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새해가 밝았다. 많은 이들의 새로운 마음으로 원하는 목표를 세운다거나 큰 소망을 빌었을 테지만 올해의 첫 날, 나는 자그맣고 소소한 소원 하나를 조용히 빌어 보았다.
최근 회사 동료들 덕분에 한정판 운동화에 푹 빠졌다. 말 그대로 한정 수량으로 출시되는 신발이라 당첨되어야만 구매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는데, 암만 돈이 많고 시간이 많아도 절대 구할 수 없는 희귀성 덕분에 운동화 공모(라플)은 MZ세대 사이에서 늘 핫한 이야깃거리다.
할로윈 시즌, 크리스마스, 유명 가수와의 콜라보 제품 등 시기와 컨셉에 따라 출시되는 덕에 브랜드별 종류는 셀 수 없이 많다. 한정판 정보나 출시일을 공유하는 유명 커뮤니티 사이트는 백만 명이 훌쩍 넘는 회원 수를 보유하고 있으며, 유명 맘 카페에서도 발매 정보나 판매 매장 리스트를 활발히 공유할 정도다.
한정이라는 단어는 사람의 마음을 왜 이렇게 애간장 태우는 걸까. 비슷한 디자인으로 출시되어도 ‘리미티드’란 단어가 붙으면 괜스레 후광이 비치면서 구매욕을 자극하게 한다.
물론 나도 처음엔 신발 하나에 그리 공을 들여 사는 건지 이해 할 수 없었다. 안 그래도 복잡한 세상, 괜히 더 머리 아프게 살 필요 있느냐며 코웃음 쳤으나 슬슬 한정판 운동화만의 새롭고도 묘한 매력에 빠져 들고 말았다.
한정판은 브랜드를 상징하는 로고를 반대로 뒤집어 고유화 된 이미지의 틀을 깬다거나 독특한 컬러웨이를 보여준다. 운동화의 갑피, 힐탭, 아웃솔, 밑창 등 눈이 닿지 않는 부분까지 특별한 디테일이 자리하여 완성도 높은 퀄리티를 보여준다. 더군다나 간택된 이만 살 수 있단 제한을 둠으로써 소비자의 구매 심리를 자극한다.
정용진 신세계 그룹 부회장 또한 라플의 유혹을 피해갈 수 없었나 보다. 지난해 8월 인스타그램 게시글에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너벼렸슴’이란 글과 함께 나이키와 미국 가수 트래비스 스캇이 협업한 한정판 운동화 사진을 공개하여 이목을 끌었다. 이 신발의 출시가는 약 19만원대지만 시간이 흐른 뒤의 거래가는 190만원을 호가했다.
높은 수요에 비해 한정된 공급을 유지하니 몇 가지 인기 제품은 리셀가가 꽤 높은 편이다. 한정 운동화는 통상 정가보다 2-3배는 거뜬히 뛰는 가격대로 되팔 수 있을 정도니 슈즈+제테크의 합성어인 슈테크를 행하는 이들이 있을 정도다.
빅뱅 멤버인 지드래곤의 사인이 들어간 스니커즈의 판매 가격은 본래 22만원으로 출시되었지만 리셀 가격은 무려 1300만원으로 판매되기도 했다.
하지만 한정판 운동화를 구하기 위한 과정은 굉장히 험난하다. 우선 수시로 해당 브랜드의 온라인 스토어를 계속해서 접속해야 한다.
원하는 제품 공모를 할 수 있는 날짜와 시간 정보를 알아냈다면, 해당 날에 맞추어 접속한 뒤 공지된 조건에 맞추어 양식을 작성해야 한다. 이 과정에선 많은 인내와 기다림이 필요한데, 접속자가 대거 몰리다 보니 꼭 인터넷 속도가 빠른 장소에서 시도해야 한다.
겨우 운이 닿아 당첨이 되었다면 이젠 드디어 살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는데 이 과정 또한 조금 복잡하다.
우선 정해진 매장에서 정해진 시간에 맞추어 가서 사야한다. 아무렴 직접 매장에 가서 구입해야 하기 때문에 응모 가능한 매장이 상당히 제한적이다. 그렇게 운이 좋아 당첨되어 매장을 찾아갔다면 이젠 운동화를 수령하기 위한 기나긴 대기 줄에 합류해야 한다.
드디어 내 차례가 되었다면 인터넷으로 응모했던 회원 정보와 구매하려는 사람이 일치하다는 걸 증명하기 위한 본인인증이 시작된다. 신분 확인 후 마지막으로 사이즈를 체크해본 뒤 드디어 수령 받게 된다. 이런 번잡한 과정을 거쳐야 하기에 웃돈을 주고서라도 구매하려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운동화 컬렉터가 아닌 이상 굳이 프리미엄 가격을 붙여 사는 이들은 그리 많지 않다. 대부분 라플을 하나의 놀이로 인식하여 재미로 응모하는 이들이 훨씬 많다.
나도 여러 번 응모하다 보니 조금 욕심이 생긴 건 사실이지만, 아직까진 트렌드에 발맞추어 즐기고 있는 정도다. 그치만 해가 바뀌며 운의 흐름이 조금 바뀌었을 테니 당분간은 조금 기대해보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