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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소한 재능이라도

등록일 2021-06-21 20:18 게재일 2021-06-22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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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인 유재석의 재능은 사소한 장점들의 조합에서 온 것이 아닐까.

몇 년 전 어느 텔레비전 강연 프로그램에서 강연을 한 이후, 가끔 기업이나 학교에서 강연 요청이 오기도 한다. 얼마 전에는 한 대학에서 특강 강사로 초청을 해 주어서 다녀왔다. 강연 내용은 별 것 아니다. 그냥 내가 여태까지 음악을 하고 글을 쓰면서 느낀 것들을 늘어놓을 뿐이었는데 학생들이 눈을 빛내며 경청해주어서 나도 행복하게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

강연 시간보다 더 즐거운 시간은 학생들의 질문을 받는 시간이다. 요즘 친구들은 이런 고민들을 하고 사는구나 싶을 때도 있고, 예전에 내가 했던 고민을 똑같이 하고 있는 것을 보며 마음이 애틋해질 때도 있다. 그 날도 몇몇 학생들이 질문을 해 주었는데, 그 중에 하나는 이런 거였다.

“강사님. 저는 진짜 아무리 생각해도 잘 하는 게 없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뭘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것은 나도 꽤 오랫동안 했던 고민이었다. 나도 오랫동안 자기소개서의 ‘특기’란을 채우기를 힘겨워했다. 남 얘기 같지가 않아서 되도록 도움이 될 만 한 이야기를 해주고 싶었다.

“정말 없을까요? 하나도요?”

“네. 진짜 많이 고민을 해봤는데요, 없어요.”

“혹시 재능이라는 단어를 너무 대단하게 생각하는 건 아닐까요? 분명히 어떤 장점이 있는데 ‘이까짓 게 무슨 재능이야’ 하면서 넘겨버리고 있는 것일 수도 있거든요. 재능이라는 것의 기준을 좀 낮춰 보면 의외로 쉽게 찾을 수 있을지도 몰라요.”

사실 이 이야기는 예전에 친구들과 축구게임을 하며 쓸데없이 ‘박지성은 축구 천재인가’에 대한 논쟁을 하다가 나온 것이었다. 누군가는 박지성이야말로 노력의 표본이라고 외쳤고, 누군가는 그가 타고난 실력이 없었다면 그 위치에 갈 수 있겠냐며 핏대를 세웠다.

그런데 나는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애초에 ‘축구를 잘 하는 재능’이라는 것이 존재할 수 있는 것인가? 재능이라는 것은 선천적으로 무언가를 잘 하는 능력이다. 그런데 축구는 결국 사람이 발명한 것이다. 축구가 자연 발생한 것이 아닌데, 그것을 잘 하는 능력이라는 것이 자연 발생할 수 있는 것인가?

축구를 잘 하는 재능이라는 것은 허구인지도 모른다. 다만 폐활량이 좋고, 발이 빠르고, 하체 힘이 좋고, 시야가 넓은 것과 같은 단순한 재능들이 존재할 뿐이다. 박지성은 이러한 재능들을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는 축구라는 종목을 선택한 것이다.

국민MC, 유느님이라고 불리는 유재석. 그에게는 ‘방송진행을 잘하는 재능’이라는 것이 있었을까? 방송이라는 산업 역시 사람이 발명한 것이다. 유재석에게는 타인의 말을 경청하는 능력, 누구 하나 소외되지 않도록 하는 배려심, 대화의 흐름을 캐치하는 눈치, 다른 사람들의 능력을 파악하는 눈썰미, 그리고 다양한 어휘를 조합해서 문장을 만들어내는 언어능력이 있었을 것이다. 방송진행에 있어서 천부적이라고 하는 그의 재능은 어찌 보면 사소하다고 볼 수 있는 여러 가지 장점들을 훌륭히 조합해 만들어낸 재능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강백수세상을 깊이 있게 바라보는 싱어송라이터이자 시인. 원고지와 오선지를 넘나들며 우리 시대를 탐구 중이다.
강백수 세상을 깊이 있게 바라보는 싱어송라이터이자 시인. 원고지와 오선지를 넘나들며 우리 시대를 탐구 중이다.

이런 식의 재능이라면 누구나 몇 가지는 발견할 수 있다. 누구는 손이 크고, 누구는 손가락이 길다. 누구는 후각이 예민하고, 누구는 손놀림이 야무지다. 누구는 눈치가 빠르고, 누구는 매사에 끈기가 있고, 누구는 붙임성이 좋고, 누구는 조심성이 있다. 어지간한 개성이나 특징은 다 사소한 재능이 될 수 있다. 이런 것들을 모아두고 보면 의외로 내가 잘 할 수 있는 일은 간단하게 발견할 수 있다. 나 같은 경우 목소리가 큰 편이고, 성대가 건강한 편이다. 폐활량이 좋고, 부끄러움을 잘 타지 않는 성격을 가지고 있다. 이런 장점들을 긁어모아 가수를 해서 먹고 살고 있는 것이다.

“나는 뭘 잘하는지 고민하기보다는 사소한 재능들을 한번 샅샅이 찾아보세요. 정말 이런 게 재능일 수 있을까 싶은 사소한 것이라도 괜찮아요. 그런 것들을 싸그리 모아 놓고 보면 내가 뭘 하면 좋을지 발견할 수 있을 거에요.”

나의 이야기를 들은 학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후 내가 다른 질문들에 대답을 하는 내내 그는 생각에 잠겨 있었다. 강단에서 내려올 때까지 나는 그런 그를 슬쩍슬쩍 바라봤다. 그는 어떤 사소한 재능들을 발견했을까. 그렇게 발견한 재능들에 어울리는 진로를 찾는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조금 더디더라도 그가 잘 할 수 있는 일을 꼭 찾아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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