이 나올 수 없다는 걸 알지만, 그로부터 자유로워지기가 쉽지 않다. 가끔 그런 것들에 사로잡힐 때, 거기서 벗어나야겠다는 생각이 들 때 나는 작작클래스 수강생들의 어설픈 자작곡을 찾아 듣곤 한다. 능숙해지면서도 처음의 그 대책 없는 과감함을 지켜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2021-08-17

우아한 세계와 지난한 몸짓

고시원에서 지냈던 적이 있다. 나는 스물셋의 대학생이었다. 셋방에서 쫓겨나다시피 나와 급하게 방을 구해야 하는 상황에서 당장 택할 수 있는 유일한 답이었다. 그곳은 내 몸 하나 겨우 뉠 수 있는 침대와 노트북을 올려놓을 수 있는 책상이 가구의 전부였다. 다행으로 침대의 머리맡에는 창문이 크게 나 있어서 나름대로 낭만적인 풍경을 연출할 수 있었다. 나는 습관처럼 나무의 잎사귀가 사락사락 흔들리는 모양을 바라보았고 해가 지기 직전 아무렇게나 흩어지는 빛의 파편을 집요하게 관찰했다. 이따금 얇은 벽 너머로 딱, 딱, 하는 정체 모를 소리가 들리기도 했는데 그것의 기원에 관하여 상상하다가 밤을 꼬박 새우기도 했다.작은 방일수록 어둠은 빠르게 번졌고 묵직한 외로움이 어깨를 눌렀다. 그러면 노트북을 켜고 이런저런 상념을 적었다. 목구멍 가득 꽉 막힌 감정을 배설해야만 간신히 숨을 쉴 수 있었기 때문이다.나는 어떤 고민을 써 내려갔던가. 그때 쓴 일기는 모두 휘발되고 없지만 어느 정도는 유추해볼 수 있다. 언제까지 이 작고 불편한 방에서 살아야 할까. 언젠가는 내 앞가림은 하고 사는 인간이 될 수 있을까. 어째서 나는 삼성가의 자식으로 태어나지 못했는가, 하는 실없는 이야기를 투덜거렸던 것도 같다. 쓰는 행위로 완전히 해소할 수 없는 지점은 분명히 있었다. 내 삶이 너무도 나쁘고 누추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것을 누구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았다.그래서였을까. 아르바이트비를 정산 받고 가장 먼저 산 건 구두였다. 발목이 뒤틀리고 발뒤꿈치가 쓰라렸지만 도도하게 거리를 거니는 모습을 상상하면 그러한 아픔쯤은 충분히 견딜 수 있었다.나는 구두를 신고 부지런히도 돌아다녔다. 광화문 교보문고에 들러 사지도 않을 철학 서적을 괜스레 들춰보기도 하고 한 잔에 팔천 원씩 하는 밀크티를 마시면서 친구들과 한국 문학의 미래에 관해 논했다. 강남의 술집에서 발음하기 어려운 이름의 칵테일을 홀짝홀짝 들이켜면서 이상한 고양감에 취하기도 했다. 그러다 집으로 갈 시간이 다가오면 초조하고 불안해졌다. 그건 이제 높은 굽의 구두에서 내려와 진짜 현실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 되었다는 뜻이었다.나는 고시원의 입구에 서서 한참을 망설였다. 새로 산 구두를 넣을 신발장조차 없는 작은 방. 어둡고 습하고 이상한 냄새가 나는 답답한 공간. 저릿한 발목을 붙잡으며 이게 다 무슨 소용이람, 하고 중얼거렸다. 나에게 이런 사치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차라리 그 돈으로 전공 서적이나 살 걸 그랬다고 생각했다. 허영과 아둔함을 질책하면서 상실감을 공기처럼 들이마셨던 기억이 생생하다.그 시절을 청춘의 기록으로 미화할 수 있는 것은 아마 꽤 오랜 시간이 흘렀다는 뜻일 것이다. 억지로 꾸며낸 어설픈 모습도 사랑과 연민의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나는 대단한 것을 원한 것이 아니었다. 그저 수면으로 떠오르고 싶었을 뿐이었다. 가라앉지 않기 위해 동동거리는 백조의 지난한 발짓처럼 그저 최선을 다했던 것이다.나는 세계의 표면을 멋지게 거니는 사람들을 본다. 아득한 시간을 거스르지 않고 물살에 몸을 맡기고 흘러가는 이들에게는 대체 어떠한 힘이 있는 것일까. 나는 여전히 그것이 어렵다. 문은강 ‘춤추는 고복희와 원더랜드’로 주목받은 소설가. 2017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작가로 등단했다. 그러면 발에 맞지도 않는 구두를 신고 뒤뚱뒤뚱 걸어가는 이십 대 초반의 나를 다시 떠올리게 된다. 삶의 품위를 지킨다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그것을 간절히 원했던 나를. 동시에 미숙하고 어리석은 현재의 나를 본다. 번듯한 사회적 일원으로 살아간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하여 행하는 많은 일들. 삶의 주인으로 존재하지 못하고 우스운 모양으로 얼렁뚱땅 살아가는 날들. 그리하여 지금까지 한 뼘도 자라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면 이불을 뒤집어쓰고 어린애처럼 울고 싶어진다.이제는 묵묵히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관처럼 답답한 고시원을 떠난 지 오래되었지만 나를 가두는 이 거대하고도 좁은 세계를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을. 통속적인 삶을 살아내는 동안에는 필연적으로 자꾸만 초라해질 수밖에 없다.그러니 거대한 파도에 휩쓸리지 않기 위해 경박한 몸짓으로 허우적거리는 오늘을 사랑하기로 마음먹었다. 그것이 지금을 살아내는 가장 우아한 방법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2021-08-17

자격을 증명하라

2018 자카르타 팔렘방 아시안게임에 출전한 야구 대표팀은 금메달을 획득했음에도 기뻐할 수 없었다. 일본이 사회인 선수들을 출전시키기로 해 한국의 우승이 확실시되는 가운데 금메달에 주어지는 ‘병역 면제’가 화두로 떠올랐다. 특히 리그에서 성적이 썩 빼어나지 않았던 내야수 오지환(LG)과 외야수 박해민(삼성)을 선발한 선동열 감독에게 비난의 화살이 날아들었다. 군 미필 선수에게 병역 혜택을 주기 위한 ‘특혜’가 아니냐는 것이었다. 결국 대표팀은 금메달을 따고도 죄인마냥 고개 숙인 채 입국했다.진짜 촌극은 아시안게임이 끝난 후 벌어졌다. 선동열 감독이 국회 국정감사 증언대에 불려간 것이다. 이 국정감사는 야구인과 야구팬들에게 큰 모욕과 상처를 줬다. 한국 야구의 대명사이자 ‘국보’로 추앙받는 위대한 대투수가 국회의원들의 기본도, 상식도, 예의도 없는 수준 낮은 질문에 조리돌림 당하는 모습이 생중계 됐기 때문이다. 당시 더불어민주당 손혜원 의원은 ‘선동열 저격수’로 나서서 “그 우승이 그렇게 어려웠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야구 대표팀이 거둔 성취 자체를 부정했다. 그러고는 오지환과 박해민의 선발에 있어 선 감독의 사심이나 은밀한 청탁이 작용한 게 아니냐는 무례한 음모론을 펼쳤다. 선 감독이 어이없어 하자 “사퇴하라”며 고함을 질러댔다. 김수민 의원(당시 바른미래당)도 거들었다. 1년 전 성적 자료를 들고 와서는 오지환보다 뛰어난 다른 선수를 왜 뽑지 않았냐는 황당한 질문을 했다. 야구를 전혀 알지 못하는 문외한들이 평생을 현장에서 살아온 전문가에게 훈수를 뒀다.그로부터 3년이 지났다. 2020 도쿄 올림픽 야구 대표팀은 일본과 미국에 준결승에서 석패해 결승에 진출하지 못했다. 3, 4위 전에서 중남미 야구 강국인 도미니카공화국에게마저 져 동메달 획득에 실패했다. 비록 메달을 얻지 못했지만, 대회 내내 가장 큰 활약을 펼친 선수들이 바로 오지환과 박해민이다. 오지환은 팀이 위기에 처한 순간마다 홈런 두 개를 포함한 맹타를 휘둘러 구해냈고, 국내 최고 수준으로 평가받는 수비 실력을 아낌없이 발휘했다. 대회 전 연습경기에서 주자의 스파이크에 턱이 찢어져 다섯 바늘을 꿰맸고, 대회 기간 동안에는 상대 투수의 몸쪽 공에 손등을 강타당해 피멍이 들었음에도 몸을 내던지며 플레이했다. 박해민은 전 경기 1번 타자로 나서 감각적인 타격과 빠른 발로 상대 수비 진영의 혼을 뺐다. 거의 모든 경기에서 1회 첫 타석 출루에 성공했고, 온몸에 흙을 묻혀가며 쉴 새 없이 헤드 퍼스트 슬라이딩을 했다. 외야에서도 견고한 수비를 뽐냈다. 선동열 감독이 2018 아시안게임 대표팀에 이 두 선수를 선발한 것은 바로 이러한 능력을 믿은 까닭이다.두 선수는 실력으로 증명했다. 안타로, 홈런으로, 호수비로, 도루로, 몸을 던지는 허슬 플레이로 ‘국가대표’ 자격이 충분함을 몸소 입증했다. 나는 국가대표 선수 선발 과정보다 국회의원 선발 과정이 궁금하다. 음주운전을 해도, 성범죄를 저질러도, 탈세를 하고 부동산 투기를 하고 논문을 표절해도 국회의원이 될 수 있다는 게 놀랍다. 이병철 문학평론가이자 시인. 낚시와 야구 등 활동적인 스포츠도 좋아하며,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그리고 그렇게 국회의원이 돼서는 공약 이행, 입법 발의, 민생법안 처리에 소홀한 채 그 어떤 ‘증명’도 하지 않고 4년 동안 ‘국민의 대표’ 자리를 차지한다는 데 분노가 치민다. 국회 본회의에서 낮잠을 자거나 업무추진비로 부적절한 외유를 즐기는 게 어디 하루 이틀인가? 결격 사유가 넘치더라도 유력 정당의 공천 명부 상위에 이름만 올리면 무조건 당선되는 비례대표는 더 그렇다. 자격도, 자질도, 신념도 없는 이들이 기성 정치의 구태를 반복하며 정당이기주의와 기득권을 심화시키고 있지 않는가?국정감사에서 선동열 감독을 몰아세우던 손혜원 전 의원은 부동산 투기 의혹으로 검찰에 기소되어 정치 생명이 끝날 위기에 처해 있고, 김수민 전 의원은 기성 정치의 답습을 벗지 못한 채 지난 총선에서 큰 표 차이로 낙선했다. 다시, 오지환과 박해민 그리고 이번 올림픽에 출전한 모든 종목 대표 선수들은 실력으로, 투혼으로 국민들을 납득시켰다. 이제 두 전직 의원에게, 아니 모든 국회의원들에게 묻고 싶다. 당신들은 배지를 달고 있는 동안 대체 무엇으로 ‘국민의 대표’임을 증명했느냐고.

2021-08-10

당연한 사랑은 없다

가스라이팅 피해자들이 하루 빨리 일상을 회복했으면 하는 바람 간절하다. /언스플래쉬 하늘이 맑다. 그럴 땐 커피나 차, 과일을 띄운 탄산수를 큰 컵에 담아 창문가로 간다. 느릿느릿 풍경을 곱씹어도 마음이 중심을 잃고 넘어지는 때가 있는데, 그건 아무리 노력해도 서로 얽힐 수밖에 없는 인간관계에서 길을 잃은 경우에 그렇다.최근엔 모르는 전화번호로 연락이 왔다. 알고 보니 연락이 끊긴 지 오래인 친구였다. 오랜만에 목소릴 들어서 너무 반가운 나머지 기다리지 못하고 어떻게 지냈느냐고 이것저것 묻기 바빴다. 내 물음은 열 가지가 넘은 반면, 그녀는 ‘다행히 나 안전 이별 했어.’ 라는 한 마디로 대답을 대신했다. 더는 어떤 말도 나누지 못하고, 엉뚱한 리액션만 하다 전활 끊었다. 그녀가 나를 안심시키려 하는 목소리를 되새기며, 안전 이별이란 말은 얼마나 이상하고 슬픈 것인지. 그녀는 어떤 고통을 감내하고 있는 것인지 가늠하기 어려웠다.친구는 오래 전부터 가스라이팅을 당했다고 했다. 가스라이팅은 늘 대두되는 문제였으나 1970년대 이전엔 이것이 심각한 범죄로 인식되지 않았다. 너무나도 만연하고 당연했기에 그저 신체적 위협을 가하지 않는다면 정상인으로 치부되고 인정받기도 했다.가스라이팅이란 1938년 연극 ‘가스등’에서 처음 나온 용어다. 극 중 남편은 집 안을 어둡게 만든 다음, 아내가 집이 너무 어둡다고 말할 때 그렇지 않다고 대답한다. ‘네가 잘 못 본거야.’로 시작해서 ‘네가 문제야’라며 아내를 정신병으로 몰아세운다. 그럼 결국 아내는 자신이 잘 못 봤다고 판단하며 무력감에 빠진다. 결국은 아주 밝은 방에서도 ‘방이 왜 이렇게 어둡지?’라고 생각한다.가스라이팅은 가해자가 피해자를 입맛대로 조종하며, 피해자 스스로 감정과 본능을 의심하게 하는 엄연한 감정 학대다. 그렇게 피해자는 심각한 우울증, 자기 결정 장애에 빠진다. 이것이 끔찍한 이유는 일반적으로 아주 서서히 발생되어 은밀하고 교묘하기 때문이다. 처음은 아주 사소하고 약한 정도로, 그러면서 서서히 피해자의 말을 듣길 거부하거나, 언어 폭력을 가한 적이 없다며 반박하거나 피해자의 말과 정신을 의심하며 최종적으론 모든 걸 부정하며 신체적인 폭력을 가한다. 피해자는 이 과정을 처음부터 지배당해오므로 결국 현재의 상황을 인지하지 못하고 모든 결정권을 스스로 내리지 못하게 된다.가스라이팅의 사례는 가정에서도 빈번히 이루어진다. 부모는 자식에게 헌신적인 동시에 다정한 모습을 연기한다. 그렇게 다정하고도 불쌍한 인간상을 연기하다가도 자신의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것은 ‘가족의 사랑’이란 구실을 내세워 피해자를 억압한다. “우리 딸은 착하잖아”라며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아이를 통제하는 경우나, “아들이 이렇게 된 데에는 다 부모 잘못이니, 내가 죽어야지.”라며 오히려 스스로를 피해자로 만드는 일례들이 그렇다. 물론 역으로 자식이 부모에게 가스라이팅을 하는 경우도 있다. 윤여진 2018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 부문에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현재보다 미래가 기대되는 젊은 작가. 사회적인 가스라이팅도 마찬가지다. 누군가를 깎아 내리면서 자신이 우월해지는 도취감에 빠진 이들은 피해자를 몰아세우며 자신이 추앙받길 원한다. 하지만 이들은 가해자를 통제하며 스스로 가스라이팅의 주역이라는 사실을 즐긴다. “내가 널 위해 해주는 말이지만”이나, “네 소문이 너무 안 좋게 도니 마음이 아파서 하는 말이지만” 하며 피해자를 불쌍한 입장으로 만들고 자신이 영웅이 되려 하는 진부한 케이스가 그렇다. 철학자 쇼펜하우어는 인간의 이성은 야생마에 끌려가는 기수의 상태라 말했다. 인간의 본능이 사고를 치면 이성은 그 사고에 대한 책임을 합리화 하거나 수습을 한다는 것이다. 가해자들은 오로지 자신의 본능에만 집중한다. 늘 드는 의구심이지만 본능에 충실하지 않은 인간이 어디 있는가. 다만 옳고 그름을 분명하게 나누어 이성과 본성을 동일 선상에 두려고 노력하는 것일 뿐. 가스라이팅 가해자들은 궤변만 늘어놓는 비논리적인 인간이다. 왜곡과 진실은 드러나기 마련이니, 피해자들이 하루 빨리 온전히 회복했으면 좋겠다.하루에도 수십 번씩 사소한 가스라이팅을 마주할 땐, 기꺼이 무관심으로 답을 한다. ‘네, 저는 먹던 케이크나 다시 먹으러 가보겠습니다’란 표정을 예의상 곁들이면서.

2021-08-10

그 많던 관종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일요일 오후, SNS 친구 신청이 하나 와 있었다. 보통은 허위 계정만 아니라면 별 고민 없이 수락 버튼을 누르는데, 낯익은 이름이어서 잠시 손이 멈췄다. 분명 어디서 본 이름이었는데 누구인지는 떠오르지 않았다. 프로필 사진은 이십대 중반의 남자. 한참동안 들여다보고서야 누구인지 기억해냈다. 학부시절에 아르바이트로 학원에서 강사 일을 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가르쳤던 아이였다. 많이 까불던 아이라 다른 선생들이 애를 먹었던 기억이 있다. 세월이 많이 흘렀고 녀석도 어른이 되었지만, 예전의 장난기 어린 눈빛이 남아 있었다.녀석은 요즘 말로 하면 ‘관종’이었다. 수업이 진행될만하면 말장난을 해서 아이들을 웃겼다. 그때만 해도 학원가에 체벌이 아직 남아 있을 때라, 녀석이 있는 반 옆 교실에서 수업을 하다 보면 다른 선생들이 몽둥이로 그의 엉덩이를 때리는 소리가 들리곤 했다. 녀석은 맞으면서도 친구들을 웃기려고 희한한 소리를 냈다.나는 그 아이가 좋았다. 사실 나도 관종 기질이 조금 있다. 그래서 지금도 내 이름을 내걸고 하는 직업들을 얻은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중고등학교때는 내성적인 편이라 마음껏 까불지는 못하고, 그 녀석처럼 나서서 친구들을 웃기는 아이들을 부러운 눈으로 쳐다보곤 했다. 무엇보다 나는 그 아이의 말장난이 웃겼다. 시답지도 않은 언어유희들이었는데 은근히 센스가 있었다. 가끔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 강의를 제대로 하지 못한 적도 있었다. 사실 그 아이를 다루는 방법은 그렇게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원하는 만큼의 관심을 주면 되는 것이었다.“너, 웃겨봐.”“네?”“나 진짜 너 웃겨서 그래. 오늘은 웃길 거 없어?”“아, 당황스럽게 왜 그러세요~”“왜? 좀 웃겨줘. 다들 기다리잖아.”나는 아예 녀석에게 마음껏 웃길 수 있는 시간을 주었다. 처음에는 쭈뼛대던 녀석이 나중에는 학교에서 있었던 웃겼던 일, 같은 반 친구의 부끄러운 일, 아니면 되지도 않는 인터넷 유머를 가져오게 되었다. 나와 반 아이들은 웃기는 천재라며 한없이 추켜 세워주었고, 안 웃긴 날에는 ‘그럼 그렇지’하며 가차없이 놀리곤 했다. 아이는 우리 반 분위기 메이커가 됐고, 다른 아이들이 지루하지 않게 수업을 들을 수 있도록 해주는 활력소가 되어주었다. 나는 녀석이 꼭 개그맨이나 배우 같은 직업은 아니더라도 무언가 자신의 유쾌한 재능을 활용할 수 있는 일을 해서 크게 될 거라고 확신했다. 반가운 마음에 녀석에게 메시지를 보냈다.“어이, 오랜만이네.”“선생님! 안녕하세요! 잘 지내셨어요?”“그럼, 잘 지내지. 제자님은 어떻게 지내는가? 대학 졸업할 때 되지 않았나?”“저 진작에 졸업했어요. 지금은 부사관 하고 있어요.”아이는 군인이 되어 있었다. 취업도 힘들고 일자리의 안정성도 적은 요즘 같은 때 많이들 권장 하곤 하는 길을 걷고 있는 셈이었다.“이야, 의외네. 군인이라니. 상상도 못했어.”“그쵸, 저도 제가 이렇게 될 줄은 몰랐어요. 그래도 저희 아버지도 군인이셔서 많이 낯설진 않아요.”“나는 네가 좀 더 까불 수 있는 일을 할 줄 알았는데. 거기선 안 까불지?”“군대에서 까불면 큰일 나죠. 저 옛날이랑 많이 달라졌어요, 선생님.” 강백수세상을 깊이 있게 바라보는 싱어송라이터이자 시인. 원고지와 오선지를 넘나들며 우리 시대를 탐구 중이다. 우리는 한참동안 대화를 나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채팅창 옆의 프로필 사진을 보면서도 나는 내 대화 상대가 그 옛날 그 녀석이라는 생각이 잘 들지 않았다. 왠지 모르게 너무 진중해진 모습을 보며, 나보다 더 철이 들어버렸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 옛날 철딱서니 없었던 그 모습이 그리워졌다.가만 생각해 보니 어릴 때 통통 튀고 재미있었던 친구들이 철이들며 그런 발랄함을 잃어버리는 것을 그동안 많이 봐왔다. 재기발랄함보다는 점잖음이 미덕인 나라. 많은 사람들이 그들에게 철 좀 들라고, 어른스럽게 굴라고 타박을 했을 거다. 누군가는 그들을 관종이라며 비난하기도 했을 것이다. 박수갈채를 받으며 자랐더라면 적당히 철들면서도 여전히 유쾌하고 재미난 어른으로 성장했을 친구들이 나이를 먹으며 하나같이 진중하기만 한 어른이 되어버린 것이다. 세상에는 까불까불 하는 사람들도 필요한데. 그 재기발랄함에서만 나올 수 있는 가치들도 존재하는 것인데.

2021-08-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