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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뚝이처럼 헤엄치기

등록일 2022-03-08 19:47 게재일 2022-03-09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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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들 조금씩 게으른 완벽주의자의 성향을 벗어나보면 어떨까? /언스플래쉬

올해 1월에 야심차게 짜 놓은 여러 계획이 엎어졌다. 뭐 아직 3월밖에 안 되었으니 목표를 재수정하고 다시 시도하면 되지만, 어쩐지 새롭게 수정된 목표 앞에서 또 주저하게 된다. 누구나 시작에 앞서 두려움을 크게 느낀다지만 나는 유독 더 지레 겁을 먹고 만다.

사실 난 의문의 완벽주의 성향을 가지고 있다. 드라마에서 나오는 엄친아 캐릭터처럼 모든 일을 프로페셔널하게 착착 해내는 근사한 모습이면 참 좋겠지만 아쉽게도 그건 아니다.

게으르고 어설픈 완벽주의 성향이라 아주 사소한 선택이어도 결정하는 데에 너무 오랜 시간이 걸리고, 스스로 완벽하게 해낼 수 없단 생각이 들면 그 일의 시작조차 시도하지 않는다.

게으른 완벽주의 성향은 사실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레 해결될 줄 알았지만 성인이 되고 회사를 입사하면서까지 이러한 습관을 벗어나지 못했다. 오히려 심해져선 초조함과 불안감을 폭발할 때까지 쌓아서 일을 처리하곤 했으니까. 과다한 업무량도 있었지만 너무 사소한 것까지 실수하지 않기 위해 시간을 들인 나의 잘못이 컸다.

뿐만 아니라 공부도 그랬다. 그냥 책을 펼쳐서 단어를 외우면 되는 일인데도 책상 앞에 앉아 책을 펴는 것조차 너무 많은 걱정으로 에너지를 소비했다. 스스로도 이해하기 힘든 일이 아닐 수 없다.

만약 책을 폈는데 단 한 문장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면? 오늘 목표량은 단어 30개 외우기지만 10개도 못 외운다면 어쩌지? 그렇게 계획한 것을 지키지 못할 것 같으면 아예 포기해버리기 일쑤였다. 아직 결정 나지도 않은 실패를 홀로 예견하며 씁쓸한 표정을 짓는 동안 무력감이 겹겹이 쌓였다. 그런 감정은 생활의 리듬을 깨버리기도 했다.

중요한 일정이 있을 땐 오히려 그 일정에 집중을 하지 못하고 불안감을 잠재우기 위해 운동을 하면서 에너지를 소비했다. 그러니 정작 중요한 타이밍에 능력치 발휘를 못했고 결국 언제나 부끄러운 결과물을 손에 쥐었다.

작가에게 약속과도 같은 원고 마감일은 또 어떤가. 스스로 정해둔 데드라인은 늘 넘어서기 일쑤고 하루 온종일 초조함과 불안감에 스스로를 원망하면서도 평소 잘 하지 않는 집안 청소나 밀린 빨래를 처리하곤 했다. 내가 왜 이런 행동을 하는 건지 이해할 수 없음에도 일의 적합한 타이밍이 오기까지 무작정 기다렸다,

하루하루 데드라인 앞에서 숨 막히는 긴장감 속에 살아가니 나의 능력과 자기 확신에 대한 자신감이 많이 떨어졌다.

최근엔 은행 앱을 통해 계좌 가입하는 일 조차 너무 버거운 일 같아 대책 없이 미룬다거나, 또는 단순히 오해가 쌓였단 이유만으로 사람과의 관계마저 쉽게 포기해버리는 상황을 마주하고선 심각함을 인지했다.

이젠 조금씩 게으른 완벽주의자의 성향을 벗어나기로 했다. 가장 먼저 모든 일을 성공할 수 없다는 나의 한계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애초부터 한 번에 도달 할 수 없는 허무맹랑한 목표는 설정하지 않고, 그저 시도만으로 성취감을 느낄 수 있는 사소한 목표부터 세워 꾸준히 실천하기로 했다.

윤여진 2018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 부문에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현재보다 미래가 기대되는 젊은 작가.
윤여진 2018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 부문에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현재보다 미래가 기대되는 젊은 작가.

두 번짼 성공은 여러 번의 실패를 거듭하여 거머쥘 수 있는 걸 꼭 기억해두기로 했다. 단 한 번의 시도로 성공하는 운의 흐름에 기댄다거나, 또는 한 번의 시도로 성공하겠단 오만에서 부디 벗어나기로 다짐했다. 어려움이 없지 않겠지만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최근 소소한 취미로 캡슐 뽑기에 빠졌는데 우연히 오뚝이를 뽑았다. 어렸을 때나 보던 오뚝이를 마주하니 전생에서나 보던 물건처럼 묘했지만 그에 비해 큰 감흥이 없었다.

막상 책상에 올려두고 보다보니 이상하게 시선이 갔다. 아무리 외부 자극이 있어도 살랑살랑 흔들리고선 제자리를 찾아 우뚝 서는 게 신기하고 대견했다.

지금 내게 가장 필요한 자세는 오뚝이의 자세일 것이다. 무엇이든 정해진 답은 없고 완벽도 없으니 불명확한 것에 사사건건 신경 쓰지 말고 유연히 흔들리기. 그리고 아무리 형편없는 결과가 예상되어도 그 일을 끝내기 위해 애쓰기. 수영을 하기 위해선 우선 몸에 힘을 빼야 한다고 했다. 시작이 반이라는 말을 떠올리며 숨을 다시금 골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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