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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명가게

등록일 2025-01-13 19:28 게재일 2025-01-14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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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내 의지만으로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Chat GPT

디즈니플러스 드라마 ‘조명가게’는 코마 상태 속에서 삶과 죽음의 경계에 놓인 사람들의 이야기다. 어느 날 시내버스가 다리 아래로 추락하면서 탑승자들은 죽거나 중상을 입는다. 중환자실에 실려 온 생존자들은 의식을 찾지 못한 채 의료기기에 겨우 의존해 목숨을 유지하고 있을 뿐이다. 그런데 혼수상태에서 그들은 꿈인지 현실인지 분간할 수 없는 기묘한 체험을 한다. 평소와 다를 것 없는 일상이 펼쳐지는 가운데 마주치는 사람들이 어딘지 이상하다. 사람이지만 사람 같지 않은 이질감을 눈치 채는 순간, 바로 그 자신 또한 이상한 세계에 속해 있는 이상한 존재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 이상한 세계에는 어두운 골목이 있고, 그 골목의 끝에는 조명가게가 있다. 현실에도 존재하고 환상에도 존재하는 이 수상한 가게는 사람의 생사를 관장한다는 북두칠성처럼 환하게 불 켜진 전구들로 가득하다. 전구들은 모두 누군가의 생명 빛이다. 전구가 깨지거나 불이 꺼지면 그 사람은 죽는다. 반대로 죽음의 문턱에서 자기 전구를 찾아 간직하게 되면 삶으로 다시 건너갈 수 있게 된다. 조명가게는 불교의 삼도천이나 가톨릭의 연옥과 비슷한 개념의 장소인 셈이다.

죽어가는 이들을 살리는 건 죽은 자들이다. 조명가게가 있는 골목에서 죽은 자들의 영혼은 장례를 치르고 발인이 마쳐지기까지 사흘 동안 산 사람들의 영혼과 교류할 수 있다. 죽은 자들은 사랑하는 이를 어떻게든 삶 쪽으로 돌려보내기 위해 눈물겨운 노력을 한다. 스포일러가 될 테니 다 이야기할 순 없겠지만, 가장 인상적인 건 코마 상태의 현민(엄태구)을 살리기 위한 죽은 지영(김설현)의 헌신이다. 살아서는 농아라는 이유로 현민의 부모로부터 외면 받은 지영이 버스 사고로 허리가 끊어진 남자친구를 붙들고 처절한 바느질을 한다. 이때 힘껏 바늘을 꿰는 팔의 운동이 환자의 심박그래프와 겹쳐지는 장면은 뭉클함의 최대치를 느끼게 한다.

내 의지로 살아가지만 삶은 내 의지만으로 살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내가 나를 살게 하는 것 같아도 어느 모르는 시공간에서 누군가가 나를 살리고 있는 지도 모른다. 교회에 안 나간 지 오래됐지만 “누군가 널 위하여 누군가 기도하네. 네가 홀로 외로워서 마음이 무너질 때 누군가 널 위해 기도하네”라던 복음성가를 지금도 가끔 흥얼거리는 것은 누군가가 나를 살게 한다는 믿음, 또 내가 당신을 살게 하리라는 소망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마주보고 누웠을 때/ 당신의 심장은 아래로 쏟아지고/ 내 심장은 쏟아지는 세상을 받아냈는데/ 내 팔베개에서 자꾸만 강물이 흘러/ 당신 귀는 깊이 잠들지 못했네/ 내 피가 실어 나르는 복숭아 꽃말을/ 다 듣고 있었네 그때 나는/ 벌써 죽은 사람이었고/ 당신은 살아서는 다시 못 꿀/ 꿈처럼 가엾이 아름다웠네”

이병철 문학평론가이자 시인. 낚시와 야구 등 활동적인 스포츠도 좋아하며,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이병철 문학평론가이자 시인. 낚시와 야구 등 활동적인 스포츠도 좋아하며,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몇 년 전에 쓴 ‘몽유도원’이라는 졸시다. ‘조명가게’를 보고 나서 시를 다시 읽어보니 시가 어딘지 달라져 있다. 여러 번 읽어봐도 시는 그대로인데 뭐가 달라진 걸까. 드라마의 내용이 겹쳐지면서 내 시지만 애틋해진 것 같다. 죽은 사람은 사랑하는 이를 살리고 저승으로 간다. 저승으로 가면 이승에서의 모든 기억은 “다시 못 꿀 꿈”이 되어버린다. 하지만 산 사람은 떠난 이와의 기억을 안고 살아간다. 때로는 존재보다 부재가 더 환한 빛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결국 사람을 살리는 건 사람이다. 초자연적인 현상을 다루고 있어 드라마에 전경화되지는 않지만 망자를 대하는 장례지도사들의 품격 있는 태도와 환자를 살리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의사와 간호사들의 헌신은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병아리가 알을 깨고 나오려면 안팎에서 동시에 두드리는 줄탁동시(啐啄同時)가 필요한 것처럼 한 사람을 살리기 위해서는 산 사람과 죽은 사람이 힘을 합치는 것은 물론 그 자신의 의지까지 다 동원되어야 한다. 사는 것보다 죽는 게 더 쉬운 세상에서 우리는 서로의 전구가 될 수 있다.

얼마 전 조현병 환자들을 대상으로 한 시창작 수업 첫날, 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한 남자분이 활짝 웃으며 “잘생기셨어요. 키도 크고” 대뜸 두 손을 덥석 잡았다. 내 손이 차다며 나를 이끌고 온풍기 앞으로 가더니 따뜻한 바람에 손을 녹이게 했다. 연말부터 쭉 지치고 어두웠던 마음에 뭉클한 빛이 번졌다. 내가 그들에게, 또 그들이 내게 전구가 되어주는 조명가게의 문이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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