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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많던 관종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등록일 2021-08-03 18:21 게재일 2021-08-04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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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관종’ 학생이던 시절.

일요일 오후, SNS 친구 신청이 하나 와 있었다. 보통은 허위 계정만 아니라면 별 고민 없이 수락 버튼을 누르는데, 낯익은 이름이어서 잠시 손이 멈췄다. 분명 어디서 본 이름이었는데 누구인지는 떠오르지 않았다. 프로필 사진은 이십대 중반의 남자. 한참동안 들여다보고서야 누구인지 기억해냈다. 학부시절에 아르바이트로 학원에서 강사 일을 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가르쳤던 아이였다. 많이 까불던 아이라 다른 선생들이 애를 먹었던 기억이 있다. 세월이 많이 흘렀고 녀석도 어른이 되었지만, 예전의 장난기 어린 눈빛이 남아 있었다.

녀석은 요즘 말로 하면 ‘관종’이었다. 수업이 진행될만하면 말장난을 해서 아이들을 웃겼다. 그때만 해도 학원가에 체벌이 아직 남아 있을 때라, 녀석이 있는 반 옆 교실에서 수업을 하다 보면 다른 선생들이 몽둥이로 그의 엉덩이를 때리는 소리가 들리곤 했다. 녀석은 맞으면서도 친구들을 웃기려고 희한한 소리를 냈다.

나는 그 아이가 좋았다. 사실 나도 관종 기질이 조금 있다. 그래서 지금도 내 이름을 내걸고 하는 직업들을 얻은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중고등학교때는 내성적인 편이라 마음껏 까불지는 못하고, 그 녀석처럼 나서서 친구들을 웃기는 아이들을 부러운 눈으로 쳐다보곤 했다. 무엇보다 나는 그 아이의 말장난이 웃겼다. 시답지도 않은 언어유희들이었는데 은근히 센스가 있었다. 가끔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 강의를 제대로 하지 못한 적도 있었다. 사실 그 아이를 다루는 방법은 그렇게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원하는 만큼의 관심을 주면 되는 것이었다.

“너, 웃겨봐.”

“네?”

“나 진짜 너 웃겨서 그래. 오늘은 웃길 거 없어?”

“아, 당황스럽게 왜 그러세요~”

“왜? 좀 웃겨줘. 다들 기다리잖아.”

나는 아예 녀석에게 마음껏 웃길 수 있는 시간을 주었다. 처음에는 쭈뼛대던 녀석이 나중에는 학교에서 있었던 웃겼던 일, 같은 반 친구의 부끄러운 일, 아니면 되지도 않는 인터넷 유머를 가져오게 되었다. 나와 반 아이들은 웃기는 천재라며 한없이 추켜 세워주었고, 안 웃긴 날에는 ‘그럼 그렇지’하며 가차없이 놀리곤 했다. 아이는 우리 반 분위기 메이커가 됐고, 다른 아이들이 지루하지 않게 수업을 들을 수 있도록 해주는 활력소가 되어주었다. 나는 녀석이 꼭 개그맨이나 배우 같은 직업은 아니더라도 무언가 자신의 유쾌한 재능을 활용할 수 있는 일을 해서 크게 될 거라고 확신했다. 반가운 마음에 녀석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어이, 오랜만이네.”

“선생님! 안녕하세요! 잘 지내셨어요?”

“그럼, 잘 지내지. 제자님은 어떻게 지내는가? 대학 졸업할 때 되지 않았나?”

“저 진작에 졸업했어요. 지금은 부사관 하고 있어요.”

아이는 군인이 되어 있었다. 취업도 힘들고 일자리의 안정성도 적은 요즘 같은 때 많이들 권장 하곤 하는 길을 걷고 있는 셈이었다.

“이야, 의외네. 군인이라니. 상상도 못했어.”

“그쵸, 저도 제가 이렇게 될 줄은 몰랐어요. 그래도 저희 아버지도 군인이셔서 많이 낯설진 않아요.”

“나는 네가 좀 더 까불 수 있는 일을 할 줄 알았는데. 거기선 안 까불지?”

“군대에서 까불면 큰일 나죠. 저 옛날이랑 많이 달라졌어요, 선생님.”

강백수세상을 깊이 있게 바라보는 싱어송라이터이자 시인. 원고지와 오선지를 넘나들며 우리 시대를 탐구 중이다.
강백수세상을 깊이 있게 바라보는 싱어송라이터이자 시인. 원고지와 오선지를 넘나들며 우리 시대를 탐구 중이다.

우리는 한참동안 대화를 나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채팅창 옆의 프로필 사진을 보면서도 나는 내 대화 상대가 그 옛날 그 녀석이라는 생각이 잘 들지 않았다. 왠지 모르게 너무 진중해진 모습을 보며, 나보다 더 철이 들어버렸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 옛날 철딱서니 없었던 그 모습이 그리워졌다.

가만 생각해 보니 어릴 때 통통 튀고 재미있었던 친구들이 철이들며 그런 발랄함을 잃어버리는 것을 그동안 많이 봐왔다. 재기발랄함보다는 점잖음이 미덕인 나라. 많은 사람들이 그들에게 철 좀 들라고, 어른스럽게 굴라고 타박을 했을 거다. 누군가는 그들을 관종이라며 비난하기도 했을 것이다. 박수갈채를 받으며 자랐더라면 적당히 철들면서도 여전히 유쾌하고 재미난 어른으로 성장했을 친구들이 나이를 먹으며 하나같이 진중하기만 한 어른이 되어버린 것이다. 세상에는 까불까불 하는 사람들도 필요한데. 그 재기발랄함에서만 나올 수 있는 가치들도 존재하는 것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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