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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희망하는 것

등록일 2020-12-22 20:08 게재일 2020-12-23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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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코로나19로 인한 두려움으로 혼란스러웠다. 그러나, 우리 모두가 희망을 바라고 믿어보는 마음까지 버려선 안 될 것이다. /경북매일DB

올해가 끝나간다. 머지않은 날에 2020년도를 돌이켜 보며 ‘맞아, 2020년은 유독 다사다난한 해였지’ 말하며 아무것도 가리지 않은 입으로 환하게 웃을 수 있을까.

올 한해는 코로나19로 인한 질병의 두려움으로 혼란스러웠고 여전히 세상 안팎에선 많은 사건 사고가 오갔다. 그럼에도 봄과 여름, 가을과 겨울엔 때에 맞춰 꽃이 폈고 기온이 오르내렸다. 꿈쩍하지 않을 것 같았던 한 해가 끝나간다니. 아직 모든 것이 코로나19 이전으로 회복되진 못 했지만, 한 해의 끝에서 올해를 돌아보자니 나의 생활에도 큰 변화가 있었다. 적게 소비하고 소유하는 미니멀라이프와 플라스틱 사용을 줄이고 제한하는 제로 웨이스트 라이프를 지향하면서 내가 가진 것으로만 생활하고 기쁨을 느끼며 현재는 새로운 삶의 방식에 무척 만족하고 있다.

코로나 블루로 인해 우울감을 느끼는 나날이 많았지만, 그럼에도 웃음을 자아내는 이들에게 눈이 오래 머물렀다. 구독자 57만 명을 보유하고 있는 유튜버 ‘핏블리(FITVELY)’는 국제 트레이너이자 스포츠 영양코치다. 주로 운동 콘텐츠를 올리던 그는 코로나로 인해 개업을 앞둔 헬스장을 닫아야 하는 위기에 처했다. 열지 못한 헬스장 안에서 치킨을 먹으며 하소연하는 방송을 진행하자 신기하게도 많은 이들의 관심을 받았다.

건강한 몸을 위해 영양학적 지식을 쌓으려 영양학 자격증까지 딸 정도로 공부한 그는 평소 절대 먹지 않을 음식들을 한 상 가득 차려 맛있게 먹는다. 난생처음 맛보는 치즈볼 먹방이나 케이크, 마카롱, 족발 등 고칼로리 먹방을 선보이며 타락한 헬스인, 코로나19가 만든 괴물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한 포털사이트에서 자신이 야간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이라 밝힌 닉네임 ‘월터’는 “단골 가게에서 매일 시켜 먹는 메뉴에 내 닉네임이 추가 됐다”는 글을 올렸다. 인천 남동구에 위치한 ‘짐승파스타’에서 가게 단골 손님이 매일 감바스를 시킨다는 이유로 배달 앱 내 메뉴 이름인 ‘감바스 알 아히요‘를 ‘월터 감바스 알 아히요’로 수정한 것이다. 이 유쾌한 사연은 순식간에 각 커뮤니티와 SNS에 화제가 되며 실시간 검색어에 올랐다. 과거 폐업까지도 고민했던 ‘짐승파스타’였지만 현재는 본점에 이어 부평점을 오픈하는 등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코로나19로 경기가 침체되자 코로나가 이어지는 기간 동안 임대료를 면제하는 착한 건물주의 사례나 어려운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저렴한 가격을 그대로 유지한 채 메뉴를 판매하는 가게의 선행도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불러일으켰다. ‘매출로 혼쭐을 내주자’라며 사람들은 가게의 상호를 공유하고 리뷰를 남기며 현재까지도 선한 영향력을 활발히 나누고 있다.

지난 1일 사다리차로 인명을 구한 한상훈 씨의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다. 인테리어 자재 운반을 하던 한상훈 씨는 불길 속 베란다 난간에서 구조 요청을 하는 주민을 발견한 뒤, 자신의 사다리차를 이용하여 주민을 구했다.

이어 구조 요청을 하지 않는 학생 2명을 발견하고 사다리차가 망가질 것을 감수하면서도 학생들을 구조했다. 긴박한 상황이었음에도 자신의 안전보다 타인을 위해 기꺼이 나서는 용기 있는 행동에 많은 이들의 경직된 마음에 따스함을 안겨 주었다.

코로나19의 위기 속에서도 우리는 웃음을 찾고 따스한 것에 본능적으로 눈길을 둔다. 어쩌면 지금 우리가 가장 간절한 것은 사람과의 대화뿐만 아닌, 서로가 지닌 온기나 존재감, 우리가 여기 함께 있다는 믿음이나 확신이 아닐까.

코로나19는 그간 볼 수 없었던 새롭고도 독특한 문화 양상을 보여주었다.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는 기간이 길어지면서 사람들은 평소에 하지 않던 즐길거리를 집 안에서 찾기 시작했다. 올해 초 인스턴트 커피와 설탕, 약간의 물을 넣은 뒤 400번 저어야 만들 수 있는 달고나 커피나 1000번 저어 만드는 수플레 계란말이, 1000번 이상 주물러 만드는 아이스크림 등 오랜 시간 공들여 만들어야 하는 레시피가 큰 인기를 끌었다.

N차 신상은 또 어떤가. 코로나19로 인한 경기 불황으로 사람들은 새로운 물건을 구입한다기보단 집에 잠자고 있는 안 쓰는 물건을 팔아 돈을 벌고, 그 돈으로 저렴한 가격의 필요한 물건을 산다. 최근 지역 기반으로 물건을 사고팔 수 있는 당근마켓이 큰 인기를 끌면서 중고거래는 하나의 새로운 놀이문화가 됐다. 희소성을 가진 한정판 운동화나 구하기 힘든 명품 의류나 가방을 거래하며 신상이 아닌, N차 신상이라는 용어를 만들어 냈다. 뿐만 아니라 취향이 유사한 사람들끼리 모여 이야기를 나누거나 제품의 사용법을 공유한다. 단순히 가격만 보고 사고파는 것이 아닌 공감대를 형성하며 취향을 나누는 모이는 모임이 성행하고 있다.

코로나19는 글로벌 색채전문기업인 팬톤(PANTONE)의 올해의 컬러에도 영향을 미쳤다. 매년 12월 올해의 컬러를 선정하는 팬톤(PANTONE)은 다양한 분야의 디자인에 영감을 주며, 한 해의 컬러 트렌드를 이끌고 있다. 지난 10일 발표한 2021년의 컬러를 대표하는 두 가지 색상은 일루미네이팅(Illuminating)과 얼티밋 그레이(Ultimate Gray)다. 밝은 노란빛으로 보이는 일루미네이팅은 따뜻한 햇살을 떠올리게 하며 긍정, 낙관을 의미를 담고 있다. 다소 차분한 회색빛의 얼티밋 그레이는 풍화를 견디는 해변의 자갈 같은 회색으로 견고함과 회복을 의미한다. 팬톤은 위 색상을 코로나19로 불확실하고 우울했던 한 해를 격려하고 극복해 나가자는 메시지를 담았다고 말했다.

윤여진 2018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 부문에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현재보다 미래가 기대되는 젊은 작가.
윤여진 2018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 부문에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현재보다 미래가 기대되는 젊은 작가.

일루미네이팅과 얼티밋 그레이 색상이 재미있는 것은 두 가지 색상은 빛과 그림자처럼 상반되는 색을 띠었다는 점이다. 로리 프레스만 부사장과 레트리스 아이즈만 전무 이사는 “코로나19로 거리를 둬야 했지만 동시에 서로가 필요함을 체감한 한 해를 보냈다”고 말하며, 두 가지의 색상을 올해의 컬러로 지정한 이유에서는 ‘강인하고 희망찬 두 컬러의 화합을 통해 우리에게 극복할 수 있는 희망의 메시지를 줄 수 있을 것’이라는 의미로 위 컬러를 선정했다고 말했다.

코로나19로 인해 내가 지향하는 삶의 방향성은 간략하고 분명해졌다. 화장품이나 옷을 사는 대신 꼭 필요한 것들로만 내 안을 채우는 소비 습관을 지니는 것은 물론 필요 없는 물건이나 관계마저 정리하게 되었다. 혼란의 폭풍 속에서 한 발짝 멀어져 휘청거리던 나를 다시금 바로 세우는 일은 많은 죄책감을 갖게 했지만 어떠한 용기가 생겼다. 타인을 멀리하고, 그러다 쉽게 배제도 되었지만 역설적이게도 거리두기의 시간은 사람의 정과 온기를 그리워하게 했다.

그럼에도 늘 세계는 혐오와 증오로 점철되어 있고, 나 또한 어느 순간에는 나만이 아는 무지의 동굴로 빠져들지만 그런데도, 정말 그럼에도 불구하고 뒤돌아보게 되는 것이 있다. 그것이 무척 이기적이고 무모하고 난해하더라도 동굴 속의 빛을 쫓듯 아직 오지 않은 시간의 희망을 바라고 믿어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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