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갖 네거티브와 마타도어가 판친 ‘비호감 대선’이라선지 선거 운동 방식도 ‘극혐’(극도로 혐오한다는 뜻)이었다.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는 구닥다리 ‘선거차 유세’ 좀 그만 보고 싶다. 이번 대선 기간에도 경찰서에는 연일 시민들의 민원이 쏟아졌는데, 가장 많은 게 소음 관련 신고였다.
선거 이틀 전인 3월 7일, 시끄러운 앰프 소리에 잠에서 깼다. 선거 유세 차량에서 크게 틀어놓은 로고송 때문이었다. 내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1번도 2번도 모두 국민을 위한 정치, 민생을 살피는 정치를 하겠다고 하지 않던가? 그런데 아침 일곱시부터 저질 로고송 틀고 소음공해나 만드는 게 과연 국민을 위한 일인지 묻고 싶었다. 국민들의 보편적인 삶을 이해하지 못하면서 정치는 무슨 정치.
아직 더 자야 하는 사람들도 있고, 밤에 일하고 아침에 자는 3교대 근로자들도 있고, 고시 준비하는 수험생들도 있고, 아이 재워야 하는 부모들도 있고, 명상이나 독서로 차분하게 하루를 시작하려는 사람들도 있다. 타인 삶의 평화를 함부로 침해하는 이들이 어떻게 국민을 위해 일할 수 있는지 잘 모르겠다.
시민들이 왜 이른 아침부터 저급하게 개사한 ‘남행열차’, ‘진또배기’, ‘질풍가도’ 따위 유세송을 들어야 하는가? 옆동네에서는 ‘찐이야’, ‘찰랑찰랑’이 울려 퍼졌을 테니, 품위 없는 선거 유세는 여당이나 야당이나 마찬가지다. 앰프를 얼마나 크게 틀었는지 온 동네가 쿵쿵거렸다. 부아가 치밀어 112에 전화 거니 1390 선관위로 연결해줬고, 선관위는 다시 내가 사는 지역구 선관위로 통화를 돌렸다. 세 차례나 민원을 넣어 항의한 덕분인지 아니면 다른 데 가서 또 그 난리를 치려는지 시끄러운 유세차량은 30분 후 물러났다.
소음뿐만이 아니다. 도로 통행을 막아 시민들에게 불편을 끼치는 일도 허다하다. 빨간 점퍼, 파란 점퍼, 노란 점퍼 입은 당원들이 떼로 모여 마치 자기들 세상인양 차도와 보행로를 점거한다. 그야말로 무법천지다. 군산에서는 국민의힘 유세 차량이 시장 골목 입구에 버티고 선 채 차량 통행을 20여분 동안 가로막아 시민들이 큰 불편을 겪었다. 현장에서는 고함과 욕설 항의가 빗발쳤다. 나도 비슷한 일을 겪었다. 택시 타고 김포공항 리무진버스 정류장으로 가는 동안 민주당 유세 차량이 고가도로 옆 편도 1차선을 점령한 채 비켜주지 않는 바람에 결국 버스 놓쳤다. 추운 날씨에 밖에서 40분 넘게 다음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분노가 뻗쳤다.
이 볼썽사납고 시끄럽고 혐오스러운 선거 유세 방식을 바꿀 생각은 없는지, 정치인들에게 진지하게 묻는다. 세상이 바뀌었는데도 여전히 낡은 방식을 고수한다면 유권자들로부터 외면 받을 것이다. 곧 있을 지방선거를 앞두고 지난 서울시장 보궐 선거와 이번 대선에서 캐스팅보트를 쥐었던 2030세대 표심을 잡으려는 각 정당들의 노력이 가상하다. 그런데 요즘 젊은 세대는 자신의 권리나 이익이 침해되는 걸 견딜 수 없어 한다. 타인에게 폐를 끼치는 걸 극도로 경계하면서 자신 역시 남으로부터 작은 피해도 입고 싶어 하지 않는다.
기성세대는 집단을 과시하고 공동체의 동일성 논리로 ‘우리’의 승리를 위해 소음공해나 교통 불편쯤 괜찮다고 뭉개지만, 젊은 세대는 철저히 개인이다. 집단이라는 다수의 폭력이 소수적 삶의 평화를 위협하는 걸 참지 못한다. 개인주의자들인 2030세대는 공정과 평등에 예민한 감수성을 지녔고, 사회적 약자 등 타자에 대한 배려를 항상 의식한다. 웬만해서는 지하철 임산부석과 노약자석에 앉지 않는다.
위법한 호의나 원칙을 무시한 배려는 거절한다. 공공질서를 지키고, 법을 준수하는 한 사람의 성숙한 시민들이 모여 더 나은 사회를 만든다고 믿는 이들이다.
시끄러운 로고송 틀고, 마구잡이로 길 막으며 시민들에게 피해를 주는 정당들이여 제발 정신 차려라. 이제는 음주운전이나 성범죄에 관대했던 쌍팔년도가 아니다. 여전히 구시대적 감성으로 법과 질서 따위 가볍게 무시해도 되는 줄 아나본데, 그러다 국민들한테 혼난다. 타인 삶을 함부로 침해하는 행위에 2030세대가 얼마나 엄격한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가 음주운전 사고 기사에 달린 댓글이다. 옛날 같으면 ‘죄는 미워해도 사람은 미워하지 말자’는 그릇된 온정주의가 설쳤겠지만, 요즘은 “예비 살인자, 다른 사람 죽이지 말고 깔끔하게 혼자 죽으라”고 한다. 싸구려 로고송 틀려면 실내 체육관 빌려서 당신들끼리만 들어라. 넉 달 후면 지방선거다. 지켜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