챗GPT에 대한 기사와 칼럼들이 이미 수없이 쏟아져 나왔는데, 좀 늦은 감이 있지만 그래도 글을 보태보려 한다. 지난주에 강의하는 대학 두 곳의 성적 입력을 마쳤다. 400여 편의 중간, 기말고사 과제 리포트를 읽어보면서 챗GPT가 학생들의 글쓰기에도 깊숙이 침투해 있다는 걸 알았다.개강 첫 수업에서 학생들에게 글쓰기 윤리를 강조할 때 표절, 중복제출, 사적 정보 무단인용 등을 경계하라고 했다. 그러면서 챗GPT도 언급했는데, 인공지능이 써주는 글을 그대로 가져올 경우엔 F학점이라고 으름장을 놨다. 하지만 어느 정도 참고하거나 지식을 수집하는 데 활용하는 건 괜찮다고 했다. 챗GPT가 가진 백과사전의 기능만큼은 긍정했기 때문이다.지그문트 바우만은 ‘액체 근대’에서 21세기의 영원성 개념은 과거의 그것과 완전히 다르다고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20세기 근대의 영원이 공간을 오랫동안 점유하는 ‘지속성’이었던 데 비해 오늘날 영원의 개념은 짧은 순간에 많은 정보를 처리하는 ‘찰나성’이다. 학생들에게 바우만의 주장을 예시로 들어 챗GPT 같은 인공지능을 잘 활용하지 못하는 사람은 가벼움, 유동성, 속도가 지배하는 ‘액체 현대’에서 도태될 것이라는 경고도 했다.학생들의 과제를 읽어보았다. 대부분 학생들이 자기 힘으로 작문을 했지만, 챗GPT의 힘을 빌린 경우도 더러 눈에 띄었다. ‘GPT체’는 확연히 구분된다. GPT가 써준 걸 자기 문체로 바꾼 경우에도 티가 나는데, 그대로 긁어온 건 너무 심했다. D와 F 사이에서 고민하다가 자비를 베풀었다. 채점을 하면서 생각 두 개가 떠올랐다. 먼저 인공지능 시대에 문학을 전공하는 학생들은 기술보다 사람의 마음을 더 신뢰하고 있는 것 같아 마음이 좋았다. 다음은 좀 웃긴데, ‘챗GPT 이 녀석 순 엉터리에 거짓말쟁이군’ 하는 거였다.학생들이 챗GPT를 참고해 쓴 것으로 보이는 문장들에는 사실관계에 대한 오류들이 너무나도 많았다. 주로 작가의 생몰년이나 활동시기, 작품명 등이다. 그래서 직접 챗GPT에 “백석 시인에 대해 알려줘”라고 물었다. 그랬더니 황당한 대답이 돌아왔다.“백석(白石)은 대한민국의 현대 시인으로, 김수영(金壽永)으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1920년에 경상북도 칠곡에서 태어났으며, 1937년에 동국대학교 문과를 졸업한 후 작문학과를 전공하였습니다. 백석은 한국 전통 시문화에 대한 애정과 관심을 가지고 있었으며, 그의 시는 자연과 인간, 사랑, 삶의 고뇌 등을 다루는 내용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의 시는 자연과 조화로운 미적 표현과 진솔한 감정 표현으로 사람들에게 사랑받았으며, 많은 독자들에게 영감을 주었습니다.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눈물’, ‘벗’, ‘소나기’, ‘고향의 봄’, ‘해바라기’, ‘밤비’,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등이 있습니다. 그의 시는 단순하고 은유적인 언어로 사람들에게 다가가며, 대중적인 시인으로서 폭넓은 인기를 얻었습니다.”이걸 읽고 나서 “챗GPT, 너 미쳤어?”라고 외쳤다. 백석이 누군가? 한국 현대시 100년을 대표하는 시인이다. 그럼에도 본명, 생년, 학력, 출생지, 작품명까지 전부 다 틀리게 말했다. 게다가 김수영, 황순원, 이원수, 조세희 등 다른 문인들에 관한 피상적이고 파편적인 정보들을 조잡하게 취합해 늘어놓기까지 했다.
이병철 문학평론가이자 시인. 낚시와 야구 등 활동적인 스포츠도 좋아하며,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면서, 나는 인공지능이 인간을 대체하리라는 두려움은 내려놔도 되겠다고 안심했다. 그런데 그 안심은 이내 불안으로 바뀌었다. 챗GPT의 구동원리는 온라인 빅데이터를 수집하고 학습하는 데 있다. 즉 인간이 이미 만들어놓은 정보들을 활용한다는 것이다. 챗GPT는 디지털 기술이 어디까지 발전됐는지 우리에게 보여주는 한편, 온라인에 부정확한 정보들, 왜곡된 내용들, 입증되지 않은 가설 등이 얼마나 많은지도 함께 말해준다.결국 인공지능은 인간의 오류를 학습한다. 그렇잖아도 가짜 뉴스와 날조, 선동이 판치는 세상이다. 챗GPT는 온라인에 떠돌아다니는 온갖 거짓들을 근사한 사실로 포장하고, 첨단 기술을 강력히 신뢰하는 현대인들은 챗GPT가 제공한 정보들을 의심 없이 믿게 될 것이다. 인공지능 시대에 인류가 정말 두려워해야 할 것은 핵전쟁이 아니라 온통 거짓으로 가득 찬 세상인지도 모른다.
2023-07-04