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라면 누구나 작품집 원고를 묶어 유명 출판사에 투고해 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채택되지 않을 경우 친절한 출판사는 원고에 대한 상세한 피드백을 담아 회신해준다. “이러이러한 부분은 좋았으나 이러저러한 점이 아쉬워 원고를 돌려드린다”고 말해주면 납득이 된다. 도저히 결과를 받아들일 수 없는 경우는 출판사가 원고를 제대로 읽어보지도 않은 것 같을 때다. 작품에 대한 구체적인 말은 한 마디도 하지 않고 “저희 출판사의 출간 방침과 맞지 않다”고 한다든가 최소한의 설명도 없이 “출간할 수 없다”고 하면 따져 묻고 싶다. 대체 내 작품이 왜 채택되지 않았느냐고, 영 형편없는 저 아무개의 작품보다 내 글이 못한 게 무엇이냐고.
도쿄 올림픽 야구 국가대표팀 엔트리 선발 과정에서 잡음이 일었다. 올 시즌 최고의 활약을 보이고 있을 뿐 아니라 지난 시즌에도 꾸준히 잘한 한화 불펜 투수 강재민이 선발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 성적 지표상 다른 선수들보다 모든 부분에서 뒤쳐진 NC 2루수 박민우가 뽑힌 것도 의아함을 자아냈다. 선수 선발 전권을 가진 김경문 감독은 나름대로 이유를 설명하긴 했지만 티브이 중계화면 말고 현장을 직접 볼 수 없는 팬들은 답답할 수밖에 없다. 선발 과정이 투명하게 공개된다면 불식될 논란이다.
국민의힘 이준석 당 대표가 연일 정치판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고 있다. 경선에서 강조했던 공정과 경쟁이 주요 당직자 임명 과정에 뚜렷하게 나타나면서 호평을 얻는 중이다. 대변인단을 선출하는 토론배틀 ‘나는 국대다’의 경쟁률이 무려 141대 1이고, 치열한 경쟁을 뚫고 16강에 오른 참가자들의 면면이 화제가 되고 있다. 토론배틀 다음은 ‘정책 공모전’이라고 한다. 인재를 등용하고 정책을 수립하는 과정을 모든 사람이 알 수 있도록 투명하게 공개하는 것이다. 보수야당은 이렇게 새로운 시도로 국민의 이목을 모으는데, 여당은 ‘페라가모 구두’, ‘따릉이’, ‘병역 의혹’, ‘X파일’ 같은 구태 공작 카드만 남발하고 있다. 국민들은 피곤할 따름이다.
청와대는 최근 25세 대학생인 박성민 씨를 청년비서관으로 임명했다. 1급 공무원에 해당하는 고위직이다. 박성민 비서관의 능력이 뛰어나다고 하지만, 이준석 돌풍에 어떻게든 대응하고자 부랴부랴 기획해낸 이벤트성 인사로 보일 뿐이다. 자질은 둘째 치고 많은 국민들이 제기하고 있는 ‘공정성 문제’에 대해 청와대가 곱씹을 필요가 있다. 선발 과정이 공정하고 투명했느냐는 것이다. ‘낙하산’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청와대와 여당은 “이준석 대표도 박성민 비서관이 훌륭하다고 말했다”며 박 비서관의 능력과 자질을 주목해 달라 읍소하는 중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이번 정부가 지닌 고질적인 근시안이 드러난다. 국민들 특히 2030세대는 박 비서관의 실력을 가지고 왈가왈부하는 게 아니라 뛰어난 실력을 가진 인재가 어떤 선발 과정을 거쳐 그 자리에 임명되었는지 궁금하다는 것이다. 이준석 대표와의 비교도 어불성설인 게 이 대표는 여론조사, 토론회, 당원과 일반 국민이 참여한 투표 등 전국에 생중계된 치열한 경선 과정을 거쳐 선출됐고, 박 비서관은 느닷없이 임명됐다. 인사에는 구체적이고 명확한 기준이 있어야 하지만, 박 비서관 임명을 두고 정부는 ‘젊고 능력 있다’는 피상적 인상만 국민들에게 주장할 뿐이다.
일각에서는 정당 활동 외에 취업 경력이 없는 박 비서관이 대학 졸업도 하지 않고 1급 공무원에 발탁된 것 자체가 불공정이라고 말한다. 명문대 졸업생이 5급 행정고시에 도전할 때 보통 3년 이상을 공부하는데, 행정고시는커녕 그 어떤 경쟁도 치르지 않고 고위 공무원이 된 박 비서관을 보면서 박탈감을 느낀다는 것이다. 그동안 해온 노력들이 다 헛되다는 허무함마저 든다고 한다. 실력이 뛰어나다면야 파격 승진도 물론 가능하다. 실력을 의심하는 게 아니라 자격을 의심하는 것이다. 그 실력을 가지고 다른 실력자들과 공정한 경쟁을 벌여 선발되었어야 한다는 것이다. 오직 실력만이 자격요건이라면 실력이 입증될 만한 검증 과정이 공개되었어야 한다는 것이다.
박성민 비서관보다 더 유능한 청년들이 얼마나 많을까? 아무리 뛰어난 스펙을 쌓아도 지원 자격조차 얻을 수 없는 수많은 청년들이 청와대와 박 비서관을 지켜보고 있다. 합당한 인사였다는 것을 국민들이 납득할 수 있게, 부디 제대로 된 청년정책을 펼쳐주길 바란다. 그 뛰어나다는 실력을 아낌없이 발휘해주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