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연휴의 끝자락,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섭외를 해 주셨다. 나는 라디오에 출연하는 것을 참 좋아한다. 추억이 많아서 애착을 갖게 되는 매체이기도 하고 나라는 사람에 대해 이것저것 정성스런 질문을 준비해 주시는 것도 언제나 기쁘다. 무엇보다 내가 정성들여 만든 음악을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거기에 대해 이야기 할 시간까지 주어진다는 것은 매우 감사한 일이다. 이번에도 반가운 마음으로 섭외 요청에 응했는데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었다. 제작진 분들께서 라이브로 노래를 불러달라는 부탁을 해 주셨다는 것이다.
가수가 노래 부르는 것은 별로 문제가 될 만한 일이 아니다. 단지 그 프로그램이 아침 여섯 시, 생방송으로 진행되는 프로그램이었다는 게 다소 마음에 걸리는 일이었다. 그 시간에 일어나서 방송국에 가는 것만 해도 쉽지는 않은 일인데 목을 풀려면 더 일찍 일어나야 한다. 좋은 컨디션을 만들지 않으면 실수 할 확률이 높아지는데 생방송이라 돌이킬 수도 없으니 상당히 높은 난이도의 미션이었던 것이다. 그렇지만 이런 것 저런 것 따져 가면서 일을 가려서 받는 건 직업인으로서 성실한 태도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고, 나는 일종의 도전정신을 품고 출연을 수락했다.
노래를 제대로 부를 수 있는 컨디션을 만들려면 보통 스케줄 시간보다 세 시간은 먼저 일어나야 한다. 새벽 세 시에 일어나 씻고 외출 준비를 한 뒤 운전대를 잡았다. 연휴 끝물 새벽의 도로는 아직 한창 밤잠을 자고 있는 듯, 한 시간 반 거리의 목적지에 40분 만에 도착했다. 하기야, 매일 열두 시 쯤 자서 여섯시 반은 되어야 일어나는 내게 이 시간대는 당연히 모두가 잠들어 있는 시간인 셈이었다.
그런데 다섯 시 조금 넘어 도착한 스튜디오 건물 안에서는 조금 다른 풍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안내데스크에는 이미 보안요원 한 분이 말끔하게 차려 입고 또렷한 얼굴로 앉아 있었다. 엘리베이터를 내리자 진작에 도착해서 방송을 준비하고 계시던 피디님이 나를 스튜디오로 안내해 주셨고, 기술감독님과 진행자분도 분주하게 생방송을 시작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세상에 없는 거나 다름없다고 여겼던 매일 이 시간이 이 분들에게는 당연한 듯이 일터에 나와 분주하게 업무를 보는 시간이었던 것이다.
여섯시, 생방송이 시작되자 청취자들이 저마다의 사연을 보냈다. 이 시간에도 참 부지런한 사람들이 많았다. 도로 위를 달리는 기사님들, 그리고 여기 방송국에 계신 분들처럼 일찌감치 사무실에 앉아 업무를 시작한 분들, 새벽을 달려 산이나 바다로 여행을 가는 분들, 일찍 일어나 가족들 밥을 챙기는 분들까지. 생각보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아침 해보다 먼저 일어나 이미 한창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사연 주신 분 중에 밭에 나가 아욱을 베며 방송을 듣고 계신 노년의 여성 청취자가 계셨다. 퍼렇게, 그러다 벌겋게 밝아오는 아침 하늘을 뒤로 하고 늦겨울의 밭에 서서 풀을 베는 한 사람의 모습을 떠올리니 그 성실함이 얼마나 숭고한 것인가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방송이 한창 무르익을 무렵 시침은 비로소 평소의 나도 일어나곤 했던 시간대를 지났다. 그 또한 가만 생각해보면 놀라운 일이다. 결혼을 하고 아기를 낳아 기르게 된 지금이야 일곱 시 전에 눈을 떠 아기 챙기기 시작하지만 그 전에 내게 이 시간은 어떤 시간이었던가. 게임을 하거나 티비를 보다가 새벽녘에야 침대에 누워 세상모르고 잠들어 있던 시간, 어쩌다 친구와 술자리가 길어지면 이제야 혼미한 정신을 붙들고 집으로 비틀대며 들어가곤 했던 시간이었다. 그때도 세상의 시간은 흐르고 그처럼 분주히 누군가들의 생활도 흐르고 있었던 것이다.
누구나 매일 24시간을 살지 않는다. 그리고 저마다 다른 시차에 적응한 채로 생활을 영위한다. 어떤 이에게는 저녁 여덟 시가, 또 어떤 이에게는 새벽 두 시가 언제나 지워진 시간일 것이다. 아침 여섯 시를, 열 한 시를 살아가는 일이 좀처럼 없는 이들도 얼마든지 있다.
누군가가 무의식 너머로 사라지고 없는 때의 세상은 다른 이들이 저마다의 성실함으로 채운다. 또 그들이 생활의 전원을 끄고 다음 하루를 준비하는 그 틈을 또 다른 이들의 부지런함이 메운다. 일 년 내내 불이 꺼지지 않는 24시간 편의점처럼 이 세상과 그것이 운영되는 시스템은 수많은 사람들이 졸린 눈을 비벼가며 교대로 지켜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니 이른 아침 노래 세 곡 부르는 일쯤이야 대단한 일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 음 한 음, 정성스럽게 노래를 불렀다. 그 시간 깨어 있는 모든 성실한 이들에게 바친다는 마음으로.
/강백수(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