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서울 마포구의 홍대 앞을 중심으로 음악활동을 시작한 인디뮤지션이다. 처음 기타를 등에 짊어지고 홍대 앞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던 때가 스무 살이었고 이제 곧 서른아홉 살이 되니 거의 스무 해 가까이 그 동네의 골목골목을 누빈 셈이다. 저 모퉁이를 돌면 무슨 가게가 나오고 거기는 뭐가 맛있고 하는 정보들을 꿰고 있었고, 어딜 가든 아는 얼굴들을 만나 반갑게 인사를 하곤 했다. 그 거리가 다 내 영토 같았고 나는 그곳을 지배하는 왕이라도 된 기분으로 하루하루를 보냈다.
세월이 많이 흘렀다. 나는 별로 변하지 않은 것 같은데 거리가 참 많이 변했다. 사랑했던 공연장들, 단골집들이 하나하나 문을 닫고 그 자리에 낯선 간판들이 내걸렸다. 여전히 북적북적한 메인 거리에는 언제부턴가 가기가 부담스럽다는 기분이 들기 시작했다. 좀 더 바깥쪽으로, 좀 더 후미진 곳으로 밀려나 살아남은 몇몇 익숙한 공간들만이 나의 마지막 남은 피난처가 되었다. 내가 거느리던 그 영토에서는 그때의 나를 닮은 젊은 친구들이 취하고, 싸우고, 소리치고, 사랑하고 있다. 그것이 문득 파도처럼 내 마음을 덮친 밤 나는 노래 한 곡을 썼다.
지난주에 발매된 새 싱글 ‘퇴위’는 그렇게 만들어진 곡이다. 이제는 그 흥성거리는 거리를, 그리고 그곳을 누비던 한 시절을 떠날 때가 되었다는 걸 인정한다는 고백을 담았다. “난 이제 물려준다. 정들은 내 영토를. 새로운 인류에게로. 난 이제 떠나간다. 세월의 뒤안길로. 아무런 흔적도 없이.” 내가 사랑했던 공간을 다음 세대에게 물려주고 이제는 새로운 공간과 시절을 향해 새로운 여정을 떠나겠다고 노래해보았다. 한 시절이 저무는 것에 대해 아쉬움이야 왜 없겠는가. 그러나 이제는 인생의 새로운 계절을 맞이해야 할 시기임이 분명하다. 그 공간과 그곳을 채우는 모든 사람들이 더 이상 나를 원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이제는 받아들이기로 했다.
세상에 존재하는 문장들 중에 아름다운 것을 꼽으라면 참 곤란한 일이 되겠지만 그래도 나는 이형기 시인의 ‘낙화’라는 시의 첫 문장만큼은 반드시 그 안에 포함시킬 것이다. “가야할 때가 언제인가를/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적절한 시기에 지키던 무언가를 내려놓고 떠나간다는 것은 분명 아름다운 일이지만 너무나도 어려운 일이다. 나 역시 언제나 그 시기를 놓치곤 했다. 대학을 졸업하고도 학교 앞 거리를 망령처럼 떠돌았고, 오히려 청소년기를 보냈던 오래된 동네는 나이를 먹을수록 그립기만 하다. 그러나 이제는 알고 있다. 가야할 때를 알고 아름답게 떠나지는 못하더라도, 적어도 구차하게 추한 모습으로 내가 머물고 있는 공간과 시절에 들러붙어있지는 말아한다는 것을.
그렇다면 가야할 때는 언제 오는가. 여러 가지 경우가 있을 수 있다. 단지 나이를 먹었다는 이유만으로 떠나야 하는 공간도 있다. 학교가 그렇고 정년을 맞았을 경우 회사가 그럴 수 있다. 이렇게 남들이 정해준 시기에 떠나는 일은 어려운 것이 아니지만, 떠나야 할 시기를 스스로 정해야 하는 경우들이 늘 어려운 것이다.
때로는 더 소중한 가치가 내가 머무는 곳 바깥에 생겼을 때 떠나야 할 시기가 찾아오곤 한다. 이십대 청춘의 흔적이 남아있는 그 번화가를 떠난다는 선언이 그곳에 다시는 발길을 향하지 않겠다는 다짐은 아니지만 적어도 그곳이 이제 내 삶의 중심을 둘 공간이 아니라는 것을 받아들이는 행위임은 분명하다. 나는 이제 그곳 바깥에 가정이 있고 책임져야 할 자식이 있는 사람이기에 이제는 미련 없이 떠나겠다는 노래를 만들게 된 것이다.
살다보면 더 이상 내가 자리를 감당할 수 없을 시간이 간혹 생긴다. 그때는 물러나야 할 순간이다. 내가 변했거나 내가 감당해야할 것이 커졌거나 예상치 못한 사정으로 인한 것이지만 어쩔 수가 없다. 운명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물러선다면 그 시기 또한 중요하다. 우리는 그것을 눈치라고 부른다. 눈치가 보이기 전에 눈치를 채는 것이 모두를 위하는 길일 수 있다. 어렵게 거머쥔 것이어서 내려놓는다는 것이 슬프기도 하겠지만 인정해버리면 속 시원해질 수도 있다.
누구에게나 해당되는 떠나야 하는 때가 오면 스스로 떠나는 것이 옳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 말단 직원부터 기업대표나 국가 최고의 기관장을 비롯한 육해공군 장성이나, 심지어 국가 의전서열 1위 같은 그 어떠한 자리라고 할지라도….
신곡 ‘퇴위’가 참 공교로운 때에 나왔다. 그런데 가만 보면 세상에 공교로운 일들에도 어떠한 의미가 담겨있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나는 기억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